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공장 블루스 - 매일 김치를 담그며 배우는 일과 인생의 감칠맛
김원재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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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엄마 집에 가서 엄마가 새로 담근 김치를 가져와서 저녁 식사를 했다. 나도 그렇지만 남편도 항상 밥 먹을 때 김치를 찾는 사람이라, 이맘때가 가장 난감하다. 지난겨울 김장하면서 만든 겉절이는 한 달 정도면 충분히 먹었고, 그러고 나면 담근 지 한 달 정도 된 김장김치를 이제 막 담근 김치처럼 잘라 먹는다. 그러고 나면 이맘때가 된다. 김장김치는 익어가고, 새 김치를 담그자니 귀찮고 배춧값도 저렴하지 않은 때. 작년의 묵은지로 김치찌개도 끓이고 김치 볶음도 만들어 먹고 하지만, 그래도 막 담근 김치가 생각날 때다. 그럴 때 근처로 칼국수나 수제비 먹으러 테이블 위에 올려진 겉절이를 실컷 먹고 오는데, 사실 그것도 눈치가 보인다. 만드시는 분의 고단함이 있을 테고, 재료비도 만만치 않을 테니까.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봐도 김치는 정말 쉬운 존재가 아니다. 입에 맞는 맛있는 김치 찾기도 어렵고, 없으면 없는 대로 먹기에도 서운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김치 담그는 일 자체가 너무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말이지. 언젠가부터 등장한 김치 판매처는 그래서 더 소중하다. 누군가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으니까. 이제는 엄마도 나도 종종 김치를 사 먹을 때가 있어서 그런가, 이 책이 하는 이야기가 너무 궁금했다.


처음에는 웬 뜬금없는 김치 공장 이야기인가 싶었다. 나이 지긋한 어느 어머님의 일터에서, 동네 아주머니들 모여 수다 떠는 것처럼 인생 이야기가 피어나는 건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광고회사에서 일하며 커리어를 쌓아오던 저자는 엄마가 운영 중인 김치 공장으로 이직한다. 굉장히 고민했을 것 같다. 자기 하는 일을 계속하면 될 것 같은데, 갑자기 엄마의 일터로 자기 인생을 옮겨가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터. 엄마가 도전하고 쌓아오던 그곳에서 저자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사람의 몸에 많은 근육이 있어도 하는 일마다 근육의 쓰임이 다르다던데, 저자 역시 많은 활동적인 일을 했어도 김치 공장에서 쓰는 근육은 달랐으리라. 그 근육이 탄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엄마의 인생 전쟁터에 참전했을 것을 생각하니, 이야기를 듣기도 전부터 괜히 뭉클해진다.


일단 이 공장은, 제목처럼 김치를 만드는 곳이다. 작은 사업체라고 생각했는데, 규모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 공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김치를 만들고 있었나 싶게 놀라웠다. 나이 지긋한 베테랑 손맛 선수부터 외국인 노동자까지, 이 김치 공장을 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막연하게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을 때는 몰랐다. 재료 하나에, 작업대의 위치 하나에 모든 것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매일 김치를 담그며 그곳을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는 이가 들려준 이야기는 너무도 생생했다. 맛있는 김치를 만들기 위해 기본적인 재료 수급부터, 손길 하나하나 담긴 김치 완성 트레일러의 움직임까지, 완벽한 포장으로 고객의 문 앞에까지 전달되는 김치의 사연은 다양했다. 고객마다 다른 입맛을 맞추기 어렵기에 들어오는 클레임, 홈쇼핑 생방송 배송에 맞추기 위해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작업대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나쁜 재료 절대 못 들인다며 퇴짜를 놓는 사장님, 그러다 보니 많은 이윤을 남기지 못하고 현상 유지에 급급한 현실. 이놈의 코로나는 이 김치 공장도 비껴가지 않았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의 격리 생활은 타국에서의 설움까지 겹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안타까웠고, 공장 가동이 멈춰버린 현실에 또 얼마나 큰 손해를 만들고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되더라. 그때 우리, 참 힘들었는데, 여기도 다르지 않았다.


그곳도 여전히, 사람 사는 곳이었다. 김치는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이지만, 그 김치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공간의 이야기는 새로우면서도 진솔했다. 울고 웃는 게 우리 인생이라지만, 이곳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그런지, 그들의 다양한 인생에 담긴 이야기도 흥미진진했다. 카리스마 장난 아닌 사장님부터, 배추 트레일러에 서서 배춧속을 채우고 가정에서의 책임도 다하는 여사님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의 정을 나눠주며 책임을 다하는 외국인 노동자들, 그리고 로열패밀리(?)이면서 이 공장의 모든 곳에서 책임자이자 막내 역할을 하는 저자까지. 저자가 풀어내는 이들의 세상은 애정이 가득 담겼다. 읽으면서 괜히 더 애틋해지고, 성실한 이들의 모습에 등도 두드려주고 싶고, 뭔가 바라는 거 다 이뤄가면서 살아가길 응원하고 싶기도 한, 뭐 여러 가지 마음이 든다. 이상하게 정이 막 쌓이는 기분, 나만 그런 건 아닌 듯? ^^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생산직 여사님들, 특히 김치 공장 여사님들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얼마 전에 아는 동생이 김치 공장에서 일하다 한 달 만에 그만두었다. 웬만한 일에는 끄떡도 안 하던 사람이 한 달 만에 그만두었다고 했을 때 궁금했는데, 그 이유가 여사님들 텃세와 괴롭힘에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좀 더 다녀보지 그랬냐고 했을 텐데, 그 동생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서 그런지 한 달 만에 그만두었다면 그럴만하다는 이유가 이해가 되더라. 김치 공장 여사님들 무서운 사람들이구나 싶어서, 정말 모르는 사람인데도 멀리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이 책 읽으니 문제는 김치 공장이 아니라, 그냥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김치를 만들고, 인생을 알아가는 곳. 나쁘고 좋고 판단할 곳이 아니라 그곳은 그냥 딱 그런 곳, 사람 살아가는 곳이었을 뿐이다.


저자는 큰 회사에 다니다가 작은 김치 공장으로 왔다고 말했는데, 사실 이곳은 그 어느 곳보다 큰 세상이었다. 배춧잎이 켜켜이 쌓여 사람들의 마음까지 쌓인 곳, 더 작은 세상으로 온 게 아니라 더 크고 맛있는 세상으로 온 거였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막연하게 생각한 공장이라는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되었다. 열심히 살고, 마음을 쏟아내고, 인생을 채워가는, 크고 작은 것을 계산하고 생각할 필요가 없는 멋진 곳이었다. 엄마가 만든 김치를 자랑스러워하며 엄마의 단단한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면서 더 사랑하게 될 곳, 정말 괜찮은 김치를 만들면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김치 공장이다.



#김치공장블루스 # 김원재 #알에이치코리아 #문학 #한국문학 #에세이

#김치공장이야기 #식탁위의김치 #김치인생 #감칠맛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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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식 아파트
서경희 지음 / 문학정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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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무엇일까. 대한민국에 살면서, 집은 이 한 몸 편하게 쉴 곳을 넘어서서 자산의 의미가 크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테지만, 내가 경험한 사람 대부분은 그렇다. 어쩌면 나 역시도 집의 의미를 그렇게 새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 그 자산이란 집은 언제나 타이밍이 중요하다. 앞으로의 집값이 어떻게 될 건가 하는 물음에, 많은 이가 이렇게 말한다. (아파트)이란, 내가 살 때가 가장 싼 거라고. 그 말이 정말 맞나? 이상하게도 내가 사고 나면 더 하락하는 게 집값이 아니었나? 거의 1년 동안 이 도시에서 새롭게 분양하는 아파트를 다 구경했고, 그중에 내 집이 있을까 싶어 고민했지만 역시나 돈이 문제였다. 바로 두 달 전에도 분양한다는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예약했지만, 가지 않았다. 괜히 보고 와서 더 우울해지는 거 아닌가 싶어서. 사실 이 아파트는 지금 사는 아파트 바로 근처에 지어지는 거라서, 정말 생활권 이동 없이 좋을 것 같았는데. 암튼, 작년에 분양하던 아파트는 지금 거의 무피에 거래되고 있고, 두 달 전에 보려다가 안 간 곳은 미분양이다. 대출금이나 유이자, 이걸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의 선택은 이거밖에 없지 않았을까. 이놈의 타이밍은 간절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바쳐 집 한 채 구하려는 사람을, 언제나 잘도 비껴간다. 에이~


그런 집 때문에 최근에 마음이 서글퍼졌던 적이 있다. 내 주변의 한 사람은 이번에 새 아파트 분양 신청을 하려고 하는데, 이미 아파트가 2채나 있기에 세 번째 아파트는 대출 규제가 있어서 신청이 어렵겠다는 말을 들었다. 또 한 사람은 남편의 사업 확장에 돈이 필요하다고, 여유로 가진 아파트를 1억이나 저렴하게 내놔도 안 팔려서 걱정이라는 말을 하고. 1억을 내려도 웬만한 사람이 선뜻 사기에는 비싼 가격에 속으로 좀 놀랐던 기억이 난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많은 아파트를 보유하면서, 돈 필요하면 한 채씩 팔아가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싶었다. , 사실은 많이, 서글펐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 서글픔이 다시 밀려왔다. 잘살아 보겠다고, 전세금 올려달라는 말에 더는 이사 다니기 싫어서 겨우 마련한 집이 계속 하락세라면, 그 마음은 어떨까.


은영에게 이사는 습관 같았다. 결혼생활 십 년 동안 여러 번의 이사였다. 2년에 한 번씩 올려달라는 전세금이 더는 힘들어졌을 때, 내 집 마련의 몸부림을 친다. 그녀의 남편 정수는 연극배우지만, 딱히 언제 빛을 볼지도 모르겠다. 그녀 역시 연극배우였지만 결혼과 동시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연극판을 떠났다. 아끼고 살피며 살아왔는데, 내 집 장만을 꿈도 못 꾸었다. 갭투자가 한창일 때 전세가는 치솟았고, 더는 버틸 수 없던 은영은 경기도 외곽에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를 매매하고 이사한다. 이제 더는 이사 가라고 내쫓을 사람도 없는, 내 집이구나. 이 집값도 곧 오르겠지. 이 안정감이 은영의 삶을 바꿔놓을 줄 알았다.


마음이 급하면 뭔가 더 알아볼 겨를도 없다. 은영이 이사한 곳은 소각잔재 매립지 공사 문제로 오랫동안 시청과 싸워온 곳이었다. 뒤늦게 알고 보니 그 싸움은 지금도 진행 중이었다. 당연히 집값은 내려갈 거고, 그 환경에 우리 아이를 키울 수 없다며 동네 사람들은 시위한다. 반대 서명을 받고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며, 매일 시위하는 걸 보면서 은영은 정신이 나갔다. 이제야 살아갈 만하다고 여기고 싶었는데, 동네는 어수선하고 사람은 떠나고, 기피 지역이 되어버렸다. 이사가 답이라며 다시 이사를 준비하지만, 그 사이 집값인 3천만 원이 넘게 떨어졌다. 그 도시를 떠나고 싶지만, 이제는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게 됐다.


정말로, 아파트 한 채 있으면 중산층인가? 그 기준은 다 다를 테다. 그저 집이란, 아파트란 내가 머물 곳이어야 한다는 게 가장 첫 번째 의미가 아닐까 싶다. 우리에게 집이란 그런 곳이어야 하는데, 매번 집을 떠올리면 돈과 연결이 되고, 그 연결은 절대 끊어지지 않는다. 은영이 정수와 결혼해서 집을 매매하자고 했을 때 정수는 곧 집값이 내려갈 거라면서 반대했다. 몇 번의 매매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정수의 반대로 은영은 전세를 옮겨 다녔다. 정수와 싸워서라도 그때 매매를 했어야 한다면서 후회했지만, 지금은 몇 번을 올려준 전세금으로 어디로도 갈 수 없게 됐다. 이게 은영의 현실이자,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가 집을 구하면서 경험하는 슬픔이다.


누구나 타이밍을 잘 잡고, 물건을 잘 보는 눈이 있어서 집을 매매하고 시세 차익을 얻었다면 좋겠지. 그런 소득을 얻는 것도 살아가는 즐거움일 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기회도 아니기에 매번 결말은 달라진다. 누구는 이익 보면서 추가로 다른 집을 매매할 수도 있고, 누구는 심각한 손해에 빚만 더 늘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알면서도 각자에게 주어진 기회가 다르기에, 집으로만 매겨지는 인생 시세 차익도 점점 커져만 간다. 소설에서 주인공 은영이 경험한 IMF부터 최근의 코로나 팬데믹에 이르기까지의 이십여 년을 보고 있노라면, 낯설지 않다. 우리도 겪었다. 그때의 현실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눈에 선하다. 뭔가 회복하려나 싶으면 다시 경제위기는 찾아오고, 조금 나아질까 싶어 힘을 내려고 하면 다시 반복이다. 그런 시간을 얼마나 더 겪어야 하는 걸까 싶지만, 은영이 마지막에 보여준 것은 어디에 숨어있다가 나온 건지 모를 희망이었다. 집값도 괜찮고 생활권도 좋은 신림동 은영의 새로운 터전은 어떻게 발전해나갈까. 다시 은영은 집값 오르기만을 기다리며 집의 의미를 다시 쓰고 있을까?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다. 이건 소설이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 역사를 압축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 어느 시대를 봐도 모른 척 지나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나 역시 은영의 그 세월을 그대로 걸어왔고, 집의 의미를 다양하고 복잡하게 생각하느라 지금도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여윳돈은 없고, 혹시 지금이 자산으로 집을 구해놔야 할 타이밍인가 싶기도 하고, 그럼 집값은 또 어디서 마련하나 싶은 걱정만 가득하고. 그러다가 이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빚 갚으면서 평생을 살아가게 될까 봐 또 마음을 비웠다가... 뭐가 이래. 마음이 참 씁쓸하기만 하다. 예전에 엄마가 그랬는데, 허물어져 가는 초가집이라도 누가 나가라고 안 하면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게 집이라고. 세상은 변했고 엄마의 말도 의미가 없다고 여겼는데, 이사 걱정 없이 사는 것만도 어딘가 싶을 때마다 엄마의 그 말이 자주 생각난다.



#복도식아파트 #서경희 #문학정원 #소설 #한국소설 #문학 #한국문학

##책추천 #아파트 #자산 #님비현상 #부동산#내집은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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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이 된 엄마는 지금도 TV를 보면서, 방송에서 휘리릭 지나가는 레시피를 적는다. 엄마의 노트는 벽에 걸린 큰 달력이다. 지나간 달의 달력 한 장을 쭉 찢어서 접어놓았다가, 갑자기 뭔가 적어야 할 일이 생기면 접어둔 달력을 얼른 꺼내어 적기 시작한다. 보관하기 편하게 노트에 적으라고 사다 드렸는데도, 엄마의 손에 가장 먼저 잡히는 건 찢어놓은 달력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습관이라고 여기면서도 나무라지 않았다. 엄마가 편하다면 그게 맞는 거지. 어느 날 엄마의 레시피 노트(?)를 보다가 한참 시선이 머물렀다. 거품을 버끔이라고 적어놓은 문장에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찾아보니 사투리였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엄마가 여기저기 적어놓는 것들을 찾아 읽어봤는데, 어디서나 맞춤법은 틀려 있었다. 아들을 우선하며 살아왔던 시절에 엄마의 고등학교 학력은 대단한 것이었을 텐데, 그마저도 공부에 열중하며 살지는 못했겠지. 한글 문해 교육 프로그램이 많은 것을 보면서 느낀다. 어느 시절의 우리 엄마들은, 자기 이름 석 자를 쓰지 못하는 삶을 받아들이는 게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알지 못하는 엄마의 시간은 어땠을까 계속 생각했다. 나이가 되었으니 소개받은 남자와 결혼을 했고, 결혼하고 보니 생활력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남편 대신 가정의 모든 것을 책임지며 살아온 세월이 엄마의 인생이었다, 고 나는 생각한다. 한밤중에 눈을 떴을 때 엄마가 짐을 싸서 나가는 걸 본 적도 있다. 동네 분이 엄마를 찾아서 데리고 오기도 몇 번. 어린 나이에 그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이대로 엄마가 돌아오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때의 엄마를 나는 잘 알지 못하지만, 엄마와 쌓아온 세월이 길어질수록 나는 엄마의 삶을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살아왔던 건 기억한다. 혼자서 편하게 살고 싶다고 노래하듯 말했던 엄마의 바람은, 이제 혼자서 사는 게 두려운 것이 되어버렸으니, 두 집 살림하듯 사는 지금 나의 일상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항상 엄마에게 빚진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이렇게 빚을 갚는 건가 싶기도 하다. 다른 자식 많은데 왜 내가 다 감당해야 하나 싶어서 가끔 억울하기도 한데, 어쩌면 거부할 수 없는 이 시대의 나란 여자의 삶이 또 그런 건가 싶은 마음에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을 종종 생각한다.


전작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읽으면서 어느 정도 저자 어머니의 삶을 엿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 책으로 저자는 어머니와의 시간을 되짚으며, 어머니 인생 자체의 기록을 다시 쓴다. 단순히 어머니의 지난한 삶을 적기 위한 시간이 아니었다. 어머니이자, 며느리, 아내로 살아온 여성의 삶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게 무엇인지 묻는 일이었다. 글쎄, 평범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던 저자 어머니의 마음은, 사실 내 딸이 하고 싶은 거 큰소리 내면서 살아가길 바라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여자여자를 조심시키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세상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은 이런 건가. 지나온 역사의 한 가운데 한국 여성이 있다는 걸 알겠는데, 이 역사가 왜 한국 여성의 삶을 이렇게 만들었나 하는 원망 비슷한 것도 생긴다. 엄마는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였다. 그나마 부유했던 외가의 사정 탓에 큰 어려움 없이 자랐다고 하는데, 지난한 역사가 만들어놓은 현대의 삶에 왜 엄마들은 한 구성원으로 그 고통을 혼자 감내하고 있었던 걸까.


경기가 어려워지고 가장이었던 아버지가 노동의 현장에 나가지 못할 때, 부가 노동자 효과는 빛을 발한다. 단순히 우리 부모의 얘기가 아니다. 저자의 글 속에서도 나오지만, 가세가 기울자 저자의 어머니는 생계를 위한 몸부림을 멈추지 않는다. 방 두 개까지 옥탑방에 살면서도 방 한 칸을 차지하는 시어머니 봉양에, 자꾸만 실패하는 남편의 시도에, 키워야 할 딸들에. 이 상황에서 움직임을 멈출 엄마는 없을 듯하다. 남성이 채웠던 노동력의 부재를 많은 여성이 채워가면서 이 경제를 이끌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어쩌면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이 급속도로 이루어진 데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수출의 급성장 뒤에는 많은 여성 공장 노동자의 이야기가 곧잘 들려오는 걸 보면 말이다. 어쨌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삶은 자발적이든 강요되었든 희생이 뒤따랐다. 부유하게만 살아왔던 아버지가 사업 실패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기자, 저자의 어머니가 나서서 가정 경제를 꾸렸던 일, 대물림하듯 시집살이를 저자의 어머니에게 베풀(?)었던 저자의 할머니. 이상하게 여자를 중심으로 서사는 이루어졌는데, 저자의 어머니의 어머니는 없었다.


많은 딸이 엄마의 삶을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할 것 같다. 왜 엄마는 엄마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살아왔던 걸까. 아마도 이 이야기의 시작은 그 지점인 듯하다. 나와 가장 가까운 것 같은데 내가 아는 건 없는, 그 이름 어머니의 인생을 기록하려는 마음이 오랜 잠에서 깨어난 거라고. 배울 만큼 배웠고, 자기 발로 어디든 갈 수 있는 한 사람이 마치 보이지 않는 사슬에 매인 것처럼 살아온 세월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저자 어머니의 고백과 나의 엄마의 시간을 들여다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아버지에게 보호받고 의지하며 살아온 삶이, 결혼과 동시에 이름을 잃은 한 사람을 살아가면서 바뀌는 거다. 이름이 있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로 살아오면서, 누구도 그 존재에 색을 입혀주려 하지 않았다는 것. 아버지 다음으로 의지하고 싶었을 남편은 방관자에 가까웠고, 엄마가 해내야 할 다양한 역할은 계속되었을 테다. 한 사람이 모든 영역을 관장하기를 기대했다는 표현 그대로였다. 읽으면서도 자꾸만 나의 엄마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우리 집의 그림 역시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연하게 엄마가 그 모든 것을 해결하고 이끌어야 하는 거라고, 그게 엄마의 역할이고 우리에게 해주어야 할 부모의 도리라고 여겼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엄마의 나이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렸고, 혼자 해낼 수도 없는 일이었을 텐데, 도대체 우리가 한 여자에게 얼마나 많은 짐을 지우고 이고 가라고 했던 걸까. 어디에도 엄마의 이름은 없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네. 돌아가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기를 꼽으라면 그때인 것 같아. 학생이었던 시절, 누구의 아내도 며느리도 엄마도 아니었던 시절, 내가 그저 나였던 시절.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31페이지)


엄마가 아닌 한 여성으로, 한 사람의 존재로 봐야 하는 일은 이제라도 시작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여전히 엄마의 존재를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엄마의 삶은 딸이라는 존재와 함께 나아갈 수 있다는 거다. 엄마와 연결된 나의 삶은 부정할 수 없고, 또 한없이 이해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에. 엄마를 온전히 설명하거나 묘사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엄마에 대해 생각하고 쓰고 싶은 마음은 계속된다. 오랜 세월에 걸쳐 함께한 엄마를 이제야 써 내려간 저자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모녀 관계이면서, 엄마의 영향을 받고 자라온 딸이면서, 엄마와 다른 인생을 살겠다고 외치는 사이의 마음, 말이다. 서로의 마음 알아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가장 모르는 사이, 닮았지만 다른 삶을 살아가는 모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엄마의 역사와 내가 살아온 시간을 생각한다. 엄마와 연결되었지만, 엄마의 삶을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으면서 거부하기만 했던 어느 시절의 모녀를 떠올린다.


이 이야기 속에서는 또 한 명의 여성, 저자의 할머니이자 엄마의 시어머니가 등장한다. 저자의 엄마에게 시어머니는 며느리, , 말동무, 시녀였다고 말하면서 시어머니의 세계에서 모든 역할을 감당하는 유일한 사람이 엄마 자신이었다고 말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가슴이 탁 막혔다. 세월이 흐르고 보니 그런 시어머니를 이제는 이해한다고 말하려는 걸까 싶어서. 다행인 건 저자의 기억 속 할머니와 엄마의 기억 속 시어머니는 달랐다는 거다.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나에게도 할머니는 엄마를 괴롭히는 못된 시어머니로밖에 기억에 남지 않았다. 며느리에게 함부로 말하고, 며느리의 물건을 막 집어가도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사람으로 남아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굳이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한 여성으로 이해하고 싶지는 않다. 애써 적어보고 싶지도 않다. 모든 말머리에는 나쁜사람이라는 존재로 적어갈 것 같아서 말이지. 대신 저자의 기록 속에는 거의 존재하지 못했던 엄마의 엄마가 있다. 기록되지 못했지만 존재하는 사람, 그런데도 엄마의 삶 속에서 시어머니가 존재하므로 엄마가 존재한다는 이유로 풀어갈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과 인정. 마음이 복잡해진다.


많은 독자가 비슷하겠지만, 이 책을 읽은 이후에도 엄마와 나의 관계는 각자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피곤하고 가끔은 짜증도 나고, 이제는 모른 척해야지 하면서도 다시 또 엄마의 옆에서 존재하는 내 마음이 참 여러 가지인데, 지금도 어떤 일 앞에서는 니가 나 때문에 고생이다라고 말하며 미안해하는 표정 한 번에 스르륵 무너진다. 아마도, 살아가는 일은 이런 건가 보다.










#나는결코어머니가없었다 #하재영 #에세이 #휴머니스트 ##책추천

#모녀관계 #엄마와딸 #여자의인생 #한국에서여성의삶 #엄마와딸의공동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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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관은 아내가 겁이 나는지 같은 여자 한 명이 함께해주기를바라고 있다며 서글서글한 말투로 설명했다. 그런 이유로, 마사헤일은 모든 일을 제쳐두고 당장에 따라나설 수밖에 없게 된것이다.
"마사! 서둘러!"
루이스 헤일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추운 데서 기다리시잖아!"
서둘러 현관을 열고 나가니, 앞자리에 남자 셋과 뒷자리에여자 하나를 태운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뒷자리에 올라탄 마사 헤일은 찬바람이 새어 들어오지 않도록 옷깃을 여민 뒤 옆자리의 피터스 부인을 바라보았다. 일년전 지역사회의 모임에서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보안관의 아내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말고는 생각나는 특징이 없었다. 피터스 부인은 키가작고 왜소하며 목소리도 흐릿했다. 피터스 보안관 이전에 근무하던 고먼 보안관의 부인은 목소리부터 우렁차고 힘이 있어서그 말이 곧 법이고 규칙인 것처럼 느껴졌었기에 더욱 비교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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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지가 가만 보이 걱정이라. 이래서,

며느라, 니가 와 얼굴이 와 철색(鐵色)이 지노?” 이러카이,

, 아버지예 제가 방구를 몬 뀌서 그랬읍니더.” 카더란다.

, , 방구로 뀌라. () 방구로 안 뀌고 살 수가 있나? 방구로 뀌라.”


새이(올케)는 저 모퉁이 기둥 잡고, 아범은 앞 기둥 잡으소.” 이래 카거든. 이놈우 방구가 얼매나 크게 낄란지 그러 카이께네, 그 시아버지 앞 기둥 잡고, 신랑캉 모퉁이 기둥 잡고 있으니께, 방구를 한 대 펑 터자 놓이께, 집이 꺼떡하게 넘어가 뿌거든.


또 이쪽으로 끼 노이까 이쪽으로 집이 꺼떡한다 말이지. 집을 이리 자빠치다가 저리 자빠치다가 그마 집이 다 찌그저 가거든. 어떻기(어찌나) 보골이 나는지 에레이 빌어무을 거 이년을 데려주야 되겠다.” 인자 데리다 주러 간다. (우렁이 각시는 당신이 아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중 방귀쟁이 며느리 27~28페이지)

 

시집온 며느리가 처음과 다르게 얼굴색이 썩어가고 있더라. 이를 이상하게 본 시아버지가 이유를 물었다. 며느리가 방귀를 뀌지 못해서 그렇다는 말에, 시아버지 너그럽게 방귀를 뀌라고 한다. 방귀, 그게 뭐라고 사람을 이렇게 얼굴색까지 변하게 한단 말인가. 그래서 며느리 방귀 뀔 준비를 하며, 시집 식구들 모두 모아 집안의 기둥 하나씩 잡고 있으라고 하니, 며느리 방귀 우습게 알고 이게 무슨 준비인가 싶었겠지. , 이제 카운트다운~ 빵빠라바라빵! 며느리의 방귀 한방에 집이 이쪽으로 쓰러지고, 다시 또 한방에 저쪽으로 쓰러지고. 오메, 세상 이런 방귀는 또 처음 보네. 뭔 놈의 방귀가 집을 무너뜨릴 정도의 폭탄급이란 말이냐. 안 되겠다. 이 며느리 방귀 한 번만 더 뀌면 길거리로 나앉게 생겼네. 같이 못 살겠으니 친정으로 데려야 주야 쓰겠네.


속이 다 시원해서 박장대소하며 읽었다. 방귀, 이게 뭐라고. 나를 힘들게 하는 이놈의 방귀를 박살을 내 버리자고 생각했는데, 이 며느리 이야기 읽으니 속이 뻥 뚫리는 것 같더란 말이다.


방귀가 마려워.”

화장실로 가.”

소리가 들릴 거잖아.”

그래도 화장실로 가서 해결해.”

싫은데. 나는 그냥 여기서 뀌고 싶은데?”

그건 안돼. 우리 사이에 방귀는 아직인 것 같아.”


신경 쓰는 일 생기면 변비에 시달리고, 언제나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상태다. 그러다 가끔 터지는 방귀가 내 속을 좀 시원하게 해주곤 했다. 결혼하고 나니 남편 앞에서 방귀를 뀌지 못하겠는 거라. 남편은 처음부터 방귀는 트지 말자고 했고, 나는 그럼 방귀가 마려우면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화장실이나 방으로 들어가서 뀌고 나오라고 하더라. 그럼 냄새는 어쩔 거냐고 했더니, 그것도 같이 해결하고 나오라나? 어쩌란 말이여. 방귀를 뀌란 말이여 뀌지 말란 말이여.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아직도 나는 방귀를 편하게 못 뀌고 있는데, 오래된 이야기 속 방귀쟁이 며느리 이야기가 이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얼마나 방귀를 참으면 얼굴색이 철색이 되고, 참았던 방귀를 얼마나 시원하게 뀌었으면 집이 쓰러질 정도냔 말이다. 이 부분을 남편한테 읽어주면서, 방귀를 참으면 이렇게 된다고 했다. 내가 방귀를 참다가 뀌면 우리 집이 공중분해 될 수도 있다고. 그래도 싫단다. 방귀 트는 사이는 되지 말자고. 마침 그때 TV에서 방송인 박수홍 부부가 나왔는데, 박수홍은 아직도 다른 사람 앞에서 방귀를 뀌지 않는다고 했고, 아내는 진즉에 방귀를 텄다고 한다. 그것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 남편과 이 장면을 같이 보면서, 저렇게 방귀를 귀엽게 트는데 너무 즐겁지 않냐고 했더니 알아서 하라고 하대. 이거 방귀 터도 괜찮다는 말, 맞지?


우리가 흔히 알던 옛이야기가 여성 서사 중심으로 들려오는 책이다. 전래동화 구술 채록본의 일부로 구성된 책인데, 입말 그대로 들려주다 보니 문장을 한참 읽어야 무슨 말인지 들린다. 그래도 끝까지 읽게 되는 건 그동안 우리가 알던 동화의 결말이 아니어서 재밌다는 거, 여성의 시선으로 다시 보는 동화여서 해석도 다르게 들려올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 흔한 예가 <선녀와 나무꾼>이 아니었던가. 이건 매체에서도 흔하게 들었던 여러 범죄(?)의 증거가 되기도 하니, 아마 지금도 여러 방향에서 새롭게 접근할 작품이 될 것 같다. 그렇다고 한 가지 방향에서만 다가가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면서 봐야 할 것들,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인간 세상에서 들여다봐야 하는 문제까지 언급한다. 그동안 우리가 알던 옛이야기가 어린이 교육용으로 재구성되며 교훈적인 내용으로 전해진 것에 비해, 구술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좀 더 심오하기도 하다. 여성의 삶을 더 깊게 비추기도 한다. 아마 앞에 몇 페이지만 읽어도 웃고 울면서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될 거다.


신랑의 상식으로 여자는 원래고기 같은 건 안 좋아하고, 누룽지를 밥보다 더 좋아하며, 식구들의 다음 끼니를 남기려고 대궁밥에 만족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아내가 감히 건장한 남자처럼 먹으려 드니 이거 야단났다. ‘된장녀김치녀처럼 제 몫을 챙기고 입치레를 하면 집안 살림, 나라 살림을 어떻게 불리겠는가. 더구나 밥을 양껏 먹고 기운이 솟구쳐 남자를 업신여기기라도 하면 더 큰 낭패가 아닌가. 그는 아내의 숨은 욕망을 들춰내고 뱃구레를 시험하기로 한다. (우렁이 각시는 당신이 아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중 밥 많이 먹는 색시 51~52페이지)


<밥 많이 먹는 색시>는 진짜 웃기는데, 눈물이 나게 서글프다. 밥 많이 먹는 게 죄가 되나? 결혼한다는 게 같이 살아갈 배우자를 곁에 두는 게 아니라, 무임금 노동자 한 명 들이는 일인가? 남편의 함정에 걸려들어 남편이 권하는 대로 밥을 양껏 먹었고, 남편은 분을 못 이겨 아내를 때려죽인다. 곧 남편은 첫 마누라와 달리 숨 쉴 만큼만 먹으면서 부모 조상 잘 섬기고, 집안 살림 일구고, 남편 기죽지 않도록 잠자리 해 주고, 아들을 쑥쑥 낳아 줄 여자를 사방으로 구하러 다닌다. 그러다가 바라던 대로 입이 벌레 주둥이만큼 작은 여자를 찾아내는데... 이번에는 남편 입맛에 맞는 아내를 구했을까? 깔깔깔깔~ 나는 이 부분부터 뭔가 반전이 일어나지 않을까, 두 번째 아내가 결코 남편이 찾는 이상형(?)이어서는 안 된다고 굳게 믿으면서 읽었잖아. 남편이 뭔가 의심하기 시작할 때부터 나는 그 의심을 밝혀줄 증거가 절대 드러나면 안 된다고 빌고 또 빌었단 말이야. 남편은 아내가 적게 먹는다는 걸 알았다. 그가 원하는 대로 살아주고 있다고 믿었는데, 이상하다. 아내는 분명 적게 먹는데, 이상하게 쌀이 줄어들어. 막 줄어들고 있다는 거지. 뭘까. 그러다가, 몰래 아내를 훔쳐보다가 놀랐잖아. 이럴 수가!


쌤통이다. 아무리 여러 번 결혼하고 여러 번 아내를 쫓아내고 죽인다고 해도, 그가 원하는 여자는 찾지 못할 거라는 저주를 걸면서 이야기가 끝나기를 바랐다. 실제로 이 이야기의 결말은 여러 버전이 있지만, 아내와 화해하거나 행복하게 지냈다는 결말은 못 들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의 입맛은 완벽하게 찾아줄 수는 없다는 것을 그는 죽을 때까지 알지 못한 채로 살았을 테다.


우렁이 각시 이야기도 그렇고, 대부분 우리가 들어왔던 동화는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결말이었다. 대부분 남성이 요구하는 여성을 등장시키거나, 한없이 착하고 말 잘 듣는 여자나 아들을 그려놓는다. 실제 이야기 속의 여성은 자기 욕망과 존재감의 목소리를 가진 존재들이었다. 부잣집의 고명딸은 음식 위에 장식이 되는 고명이 아니었다. 동물의 간을 빼먹으며 자기 원하는 것을 가질 줄 아는 사람이었다. 가족의 가장이라는 이유로 폭력이 용서되는 것도 아니며, 아무런 사과 없이 다가와서도 안 된다. 가족 안의 남성이 무시하고 함부로 대했던 딸에게 미안하다는 말조차 아까워하는 당신은 가족도 아버지도 아니다. 두 손을 잃은 채로 쫓겨난 색시는 우물가에 모인 여성들에게 이해받고 도움받았다. 여성이 세상을 대하기 위해서는 연대하는 마음이 우선이었던가. 이야기 속 악역 전담이었던 계모나 시어머니도 재해석되어 어머니의 의미를 다시 읽어야 할 때인 듯하다. 가부장제의 굴레에 갇힌 채로 인간 대접받지 못했으나, 분노와 서러움을 담은 여성의 이야기는 이렇게 우리 곁에 남아있다. 성차별의 문제가 아니라, 같이 잘 살아갈 세상에 관심 두어야 할 이야기라는 거다.


내용도 주제도 너무 다양한 이야기가 이 작은 책에 담겨있다. 처음에는 입말이 눈에 익지 않아서 힘들었는데, 읽다 보니 이제는 이 문장들이 오디오북처럼 들린다. 누군가의 입을 통해 생생한 목소리로 라디오 드라마 듣는 기분? 아니면 조선 후기 실력 좋은 전기수가 다녀갔거나. ^^


어쨌든, 이 책이 참으로 고맙네. 나는 이제 시원하게 방귀를 뀔 거다. ! 빵빵!! 빵빵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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