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 명함만 없던 여자들의 진짜 '일' 이야기 자기만의 방
경향신문 젠더기획팀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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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볼 게 있어서 공부하는데, 직업으로 보지 않는 활동을 쓰라는 문제가 있었다. 문제 자체가 낯설었는데, 어쨌든 외워야 하니까 살펴보다가 발견한 답 중의 하나는, ‘자기 집의 가사 활동에 전념하는 경우였다. 우리가 흔하게 주부라고 표현했던 내용을 풀어쓰면 저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게 직업이 아니라니. 그렇다면 개인정보 입력 중에 뜨는 신분 항목에서 여전히 보이는 주부는 무엇일까. 궁둥이 한번 붙일 사이도 없이 집안에서 종종거리며 왔다 갔다 하는 그 존재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집안에서 엄마의 모습은 여전히 비중이 큰데, 보이는 것과 다르게 작게 설명되는 사람은 어디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


그때는 그랬다, 고 한마디로 표현하기에 우리 엄마들 인생은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산 같았다. 이 책에 담긴 여성의 인생은 평생 쉬지 않고 일해왔던 시간 그 자체였다. 형편이 어려우니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게 당연시됐고, 등 떠밀리듯 결혼하기도 했다. 아이 낳고 산후조리할 시간도 없이 논으로 밭으로 나갔다. 안에서는 가족들 식사 준비부터 아이들 돌보며 키우는 일까지, 누군가는 병에 걸린 시부모를 돌보는 것도 해내야 했다. 똑같이 밖에서 일하는데도 아내의 일, 직업을 인정하지 않는 남편도 많았다. 그래, 여기서 또 한 번 저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때는 그렇게 사는 게 맞다고 믿었던(?) 시대였다고 말이다. 그래도 이 여성들의 노동은 어디로 가지 않았다.


탄광에서 일하던 남편이 죽자 남편이 일하던 곳으로 들어가 탄을 골라내는 선탄공으로 일하고 있는 여성, 남대문시장에서 밥을 파는 여성, 농사를 지으며 뒤늦게 한글을 배우며 자기 이름을 쓰는 여성.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이들의 삶이 아니었나? 남편이 중심이 되어 흘러가는 가정 안에서, 같은 일을 해도 남성보다 적은 급여를 받았던 사회에서 그 삶을 버티고 견뎌온 여성의 이야기에 울다가도, 그 시간을 도망가지(?) 않았던 언니들의 전투력에 많이 놀랐다. ‘집사람이라 불리며 그 집안에서 어떤 일을 하며 살아왔는지, 평생 일하고도 모자라 이제는 손자 돌봄까지 하는 노동의 세월을 읽는다. 도시의 삶이 여성의 존재를 높여주지 못했을 텐데, 농촌의 삶을 오죽했을까. 장소는 달라도 인생은 다르지 않았던 여성들의 이야기에 눈을 뗄 수가 없다.


끊임없이 일하는 인생이었는데, 그 시간을 증명하고 나를 소개할 명함이 없다는 게, 뭔가 좀, 아니 많이 서운할 것 같다. 열심히 싸워온 언니들의 시간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렇다고 모를 우리가 아니지 않은가. 이미 옆에서 많이 지켜봐 왔고, 어쩌면 이 시각에도 이 언니들과 같은 시간을 쌓고 있을지 모를 또 다른 언니들도 분명 있을 테니까.


어렸을 적에는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어느 위인전에 나올만한 인물을 적어내곤 했다. 훌륭하다고 하도 들어와서, 그들의 업적을 배우면서 자라왔기에 당연히 존경해야 하는 인물이라고 들었기에, 그 이름을 적었다. 어른이 된 후에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는 주저 없이 엄마라고 적었다. 오랜 세월 옆에서 지켜본 엄마의 인생은 존경하지 않고서는 기억할 수 없을 시간이었다. 이 책 속의 언니들처럼, 우리 엄마의 시간도 다르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닭을 튀겼고, 쫄면을 삶았고, 반찬을 만들어 팔았다. 늦은 밤에 자다가 일어나 콩나물에 물을 주었고, 냄새나는 똥을 치우며 닭을 키웠다. 또 뭐가 더 있을까. 내 기억 속 엄마는 집에서 밖에서 일하고, 늦은 저녁 지친 몸을 뉘며 일일 드라마를 보는 낙으로 살았던 것 같다. 그래, 여기서 또 한 번, 그때는 그랬다. 그런 일상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고,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시간이었다. 지금의 나에게 존경하는 사람을 묻는다면, 1초의 고민도 없이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어떤 일을 하든지, 얼마를 벌든지, 그게 누구라도, 열심히 사는 사람을 존경한다. 그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 속에, 우리 엄마가 있었다. 그리고 당신의 엄마가, 대한민국의 많은 여성이 있다.


이 언니들의 삶은 귀하고 아름답고,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시절이 여성의 존재나 노동이 인정받지 못했던 때라고 해도, 이들의 삶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가 없었다는 게 더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때로는 어쩔 수 없이 흘러가는 삶이라고 해서 허투루 살아오지도 않았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그 흔한 명함 한 장이 없어도, 얼마나 큰일을 해내는 존재로 살아왔는지, 언니들이 알고, 이제는 우리가 안다. 지금도 옆집 아줌마는 우리 엄마의 이름을 큰언니 이름으로 대신 부르지만, 이제는 병원이나 가야 엄마의 이름이 정확히 불리고 있지만, 누구도 이름을 잃고 살아왔던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일하는 자부심으로 살아온 여성들의 이야기에 빠져있다가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지만, 그 삶에 책임을 지고 있었다. 다 때려치우고 내려놓고 싶지만 포기하거나 도망가지도 않았다. 자기 일에서, 삶에서 가치를 느끼며 자기 존재감 뿜뿜하는 힘을 얻을 수 있게 한다. 살아보니 인생 그렇게 길지 않다고, 재밌게 살고 힘들게 살지 말라는 조언(!), 혹시 지금 어디선가 갈팡질팡 흔들리고 있거나, 찾지 못한 답으로 고민하는 이가 있다면, 이 언니들의 화끈한 인생 이야기에 기운 받고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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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 - 배달 사고로 읽는 한국형 플랫폼노동
박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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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보니 저자는 이 책 외에도 라이더의 삶과 현실에 관한 책을 쓴 적이 있었다. 플랫폼 구조에서 라이더로 살아가는 일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이고, 그렇기에 더 궁금했었는데, 저자의 다른 책을 살펴보니 이 책이 새삼 무엇을 더 얘기할 수 있을까 싶었다. 이상하다. 아마도 많은 라이더가 배달 현장의 이야기를 꾸준히 전하고 있다고 해도, 매일 새롭고 희한한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배달 앱과 라이더 사이의 관계와 수입 계산 구조에서부터, 속도전이라고 할 만큼 배달 업무의 1순위가 얼마나 많은 위험을 낳고 있는지, 그 이유로 산재의 발생이 더 많은 것 같은데 실제로 산재가 생각보다 많이 신청되지 않는 이유 역시 이 책이 말하고 있다. 직접 현장에서 뛰지 않으면 다 알지 못할 그곳의 이야기, 플랫폼 노동의 진실이 이렇게 들려온다.


많은 사람이 배달 앱으로 음식을 주문하고 있을 때도, 나는 이용하지 않았었다. 두 식구 먹을 것 주문하려니 배달비가 아까웠고, 배달비를 부담하며 먹고 싶을 정도로 간절한 게 없었다. 그러다 거의 2년 전부터 배달 앱을 종종 이용하게 되었는데, 그마저도 배달보다는 포장 위주로 이용하다 보니, 우리 집에 배달오는 기사님과 대면할 일이 거의 없었다(비대면 배달이라고 해도 말이다). 내가 배달 기사(오토바이)를 마주하는 때는 도로에서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목적지를 향해서 걸어갈 때나. 그때마다 드는 생각은, ‘저분들이 어딘가로 배달하러 가는구나하는 게 아니라, ‘저렇게 위험하게 다니다가 언젠가 큰일이 나겠다하는 걱정과 좀 천천히 안전하게 가지 그러냐는 원망 비슷한 마음이었다. 안다. 교통법규 지킬 것 다 지키고 배달이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위험한 장면을 여러 번 목격하고 보니, 그들을 마냥 이해한다고만 말하기에는 뭔가 아쉽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많은 배달 이용자가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조금 늦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음식을 기다리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음식을 주문하고 현관문 앞에서 라이더를 마주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생기는 많은 문제가, 단순히 라이더의 과격한 운행 습관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보기에는 굉장히 단순해 보이는 배달 주문부터 배달 완료까지의 과정에 플랫폼 구조가 있다. 여러 위치에서 수익을 내야 하는 구조의 사람들이 모여 구성된 곳이다. 그곳에는 개인도 있고 기업도 있다. 저자는, 배달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고에 배달플랫폼의 구조적 모순이 집약되었다고 말한다. 솔직히 이 책을 다 읽었는데도, 저자가 설명해주는 배달플랫폼 구조를 명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했다. 다만, 서로가 원하는 걸 얻으려고 만들어놓은 것 같은 플랫폼 구조가 많은 사람을 위험에 노출한다. 특히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배달은 더 익숙해지고 있었기에, 사고의 위험도 더 많아진 게 사실이다. 더 많은 주문, 더 빨리 배달해야 하는 현실에 놓였으니까. 분명 하나의 시장이 커지고 발달하는 건 나쁘지 않을 거로 여겼는데, 이 배달 시장은 커지기만 하는 게 문제였던 거다.


자유로운 업무 시간 :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만 일하세요. 당신의 시간은 소중하니까요.

세상 쉬운 꿀알바 : 19세 이상이면 배달 경험 없어도 누구든지 쉽게!

누구나 시작 가능 :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 심지어 도보까지!

앱에서 등록하고 바로 배달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103페이지)


솔깃한 이 구인광고를 바로 무시할 수 있는 사람 얼마나 될까. 아무리 작은 회사에 이력서를 내려고 해도, 자격증이나 경력 사항을 채워 넣어야 하는 건 기본이었으니, 경험이 없어도 이동수단을 정하지 않고도 누구든 가능하다는데 말이다. 이건 구직이 절실한 사람을 사고의 한가운데로 몰아넣는 일이었다. 현실에서 사고를 많이 겪는 사람은 초보 라이더라고 한다. 난폭운전을 하지 않았는데도 사고를 겪는 일이 왜 일어날까? 보통 출근 첫날부터 이주 사이에 많은 사고가 일어난다는데, 이는 미숙함 때문이었다. 도로를 잘 모르고, 계절과 날씨, 그날의 차량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도로를 경험하지 않았던 게 원인이다. 그러니 위험을 감지할 수 없고, 사고를 피하는 건 더더욱 어렵다. 오토바이를 능숙하게 다루지 못해서도 사고는 생긴다. 거기에 더해진 플랫폼 기업의 윤리적인 문제까지 빼놓을 수 없는 사고 원인이 된다.


배달이 늦다고 다그치는 게 소비자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배달 재촉 1위는 음식점 사장이라고 한다. 왜 그럴까 싶었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다. 음식 배달이 늦으면 손님에게 항의를 받고, 거기에 혹시라도 불어터지거나 다 식은 음식이 도착해도 항의를 가게로 할 테니까. 그럼 사장님은 다시 배달노동자에게 화를 낼 테고. 이 화는 돌고 도는 것만 같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음식점 사장님이 직접 배달노동자를 고용하면 될 텐데(식당에 직접 고용된 우리 예전 방식으로 말이다), 그건 인력관리나 비용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가게 사장은 배달대행업체와 위탁계약으로 배달노동자를 마주한다. 책임은 피하고 비용은 절약하고 싶고, 일하는 건 마치 자기 가게에 소속된 노동자처럼 일해주길 바라는 거. 그게 문제가 아닌가.


배달료의 문제도 만만하지 않았다. 가까운 곳은 적게, 거리가 좀 먼 곳은 많이, 받는 게 배달료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던 거다. 배달료가 도박판이 되고, 배달 노동이 사고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이미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비나 눈이 오는 날 배달료가 높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위험한 상황에서 더 높은 비용이 발생하니 배달료가 도박판이 되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구조였다. 하지만 이게 옳기만 한 구조도 아니지 않은가. 그건 배달노동자가 사용하는 앱에 많은 단서와 문제점이 있었고, 이들은 이걸 실험하면서 배달 콜을 하는 AI의 문제와 함께 많은 과제를 남겨주었다. 저자가 설명하는 배달 노동의 현실에서 필요한 것 또한 플랫폼 기업과 노동자에게 도움이 될 산재보험의 변화였다.


도로의 위험이나, 플랫폼 기업의 윤리성, 여러 가지 배달 노동 구조의 문제가 도로 위에서 벌어지고 있다면, 마음 위에서 생기는 사고에 감정이 폭행당하는 건 금방 회복 가능한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는 손님의 폭언은 물론이고, 아파트 배달에서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라는 입주민의 요구, 더위와 추위에도 가게 안에서 픽업 물건을 기다릴 수 없는 상황(가게 밖에서 기다리라고 한다는 것), 급한 생리적 문제에도 가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게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라이더가 한두 명 드나드는 것도 아니고, 가게 화장실을 누구나 이용하다 보면 또다시 발생하는 비용에 관해 가게 사장님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모든 라이더가 항상 그 가게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도 아닌데, 그것도 배려하지 못하는 게 당연한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각자의 이해관계로 성립되는 플랫폼 배달 노동의 구조에서 책임의 자리는 누가 앉아있어야 하는지. 모두가 그 책임의 테두리 안에 있음에도, 정작 무슨 일이 생겼을 때는 배달 노동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떠안게 되는 건 아니었는지 거듭 묻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의 후반부에 저자가 언급한 해결방안이 있다. 물론 그게 완벽한 답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현장에 있는 사람이 직접 겪고 호소하는 방법이니 주의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고용 형태와 임금체계가 오토바이 속도계를 조절하는 만큼 이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며, 라이더를 위한 최저임금제도 역시 고려해야 한다. 플랫폼산업의 혁신을 위해 이륜차 면허와 관리체계를 정비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륜차의 원활한 운행을 위한 도로 정비도 살펴봐 주고, 노조법 개정으로 라이더를 보호에 힘써 주기를. 특히 마지막 장에 배달 라이더를 위한 산재보험 사용설명서는 라이더분들에게 좋은 팁이 될 것 같다. 신청 방법을 몰라서도 접근할 수 없던 산재보험 신청 절차를 아주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언젠가부터 배달 주문은 우리 삶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우리가 편해진 만큼, 우리가 불편했던 일을 대신에 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 자리에 있는 누군가가 억울하지 않게, 일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게, 위험과 책임에서 공정하게 일할 수 있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이 책이 많은 이들(플랫폼 기업이나 업체 사장님, 배달라니 더, 주문하는 소비자)에게 이 구조의 현실과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이해하고, 개선방안을 같이 고민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플랫폼은안전을배달하지않는다 #박정훈 #한겨레출판 ##책추천 #배달노동자

#책리뷰 #플랫폼산업 #하니포터 #하니포터6_플랫폼은안전을배달하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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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운
티파니 D. 잭슨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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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네 눈 정말 예쁘다.”

갈비뼈 안에서 심장이 세차게 뛰고, 내 손은 마치 늘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울퉁불퉁한 그의 손등을 어루만진다. 그러다가 퍼뜩 정신이 든다…… 지금 나는 코리 필즈를 만지고 있다. 그 코리 필즈를……. (38페이지)


솔깃하지 않은가? 내가 바라보던 우상이 나에게 칭찬을 해준다. 눈이 예쁘다, 목소리가 좋다, 노래를 잘한다. 그냥 칭찬이 아니다. 노래하고 싶어 오디션에 참가한 현장에서, 우연처럼 만난 우상이 나의 노래를 칭찬하고, 내가 가수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겠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이게 꿈인가 싶어서 뛰는 가슴을 단속하지만, 잘 안 된다. 그는 코리 필즈니까. 지금 최고의 가수이자 모두가 만나고 싶어 하는 한 사람이고, 이 분야에서 그의 손길을 받는다면 영원히 노래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니까.


열일곱 소녀 인챈티드는 노래하는 게 꿈이다. 하지만 그녀의 현실은 이 꿈이 쉽게 이뤄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백인 다수의 고등학교에 다니지만, 그녀의 가족은 흑인이고, 복장 규정에 머리카락을 밀어버린다. 그녀의 유일한 친구 갭은 라틴계이기에, 사람들은 둘을 보고 수군거린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게 되는 일상에서 그녀의 유일한 희망은 노래하는 것이다. 그런 바람이 쉽게 이뤄지는 세상이었다면, 그녀에게 이런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다. 잘못한 것이 없어도 단속 대상에 올려지는 게 비일비재한 흑인이니까. 스스로 잘못이 없음을 증명해야만 일상이 흘러가는 곳이었다.


소설은 노래하고 싶은 소녀 인챈티드가 우상 코리 필즈를 만나면서 이 세상의 어떤 부조리함을 경험하게 되는지, 보호받지 못하는 어린 흑인 소녀를 어떻게 성범죄의 대상으로 삼게 되는지 보여준다. 성인 남자가 자기가 가진 권력으로 어린 소녀를 가스라이팅한다. 심리적으로 조종하면서 성을 착취한다. 누군가의 간절함을 인질로 삼아 온갖 협박으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취한다. 그렇다면 벌을 받아야지. 그가 하는 짓은 명백한 범죄이고, 세상은 죄를 지은 사람이 벌을 받는 게 마땅하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이런 정의대로 세상이 흘러갔다면, 인챈티드와 다른 소녀들이 겪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 코리 필즈의 범죄가 제대로 심판받았다면, 또 다른 인챈티드들이 생기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어떻게 녹아들 수 있어요?”

좋아. 스튜디오의 규칙은 다음과 같아. 첫째,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무도 몰라야 해. 이곳은 마법이 펼쳐지는 곳이고, 우리의 비밀을 누설해버려선 안 돼. 알겠어? 그러니 그 누구한테도, 네 어머니한테도 말하지 마.”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의문이 들지만 그런 생각조차 유치해 보이는 데다 그는 이미 나를 이렇게나 신뢰하고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100페이지)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어린 소녀들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고 아무런 벌도 받지 않은 사건은, 실제 일본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와 닮았다. 오랜 세월 남자 아이돌을 키운 제이 팝의 제왕이 연예계 거물이라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성적 학대를 일삼으며 했던 말은, 아이돌로 키워주겠다는 유혹이었다. 피해자들의 걱정은 하나였을 거다. 아이돌로 데뷔하지 못하면 어쩌지? 그의 입김 하나로 연예계가 쥐락펴락하게 되는 것을 수도 없이 봤을 테니, 그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겠지. 아이들 잘못이 아니다. 왜 그가 그런 힘을 갖게 되었는지, 그 힘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알면서 모른 척한 세상의 잘못이다.


인챈티드가 코리 필즈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고, 그가 음반을 내주겠다면서 인챈티드의 일상을 소유하게 되는 과정이 눈에 선하다. 피해자가 괜찮다고 말하게 만드는 분위기, 수사에 적극적이지 않은 경찰,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한 사람을 판단하고 우러러보는 시선들이 많은 코리 필즈를 만드는 거였다. 거기에 더해진 인종 차별은 이 사건이 이렇게 커지게 한 큰 이유가 된다. 경찰은, 세상은 흑인 여자가 한 말을 그대로 믿지 않았다. 책 속의 문장처럼, 인챈티드가 백인이었다면 코리 필즈가 진즉에 경찰에게 잡혀갔을 텐데. 이 문장만 봐도, 세상에서 흑인으로 차별받는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지 느껴진다. 여성이어서, 흑인이어서 차별받아야 할 이유인가? 범죄의 피해자이면서 침묵해야만 하는 이유가 되느냔 말이지.


자기가 가진 돈과 권력으로 많은 미성년 소녀에게 성폭력을 일삼고, 그 아이들을 가족과 세상으로부터 격리하면서 자기만 의지하게 만들고, 세상의 시선이 어떤지 알기에 자꾸만 비밀을 만들게 교묘하게 착취하고 고립시킨다. 친밀함으로 다가와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든 후에야 숨겨진 발톱을 드러내는 이 나쁜 인간(인간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지만)에게 죄를 물을 수 없게 하는 세상의 이상한 방식이 답답하다. 이 또한 우리 인간이 살아가면서 만들어낸 모양새일 테니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말 그대로 괴물의 탄생은 서서히 스며들 듯 계속되어왔고, 그 괴물을 만든 게 우리 사는 사회였다는 게 충격적이다. 인챈티드가 당한 피해와 코리 필즈의 실체를 알리기 위해 많은 사람이 노력하고 도와주고 있어도 그녀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녀의 상처를 여러 곳에서 묵인했던 게 한순간 없던 일이 되지도 않는다. 코리 필즈의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그녀는 코리 필즈의 죽음에 비로소 숨을 쉴 수 있게 된다. 사람들도 법도 해결해줄 수 없던 게, 가해자가 사라지니 해결된다. 웃음만 난다. 어느 순간, 우리가 차별이 당연시되는 사회에 사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된다.


피해자의 행실을 탓하며 비판하는 게 익숙해지기 전에, 죄를 저지른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는 사회가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지 보여주는 이야기다. 가독성이 좋아서 빨려 들어가듯 읽을 수 있었지만, 이렇게 무서운 존재가 인간이라고 느끼는 순간 소름이 돋는다. 이 당연한 걸 간절히 바라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게, 여전히 무섭다. 또 다른 인챈티드가 나오지 않으려면 우리의 시선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경고하는 메시지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그로운 #티파티D.잭슨 #소설 #외국소설 #청소년소설 ##책추천 #문학

#그루밍 #가스라이팅 #차별 #인종차별 #성장이야기 #한겨레출판 #하니포터_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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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테크로 생각보다 많이 모았습니다 - 경제지 홍 기자가 알려주는 똑똑한 절약의 기술
홍승완 지음 / 가디언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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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할부로 가방을 질렀다. 이달의 나와, 다음 달의 나와, 다다음 달의 내가 힘을 합쳐 갚으면 무엇도 두렵지가 않다. (68페이지)

- 우리 엄마가 늘 하시는 말씀이 있지. 할부 좋아하다가 망한다고. 하루 커피 한 잔 값 아끼면 살 수 있다는 쇼핑호스트의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


나는 투자에 재능이 없다. 여동생이랑 조카가 주식을 알려주긴 했는데, 계좌 개설까지 하고도 막상 주식에 발을 들여놓자니 두려웠다. 게다가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어리바리 몇 년이 흘렀는데도 알 수 없어서 아예 앱을 지워버렸다. 누구는 펀드도 가입해서 관리한다고 하고, 한참 코인이 대세일 때 많이 올라서 좋았다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주변에서 다들 그렇게 투자를 하는데, 나에게 투자는 오르기에는 너무 높은 산이었던 거다. 투자는 포기하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누가 투자로 많은 돈을 벌었다고 말해도 잠깐 부러워하기만 했다. 내 능력 밖의 일에 미련을 두지 말자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스렸다.


이번 생에 부자가 되기는 틀렸나 봐. 역시 다시 태어나는 것 말고는 부자가 되는 방법이 없는 걸까? ㅠㅠ 참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불금의 치맥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이 야심한 밤에 치킨을 주문하고 말았으니. 이상하게도 그렇게 주문한 치킨을 맛있게 다 먹은 적도 없다. 항상 갈등하다가, 어김없이 주문하고, 땅을 치며 후회하고.


포드 자동차 설립자 헨리 포드는 부자 되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부자가 되는 방법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부모로부터 상속을 받아라. 둘째는 부자와 결혼해라. 셋째는 버는 돈보다 적게 쓰고 저축하라.” 첫째와 둘째는 이번 생에 틀렸다. 난 앞으로 셋째에 집중하기로 했다. (47페이지


경제신문사의 기자로 일하는 저자는 일찌감치 현실을 깨달았다. 어디 깨닫기만 했을까, 몸소 체험하며 아끼는 습관을 익혔다. 이 책 읽다 보면 어려울 게 없는 방법이었다. 근데, 왜 안 됐던 걸까? 소비습관을 바꾸면 되는데 그게 왜 쉽지 않은 거냔 말이다! (생각해보니, 오늘 낮에 덥다고 망고 스무디도 하나 마셨어. ㅠㅠ) 저자가 경험한 시행착오가 지금의 저자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NS에 보여주기 위한 소비를 일삼았고, 저축 하나 없이 오늘을 즐기며 살았다. 자기관리는 필수라며 이것저것 사들인 품목에 마음이 풍요로웠다. ... 어느 날 급여통장에 찍힌 잔액 ‘0의 힘이란 무서웠다. 별수 없다. 소비습관을 바꾸는 것 말고는 저자가 통장 잔액을 지킬 방법이 없었다.


버는 재주가 없으니 짠테크로 살아남아야 했다. 저자의 시작도 그랬다. 투자하려면 종잣돈이 필요한데, 그 종잣돈 모으기가 쉽지 않았던 터였다. 게다가 저자 역시 일을 하는데 통장은 항상 텅장으로 머물러 있었다. 물론 통장 잔액이 바닥이 되는 이유는 다 있었다. 그걸 자신이 다스리지 못한 탓이 크겠지. 버는 돈 안에서 쓰고 저축하고 해야 하는데, 저축은 생각하지도 못할 일상에 익숙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아끼는 거였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최소한의 금액으로 생활하면서, 물론 급여 일부분을 저축으로 먼저 분리해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유롭게 먹는 점심은 기억에서 지우고 구내식당에서 해결했다. 저녁은 어제 먹고 남긴 재료들로 직접 해서 먹을 것이다. 크림을 듬뿍 얹은 커피 대신에 집에서 가져온 커피믹스로 대신한다. 출퇴근하면서 알뜰 교통카드로 교통비도 아낀다. 지출이 아예 없는 날도 만들어보자고 다짐한다. 저자의 하루 대부분이 이렇다. 하지만 돈을 한 푼도 안 쓴 날을 찾기는 어려울 테다. 우리의 일상이 그러하니까. 밥도 먹어야 하고 커피도 마셔야 한다. 필요한 문구도 사야 하고, 욕실에 다 쓴 샴푸도 채워 넣어야 한다. 움직이는 것 자체가, 숨 쉬는 모든 시간에 돈이 들어간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아껴야 한다. 아끼고 또 아끼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저자가 아낀 만큼 모았냐고? 많이 모았더라. 3년 동안 아껴서 목표 자금 5천만 원을 모았단다. 대단하다. 그 흔한 투자에 눈 돌리지 않고 아끼고 모으면서 이뤄낸 성과였다. 저자가 괜히 아끼는 방법을 택한 게 아니다. 사실 주식이나 펀드 같은 투자 수익률을 계산해보니 가성비가 좋지 않은 재테크였다는 거다. 주식으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노동을 고려했을 때, 전혀 이익이 되지 않는 방법이었다. 차라리 아끼는 게 더 이득이고 빠르겠다고 판단한 저자의 선택은 옳았다. 버는 재주가 없는데 괜히 투자로 스트레스까지 얹을 필요가 없었다. 아끼는 방법으로 당장 부자가 되지는 않겠지만, 정신건강에 좋은 소비습관으로 더 괜찮은 사람이 되는 방법을 택한 거다. 그럼 절약의 최대 적은 누구일까? 저자는 SNS를 줄이라고 말한다. 괜히 남들이 보여주는 거에 현혹되어 부러워하지 말라는 뜻일까. 신용카드로 쓰는 줄도 모르고 막 쓰는 걸 그만두고 현금으로 생활하는 법을 익힌다. 그의 하루 용돈은 현금 1만 원이다. 쓸데없이 새는 돈을 막는 것도 중요하다.


저자가 팁으로 알려준 몇 가지 방법이 있다. 통신사 선택약정 할인(잊지 않고 꼬박꼬박 날짜 챙겨서 할인받고 있음), 기프티콘 할인가로 사거나 팔거나(이건 전에 몰랐는데 아주 꿀팁), 여러 가지 포인트 쌓는 법(커피믹스 박스의 캐쉬백 포인트 적립은 필수지), 카드 포인트 현금화하기(현금화해서 기뻐할 만큼의 카드 포인트가 없지만 그래도 꾸준히 챙기는 중), 전기세 아끼면서 에어컨 트는 법(3년 전에 에어컨 바꾸면서 오래 틀어놓는 습관 생김), 알뜰폰 사용도 추천, 매달 내는 OTT 구독료 더치페이하기(사실 이건 곧 변경될지도 몰라서 가슴이 조마조마), 소장할 필요가 없는 중고 책 팔아서 책테크(이건 나도 잘함. ^^), 잡기 구독료 아끼고 무료 전자책 잡지로 보기(와우~ 이거 이제 알았음. 정말 좋은 정보), 대중교통 이용할 때 알뜰 교통카드(이거 거의 1년 전부터 사용하고 있는데, 외출 필수템), 정부지원금 혜택 확인하기(찾아보면 많다. 내일배움카드도 몇 년 전에 알아서 지금 열심히 활용하는 중),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스터디카페(청년에게 제공되는 경우가 많으니 검색 필수), 아파트 세입자가 챙길 수 있는 장기수선충당금, 찾아서 돌려받을 수 있는 게 많으니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버는 만큼 돈이 모이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먹고는 살아야 하니 돈을 쓰는 일은 멈출 수 없다. 다만, 놀라운 투자 능력으로 손해 보지 않고 자산을 불리거나, 태어날 때부터 부자가 아니었다면, 저자의 방식으로 생활하는 것도 돈을 모으는 확실한 방법이 된다는 걸 알겠다. 짠 내 좀 나면 어떠냐, 그게 다 내 돈으로 모이는데. 식당에서 먹다가 남은 음식 싸가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다. 음식값을 냈으니 내 음식인 거고, 남긴 거 집에 가서 먹으니 환경도 보호하고 더 좋은 거 아닌가. 습관이 무섭다. 집 근처 음식점에서 가끔 수제비를 포장해와서 먹곤 하는데, 언젠가부터 포장비 1천 원을 내라고 하기에, 집에 가서 그릇 가져와서 포장했다. 며칠 사이에 음식값도 1천 원이 바로 올랐던데, 거기에 포장비까지 내려니 너무 아까웠다. 그 후로 그 집에 갈 때마다 집에서 그릇을 가져가서 포장해온다. 사장님도 포장 용기 낭비 안 하니 오히려 더 좋다고 하신다.


사실, 돈을 아끼려면 몸이 좀 부대껴야 한다. 내 몸이 조금 편하여지자면 돈을 더 쓰면 되는 일이기에, 그동안 나는 귀찮고 번거롭다는 이유로 그렇게 돈을 썼던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장바구니나 텀블러 가방에 챙겨서 다니고, 준비하는 게 힘들어도 외식보다는 집에서의 한 끼를 챙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새어나가는 돈을 생각하니, 그동안 얼마나 낭비하면서 살아왔는지 고개가 숙여진다. 저자의 짠테크가 목표 금액을 만들게 해주었듯이, 나도 생각하기만 했던 다짐을 다시 외치게 된다. 읽다 보면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싶지만, 가능하다. 내가 해봤던 것도 많은데, 이렇게 해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고 일상에 아무런 지장도 주지 않는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망가뜨리지도 않는다. 한 개인의 삶을 완성하면서, 세상에 도움이 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습관을 만들어주는 이야기에 한 번쯤 귀 기울여도 좋은 일이다.


투자만으로 부자가 될 확신이 없다면, 종잣돈 모으는 시간이 필요하다면, 똑똑한 소비습관을 만들고 싶다면, 해보세요. 어렵지 않은 짠테크로, 모두 부자 되세요!


+

이 책 읽다가, 2년 전에 쓰다가 멈춘 가계부가 생각나서 책장에서 꺼내 봤다. 그때 일부러 노트로 된 가계부 쓰면서, 하루씩 한 달씩 내가 어디에 돈을 쓰고 어디에서 줄여야 하는지 많이 살펴보고 했던 게 기억났다. 그때의 습관을 다시 불러오고자 꺼내 봤는데, 이게 뭐냐! 가계부에 현금 30만 원과 백화점 상품권 10만 원이 떡 하니 끼워져 있더라. 그걸 보니 생각났다.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로만 생활하다 보니 현금을 잘 안 가지고 다녔는데, 갑자기 현금 쓸 일이 생길 수도 있어서 평소 30만 원 정도 가계부 속에 챙겨두었던 거다. 백화점 상품권은 현금화할 수 없는 포인트 모아서 교환한 건데, 그걸 잊고 있었네. 와우~ 이거 분명 내 돈인데, 내가 아끼고 모아서 만든 건데 왜 잊고 있었지? 암튼, 이 책 읽고 옛날 습관 다시 불러오고자 꺼낸 가계부에서 숨은 돈 찾았다. 결론은, 책을 많이 읽자! 숨은 계좌는 아니어도 숨은 돈은 찾아준다.




좀 길지만, 도움이 될까 싶어 적어둔다. 저자가 재무상담을 받고 전문가에게 받은 조언이다. (197페이지)


먼저 상담원은 수입을 두 가지로 나누라고 조언했다. 바로 쓸 돈과 저축할 돈이다. 쓸 돈에 대한 계획을 세워야 비로소 저축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때 우리가 쓸 돈, 즉 지출은 총 세 가지로 구성된다. 바로 고정 지출과 변동 지출, 비정기 지출이다. 상담원은 지출을 세 가지로 구분할 줄 알게 되면 쓸 돈에 대한 계획이 수월하게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반대로 지출을 구분할 줄 모르면 지출을 통제하고 계획하는 데 어려움을 계속해서 느낄 것이라고 조언했다.


고정지출 : 매달 같은 금액이 반복되는 지출로, 고정지출 비용은 개인마다 제각각이다. 고정지출이 많단 뜻은 내가 저축할 돈이 많지 않단 걸 의미한다. 따라서 매달 나가는 고정지출이 얼마인지 파악하고 이를 줄여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고정지출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지출에서 40%를 넘는 순간 저축이 어려워진다. 따라서 고정지출 비율은 낮을수록 좋다. 고정지출 비율이 낮을수록 저축할 수 있는 비용이 커지기 때문이다.


변동지출 : 매달 같은 비용이 나가는 고정지출과 달리 내가 쓰는 만큼 나가는 지출이다. 예를 들어 직장인이 사 먹는 점심이나 간식 등을 변동지출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쓰는 만큼 나가기 때문에 고정지출과 달리 매달 금액이 달라진다.


비정기지출 : 고정지출, 변동지출과 달리 매달 발생하지 않는 비용이다. 보통 비정기지출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쓰는 지출을 말한다. 예를 들어 신발이나 가방을 비롯한 의복비, 전자제품, 의료비(병원, 영양제), 화장품, 여행, 경조사, 기념일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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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4-07 1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가계부의 기적이네요! ㅋㅋㅋㅋㅋㅋ

구단씨 2023-04-11 22:29   좋아요 1 | URL
너무 기뻤어요. ㅎㅎㅎㅎㅎ
그래서 그날 엄마랑 마트 가서 상품권으로 신나게 장을 보고, 외식까지 하고 배를 두드리면서 들어왔는데요.
그날 밤에 생각해보니, 음... 제가 배운 짠테크 기술은 그 사이에 어디로 간 걸까요? ㅠㅠ

잠자냥 2023-04-11 23:2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그게 궁금했습니다. 어떻게 쓰셨을지…. 짠테크가 과연 두둥 가능했을지! ㅋㅋㅋㅋㅋ
 
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 - 언어치료사가 쓴 말하기와 마음 쌓기의 기록
김지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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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필요없는 세상을 상상한 적 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알게 되는 게 일상이면 좋겠다는, 아주 철없는 생각을 하던 때였다. 때가 덕지덕지 묻은 어른이 된 후에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게 사람의 마음이고, 그 마음을 모를 때 오해와 다툼이 생기는 거라고. 적당한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잘 전달하기도 하고 서로의 관계를 더 돈독하게 만들기도 할 텐데, 이상하게 그 말은 적당하지 못해서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너무 모자라서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말이 되기도 하고, 너무 넘쳐서 듣기 싫은 말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이라는 게 참, 어렵다.


에 치료가 필요한 이들이 있다. 저자는 언어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을 기록하며, 그 시간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전한다. 세상과 전혀 다른 법칙이 적용되는 세계도 있노라고. 장애 진단을 받은 건 아니지만 언어에 장애가 있는 아이들, 자폐와 같은 장애가 있는 아이에게 필요한 언어발달을 저자가 돕는다.


처음 언어장애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말더듬이나 언어장애로 소통을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 수업하고, 그 후기 같은 기록을 남긴 거다. 다 설명하자면 긴 듯하지만, 말더듬을 위한 처방(?) 같은 지침이 실제 이와 비슷한 증상을 가진 이가 읽는다면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말을 더듬는 아이에게 낱말의 첫소리를 늘려 말하는 방법을 알려주거나, 동화를 함께 들으면서 대화를 시작하는 거다. 자폐 초등학생과는 놀이터에서 같이 그네를 타기도 하고, 게임을 함께 하기도 한다. 무슨 치료가 이럴까 싶은 마음은 넣어두시라. 다른 질병도 그렇겠지만, 저자의 말을 듣고 보면 특히 언어치료는 타인이 소통의 상대이니만큼 서로가 가까이 다가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겠다. 누군가에게 마음속 말을 하려면 상대에 대한 믿음이 필요한 것을 여기에서도 새삼 배운다.


이야기의 중반부로 들어갈수록 이 언어 세계는 더 깊고 진득하다. 저자는 언어치료의 전문가이지만, 그에게도 항상 성공적인 경험만 있던 건 아니었다. 소통이 잘 되어 좋은 결과로 이어진 일도 있고, 치료에 잘 접근하기 어려워 힘들었던 적도 있다. 의외의 순간에 아이가 마음을 열었던 것도 기쁨의 순간이었다. 이런 장면에서 알게 되는 건 역시 교감이었다. 요즘 관심 두던 상담에서도 비슷한 과정이 나온다. 상담사와 내담자의 시작은 라포를 형성하는 거라고. 저자도 이 라포 형성을 시작으로 치료에 접근하고, 그 시작은 치료로 마무리되기도 하고 실패로 끝나기도 한다. 다양한 사례가 저자의 경험에 쌓였겠지만, 역시 실패로 끝난 수업은 그의 가슴에도 오래 남을 일이 되었을 테다. 그럴 때마다 그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더 좋은 치료 수업을 위해 노력한다.


장애는 우리를 불행하게 할까? 전혀 극복할 수 없는 문제인 걸까?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소통이 우리의 부족한 문제 치료에 중요한 일인지 알 것 같다. 언어장애가 있어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고, 그 행복의 추구는 보통의 사람이 똑같이 향해가는 일이었다. 저자가 만난 아이 중에서도, 자격증을 따고 미래를 설계하면서 인생을 완성하는 이가 있다는 걸 보면, 장애가 있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 아니라는 걸 증명한 셈이다. 우리 사는 사회에서 정상의 기준은 필요 없음을 이렇게 확인한다. 그저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이 중요한 것이고,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배우고 알아가면서 채워가면 되는 일이었다.


우리 언어를 이루는 명사, 동사, 형용사가 이 아이들이 사는 세계에 가득했다. 저자는 아이들과 수업하면서 그 세계를 찾아냈고 뛰어놀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이해하는 방식을 배운다.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역시 이 세계와 소통하는 법을 배우며, 언어로 이루어진 이 세계에 누구도 다를 바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언어치료사로 살아가면서, 저자에게도 시행착오의 시간이 있었을 테다. 그런데도 언어가 가득한 그 세계에서 치료와 소통의 노력을 멈출 수 없는 건,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무엇보다 저자의 문장 곳곳에 묻어나고 있던 건 인내심이었다. 마음이 조급해져 자기도 모르게 아이를 다그치고 자책하던 일은, 나와 조금 다른 상황에서 서로에게 다가가는 일에는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전달한다. 아이에게 언어장애가 있거나 언어발달이 조금 늦는다면,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도 좋고 이 아이에게 필요한 언어놀이나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말이다.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소통이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언어에 장애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내 마음과 생각을 그대로 상대에게 전달하는 게 어려운 순간은 종종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저자가 여러 아이를 만난 후 그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놓은, 각 에피소드의 끝부분에 자리한 마음을 만나봐도 좋겠다. ‘완벽한 언어를 구사하는 것보다,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더 많아지고, 꼭 말이 아니어도 대화할 수 있는 손짓 몸짓도 괜찮다라는 것. 많은 사람 낯선 이들과도 말과 글을 나누는 이유는, 우리 사는 이 세계가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까. 나 역시 언어장애나 언어치료의 분야에 익숙한 사람이 아닌데도,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많이 배우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음으로 소통하는 일은 우리 사회의 기본인 자세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저자가 전달하는 이 감동이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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