레모네이드 할머니
현이랑 지음 / 황금가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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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있으면! 그래, 다른 거 다 없어도 돈만 있다면 노후 생활이 편해질 거로 생각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하다. 나이 먹고 돈 없으면 누가 나에게 밥을 줄까. 다른 가족이 있거나 자식이 있다면 그들과 비비며 늙어갈 수도 있겠지만, 자식도 없다면 혼자 늙어가다가 죽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말이다. 돈도 있고 자식도 있지만, 가족과 함께 살아갈 수 없는 때도 있더라. 치매라는 병 앞에서 선뜻 가족이니까 함께 살아야 한다는 말은 꺼내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여긴 모든 게 다 가짜다. 바다처럼 보이려고 바다 색으로 칠한 수영장, 잠금장치도 없는 가짜 방문, 마을도 아니면서 마을이라고 붙인 가짜 이름, 여기 사는 사람인 척하지만 돈 받고 일하는 어른들, 어른들의 가짜 웃음, 아이들의 가짜 친한 척, 이젠 아기가 되어 버린 가짜 할아버지 할머니들……. (45페이지)


도란 마을은 치매 환자들을 위한 병원이다. 하지만 누구도 병원이라고 느낄 수 없게 구성되었다. 넓은 집을 분양받듯 한 채씩 가지고 있고 그 안에서 각자 생활한다. 식사 시간이나 공동 운동 시간에는 함께 모이기도 하지만, 원한다면 사생활을 유지하며 살 수도 있다. 아프면 진료해주고, 배고프면 밥 주고, 필요한 게 있으면 마을 안 마트에서 산다. 카페도 있고, 미용실도 있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마을 안에서 해결된다. 의료진과 직원들은 자기 자리에 맞는 유니폼을 입고 있다. 의사 가운이나 간호사 복장은 아니다. 마치 마을의 주민처럼, 어느 레스토랑의 직원처럼 입고 있는 직원들. 치매에 걸린 노인들은 자기 세계에 빠져 살면서도 쉽게 공포에 떨고 놀라기도 한다. 환자들의 안정을 위해 만들어진 이 구성이 생각해보면 나쁘지 않아 보인다. 단 한 사람만 빼고.


평화로운 곳이다. 고요하고 큰 소리 한번 난 적이 없다. 그런 곳에서 갑자기 들려온 비명은 까칠한 할머니 탐정을 탄생시킨다. 최고급 리조트 같은 도란 마을의 쓰레기장에서 비닐봉지에 싸인 아기 시체가 발견된다. 도란 마을의 원래 땅 주인이었고 현재 도란 마을 입주자인 까칠한 레모네이드 할머니는 이 사건에 관심이 많다. 도란 마을의 의사 아들인 꼬마는 할머니와 팀이 되어 이 사건을 파헤친다. 사람도 싫고 아이도 싫어하는 할머니가 어떻게 꼬마와 팀을 이루었을까 싶지만, 원하는 게 같으면 원수도 아군이 되는 법. 할머니는 이 무료한 곳에서 사건을 추적하며 즐거움을 찾고, 꼬마는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으로 가슴에 있는 상처를 하나씩 치유해나간다.


여기가 그렇다. 이게 일상이다. 깨끗이 씻겨 놓은 노인들은 아기 같이 예쁘지만 그 똥은 아기의 것이 아니다. 아무리 자주 씻겨 준다 해도 죽음과 고통의 냄새는 가시지 않는다. 여기 일하는 모두가 말한다. 나는 이 병에 걸린다면 상태가 악화되기 전에 죽겠노라고. 아무리 좋은 환경에 있어도 치매는 치매다. 누구도 도망가지 못한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다. 뇌는 날로 쪼그라들고, 몸은 날이 갈수록 약해진다. 더 괴로운 건 내가 누군지도 모르게 되는 것이다. 그땐 흘릴 눈물조차 없어진다. 왜 슬퍼해야 하는지 모르니까. (114페이지)


비닐봉지에 버려진 아기 시체를 시작으로 사건이 발생하고, 경찰까지 불렀지만 별일 없이 묻혀버린 상황을 보니 이곳이 참 수상하긴 수상하다. 치매 노인을 위한 완벽한 천국 같은데, 이 수상쩍은 분위기는 뭐란 말인가. 이 찝찝함을 털어내기 위해서라도 할머니와 꼬마의 활약이 필요했다. 모든 것을 기억하기 어려운 할머니는 수첩에 수사(?) 상황을 꼬박꼬박 적는다. 꼬마는 눈치 빠르게 할머니의 조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사건의 진실에 다가갈수록 구린내가 풀풀 나는데...


이야기를 들을수록 왜 이렇게 씁쓸해지는지 모르겠다. 처음 했던 생각은, 돈만 있으면 노후가 그나마 덜 불행할 거로 여겼다. 틀리지 않는다. 노후가 그나마 행복하려면 돈을 필수 조건이다. 그런데 돈이 아무리 많아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여기서 새삼 느낀다. 최고 시설에 최고급 대우를 받는 곳이지만, 외로웠다. 가족이 있다고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니고, 가족이 없다고 외로운 것도 아니다. 레모네이드 할머니처럼 가족이 없어도 자기 삶을 잘 마무리하고 떠나는 사람도 많을 테지. 하지만 많은 이가 외로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치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또 그 틈을 이용해 부정부패와 비리를 저지르는 이들이 활개를 친다.


각자의 사정을 숨긴 채로 도란 마을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 외로움과 슬픔은 더 깊어진다. 가정 폭력에 시달리다 겨우 회복되려는 모자, 가난이 죄는 아닐진대 가난하다는 이유로 무시와 차별을 당하는 청년, 돈에 가려진 가족의 모습을 유지하며 불륜을 저지르는 부부, 아무리 못된 짓을 하고 다녀도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텅 빈 머리의 부모들, 당연하게 권력을 휘두르며 마약을 즐기고 마약 밀매까지 하는 권력자들, 이 사건의 시작이 되었던 아기 시체 유기까지. 세상에서 들려오는 온갖 나쁜 짓이 도란 마을 안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도대체 도란 마을은 어떤 곳인가?


남들에겐 흔한 비극이라도 자기가 당하면 서러워지는 게 인간이지.” (59페이지)


챕터마다 화자가 바뀐다. 그들의 속내를 듣는 일이 즐겁지만은 않았다. 내일을 살기 위한 오늘의 몸부림 같아서 말이다. 기쁨과 희망보다 감춰진 고통을 듣는 일이 쉽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할머니의 까칠한 말투나 세상 관조하는 읊조림은 사이다 같기도 하고 은근한 바람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해서 많은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못된 사람들에게 벌을 주고, 애쓰고 노력하며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할머니의 삶의 태도가 몸부림치는 것 같다. 우리는 각자의 나이에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이 있다. 그런데도 그 상황과 나이를 넘어서서 해야만 하는 일도 있는 듯하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감춰진 거짓을 드러낼 줄 아는 용기. 꼬마가 어쩔 수 없이 할머니 옆에 있었던 것이지만, 그 시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누군가는 감추려고 애썼던 범죄를 훌륭하게 들춰냈으니까. 어쩌면 어른이 더 배워야 할 태도가 아니었나 싶다.


심장 쫄깃해지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추리소설이었다. 도란 마을을 떠올리면 영화 <트루먼 쇼>가 생각나기도 했지만, 결말이 다르니 비교할 수는 없다. 다만, 본인은 모르는 본인의 삶이 다른 이들이 지켜보는 삶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내 일상을 모두가 지켜보고 있는데, 정작 나는 내 인생을 잘 모르는 시간. 끔찍했다. 그게 치매 노인의 시선이고 시간일 거로 생각하니 더없이 우울해졌다. 우리 자신도 정확히 모르는 우리의 최후가 어떤 모습일지 두렵기도 하고. 한 달에 1천만 원씩 내는 요양 시설에 가지는 못할 것 같고, 그러니 더 건강하게 살아보려 애쓰는 수밖에. 그래도 레모네이드 할머니처럼 살고 싶기는 하다. 멋지고 심플하게, 당당하게. 그 마지막 모습마저 레모네이드 할머니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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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T - 내가 사랑한 티셔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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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해도 이렇게 다양할 수가 있을까. LP 레코드를 모으는 걸 보고 놀란 게 얼마 전인데, 이제는 티셔츠라니. 하긴, 편한 차림으로 달리는 그를 생각하면 그와 티셔츠는 너무 잘 어울리는 조합이긴 하다. 하지만 티셔츠 수집은 또 다른 얘기라 의외의 느낌도 있다. 구석구석 파고들면, 그는 LP 레코드나 티셔츠만 모으는 건 아닐 거다. 문득 드는 생각이, 그의 집은 참 넓고도 넓어야 하지 않을까?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그가 수집하는 게 한둘이 아닐 것 같고, 그는 물건뿐만 아니라 세월 속 많은 것을 그의 가슴과 공간에 담아두고 있을 것만 같다. 그러니 지금 듣고 있는 티셔츠 이야기가 새삼스럽지는 않다. 오히려 앞으로 어떤 수집에 관한 이야기가 다시 들려올까 궁금할 정도가 되었으니. ^^


티셔츠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모인 것이다. 값싸고 재미있는 티셔츠가 눈에 띄면 이내 사게 된다. 여기저기에서 홍보용 티셔츠도 받고, 마라톤 대회에 나가면 완주 기념 티셔츠를 준다. 여행 가면 갈아입을 옷으로 그 지역 티셔츠를 사고……. 이러다 보니 어느새 잔뜩 늘어나서 서랍에 못다 넣고 상자에 담아서 쌓아 놓는다. 절대로 어느 날 좋아, 이제부터 티셔츠 수집을 하자하고 작심한 뒤 모은 게 아니다. (6페이지)


무언가에 꽂히는 것. 처음부터 작정하고 모으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말처럼 자연스럽게 모인 것이 수집되었을 거라는 데 동의한다.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그렇게 모인 것이 그의 공간을 채웠을 것이고, 그가 관심 두는 대상이 되었겠지. 그에게 티셔츠도 그러하다. 하나둘 눈에 들어오는 것을 집어 들었을 테고, 어딘가에 참석하면서 기념품으로 받았겠지. 여행하다가 기념하려고 챙겨 넣고, 작품 홍보용으로 받은 것도 많단다. 그렇게 모인 티셔츠는 처음에는 그의 옷장에 자리 잡았을 것이고, 그러다가 점점 부피를 키워가면서 보관해야 할 상자 안으로 이사하는 신세가 되었겠지. 어쩜 그렇게 비슷한지 모르겠다. 잘 버려야 정리를 잘하는 거라고 어떤 전문가는 말했는데, 사실 그게 잘 안 된다. 이런 이유로 저런 이유로 버릴 수 없는 게 우리 옆에 참 많으니까. 처음부터 작정하진 않았지만, 그가 모은 티셔츠는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져 연재되었다. 그의 세월에 한 장면을 차지하고 추억의 힘을 발휘한다.




그가 소개하는 티셔츠는 그가 소장하고 있는 티셔츠의 극히 일부분인데도, 이 정도의 양도 어마어마하다. 티셔츠마다 주제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서 희한하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기도 한다. 그냥 생각날 때마다 사기도 하고 받은 것도 많을 테지만, 그는 티셔츠에 주제를 부여해서 구분했다. 맥주, 동물, 히어로, , 서핑, 위스키, 레코드 등 티셔츠의 그림이나 티셔츠를 갖게 된 배경에 관해 말한다. 저렴한 가격에 샀던 티셔츠를 환호하다가 요즘에는 그 저렴함의 의미를 잃어버린 판매에 아쉬워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 표지가 그대로 느껴지는 <노르웨이의 숲> 티셔츠는 딱 봐도 그의 책인지 알 정도로 선명했다. 위스키를 좋아하는 그가 아침부터 위스키가 보이는 티셔츠를 입고 돌아다닐 수는 없다고 말하는 게 우습기도 하다. 알코올 의존증 아저씨로 보일까 봐 걱정하는 그의 마음과는 다르게 그는 위스키를 좋아하잖아? 아마 저녁에는 입고 다니지 않을까? ^^


대학교 이름이 적힌 티셔츠는 가지고 있는 게 많으면서도 거의 입지 못한다고 한다. 그 학교 관련자가 아니니까 입기가 좀 어려울 것 같다. 어떤 티셔츠를 사고 그 티셔츠에 적힌 이름으로 소설을 쓰기도 하는 그였다. 그러니 티셔츠는 그에게 단순히 수집 대상이 아니라, 창작인으로 사는 그의 작품과 연결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거로 보인다. 작은 시선 하나에서 소설의 등장인물이 나오고, 티셔츠 하나가 작품의 한 장면이 되기도 할 것 같다. 그가 말하는 계속하는 힘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다양한 경험이 작품 세계를 더 폭넓고 깊게 하는 것처럼, 그에게도 티셔츠는 단순히 옷 이상의 의미가 있다. 더군다나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자주 달리는 그에게 티셔츠는 너무 친근한 대상이고, 익숙하다. 이상하게 그의 소개 사진이나 다른 매체에서 보이는 모습이 편한 차림이어서 그런지, 그가 다른 차림으로 나타난다면 영 적응이 안 될 것 같다.



자기 책 홍보용으로 받은 티셔츠도 많지만, 입고 다닐 수 없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을 상상한다. ‘내 작품이 이렇게 티셔츠로 태어나다니 정말 뿌듯하군. 하지만 이걸 입고 다닌다면 자기 책 홍보하는 작가로 비칠까? 이것 참 쑥스럽군. 정말 입고 싶기는 한데.’ 뭐 이런 생각 하면서 아쉬워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 도로에서 다니는 홍보용 큰 차량을 보는 느낌적인 느낌? 그런데 말이다. 그는 대학교 티셔츠나 자기 작품 티셔츠나 뭐 여러 가지 이유로 선뜻 입고 다니기 어렵다고 말하는 티셔츠가 참 많더라만. 나한테 몇 개 주면 안 되나? 그의 말처럼 티셔츠가 이렇게 많으니 여름이 와도 뭘 입어야 할지 걱정할 게 없다는데, 밖에서 입기 좀 그러면 집에서라도 열심히 입으면 되지 않을까? 우리 엄마가 맨날 그랬는데, 아끼면 똥 된다고. 어느 날 세월이 더 흘러서 옷의 연식이 더 쌓이면, 그때는 입고 싶어도 옷감이 상해서 입을 수 없는 지경이 오면 후회할 것 같다. ‘티셔츠만 넣은 상자가 넘칠 지경이 되었다면서요. 그러니까 저한테 티셔츠 몇 장만 넘겨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열정적으로, 매일매일, 아주 많이 아끼고 사랑하면서 입어볼게요!’


얼마 전에 읽은 그의 에세이를 떠올려도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이제 하루키를 향한 내 취향을 좀 알 것 같다. 아무래도 나는 그의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맞는 듯하다. 읽다 보면 한 사람의 일상과 지나온 시간을 보는 것 같아서 집중하게 되고, 또 혼자 웃으면서 읽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그는 어쩌다가 이런 이야기까지 쓰게 된 걸까 궁금하면서도, 다 읽고 나면 쓸 수밖에 없었겠구나 싶기도 하다. 어디서든 이야기가 될 준비를 하는 듯한 그의 인생 틈새가 더 기대되는 건 당연하다. 책의 뒷부분에 실린 그의 티셔츠 인터뷰와 백여 장의 티셔츠 사진까지 보면 그가 대단한 티셔츠 수집가였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비록 어쩌다 보니 모인 티셔츠였지만 말이다. ^^ 그의 티셔츠 사랑과 그가 관심 두는 것이 무엇인지 덩달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전히 그는 재즈, 야구, 위스키, 여행, 달리기를 사랑한다. 그의 사랑은 티셔츠에까지 연결되어, 이제는 그의 삶의 많은 것이 담긴 티셔츠로 남았다. 어떤 주제도, 의미도, 디자인도, 색깔도 제약하지 않는다. 그의 시선과 손이 닿는 대로 가까워진 티셔츠는 평범하고 단순하면서도 개성 있고 독특하다. 마치 그의 일상처럼.



나는 옷이 많은 편도 아니지만, 한 번씩 정리하면서 거의 버리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하루키의 티셔츠 사랑과는 거리가 먼 일상이다. 하지만 즐겨 입는 옷이 티셔츠이고 편한 차림을 선호하다 보니 저절로 티셔츠에 손이 가는 것도 당연하다. ‘자연스럽게 모였다라는 그의 티셔츠 수집이 어느 날 나에게도 찾아올지 모르겠다. 그때가 되면 나도 하루키처럼 티셔츠 한 장 한 장 사진으로 찍어두고 사진으로나마 남겨둘까? 옷으로 남겨두기에는 내 공간이 너무 협소하므로, 보관해두고 관리하기에는 내가 너무 게으르니까. 하지만 내 추억 속 한 자락이 티셔츠로 차지해도 될 것 같아서, 실물이 아닌 사진으로 기록해두어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그 사진 꺼내 보면서 웃고 싶다. (, 나이 먹으니까 이래. 소소한 것 하나에도 자꾸 의미를 두게 되고, 혼자 배시시 웃는 일 만들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 자꾸 생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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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6-04 20: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루키옹 에세이만큼
구단님의 이 리뷰 참 좋았는데
제예감 적중함요 ㅎㅎ
이달의 당선작 추카~*추카~*

구단씨 2021-06-08 22:4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하루키 책을 더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어요.
아무래도 저는 소설보다는 그의 에세이로 만족해야 할까 싶기도 하고요. ^^

초딩 2021-06-05 15: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루끼옹이네요 ^^ ㅎㅎㅎ 점점 굉장히는 아니지만 창의적으로 책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ㅎㅎㅎ
그리고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구단씨 2021-06-08 22:48   좋아요 0 | URL
다양하지 않나요? ㅎㅎㅎ
저는 이 책 보고, 그가 또 어떤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놓을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자두 소설Q
이주혜 지음 / 창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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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런 마음이 자꾸 생기는 거다. 겉으로 보이는 호의나 미소 말고, 상대의 진심을 제대로 알고 마음. 지금 나에게 보이는 저 표정이 진심일 거로 믿었다가 뒤통수 맞고, 시대가 변했음에도 여전한 가부장제에 내가 스며들어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의 당황. 아니, 그건 배신감이었을 거다. 딸로 여긴다는 시부의 말에, 간질거리는 표현도 서슴지 않게 하던 사랑스러운 말들에 내주었던 마음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튀어나온 진심에 사그라진다. 그 사이에 있는 남편 역시 내 편은 아니고, 여전히 가부장제 아래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뿐이다. 여성이란, 아내란, 며느리란 어떤 존재인가.


화자인 는 지금 고요한 일상을 지낸다. 번역 일을 하고, 남편과 사이도 좋다. 남편이 어릴 적 어머니를 잃고 시부는 남편을 정성 들여 키웠다.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 전부인 시부는 짧은 학력과는 상관없이 열심히 살았다. 아들을 박사까지 만들어놓고, 며느리에게는 한없이 다정한 시부였다. ‘로맨스 그레이의 현신이라고 불릴 만큼 따뜻한 사람이었다. 아프기 전까지 말이다. 시부는 담도암에 걸렸고 병세가 심해지자 섬망 증세까지 보인다. 며느리와 아들이 주야 교대하면서 병간호하지만 한계에 다다랐고, 곧 간병인을 고용한다. 시부는 간병인에게까지 욕을 퍼붓고, 옛날에 몰래 따먹던 자두를 먹고 싶다고 한다. 그러다가 꺼내어진 시부의 진심은 섬망을 겪는 환자의 말이라고 하기에는 상처였다.


이제야 진심이 나오는 건가 싶게, 시부의 외침은 절망적이었다. 화자에게 화를 내듯 쏟아낸 그 말, 우리 집에 시집와서 지금까지 한 게 뭐냐, 박사랑 결혼하는데 열쇠 세 개를 해왔냐, 애도 안 낳아서 대가 끊겼다는 등, 딸이라고 부르며 다정하고 다정했던 시부는 어디로 갔나 싶었다. 그렇다. 시부의 진심은 내 아들과 결혼한 며느리를 딸로 여긴다는 게 아니라, 태양 같은 내 아들을 훔친 도둑년이고 대를 이어줄 도구로 여겼다는 거다. 그들이 말하는 우리에 화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들이 구성하는 공간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그런 줄도 모르고 시부의 고통스러운 병 앞에서 한없이 미안해지고 죄송스러워지는, 잘못한 것도 없이 언제나 용서를 받아야 하는 존재로 있었다는 게 억울했다. 이 모든 상황에서 남편은 언제나 눈을 감고 있다. 도대체 남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단 말인가. 왜 자기를 봐주지 않고 이 상황을 해결할 생각도 하지 않고 눈을 감은 채로 있는 것인가. 외로워지는 건 당연했다.


타인이 불쑥 내비친 날것의 감정을 마주쳤을 때만큼 당혹스러운 순간이 또 있을까요? 그렇지만 왜 울었냐고 한 번쯤은 물어볼 걸 그랬습니다. 살다 보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는가 하면, 모든 말을 다 털어놓고 싶을 때가 있지 않던가요. 어쩌면 영옥 씨는 그때 뭔가를 털어놓고 싶은 충동에 휩싸여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71페이지)


화자의 외로움에 손을 내민 건 그 누구도 아닌 간병인 황영옥 씨다. 처음 영옥의 등장은 전문가 포스였다. 시부의 침상을 둘러보며 필요한 것을 금방 정리하고, 환자에게 닥치는 거의 모든 문제를 거뜬히 해결한다. 마치 간병인이 아니더라도 꽤 오래 해왔던 일처럼, 영옥이 아니라면 누구도 해결하지 못할 일을 감당했다. 하루에 8만 원이라는 비용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영옥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겪어야 했을 시간을 가늠하게 한다. 죽어야지 하면서 읊조리던 그녀의 목소리는 과거를 불러왔고, 많지 않은 말 속에서 걱정을 숨겨둔다. 결정적인 순간에 화자를 위로하는 단 한 사람은 영옥이었다. 여성으로 살아온 시간만이 아는 감정, 민낯을 드러내는 잔인한 사람들 속에서 버텨온 시간이 만든 초연함이었으리라. 사랑도 구원해주지 못한 잔인함에 너덜너덜해진 감정을 영옥이 구원해줬다. 한마디 말이 없이도, 담배 연기뿐이었어도.


글쎄, 말로 다 할 수는 없지만, 소설 속 화자와 같은 상황이 너무 많았다. 내가 겪었고 우리 엄마가 겪었을 일을 생각하면, 나는 더 독해지고 독설을 뿜어냈다. 덕분에 싸가지 없는 년소리도 많이 들었다. 어른도 몰라본다고, 저래서 딸년 낳을 필요 없다는 말까지 들어봤다. 웃긴 건,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 가족과 상관없는 사람들이었고, 우리가 먹고사는 일에 아무 도움도 주지 않는 존재들이었다는 거다. 미친년처럼 산발하고 욕을 쏟아냈다. 화가 나는 건 그 사이에서 아무 말도 없이 앉아있던 아버지였다. 우리 가족을 이렇게 비참하게 하는데 왜 아무 말도 안 해? 화자의 남편이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아버린 것처럼, 마치 그 순간의 일이 자기와 상관없는 것처럼, 침묵으로 아내의 죄를 묻던 것처럼 말이다. 여성이 가족을 돌보고 환자를 수발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것도 폭력이 아닐는지.


결국, 소설의 앞부분에 등장한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의 에이드리언 리치와 엘리자베스 비숍의 만남은 소설 속 화자와 간병인 영옥 씨의 만남과 닮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말하고 싶고, 그 말을 들어주며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줄 사람은 여성뿐이었다. 지금을 사는 여성에게 필요한 건 이 같은 여성 연대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가부장제 안에서 고통스러운 그녀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 희망을 염원하면서. 상실의 순간을 앞에 두고도 이해를 바라야 하는 감정을 다독여야 한다는 게 힘들지만, 어쩌면 상실의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확실하게 알게 되는 진심의 순간이 아닐까 싶다. 이 소설은 그 진심을 확인하는 계기로 나아가게 될, 가부장제가 극복되어가는 과정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 맨발에 슬리퍼 상복 차림으로 장례식장을 나와 본관을 서성이며 영옥 씨를 찾던 를 오래 기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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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천재 엉덩이 탐정 10 - 사랑의 포로 사건 추리 천재 엉덩이 탐정 10
트롤 글.그림, 김정화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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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한 귀여움과 댄디한 모습의 엉덩이 탐정. 이번에도 날카로움과 섬세함으로 사건 해결에 분주하다. 사랑이 주제가 되어 일어나는 사건이다 보니 은근한 설렘은 덤이다. 아이의 시선으로 책을 읽는 즐거움과 추리소설의 재미까지 더해져서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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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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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대신할 수 있는, 혹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무언가를 상상해본 적 많지 않은가. 실제로 로봇은 우리 일상에서 많은 것을 대신하기도 한다. 계속 개발과 연구가 이어지고, 인간 생활을 좀 더 편하게 과학적으로 이뤄낼 수 있는 바람을 가득 담아서 말이다. 일상에 스며든 로봇의 역할은 장점이 많겠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자리를 대신하는 비중이 높아질수록 위기감도 느낀다. 이 소설의 어느 장면에서 외치던 여자의 목소리처럼, AF(Artificial Friend)가 인간의 자리를 빼앗는다며 화를 낸다. 낯설지 않다. 지금도 기계화된 시스템이 점점 노동자의 역할을 대신하는 걸 보면, 우리는 양가감정의 싸움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발전하고 편리해진 세상을 바라면서도, 인간의 역할을 빼앗기는 마음에 슬프고 괴롭다. 그렇다고 변화하는 세상을 붙잡을 수는 없겠지. 그래서 이런 마음도 갖는다. 인간에게는 로봇과 다른, 인간만의 고유한 게 있다고. 로봇이 절대 넘볼 수 없는 것을 생각한다. 그 사람만이 가진 어떤 것, 그래서 소중한 사람을 대체할 로봇을 만들면서도 완전히 복제할 수 없다는 절망과 안도를 동시에 느낀다. 인간과 로봇, 인간과 로봇의 감정은 정말 어떤 것일까.


새로운 세상이 그려진다.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 우리는 향상하지 않으면 보통의 삶을 이어갈 수 없다. 유전자 편집으로 향상된 아이들은 그들만의 세계를 만든다. 집에서 원격으로 교육받고, 서로가 어울릴 기회가 없다. 학교에 가지 않으니까. (어쩌면 이 부분은 우리가 1년 넘게 겪는 코로나19 상황과 너무 닮아서 놀랐다. 작가가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되기 전에 완성되었다고 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모든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 형식적이겠지만 일부러 모임을 만들고 무슨 숙제 하듯 아이들과 어울린다. 그런 일상에서 친구를 대신하는 자리에 에이에프가 존재한다. 누구나 에이에프를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다. 세상은 변했어도 여전한 건 인간의 계급이었다. 어느 수준 이상이 되어야만 향상도 가능하고 에이에프도 가질 수 있다. 그러니 그들만의 모임 역시 시쳇말로 점수관리, 인맥 관리의 일환이 되시겠다. 현실적인 문제로 그 향상과 모임이 불가능한 아이가 존재한다는 게 동시에 보여서 절망스럽지만, 어쩌겠나.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러한 것을.


사람의 외모를 가지고 인간의 복잡한 감정까지 아는 로봇 클라라. 매장의 진열대에 앉아서 밖을 보는 게 그녀의 즐거움이다. 유독 관찰력이 뛰어난 클라라는 매장 밖의 모습에 눈길을 주고 보이는 것들에 감정을 준다. 생각과 감정이 동시에 가능한, 인간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게 뭔지 아는 로봇이다. 조시는 그런 클라라를 선택한다. 조시는 향상되었지만 무슨 문제인지 점점 시들어가는 아이다. 친구가 필요했고, 마음이 끌려서 선택한 클라라를 옆에 두고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래봤자 원격 수업에 내키지 않는 모임을 하는 게 전부이다. 조시는 아픈 아이니까. 그런 조시에게 클라라는 일상의 또 다른 의미가 되고 친구인 릭은 유일하게 조시가 솔직하게 마음을 여는 대상이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릭에게 하게 된다. 모임의 사람들이 내켜 하지 않는 대상, 릭은 향상되지 못한 아이이고 대학에 진학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런데도 조시와 릭은 친구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 영원을 약속했으니까. 내 자식이 나아가기를, 누구보다 앞서가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으로는 조시와 닉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유전자 편집을 해서라도 완벽하게 만들고 싶었을 테니까. 그런데도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뭔가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조시와 닉은 그들만이 나눌 수 있는 것을 보여준다. 그림으로, 말풍선으로 마음을 읽는 일을 한다. 누군가의 마음을 알아채는 일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묻고 싶은 장면이었다. 아무리 연습하고 노력한다고 해도 로봇이 사람의 마음을 완벽하게 읽을 수 있느냐고.


말했듯이 나에게는 무척 유용한 교훈을 준 일이었다. 나는 조시에게 달라지는면이 있다는 것, 내가 그것에 적응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이런 특성이 조시에게만 있는 게 아님도 알게 되었다. 매장 쇼윈도에 디스플레이 하는 것처럼 사람들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기 위한 면을 마련해 놓으려 한다는 것, 또 그 순간이 지난 다음에 그런 일시적인 모습에 중대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는 것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130~131페이지)


전기차 배터리를 충전하듯 클라라에게도 에너지가 필요할 텐데, 에이에프는 태양에게서 자양분을 얻고 활동한다. 태양이 그들을 움직이게 하고 에너지를 주지만, 그 정도뿐이다. 하지만 읽다 보면 클라라에게 태양은 자양분 그 이상이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어쩌면 이 부분에서 클라라가 보통의 에이에프와의 차이를 가진 존재라는 것도 느낀다. 유독 관찰력이 뛰어난 아이였기에, 매장의 유리문 너머의 장면들을 세심하게 보고 느끼고 있던 거다. 레인코트 할아버지와 커피 할머니의 만남에서, 거지 아저씨와 개의 부활 같은 장면에서 클라라는 태양의 힘을 믿는다. 어둡고 컴컴해질 때마다, 마음의 슬픔을 확인해야 할 때마다 태양이 나타나서 희망을 노래한다. 오래전 헤어진 사람이 다시 만나는 것을 지켜보던 태양, 죽은 줄 알았던 존재가 태양 빛을 받아서 일어난 것을 믿는다. 태양은 클라라에게도 자양분이 되고 있으니까. 그 힘을 믿을 수밖에 없다. 많은 것을 관찰하고 생각하고 이해할 때마다 태양은 클라라의 마음속에서 그 존재감을 뽐냈다. 그러니 간절한 기도마저 하게 될 수밖에. 이런 장면들을 볼 때마다 다시 묻게 된다.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로봇이 어디까지 읽고 있다는 건지, 답을 듣고 싶어진다.


소설은 인간 소녀 조시와 로봇 클라라의 우정과 사랑을 그리기도 하지만, 사실은 인간의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만들기도 한다. 필요하기에 클라라를 옆에 두었지만, 조시나 조시의 엄마, 아빠, 릭은 이 로봇의 존재와 태도로 많은 생각을 한다. 첫 번째 아이가 떠난 것처럼 조시가 떠날 수도 있다는 불안에 엄마는 대체를 생각한다. 아이를 잃은 슬픔을 감당할 수 없기에 그 후를 준비해야 한다. 조시가 없는 세상, 조시가 그리운 시간을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클라라의 존재는 조시의 엄마가 만들려는 시간을 위해 꼭 필요하다. 클라라의 그 관찰력으로 내 딸을 완벽하게 그려낼 수 있는, 내 딸의 몸과 마음이 되어 위로되는 존재로 탈바꿈할 대상이어야 했다. 불가능할까? 인간의 모든 것을 대신할 로봇이 정말 인간 세상에 존재할 수 없을까? 조시의 아빠가 화가 난 이유는 엄마의 계획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특별하다고 여기며 살아온 걸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다. 로봇이 완벽해봤자 인간의 마음까지 따라오겠느냐, 인간과 닮았다고 해서 인간이 되겠느냐는 고민에 클라라에게 묻는다. 인간의 마음을 믿느냐고, 인간에게 마음이란 게 있긴 한 거냐고, 그 마음이 인간을 특별하고 개별적인 존재로 만드는 게 맞느냐고. 이 질문을 했던 그 순간에, 조시의 아버지도 클라라도, 우리도 이미 알고 있지 않았을까. 경험과 노력으로 판단 능력이나 기억, 인지 능력까지 완벽해질 수는 있어도 한 사람 고유의 마음과 특징을 복제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갈구하는 모습에 안타까움이 넘쳤다.


이 모습 이대로 살아가는 것만이 인생이라고 인정하지 못해서 생기는 욕망에, 미래와 연결된 현재 때문에 인간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꿈꾸는가 보다. 오늘을 잘 살아야 하지만 내일을 준비하는 게 인간의 자세일 테니까. 오늘 죽지 않는다면 내일 또 살아가야 하니까 미래가 걱정될 수밖에 없다. 유전자 편집으로 향상되어 더 업그레이드한 인생을 살아가려는 욕망이었겠지만, 조시는 향상의 과정에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계속 아프고 곧 소멸할지도 모를 시간을 산다. ‘향상되지 못한 릭과 그의 엄마는 향상된 이들의 무리에 끼지도 못하고 세상을 겉돈다. 하지만 항상 향상된 삶을 아들에게 주고 싶어서 애쓴다. 아들의 능력을 버릴 수 없고 대학에도 가야 한다는 간절함에 오래전에 헤어진 애인에게 매달리며 아들의 미래를 걱정한다. 바뀌고 변화하는 세상에 대응하는 부모의 자세라고 볼 수도 있지만, 내 아이 고유의 감정을 먼저 읽지 못하는 불찰에서 시작된 시도일 수도 있겠다. 마음을 먼저 읽는 일이 우리가 준비하는 미래에서 빠져있다는 게, 상실의 회복을 위해 대체할 수 있는 존재를 만든다는 게 잘못된 것만은 아닐 테지만, 우리가 인간이기에 고민하는 것들을 간과하기에 보이는 문제들이 아니었나 싶다. 인공지능로봇 제작자 카팔디가 놓친 그것, 우리 내면에 가닿을 수 없는,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없는 고유의 무언가가 있다는 미음 말이다.


저는 조시를 배우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그래야만 했다면 최선을 다해서 그렇게 했을 거예요. 하지만 잘되었을 것 같지는 않아요. 제가 정확하게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요.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머니, , 가정부 멜라니아, 아버지. 그 사람들이 가슴속에서 조시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는 다가갈 수가 없었을 거예요. 지금은 그걸 확실하게 알아요.” (441~442페이지)


자연스러운 것, 인간의 마음이 흐르는대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클라라를 통해 보여준 작품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로봇 클라라가 이 감정을 보여줬다는 게 아이러니일지도 모르지만, 이 작품이 클라라의 시선으로 전개되면서도 인간의 마음으로 읽힌다는 거였다. 누군가가 자기를 선택해주길 바라면서 매장의 진열대에 놓인 클라라. 신형 에이에프가 들어오면서 선택받고 싶은 갈망은 커진다. 이미 구형인 자신이 낙오되는, 신형 모델이 자기의 자리를 차지할 거라는 두려움을 느낀다. 인간의 일상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인간과 비슷한 흐름으로 존재하고 살아가는 클라라의 생이 인간의 마지막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태어났고 존재했다. 자기 역할에 충실하며 살아갔고 존재의 임무를 수행했다. 조시의 안정과 성장을 돕기 위해 존재했던 클라라. 그 역할을 다한 클라라가 어떻게 생을 마무리하는지 보면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건 당연했다. 인간의 생과 다르지 않아서, 우리가 겪는 삶과 죽음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가슴이 떨렸다.


로봇에게 인간의 생을 봤다는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냉정하게 보자면 로봇이 인간의 모든 마음을 읽을 수도 없고 복제할 수도 없다는 게 정답이지만, 클라라의 모습에서 인간의 모든 것을 본 느낌에 여운이 짙다. 원하는 삶을 위해 노력하고 애쓰면서, 간절해지는 순간에 기도하고, 자기 의무를 다하듯 살아가는, 마지막에는 삶을 복기하듯 기억을 추리는 모습까지. 조금 과장되지만 완벽하게 인간의 생을 재현한 듯했다. 뛰어난 관찰력으로 인간을 보고 인간관계나 감정을 배우는 클라라였지만, 읽다 보면 클라라에게 전해져오는 인간다움에 뭉클해지곤 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사랑하고 마음에 담아야 하는지, 우리 안의 특별함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비록 마지막에 마주할 감정이 슬픔이라고 할지라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마저 감당해야 한다. 마치 슬픔에 대처하는 자세를 배우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사는 동안 힘껏 사랑하고 애쓰고 노력하는 것처럼, 슬픔도 우리가 마주해야 할 몫이라고. 인간의 특별함은 그 마음에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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