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파울로 코엘료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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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사탕의 유혹도 있었지만,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과 친해지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 그의 작품 중 나와 맞는 게 단 한편뿐이었기에... 담담한 듯, 조용한 말투가 가져다줄 어떤 느낌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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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난다 - 치사해서 말하지 못한 사소한 것들을 향해 이단옆차기
김보라 지음, 스폰지 그림 / 돋을새김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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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사해서 말하지 못한 사소한 것들을 향해 이단옆차기라는 부제가 눈길을 끈다. 문장 그대로다. 말하자니 치사한 사람이 될 것 같아 주저하게 되고, 참고 있자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화병이 날 것만 같은 마음을 어쩌랴. 이럴 때 다른 방법은 없다. 쏟아내야 한다. 풀어야 한다. 속사포 욕이라도 마구 쏴줘야 한다. 아마도 저자는 그런 사람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어떤 을 풀어내는 그 화끈함이 시원하게 들린다. 여기에서 방점은 사소하다는 것에 있다. 뭘 그 정도로 그러냐, 별로 큰일도 아니구먼, 그냥 넘어가지 속 좁게 군다, 는 말들이 나올 상황들이다. 하지만 사소하다고 하기에 일상이나 인간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라 그 여파가 너무 크다. 그리하여 그 사소한 일은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일이 되고야 만다. ~? 그런 시간이 쌓여, 참고만 있자니 이 성격에 죽을지도 모를 위태로운 상황들로 변신하기도 한다.

 

어딘가에서 누구에게 하소연하듯 수다 삼매경에서 나올 법한 얘기인데, 저자의 말에 100%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공감하게 된다. 더불어 정말 나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한 번 더 실감하게 된다. 나 혼자 내 맘대로 해도 되는 것은 내 방 안에서 나 혼자만의 일상이 가능할 때 얘기고,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겪어가는 일은 많은 배려와 이해를 동반해야만 한다. 저자는 아주 사소하지만 우리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일들을 말한다. 깨알같이 화가 나게 하는 일들이 끝도 없이 풀어져 나오는데 이런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할 일이 참아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앞뒤 없이 화만 내서도 안 되는 게 살아가는 처세술 아니겠나. 눈치껏 재주껏 어디 그 화를 풀어내 보시라.

 

어떤 일에 화가 나냐고?

공공장소를 개인장소처럼 여기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어요. 여긴 당신들 안방이 아니므니다. 먹는 사람과 뒤처리하는 사람 따로 있을 때 분노의 주먹이 불끈 쥐어집니다. 나는 식기 세척기가 아니라고요! 약속시각 몇 분쯤 습관적으로 늦거나 아무 미안함 없이 취소해버리는 사람들에게 내 시간을 돌리도~! 똑같은 방법으로, 약속시각에 몇 분이 아니라 몇 시간쯤 늦게 와서 복수해줄 겁니다. 집 없는 설움에 울게 하지 마세요. 언젠가는 대궐 같은 집에서 당신을 내려다볼지도 모르잖아요?! 나는 이제 무슨 옷을 입어야 할까요? 예전의 55사이즈가 지금 44사이즈도 안 되는 거 알고 있나요? ㅠㅠ 누군가의 값진 노동 앞에서 아무나 할 수 있는 쉬운 일로 판단하지 마세요. "~나 해야겠어요."라는 말 함부로 하면 안 됩니다. 사라져가는 서점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출판사를 호구로 아는 거래처나 독자에게 섭섭합니다. 우리는 책으로 통하는 사이인데 말입니다. 피곤하다고 방바닥과 이불로 돌돌 말린 주말을 보낸 것이 너무 허망해서 화가 납니다...

 

, 끝이 없다. 괘씸해서 화가 나고, 속상해서 화가 나고, 서운해서 화가 나고... 가만히 듣고 있자면 매일 살아가는 오늘이 기쁘면서도 그 깨알 같은 화 때문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기도 한다. 사는 게 그렇지, 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2%가 있는 듯하다. 아마도 그건 한 번쯤 터져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꾹꾹 눌러 담은 화, 혹은 가슴 속 상처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한 번쯤 이런 수다 삼매경에 푹 빠져보는 것도 좋겠다. 내가 한번 말한다고 해서 화 내게 되는 그 많은 원인이 단숨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기에 그 변화의 과정에서 이런 타이밍 한 번 맛보는 거로 생각하면 어떨까. ^^

 

자의 에피소드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여러 가지 있었는데, 그중에 특히 지하철의 노약자석은 노약자 전용석이 아니라 노약자 우선 좌석이라는 말에 심각하게 공감했다. 혹시 젊은 사람이 앉아 있다가도 노인분이 타면 바로 일어나면 되는 좌석인 거다. 지하철이 아닌 버스만 다니는 이곳에도, 가끔 버스를 타다 보면 정말 자리 양보하기 싫어지게 하는 노인분이 있다. 한 번도 아니고 몇 번 그런 경험을 하고 보니 자리 양보에 대한 예의를 차리기가 싫어진 적도 있다. 언제였던가. 노인분이 버스에 올라타는 것을 보고 알아서 일어나려고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고 있었다. 그런데 급하게 내 옆에 와 떡하니 서서 요즘 것들은 자리 양보도 할 줄 모른다는 둥, 아이고 팔다리허리어깨야 하면서 몸의 여기저기를 두드려대면서 굳이 바닥에 주저앉는 할머니. 저자도 말했지만, 노인분이 타면 자리 양보 안 하는 사람 거의 없다. 노인에게 자리 양보는 당연한 것처럼 배우고 자랐기에 나 역시 아무리 피곤해도 서서 간다. 그런데 저런 노인을 만나면 저 일어나는 거 안 보이세요? 할머니 같은 분들 때문에 자리 양보하기 싫어져요.” 라며 굳이 한마디 하고 일어난다. 그러면 그 할머니는 내 뒤통수에 대고 싸가지가 바가지라는 둥 끊임없이 욕사포를 날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목적지까지 유유히 그렇게 서 있다가 내린다. 처음에는 내가 정말 나쁜 년인가 싶었는데, 어느 순간 주변의 시선이 의아해서 둘러보니 와~ 대박. 사람들이 나에게 공감의 눈길을 던지고 있었다. 살짝 엄지를 추켜드는 사람도 있었다. 아하~ 이런 마음이 나만 드는 건 아니었구먼. 결론은, 나는 나쁜 년이 아니라는 것. 뭐 이건, 나도 한껏 화가 났기에 했던 행동이었지만, 지나고 살짝 후회와 웃음을 함께 삼켰지만... , 조금은 뻘쭘하기도 하고... 그래도 그런 싸가지 바가지가 한 번쯤은 속을 시원하게 해주긴 하더라.

 

공감해서 웃음도 나고 조금은 달라서 오버하는 듯한 느낌도 있다. 저자의 에피소드를 곰곰이 듣다 보면 나와는 다른 태도를 보이는 부분이 상당히 있다. 절반쯤은 공감하고 절반쯤은 공감하기 어려운 정도다. 그건 누가 잘했네 잘못했네 하는 이분법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같은 상황을 두고 하는 생각의 차이, 취향의 차이, 성격의 차이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저자가 발끈했던 일이 나에게는 그냥 흘러가듯 무시하는 일도 있는 걸 보면 분명 사람의 성격 차이가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화가 나는 지점이 사람마다 다르기도 하고 화를 내는 정도도 다를 것이다. 조금은 가볍게 읽어도 좋고 조금은 무겁게 생각해볼 문제도 있다. 우리 사는 동네 어딜 가나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들, 사람들이다. 그 안에 자리하고 있는 나 자신이 속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인 문제로 끌어내 끝장토론 한번 해보자, 하는 의미가 아니니 부담 없이 즐겨도 좋을 이야기다. 속이 좀 시원해질지도 모를 수다 한바탕 즐기면 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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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연애 따위를 놀 청소년문학 28
방미진 지음 / 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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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 - 19세 초과 금지 연애 소설.

들어는 봤나~ 19세 초과한 사람들은 읽지 말라는 연애 소설?

 

공부, 성적, 진로... 학생이나 청소년이라는 대상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연결되는 단어다. 학생의 본분은 열심히 공부하는 것. 당연히 성적도 좋아야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선택된 대학은 곧장 직업으로 이어지는, 아주 강력한 끈으로 묶여 있다. 그러니까, 그 나이에 해야 할 일이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정해진 법칙 같은 느낌이다. 물론, 공부해야지. 하고자 하는 일, 미래를 위해서라도. 10대, 청소년이라는 그 시기는 공부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 시간이 ‘오직 공부’로만 채워질 수는 없다는 것을 아주 과감하고 즐겁게 이야기하는 청소년문학이 나타났다. 그동안의 청소년문학에서 만나보지 못했던, 제목부터 궁금하게 만드는 『어쩌다 연애 따위를』이 그 시간을 지나고 있는 아이들의 진짜 속마음을 듣게 하는 듯하다.

 

그러고 보면 연애도 운동화를 닮았다. 이건 꼭 사야 돼! 하는 핫한 신상도 몇 달 안 가 시들해지듯, 아무리 핫한 연애라도 금세 익숙해진다. 미련 없이 버리기 힘들다는 점도 닮았다. 아우, 이거 해외 배송에 완전 힘들게 구한 건데. 그래도 쟤만 한 애 없는데. 그래서 결국은 신발장에 곱게 모셔 두고 바람을 피우게 되는 거다.

익숙한 건 편하지만 어딘가 궁상맞다. 함부로 구겨 신은 운동화를 별 수 없이 질질 끌고 다니는 것처럼, 관계를 유지하다 결국에는 바이 바이.

아무리 멋진 것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된다. 아무리 멋진 것이라도. (26페이지, 조신)

 

네 명의 인물이 차례로 등장한다. 열여덟, 열아홉. 고2, 고3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 아이들에게서 공부에 인한 스트레스나 누군가의 독촉, 성적에 인한 비관 같은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지금 이 아이들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다. 사랑, 연애.

조신. ‘하... 이 완벽한 비주얼~ 나도 내게 반하겠네♥’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외모를 가진 조신은 바람둥이다. 사귀고 있는 여자 친구가 있지만,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다 만날 수 있다. 자뻑에 빠져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도 여자들이 뻑이 간다. 여자 친구가 있음을 알면서도 만나는 여자들이 수두룩. 하지만 여러 여자를 만나고 있어도, 그에게는 순정이 있다. 오직 너뿐이라고 외치고 싶은 여자를 가슴에 품고 있다.

서두. ‘나를 좋아하고 있다고 왜 말을 못 해! 왜!’ 오동통 너구리를 연상할 수 있는 몸매에 때론 과격하고 솔직한 여학생이다. 애써 사들인 옷은 며칠이 채 되지도 않아 몸에 맞지 않게 된다고 해도 괜찮다. 다이어트란 실패해도 다시 할 수 있으니까, 이 정도 폭식과 과식쯤이야... 그런 서두에게 마음을 품은 이가 있단다. 누구에게 전해 들은 바로는 그렇다는데, 왜 당사자는 말을 안 하느냐고!!

안평. ‘다음 생에는 마성의 게이로 태어나겠어!’ 안평은 게이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정하고 게이로 살아가고 있다. 당연히 여자 친구는 사귀어본 적이 없다. 안평에게는 우정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품어버린 조신이 있으니까. 아, 떨려... 이 자식 이거 왜 이래? 마성의 매력이 철철 넘쳐흐르는 조신을 어떡하면 좋을까.

박순. ‘팬질...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 그룹을 좋아하고 멤버 중의 한 명에게 팬으로서의 사랑을 분출한다. 스스로 성공한 팬이 되는 게 꿈이라고 말할 정도로 열정과 애정을 담아 팬질을 한다. 그런 박순이 어느 날, 팬질을 그만두겠다고 한다. 왜? 미친 듯이 좋아했던 그 시간이 갑자기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 거야?

순정. ‘왜 사랑할수록 내가 초라해지는 걸까?’ 조신의 공식적인 여자 친구다. 고3. 공부를 미치도록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면서 조신과의 연애를 그만둘까 싶기도 하지만, 조신과의 연애가 공부에 전혀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 순정에게 연애와 성적은 어떤 상관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신에게 헤어지자 말한다. 너무 잘난 남자를 만나는 평범한, 아니 평범하다고까지 못할 정도의 외모를 가진 순정에게 조신은,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상대일 뿐이다. 그러니까 우리, 헤어져!

 

나는 정말 조신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 모두가 하는 말이 맞다. 우리가 만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런 연애는 로맨스가 아니라 코미디다.

하지만 원망은 없다. 원망이라니 당치도 않다. 나 같은 여자가 조신 같은 남자를 만나 연애하게 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아니, 조신 같은 사람이 나 같은 인간을 좋아하게 될 확률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이 지구상에 과연 얼마나 있을까? 나는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다. 잠시나마 나를 순정 만화 속에 살게 해주어서. (147페이지, 순정)

 

표지부터 순정만화 삘 나기에 무슨 내용이기에 그런가 했다. 상당히 발랄하면서도 정작 이 아이들의 진짜 얘기를 왜 이제야 듣게 되었을까 싶어 안타깝기도 했다. 공부나 성적은 이 아이들에게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운명공동체라 여긴다고 해도, 그 아이들의 시선에 비친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나 연애를 솔직하게 들어본 적이 없는 듯하다. 왜냐고? 그러면 안 되는 시기라고 이미 못 박아 버렸기에, 아예 처음부터 차단된 단어이고 있어서는 안 될 감정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아이들에게 있어서 공부만큼이나 중요하고 필요한 건 바로 이런 감정이고 시간이었던 거다. 누군가를 좋아해서 연애하고, 가슴앓이하고, 헤어져 보고, 연예인을 향한 팬질이 가져다준 시간은 헛되게 흘러가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었기에 그렇다.

 

안평과 나는 그 전쟁으로 인해 한 가지를 배웠다.

누군가의 특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집단도 언젠가는 이해관계에 따라 특성을 약점으로 규정하며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을. 사랑하는 존재를 지키려는 마음이 나를 지독하고 잔인한 인간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인간은 그런 존재라는 것을. 사랑은 추악함을 부르기도 한다. (129페이지, 박순)

 

그룹의 팬질을 하던 박순이 팬질을 그만두기로 마음먹고 안평에게 하는 얘기들은 서늘했다. 미친 듯이 집중했던 대상, 그 대상 하나로 똘똘 뭉쳤던 팬덤이라는 하나의 덩어리가 박순에게 남겨준 것은 허탈감이었다. 서로의 마음 하나씩 생채기를 만드는 건 순식간, 그 일에 인해 상대를 할퀴고 헐뜯고 한 사람 매장하고 떠나보내는 일은 누워서 떡 먹기. 팬질의 경험이 박순에게 가르쳐준 것은 사람 살아가는 세상에서 배워야 할 기본적인 예의가 아니었을까. 순간적인 감정으로 나 하나 살겠다고 한 사람의 인격을 모독하는 일이 결국 후회와 미안함으로 남아 있다는 것은, 살아가면서 내내 지우지 못할 불편함일 것이다. 물론 그것 하나 때문에 팬질을 그만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 시간이 경험하고 배우게 한 어떤 게 분명하게 있다는 것이다. 팬들의 사랑을 먹고 산다는 아이돌에게 아낌없이 쏟아 부었던 박순의 사랑. 그 파릇파릇한 열정과 집중이 부러웠다.

 

사랑과 연애를 했던 네 사람, 조신, 순정, 안평, 서두. 이 아이들에게 사랑은 상대를 향한 감정이자 자신의 결핍을 채우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또한, 자존감을 낮게 하는, 그 낮은 자존감을 확인하는 순간을 만들기도 했다. 바람둥이라 부르는 조신이 바라는 것은 자신을 향한 관심이었다. 분명 내가 좋아해서 만나는 여자 친구가 있지만, 내가 더 사랑하는 것이 아닌, 나를 더 사랑해주는 그 마음과 애정을 바라는 것으로 바람둥이가 된다. 그래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말리지 않았다. 예쁜 여자가 아닌 그저 자신이 만나고 싶은 여자를 만난 것이다. 그에 인해 상처받는 한 사람, 조신의 여자 친구 순정은 잘난 조신으로 인해 더 주눅이 들고, 조신의 바람기를 전해주는 소식들로 아파하다가, 선택한다. 더 이상은 조신 때문에 상처받지 않으리라. 항상 같이 있으면서 조신에게 저절로 마음을 줘버린 안평은 민감한 시기에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게 된 남학생을 보게 한다. 그런데 안평의 모습만 보면 그게 염려할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정하면 되는 것, 마음이 가는 대상에게 마음을 열어 보이는 것. 비록 상대가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지만 그건 어떤 사랑에서도 볼 수 있는 단면이 아니던가. 그러니까 연애라는 것을 두고 보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안평이 게이여서가 아니라. 가장 귀여웠던 인물이 바로 서두. 서두의 외모를 머릿속에 그려보면서 읽게 하는데, 서로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한 채로 자신이 하는 오해로 흐르게 내버려두는 이들의 어긋난 마음이 가장 재밌게 펼쳐진 대목이었다. 통통하고 귀엽고 말발 좋은 이 아이를 어쩌면 좋단 말이야...!

 

밤 12시. 슬픔도 허기도 달랠 길 없었던 나는 식탁에 쪼그리고 앉아 불도 켜지 않은 채, 밥을 비벼 먹으며 청승을 떨었다.

근데 이거 어디서 많이 본 듯.

울고 먹고 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이 장면이 무척이나 전형적이라는 사실에 짜증이 났다. 꼭 이런 것만 드라마 같지, 이런 것만! 식상해도 괜찮으니까 연애도 좀 드라마틱하면 안 되겠냐? 어? (68페이지, 서두)

 

각 인물의 시선에서 화자는 ‘내’가 되어 서술한다. 같이 모여 있을 때의 그 객관적인 장면이 아닌, 오직 그들 각자의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가장 솔직한 기회였다. 비록 말할 수는 없었지만,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아파하고 슬퍼할 줄 아는 시간이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끝까지 그 유쾌함을 놓지 않고 풀어간 이 아이들의 연애가 읽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게 한다. 허투루 흘러가는 시간이 아님을 보게 한다. 틀에 박히고 뻔한 내용이 아니라, 우리가 정작 들어야 할 이야기는 이런 게 아니었을까. 지금 그 시간을 지나고 있는 아이들에게 가장 공감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유치원 때부터 여자 친구 남자 친구를 사귄다는데, 곧 성인의 대열에 합류할 이 아이들에게 사랑이나 연애가 빠질 수 있겠냐고. 인정할 건 인정하고, 봐줄 건 봐 주자. 그래야 솔직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 ^^

 

한 가지 더, 내가 이 책을 읽고 놀랐던 건 저자 방미진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의 전작 두 편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참 서늘하고 어둡다는 거였다. 두 편 모두 청소년소설이었지만,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말일 거로 생각했다. 그게 그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고 방미진이 표현할 수 있는 방식 전부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네. 전작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같은 시간을 걷고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밝고 재밌게 표현할 줄 아는 작가였네. 그래서 더 읽는 재미가 있었던 듯하다. 전작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생긴 저자에 대한 선입견을 확 깨트려줘서 더욱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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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박동을 듣는 기술
얀 필립 젠드커 지음, 이은정 옮김 / 박하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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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랑이 가능해?

처음에는 추리소설을 대하는 느낌으로 읽기 시작했던 듯하다. 어찌 되었든 사라진 사람이 존재하고 그 흔적(생사)을 찾아가는 거꾸로 시간 여행이었으니, 미처 알지 못했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로울 거로 생각했다. 물론, 읽기에 충분히 재미있고 흥미롭다. 다만 이건 내가 이 책의 초반부에 추리소설 분위기라 느꼈던 선입견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사랑이 시작되고 완성되기까지의 과정과 의미가 남달랐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내 머릿속에 내내 떠다니던 물음표가 이야기의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그래, 이럴 수도 있지.’ 라는 수긍을 끌어냈다. 여전히 나는 두 주인공이 보여주었던 사랑을 기대하거나 확신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사랑을 하는 사람, 이 소설에서의 틴 윈과 미밍 같은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거다. 혹시 알아? 지금은 기대하지 않는 그 사랑의 모습을 언젠가 내가 주인공이 되어 보게 될지도... 내가 하지 못했다고 해서, 내가 기대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랑의 색이 달라지거나 없는 게 되어버리는 건 아닐 테니까. 사랑의 색깔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거다. 그러니 그 누구의 사랑도 우리가 함부로 이해하거나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다. 나는 이들과 같은 사랑을 못 했지만, 이들과 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는 간절함도 아직은 없지만, 사랑의 한 장면으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한 교감이었다는 말을 하고 싶다. 말로 다 표현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조각이 그들의 진심을 알았을 때 맞춰지는 느낌. 이 책을 읽는 내 느낌이 딱 그거였다. 그래서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들의 사랑, 이런 사랑이 있다는 가능성이나 믿음 같은 것을...

 

물리적인 거리가 서로를 향한 마음을 잘라내지 못하며, 장애 역시 사랑의 힘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 작품이다. 불우하게 태어나고 자라면서 후천적인 이유로 앞이 보이지 않게 된 틴 윈, 태어날 때부터 다리가 불편했던 미밍. 우연인 듯했지만 결국은 운명이라 말할 수밖에 없는 인연의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쌓인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 시간을 거슬러 보게 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소년의 길 안내자가 된 미밍, 다리가 불편한 소녀의 두 다리가 되었던 틴 윈. 아무것도 바란 것이 없다. 그저 두 사람의 마음이 통한 그 상태 그대로의 시간, 삶을 원했을 뿐이다. 여기에 딱 어울리는 표현은 ‘순수’라는 단어일 것이다. 그것 외에 쉽게 떠오르는 단어도 없다.

 

그 사랑을 찾아가는 길을 딸을 통해 보여준다. 어느 날 사라진 아버지를 찾기 위해 줄리아는 아버지의 고향 미얀마를 찾아간다. 변호사인 아버지가, 모든 것을 다 갖춘 삶을 살던 아버지가 사라진 이유를 찾아야만 했다. 어떤 식으로든 그 관계에 대한 결말도 찾으려 했는지 모른다. 아무 연락이나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것도 자의적으로 자취를 감춘 아버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어렵기도 하겠지만, 숨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딸의 입장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거다. 그때 줄리아의 앞에 놓인 50여 년 전 아버지의 사랑은 혼란을 가져온다. 어쩌면 아버지의 배신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닐지도. 그렇기에 찾아갈 수밖에 없다. 아버지의 지난 시간을, 계속되는 사랑을 찾아 미얀마의 소읍 깔로로 향한다.

 

깔로의 카페에서 만난 중년의 남자 우 바의 이야기를 따라간 여정이 아름답다. 딸의 입장에서 비로소 아버지의 삶 한 부분을 이해하는 순간이기도 했지만, 이 소설을 읽는 이에게도 한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 사랑이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보여주는 신비로움이 매력적인 소설이다. 우 바를 통해 들려오는 그들의 사랑은 그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함을 말하는 듯하다. 서로 보지 않아도, 멀리 떨어져 있어도, 긴 시간이 흘렀어도 변하지 않는 사랑을 증명하는 셈이다. 그게 가능하냐고 묻거나 의심하는 이가 있다면, 그들이 하는 사랑의 숭고함을 먼저 보게 한다. 가능하냐고 물었던 물음표를 지워버린다. 그들의 사랑이 믿거나, 믿게 되거나, 혹은 이해하거나 하는 결말을 보게 한다. 그래, 그런 사랑도 있어, 라면서...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사랑의 장면을 한 권의 소설로 풀어내고 있다. 서로에게 닿아있던 그 심장박동을 평생 듣고 있었던 거다. 현재를 살면서 보기 드문 이야기에 감동의 끄덕임을 보내면서, 사랑의 진정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그 어떤 것보다 강한 힘을 가진 게 사랑이라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눈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느낀다는 것(그게 심장박동의 들림이어도)의 의미를 찾게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장애가 가로막을 수 없는 것의 위대함을 이들의 사랑으로 확인했다. 동시에 딸의 시선으로 아버지를 이해하는, 화해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한 사람으로, 남자로서 가진 그의 사랑의 자취를 따라가면서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을 일으킨 거다. ‘이런 사랑이 가능해?’라고 물었던 나의 의심은 이때부터 희미해진다. 질문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냥 보면 되는 거다. 이런 사랑도 있다는 것을...

 

슬픈 해피엔딩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대로 느끼게 해준 소설이다. 그 안타까움이 슬프게만 느껴지는 것은 아니기에 해피엔딩이라 불러도 좋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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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역사 - 언젠가 어디선가 당신과 마주친 사랑
남미영 지음 / 김영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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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랑’이란 단어 뒤에 ‘타령’이란 단어를 하나 더 붙여, 사랑이란 것이 어떤 노랫가락처럼 들리게 하는 경우가 있다. 참으로 진중하고 아름다울 그 ‘사랑’이 ‘타령’을 만나니 이상하게도 내 귀에는 가끔 그 사랑이 하찮은 느낌으로 들려올 때가 있다. 흘러가는 일상에서 기분 좋을 때 흥얼거리는 허밍처럼, 순간적인 기분에 따라 그 값어치가 달라질 것만 같은, 살아가는데 1순위가 되지 않아도 괜찮은 대상으로 보인다. 아주, 부정하지는 않겠다. 속된 말로 사랑이 밥 먹여준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사랑은 밥을 굶게 하기는 한다. (웃음) 내가 경험한 이별의 아픔에서 밥맛이 떨어지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니까. 다이어트가 저절로 된다는 공식도 성립한다. (엄청나게 웃음)) ‘오직 사랑’이 아닌, 그 사랑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나를 둘러싼 주변의 것들도 고려해야만 하는 상황이 있으니까. 그런 환경 앞에서 사랑이 선택되지 못하는 결과를 보면, 분명하다. 사랑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무조건 1순위는 아니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에서 사랑은 빠지지 않는다. 빠질 수가 없는 화두이자 일상과 밀접하게 붙어 있다. 태어나는 순간 정해지는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부터 완전한 타인이 만나 기적처럼 인연을 만드는 이성 간의 사랑까지. 삶을 주는 그 순간부터 우리에게 사랑은 떨어져 나가지 않은 신체 일부처럼 가깝다. 한 사람의 인생과 함께 간다. 육체적인 죽음으로 그 생명을 다하는 순간 사랑도 같이 끝난다. 그래서 살아가는 순간에 온전한 사랑을 바라게 된다. 그 사랑을 저절로 알면 좋겠지만, 또 그러지 못해서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사랑이 어렵다고 말하고, 두려워하게 된다. 이 책 『사랑의 역사』의 저자는 우리가 사랑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랑이 어렵고, 좀 더 일찍 사랑을 알 수 있다면 삶이 더 쉽게 행복해질 거라고 말한다. 사랑은, 그냥 사랑이 아니라 탐구해야 할 학문이자 중요한 공부라고. 정말, 그럴까?

 

나와 같은 의문을 갖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사랑이 정말 탐구해야 할 학문이자 공부인 게 맞느냐고.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 사랑의 본질을, 사랑의 본질을 모른 체하는 백 번의 사랑보다 사랑의 본질을 알고 하는 한 번의 사랑이 더욱 아름답다고 말한다. 1597~2012년까지, 거의 40여 년의 시간 동안 이어져 온 서른네 편의 문학을 통해서 그 사랑을 연주하게 한다. 사랑을 명작으로 만들어준다. 사랑의 본질을 알고 시작한다면 그 사랑이 더욱 아름다울 수 있음을 얘기한다. 우리가 만나는 문학, 그 문학을 통해서 배우는 타인의 삶과 성공, 실패를 우리가 하고자 하는 사랑의 연습으로 삼게 한다. 어쩌면 이것은 내가 소설을 즐겨 읽는 이유와 많이 닮았다. 그 소설을 포함하는 문학이 들려주고자 하는 의미와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그 문학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찾아온다. 《소나기》를 통해 비밀스럽고 순수했던, 처음 사랑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던 시간을 기억하게 한다. 오직 사랑 하나만 보이게 했던 그 짧은 순간이 죽음으로까지 이르게 했던 《로미오와 줄리엣》은 높고 두꺼운 장벽보다 절절하고 슬픈 사랑을 보여준다. 한 장의 그림으로 남게 된 사랑을 그린 《진주 귀고리의 소녀》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주고받았던 눈빛으로도 사랑이 가능함을 말한다. 문학에서 녹아든 그런 사랑의 시간이 우리에게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게 사랑이 시작되고 나면 우리는 그 사랑의 주인공이 되어야만 한다. 그 사랑을 잘 만들어가기 위해 용기가 필요하다. 살짝 숨겨놓듯 드러내지 않았던 자신의 오만과 편견을 그대로 들춰냈던 《오만과 편견》은 요즘 말로 ‘밀당’을 보여주는 듯했지만, 실상은 사랑 앞에서 솔직해지는 것이 그 용기의 기본이라는 것처럼 보인다. 《춘향전》의 춘향이가 변학도의 수청 요구에 목숨을 걸고 거절한 것은 기다리는 자신의 사랑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생과 사랑이 같은 맥락으로 흐르고 있음을 보여주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사랑이 음식이라는 인생을 채우고 있음을 말한다.

“음식이 맛있으려면 사랑을 듬뿍 넣어야 해요. 인생이 맛있으려면 사랑을 듬뿍 넣어야 해요.” (87페이지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사랑이 만들어주길 바라는 또 하나의 로망은 ‘너 때문에’ 내가 달라졌다면, ‘너’로 인해 나의 오늘과 내일이 그려질 수 있다면, 하는 바람들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건 뚜렷한 어떤 목적을 가진 모습으로 비칠 수 있지만, 보이지 않게 느껴지는 것으로 이어진 시간이 만들어낸 어느 한순간의 모습일 수 있다. 지나고 보니 현재의 내 모습이 상대에 인해 완성된 것으로 보일 때가 있다. 그때야 비로소 인정하게 된다. 한 여자의 꿈을 이루어낸 《연인》이 그렇고, 자신이 가진 결혼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뀌게 한 《아웃 오브 아프리카》가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다.

어긋나고 실패한 사랑 역시, 사랑이라고 말한다. 도덕의 잣대에 비추어 인정받을 수 없는 사랑에 대해 들려준다. 아내의 불륜에 대해 복수를 하는 것으로만 보였던 《인생의 베일》은 두 번째로 찾아온 사랑을 인정하게 한다. 제대로 되지 않는 사랑에 대해 푸념하다가도 그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면 담담하게 바라보게 하는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역시 마찬가지다. 그를 갖고 싶었다는 욕망에 가슴 속의 뜨거움이 꿈틀거리게 하는 《안나 카레니나》는 그 사랑이 인정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폭풍의 언덕》의 부서진 사랑은 곳곳에서 삐죽 튀어나와 있는 관계의 어긋남이 어떤 모습인지 보게 하고, 이해하기 어려웠던 《마담 보바리》는 사랑을 몰랐던 그녀의 시행착오를 분명하게 보게 한다.

저자가 마지막으로 언급한 것은 사랑과 결혼이다. 사랑했고 결혼했으나 그게 행복과 동의어가 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시선이 필요한 것 같다. 사랑이 만들어낸 소유, 당연한 과정처럼 여겼던 결혼. 그게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 상대에게 관심 가질 이유를 만들어주는 게 결혼이며, 결혼을 유지하는 길인 것 같다. 물론 그 결혼생활을 위해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은 사랑일 것이다. 《오피스 와이프》를 통해 배우자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궁금하게 만들고, 육체가 나이를 먹어가듯 사랑도 시간과 함께 늙어가고 있음을 《위기의 여자》를 통해 말한다. 나에게 정확하게 들어맞는 배우자가 과연 있을까 싶은 물음표를 떠올리게 했던 《결혼의 변화》였다. 사랑과 결혼이 함께 가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결혼에 대한 고정관념 역시 버리게 하고 있었다. 결국은, 만들어가는 그 과정과 자세에 따라 변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랑이 가지는 가장 부정적인 면이, 그 사랑의 실패에 인해 다시 사랑하기 어렵게 만들거나 시작도 하기 전에 돌아서게 만드는 불안과 절망이 아닐까. 이번 사랑이 또 실패하면 어쩌나, 어차피 끝날 사랑인데 시작이 무슨 의미가 있나, 이런 시행착오가 시간 낭비가 아닐까, 싶은 여러 가지 우려를 먼저 떠올리게 하는 것. 그에 인해 나에게 다가온 사랑 앞에서조차 주저하게 하고 뒷걸음치게 하는 것, 최악의 경우에는 그 사랑을 자신의 인생에서 빠진 단어로 고정하는 것.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들려주는 말들은, 그 사랑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결핍된 것이 그러한 결과를 만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사랑의 실패에 인해,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랑에 인해 내 안에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상실감, 내 안에서 사라지는 것들이 결국에는 나를 사라지게 할 순간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만들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 순간을 바꿀 수 있는 건 단 하나, 그 사랑에 인해 나를 발견하고 찾는 것일 테다. 이건 저자가 하는 말이기도 하다. 상대를 사랑함으로써 알아가는 나 자신의 모습,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수많은 감정, 결핍을 채워주면서 갖게 될 성장. 결국은 내 안의 그 부족함으로 이해 다시 찾게 되는 나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 사랑에 주어진 임무이자 사랑이 가진 힘이 아닐까.

 

결국 사랑이란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너를 통하여 나를 알아가는 과정. 너와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까맣게 모르고 살았을 나의 오만과 편견, 네가 아니었으면 영원히 몰랐을 깨진 그릇같이 날카로운 질투와 분노, 너를 사랑하지 않았으면 발현되지 않았을 나의 허영심. 너는 나의 거울. 그러므로 사랑은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서정주의 ‘누님의 거울’이다. (346페이지 에필로그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을 더 잘하기 위해 저자가 차려놓은 밥상에 열심히 숟가락질과 젓가락질을 해야 할 것 같다. 더 맛있게 먹기 위해 꼭꼭 씹어야 함은 기본일 테지. 현실에서 마주하게 되는 우리 인생에서 연습을 불가능하다. 하지만 문학을 통해 만나게 되는 많은 인생과 사랑 앞에서 연습이라 불러도 좋을 배움은 가능하지 않을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도 그게 아닐까 생각한다. 사랑에 대해 조금은 배우고 시작할 기회를 마련해주고자 하는 것. 문학에 담겨 오랫동안 이어져 온 그 사랑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만들어갈 사랑이 더욱 단단해지고 아름다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들려주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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