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 이도우 산문집
이도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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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부피가 한 사람에게 포개지는 날짜의 순환이라면, 그날 다들 어디 있었을까 하는 질문은 곳곳에 흩어져 사는 이들이 겪은 시간의 총합적 부피일 거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어떤 부피를 쌓아간다고 생각하면,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이번 생이 조금은 덜 외롭다. (76페이지)

 

김일성이 죽었을 때 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느냐고, 만약 작가가 나에게도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거라고 상상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충주에 있었는데, 처음으로 며칠씩 집을 떠나있던 때여서 신기했다. 방학이었다. 언니가 살던 곳에 놀러 갔다가 그냥 며칠을 더 눌러 있었는데, 갑자기 TV에서 김일성 사망 소식이 전해져 깜짝 놀랐다고. 언니는 출근했고, 혼자 있던 나는 무서웠다. 빨리 엄마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김일성이 죽었으니 곧 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엄마랑 이산가족이 될 수는 없으니 당장 짐을 꾸리고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그런데 언니에게는 연락할 방법이 없었고, 나는 종일 발을 동동 구르며 불안하게 지냈던 날이었다고 말이다. 그러고 나서 어땠더라? 저녁에 퇴근한 언니를 붙잡고 집에 가자고 말했는데, 언니는 콧방귀 뀌면서 잠이나 자라고 했던가?

 

누군가를 알고 싶고 친해지고 싶을 때는 공감의 기운이 필요하다. 굳이 공감을 찾지 않아도 친해질 계기가 생기지만, 좀 더 빨리 친해져야 할 때 공감을 찾을 수도 있다는 걸 안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김일성 사망한 날을 공감의 시간대로 찾는다. 누군가의 기억을 꺼내게 하는 거다. 그때, 그 시각. 그렇게 우리는 하나의 공감대로 서로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소설을 읽을 때는 그 장면이 그렇게 깊게 다가오지는 않았는데, 처음 그 소설을 만나고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은 작가가 보여준 문장 하나하나가 새롭게 보일 때가 있다. 지금도 한 번씩 책장에서 꺼내 들춰볼 때가 있는데, 그때는 다 보지 못했던 감정이나 생각들이 하나씩 생겨나곤 한다. 아마 그때의 공진솔보다 나이를 더 먹어서일까. 아무리 와인잔을 들고 봐도 세상이 장밋빛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서일까. 뭐가 됐든, 우리에게는 시간이 만들어낸 기억이 있고, 기억 속 이야기는 어디서든 꺼내어질 수 있다는 거. 그 이야기를 언제 꺼낼 수 있을까 고민할 때마다 생각나는 건 '밤'일지도 모른다. 작가가 이 산문집을 독자에게 보내온 이유도 이런 마음이 아닐까 생각했다. 밤이라는 시간을 열어줄 테니, 그동안 다 하지 못했던 말을 다 꺼내도 좋다고 말이다. 어떤 이야기를 하기 좋은 시간, 무언가를 쓰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 시간.

 

그런가… 쓸쓸한가. 새삼 삶에서 찾아오는 쓸쓸함에 대해 돌아본다. 어차피 가까운 이들과 무관하게 인생은 쓸쓸함이 기본값 아닐까.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래서 한 글자라도 더 쓰고 싶나 봐. 뭐라도 써놓아야 덜 쓸쓸하고 살아 있는 것 같고, 나중에 떠날 때 덜 억울할 것 같아서." (21페이지)

 

그렇게 꺼내놓은 말이 이 책으로 나온 것일 텐데, 작가의 말들은 간결하면서도 감정을 놓치지 않는다. 축약하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것만 같다. 시쳇말로 간단하게 말했는데, 하고 싶은 긴 이야기를 다 알아들은 것 같은 느낌말이다. 작가의 습작 시절 이야기 중에 유독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 교수가 내주었다는 과제, 책을 읽고 한 페이지 분량으로 줄이고, 다시 그 한 페이지를 절반 분량으로 줄이고, 다시 비교해서 줄이고... 처음 썼던 것과 같은 의미를 담으면서 문장을 줄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작가와 전혀 상관없는 삶인데도 알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을 간결하게 전하는 게 얼마나 시원하고 듣기 좋은지. 짧고 굵은 문장을 만들어내는 일, 아니면 이미 한 말을 줄여서 전달하는 일. 생각해보면 바로 알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말을 길게 하면 듣기 싫고, 아무리 설명이 필요한 일이어도 그 설명이 길어지면 지루해지고 핑계로 들린다. 그러니 하고 싶은 말이 아무리 길어도 요점만 간단히, 의미는 놓치지 않게 말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문장은 깔끔해지고 하고 싶은 말은 그대로 전달되고. 꼭 작가가 아니어도, 소설 속 문장이 아니어도, 우리가 일상에서 배워야 할 삶의 방식 중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읊조리듯 하는 말은 잔잔했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새로운 것을 알게 됐고, 어떤 이야기에서는 살아가는 방식 하나를 배우기도 한다. 누군가 수놓는 이야기를 하면서 보이던, 병풍을 만들기 위해 놓은 자수의 뒷면을 어쩌면 영원히 못 볼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보게 된다면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되리라. 어떤 물건 어떤 사람의 보이지 않는 뒷면을 보는 일은 쉽지 않고, 영영 그 뒷면을 볼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살아가면서 그 뒷면을 보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다. 뒷면은 그 자체로 의미 없을 수도 있지만, 그 모습을 누구도 봐주지 않는다면 또 안쓰러울 테니까.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며 글 속에 녹아내는 이야기에는 미처 다 보지 못한 그 뒷면의 이야기도 있을 거다. 존재하고 있지만, 누구나 다 볼 수 없는 그 이야기들을 애써 들려주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또 이야기를 만나고 싶은 게 독자의 마음이 아닐까. 소설이 아닌 산문으로 만나는 작가의 말들은 소설에서 발견했던 막연한 추측을 확신으로 바꿔놓으면서, 작가의 기억, 생각, 경험들이 모여 써 내려간 흔적들이라는 것을. 그 흔적들로 누군가의 기억을 또 파고들 것을 알기에 쓸쓸하면서도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되는 거겠지.

 

언젠가 남동생이 집에 다니러 온 적이 있다. 늦은 밤, 출출하다면서 식구들이 치맥을 외치자 남동생과 나는 배달이 아닌 직접 치킨을 사러 갔다. 그때 마침 행사를 한다고, 포장 고객에게는 3,000원씩 할인해준다는 말에 산책한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그래봤자 걸어서 5분 거리. 그냥 다녀오겠다고 나선 사람이 나였고, 어두우니까 같이 간다고 따라나선 사람이 남동생이었을 뿐인데, 대문을 나서니 어색해지더라. 생각해보니 남동생과 단둘이 그렇게 걸어본 적이 없다. 둘이서 어딜 갔던 기억도 없다. 그렇게 혼자 마음속으로만 어색함을 떠올리고 있는데, 문득 들려온 남동생의 한마디.

"이 골목이 이렇게 좁았어? 어렸을 적에는 이 골목이 크고 넓어서 그렇게 무서웠는데..."

"니 덩치를 봐라. 이 골목이 좁을 수밖에 없겠다."

웃으면서 대꾸한다는 말이 고작 남동생 체격을 탓하는 거였는데, 이 책을 읽다가 생각해보니 우리 남매가 이런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었던 것이 '밤'이기 때문이었던 건 아니었을까. 아마 대낮에 그 길을 걸었다면 우리는 눈에 보이는 동네의 다른 풍경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싶었다. 하는 일 때문인지 원래 성격인지, 남동생은 냉정할 때가 많고 맺고 끊음이 분명한 아이인데, 뜬금없이 꺼낸 어릴 적 감정의 한 자락에 이상한 울림을 준 그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좋은 시절은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 정말 지겨운 나날이고 사는 게 엉망진창이라고 투덜대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때가 지나면 비로소 알게 된다. 돌아보니 참 좋은 날들이었구나. 그땐 왜 몰랐을까 라고. 좋았던 시절은 그 무렵엔 느낄 수가 없지만, 한 시절에 이별을 고하려는 순간 새삼 좋은 날이었음을 알려주어 고맙고 서글프게 한다. (288페이지)

 

그동안 소설로 만나온 작가의 산문을 처음 마주하면서 느끼는 건, 어쩌면 이 책 속의 이야기는 출간된 소설의 연장선인 것만 같다는 거다. 출간작 중에서도 특히 자주 보이는 게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다. 문장이 너무 좋아서였는지, 건 PD와 진솔의 연애가 너무 평범하면서도 애틋해서였는지, 언제나 기억에 머물러 있는 문장 몇 개가 저절로 떠오르곤 했다. 여러 가지 부분에서 작가의 경험이 녹아든 생각들이 진솔의 대사로 거듭났고, 더 많이 하고 싶은 말은 작가의 또 다른 소설에서 문득 마주치게 된다. 한 권의 소설이 태어나기 위해 작가가 준비해왔던 시간은 이랬던가 싶기도 하고, 작가이자 독자로 살아가는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모든 게 어쩌면 밤에 태어난 싹들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하면서 슬쩍 웃어본다. 우리의 기억은 생각하지 못한 순간에 폭발하듯 뛰쳐나오기도 하니까.

 

작가가 기억하고 꺼내놓은 이야기에 온갖 감정이 묻어난다. 쓸쓸하기도 했던, 마냥 그 순간을 살아가던 청춘이기도 했던, 어느 동네의 풍경에 안착하기도 했던 시간. 그 기억들 속에 담긴 많은 이야기가 밤을 통과해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살아온 이야기가 하나씩 들려올 때마다 작가의 작품을 생각한다. 그 상황에서는 이런 경험이 담겼던 거라고, 그 문장은 이런 생각으로 써진 거라고. 하고 싶은 말이 소설 속 인물들의 입을 통해 나왔다고 생각하면, 소설가라는 직업은 정말 괜찮은 것도 있구나 하는 부러움이 살짝 들기도 했다. 하고 싶은 말 다 하면서 살 수도 없고, 또 막상 그 말을 꺼내놓고 후회하기도 하는 게 현실 속 우리 모습이지 않은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이지만 내가 한 말이 되지 않으면서도, 기어이 할 수 있는 말이 된다는 게 얼마나 신나. 하지만 또 작가로 살아가는 고충을 알 것도 같아서 마냥 부러워하지는 않으련다. 독자로, 좋아하는 문장 기억하면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저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기다리는 즐거움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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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 삶이 흔들릴 때마다 꼭 한 번 듣고 싶었던 말
박애희 지음 / 수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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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는 몇 가지 계획이 있었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만남을 조율해야 했고, 처리해야 할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야 했다. 구체적인 날짜와 시간까지 생각해두었고, 따로따로 연락을 취하면서 상대방과 만나는 시간까지 확정해야 했다. 늦어도 4월 중순까지는 이렇게 생각했던 일들을 마무리해야지 싶었다. 그런데 3월 말에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고, 갑자기 서울로 올라갔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일주일 계획하고 갔지만,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 터지자 단단히 먹었던 마음은 절대 단단해지지 않았다. 날씨는 더웠고 가져갔던 옷들은 두꺼운 것들이라 캐리어에서 꺼내지도 못하고 동생 옷을 입고 지냈다. 그까짓 옷쯤 누구 것을 입든 봄에 겨울옷을 입든 그게 뭐 큰일이겠나. 무엇보다 우리 앞에 닥친, 단 한 번도 예상한 적 없던 일에 당황하던 것도 잠시였다. 그저 빨리 무사히 일이 해결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하루하루를 지냈다. 다행스럽게도 어느 정도 마음은 내려놓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고, 아직도 불안함에 걱정은 끝나지 않았지만 2주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4월 중순까지 마무리하겠다고 3월에 계획했던 일은 하나도 정리하지 못했다. 그렇게 미뤄두었던 일을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지나간 건…… 잊읍시다. 앞으로가 중요하니까요." (216페이지)

 

생각해보면 별거 아니다. 계획했던 몇 가지 일이 2, 한 달 미뤄진다고 해서 사람 목숨이 오가는 일은 아니니까. 그냥,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고민스러운 것뿐이지 다시 하나씩 해결해나가면 된다. 일상의 며칠이 그렇게 어긋났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막상 닥치고 보면 지금 가장 큰 일인 것만 같고, 예상하지 못한 것이 침범해서 일상을 흩트리는 게 무섭기도 하다. 어느 정도 마음 내려놓고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도 그게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또 생각한다. 지금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살다 보면 나를 흔들고 인생에 어긋나는 일들이 또 얼마나 많겠냐고. 그러니 이 순간을 잘 넘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전부라고 말이다.

 

틈틈이 어긋나고 비틀리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감정은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다. 저자는 그렇게 내 맘처럼 흐르지 않는 삶에서도 나만의 이야기는 만들어지고 있다는 듯 자기 이야기를 꺼낸다. 저자뿐만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도 이와 같은 흐름으로 인생을 채우고 있지 않은가. 목 놓아 울어버리고 싶은 날, 우울한데 아무에게도 전화할 수 없는 막막함, 내가 생각하는 사람들이 날 챙겨주지 않아서 서글펐던, 예고도 없이 직장에서 퇴사하게 되는 일, 친하다고 여기면서도 은근한 경쟁에 속내를 꺼내놓기 어려웠던,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면서도 감당하기 부담스러운 일상의 단편들. 순간순간 막막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당신도 나도, 우리가 걸어온 모든 순간이. 그 마음 꺼내놓지 못해서 답답해하다가, 그래도 살아지는 하루하루가 감사하다가.

 

이상하게도, 그렇게 나를 가로막는 순간들에 좌절만 하다가 끝날 것 같은데, 어떻게 또 그 슬픔에서 벗어나는 게 희한하다. 어딘가로 자꾸 걸어가게 한다. 나를 그렇게 만드는 게 어떤 일일 때도 있었고, 어떤 사람들일 때도 있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의 힘이 컸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어느 순간이든 가장 기쁘고 가장 힘들 때 찾게 되는 게 가족일 테니까. 당장 주저앉을 것 같은데도 넘어지지 않게 한다. 그렇게 또 한 번의 위기가 지나가면 우리의 인생 경험치가 하나 더 얹어지는 거겠지. 가끔 지나왔던 길을 돌아보며 어떻게 걸어왔나 놀라울 때가 있다. 그렇게 삶을 버텨왔든 묵묵히 걸어왔든, 우리 인생은 지금 여기에 있다. 어딘가를 헤매다가도 언제나 삶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는다.

 

어릴 땐 이만큼 나이를 먹으면 모든 게 분명해질 줄 알았다.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마흔이 넘은 내가 그때의 나를 만난다면,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그게 꼭 그렇지가 않더라고. (40페이지)

 

각자의 시간과 위치와 상황에 따라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달라진다. 나이가 들면 무수한 만남과 이별에 조금은 담담해진다. 어떤 날은 어른스러운 척 중얼거렸다. 어차피 영원한 게 어디 있나. 다 혼자인 거지. (118페이지)

 

일상의 혼란을 겪으면서도, 매 순간을 시련이라고 여기면서도, 수시로 찾아오는 불안을 마주하면서도 생이 계속되는 이유는 우리가 그렇게 헤매면서 찾아내는 삶의 방향 때문이 아닐까? 저자는 남편이 금연하지 못한다고 불만이지만 밥벌이의 고단함을 견디는 방법으로 생각하니 그 어려운 금연을 함부로 강요할 수 없다. 누군가가 묻는 꿈을 떠올리면서 오늘의 밥벌이를 측은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한 편의 영화에서 부모에게 '다음에'라는 시간이 생략될 수 있다는 것을 공감한다. 언제나 '다음에'라면서 쉽게 미루게 되는 부모의 순서를 여기서 또 보게 되니, 습관처럼 그 자리에 머물 거로 여긴 부모의 존재가 새삼 다시 보인다. 언제나 '지금'이어야 하는 존재였는데 말이다. 어느 날 야구장을 찾았다가 글쓰기를 시작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생 변화도 놀랍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만난 인연에 뜻밖의 이야기를 듣고, 시간의 흐름이 의미 있다는 걸 봤다. 상대는 이미 잊은 지 오래인 일을 사과하는 걸 보면서 시간은 이렇게 성장하면서 흘러야 한다는 걸 증명한다. 시간이 흘렀다고 나이를 먹는 것은 아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어른이 되어가는 거니까, 어떤 어른으로 성장해 가느냐 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저자가 들려준 에피소드에서 소소하고 크게 인간의 변화와 성장을 읽게 된다. 읽으면서 순간순간 궁금해지곤 했다. 나는 얼마나 흔들리지 않고 중심 잡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는지, 후회하는 일에 사과할 용기는 있는 인간인지를.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정말 우리 인생은 언제나 어디로 갈지 분명하게 정해진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겠더라. 고개를 돌리다가 우연히 마주친 시선에, 갑자기 넘어진 땅바닥에서 보였던, 누군가가 건넨 한 마디로 바뀔 수도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무심코 찾아온 변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유한한 우리 삶을 채우는 단편으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막상 닥친 그 순간에는 왜 그렇게 막연하고 힘들기만 했던 건지...

 

인생은 너무나 자주 내가 기대한 엔딩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처음엔 내가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나보다 잘난 사람이,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이가, 나보다 더 운이 좋은 누군가가 주인공이 되어버리는 현실. 어느 순간, 남들이 함부로 버린 팝콘과 쓰레기들로 엉망이 된 내 자리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나는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내가 꾸었던 꿈들 중 몇 가지나 이룰 수 있을까. 아니, 인생이라는 무대에 내 자리가 있기는 한 걸까. (150페이지)

 

삶에 적응해야만 하는 우리가 무엇을 애써야 하고 어떻게 오늘을 지켜가야 하는지 듣는 일이 나쁘지 않았다. 봄날에 어울리는 표지에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듯 읽어질 거로 생각했던 책이었는데, 의외로 무게감이 있어서 놀라기도 했다. 서울에 갈 때 책 두 권을 가지고 갔는데, 그 중 한 권이다. 밤에 몇 페이지씩 읽으면서, 때로는 투박하게 느껴지는 일상을 그리면서 공감했다. 우리 인생에 수시로 끼어들어 일상을 어긋나게 하는 일들이 그나마 견딜 것 같더라. 나만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삶의 단편들일 수 있으니까. 그렇게 누군가 살아가는 이야기가 그대로 가슴에 꽂히면서 건네져오는 느낌, 참 오랜만인 듯하다. 각박하게 버티던 일상이 조금은 부드러워질 것도 같고, 세상과 싸우며 나를 단단하게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도 조금 알 것 같다. 여전히 우리의 하루는 불안할 수 있고 매 순간에 적응하느라 힘들겠지만, 삶의 곳곳에 숨어있던 다정함이 뛰쳐나와 오늘을 다독여 줄 것 같은 기대가 생긴다.

 

 

아이로 태어나 노인으로 늙어가는 인생. 우리의 정신과 육체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소멸해가고 있다. 순간이 계속될 것처럼 살다가,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찾아오는 생의 숙명을 불현듯 떠올릴 때면 내게 숙제가 있다는 걸 깨닫는다.

나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무엇을 남길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인가. (328페이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만의 길이 찾아지기도 한다. 저자가 영화나 책, 드라마나 다른 TV 프로그램에서 마주한, 주인공들의 삶에 비춰 들려준 이야기에는 우리와 닮은 걸음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 저자의 이야기, 그리고 더해질 우리의 이야기. 순간순간 어긋나는 인생에 계속 묻고 생각하다 보면 답은 찾아지겠지. 그렇게 우리 삶의 의미가 하나씩 쌓여갈 때마다 뭔가를 배우는 것 같지 않을까. 후회나 실수가 가르쳐줄 것들, 아픔과 상처가 새겨주는 것들이 훗날 내 이야기가 되어 꺼내질 날을 상상한다. 오늘의 이 순간도 언젠가는 나의 이야기가 되겠지. 지금 이 책을 만나고 있는 게, 시기를 놓친 꽃구경 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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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센트 와이프
에이미 로이드 지음, 김지선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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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뭔가에 홀린 것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흠뻑 빠져들고야 마는 상황이 있다. 서맨사가 사형수인 데니스 댄슨을 본 순간이 그랬다. 실제로 마주한 적 없는 사이, 여러 매체와 데니스의 무죄를 주장하는 단체의 다큐멘터리로 접한 게 전부이지만 그녀는 데니스에게 빠지고 말았다. 감옥에 있는 데니스에게 편지를 쓰고 답장을 받는다. 그렇게 화면 속 데니스와 사랑에 빠지고야 말았다. 문장으로 대화를 나누던 그와 사랑에 빠지는 일이 가능하냐고 묻고 싶겠지만, 그런 게 가능한 것이 또 우리 사는 곳에서 일어나기도 한다는 걸 모르지 않으니, 어쩌겠나. 인정하는 수밖에. 뭔가 투명하지 않은 관계에 빠지고, 두 사람의 행보가 불안해 보이지만, 어쨌거나 응원하는 것 말고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은가. 그녀의 사랑을 지켜보는 것 말고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는가.

 

서맨사는 영국에서 교사로 일했다. 사회적인 관계가 원활하지만은 않았던 그녀였다. 게다가 애인인 마크가 그녀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녀는 마크와의 관계에서도 완전한 정리가 되지 못했다. 여전히 그에게 신경을 쓰고, 혹시나 그가 돌아오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한다. 이미 끝난 관계, 그것도 가장 위험하고 안 좋은 모습으로 마지막을 보였으니 서맨사가 기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녀에게는 데니스가 있으니까. 비록 감옥의 투명한 창을 사이에 두고 만나는 사이지만, 그녀의 사랑이었고 데니스의 무죄를 믿었고, 곧 풀려날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데니스가 정말 무죄일까? 그가 외치는 것처럼 그는 누군가의 조작으로 연쇄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쓴 걸까? 데니스의 죄명은 살인이다. 그것도 어린 여자아이들을 죽였다. 하지만 그가 무죄를 외칠수록 그의 무죄를 믿는 여성들이 늘어만 갔다. 그의 외모, 그의 순진한 표정이 하는 말을 믿는 것일까? 하지만 그가 정말 무죄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의 무죄를 증명하려고 애쓰며 다큐멘터리 제작에 열을 올리는 캐리의 역할이 그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게 진실일 뿐.

 

사랑에 빠지는 일. 서맨사가 데니스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의아했다. 누군가의 사랑을 저런 방식으로 가능해지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뭐랄까, 인간의 마음을 흔들고 끌어당기는 게 꼭 얼굴을 마주하는 관계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연예인이나 유명인을 보면서 호감을 느끼고 설레는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나는 그 사람의 팬이라고 말하지만, 마음은 어떤 우상을 바라보는 것 이상으로 작동할 때. 마치 그 사람이 나와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착각하는, 나의 애인이라고 믿어버리는 이상한 상황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 하는 일들이 만드는 위험. 서맨사가 데니스와 하는 게 곧 터질 위험의 증조 같았지만, 그래도 무슨 일이 있을까. 데니스 역시 서맨사를 사랑한다고 말했고, 그녀가 믿어주는 그의 무죄에 힘을 얻게 되었다. 데니스의 생각을 다 읽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서맨사의 마음은 알 것 같다. 곧 데니스는 풀려날 것이고, 옥중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이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일만 남았다는 것만 믿으면 된다.

 

읽으면서 점점 궁금증이 커져갔다. 데니스는 정말 그 많은 살인과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인지, 서맨사를 사랑하는 것인지, 두 사람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인지 하는 것들. 여러 가지 가능성을 두고 상상해보지만,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을 앞에 두고 많은 것을 생각하고 상상하게 된다. 독자의 그런 상상에 서맨사가 느끼는 불안함은 날개를 단 것처럼 커졌다. 데니스의 무죄를 같이 외쳤던 서맨사. 그가 자기를 사랑한다고 믿었기에 가능했던 선택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 믿음 앞에 왜 자꾸 불안함이 끼어드는지 알 수 없지만, 그와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불안은 커진다. 달콤하기만 기대했던 신혼생활이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채워지기 시작하면서, 소설은 더 미궁으로 빠지는 것만 같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진실에 다가가면서 더 파헤치고 싶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사랑을 다 표현하지 않는 남자와 그의 사랑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건 여자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기대되면서, 이들이 다 말하지 않고 감추려고 애썼던 것들을 듣는 재미가 상당하다. 살인자가 아니라고 믿으며 사랑을 주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그 사랑이 무엇보다 잔인했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소설의 도입부에서는 이렇게 사랑이 시작되는 게 가능한 일이었는지 싶은 궁금증이 있었다면, 중반부에서는 그들이 보는 게 전부 진실일까 싶은 호기심과 의심이 생기더라. 후반부에 다다르니 누군가는 밝혀낼 진실에 어떤 반응이 나타날까 싶은 기대가 피어올랐다. 마지막에 서맨사가 선택한 사랑의 방식은, 어쩌면 서로가 가장 안전하게 사랑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닐까 싶었다. 서맨사가 처음 데니스를 사랑한다고 여겼을 때, 데니스가 처음 서맨사의 편지를 받고 매력을 느꼈던 그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도 이들에게는 사랑일 테니 말이다. 사랑하지만 서로가 같은 모습으로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을 때 비로소 안전한 사랑이 된다는 것도 아이러니지만, 세상에는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의 일들이 넘쳐나니까 이들의 모습이 이상할 것도 없으리라.

 

이거 아니면 저거. 둘 중 하나의 결말만 생각하다가 의외의 결말을 맞이하고 보니 이 소설이 색다른 맛이 난다. 인간에게는 무수히 많은 모습이 있고, 그 모습이 내재한 본성 역시 한 가지일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우리가 보이는 많은 생각과 행동에는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이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처음에는 순수하게 여겼던 욕망일지라도, 그 욕망이 변이하고 색을 달리한다면 더는 순수하다고 말할 수 없다. 욕망이 일으키는 광기는 그 누구도 쉽게 잠재울 수 없다. 그저 인간이기에 드러내는 본성이라는 것밖에는...

 

인간의 심리를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소설이었다. 사랑하니까 가능한 행동들, 상대에게 믿음을 주고 싶다며 동조하는 범죄들, 불안하고 의심되면서도 믿고 싶은 마음들, 진실을 마주하기가 두려워 자꾸만 밀어내고 싶은 회피. 사랑과 집착 사이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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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버그 -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
맷 매카시 지음, 김미정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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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국가이기에 항상 전쟁을 염려하면서도, 실제로 전쟁이 일어날 거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지금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나 다른 대륙의 국가들까지 이 전쟁이 일어나도록 가만히 두지 않을 거로 믿었다. 오늘날의 전쟁은 그 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게 되니까 말이다. 그래서 전쟁 상황의 모습을 잘 생각하지도 않았다. 금을 사두어야 한다, 현금은 휴지조각이 된다, 생필품을 쌓아두어야 한다는 등등. 이런 일이 내 앞에 펼쳐질 거로 생각한 사람 얼마나 될까? 이번 전 세계를 공포에 떨며 뒤흔든 ‘코로나 19’는 마치 전쟁 상황을 눈앞에서 보게 해준 거 같다. 세상에나, 마스크를 사려고 몇 시간을 줄 서는 경험 해본 적 있던가? 자주 사용하던 소독용 에탄올이 거의 두 배의 값으로 오르고 그마저도 품절이라는 답변을 듣고 황당했던 적은? 우리의 일상을 바꿔놓고,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세계로 이끈 이 바이러스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2017년 세계보건기구가 슈퍼버그 12종을 발표했다. 이로 인해 매년 70만 명이 사망한다는 통계가 있다. 시간이 흐르면 사망자 숫자는 더 늘어나겠지.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게다가 슈퍼버그의 등장은 다양하고 그 속도도 빨라져서 전 세계가 긴장하고 있단다. 그렇다면 이 슈퍼버그가 무엇이더냐. 항생제 내성이 있는 신종 박테리아로, 20세기 의학의 기적을 일으킨 플레밍이 발견한 페니실린 이후로 항생제 개발과 무분별한 사용의 결과로 만들어진, 박테리아가 진화한 결과이다. 백신이 존재하지 않고 변이된 슈퍼버그. 눈에 보이지 않아서 더 공포를 일으키는 이것에 인류의 목숨은 위태롭다. 저자와 그의 동료들은 이 슈퍼버그에 맞서기 위해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려고 고군분투한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하나의 항생제를 개발하면 인류의 건강에 굉장한 영향을 미치고 끝날 것 같은데, 이놈의 바이러스는 신종의 출현과 변이를 거듭하면서 인류를 위협하는 짓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니 의학의 연구와 노력 역시 멈출 수 없는 장거리 레이스가 아닐까 싶다. 저자는 임상시험을 통해 바이러스를 이겨내고 인류의 안위를 도모하는데, 이 책은 그가 진행하는 임상시험의 기록이면서 그 지난한 과정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저자는 신약 ‘달바반신’이 미국 FDA(식품의약국) 임상시험 허가를 받고 시험에 참여한 환자들에게 투약하기까지의 과정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들려준다. 어떤 사람들이 이 임상시험에 참여할까? 대상자는 복합성 피부 연조직 감염증이라는 난치병에 걸린 환자들이고, 저자는 그들을 참여시키면서 각 개인의 인생사까지 함께 듣는다.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기도한다. 그들 모두가 이 임상시험을 무사히 통과하여 살아남기를, 못된 병을 이겨내고 평범한 일상을 누리기를. 저자는 항생제의 개발 역사도 같이 풀어내고 있는데, 이는 인류가 진보하면서 함께 해온 역사이기도 하다. 페니실린에서부터 항진균제인 니스타틴, 항생제인 반코마이신 같은 약들. 이렇게 항생제가 꾸준히 개발되어야만 했던 이유가 인류의 진보와 그 맥락을 함께한다는 게 무섭다. 인류가 발전하고 진화하면서 여러 가지 변화를 일으키는 환경이 되었을 테고, 그에 따라 새롭고 변화하는 바이러스의 등장이 어쩌면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슈퍼버그의 존재는 우리 인류가 영원히 같이해야 할 존재인가?

 

사실 슈퍼버그는 1960년대 이전에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단다. 그 후로도 산발적으로 나타나곤 했는데, 그게 1990년대 이후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그 이유가 뭘까. 누군가는 그 이유를 상업적 농업의 확산에 있다고 말한다. 흔히 보는, 식용과 판매를 위한 동물의 사육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동물의 생장을 인간의 의도대로 조절하려다 보니 항생제의 필요성은 커졌고, 그에 박테리아들이 항생제의 약효와 싸우면서 빠르게 변이했다는 이야기. 그렇게 지구 구석구석에 퍼진 박테리아들이 지금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는 게 현실이라고. 그래서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 슈퍼버그에 대한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슈퍼버그로 인한 사망자는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할 것이라고. 처음, 병상에 누워있는 병사들이 파상풍이나 패혈증으로 죽어가는 것을 막고자 발견한 항생제가 인류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쓰인 건 맞다. 하지만 인류의 발전 속도에 따르기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것 역시 인간이었다는 걸 이 책으로 알게 된 것 같다. 인간 중심으로, 인류의 발전과 변화와 편리함은 분명 좋은 것이라고 여겼지만, 어쩌면 지금 우리는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는 중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도 없다. 인류가 항생제 분야에서 엄청난 발전을 이뤘지만, 지금 우리가 감염병에 취약한 상태에 놓인 것 역시 사실이니까 말이다. ‘글로벌 전염병이 핵폭탄이나 기후변화보다 훨씬 더 위험한 재앙을 인류에게 가져올 것’이라는 빌 게이츠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고 생각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끊임없이 변이를 거듭하며 인류가 개발하고 사용하는 항생제를 무력화시키는 슈퍼버그. 아무리 경고해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아무리 위험해도 필요한 순간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슈퍼버그의 등장 속도는 더욱더 빨라질 것이고, 우리는 그 속도에 뒤지지 않게 계속 새로운 항생제 개발에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 속도가 같지 않다. 인류가 더 빠르지도 못하다. 새로운 항생제 개발의 속도보다 내성이 생긴 병원균의 등장이 더 빠를 것이기에 말이다. 그 경제성 때문에 제약회사가 항생제 개발에 망설이기도 한다는데,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의 측면에서 보면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인류의 숙제를 같이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서로가 머리 맞대고 꾸준히 항생제를 개발해야 하는 목적은 같지 않을까 싶다.

 

‘코로나 19’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가 휘청거린다. 평범하게 누리던 일상은 혼란의 도가니로 변했고, 친한 사람에게 가까이 가는 것조차 두려움에 떨게 한다. 심지어 가족 모임도 안 한다고 하는 게 현실이다. 언제까지 이 위기가 계속될까? 아마 지금 사태에 관해 종식이라는 단어를 쓰기는 어렵지 않을까. 의료진과 관계자들의 노력으로 확진과 사망자가 줄어들 뿐, 이제 ‘코로나 19’는 감기처럼 우리 옆에서 언제 어디서든 발병할 수 있는 질병이 될 것 같다. 그런데도 누군가의 노력은 멈추지 않는다. 저자가 시도하는 또 다른 연구는 항생제의 강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어떤 방법이든 이 상황을 종식할 수만 있다면, 인류를 위협하는 슈퍼버그의 출현을 막을 수만 있다면 다행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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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아내
A.S.A. 해리슨 지음, 박현주 옮김 / 엘릭시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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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조디는 남편의 바람을 알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걸 알고 있다고 표시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남편 토드 역시 아내가 자기의 바람을 알고 있다는 걸 인지한다. 그렇다고 바람을 멈추지도 않는다. 그저 각자의 어떤 생각 때문인지 현재의 상태를 흐트러트리고 싶지 않아서인지, 그냥 지금 이대로 흘러가게 놔둘 뿐이다. 조디가 바라는 건 현재의 평온한 삶이고, 토드 역시 조디의 평온을 망치지만 않으면 이 상태를 유지할 수도 있으니 나쁠 게 없다. 하지만 평온은 오래 가지 않았다. 토드의 바람이 조디의 평온을 깨트리는 순간이 왔다. 조디가 간절히 바라던 안정적인 삶이 더는 계속될 수 없게 되었다. 무난히 흘러가기만 한다면, 조용히 이 삶이 유지되기만 한다면 더는 바랄 게 없던 조디는 이제 살아가는 방식을 바꿔야만 했다. 자기를 지키기 위해 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소설은 아내 조디와 남편 토드의 시선을 교차로 보여준다. 같은 상황 다른 느낌. 우리가 언제나 경계하고 들어야 할 상대의 마음이 아닐까 싶은 진심을 적나라하게 들려준다. 아내인 조디가 바라보는 가정의 모습과 남편인 토드가 유지하는 가정 안에서 개인의 삶이 하나인 듯 아닌 듯 애매하다. 이렇게 유지하는 게 부부의 삶일까? 우리가 아는 가족, 가정이란 게 이런 모습이 맞는 걸까? 솔직히 말하면, 처음 조디와 토드의 마음이 하나씩 비출 때마다 의아하면서도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누구나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건 아니니까. 각자가 바라는 최선의 선택이 다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정상적이고 보편적이라고 부르는 부부의 모습이 꼭 한 가지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바라보면 조디와 토드의 관계가 틀린 것은 아니다. 이대로 유지만 된다면 굳이 나쁜 결말도 아닌 채로, 그들의 진심은 누구나 들을 수 없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좋은 부부의 모습으로 그들의 관계를 끝까지 보여줄 수 있었으리라.

 

조디는 왜 토드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고 화내지도 않고 그냥 받아들이기만 했을까? 이 부분이 정말 궁금했다. 일반적으로 바라보는 누군가의 모습, 특히 나를 기만하고 부부의 약속을 배신하는 행위를 한 상대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는 게 가능할까 싶었다. 하지만 조디가 토드를 바라보는 시선은 약간 달랐나 보다. 아들러 심리학을 연구하는 학자이자 심리상담사인 조디는 토드를 좀 더 전문가의 시선으로 봐왔던 듯하다. 토드는 현재 자기에게 닥친 문제를 있는 그대로, 혹은 심각한 상태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스로 축소하여 생각하곤 했다. 어머니와 자기를 힘들게 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불편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특히 자기 어머니에 관해 애착이 심했다. 그래서일까, 보이는 모든 여성에게 성적 욕망을 가진다. 실제 자기의 모습과 상태보다 과장해서 스스로 판단하는 토드의 어리석음과 그런 토드를 바라보는 조디의 시선이 상대적으로 묘사된다. 그렇게 바라보는 두 사람의 모습, 특히 토드의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누군가 거짓말을 하면서 완벽하다고 생각할 텐데, 정작 거짓말을 하는 당사자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웃기고 황당한 상황 같은 거 말이다. 그에 반해 조디의 침묵 역시 궁금했다. 조디는 단지 평온한 일상 한 가지 때문에 토드의 행동을 모른 척하면서 견딜 수 있었던 것일까? 어떤 마음이어야 그런 대응이 가능할까? 이상하게도, 읽으면서 조디의 태도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는데, 토드의 배신으로 변한 조디가 오히려 편하게 다가오기 시작하면서 한 인간에 대한 이해가 가능해졌다. 한 여자의 심경 변화에 공감하기에 이르렀다.

 

누구나 바라는 삶이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가 바라는 방향으로 삶이 흐르기를 바란다. 침묵을 깨기로 한 조디의 선택이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말하지 않고 조용히 지내던 아내가 칼을 들고 상대를 겨누기 시작한다. 왜? 이 끔찍한 배신은 더는 참을 수 없는 게 인간이니까. 그동안 참아주고 침묵했던 조디의 노력을 깡그리 무시한 토드의 행동이 더는 그 참을성과 침묵을 유지할 필요가 없음을 말해준다. 그때부터 조디는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달려든다. 어떻게? 역시 그녀만의 방식으로, 그동안 해왔던 대로, 조용하고 간결하게, 의외의 타이밍에 완벽한 결과를 얻기까지 하는 운까지 따라주는 행운의 여신으로 변신한다.

 

분노의 방식이 어떻게 드러나는가 하는 궁금증으로 끝까지 읽게 되는 소설이다. 물론 조용히 참는 아내와 그런 아내의 진실을 알면서도 무시하면서 자기만의 삶을 진행하는 남편의 배신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싶은 호기심에서, 결국 터져버릴 게 터지고 나니 이제는 이 싸움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하는 시선으로 지켜보게 된다. 인과응보처럼 배신의 종말을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20년을 한집에서 따로 인생을 살아왔던 두 사람의 모습으로 계속 가게 될 것인가 하는 결말을 보고 싶어서. 그리고 여전히 선택에 관한 고민은 계속된다. 나는 조디처럼 평온을 위해 배우자의 배신을 알고도 모른 척하는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배신을 알게 된 순간 바로 드러내서 해결을 보고 싶을까. 어쨌든, 적어도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토드를 응원한 적도, 토드의 바람을 이해한 적도 없다. 서로 합의하고 유지하는 관계를 일방적으로 깨트린 그를, 그런데도 일말의 미안함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그가 맞이하게 될 결말만이 궁금했을 뿐이다.

 

읽는 내내 조디의 심리를 따라가게 되는데, 예상하지 못한 순간을 맞이했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감정 변화의 적나라한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찾고 싶은데 어렵고, 결국 더는 내가 잃을 게 없다고 여기게 되는 순간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 그게 꼭 인생의 정답은 아니겠지만, 결국은 어떤 식으로든 선택을 해야만 문제가 끝나는 운명이니까. 어렵게 침묵을 깨고 부딪치는 일상의 벽에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될지 궁금하다. 잔잔하게 시작되었다가, 커다란 해일을 일으키는 이야기였다가, 밀실 추리소설처럼 한 사람만이 알게 되는 긴장된 결말로 보이는 다양성까지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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