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 - 어느 은둔자의 고백
리즈 무어 지음,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몸무게가 2kg이 늘었다. 평소에 3kg 정도만 더 줄여야겠다고 마음먹은 상태였는데, 오히려 2kg이 더 늘었으니 이제는 5kg을 더 줄여야 한다. 몸무게가 늘어가는 것을 굳이 체중계에 올라가지 않아도 알고 있다. 거의 한달 가까이 폭식을 하고 있었고 평소에 먹는 양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체중계보다 내 몸이 더 잘 알고 있다. 머릿속이 어지러울 때 보통 잠을 자려고 했던 것에 비추어보면, 이번의 폭식은 예외의 일이다. 한때 폭식으로 평균 몸무게의 10kg 정도를 늘여본 적이 있던 터라, 다시 그때의 몸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결코 원하지 않는다. 한 번의 경험으로 그 기억은 충분하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다른 이들이 음식으로 뱃속을 채우는 그 많은 이유들 중의 하나가 허기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마음속에 채워 넣을 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음식으로 뱃속을 채워 넣는다. 마치 음식이 그 모든 허기짐을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말 그대로 착각이다. 뱃속에 채워진 음식이 순간적인 포만감은 줄 지언즉, 영원성을 주지는 않는다.

 

무엇이 시작이었을까. 이 남자, 아서 오프. 몸무게가 250kg에 육박한다. 그마저도 넘을지 모른다. 체중계에 올라간 지가 몇 년은 되었으니 아마도 그 정도일 거라 추측할 뿐이다. 한때 대학교수였고 불미스러운 소문으로 학교를 그만둔 뒤, 그는 은둔자가 된다. 집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세상과는 철저히 고립된 생활을 한다. 움직이지 않았고, 우편물을 수거할 때 말고는 현관문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고, 대량의 음식을 흡입했다. 그리고 초고도 비만의 거구가 되었다. 그런 아서에게 유일한 소통의 대상은 20여 년 전에 알고 지냈던, 사랑했던 제자 샬린뿐이다. 둘은 그사이에 서로 얼굴을 본 적이 없다. 편지가 오고갔을 뿐이다. 그마저도 연락이 끊긴 상태에서 어느 날 샬린에게 전화가 온다. 자신의 아들의 대학 진로 문제에 대해 도움을 청하고 싶다고 한다. 그렇게 몇 번의 전화가 왔지만 그게 끝이다. 이야기는 거기서 멈춘다. 잠깐 아서를 설레게 했던 샬린 소식은 다시 끊어졌고 아서는 평소의 삶으로 돌아온다.

 

샬린의 아들 켈 켈러. 열아홉의 고등학생이다. 공부는 못하지만 야구는 잘한다. 대학이 아닌 야구로 진로를 정하고자 하지만 엄마는 대학을 원한다. 하지만 켈에게는 자신의 진로만큼이나 엄마의 상태가 걱정이다. 술과 약에 취해 거의 정신을 놓고 사는 엄마. 맨 정신일 때는 오직 자신의 대학 진로 문제만이 전부인 엄마. 엄마는 언제부터 술에 중독이 되었고, 엄마를 이 지경까지 만들어놓은 것은 무엇일까. 열아홉 소년이 짊어지기에는 이 환경이 상당히 무겁다. 내일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켈에게는 야구만이 있을 뿐이다. 어떤 식으로든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할 텐데...

 

철저하게 자기만의 세상에서 사는 것처럼 보이는 세 사람이다. 샬린, 켈, 아서. 술과 약에 중독된 샬린, 운동이 살길인 것처럼 보이는 켈, 음식만이 전부일 것 같은 아서. 고립된 하나의 세상에서 유일한 생존자들 같았다. 각자의 세상에서 혼자인 것 같은 사람들. 이들에게 뭔가 하나가 주어져야 한다면 오직 그것을 택하겠다는 마음처럼 보이는 한가지씩이었다. 이들에게 공통된 질문은 ‘왜?’였다. 무엇이 이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하는 궁금증. 하지만 이미 알고 있다.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이들의 하루하루 모습이 계속될수록 비춰지는 것은 결핍으로 인한 그 빈 공간을 채워주고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게 각자에게 술이나 운동이나 음식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이들 모두 혼자였다. 가족이 있으나 없는 것과 같은 아서, 켈과 샬린은 모자사이지만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없는 가족관계다. 모든 것은 처음 시작점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처럼, 처음의 모습을 보여준다. 제대로 완성되지 못했던 가족은 그 결핍의 모습을 계속 이어간다. 결핍은 외로움을 가져오고 그 외로움을 채워줄 것들로 가득한 중독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계속되는 허기짐.

 

켈과 아서, 두 사람의 고백 같은 독백으로 계속되는 이야기 속에서 그 처음을 찾아낸다. 아서에게는 비만의 엄마가 있었고 아버지는 집을 나갔다. 지금까지도 아버지를 만나지는 않는다. 켈의 아버지는 켈이 4살 때 집을 나갔고 엄마인 샬린은 빈곤의 마을이 아닌 좋은 환경의 고등학교에 켈을 입학시킨다. 뭔가 점점 아귀가 맞지 않는 삶이 이어졌고, 지금 두 사람의 모습에 이르게 된 것이다. 쓰레기장 같은 집, 푹 꺼진 소파, 울리지 않는 전화벨, 집안에서 몇 발자국만 걸어도 숨이 차는 아서. 분위기가 어두운 집, 늘 TV 앞에서 술에 취한 채로 앉아있는 엄마, 자신과는 전혀 다른 환경의 동급생들을 바라봐야 하는 켈. 전혀 접점이 없는 아서와 켈이 서로 자기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 사이에 샬린이 있었다. 샬린이 아서와 주고받는 편지들, 켈의 진로문제를 꺼내면서 시작된 통화 사이에 뭔가가 있다.

 

이야기는 점점 환기되는 듯, 조금씩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아서의 집에 찾아온 청소용역인 욜란다의 등장은 고립된 삶을 즐기는 듯 보였던 아서에게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한다. 어쩌면 그 전에 아서를 방문하겠다고 말한 샬린이 시작이었는지 모른다. 소망하는 것을 채우지 못한 결핍이 만들어낸 샬린의 허황된 망상, 그런 샬린을 맞을 준비를 하는 아서.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두 마음은 외로움으로 고립된 삶을 살아가던 한 사람을 집밖으로 걸음하게 하는 계기를 만든다. 누군가의 등장을 받아들이고, 진심을 담은 이야기를 하고, 십몇 년 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걸음을 내딛게 만들고 있다. 각자가 만들어낸 중독을 하나하나 떨쳐내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정말 혼자가 된 켈은 동급생들과의 다른 관계를 만들어갈 시선이 생긴 듯하다. 여자친구인 린지와의 관계가 어긋나고 멈출 것 같았는데, 의외의 전개에 희망적이 내일을 기대하게 한다. 소통의 좋은 예를 그대로 보여준 듯하다. 모든 것을 꺼내어놓고 이야기했을 때 형성되는 관계의 모습이었다. 자신의 아버지일지 모를 이에 대한 기대감이 사그라졌을 때 실망이 아닌, 세상을 배우는 시선이 채워졌다. 테스트에서 좋은 결과를 받지 못할 것을 예상하면서 차선의 선택을 준비한다. 자신이 가진 삶의 무게가 가늠이 되어졌을까. 온전하지 못한 가족이 만들어낸 삶의 공허와 결핍, 외로움이 이들 각자에게 준 것은 그리 반길만한 것은 아니었다. 세상과 소통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까지 안겨주었으니, 결국은 버려야 할 것들만 안겨준 것이다. 아픔과 고통이 함께였지만, 많은 경험이 지나갔다. 아서의 비만은 점점 가벼워질 것 같고, 진짜 혼자가 된 켈은 단단한 심장으로 세상과 소통할 것 같다. 결국은 결핍이나 외로움, 삶의 무게, 모두가 자기 자신에게서 시작되고 자기 자신이 뛰어 넘어야 할 벽이라는 것.

 

어느 날 아침, 켈이 친구 디의 집에서 아침의 빛을 차단한 검은 커튼을 열었을 때, 알았다. 아, 이제 다시 시작이겠구나. 좋은 않은 결과를 받는 일에도 다시 어두워진 커튼을 열겠구나 싶었다. 혼자가 아닌 사람들 속으로 다시 뛰어들었으니, 같이 호흡하고 손을 마주잡을 수 있는 용기가 생겼지 않겠는가. 반면, 아서가 호스트가 될 디너파티도 궁금해진다. 욜란다와 함께 준비하는 음식들, 처음으로 찾아오는 손님들,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는 집, 모두가. 사람과 함께 어우러지는, 자신이 예전에 살았던 삶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아서를 그리게 된다. 문 하나만 열면 되는 것이었는데, 너무 오랜 시간을 닫힌 문 너머의 것들을 안 보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상당히 잘, 재미있게 읽히는 책이었으나 쉽지만은 않은 책이기도 했다. 켈과 아서. 두 사람이 있는 공간의 물리적인 거리만큼이나 접점을 찾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너무 다른 두 사람의 환경과 모습들이 두 사람의 공통점을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 쉬울 리가 없다. 그렇게 다른 모습 안에서 뚜렷하게 보이는 것들이 내가 봐야할 것들이었다. 서로 다른 듯한 모습, 하지만 품고 있는 마음속의 허기짐, 그걸 채우는 방식들. 결국은 내가 나를 뛰어 넘어 그 시간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 무언가를 극복하고 회복해야 하는 순간에 만나기에는 더없이 좋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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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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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읽어보고 싶어서 구매한다. 다가오는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봄과 함께 만나기 좋은 이야기가 펼쳐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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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강아지 몽몽 - 제3회 비룡소 문학상 대상 수상작 난 책읽기가 좋아
최은옥 지음, 신지수 그림 / 비룡소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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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몽몽 ^^ 책읽기를 좋아하는 강아지라는 설정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책읽기를 싫어하는 아이와 대조적으로 보이는 모습이 유쾌하게 그려질 듯... 책을 재미있게 대할 수 있는 마음을 배울 수 있을 듯하다. 아이의 눈높이에 딱 맞춤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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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 매드니스 - 책, 그 유혹에 빠진 사람들
니콜라스 A. 바스베인스 지음, 표정훈.김연수.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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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망설이던 책을 반값할인이라는 좋은 타이밍에 구매한다. 상당한 두께를 자랑하는 만큼, 읽는 재미가 더해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어쩌면 내가 그동안 생각해왔던 책에 대해 또 다른 해석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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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 김민정 산문
김민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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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란 이런 것. 표지에 반해 구입했지만 책 속의 이야기가 너무 솔직해서 좋았다. 그런 순간의 기록이 이렇게 하나로 묶이니, 책이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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