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지금 하는 일을 마무리한다. 석 달만 하려고 했던 일을 어쩌다 보니 열 달이나 하게 되었다. 힘들기도 했지만, 좋은 사람들 만나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도 했다. 내가 원한다면 계속 일할 수도 있는데, 다른 것을 배워보고 싶어서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말하고 보니 가슴 속이 뭔가 횅하다. 내가 나를 더 존중해주고 싶어서, 좀 더 길게 일할 수 있기를 원하기에 지금 일은 여기에서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5월에 등록했던 학원 일정이 늦어져서 이제 시작하는 건데, 막상 학원비까지 결제하고 보니, 하기가 싫어지는 이 마음은 뭔지 모르겠다. 처음 등록할 때의 간절한 마음은 어딜 가고, 불안이 가득한 내 마음은 또 갈팡질팡. 사실, 겁이 난다. 괜히 시간 들여 돈 들여서 했는데, 아무것도 남은 게 없는 상태로, 시작하기 전과 다를 바 없는 상황으로 돌아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다. , 이거 괜찮은 건가?


임지이 작가의 <나는 더 좋은 곳으로 가고 있어요>를 읽고 있다. 나이 마흔에 회사원에서 만화가로 살아가는 게 쉬울까? 묻고 보니 좀 그렇다. 쉽지 않을 거라는 걸, 나도 당신도 이미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런데도 굳이 한 번 더 묻고 싶었던 건, 내 마음과 너무 닮은 것 같아서 말이다. 뭔가를 다시 시도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지만, 그런 말이 선뜻 와닿지 않는다. 현실이 그 나이를 고민하게 만들어서, 어떤 변화나 다른 시작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는 걸 너무 잘 안다. 특히 경제적인 문제와 시간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많은 고민이 생길 거다. 시간과 비용을 고민해야 하고, 그 후에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 또 고민하게 되고, 혹시나 이 도전이 무모했다고 후회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럽고. 그럼 또 그렇겠지. 시작하지 않고, 도전하지 않고 어떻게 결과를 알 수 있느냐고, 어떻게 얻을 수 있느냐고 말이다. 그렇구나. 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거니까. 해봐야만 하는 거구나. 그런데도 자꾸 걱정되는 걸 어쩌란 말이냐.


일 낮 시간을 가진 사람들이 부러웠단다. 그럴 수밖에. 아파서 병원에만 가더라도 반차나 월차든 내고 가야 하니, 평일 시간을 내 맘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부러운 건 당연하다.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서점으로 외근 나갈 때, 서점이나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는 말에, 이상하게 가슴 한쪽이 꾹 누른 것처럼 아팠다. 많은 사람이 비슷하게 갖고 싶은 바람 같아서 공감했다. 나 역시 꽤 오랫동안 평일 낮 시간을 즐기며 살아왔는데, 지나고 보니 그 시간이 그렇게 귀하고 고마웠다는 걸 알겠더라. 월차를 내더라도, 이게 하루를 쉬면서 해야 할 만한 일인지, 혹시 한두 시간 잠깐 나갔다가 올 수는 없는지 계산하게 된다. 그러니 평일 하루의 시간은 계산하고 또 계산해가면서 결정해야 할 문제가 되어버렸다. 그런 날이 저자에게 갑자기 생겼다. 회사에서 잘려서. ㅠㅠ 저자가 바란 건 이런 반전이 아니었는데 말이야. 갑작스러운 일에 얼마나 걱정이 심했으면 일주일 만에 8kg이 빠졌을까.


이런 상황에 우리는 무슨 결정을 하게 될까. 빨리 다른 직장을 구해야지, 아니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느긋하게 이 기회(?)를 누리고 있을까. 겉으로는 태연해도 마음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또 다른 기회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저자가 당장 취직보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고 했던 것을 응원하고 싶은 이유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밥벌이를 하게 된다면 좋은 결과 아닌가? 현실이 녹록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공장에서 나사도 박아보고, 동네 돌면서 빈 병 주워 팔기도 하면서, 어쩌다 엄마 돈도 훔치기도 했지만, 행복했던 시간이었다고 한다. 평일 낮 시간을 얻은 대가였으니까.


그러면서 발견한 것은 본인이 만화 그리기를 좋아한다는 것. 이면지와 모나미 볼펜으로 그리기 시작했다면서, 그렇게 완성해가는 이 만화가 더 기가 막힌 건, 저자가 한 번도 그림을 배운 적이 없다는 거다. 진짜? 정말로? 이런 능력을 이제야 발견하다니. 회사에서 잘린 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거 아닌가. 일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을 만화로 그려나가면서 재미를 알게 됐다. 취미로 그리던 만화가 이제는 만화로 먹고살게 된 거, 이거 운명 아니면 뭐야?


나이 마흔에 지금껏 해오던 일과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되는 과정을 듣고 있노라면, 이렇게 해도 괜찮은 거구나 싶은 안심과 내 시간을 내가 주인으로 살고 있구나 하는 만족감이었다.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돈도 버는 일이 어디 흔할까. 그러니 저자의 지금이 너무 부러운 거다. 발로 그렸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형편없던 그림은, 계속 그리면서 실력을 키우고 현재의 캐릭터를 완성했다. 너무 귀엽고 개성이 있다. 그림에 더해진 스토리가 너무 잘 어울려서 읽는 재미까지 더한다. 만화로 표현하는 자기 생활이 이렇게 다른 이에게 전달될 수도 있구나 싶어서, 나의 똥손에도 모나미 볼펜 하나 쥐여줘 볼까 잠깐 고민했더랬다. 손인지 발인지 모를 것을 그리면서 나도 하고 싶은 말을 이렇게라도 표현해볼까 하는, 허무맹랑한 상상까지 더해진다. 생각이 많아지니 별걸 다 한다.


지금 어떤 상황을 바뀌기 위해서는 결심이 필요하고, 다가올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알면서도 자꾸만 주저하는 건, 겁이 나서다.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지금 이 변화를 시도하는 게 아무것도 아닌 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당장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하는 걱정들. 무엇보다 가장 두려운 건, 내 선택이 잘못됐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내가 나를 잘 몰라서 이런 결정을 내린 건 아닐까 하는 후회를 할까 봐. 알면서도 듣고 싶은 말을 저자가 해주고 있어서, 그렇게 눈앞에 놓인 일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싶은 것을 보여주고 있어서 계속 읽게 된다. 웃기지만 진지하고, 씁쓸하지만 기대되기도 하는 인생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보다 나은 것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고 싶은 마음이, 조금, 아주 조금이지만 그래도 믿는 거 말고는 지금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그러니까 나에게 한 마디만 해줘. 저자, 당신이 그랬어. 재촉 말라고, 믿고 기다리면 다 잘되게 되어 있다는데, 그 말 진짜지?


우연처럼 순간을 바꿔주는 이야기들을 찾고 있다. 읽고 있는 책들과 읽고 싶은 책들 사이에서 비슷한 상황과 감정을 찾으면서, 그림 한 컷이, 문장 하나가 나를 더 토닥여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더좋은곳으로가고있어요 #임지이 #빨간소금 #당신이모르는이야기 #이백오상담소 #책과우연들

#책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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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 2022-12-15 0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으려고 장바구니에 담아 둔 책인데 구단씨 독후감 읽으니 꼭 읽어야겠네요.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때입니다.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계시든 다 잘 될거라고 응원드리고 싶습니다. 화이팅!!!

서니데이 2022-12-15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알라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합니다.
행복한 연말 보내시고, 새해에도 좋은 일들 가득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따뜻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3-01-06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thkang1001 2023-01-07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이달의 서재의 달인과 북플 마니아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나는 미래를 꿈꾸는 이주민입니다 - 더 나은 ‘함께’로 나아가는 한국 사회 이주민 24명의 이야기
이란주 지음, 순심(이나경) 그림 / 한겨레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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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며칠간의 외국 여행에서도, 아니, 해외까지 갈 것도 없다. 내가 익숙한 곳이 아닌 대한민국 어딘가에 도착해서도 긴장되곤 한다. 언어까지 잘 통하지 않는 이곳에 와서 삶을 다시 꾸리는 이들의 마음이라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린다. 거기에 이 사회의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상처를 받는 이들의 이야기가 편안하게 들려오지는 않는다. 이주민 인권 활동가인 이란주 저자의 말처럼, 대한민국 인적 구성이 너무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건 내가 사는 곳에서도 충분히 느끼고 있다. 그에 반해 이 상황과 이주민을 보는 사회적 인식이 그 인구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와닿을 수밖에 없다. 지방의 소도시인 이곳은 인접한 시골과 생활권이 같다. 병원, 공공기관 등 웬만큼 큰 곳을 찾으려면 모여든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도 자주 보는 이주민을 생각하면, 이 책이 우리에게 더 깊게 다가와야만 한다는 것을 알 것 같다.


24명의 이주민이 그들의 한국 생활과 상처를 그대로 들려주고 있다. 한국인 노동자의 차별과 피해를 들어오면서 화를 내곤 했는데, 이들의 한국 생활도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낯선 사회에 그 상처가 더 크게 다가오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제야 이들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볼 기회가 생긴 게 아쉬울 정도였다. 도서관에서 다문화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의 다문화, 이주민의 구성은 커졌다. 그만큼 우리 관심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라는 인식은 같은 비례로 커지지 않은 듯해서 이들의 이야기가 아프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들과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생각해야 할까. 인종, 국격, 피부색을 넘어, ‘이주라는 공통의 배경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가 생생하다.


한국 생활 3, 그사이 여러 지방을 떠돌며 살았어요. 남편은 일을 구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도 무척 힘들었어요. 일자리 알선 브로커에게 돈을 뜯긴 일도 여러 번이고, 못 받은 임금을 받기 위해 노동청에 가기도 했어요. 이집트인이라서, 또 불안정한 체류 자격 때문에 무시당하거나 부당한 처우를 받기도 했어요. 나도 일하고 싶지만 아직 기회가 없었어요. 한국 회사들은 히잡 쓴 여자를 고용하고 싶어 하지 않나 봐요. 덕분에 한국어 공부할 시간을 얻었으니 열심히 배워 일을 찾고 싶어요. (224페이지)


생계가 달린 일 앞에서 인정받을 시간을 기다리면서 또 다른 생활고에 시달린다. 난민 심사를 3년째 기다리는 이의 가슴은 타들어 간다. 다른 방법도 없다. 인정받고 제대로 된 삶을 꾸리려면 결과를 기다리며 일상을 유지해야 한다. 다방면으로 알아보고 있지만, 뚜렷한 대책을 주는 이도 없다. 얼마나 답답할까. 그 와중에 그들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도 견뎌야 한다. 이주민이라고 모두가 똑같지는 않을 테다. 국적, 배경, 이주의 목적 등 다양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 사회에서 이주민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받는 시선은 비슷하다. 부당함 역시 이들에게 거침없이 다가간다. 새로운 사회의 문화 차이를 극복하기도 전에 혐오를 먼저 느끼기도 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아마도 우리가 이주민을 바라보는 시선에 빠진 것은 그들이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가고자 하는 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서 그런 건 아닐까. 이 책의 제목처럼,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라고 인정하지 않아서 생기는 갈등과 차별을 이제는 바로 봐야 할 때인 듯하다.


중학교에 다니는 조카들이, 거리에서 만나는 외국인들을 그냥 관광객쯤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국에 살면서 다문화를 이룬 가족, 생산 현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관광객과 다르게 보는 모습에 뭔가 이해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읽게 된 책이다. 나 역시 이주민을 보는 마음이 어땠는지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었다. 내 주변의 타인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같은 지역에 살고 있지만 나와 다른 삶, 그들의 목적에 맞는 생활을 꾸리고 있는 누군가 정도로 생각했다. 이 책으로 이들의 마음을 더 잘 읽게 된 기분이다. 이들이 대한민국 국민과 다르지 않다는 것, 그들 나라로 돌아갈 목적이더라도 이 사회에서 똑같이 노동하고 생활하는 한 사람이라는 것,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부당함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 특히 사업자가 외국인 인력 고용을 관리하는 고용허가제라는 제도는 충격적이었다. 이런 제도가 만들어진 이유가 분명 있을 테지만, 이 제도의 악용도 뚜렷했다. 이 제도 때문에 노동자는 마음대로 일을 그만둘 수 없다. 심지어 어떤 사업주는 이 제도를 악용해 노동자에게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노동자의 가족 역시 동반 입국이 안 된다. 사업주가 아무리 잘못해도 노동자가 그만둘 수 없다는 사실이 이주노동자에게 억울함을 주겠지.


듣다 보면 몰랐던 이주민의 삶에 아픔을 같이 느낀다. 차별을 알면서도 숨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함께하고 싶어서, 한국으로 오려고 했던 목적이 분명해서 말이다. 이주민의 이런 고충은 성인도 감당하기 힘들 텐데, 이주 청소년의 삶을 더 혼란스러웠다. 이주 배경 학생 수가 전체 학생의 3%를 넘는다고 하던데, 앞으로도 이 비율을 늘어날 것이다. 그러니 다문화, 이주민의 적응에 같이해야 한다는 것도 분명하다. 현실에 그에 발맞추지 못해서 지금도 이 사회의 편견과 차별에 시달리는 이주 배경 청소년들의 마음을 더 읽어야 할 때이다.


시골에서 농사하는 주변 사람들을 볼 때마다, 평소에도 일손에 가담하고 있는 이들의 많은 수가 이주민이다. 농사철이 되면 더한 인력난에 시달린다고 한다. 그때마다 시에서는 일반 실직자나 이주민 노동자를 농사하시는 분과 연결해주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만큼 농사에 이주노동자의 비율이 커졌다. 가끔 몇 시간씩 나도 농사라고 불리는 일에 참여하곤 했지만, 정말 힘들다. 최저임금으로 고된 일을 해내면서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열악한 거주 환경까지 이들을 힘들게 한다. 때로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부당함과 혐오의 시선까지 감당해야만 하는 이들의 삶을 우리가 적극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기에, 이 제도를 관리하는 기관이 있기에, 이주노동자의 여러 문제를 국가가 나서고 책임져야 하는 게 아닐까. 거기에 우리를 비롯한 사회의 관심은 필수이며,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기에 공존을 인정하며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에 생각이 많아진다.


세상에는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 먹는 사람도 있고 찍어 먹는 사람도 있잖아요. 너는 왜 나처럼 안 먹느냐고 비난해봤자 소용없죠. 서로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니까요. 다문화든 아니든, 어느 나라 출신이든, 외모가 어떻든 나와 다르다고 해서 미워하고 싸워야 할 이유가 대체 뭐가 있겠어요. 우린 다 똑같이 사람인데요. (46페이지)


지금도 이주민을 향한 나쁜 말들을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종종 듣는다. 이주민이 오면 한국이 망한다고, 우리 고유의 민족은 점점 사라지고, 이주민들이 대한민국을 차지할 거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 사회가 이주민 없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유지할 수 있을까? 아이 돌보미부터 우리의 식탁을 책임지는 시골의 농사일, 산업 현장의 노동자까지, 우리 삶 곳곳에서 이들을 본다. 어느 한순간 이들이 이 공간에서 사라진다면 한국 사회는 어떻게 될까. 단순히 이들이 사라지면 우리 사회가 멈추니까 붙잡고 있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제 한국 사회가 이주민과 함께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꾸리듯이, 이들도 이제 우리 곁에서 그들의 삶과 꿈을 위해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뿐이다. 그동안에는 미처 다 알지 못했던 이주민의 삶, 현실을 이렇게 듣고 보니 이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한결 너그러워지고, 공감하게 된다. 그 속내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한 개인의 삶으로 보고 싶어진다.


#나는미래를꿈꾸는이주민입니다 #이란주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책추천

#하니포터5_나는미래를꿈꾸는이주민입니다 #청소년도서 #청소년인문사회

#이주민 #차별과혐오 #공존의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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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2-04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점점 자신이 태어난 곳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일자리를 찾는건 더 많아지고 일반화될텐데, 우리나라의 이주민에 대한 정책은 아직도 전근대적이고 일방적으로 불리한 면이 많지 싶어요. 우리가 다른 나라에 가서 똑같은 일을 당한다면 부당하다고 당연히 생각할텐데 말이죠. 하지만 이런 것들이 오래가지는 못하리라고 믿습니다. 세계는 어쨌든 더 하나로 연결되고 있고, 그 거대한 흐름을 언제까지고 외면할 수는 없을거 같아서요. 그에 따라 이주민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의식도 바꿔나가야 하기에 이런 책들의 기획이 더 많아져야지 싶네요.

호우 2022-12-04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사는 지역에도 이주민이 정말 많아요. 조선족이 가장 많지만 동남아에서 온 결혼 이주민 여성들도 많아요. 외국인 때문에 한국인들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 같아요. 외국인 노동자들을 많이 쓰는 곳은 한국인 노동자들을 구하기 어려운 곳일 경우가 많아서요.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서도 저임금의 열악한 노동 현장들이 없어져야겠지요
 
가부장제의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아넵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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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가장 싫어하는 TV 프로그램은 동치미’, ‘결혼 지옥이다. 특히 동치미를 정말 싫어하는데, 그 이유가 참... 우리 일도 아니고 남의 일이라고, 왜 우리한테 일어나지 않은 일에 감정 이입하면서 흥분하느냐고, 패널들 나와서 자기 가족(특히 배우자) 욕하는 내용이 뭐가 좋다고 보고 있느냐며 핀잔을 주기 일쑤다. 그럴 때마다 나는 녹음기 틀어놓은 것처럼 대답한다. 내 주변 여자들의 결혼생활이 평균 20년에 가깝고, 직접 간접적으로 보고 들은 내용이 너무 똑같아서 오히려 동치미에 공감하지 않는 게 이상할 지경이라고. 조금만 더하면 우리가 부부싸움 할 것 같아서 참고 있던 중에, 남편이 대꾸할 말을 잃을 일이 생겨버렸다. 한참 시어머니 문제로 남편과 싸우고 있는데, 이럴 수가. 이게 바로 동치미일반판인 거다. 우리 일이 아니라고? 당신 엄마는 안 그런다고? 괜한 감정 이입에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이혼 브이로그라는 신박한(?) 단어에 꽂혀서 읽게 되었는데, 나만 몰랐나 보다. 이미 유튜브에서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영상이었다. 결혼한 지 거의 1년 만에 이혼하게 되었고, 본인의 이혼 일기 혹은 이혼 후의 일상을 들려주는 내용이다. 혹자는 이혼이 무슨 자랑이라고 이렇게까지 만들어서 보고 듣게 하느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저자의 이야기가 이혼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가 살면서 궁극적으로 향해가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전직 며느리의 결혼 마침표가 왜 찍게 되었는지 알게 된다면, 아마도 많은 이가 대한민국의 결혼제도, 오랫동안 뿌리내린 가부장제의 고통을 더 공감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혼은 내 인생에서 가장 신중하게 생각하고, 가장 오래 참고 견딘 뒤 내린 결정이다. 나뿐 아니라 이혼을 겪은 다른 사람들도, 이혼을 고민하면서도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혼은 결코 절대 네버 쉬운 일이 아니다. (145페이지)


저마다의 이유로 이혼을 선택한 사람들, 내 주변에도 이혼한 사람들이 꽤 있다. 나 역시 살면서 이혼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꼭 이혼하지 않는 게 답이 아니라는 것도 알기에 이혼이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결혼생활이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이혼을 선택했을까 하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혼을 선택하는 건 간단하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 쉬운 선택도 아니며, 마냥 가벼운 결정도 아니라는 거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일일 게다. 저자의 1년 남짓한 결혼생활도 만만하지 않았다. 까고 까도 끝이 없을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것 같지만, 저자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혼 후 삶이 어떻게 성공적일 수 있는지 보여줬다. 고민 없이 이혼 결정할 수 없었을 텐데, 그 복잡한 심경을 옆에서 조언해줄 사람도 없는 상황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누군가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면 어떤 도움이 될지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눈에 들어오는 게 있는데,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이어져 온 가부장제와 한 사람의 행복을 위해 선택한 이혼이 아직도 누군가에게 시선 받을 일이라는 거다. 저자가 다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결혼생활 중 이해하지 못할 일이 벌어지는 바탕에는 시월드의 가부장제가 있었다. 습관처럼 그렇게 살아왔고 그게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 뭉쳐있었다. 이 가부장제의 영원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관습에 힘들어하는 이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한 사람의 오래된 사고를 바꾸기 힘들다는 건 당연하다. 그러니 이 가부장제를 우리 생활에서 몰아내는 것도 어려운 일일 테지. 정말 인상적인 장면은, 저자가 회사 일을 하면서도 퇴근 후 남편의 가게 일을 돕는 건 너무 당연하다는 생각이었다. 똑같은 상황을 두고 엄마는 내 딸이 힘들고 피곤할까 봐 걱정하는데, 왜 시월드는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걸까? 바꿔서 생각하면, 당신 아들이 회사에서 퇴근하고 며느리가 운영하는 가게에 와서 일하는 걸 반길까? 설마. 내 아들 고생한다고 땅이 꺼져라 걱정할 것 같은데?


저자가 며느리와 아내를 그만두기까지의 시간이 짧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겨우 1년 살아보고 때려치우는 거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반대의 말을 하는 사람도 있거든? 그나마 빨리 결정해서 다행이라고 말이다. 그런데도 개인의 행복을 위한 결정에 혀를 차며 한마디씩 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아직 이 사회는 여성 한 사람의 행복이 아닌 결혼생활, 시월드라는 집단에서 배경이 되어야 하는 존재로 있어야 하는가보다 싶다. 저자의 유튜브 영상에 이혼이 뭐 자랑이냐는 식의 악플도 많이 달렸던 것 같다. 글쎄. 이혼이 뭐 자랑은 아닐지 몰라도 타인에게 부정적인 시선을 받을 일도 아니지 않나. 이혼한 사람들은 고개 숙이고 걸어야 하나? 이런 시선 볼 때마다 한 친구가 생각난다. 이십 대 초반에 결혼하고 이십 대 중반에 이혼해서 엄마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이 보고 수군거릴까 봐 그랬다고 하더라. (실제로 동네 사람들은 그 친구가 엄마 집으로 돌아온 걸 두고 근거 없는 여러 가지 말이 있었다) 심지어는 동네 마트도 안 갔는데, 정말 너무 급한 상황이 생기면 걸어서 5분 거리를 차를 타고 갔었다고. 이혼했다는 이유만으로 왜 이런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 여전히 나는 모르겠다.


정말 이혼이 실패일까? 어쩌면 저자가 이혼을 실패로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혼 자체가 인생의 실패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안다. 행복해지려고 결혼을 선택했는데, 그게 불행이라는 걸 알고 끝내기 위해 선택한 게 이혼이기도 하다. 결혼하기 전 혼자였던 삶으로 돌아가 자기만의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것뿐이다. 이 시기에 타인의 불편한 시선이나 참견이 오히려 실패한 삶으로 만들기 위해 접근하는 게 아닐까? 저자처럼 때로는 금융치료로 마음을 다스리거나, 언니의 권유로 가드닝을 하면서 일상을 회복해나갈 수도 있다. 말을 재미있게 해서 그런지, 이혼 후 홀로서기 과정이 굉장히 힘차다. 우울하게 주저앉아 있지 않다. 어느 시골 풍경과 맞닥뜨려 유쾌하고 새로운 일상을 펼쳐낸다. 맛있는 것을 먹고, 뭐든 하고 싶은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자기 삶을 완성해나간다. 이혼으로 삶이 실패? 아니. 그냥 살아가던 길을 걷고 있을 뿐.


이유는 단 하나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행복이라고 믿었던 게 그저 버티기 위해 붙잡고 있던 것이 속이 텅 빈 공갈빵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 더는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 이혼을 권장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솔로를 예찬하는 것도 아니다. 예상하지 않았지만 나에게 닥친 이혼이라면, 내가 수습하고 내 인생의 방향을 정해야 한다는 거다. 나를 존중하고 아끼면서, 내가 바라는 인생을 향해가는 법을 말한다. 결혼과 이혼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그 당사자의 주변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조언과 긍정의 토닥임을 준다. 내 주변의 이혼 경험자들을 이해하고 함께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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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2-01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아는 분이 이혼을 했는데 그 분 하는 말씀이 나 이혼하던 날 진짜 축하받고 싶어서 떡이라도 돌리고 싶더라라고....
결혼이 선택이듯 이혼 역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 부닥치는 무숫한 선택 중의 하나일뿐인데 그것을 인생의 실패라고 생각하는게 말이 안되죠. 심지어 이혼의 경우 여성에게 가해지는 비난이 더 큰 것도 그렇고요. 요즘은 결혼이나 이혼에 대한 생각이 좀 급격하게 바뀌고 있는거 같아요. 나아지는거겠죠?

구단씨 2022-12-04 13:13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한 개인의 선택을 그 사람의 삶을 모르는 이들이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더라고요.
방송 볼 때마다 어느 정도의 변화를 느껴요. 예전에는 이혼한 방송인들이 TV에 다시 나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방송 활동 중에 이혼 소식이 전해져도 그들이 방송에 안 나오거나 하지는 않고요. 결혼도 마찬가지. 나이가 지긋해도 싱글로 살아가는 모습이 타인에게 간섭받을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생기는 걸 보면, 바람돌이님 말씀처럼 나아지고 있는 거겠죠? ^^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하는 것이다. (이 별에서의 이별, 237페이지)


요즘에 일하는 곳에 찾아와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신청하고 가는 어르신들 볼 때마다, 항상 우리 삶이 죽음과 공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란, 나중에 아파서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됐을 때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미리 밝혀두는 것이다. 사는 동안 생각하는 죽음의 순간이리라. 이미 여러 번 병원을 경험하면서, 한번 병원에 입원할 때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비슷한 서류에 사인한 적이 몇 번 있다. 위급한 순간이 왔을 때 가슴을 뚫고 호스를 끼우고 생명을 연장하는 행위를 한 것인지 말 것인지 물으며 서류를 내미는 의료진에게 처음에는 오해했었다. 자기들 일 편하게 하려고 이런 거 미리 받아두는 건가 싶었는데, ·퇴원과 중환자실 드나드는 일이 반복될수록 이 서류에 관해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가족들과 미리 의논하고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긴 시간 고민하지 않고 이 서류에 사인했다.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떠나는 이와 남겨진 이가 이 죽음을 같은 마음으로 생각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어떤 죽음은, 죽은 이보다 곁에 남은 이들에게 더 죽음을 알게 하는 것 같다. 떠난 이는 모를 죽음 이후의 시간이 남겨진 자들의 몫인 것처럼, 그 시간에 견뎌야 할 감정도 남겨진 이의 것이다. 이 별에서의 이별은 장례지도사인 저자가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순간의 기록이다. 그 기록의 시간 속에 죽은 이, 남겨진 이, 그들을 지켜보는 이가 있다. 아마도 저자는 그들을 지켜보는 이가 되겠지.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의식을 누군가는 해주어야 했다. 그것은 온전히 남겨진 이의 몫이었고, 저자는 남겨진 이가 의뢰하는 현장에서 그 일을 해낸다. 내가 처음 장례지도사를 본 건 외숙모의 장례식장에서였고, 그들은 그저 돈을 받고 장례식장에서 해결해야 하는 일을 정리해주는 정도로 생각했다. 이 책으로 처음 알았던 건, 장례지도사가 죽은 이의 집에 가서 직접 시신 수습을 할 수도 있다는 거였다. 죽은 이를 가장 아름답고 편하게 보내줄 수 있게 돕는 사람, 유족이 슬픔으로 해내지 못하는 것까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계속 듣다 보면 정말 궁금해진다. 장례지도사를 어떻게 시작하고,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망자와 유족을 대하는지 말이다. 읽고 있는 어떤 순간에는 내가 이 길로 한 번 들어서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일이 만만해 보여서가 아니라, 이 일로 내가 느끼고 배우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평생 직업으로 삼아 의미 있게 배우고 싶기도 했다. 어쨌든 그건 더 고민해야 할 문제였고. 지금은 저자가 들려준 이야기를 생각하기에도 벅차긴 하다. 인상적인 몇 가지가 있었는데, 시신의 화장이었다. 아버지의 입관식도 보지 못했던 터라, 정말 시신에 화장한다는 생각을 못 했다. 그런데 자살한 사람의 목에 난 멍 자국을 없애려 조심스럽게 화장을 한다는 말에 놀라웠다. 훼손된 시신에 아름다움을 입혀주는 일. 수의를 입히고, 그들의 사연을 가슴에 묻고 조용히 보내주는 인사를 하는 저자의 마음이 읽히기도 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누군가의 기록으로 보고 있자니, 그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장면으로 뛰어든 것만 같다. 직접 경험하지 못하면 알 수 없는 일을, 이렇게 또 하나 배운다.


어머니는 봄날 꽃밭 위에 이불을 덮고 잠든 딸을 만나러 입관실에 왔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딸의 손끝 하나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얼굴도 삼베 천으로 전부 가려놓아 그저 관 속에 누운 사람이 딸일 거라고 믿는 수밖에. 어머니는 왜 딸의 몸을 전부 가려놨냐고 묻지 않는다. 나도 애써 설명하지 않는다. 숨을 내뱉는 것조차 힘겨운 이 공간에는 어떻게든 견디어 보려는 사람들만 애처롭게 남아 있다. (이 별에서의 이별, 28~29페이지)


우연처럼 장례지도사의 길로 들어섰지만, 저자에게도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현실이 놓여 있었다. 그렇다고 이 일을 감당하는 게 돈 때문은 아니리라.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와 인구 고령화, 사망자가 늘어가는 것이 이 직업에 관심 두게 한 것도 있다. 많은 이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이 직업에 뛰어들었다. 몇 달의 연수 기간을 채우고 현장에 투입되면서 실수도 있었을 테다. 제대로 배우려고 두 눈을 부릅뜨기도 했겠지. 저자는 그렇게 시간과 경험을 쌓으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자식을 먼저 보내고, 들여다보지 못한 사이에 부모가 죽고, 장례를 치러줄 이가 없이 외롭게 죽어가고, 신혼여행지에서 배우자의 익사를 겪고,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는데 죽음마저 쓸쓸해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죽음의 순간에 삶을 생각한다. 죽음을 자각하는 순간에 삶이 더 빛난다는 말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얼마 전에 읽은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에서는 자기 죽음의 결정을 할 수 있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싶은 마음이었는데, 이 별에서의 이별을 읽다 보니 죽음을 생각하면서 안락사를 준비하는 이가 보냈던 삶의 마지막 순간이 정말 빛나지 않았을까 싶다. 안락사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맞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알겠다. 우리가 죽음을 생각할 때, 삶이 더 반짝일 수 있다는 것을. (솔직히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이 책은 읽고서도 마음에 안 든다. 종교의 색이 너무 짙다. 제목만 보고 펼쳐 들었는데, 페이지를 계속 넘길수록 제목에 낚인 기분. 죽음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기는 했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었다. 그냥 이렇게 무료하고 기대할 것 없이 살다가, 죽음이 다가오면 삶도 끝나겠지 싶은 순간을 보내기도 했다. 뒤늦게 뭔가 내 삶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늦어도 너무 늦은 깨달음이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몇 번의 장례식을 다녀오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닥친 위기를 지켜보면서 지금이라도 내가 해야 할 것을 생각했다. 늦었지만 하고 싶은 것, 늦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삶을 더 채우고 싶은 욕심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특히 지금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아픈 사람들, 취약계층이 주로 찾아온다. 내가 의료진이 아니니까 그들을 치료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더 죽음에 가까울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니 그들을 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조금 더 도와줄 수 있는 건 없을까, 내가 힘들어도 친절하게 대해야지, 이들이 이렇게 살아가려고 애쓰는 순간을 기억해야지 하는 마음. 죽음의 현장에서 내가 죽은 이가 될 수도 있고 남겨진 이가 될 수도 있을 텐데, 어떤 자리에 있어도 덜 슬플 수 있게 살아가야지 하는 다짐.


죽음에 대한 공부는 마치 세상의 안과 밖 경계선을 더듬는 것 같습니다. 해안선처럼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선을 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선은 가르고 막는 역할이 아니라 만나고 접속케 하는 의미를 갖습니다(그렇다면 경계라고 해서는 안 되겠지요). 삶에게 죽음을, 죽음에게 삶을 소개하는 맞선 자리 같은 거죠.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둘이 함께 탄생하고 함께 소멸합니다.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134페이지)


누구나 죽는다. 삶을 맞이했으니 죽음으로 끝을 맺는 거겠지. 생전에 어떤 삶이었든, 죽음의 순간은 비슷하다. 죽은 몸을 맡기고 떠난다. 남겨진 이들은 이 이별의 과정을 묵묵히 진행한다. 그 과정에 함께하는 이가 장례지도사다. 임종과 사별의 현장, 눈물과 후회와 사랑을 느낀 순간을 그대로 기록한 이야기에서 그리움을 견디는 법을 배운다. 어떤 죽음이든, 내가 감당할 죽음 앞에서 어때야 하는지 고민하게 한다. 죽은 이를 떠올리는 마음, 그 마음에 담아야 할 것들, 이별 후의 삶을 만들어가는 것까지, 이 의식 속에 있다. 죽음, 이별 후에 새로 시작되는 삶에 관해, 육신의 소멸이 아니라 기억에서 잊히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에 관해 우리에게 묻는 이야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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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이죽음을어떻게다뤄야할지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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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12-08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구단씨 2022-12-10 13:4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점점 싸늘해지는 주말이네요. 건강 조심하세요.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평점 :
품절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231페이지)


대문 밖 아버지는 호인이었다. 사람들에게 술과 밥을 잘 사고, 얘기도 잘했다. 무엇보다 놀란 건 아버지가 웃는 모습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를 찾으러 갔던 동네 경로당 출입문을 열고 마주한 장면은, 사람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웃고 있던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우리 아버지, 이렇게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나? 그런데 집에서는 왜 그래? 웃기는커녕 욕하고 화내고 큰소리만 치던 기억이 전부였는데, 지금 내가 본 건 뭐지? 뭔가 순식간에 스치고 지나간 것 같은 기분에 더 오래 고민하진 못했다. 나중에 그날의 장면을 가끔 떠올렸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5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나는 아버지를 잘 모르겠다는 생각만 든다.


소설 속 평생 빨치산으로 살아온 아버지의 존재는 딱히, 그렇게 의미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차라리 아버지가 없었다면 나머지 가족들의 삶이 조금 평탄했을까. 일제강점기가 끝난 후 아버지의 혁명은 계속되었으나 함께한 동지들은 죽어갔고, 아버지의 위장 자수 계획도 실패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한국의 자본주의 속에서 사회주의자로 살았다. 아버지가 바라던 평등은 지금 우리에게 닿은 세상일까? 일상의 많은 부분이 평등하게 이뤄진 세상에서 아버지는 여전히 혁명에 힘을 쏟았다. 그런 아버지의 삶을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을 테다. 아버지의 빨치산이라는 수식어는 작은아버지의 인생을 무너뜨렸고, ‘의 인생에도 도움 될 게 없다고 여기며 살아왔다. 그런 아버지가 노동절 새벽에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었다.


아버지의 장례가 치러지는 사흘 동안의 이야기가 한 사람의 긴 생을 그대로 담아낸 것에 놀랐다. 누군가의 인생이 이렇게 펼쳐질 수도 있구나 싶었다. 평생 형을 원망하며 살아온 작은아버지가 이 장례식에 등장할지 궁금했다. 형의 죽음을 알았지만, 대꾸도 없이 끊어버린 전화는 그의 닫힌 마음이 여전하다는 걸 증명했고, 그러니 증오하는 이의 죽음 따위 애도할 마음이 없다고 여겼다. 이 소설이 끝날 때까지 가장 확인하고 싶던 일이기도 하다. 아마도 아버지는 딸뿐만 아니라 작은아버지에게도 평생 받아들이기 힘든 상처를 준 이였기에 말이다. 반면에 아버지가 구례에서 사귄 이들은 사흘 내내 장례식장을 꽉 채운다. 누군가는 사흘 내내 머물면서, 누군가는 바통 터치하듯 찾아오면서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와의 추억을 꺼낸다. 정치적 지향점이 다르면서도 오랜 세월 친구로 지내온 이가 있는가 하면, 다문화 소녀의 인생 한 장면에 기록될 일도 마다하지 않은 아버지였다. 혁명을 위하는 중에도 인간다움을 잊지 않으며 딸 같은 나이 청년의 삶도 바꿔놓았다.


그들이 소환하는 아버지는 딸이 기억하는 아버지와 너무 달랐다. 생활력이라고는 하나도 없던 아버지, 습관처럼 보증 서주며 집안을 말아먹은 아버지, 어느 시절의 ‘-라떼인지 현실과 동떨어진 사고는 공감하기 어려웠다. 그런 아버지를 볼 때마다 는 아버지를, 고향을 떠나고 싶었을 테다. 뒤늦게 알았다, 그동안 알던 아버지가 아버지의 일부였음을. 막무가내 같았던 아버지가 누군가의 인생을 구하기도 하고, 오지라퍼 같은 행동이 감동을 불러왔으며, 기억에서 사라진 아버지와 의 애틋한 시간을 다시 그리는, 아버지의 장례식은 그런 시간이었다. 그래서일까. 늦게나마 차근차근 아버지의 삶을 복기하던 는 아버지가 바라던, 딱 아버지다운 방식으로 이번 생에서 놓아주려고 한다.


책으로 농사를 배우고, 그마저도 완전하게 배울 생각을 못 하는 아버지를 지켜보는 어머니의 속은 얼마나 타들어 갔을까. 그놈의 혁명이고 뭐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농사라도 지어야 식구들 먹고살 텐데, 이놈의 영감탱이 허구한 날 혁명 타령이나 하고 남편이 아니라 남의 편으로 평생 살아가는 모습에 화병도 났을 법하건만, 아버지의 혁명 동지로 살아온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조금 더 현실적이라 하더라도 그 바탕은 변하지 않더라. 사상의 지향점 앞에서 한편이 되었다가 상황에 따라 반대편이 되었다가 하는 모습이 우습다. 아마도 아버지의 삶을 온전하게 이해한 유일한 사람이 어머니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죽음으로 해방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버지의 장례식 사흘의 시간이 한 사람의 생을 정리하는 시간 그대로 가치 있었다. 이래서 죽은 이를 보내는 애도의 시간이 필요한 건가 싶기도 했다. 아버지는 죽음으로 이룬 자유를 이제 다른 곳에서 또 다른 혁명을 꿈꾸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딸은 이제야 비로소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버지답게 살다간 아버지의 인생을 이렇게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작은아버지가 비로소 아버지와 화해하고 죽음 후의 자리까지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이루는 모든 관계가 언젠가는 다 풀리게 되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혹여나 그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말이다.


오십 년 가까이 살아온 어머니도 아버지의 사정을, 남자의 사정을, 이제야 이해하는 중인 모양이었다. 나 또한 그러했다. 아버지는 혁명가였고 빨치산의 동지였지만 그전에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남편이고 나의 아버지였으며, 친구이고 이웃이었다.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 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 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 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 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 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 하자고 졸랐다는 아버지의 젊은 어느 날 밤이 더이상 웃기지 않았다. 그런 남자가 내 아버지였다. 누구나의 아버지가 그러할 터이듯. 그저 내가 몰랐을 뿐이다. (248~249페이지)


여전히 나는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제는 서로 치열하게 싸우던 시간마저 희미해졌다. 대화다운 대화 한번 해보지 못한 채로 아버지와 나의 관계는 정리되었다. 지금 이렇게 서로 다른 시간을 살고 있지만, 혹시 또 모르겠다. 살아있는 동안 말하지 못했던 어떤 마음이 가슴 속에 자리한 채로 떠났는지도. 그렇게라도 생각해야 지금 내 마음이 다독여질 것 같다. 평생 자기만 알고 살아온 사람이라고 기억된다면 내 인생에서 작게나마 남아있던 아버지라는 존재가 참 의미 없어질 것 같다. 어쨌든, 각자의 고단한 인생을 잘 정리하고 떠났다면, 그랬다면 된 거다. 굳이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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