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와 빵칼
청예 지음 / 허블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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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젠가 시작된 이 바람은, 다른 사람에게 거절을 못 해서 속 끓이던 게 쌓이고 쌓여 시작된 거다. 지금은 다를까? 그때보다 나아지긴 했으나 내 성에 차지 않는다. 그래서 여전히 바람에 남아있다. 나는 지금도 바란다. 거절 잘하는, 아니 거절해도 되는 상황에 미안함을 떠올리지 않고 거절을 말을 서슴없이 뱉고 싶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아마도 자기 검열, 자기 통제, 타인을 배려한다는 도덕적인 나를 만들어가려고 그런 건 아닐까. , 이유가 한 가지는 아닐 테다. 중요한 건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런 자기 통제 속에서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미치거나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고 말 거라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한 번에 모든 걸 되돌릴 수도 없지 않은가.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거절도 잘 하고,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뭔가에 이끌리듯 타인의 불행이나 악한 장면에 웃음이 나기도 하는 사람이 되는 거 말이다.


오영아. 27세의 유치원 교사. 유치원에 새로 온 아이의 폭력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읽으면서 아이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의 접근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도는, 화를 내는 지점도 납득이 안 되는 이 아이의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아이의 하원까지 도와야 했다. 그녀는 아이를 엄마가 운영하는 빵집에 인계하고 나서도 하고 나서도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한다. 아이의 하원을 시켜주는 건 자기 업무가 아니라고, 이렇게 계속해 줄 수는 없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비싸기만 한 그 빵집의 빵까지 사서 나온다. 한없이 착하고 너그러운, 업무가 아닌데도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 개인적인 하원까지 해주는 교사로 그녀의 이미지를 만든다.


그녀의 친구는 또 어떤가. 지구를 살리는 많은 일에 동참해야 한다고, 지구 저편에서 굶어 죽는 아이들에게 후원금을 보내야 한다고, 나쁜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자기가 하는 말과 행동의 옳음을 당연하게 인정해 줘야 등 정말 피곤한 존재이다. 그녀는 친구에게조차 부정적인 말을, 거절의 말을 하지 못한다. 속으로는 많은 생각을 하지만, 정작 친구에게 꺼내는 말은 모두 긍정의 대답이다. 네 말이 맞지, 네가 옳아, 그렇지, 등등. 하아. 이렇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진짜 궁금하다.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니 끝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말해 뭐해. 화병이 나서 쌓이고 쌓이다가 죽었겠지. 그런데도 우리는 오영아가 보여준 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살아가는 순간을 종종 발견한다. 그러면 안 되는 상황에 자주 놓이고, 자기 마음 표현 다 하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우선하다 보니 참게 된다. 이 정도쯤이야 하는 마음인 걸까. 어느 순간에나 있는 자기 검열의 순간을 적응한 걸까. 타인과 살아가는 세상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당연함일까. 그녀의 애인도 그녀에게 요구하는 건 친구와 다를 바 없었다.


어느 날, 그녀는 자기 일상에서 웃음이 사라진 걸 알아차린다. 주변을 살피며 억지로 웃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사과하던 그녀는 그렇게 된 이유를 찾다가, 상담 센터를 찾는다. 그녀가 당연한 것처럼 여기던 일상의 습관을 바꿔줄 곳. 뇌 시술을 하는 곳으로, 그녀는 정서 조절시술을 받는다. 그동안 참아왔던 자기 통제의 선을 끊을 방법이었다. 이 방법이 적용되는 기간은 4주다. 그러니 뭔가 잘못되었어도 4주 후면 원래의 자기 모습으로 돌아온다고 하니, 일탈 같은 변화를 겪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변했을까? 변했다. 그동안의 오영아는 떠오르지 않을 만큼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억눌린 욕망이 그녀의 입으로 튀어나왔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의 싸움을 방관했다. 친구가 하는 말에 자기 생각을 서슴없이 꺼내며 지적했다. 이런 행동은 평소 오영아가 보이기 싫었던, 주변 사람을 잃기 싫어서 선택한 방식과 완전히 달랐다. 파괴적인 장면들에 웃음이 났고, 속으로 욕했다. 자기 생각이 맞는다고 피력하고, 그동안 억눌렀던 모든 감정이 그녀의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때로는 폭력적이기까지 한 그녀의 모습에 뭔가 잘못된 것을 느끼고 상담 센터를 찾아가 이유를 물었으나, 시술의 효력이 끝나는 때만 기다리라는 답변을 받았다. 이대로 계속 살아가야 한다고?


한편으로는 시원했다. 그동안 살아왔던 방식이 그녀를 좋은 사람, 착한 사람으로 포장해 주었는지는 몰라도, 그녀의 안에서 꿈틀대던 반박의 감정들은 이제야 세상을 만난 것 같았다. 이 소설을 읽는 독자가 느끼는 것도 그녀와 비슷한 해방감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현실의 우리는 여전히, 지금도 자기 검열을 하면서 살아가고 말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실제로 내 주변의 몇몇은 기아에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후원한다. 한 달에 커피 서너 잔만 안 마셔도 가능한 일이라고, 나에게도 이 후원에 동참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별로 내키지 않아서 따로 답변하지 않았는데, 이 후원을 하지 않으면 나는 나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나는 계속 내가 마시던 커피를 마시고 싶고, 만약에 커피를 안 마신다면 그 돈으로 내가 필요한 것을 더 챙기고 싶은데? 결과로만 보면 나는 대답하지 않았고, 여전히 후원 활동도 하지 않고 있으며, 계속 마시던 커피도 마시고 있다. 그런데, 그때 이후로 나는 그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무심코 커피 한 잔씩 마실 때마다,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싶은 마음도 사라지지 않았다. 누군가의 정의가 상대방의 정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뱉은 말에, 나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을 눌러 담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오영아처럼 묵은 감정을 어느 순간에 폭발하듯 쏟아낼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


여러 관계를 맺고 유지하면서 때로는 나에게 필요한 상황에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기에, 관계를 해치는 태도는 지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또 다른 방에서 쌓이고 있는 것들을 돌보지 않는 것도 문제가 된다. 소설 속 오영아가 보여준 모습이 그랬다. 그녀가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고 고마운 관계들 속에서 지켜야 하는 선을 만들고 살아가던 그녀가, 어느 방 하나에 쌓아둔 감정이 쏟아져 문이 열렸을 때 보인 행동에 무서워지기까지 했다. 그래도 한 번은 그녀가 받은 전두엽 시술을 받고, 내가 억눌렀던 나로 살아가는 시간을 맛보고 싶기도 하다. 소화제 마시고 체한 게 다 내려가는 듯한 개운함이 있지 않을까. 어차피 4주 후에는 원래의 나로 돌아온다고 하니, 4주의 시간 동안 경험했던 것을 근거로 새롭게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설정이 좀 과장되어 보일 수도 있지만, 읽다 보니 푹 빠져든다. 뭐야 이거,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였어? 매 순간 양보하고 절제하며 자기 통제를 하듯 살아가는 게 꼭 당연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거였네. 적당히 선을 지키며 살아가도 되는데, 왜 자꾸 모범을 보이고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착각이 심어졌던 걸까. 이 세상에서 살아가며 버티려다 보니 저절로 쌓인 내공이었던 건가. 어쨌든 오영아가 시술 후에 보인 모습들에 속이 시원해진 건 사실이다. 그녀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더라도 조금 변한 태도로 살아가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는 건, 그녀가 친구에게 쏟아내던 말들 중에 있다. 나는 너를 존중할 수 있다. 단 네가 나를 존중할 때만.”(124페이지) 그랬다. 이 말 한마디면 살아가는 동안 맺는 관계의 기준, 내가 보여야 할 태도,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선이 만들어질 것 같다. 나를 존중하는 이들에게만 양보와 배려를 보여주면 된다. 그걸 알아가는 데 어떤 방법이 필요하다면, 오영아가 받은 시술도 한번 생각해 볼 만하다.


소설의 끝부분에 다다르면, 반전도 있다. 읽다 보니 어느 순간 ?’하는 느낌이 오는데, 오영아가 시술의 효과를 보여주는 최고점이 아닐까 싶다. 먹을 때는 고통스럽고 불편하지만 다 쏟아내고 보니 아무것도 남지 않은 후련함을 주는 게, 꼭 대장내시경 약 먹은 것 같다. 안 그래도 요즘 화장실 가는 게 불편해졌는데, 생각난 김에 대장 청소 한번 해야겠다.


#오렌지와빵칼 #청예 #허블 #소설 #한국소설 #반전소설 ##책추천

#뚫어뻥도이것보다시원하게뚫리지는않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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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조
정해연 지음 / 엘릭시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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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가기 전에 읽어보고 싶어서, 손에 땀이 차는 것도 이겨내며 페이지를 넘겼다. 정해연이라는 이름으로 일단은 읽어 봐도 좋을 목록에 있었고, 블랙 코미디가 가미되었다고 하니 마냥 진지하게만 읽지 않아도 될 듯하여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늘 그랬듯이 페이지는 술술 넘어가고, 두 주인공의 허무맹랑한 한탕 계획에 처음부터 어이가 없는 것도 재미있다. 또 언제나 그렇듯이, 인간 함부로 믿으면 안 된다는 메시지도 잘 전달된다. 거기에 사람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고쳐서 쓴다는 말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살아가야겠다는 교훈까지 얻었다.


사기꾼 김형래와 도둑 나형조는 교도소 같은 방에서 만난다. 처음 만났을 때의 힘겨루기는 의미 없었고, 이 둘은 출소 후에 밖에서 만나 한탕을 하자고 계획한다. 서로의 다른 생각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김형래는 대도(?) 나형조를 믿고 따라야겠다고, 나형조는 큰 사기를 치고 들어왔다는 김형래를 의지하기로 했다. 출소하는 날, 나형조는 대포차를 앞세워 김형래를 마중 나왔고, 둘은 그 순간 대업을 이루는 행동을 시작한다.


재개발로 벼락부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로 간 두 사람. 동네를 염탐하던 중 한 노인과 접촉 사고가 나고, 노인을 사고 처리를 요구하는 대신에 다른 것을 원한다. 7년 전에 집을 나가 소식이 끊긴 아들과 손녀를 만나게 해달라고. 무엇 때문인지 아들이 갑자기 집을 나갔고, 그 후로 아버지를 다시 보지 않겠다면서 소식을 끊었다고 한다. 김형래와 나형조는 노인에게 착수금을 받고, 노인의 아들과 손녀를 데리고 왔을 때 잔금까지 받기로 하면서 이 일을 시작한다.


이 두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에 갔었다는 이력에서, 둘 다 접근 불가한 범죄자인 줄 알았다. 얼마나 크게 사기를 쳤기에, 어떤 도둑질을 했기에 수감되기에 이르렀던 건지 궁금해질 즈음, 두 사람이 노인의 아들을 찾는 과정에서 보이는 잔머리는 뭔가 계획이 있어 보였다. 동시에 뭔가 어리바리하면서 서로의 경력(?)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을 때는 여기 덤앤더머가 또 있구나 싶었다. 어쨌든, 이 일을 마무리해야 노인에게 나머지 돈을 받을 수 있으니, 최선을 다해 노인의 아들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정말, 노인의 아들을 찾는다.


아버지가 폭력을 행사하여 견디다 못한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그런 어머니와 아버지를 원망하면서 성장한 것도 모자라서, 이혼 후 아버지에게 도움을 받으러 갔던 아들은 또 한 번 아버지에게 절망한 나머지 그 길로 어린 딸을 데리고 나와 버린 게 이 부자 사이의 역사다. 그런 아버지가 찾는다고 하니 선뜻 아버지를 만나겠다고 하는 아들이 어디 있겠는가. 노인은 이들과 수시로 연락하면서 아들을 찾았는지 물었고, 하루라도 빨리 자기 집으로 데리고 오라면서 소리치곤 했다. ‘, 이 아버지가 정신을 차렸구나. 과거의 자기 잘못을 반성하고 애타게 아들을 찾는 마음이 급해졌구나. 얼마나 그리웠을까. 이제라도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 갚으면서 살면 되겠구나.’ ,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책을 읽는 독자 대부분 나처럼 생각하지 않았을까?


물론 이 소설은 평범한 드라마가 아니었으니, 추리소설다운 반전이 있다. 아들 찾아달라고 의뢰했던 노인 박청만은 그 성정을 버리지 못하고 그 나이까지 늙어버린 인간이었고,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았던 아들 박수철은 그가 바라던 게 따로 있었다. 안다. 읽으면서 저절로 알 수 있다. 우리는 각자 원하는 것을 이루며 살아가고 싶어 하는 인간이니까. 각자의 사정에 절실히 필요한 것들이 있다. 그걸 찾아내고 얻으려고 발버둥 치면서 살아가다 보니, 이 소설의 결말 같은 장면도 마주하게 된다. 누굴 탓하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업보 같은 결말이었으니. 그 과정을 보고 있으면 오히려 김형래나 나형조가 착한 사람으로 보일 정도였다. 이들은 그저 소박(?)하게 한탕하고 집으로 돌아가 새 인생 꾸리려는 마음이라도 있지 않았나. 근데 역시, 어떻게 해도 안 되는 인간이 있긴 있나 보다.


보고 또 봐도, 박청만 캐릭터가 진짜 압권이다. 평생 그렇게 살아왔을 거라는 의심이 저절로 들었고, 사람 쉽게 안 변한다는 말을 증명하는 인물이었으며, 사기꾼 김형래가 스승 삼아야 하는 거 아니었나 싶을 정도였다. 이들이 잔금을 받아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읽다가, 뭔가 불길한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더니, 결국은...


완벽하게 한탕 해주기를 바랐던 두 사람은 독자의 기대에 한 번씩 바람 빠지게 했고, 그게 오히려 이 소설을 더 편하고 재밌게 읽게 하는 요소인 듯하다. 추리소설이라고 해서 목이 뻣뻣해지게 긴장만 하고 읽을 필요는 없지 않나. 이들의 행보를 따라가며 저절로 빠져 읽게 되는 가독성도 좋고, 뒤늦게 화해하고 잘 살아가길 바라는 한 가족의 미래를 그리기도 하면서, 인간의 밑바닥을 보는 기분에 씁쓸해지는, 여러 감정을 한꺼번에 느끼게 된다. 그래도 교훈은 역시, 인간 쉽게 안 변한다는 진리, 사람 고쳐서 쓰기 어렵다는 가르침, 누구나 자기 욕망을 어느 정도 숨기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근데 정말 궁금하긴 하다. 인간은 원래 이런 건가.


영화로 만들어져도 재밌을 것 같다.



#2인조 #정해연 #엘릭시르 #문학동네 #소설 #추리소설 #한국소설 #장르소설

##책추천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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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죽은 밤에
아마네 료 지음, 고은하 옮김 / 모로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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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라고, 노력하면 다 된다고. 삶의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이뤄내려고 애쓰다 보면 간절히 바라던 어느 지점에 다다라 있을 거라고, 거기가 바로 우리 행복의 완성 지점이라고 믿었던 적이 있다. 그런 줄 알았다. 한때는 긍정의 힘을 주는 많은 말을 믿고 따랐다.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건, 세상의 당연한 이치니까 말이다. 특히 가진 게 없고 가난이 발목 잡는 사람에게는 딱히 노력 말고는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다. 그러니 열심히 달리는 수밖에. 그런 믿음에도 어느 순간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말 그러면 될까? 그렇게 계속 노력하다 보면 다 이뤄질까?


열네 살 소녀 도노 네가는 친구인 가스가이 노조미를 죽인 혐의로 체포된다. 노조미가 목을 매고 있었는데, 친구를 살리려고 의자를 치우려고 했다고 한다.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네가는 거듭 자기가 노조미를 죽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조미를 죽인 이유만큼은 침묵했다. 누군가를 죽였다면 살인의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데, 그 부분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네가의 말이 진실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형사 마카베와 나카타는 이 사건 해결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로, 네가가 왜 친구를 죽였는지 이유를 찾으러 다닌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죽은 소녀와 범인으로 몰린 소녀의 또 다른 관계를 알게 되면서 혼란에 빠진다. 거기에 이 소녀들을 둘러싼 환경, 사회적인 책임까지 물어야 할 지경에 다다른다. 정말 네가는 노조미를 죽였을까? 형사들은 네가의 살인 동기를 찾았을까?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궁금증만 늘어갔다. 그러다가, 소설은 우리가 관심 두지 못한 사회적 보호의 사각지대와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일지 묻고 있었다.


이 소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시간이 떠올랐다. 자라면서 부유했던 적은 없다. 오히려 가난했다고 하는 게 더 어울리는 환경이었다. 다행히 부모의 책임을 다하려는 엄마의 보호 아래 별 탈 없이 성장해 왔다. 당연한 듯 학교에 다니고 밥벌이도 하면서, 남들(?)처럼 그냥 비슷하게 살아왔다. 지금도 여유롭지는 않다. 갚아야 할 대출금도 있다. 생각해 보니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닌데, 뭐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는 모양이 크게 변한 것도 없는 듯하다. 주변의 많은 사람도 다 비슷하게 살아간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말이다. 내가 생각하던 평범한 인생이나 남들처럼 살아간다고 하는 게, 때로는 잘못된 표현일 수도 있다는 것을 요즘에 더 자주 느끼고 있다.


왜 나는 저 아이들과 함께 있을 수 없는 거지?

아르바이트가 끝난 뒤 불이 꺼진 이온과 엘미로드, 이토요카도 같은 쇼핑몰들을 올려다보며 늘 생각했다. 아빠가 양육비를 줬다면. 엄마가 남자를 무서워하지 않았다면.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우리를 돌봐줬다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만약을 생각해 봤지만, 그렇다고 현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139페이지)


살인의 이유를 찾으려던 접근은, 왜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는지 드러나면서 독자의 마음을 후벼 판다. 꿈을 꾸고, 오늘과 다른 내일을 만들려고 그렇게나 애쓰던 소녀는 잔인한 현실 앞에서 무너져 내린다. 그 밤, 희망은 죽었고, 소녀도 죽었다.


정말 아주 굳게 결심하고 또 믿었는데.

오늘 하루 만에 모든 게 다 끝나버렸어.

희망은 어디에도 없었어.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 게 다 환상이었던 거야. (320페이지)


누군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 소녀들의 현실이 소설 속에서 과장하여 그려낸 배경이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이런 가난을 본 적이 없거나, 국가의 생활보호를 받으면서 사는 걸 보고 무책임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혹시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있다면, 조심스럽지만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해도 해도 안 되는 게 있더라고, 사회적 낙인으로 더 심한 자존감 하락을 맛보기도 한다고, 혼자서 애쓴다고 다 해결되는 건 아니더라고 말이다. 정말 괜찮은 인생을 살겠다고 다짐하게 했던 린코 언니가 변한 것도, 빈곤을 경험한 하세베가 부모의 마음만 앞세우게 된 것도, 같이 미래를 꿈꾸던 노조미가 그런 선택을 한 것도, 자녀를 잘 키워야 하는 책임을 외면한 부모가 무기력만 앞세우는 것도. 어느 한 사람 어느 한 가지 탓만 할 수는 없던 게, 현실이었다.


상대방을 알고 싶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역지사지라고 생각한다. 친구를 죽였다고 하면서도 이유를 말하지 않는 소녀의 마음에 접근하기 위한 나카타의 상상 역시, 사람 마음에 닿아보려고 노력하는 역지사지의 이해 방법이었다. 형사 마카베의 가난한 성장 배경은 소녀들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한층 더 가까이 가게 했고, 형사 나카타가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 반복하는 상상의 기법은 이 소녀들의 문제에 사회와 주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고 있었다. 나 역시 비슷한 시간을 지나왔고, 국가의 생활보호를 받는 가족도 있다. 그 안에 네가노조미와 같은 시간을 겪는 조카도 있다. 몇 달 전에 사회복지 관련 실습했던, 지역아동센터의 몇몇 아이들이 저절로 떠오르면서 더 현실에 와닿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건 소설 속 배경에서 머무는 문제가 아니라, 오랜 시간 우리가 같이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인 거다.


사건이 일어나고, 사건 해결을 위한 형사들의 고군분투, 탐문 수사에서 드러나는 진실들이 하나둘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추리 소설을 읽는 재미도 놓지 않는다. 단서가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사건의 숨겨졌던 장면을 추리하고 범인을 색출하기 위한 독자의 시선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도 흥미롭다. 그러면서 우리가 함께 봐야 할 문제, 독자에게 함께 고민해 보자고 던지는 메시지 또한 놓지 않는다. ‘나카타 시리즈의 첫 작품이라고 하는데, 곧 만나고 싶은 이 시리즈의 다른 작품도 기대된다.


@morobooks #희망이죽은밤에 #아마네료 #모로북스 #모로출판사

#일본소설 #추리소설 #소설 ##책추천 #책리뷰 #신간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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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my
강진아 지음 / 북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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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많은 감정을 갖고 사는 딸은 비단 화자인 뿐만은 아니다. 나 역시 엄마에게 빚진 마음으로, 자식이니까 당연히 잘 해야 하는 것에 더해 죄책감과 미안함까지 더해진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가정마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세상 모든 엄마와 딸이 하나로 정해진 관계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화자가 보여준 엄마를 향한 감정은 단 하나다. 엄마의 눈빛 하나로 모든 상황이 정리된다.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묻고 싶은 게 있어도, 엄마의 고단함의 원인이 자신이라고 믿고, 엄마보다 불쌍한 인생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여기며 살았다.


의 엄마는 자식을 고통 속에 던져 넣으면서도 자신이 힘들었다는 토로만 반복한다. 애가 징징거리니까 일하는 데 방해된다는 이유로, 풀리지 않는 매듭으로 묶어 놓고 일하면서, 자식에 대한 미안함이 아니라 엄마 자신이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 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식의 두 손을 묶어놓고, 엄마가 일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게 했을까 싶지만, 자신의 상황이 힘들었던 것과 자식을 그렇게 대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은 공존하는 거 아니었나? 그런 엄마에게 가스라이팅 당하듯 성장해 온 는 엄마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엄마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불법도 저지르게 되지만, 그것마저 피해를 당한 이들에게 미안함을 표현하지 않는다. 보면서 참 강심장이구나 했는데, 이게 다 엄마에게 강하게 훈련(?)받으며 성장한 덕분인가 싶기도 하더라. 어쨌든, 좀 특이한 모녀관계인가 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이야기는 살인 사건이 등장하면서 좀 더 묘하게 변한다.


모범생이 되고 싶었으나 실패한 는 모범생 연기를 하며 지낸다. 엄마는 시장의 형제축산에서 일하고, ‘는 사장님의 딸 변민희와 같은 반이 된다. 어느 날 미화부장의 빨간색 mymy가 도난당하고, ‘는 변민희가 미화부장의 책상 서랍에 mymy를 돌려놓는 것을 본다. , 범인이 변민희였구나. 그날 이후로 실종된 변민희의 수색 작업은 난항을 겪지만, ‘는 이날의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이제 변민희 실종 사건은 살인사건인지 실종 사건인지 알 수 없는 상태가 계속되면서 15년이 흐른 후, 갑자기 변민희의 시체가 발견된다.


변민희가 실종되었을 때부터 몇몇 사람이 용의자로 지목되고 헛소문에 시달리면서 인생이 피폐해지지만, ‘는 그러한 장면을 보고 있으면서도 그날의 이야기를 하지 않은 채로 살아간다. 그날의 일을 굳이 떠올릴 이유도 없었다. 학교에 다니고 취직하고, 밥벌이에 정신없던 와중에 엄마의 억지스러운 비위도 맞추며 살아가야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 사건이 일어났던 그날의 상황을 맞닥뜨린다.


그래서 변민희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았냐고? 이 소설 읽다 보니, 갑자기 일어난 살인사건이 흥미롭고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추리소설처럼 느껴질 것도 같은데, 사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건 범인이 누군지 밝혀내는 게 중요하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갈등하는 것 같으면서도 같은 편으로 살아가는 이 모녀의 모습에 집중하며 읽게 된다. ‘는 엄마를 미워하는 듯하면서도 걱정하고, 엄마 때문에 불법도 저지른다. 엄마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느라 정작 자신이 원하는 건 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엄마 역시 딸 하나 잘 키우겠다고 발버둥 치면서 살았다. 이게 사기인지 도움인지 판단할 생각도 없이 뛰어들고 보니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삶이 되었다. 그때마다 딸에게 요구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가기 위해 딸에게 징징거렸다. 이거 뭔가 바뀐 것 같다. 그 옛날, 일하는 데 방해된다고 징징거리던 딸의 손을 묶어놓았던 엄마였는데, 이제는 딸이 엄마의 징징거림을 듣고 있다. 그리고 오래전, 어느 날의 일을 각자의 방식으로 처리하려고 한다. 이 모녀가 말이다.


아무리 뒤져도 묻은 자리를 찾을 수가 있어야지. 그때 묻는 게 아니었어. 귀찮아도 갈았어야 했는데.”(233페이지)


어떤 잔인함은 너무 평온하게 표현되어 더 공포스럽다. 각자의 형편은 각자가 헤쳐 나가야 할 일이다. 오늘의 세상이 그렇다. 누군가의 도움은 고맙기도 하지만, 그 도움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 누구는 오롯이 내가 책임져야 할 세상과 사람을 책임져가면서 살아갔을 뿐이다. 그러한 삶의 과정이 전쟁 같아서, 치열하게 살아남기 위한 모습이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모든 행동이 이해될 수 있나? 그동안 일어났던 많은 일이, 그저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던 일이었다고 온몸으로 말하는 이들의 모습에, 그저 무서웠다. 그렇게 하자고 서로 약속했던 것도 아닌데, 너무 익숙하고 당연하게 각자의 몫을 해내면서 한 사람의 죽음을 묻어버리는 일이 이렇게 쉬웠나 싶었다. 그 일로 누군가는 꿈에서 멀어지고 자식을 잃고 살아가는 고통에 빠졌는데,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마치 원래 없던 일이었다는 것처럼.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앞으로도 그들은 이 세상에서, 어떤 상황에서든 피해자라고 외치면서 살아갈 것만 같다. 누가 일부러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터득한 생존 방식이 이런 거라니, 좀 끔찍하긴 하다. 그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펼쳐지고 있으니, 더 섬뜩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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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만의 방
김그래 지음 / 유유히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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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엄마가 50대의 나이에 혼자 베트남으로 떠났다는 말이 왜 이렇게 부러운지 모르겠다. 물론 저자 엄마의 베트남 생활이 호사스러운 휴가처럼 떠난 게 아니었기에, 낯선 땅에서 잘 통하지도 않는 말로 소통하면서 생계를 위해 또 달릴 것을 알기에 마냥 부러워할 일이 아닌데도, 부러웠다. 적어도 저자의 엄마는, 자기 두 다리로 비행기를 타고 가서,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누군가의 아무개가 아니라, 엄마 이름 세 글자로 사는 인생을 찾게 된 거잖아.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익숙했던 생활에서 전혀 다른 환경으로 던져진 것처럼 보였지만, 저자의 엄마는 그동안 알던 엄마가 아니었다. 가슴 속에 품어왔던 간절한 삶이, 자기만의 방을 가진 자의 힘이 느껴졌다.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건, 작가만이 아니었다.


8남매 중 다섯째 딸로 태어나 어렸을 적부터 돈을 벌었고, 이른 나이에 자기 가족을 이루면서 삶은 더 치열해졌다. 자기 가족이 생긴 만큼 책임감도 더 커졌다. 한평생을 치열하게, 부지런하게 살아온 저자의 엄마가 베트남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되는 건 아니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또 열심히 부지런하게 살아갈 테니까. 다만,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떠밀려 간 게 아닐까 하는 미안함이 앞섰다. 돈 때문에 간 거였다. 더 벌어야 했고, 더 나이 들기 전에 벌어야 했다. 엄마만의 인생이 시작되는 순간에 응원도 보냈다. 남은 가족은 괜찮다고, 엄마의 시작을 응원한다고 말했다. 엄마 자신만 걱정하는 삶을 바랐다. 오롯이 혼자인 시간, 자기만의 방에서 누려보라고.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많은 걱정으로 시작했던 엄마의 베트남 생활이 5년이 넘어간다. 엄마는 잘 적응했고, 그곳 사람들과 잘 지냈다. 한국에서도 인정받았던 엄마의 일솜씨는 어딜 가지도 않았다. 엄마를 걱정했던 건 기우였다. 엄마는 자기가 짊어지고 있던 많은 역할에서 벗어나, 엄마만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멋있어 보였다. 그 나이에 열심히 자기 삶을 일구며 사는 사람. 낯선 땅이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처럼 편하게 여겨지는 일상을 사는 사람. 저자가 걱정했던 게 무색할 만큼 저자의 엄마는 잘 적응하고, 즐기면서 살고 있었다.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오겠지만, 지금 그 삶이 엄마에게 잘 맞는 옷처럼 보여서 어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저절로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그동안 저자가 알던 엄마가 전부는 아니었음을, 엄마가 속해 있던 환경이 만든 슬픔을 지우고 바라보니 엄마가 다시 보인다는 것을. 혼자여서 힘든 일들보다 혼자서 누리는 행복에 기뻐하는 엄마의 표정만을 눈에 담는다. 엄마와 딸, 가족으로 엮이고 서로의 인생에 또 연결 고리를 만들면서 살아가던 것이 당연해 보였는데, 이제는 서로 독립된 존재로 인식하며 살아갈 필요도 있다는 걸 알았다. 엄마의 삶과 저자의 삶. 가족으로 살아왔기에 못 보던 것들을 이렇게 확인하면서, 가족이면서 서로 다른 존재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저자 엄마의 삶을 나도 응원한다.


엄마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자식들 결혼해서 다 나가면, 자기 혼자 발 뻗고 자면서 속 시원하게 살겠다고. 엄마에게 오랫동안 들어왔던 말이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뜨끔했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자식들 키우고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는 역할이 아주 고단했을 것이다. 단칸방에서 여덟 식구가 나란히 놓아둔 젓가락처럼 잠들기도 했다. 사는 집의 주방 한쪽을 개조해서 통닭을 튀기기도 했다. 시장에 가게 한 칸 임대해서 밥을 팔기도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우리를 먹이고 키우고 가르쳤다. 아무리 각자 벌어서 결혼한다고 해도, 엄마는 자기의 최선을 다해 부모의 역할도 해야 했다. 여동생이 결혼하면서 엄마의 모든 경제활동은 멈췄다. 고단하다고 했다. 돈은 없지만 굶어 죽지는 않을 것 같으니,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 가게를 정리한 돈으로 엄마는 여동생의 결혼 준비를 도왔다. 일을 안 하면 좀 편할까 싶었는데, 아버지가 환자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엄마는 또 몇 년을 그렇게 고생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제는 여행도 다니면서 자식들 집에도 찾아다니고 그러면서 살 줄 알았는데, 이제는 엄마가 아프기 시작했다. 엄마만의 방은커녕, 엄마만의 시간도 없이 살아온 날들이 보상받을 기회가, 없었다.



어느 순간 엄마와 나의 자리가 바뀌어 있었다. 앞에서 나를 이끌고 다녔던 엄마는 이제 나의 옆에서, 뒤에서 조용히 나를 따른다. 누군가의 보호자, 누군가의 대리인, 누군가의 의지가 되어버린, 요즘 나의 생활이 그렇다. 특히 결혼하고 따로 살면서 더 또렷이 보인다. 내가 알던 엄마와 다른 모습을 보게 되면서 적잖이 당황하곤 한다. 엄마는 늘 그 자리에서 그 모습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지켜주는 슈퍼맨처럼 보였는데, 그런 엄마가 지금은 자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자기 몸이 자기 말을 듣지 않는 날들을 보내면서,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는 것처럼 여행 계획을 세웠다가도 멈추기를 여러 번이다. 집 근처 10분 거리 마트에 가는 것도 무서워한다. 불편한 다리로 갔다가 집에 돌아오지 못할까 봐. 겁이 많아졌다고, 많은 게 무섭다고 말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지켜야 할 것도 많고, 포기해야 할 것도 많아지는 시간을 살아오면서 단단해졌을 것 같은데, 이제 자기 자신만 지키면 되는데 그것도 어려워졌다. 당당하고 힘이 셌던 엄마는, 어디로 간 걸까. 이런 엄마를 지켜보고 있는 내가, 저자 엄마의 도전과 용기가 부럽지 않을 수가 없잖아...


세상 많은 엄마가, 엄마, , 아내 등 많은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겠지만, 놓치지 않고 살아가야 할 이름 하나. 그것을 지키려는 다짐을 저자가 들려주고 있다. 아무개라는 자기 이름, 자기 시간, 자기만의 방을 갖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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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 가슴 속 말들이 끝도 없이 밀고 나온다. 다시 밀어 넣어야 하는데, 계속 튀어나오려고 해서,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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