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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양장) - 개정증보판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영화로 먼저 만났던 개츠비를 원작으로 다시 만나게 되니, 이 남자가 그렇게 안쓰러울 수가 없다. 그저 세상을 향한 복수처럼, 가져본 적 없던 부를 거머쥐기 위해 애를 썼던 한 남자가 아니라, 사랑 하나에 목숨을 건 남자로 비친다. 데이지가 그럴만한, 그가 목숨까지 바쳐야 할 정도의 여인이었던가? 영화를 보면서 빠져들었던 그 순간의 이야기는 이렇게 다시 보인다. "너무나 아름다운 셔츠들이에요." 그녀는 흐느꼈다. 그녀의 목소리는 두터운 옷더미에 묻혀 작아졌다. "이렇게,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들을 본 적이 없다는 게 슬프게 만들어요." (153페이지) 이런 말을 하는 여자를 5년 동안 기다린, 기다린 것뿐만 아니라 그녀를 만나기 위해 가파른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온 그의 인생이 무너지는 순간, 모든 게 부질없어 보였다. 허망했다. 완벽하지 않은, 구멍 난 것들이 보였다, 그들 모두의 인생이. 데이지를 향한 개츠비의 시간과 노력도, 12년 동안 떠나지 못해 안달하면서 톰을 만났던 윌슨 부인도, 아내의 부정을 알고 미쳐버린 윌슨도, 버림받은 것처럼 마지막에 외쳤던 베이커 양도, 상대의 돈을 바라보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한 데이지도.

 

가난했던 개츠비. 그에게는 신분을 바꿀만한 어떤 배경도 없었다. 영원히, 가난한 개츠비로 살아야 할 운명이었던 거다. 공부해도 변할 수 없었던 그에게 인생을 바꿀 기회가 온다. 어떤 부유한 사업가의 선택을 받은 그는 본인의 이름 '제임스 개츠'를 '제이 개츠비'로 바꾸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그는 무엇으로 부를 거머쥐게 되었나? 톰 뷰캐넌이 의심하던 것처럼, 나도 그가 축적한 부를 의심하면서 읽게 된다. 아무리 찾으려 해도 투명하지 못한 그의 배경이 계속 의심을 낳는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소설의 흐름이 점점 개츠비의 잃어버린(?) 사랑에 초점을 맞추는 거로 보인다. 오래전 그가 놓친 데이지를 되찾기 위해, 여전히 데이지가 자기를 사랑한다고 믿었던 개츠비의 맹목적인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데이지의 집이 보이는 (그래 봤자 너무 작은 불빛 하나겠지만) 건너편에 저택을 마련한다. 데이지는 올까? 그는 오로지 데이지가 그를 찾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로 매일 파티를 연다.

 

원작을 읽지 않았어도 많은 사람이 아는 내용이다. 데이지를 찾아 헤매던 개츠비가 많은 돈을 쏟아부어 여는 파티가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드러나는 윌슨 부인의 사망한 사고에서다. 닉의 집에서 데이지와 조우할 개츠비의 행동은 순정남이었다. 데이지를 기다리는 동안 뭘 해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거리고, 데이지와 만나는 순간의 설렘을 잔뜩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그래, 이 정도의 되어야 나 순정남이네, 하고 말할 수나 있지. 이 소설을 읽기 전에 부담부터 생겼던 것에 비하면 소설의 흐름은 오히려 편안했다. 보이는 그대로 읽으면서 온갖 역경을 딛고 일어선 개츠비를 보게 했으니, 이제 데이지를 만난 그의 순정이 얼마나 빛나느냐 하는 기대를 잔뜩 품게 된다. 그런데 데이지는 속물 중의 속물이었고, 개츠비의 마음이 아니라 그의 부에 더 정신이 팔렸다. 데이지는 정말 개츠비를 사랑하긴 했을까? 오래전 그때도 그를 사랑했을까? 단지 비슷한 신분의 누군가를 만나 자기가 누리던 부를 이어가려던 게 아니고? 믿을 수 없다. 데이지의 마음은 하나도 보이지가 않더라. 개츠비의 저택에서 아름다운 셔츠들에 열광하며, 그동안 자신이 누려온 부가 그 정도(개츠비의 셔츠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던 인생에 절망했다. 이런 몹쓸.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은 고조되고 소설은 더 탄탄해진다. 닉 캐러웨이가 적어가는 개츠비의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여러 인물이 각자의 역할에 더 집중한다고 해야 할까. 베이커 양은 의외로 순정파였다. 닉에게 추파를 던지며 한순간을 즐기는 것으로 여겼던 그녀에 대한 나의 평판은 수그러들었다. 닉을 원망하며 그녀의 은근한 프러포즈를 거절한 투정을 말할 때는, 아 여기서도 타이밍이 문제였던가 싶었다. 가장 원망하고 싶은 남자 톰 뷰캐넌은 여전했다. 그는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잘 살아갔다. 그가 가진 부는 그를 여유롭게 만들고,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을 살게 했다. 아마 이때부터였을 거다. 이 소설이 개츠비의 순정에서 잔인한 세상의 한 단면을 보는 것으로 탈바꿈한 것처럼 여겨진 것은...

 

아무리 오르고 싶어도 결국 오르지 못하고 그 생을 마감한 개츠비. 그는 가난에 빠져 지냈지만 어떤 희망을 품고 나아가고 싶지 않았을까? 노력하면 나아지는 삶. 우리는 그걸 바란다. 그렇게 하루를 산다. 하지만 세상이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개츠비와 같은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이미 그런 선택을 한 사람도 있겠지만...) 간절히 바라는 게 생기고 그걸 이루기 위해 불법적인 일에도 손을 뻗게 되는 자연스러움. 우리가 목말라 하는 갈증에 그 방법 말고 또 뭐가 있을까? 그가 바랐던 건 한 여자의 마음이었지만, 결국에 그가 바라던 것은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 파멸 같은 결말을 선사했을 뿐... 한 남자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소설에서 마지막까지 그가 선택한 삶을 걸어갔던, 그녀를 위해 자기 자신 따위 기꺼이 버릴 수 있는, 모든 것이 흩어지고 사라진 상태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그는, 누구인가 묻고 싶었다.

 

개츠비는 해가 갈수록 우리 앞에서 멀어지는 그 풋풋한 불빛을, 그 절정의 미래를 믿었었다. 그때 그것은 우리를 피해갔지만,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내일 우리는 더 빨리 뛸 것이고, 우리의 팔을 더 멀리 뻗을 것이고…… 그리고 어느 날 좋은 아침…….

그렇게 우리는 나아갈 것이다. 흐름을 거스르는 보트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밀쳐지면서. (289~290페이지)

 

여러 번역으로 이미 출간된 이 작품이 이번에는 67군데의 오역을 지적하면서 새로 출간되었다. 사실 영화로 본 적은 있지만, 원작을 읽은 적이 없어서, 그 오역의 지적을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난감했다. 원서가 아니라 번역본을 읽으면서 어떤 비교를 해야 할지 어려워서다. 다행히 이 책의 끝에 역자가 지적한 오역의 비교가 그대로 담겨있다. 세세하게 보면 문장이 달라지는 걸 알 수 있다. 소설의 흐름이 다른 번역과 전체적으로 어떻게 다르게 적용되는지 다른 번역본을 읽어보면서 비교하는 재미도 있을 터. 저자가 언급해준 부분 외에도 큰 흐름을 보면서 다 읽은 느낌을 비교하는 매력도 상당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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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누나 속편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내 누나』를 읽었을 때는 거의 웃기만 했다. 남자와 여자의 심리가 누나와 남동생 사이에서도 엄연하게 존재하는 걸 거듭 확인하면서, 이 남자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하면 좋을지 모를 고민만 연속 했더랬다. 언제나 평행선을 달리듯 그렇게만 이해해야 하는 걸까 좌절도 하고, 영원히 이해 못 할 관계로 남더라도, 그래도 가족이니까 병아리 눈곱만큼의 이해는 가능한 걸까 싶은 대답 없는 물음만 계속 따라왔다. 그러면서 지하루와 준페이의 일상과 대화에서 많이 공감했다. 어느 평범한 집의 누나와 남동생을 보는 것처럼 친근해서 마냥 호감으로 웃으면서 읽었는데...

 

이번에 출간한 『내 누나 속편』도 그와 다르지 않다. 남매의 은근한 티격태격도 여전했고, 누나의 말과 행동을 어이없어하는 준페이의 표정도 재밌다. '세상 모든 여자가 정말 이럴까?' 하는 좌절의 눈빛을 보내는 준페이를 보니, 여자라는 대상에 대한 복잡함만 더 늘었을 것 같아서 괜한 웃음이 났다. 누나는 여전했다. 소녀 같기도 했다가, 단호하기도 했다가, 한없이 나약하게 보이기도 했다가... 그러다가 뭔가 자신의 행복에 관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당당하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임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또 반전처럼 일상의 발랄함과 순수함을 보게 하더라. 음식에 따라 만나는 남자가 다르고, 여자들 모임의 분위기를 더 생생하게 체험한 듯하다. 작은 소품 하나에 일희일비했다. '그게 뭐 별거라고' 하는 것들에 흐뭇해하는 표정이 눈앞에서 그려진다. 그러면서 지하루의 표정에 나를 대입한다. 풋~ 나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일상의 소소함에서 불어오는 웃음의 가치는 안다. 지하루가 딱 그런 것 같다. 준페이의 시선에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 펼쳐질지라도, 지하루에게는 그게 마지막까지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인 것처럼 보인다. 아, 생각하면 할수록 그냥 푸시시 웃음만 나.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설명하는 글도 많고, 그 배역의 캐릭터를 다양하게 설정하며 들려주겠지만, 누나와 남동생이라는 설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의 한 수가 아닐까 싶다. 나의 기준으로 보면 남동생과 그리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일상을 공유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한참 전에 따로 살고 있고, 일 년에 몇 번 얼굴 보는 게 전부이기도 하고, 집안의 일을 의논하는 게 아니면 통화도 잘 안 한다. 그러니 한집에서 같이 사는 지하루와 준페이처럼 매일 얼굴 보며 살고, 퇴근길 누나의 표정 하나에 오늘 일과를 읽을 일도 없다. 그런데 이 남매는 참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게 눈에 보인다. 세상 모든 남매가 이렇게 지내지는 않겠지만, 어쩌면 이렇게 지내고 싶은 로망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전편보다 이번 속편이 더 눈에 들어오는 건, 들어오고 나가는 누나와 동생의 표정에서 서로의 마음을 읽는 섬세함이 더 와 닿아서다. 요즘 며칠 내가 느낀 남동생의 태도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아서일까. 식탁에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이들 남매의 모습에 괜한 뭉클함까지 얹어졌다.

 

전편에서 많은 웃음을 끌어냈는데, 속편에서는 그 많은 웃음은 물론이고 웃음의 깊이까지 달라졌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느끼고 싶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읽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사회 초년생인 준페이와 베테랑 직장인 누나 지하루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성숙한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거다. 그동안 준페이가 누나의 말이나 행동에서 '아, 정말 여자를 이해 못 하겠어.' 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그런 누나의 표정과 말, 행동, 시간을 이해하지 않았을까 하는 에피소드가 많다. 몇 년 사이, 시간은 흘렀고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 그때는 미처 몰랐던 것들이 보이기도 하는 때. 누나의 직장생활이나 여자의 심리를 이해 못 하고 엉뚱한 표정으로 누나를 살폈던 준페이가 이제는 어느 정도 누나의 일상을 볼 줄 아는 눈이 생기지 않았을까? 특히 지하루의 말과 행동에서는 개운함과 톡 쏘는 사이다 같은 맛이 나는데, 그런 분위기 때문에라도 평소에 꺼내기 어려운 소재의 이야기가 거침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져 나온다. 어떻게 보면 여자들만의 속사정이라도 해도 좋을 테지만, 그런 내용을 수면 위로 드러내놓고 편하고 자연스럽게 얘기하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었으므로... 지하루와 준페이 남매의 이 대화가 직장에서의 끓는 속을 풀어주고, 남자와 여자 사이의 닿지 않는 거리를 좁혀주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좀 더 유쾌하게 읽을 수도 있는데, 지금 내가 겪는 분위기 때문인지 나는 이 만화가 왜 이렇게 애틋하고 뭉클하고 진지하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전편처럼 좀 더 가볍고 즐겁고 유쾌하게 읽고 싶었는데 말이다. (지하루와 준페이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도 있고, 누나의 일상에서 황당하다는 표정보다 존경의 의미를 담은 눈빛 때문에 더 진지해진 것도 있지만) 나의 남동생은 여전히 남동생이고, 여전히 대화가 통하지 않는 부분이 많고, 여전히 사람을 짜증 나게 하는 것도 있지만... 요즘 며칠을 같이 보내며 많은 것을 묻고 의논하고 하면서, 좀 더 현명한 대처를 위해 계속 이야기하면서, 살짝, 아주 살짝, 아주 잠깐 이 녀석이 오빠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남동생의 뒤통수에서 발견한 새치 한 가닥과 내가 하는 질문에 알고 있는 방법을 얘기해주는 말에 뭔가 든든한 기분. 힘들게 사는 엄마를 생각하는 말에서 느껴지는 어떤 애정. 항상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놈이라고 욕했던 게 미안해지는 걸 보면, 이 녀석이 변하긴 변했나 보다. 온갖 사람을 대하는 일이다 보니 보고 경험하는 게 많았던가 보다. 거의 10년의 시간 동안 배운 것을 엄마와 가족에게 적용하며 조금 더 보듬어주려 애쓰는 게 보인다. 한꺼번에 공격하는 누나 네 명의 말발에도 전혀 기죽지 않는 걸 보면, 이 녀석이 큰 게 맞는가 보다. ^^

 

 

남자와 여자 사이의 마음을 읽는 것에 인생을 배운 진지함까지 더해져 읽는 맛이 더 진해졌다. 다시 태어나도 자기 자신이 되겠다던 지하루의 대답에 준페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현재 누나의 삶이 행복하다고 여겼을까?

 

뭔가가 자꾸 쌓여 높아만 가는 마스다 미리의 삶의 탑을 보는 듯해서 즐거웠다. 속편의 속편이 또 나올지, 나온다면 언제쯤일지 모르겠지만, 기다려본다. 그때는 또 어떤 분위기와 진지함, 유쾌함으로 나의 마음을 흔들어놓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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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이 올 거예요 - 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 이야기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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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이 올 거예요』 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 이야기

 

 

어떤 책은, 끝까지 읽는 게 참 힘들다. 재미가 없어서 그런 거라면 주저하지 않고 덮으면 그만인데, 꼭 들어야 할 이야기라면 달라진다. 이미 이 내용으로 발행된 책이 여러 권일 테지만, 매번 접할 때마다 감정이 일렁인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이제 좀 무뎌지지 않았을까 싶으면서도, 그게 아니었나 보다. 누군가는 그날의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던데, 누구 말처럼 그 날은 사고 당사자나 관계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기억할 만한 날이라고 했다. 나도 그랬다. 늦은 아침을 먹다가 놀란 건 당연하고, 저게 정말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하는 의문으로 계속 TV 뉴스를 보던 기억이 난다. 저런 일이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고 하는 놀람은 계속됐다. 내 가족이 타고 있던 것도 아닌데, 종일 슬픔의 순간을 공유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누구라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희생자는 너무 많았다. 한 가정의 아들이자 딸, 누군가의 동생이자 언니 오빠, 아내이자 남편. 어디선가는 VIP 보고용으로 영상을 요구할 때, 누군가는 생사를 건 몸부림을 치고 있었던 거다. 그마저도 불가능해 결국 수장된 채로 아직 그 흔적을 찾지 못하고 있다. 3년 만에 수면 위로 드러난 세월호의 모습은 처참했다. 세월호의 외관이 저러할진대, 그 안의 많은 것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찾아야 할 게 너무 많은데, 그건 언제쯤 이뤄질까. 지금도 뭍에서 자식의 흔적을 찾으려고 애가 타게 기다리는 부모의 목소리가 그 안에까지 들릴 것 같다. 어서 나오라고, 엄마 아빠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니, 늦게라도 좋으니 보고 싶다고... 그게 언제쯤 이뤄질지 모르겠다. 간절한 바람으로 어서 빨리 엄마 아빠 곁으로 오기를 같이 기다리는 마음이다.

 

우리는 매순간 형제자매를 그리워해요. 매일 밤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해 동생이고 언니고 형이고 아우인 그 아이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기억하곤 해요. 그런데 세상은 자꾸 잊으라고, 그만하라고. 그리움은 도저히 멈출 수가 없는데 그만하라고만 해요. (330페이지)

 

이 책은 세월호 참사 이후 두 번째 봄을 맞이하여, 세월호 유가족 육성을 담은 기록이다. 세월호에서 생존한 단원고 학생은 11명이라고 한다. 세월호에서 살아나온 단원고 학생, 세월호 참사로 희생한 단원고 학생의 형제자매 이야기다. 사고 당시 십 대였던, 이십 대 초반이었던 세월호 희생자 가족의 목소리다. 온몸으로 겪어냈다는 말이 무엇인지 그대로 들려온다. 어린 나이에 형제자매를 잃는다는 게 뭔지, 나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이라고 생각하면 달라진다. 누구에게나 그런 사람, 그런 순간이 있지 않겠나. 나에게도 마찬가지일 테고. 그렇게 생각하면 이들의 이야기에 저절로 공감할 수밖에 없다. 사고 당시 순간의 일들, 오보에 안심하며 가졌던 희망, 불안함이 들고 온 소식, 이해할 수 없는 절차와 방식의 태도들에 좌절하며 보냈던 시간이 생생하게 들린다.

 

그들은 '생존학생' 혹은 '유가족'이라 불렸다. 어떻게 슬픔을 견디며 지내왔을까.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공통된 말이 나온다. 가족이나 친구한테도 하지 못했던 말들이라고 했다. 가족에게는 더 아프고 슬플까 봐 차마 말하지 못하고, 친구나 주변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분위기를 만들까 봐 하지 못했던 말들이 가득하다. 그것뿐만은 아니겠지. 사람의 감정이라는 게 한마디로 정의될 수 없는 순간이 많기에, 그들이 다 말하지 못한 이유에 슬픔이나 불편함만이 있을 수는 없을 거다. 어디 털어놓을 수 없던 속내를 시간이 조금 지나니, 누군가 진심 어린 마음으로 물으니 대답할 수 있었다. 형식적인 위로가 아니라, 안타깝게만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같은 의미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아는 사이에서 쏟아져 나온 말들. 인터뷰이도 인터뷰어도 모두 바라는 건 하나다. 사람들이 함께 기억해주기를, 잊지 말아주기를...

 

세월호 이후에 저는, 어… 그냥 삶이 나눠진 것 같아요. 친구들을 잃었지만 그만큼 좋은 사람들도 생겼고 배운 것도 성장한 것도 많아서, 더 나쁜 삶이라고 말하기에는 제 주변에 좋은 사람들한테 미안하고. 그렇다고 그 친구들이 없는 삶을 더 좋은 삶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미안하고. 그래서 전환? 그냥 삶이 다른 거. (315페이지)

 

어떤 때는 '이해할 것 같다, 잘 알 것 같다'는 말이 위로가 된다. 공감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며 마음을 나눈다. 그게 어느 순간 힘이 된다는 걸 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건, 같은 경험으로 공유하는 슬픔과는 다르다는 거다. 기쁨보다는 같은 슬픔을 겪은 사이에서 생기는 유대감이 있다. 같은 가족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같은 슬픔을 언제 어떻게 겪었느냐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한없는 마음을 보내다가도, 내가 이들의 슬픔과 고통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싶어 감히 말하기 어려운 순간이 많았다. 그저 공통으로 겪은 '슬픔', 소중한 사람의 '부재', 견뎌내야 할 '고통'. 대개 이런 마음이었던 거다. 당사자의 아픔만큼 다가가지 못한다는 걸 안다. 그래서 이 책을 한번은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감히 잊힐 기억도 아니기에 더 그렇다. 그동안 세월호 관련하여 나온 책이나 소식들은 어른들의 눈과 입을 통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 뒤에, 옆에 있던 10대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어른들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 뒤로, 10대의 당사자가 품은 생각은 제대로 들은 적이 없다. 이 책은 그동안 듣지 못했던 세월호 참사 희생학생 가족, 생존자인 10대들의 마음을 듣는 좋은 기회를 열어준다. 이미 끝난 일이 아니고,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기에 더 들어야 할 마음들이다.

 

세월호가 수면 위로 올라왔으니, 이제 또 다른 시작일지 모른다. 밝혀야 할 것들, 찾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잃어버린 친구들, 되찾아야 할 일상, 오늘을 살아갈 용기와 내일을 기다릴 희망, 아픔과 추억을 간직할 기억들, 진심으로 들어야 할 누군가의 마음, 상처 회복과 배려.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그 날을 위해서라도 많은 사람이 이들의 마음을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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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좋아서...
눈이 부시게 좋은데...
이런 환함이 장례식장을 둘러싸고 있다는 게...
그냥 좀 이상한...

누군가는 이렇게 좋은날 가시는구나...
그런데 가만히 보니 고인의 나이 4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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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솔지 소설
손솔지 지음 / 새움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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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는 오늘을 이야기하는데 한 글자면 충분했다. 그 한 글자의 힘이 이렇게 위대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의미를 함축한 단어들이었다. 휘, 종, 홈, 개, 못, 톡, 잠, 초. 그중 가장 의미 있게 들리는 건 ‘초’였고, 타인이 보는 우리 삶은 ‘개’였다. 불면의 밤으로 초대하듯 공유했던 건 ‘잠’이었고, 살벌한 전쟁터의 마지막 골인 지점 같은 ‘홈’은 욕심을 이루지 못한 서글픈 마무리였다. 가장 강렬했던 작품인, 억압과 방관을 당연하게 여기며 종용했던 ‘종’은 무서웠다. 떠올릴 수 없는 이름에 가슴 속 구멍으로 들어오는 바람 ‘휘’, 물방울 놀이의 비극적인 마음을 대신 전하던 소리 ‘톡’, 소설처럼 말하는 연애가 되어버린 ‘못’은 그대로 비밀로 머물 수밖에 없는 한 여자의 아픔처럼 들렸다.

 

사는 동안 우리가 속한 모든 것을 아우르는 단어였다. 가족이나 연인 사이에서 시작되는 감정과 괴리, 불화가 비극을 부른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채워야 할 욕심과 우선순위가 불행을 일으키며 존재의 사라짐으로 끝맺는다. 불면증이라 여기는 시간은 무슨 일을 벌여놓았나... 세상의 온갖 슬픔을 한 글자로 말할 수 있나 싶으면서도, 결국 그 한 글자로 이야기해놓고야 마는 이 소설이 봄날의 눈부심과 대조적으로 서글펐다. 왜 우리는 상대와 함께하는 시간을 공유하며 아픔을 나누는 게 아닌 각자의 마음과 욕심이 먼저 보이는 걸까. 그런 의문이 늘 따라다니는데도 그걸 무시하며 사는 동안 온갖 비극은 우리 곁에 딱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르고, 불행은 이어진다.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이나 욕심이 아니라는 것 역시 안다. 그게 문제라는 것도 안다. 현실을 살면서 살펴봐야 하는 부분임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싶지 않다는 것 역시 시사한다. 그게 뭐라고, 내 살에서 나는 피가 아닌 것처럼 내 일도 아닌데. 결국, 나만 아프지 않으면 오늘 하루가 무사한 것으로 여기는 마음이 원인인 걸까. 그런 마음이 온통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우리 사는 곳곳에 자리한 그림자를 잘 못 보고 있는 건가. 흔히 ‘소외’라는 말로 그 자리에 자리한 그들을... 그들 안에 내가 속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자주 잊는다. 이들의 비극이나 절망이 낯설면서도 익숙한 이유다. 가까이 있지만, 모른 척하듯 살다가, 어느 순간 툭 튀어나와 친숙하게 자리하는, 어쩌면 내 삶의 일부인지도 모르는 것들.

 

집을 나가버린 엄마를 대신해 누나가 그 자리를 채우며 내는 곡소리도 모른 척하고(「종」), 내 소유의 물건처럼 집안에 묶어두고 싶은 바람으로 한 사람의 인격을 무시한다(「개」). 어느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봤음직 한 장면이 연이어 이어지면서, 개가 보는 인간 세상이 참 우스울 것 같다. 노인에게 시집온 타국의 젊은 여자, 한국말을 제대로 못 하고 어두운 피부마저 아들에게 무시당하는 삶, 자기는 사람이 아니라며 깊은 밤 마당의 한구석에서 하소연하는 목소리로 주인공 백구는 인간 세상을 본다. 노점상 할머니의 외침에 외로움을 공감하며, 애인과 헤어지고 유기견을 모으며 그 외로움을 잊고 기다림을 품은 여인의 울부짖음에는 아무런 희망도 없다. 그렇게 흘러들어 간 어느 음식점 앞에서 마주한 인물의 반가움. 백구는 마치 고향을 찾아가든 오토바이 뒷좌석에서야 비로소 한세상 잘 구경한 것으로 느낄 듯하다. 세상 여러 사람을 만나며, 그런데도 살아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실컷 보았을 백구의 마음에 남은 건 무엇이었을까.

 

외로운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를 안다. 어느 날 밤에는 할배도 죽고 일구도 죽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느리가 할배와 일구를 마당 깊숙이 파묻어주고 창고에 숨겨두었던 짐을 짊어진 채로 마당을 빙빙 돌아가다 대문 밖으로 떠나는 모습을 상상했다. 사람은 대야 가득 물을 담아 피부를 씻어내고 나면 체취가 없어지는 줄 알고 있지만, 구덩이가 될 때까지 그들은 오랜 시간 계속 같은 냄새를 풍긴다. 잊지 못한 옛 기억의 냄새를 코끝에 품고 산다. (116페이지 「개」)

 

자식을 천재라 믿으며 세상 모든 우월함을 부여받은 것으로 여기(「홈」)며 가슴에 홈을 새기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경각을 부르는 것 역시 잊지 않는다. 특히 「종」은 그 소리가 더 아프고 크다. 힘에 눌려 끌려가는 삶을 그렸던 누이가 베란다 한편에 자기만의 방을 만든다. 무릎이 아픈 줄도 모르고 엎드려 닦아내고 자기 짐을 옮긴다. 그때야 비로소 누이는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처럼 보였다. 무엇이 계기였을까. 하얀 발을 만지며 기도하던 그때? 어디선가 들리는 듯한 어머니의 목소리? 그게 무엇이든 중요한 건, 누이가 베란다에서 시작할 새로운 삶이다. 그런데 그것마저 허락하지 않을 자격이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 피 묻은 발바닥으로 낸 흔적은 이제 누구의 몫인가.

 

작가가 마지막으로 불러온 한 글자는 다시 수면 위로 오른 세월호였다. 있어서는 안 될 참사였다. 오보 속 혼란은 구조의 어려움을 더했으며, 간절한 바람은 비극이 되어 그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 사이 주인공은 좀 더 어른 사회에 속한, ‘짧지만 긴 시간인 초(second)를 생각하며 고통을 공감하는, 어둠을 내쫓아 환한 순간을 만들어내는 초(candle)를 드는’ 사람이 되었다. 2017년 3월, 바다 깊은 곳에서 오른 세월호는 그 상처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날 구슬프게 내리던 비, 살고 싶다고 외치던 소년의 목소리, 아직 제대로 떠나보내지도 못했다던 부모의 눈물. 그리고 이제 시작인 밝혀져야만 하는 진실들.

 

나는 북적이는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내려놓고 노트북을 열었다. 단편집을 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에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초였다. 짧지만 긴 시간. 어쩌면 모든 것을 달라지게 만들 수 있는 갈림길 앞에서의 그 짧은 망설임이 내 가슴을 두드렸다.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 타오를 것 같은 초. 바람이 불면 금세 꺼질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그 가녀린 글자를 흰 화면에 띄워놓고 한참 동안 망설이고 앉아 있을 때였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찬바람과 함께 하늘을 긁으며 내리는 그 비를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여객선이 가라앉는 동안, 제주 바다의 성난 파도에 눈물처럼 뚝뚝 떨어져 내리던 그 빗물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246~247페이지 「초」)

 

한 글자가 뿜어내는 힘을 보여주겠다고 다짐이라도 한 듯, 작가는 한 글자가 내는 소리의 힘을 글자 수와 반비례로 들려준다. 짧고 간단하지만, 그 흐름은 너무나도 길고 복잡한 세상 속 우리 모습을 그대로 비춘다. 저마다 아무렇지도 않게 사는 오늘이 자기 모습을 놓치고 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요한 목소리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외치고야 마는 폭발을 이렇게 전한다. 위태롭게 지내온 시간 동안 잊고 있었던, 바라지 못했던 삶을 이제야 비로소 찾았다는 듯이, 우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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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1 15: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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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1 15: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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