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21 | 122 | 123 | 12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먹는 존재 1 - 담박한 그림맛, 찰진 글맛 / 삶과 욕망이 어우러진 매콤한 이야기 한 사발
들개이빨 지음 / 애니북스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의 웃픈 자화상.『먹는 존재1』

 

 

분명히 다르다. '먹는다는 행위 자체를 좋아한다.'는 작가와 '먹는다는 행위 자체를 귀찮아'하는 나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하루 세끼를 챙겨야 하는 당연함 따위, 나에게는 없다. 그냥 배고플 때 먹는다는 게 진리다. 그럼에도 공감했다. 마성의 유 양 때문이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에 따라오는 씁쓸한 을의 삶과 침이라도 뱉고 나와 버리고 싶은 과감함이 읽는 이에게 달려든다. 이렇게도 차지고 맛있게 욕을 하는 사람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고, 오늘 걱정을 내일로 미루고 먹고 누워있고 싶은 간절함이 저절로 들게 하는 데 어떻게 공감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마음속은 뒤죽박죽, 길거리에 나앉게 생긴 오늘이 불안하고, 간절하게 먹고 싶은 음식은 눈앞에서 춤을 추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 향이 강하다며 거부한 전 남친이 내가 소개해준 맛집에 나타나니 욕 나오고, 갑자기 찾아온 엄마 밥은 황홀경이고, 터무니없는 엄마의 기대는 언제쯤 사라질지 아득하고, 밥 대신 술을 넣어준 속은 못생긴 남자와의 하룻밤을 만들고, 그 못생긴 남자는 나를 들었다 놨다 하고. 에잇~ 욕 나오는 하루의 인생살이...

 

정말 지겨운 회식자리, 무리하게 술까지 권하는 상사에게 굴을 던지고 뱉기까지 하며 회사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유 양. 그렇다. 유 양은 후련하게 회사에서 잘렸다. 정말 잘린 건가? 회사도 사장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유 양이니, 잘린 게 아니라 스스로 나온 기회였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백수다. 시간은 많지만, 통장 잔액은 줄어든다. 그러거나 말거나 먹는 것이 인생의 낙이니 룰루랄라 식탐 여행도 가능하다. 뭐든! 마음만 먹으면 가능할 것 같은 유 양이다. 클럽에서 떡으로 유혹해서 그녀의 인생에 침입한 못생긴 남자 박 병과 전 직장 동료 조예리와 조예리의 남친까지 합세하여 먹는 것에 녹아든 삶의 녹록지 않음을 풀어낸다.

 

유 양이 말하길, 배고픔이란 질 낮은 양아치 새끼 같다고 했다. 삼시 세끼 꼬박꼬박 찾아온다고 했다. 그 삼시 세끼에 인간 군상의 모든 게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 세끼를 챙겨야 한다는 데 의미를 두는 내가 아니니, 오직 유 양의 이야기로만 받아들이자면 그렇다. 당연하게 찾아오는 배고픔과 하루 세끼, 그것을 외면하지 못하고 뱃속에 뭔가를 채워야 하는 인간. 그 과정을 통해 나누고 쌓이는 인간관계와 사람들. 도심 어느 구석의 이야기까지 더해져 눈길을 끈다. 먹는 행위 하나에 이렇게 많은 의미와 시선을 붙들고 있는 것도 작가의 재주다. 허름한 식당에서 먹은 온메밀 국수를 다시 먹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은 거대 기업에 기죽지 말고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켜 맛으로 유지하길 바라는 간절함을 만든다. 다음에 어느 날, 문득 찾아가고 싶은 그런 곳으로 남아있길 바라게 된다. 나만의 맛집은, 맛있는 음식이 있기도 하지만 음식 그 이상으로 마음에 채워지는 뭔가를 알았기 때문에 맛집이 되는 거다. 식당의 외관이 허름해도, 어느 구석진 골목 끝에 자리해도 굳이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이유는 그런 거다.

 

한편, 분식의 맛은 길거리표가 최고다. MSG 범벅이라 하여도 그 맛을 잃으면 안 된다. 먹는 것에 그다지 관심 없는 나도 이건 쌍엄지 추켜들고 외치고 싶다. 떡볶이는 역시 길거리표다. 새빨간 국물에 퐁당 담가있는 떡과 어묵.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조합이 있다. 김밥, 순대, 튀김은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어야 제맛이다. '김떡순' 가족은 흩어지면 안 된다. 아, 어쩌면 좋아. 이 시간에 떡볶이가 먹고 싶어 죽겠다. ㅠㅠ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 예쁜 옷을 입고 어딘가로 나가고 싶은 날, 봄나물의 향기가 콧속 깊이 스며들어 진하게 남겨진 날, 변하고 발전하는 빙수 대신 오리지널 빙수가 당기는 날. 그렇게 하나씩 파고드는 음식의 의미가 있다. 아무것도 아닌 일상에서, 괜히 기분이 멜랑콜리 해져 향으로 취해버리는 음식, 아무것도 아닌 아주머니들의 호호호 웃음소리에 같이 웃게 되는 봄나물 같은... 왜 그렇게 먹는 것을 외치는지 이런 이야기들을 떠올려보니 조금 알 것도 같다. 그냥 어느 날의 한 장면, 어떤 장소의 이미지일 뿐인데 늘 먹는 것이 함께한다. 그걸 빼놓고 생각하자니 뭔가 허전하기도 하다. 아, 그래서였구나. 내가 지낸 오늘 하루를 떠올려보니 먹는다는 행위가, 음식이 빠질 수가 없구나. 나 오늘, 방울토마토 10알과 컵라면 하나 먹었다...

 

먹는 것을 향한 원초적 욕망에 목숨 걸듯 몰입하는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먹는 행위 안에 간절함이 있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이다. 살기 위해 먹어야 하고, 먹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 비굴해지는 시간도 견뎌야 하는 게 세상 속 피라미드에서 가장 밑바닥을 지탱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일 것이다. 그게 정말 살아가는 모습일까? 내가 진정 바라는 삶일까? 유 양은 그런 삶을 탈출한다. 안다. 고민 없이 그냥 저지르는 것처럼 보이는 유 양이지만, 현실 속 우리의 마음은 유 양이면서도 그렇게 저지르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유 양의 과감함에 공감하며 속을 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소시민의 아우성을 대신 소리쳐 주고 있는 것 같아서. 쌍욕의 개운함과 구석에서 빛을 못 보고 있는 숨소리를 들춰내고 있다. 그녀의 쌍욕과 거침없는 과감함에 설레는 이유다. ^^

 

먹는 것에 대한 욕망과 견딜 수 없었던 사회 구조에서 탈출하고자 했던 유 양의 몸부림은 처절하다. 탈출이 아닌 백수로 전락했다는 게 보통 사람의 시선일 테니까 말이다. 다시 들어간 회사에서마저 잘린다. 그로 인해 그녀가 꿈꾸는, 창작에 대한 욕망이 더욱 불타오르는 시간을 만든다는 게 반전이다. 땅에서 넘어진 사람은 그 땅을 짚어야만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하니, 그녀도 이제 다시 꿈꾸며 일어설 일만 남았다. 그 와중에, 옥탑방에서 줄어드는 통장 잔액을 우울해하면서도 맛집 투어를 시작해버리는 그녀의 욕망을 막을 수는 없다. 그녀답다. 아마 그 크기를 잴 수 없는 식욕만큼이나 그녀의 꿈 욕망도 무한할 것만 같다. 더러운 성깔밖에 남은 것 없는 여자가 결국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해야만 하는 마음을 그린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꿈꾸고 싶은 것을 꾸는 일.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판타지 같지만, 결국 누군가는 해낼지 모른다. 그 누군가는 유 양일 수도 있고,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 그렇게 되는 순간, 그건 판타지가 아닌 현실이 된다. 그렇게 세상에 부딪히며 꿈을 현실로 만들어버리는 것. 유 양이 끝나지 않은 이 이야기를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식욕으로만 따지자면, 여전히 나는 그 식욕을 자랑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상당히 날씬한 사람으로 오해하고는 하던데, 그렇지 않다. 먹는 것에 큰 관심이 없을 뿐이다. 그런데도 유 양이 보이는 그 음식에 대한 욕망이 낯설거나 거북하지 않은 이유는 그녀가 언급하는 음식들은 특별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동네에서, 집에서 흔하게 보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대부분이다. 혼자 혹은 여럿이서 먹어온 음식이다. 익숙하면서 모르는 맛이 아니기에 더욱 그 간절함에 공감할 수 있었다. 특별한 나만의 음식이 아닌 누구나 알 수 있는, 즐길 수 있는 맛. 그런 맛들이 '내'가 아닌 '우리'가 살아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듯했다. 그래서 이건 유 양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다. 오늘도 먹기 위해 몸부림치고 살아가기 위해 버둥거리는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계속되는, 아주 웃~픈 다음 편을 기다려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Letters, Let us
이유진 지음 / 이가서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레터스 렛 어스』 편지, 음악 그리고 우리...

 

 

나는 아침형 인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는 잠을 자고... 가능하면 자정을 넘기지 않고 잠이 들 수 있는 습관을 가지려고 노력했으니, 그런 패턴으로 도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흐름이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분명 아침에는 일어나는데, 밤에는 잠드는 시간이 들쑥날쑥. 때로는 잠깐 자고 일어나고 다시 또 잠깐 자고 일어나는 초저녁부터의 조각잠. 그러다 심해지면 병처럼 찾아오는 불면증, 폭식하듯 잠을 자기도 하고, 하룻밤을 꼬박 새우기도 하고. 가능하면 처방 받은 수면제를 먹지 않고 순전히 내 의지로 건너가고 싶은 시간들이었다. 때로는 그런 방법이 통하기도 하고 통하지 않기도 하고. 결론은 잠이 오면 잠을 자고, 잠이 오지 않으면 잠들지 않는 것. 그것 밖에는 없다. 그럼 문제는 잠들지 못하는 시간들에 관한 것...

 

그래서 이들의 금요일, 새벽 3시, 음악과 편지로 풀어내는 그리움에 동참하려 한다.

모두가 잠이 드는 밤이라는 시간에 잠들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준비된 것처럼, 음악과 편지와 함께 찾아오는 이들이었다. 그 묘한 매력 속에서 허우적대는 나(독자)도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보내는 이가 의도하지 않아도 전파 타고 날아와 가슴에 저절로 박히는 순간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한밤중-새벽이라도-의 라디오가 주는 그 매력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오늘의 시간은 자정을 넘어 새벽을 향해 가고, 곧 동이 터 아침이 되려고 하는 시간에도 분명 누군가는 듣고 있을 것만 같다. 수줍게 문자를 찍어 신청곡을 보내면서, “나 지금, 여기서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어요.” 라고 신호를 보낸다. 라디오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 음악이 지금 듣고 싶어요.” 라고 말하면서 답을 하기도 한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서로가 다른 공간에서, 누군가는 말하고 누군가는 듣고 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고요해지는 그 시간에도 누군가는 듣고 있을 그 목소리, 그 이야기들, 그 음악들은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고. 그래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까지 하고 싶어질 만큼의 간절함이다.

 

"밤에 글을 쓰고, 밤에 음악을 하는 건, 유난히 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차마 낮에는 할 수 없었던 그 말들을, 그 마음을 혼자 있는 밤에만 슬쩍 꺼내보는 것 아닐까요? 그 마음만큼, 그 시간만큼...... 쌓여있는 편지들을 보내주세요."

 

금요일의 새벽 3시 라디오부스 안, Letters 코너가 시작된다. 누군가가 쓰는 편지를 읽어주고 그가 선곡한 음악이 함께 한다. 그 편지와 음악으로 가슴이 설레고 떨릴, 혹은 아련할 누군가를 위해서... 음악을 만드는 그 남자 해수는 폭이 넓은 치마를 입고 가던 그녀를 그곳에서 다시 만난다. “난, 안 돼.” 라고 말하면서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하는 말을 듣는다. ‘괜찮을 거야...’

한 시간의 사랑을 위해서 연필로 편지를 쓰는 그 여자, 현진. 시작 시간과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시간이 정해져있는 영화라고 해도 괜찮다 생각했다. "싫어." 라고 말하는 그 남자가 그래서 좋다. 자신의 차가운 손을 따뜻한 손으로 감싸줄 줄 아는 그 남자가, 자신과의 만남을 바람이라고 말하면서도 좋단다. 좋으면 된 거지.

 

“해수씨도, 그런 사람 있어요? 생각 안하려고 하는데, 자꾸 생각나서 에이, 그냥 생각하자 하는 사람.”

“있어요. 있는 것 같아.”

 

지금은 서로를 바라보는 상대방의 그, 혹은 그녀가 있음에도 그들에게 나쁜 사람이 되고자 한다. 현진은 해수의 그녀에게 나쁜 사람이 되고, 해수는 현진의 그에게 나쁜 사람이 된다. 잠깐은, 아주 잠깐은 괜찮을 거라고 서로에게 위로를 하면서. 현진의 차가운 손과 발은 따뜻해지고, 해수의 건조함은 사랑을 배우고, 그러면 될 것 같다.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서로에게 이별까지 배달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그거면 된 거다. 그래도 괜찮을 거다...

 

서로가 마주보던 시간을 바람이라 불렀으니, 세상의 눈으로 보면 불륜이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해수에게는 2년 된 애인이 있고, 현진에게는 결혼하자 말한 사람이 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온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서로에게 '싫다'고, '넌 안 된'다고 하면서도 흘러가는 마음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 불안하지만, 그 불안까지 끌어안고 싶은 마음이라면 어떨까. 그러면서도 계속되는 그들의 금요일 새벽 3시는, 그래도 사랑일 테다. 한 사람은 편지를 쓰고 다른 한 사람은 그 편지를 읽는다. 그 마음이 어떨까 상상을 해봐도 그들만큼 잘 알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느 가수의 노래 제목처럼, 사랑 그 놈, 참...

 

누군가 나에게 아날로그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나 스스로도 인정하는 바이기도 하고,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한두 명은 아니었으니까. 세상사에 치여 가면서 가끔은 꼼수도 부리고, 잔머리도 쓰고, 편리한 것들을 찾아다니기도 하지만 이런 면에서는 디지털기기의 편리함보다는 주파수를 맞추어야만 들리는 라디오처럼 아날로그적인 게 좋다. 눈앞에 보이는 현란한 영상이 아닌, 오직 소리로만 들리고 느낄 수 있는 그 감정들은 무어라 설명할 수도 없다. 그저 그게, 라디오의 지독한 매력이라고 할 수밖에. 현진과 해수의 이야기가 그저 오늘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일 수도 있었을 텐데 나에게 이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아마도 그래서일 테지. 라디오가 주는 감성과, 표현하지 못할 마음을 담은 사람들의 마음과, 누군가가 쓴 편지라는 구실로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여서 그런 거라고... 안되는데 하면서도 가끔은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나가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보여주는 듯했다. 기침처럼 숨기지도 못하고, 드러난 마음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어서 알아차리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것. 그래서 현진과 해수가 어설프게나마 드러내는 마음, 다시 주워 담아야만 하는 마음이 안타까운 거다. 

 

프롤로그를 잘 읽고 넘어가야 두 사람의 이야기가 연결되어지는 책이다. 서로의 진실을 다 드러내지 못해서 오해 아닌 오해를 갖기도 했지만, 그건 그리 중요하게 보이지 않는다.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두 사람의 마음과 태도, 드러내는 행동들이었으니까. 차마 이름을 부를 수 없어서 어깨를 살짝 찔러 부르고, 미안하다는 말을 꺼낼 수 없어서 주저하다 타이밍을 놓치고, ‘사랑합니다.’ 한 마디에 무너져 내리는 것들. 저절로 불면의 밤을 가져오게 하는 이야기였다고 생각했는데, 다 읽고 나면 그게 아닌 게 되어버린다. 현진이 아픈 몸으로 순간 목 놓아 울어버린 마음을 알 것도 같다. 표현하지 못해서 아팠던 거다. 감정을 말할 수 없어서 울음으로 드러낸 거다. 결국은 내민 손을 누군가가 잡아주어야만 멈출 수 있는 눈물이었던 거다. 그렇게 눈물은 멈추었고, 불편한 사랑을 택했던 이들에게 찾아올 것이 그 무엇이라 해도 괜찮았을 거다. 누군가가 만들어줄 새벽 3시는,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시간으로 바뀌었을 테니...

 

누군가의 마음을 읽어주고, 눈빛만으로 알아주는 오피디가, 나는 정겹다. 좋다. 그런 사람 옆에 한명쯤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새벽 3시의 방송이 쓸쓸한 사람들만 듣는 방송 같아서, 꼭 들을 사람만 들어주는 방송 같아서 멋지다는 사람. 그중에서도 현진을 아주 잘 읽어내는 사람이라서 좋다. 편안했다.

“자기가 정말로 착하거나 후덕하면 내가 이런 말 안하지. 실제로는 딱 잘라 좋아하는 사람 몇 명만 곁에 두고 살면서. 아무한테나 잘해주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무관심하고 제 취향대로 살그머니 챙겨.”

오피디가 현진에게 이런 말을 했을 때, 나는 책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오피디가 어디 숨어서 날 보고 있나?’ 라고 생각할 만큼 현진이란 캐릭터의 묘사가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이 책 속의 현진은 나를 많이, 닮았다. 아무한테나 잘해주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무관심하고, 제 취향대로 살그머니 챙겨... 그렇게 사는 사람 괜찮을까, 싶었는데 오피디의 저 말을 들으니 이상하게 안심이 된다. 그렇게 살아도, 괜찮을 것만 같아서...

 

새벽 3시. 자정을 넘어섰지만 아직은 밤, 잠들어 있어야 할 시간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눈을 뜨고 동이 터오는 순간을 기다릴 수도 있는 시간. ‘사랑하오...’ 라는, 희미하지만 듣고야 말았던 그 고백으로 이들이 다시 열어갈 시간이 이어지고 있을 것만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각설하고, - 김민정 산문
김민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살아가는 오늘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한다.
개운하고 실감나는 이야기의 맛을 그대로 볼 수 있었던 작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꿈을 파는 남자
햐쿠타 나오키 지음, 김난주 옮김 / 펭귄카페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정말 좋은 글, 좋은 문장이 뭔가요? 『꿈을 파는 남자』

 

가끔 나 스스로 ‘내가 책을 왜 읽는가?’ 하는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독자로 살고 있고, 읽는 게 좋아서 책을 대하고 있으니 그 질문에 대한 답이 크게 변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책 『꿈을 파는 남자』를 읽다 보니 나와 반대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궁금해진다. 사람들은 왜 자신의 이름을 새긴 책을 내고 싶어 하는가. 그 의문에 대한 답 역시도 독자의 입장에서처럼 다양하게 찾을 수 있겠지만, 유독 이 책의 주인공인 우시가와라의 말이 눈에 들어온다. 그는 사람들이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이유를 인간의 과시욕에서 찾고 있다. 그의 말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은 사기에 가까운 출판 형식이 눈에 보이는데도, 책을 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그럴싸하게 들린다는 점에 있다. 결국, 그 방식으로라도 책을 출간하고자 하는 이들의 목적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우시가와라의 말처럼 그건 인간의 과시욕이면서 동시에 꿈을 이루는 길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편집자 우시가와라가 있는 마루에사 출판사에 불황이란 말은 없다. 출판계에 항상 익숙하게 나오는 ‘불황’이란 단어는 그에게 아무런 해당 사항이 없다. ‘조인트 프레스’라는 의미로 책을 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돈이 마루에사 출판사를 유지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조인트 프레스란 출판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출판사와 필자가 공동 부담한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말인데, 이는 출판사가 필자에게 사기를 치는 것과 비슷하다. 실제 인쇄하는 부수를 줄이고, 서점에 배포하는 부수를 줄인다. 그러니까 당연하게 책을 출판하는 비용이 적게 드는 것이다. 말로는 조인트 프레스인데 실제 출판사에서 부담하는 비용은 없다. 출판하는 모든 비용이 필자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자비출판이라고 불러도 되는 일을 그럴싸하게 출판사의 이름을 걸고 나오는 것처럼 포장한다. 출판사는 필자에게 그렇게 거짓으로 응대하는 돈으로 운영되고 유지되는 것이다. 신축건물을 지을 만큼 필자의 귀한 돈을 축적한다.

 

여기서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출판업자가 보기에 정말 대단한 글이라면, 책으로 내지 않고는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글이라면 필자에게 비용을 부담하라고 할 게 아니라 출판사의 이름을 걸고 당당하게 출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사기라는 거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간절하게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혹은 아무런 생각도 없는 사람에게 당신의 글이 미치게 뛰어나다는 감언이설로 귀를 솔깃하게 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당신의 글이 책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건 지구 최대의 불행이다!’ 수준의 슬픈 일인 것처럼 들리게 말한다. 그런 사기라면 필자가 비켜 가면 그만인 것을, 그런 사기가 통하게 되는 이유 또한 증명된다. 책을 통해 자기의 과시욕을 불태우고 싶은 간절함이 우시가와라의 영업을 대성공하게 한다.

 

이 책을 계기로 내 인생이 바뀔지도 모른다. 바보 같은 엄마들과 결별하고 수준 높은 친구들을 만든다. 나는 원래 그런 바보들과 어울릴 인간이 아니다. (118페이지)

 

당당하게 큰소리치면서 살아온 남자는 자신의 빛나는 인생 기록을 남기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을 내야만 한다.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짜증 나는 잔소리로 들리는 것도 모른 채로 말이다. 자신의 교육방식과 태도가 최상의 방법이라고 말하는 주부는 책을 내서 보란 듯이 주변에 보여주고 싶어 한다. 모이면 쓸데없는 얘기나 하고 연예인의 가십에나 열광하는 주변 엄마들과는 수준이 안 맞아서 어울릴 수가 없다. 그러니 책을 내서 확인시켜줘야만 한다. ‘내 수준을 따라와 봐~!’ 하고 큰소리칠 수 있는, 상대를 무시할 수 있는 눈빛을 날려주고 싶다. 인생 한방이라는 듯 살아가는 프리터는 또 어떤가. 자신이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채로. 그러면서 요즘 사람들이 소설을 읽지 않는 세태를 열변하고, 세상을 자기 발아래 있는 것처럼 여긴다. 그런 그에게 소설 제의가 왔다. 이제 그는 유명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뜬구름 속에서 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책을 내는 게 그리 간단하단 말인가? 남들에게 읽힐 수 있는 글을 쓰는 게 그리 쉬운가? 더욱 얼굴을 찡그리게 하는 건, 책을 내고자 하는 그 순수하지 못한 의도 때문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그런 욕망이 있을 수 있다. 자기 이름을 새긴 책을 세상에 내놓는 것. 우시가와라의 말처럼 그게 자신의 꿈이었을 경우, 우시가와라는 사기를 치는 동시에 필자의 꿈을 이루어주는 것이다. 그 안에 존재하는 과시욕이나 허영심이 없다면 더없이 좋은 꿈을 이루는 과정일 수도 있다. 마루에사 출판사의 조인트 프레스 출판 형식이나 정말 혹하게 말을 잘해서 그 사기가 성공하게 하는 우시가와라의 영업 태도를 나쁘게만 말할 수 없는 게, 씁쓸하게 보이는 이유가 그들의 그런 사기에 간절하게 걸려들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출판까지는 가능하지만, 누구도 사지 않는 책, 그런 책이 아무렇지도 않게 출판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워 아이러니다. 책을 내겠다고 마루에사를, 우시가와라를 찾는 사람들은 계속 몰려온다.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다. 자신의 이름을 건 책이 세상에 나오는 것, 그 책으로 하여금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

 

"세상에 책으로 자기과시욕을 충족시키려는 인간이 왜 그렇게 많은지, 새삼스레 깨달았습니다." (305페이지)

 

소설 속에서 우시가와라는 참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책을 내고자 하는 다양한 인생을 만나기도 하고 후반부에 가서는 기존의 작가라 불리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그가 만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의 다양함을 볼 때마다 인간이 가지는 욕망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다. 정말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면에는 나를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깊어 사기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익숙하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과시할 수 있는 도구로 책을 이용한다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알게 한다. 그런 일이 가능하게 하는 바탕에는, 책이 가지는 이미지가 작용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흔히 책을 읽는 모습을 보거나 책 이야기라도 하면 무슨 교양과 지성이 철철 넘쳐흐르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내 주변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뜻밖에 많더라.), 그런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모두가 그럴 것이라는 일반화의 오류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내가 경험하고 부딪혀본 사람 중에는(그중에 나도 포함한다.) 책을 읽었다고 해서, 책을 대한다고 해서 다 그렇지는 않더라는 것이다. 책을 통해 알게 되는 지식만큼 일상생활에서 쌓이는 지식도 어마어마할 수 있다. 현명하고 예의 있는 인간이 되는 데 있어서 책이 그 일부가 될 수는 있어도 ‘오직 책으로만’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동안 책이라는 것을 통해 쌓아온 선입견이나 이미지가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이 굳이 그 욕망의 분출로 책을 선택하는 이유를 만들어준다는 것은 여전히 안타까운 일이다. 우시가와라가 그들에게 꿈을 파는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도 그런 수요가 있으니 성립되는 말이다. 그들이 책을 통해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게 꿈이라면, 그 꿈을 이루게 해주는 사기 같은 책 출판 형식이 무슨 잘못이겠는가.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꿈(책을 출간하는 것)을 이루게 해준 것이 아닌가 말이다.

 

한편 우시가와라가 만났던 소설가들, 갈수록 소설을 읽지 않는 시대에서 한때 잘 나갔다는 소설가들이 취하는 태도는 근거 없는 거만함으로만 보였다. 나는 소설가니까, 내가 쓰는 글은 대단하니까, 내 글을 이해 못 하는 독자의 수준이 낮으니까... 그들의 소설이 팔리지 않는 이유가 단지 그것뿐일까.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되겠다던 허무맹랑했던 프리터와 우시가와라가 말하는 공통점은 소설을 읽지 않는, 소설을 굳이 읽을 필요성이 없는 요즘 세상의 흐름이었다. 대중들이 더는 소설을 읽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것은 많다. 영화나 드라마, 게임이나 엔터테인먼트, SNS, 여행, 스포츠 등등. 시간이 생기면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가. 굳이 소설이 아니어도 즐길 수 있는 게 너무 많은 게 요즘 세상이다. 그러니 재미없는 소설은 더욱 읽히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만의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만을 탓할 게 아니라, 흐르는 시간만큼 변하는 세상에서 글이 어떻게 유지되고 변화되어 그 시간과 같이 흘러야 하는지를 봐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물론 이 소설 속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소설로 만들어낸 허구가 작용할 것이다.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소설가들의 태도가 만들어진 설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저 소설이니까 만들어진 설정이라고만 하기에는 너무 와 닿는 모습이라 더욱 귀 기울이게 한다. 팔리는 글을 쓴다는 게 자존심의 문제는 아닐 것으로 생각하고 싶어지는 건, 비단 나라는 독자 한 명의 마음일 뿐일까.

 

누구나 주목받고 싶어 하는 세상으로 보이는, 책을 읽는 사람은 없어도 책을 내고 싶은 사람은 많아진다는 설정이 우시가와라의 영업을 가능하게 했다.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는 게 반드시 옳은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욕망을 분출하는 모습이 서늘하게 보이는 소설이다. 그들이 그 욕망을 분출할 수 있는 도구로 선택한 것이 점점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라지는 책이었다. 책이 그들의 존재감을 부여하고, 자신을 과시할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모국어만 쓸 줄 알면 글이라는 것은 아무나 다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소설 속의 대화가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해서 유명해질 수는 있다. 그 유명세의 시간이 짧을 뿐이지만... 소설에서 나오는 모든 에피소드가 오늘날의 출판 시장의 현주소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적 허영에 몰입하는 대중의 태도를 지적하는 모습이 날카롭다. 많은 것이 달라져야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세계 중의 하나가 출판계가 아닐까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부장님. 전부터 한 가지 의문이 있었는데요. 좋은 문장이란 어떤 겁니까?"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문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229페이지)

 

내가 책이나 독자, 출판시장에 대해 생각했던 것이 이 책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어서 읽는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소설이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했던 것이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에 공감을 본 것 같다. 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세계에서 봐야 할 진짜 모습은 바로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4-11-27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27 15: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토이 - 정규 7집 Da Capo
토이 (Toy) 노래 / 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Stone Music Ent.)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만나는 토이. 두근두근 콩닥콩닥... 성시경, 이적, 김동률의 목소리까지 같이 들을 수 있다니... 어떻게 그냥 지나갈 수가 있겠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21 | 122 | 123 | 12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