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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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조카(큰 언니의 아들)10년 가까이 키웠다. 그 당시에는 가족이 모두 같이 살았으니, 우리 가족 모두가 함께 키웠다는 말이 맞겠다. 유치원 때부터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함께 사는 동안, 가족 모두가 바라는 건 한 가지였다. 이 아이의 몸과 마음이 올바르게 자라주기를, 부모가 함께 살지 않는다고 해서 고개 숙이지 말기를, 공부까지 잘해준다면 앞으로의 성장에 햇살이 비춰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 큰 조카는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자기 엄마와 살기 시작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우리는 걱정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부모가 자식을 낳았다면, 키우는 게 당연하다. 낳았으니 키우는 게 의무일 테고, 사회적인 책임을 배제하더라도, 미성년 아이에게 일어난 일 대부분 역시 부모의 책임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 누구도 큰 조카가 자기 엄마랑 사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우리가 큰 조카를 돌봐야 했던 이유와 같다. 낳았다는 것 말고는 부모의 자격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말이다. 부모의 자격이 무엇이며 누가 판단하는 거냐고 따지고 든다면 설명하기 어렵지만, 내가 아는 일반적인 생각의 기준이 그렇다고 말할 수밖에. 그러니 이 소설을 읽는 동안 기억에서 희미해지는 그때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사정의 여의치 않아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자기가 데리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부모의 역할인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 그게 소녀의 부모였다.


어느 여름, 아빠의 트럭은 먼 친척 집 마당에서 멈추고, 차에서 내린 소녀는 그 친척 집에 맡겨진다. 아빠는 소녀의 손 한번 잡아주지 않고, 친척인 킨셀라 부부에게 남겨두고 떠난다. 사랑스러운 딸을 두고 가는 아쉬움은 하나도 없이, 마치 귀찮은 일 하나 해결했다는 태도였다. 소녀의 엄마가 곧 출산을 앞둔 상황에서 돌봐야 할 아이 하나 남에게 떠맡기고 가는 거였다. 남의 집 사정이야 다 알 수 없지만, 어려운 형편이라 딸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서, 또 태어날 새로운 아이의 등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려운 형편에 자녀가 많더라도, 그 자녀들에게 사랑 듬뿍 주면서 키우는 부모도 많더라만, 왜 다 주지도 못할 사랑에 무책임하게 아이만 낳는 것인지. 태어날 아이가 그 집에서 어떻게 자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쓰리다. 킨셀라 부부에게 맡겨진 소녀처럼, 어쩌면 그 이상으로 부족한 사랑을 갈구하면서 자라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소녀의 부모가 소녀를 친척에게 맡긴 것을 화내야 하는데, 이 상황이 소녀에게 어떤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킨셀라 부부가 소녀에게 보여주는 진심과 사랑에 울컥해지기를 여러 번, 이 부부에게 사연이 있을 것 같지만 지금 그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오직 소녀와 킨셀라 부부, 이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까 궁금해질 뿐이다. 소녀가 살아오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을 따뜻함이 이 부부에게 뿜어져 나온다. 아마도 소녀의 부모는 소녀가 낯선 곳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지 관심조차 없었을 것 같기도 하고. 이쯤 되니 소녀의 부모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도 관심 없어진다. 킨셀라 부부의 집에서 소녀가 무엇을 발견하고 이 짧은 시간 동안 어떤 성장을 이뤄낼지 기대되는 건 나만은 아닐 터. 어차피 소녀의 부모는 경제적 어려움에 힘들어하니, 소녀가 킨셀라 부부의 아이가 되는 것도 좋은 거 아닌가.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지? 나는 도저히 이 부부의 진심과 다정함을 놓을 수가 없어서 그런지, 자꾸만 소녀의 현재와 미래에 이 부부의 인성이 그대로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멈추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간 소녀가 마주한 것은, 차에서 내리면서 손 한번 잡아주지 못한 아버지와 같은 거였다. 소녀의 변한 옷차림에 부러워하면서도 어두운 표정의 언니들, 이 상황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는 어린 동생들, 킨셀라 부부에게 고마움도 모르는 부모. 그 분위기 속에서 불편해진 킨셀라 부부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뗀다. 이렇게 끝인가? 소녀는 부모에게 남겨지고, 킨셀라 부부는 떠나고. 정말 이렇게? 소녀가 킨셀라 아저씨에게 훈련된 달리기는 이 순간 빛을 발한다. 떠나는 부부를 향해 뛰어간다. 아저씨를 끌어안으며 흠뻑 취한다. 같은 말이지만 다르게 부르는 그 이름을 외치면서. “아빠아빠이지만 아빠가 아니고, 아빠가 아니지만 아빠인 존재들을 부르며 소녀는 온 마음을 다한다. 그 여름 킨셀라 부부와 함께했던 시간을, 그 짧은 시간 동안 소녀의 인생을 크게 바꿔놓을 의미들을, 사랑과 따뜻한 마음을.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이건 아니다 싶은 것을 제외하고 나면, 그래도 조금은 괜찮은 부모가 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거기에 조금 더 보태자면,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더해진 노력,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을 항상 고민하는 태도가 부모의 자세이고 책임이라는 것을 아는 정도면 괜찮을까 싶기도 하다.


곧 서른이 되어가는 큰 조카는, 경제적인 이유로 남들보다 조금 늦은 졸업을 했고 학자금 대출이 남아있다. 고등학생 때부터 스스로 용돈을 벌어서 학교에 다녔으니, 이 아이의 경제활동은 꽤 오랜 시간 계속된 셈이다. 이제는 자기 인생을 책임질 기반을 다져야 하고, 어려운 시기에 취업 활동을 계속했다. 며칠 전, 오랜만의 가족 모임에서 좋은 소식을 듣고 다들 눈물바다였다. 우리 가족에게 항상 아픈 손가락이었고, 누구보다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은 있었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이 이 아이에게 많은 기회를 주지 못했기에 늘 걱정이었다. 이제는 취직도 했으니 좋은 일만 있겠지 싶은 마음에 안심한 것도 잠시, 부모라는 존재는 이 아이에게 또 다른 짐을 지워주고 있다. 입버릇처럼, 큰조카가 고아였다면 차라리 나았을까 싶은 마음이 불쑥 치밀어 오르지만, 부모가 있는 아이에게 나는 그저 친척인 현실이 눈앞에 있을 뿐. 이런 나를 볼 때마다 남동생은 냉정하게 말한다. 이 아이의 성장에서 우리가 안부를 묻고, 가끔 밥을 같이 먹거나 용돈을 줄 수는 있어도, 이 아이의 인생을 책임질 수는 없다고. 이 아이가 자기 인생을 먼저 챙기기를, 도움에 손을 내밀었을 때 그 손을 잡아줄 어른으로 존재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지 생각하곤 한다.


한때 외가의 가족들에게 맡겨졌던 아이는 이제 어른이 되었고, 이제는 이모 삼촌과 같이 술을 마시기도 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뭔가 더 해줄 게 없는지 찾게 하는 존재로 남아있다는 게, 나는 마음이 너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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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슈 파랑
기 드 모파상 지음, 송설아 옮김 / 허밍프레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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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기억나지 않던 시간에 읽었던 모파상의 작품을 잊고 살았다. 그저 어릴 적 교과서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에 한 번쯤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라고 해야 할까. 그러다가 국내에 한 번도 소개된 적 없는 작품이 담겼다는 이 책이 궁금했다. 소개된 말 그대로, 보석 같은 짧은 이야기들은 정말 유머러스하면서도 감정의 깊이를 헤아리게 된다. 나는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순간의 마음은 무엇일까, 이제 어떤 인생을 만들면서 살아가야 할까 하고 말이다. 참 어렵다, 인생...


첫 번째로 만난 작품 사랑은 사냥터에서 사냥꾼이 본 그 장면은 애틋하면서도 묘했다. 사랑한다며 애인을 살해하고 남자는 자살한다. 이런 이유로 살인을 저지른 것을 이해할 수 없지만, 자살한 남자는 죽어서도 사랑이라고 믿겠지. 사냥꾼의 총에 맞아 죽은 암컷 오리 곁을 맴도는 수컷 오리의 마음 역시 사랑이리라. 앞서 들려준 인간의 사랑은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오리의 사랑은 한없이 슬퍼 보였다. 적어도 진짜 사랑했다면, 자기 앞에 놓인 비극을 감당하는 민낯을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지 시사하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계속 생각난다, 죽은 암컷 오리의 주변을 빙빙 돌면서 떠나지 못하고 공중에 머물렀을 수컷 오리의 눈빛이.


위송 부인의 장미 청년인생역전 로또를 다른 버전으로 보여준 이야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닮았다. 글쎄, 나쁜 예만 봐서 그런지 몰라도, 복권에 당첨되고 그 후의 인생이 행복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물론 그 진짜 이야기는 본인이 가장 잘 알겠지만, 적어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그랬다. 위송 부인은 정조를 잘 지키고 품행이 바른 장미 처녀를 찾고 있었다. 그런 의미를 충분히 담은 여성을 찾아 장미 처녀라고 이름 붙이고 추앙하려고 한다. 아무리 해도 장미 처녀를 찾을 수 없던 그때, 마을 사람들이 한 청년을 가리킨다. 그보다 품행이 바르고 옳은 청년은 없을 거로 소문이 났던가. 그냥 소문으로 끝났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장미 청년의 인생에 없을 것 같았던 돈과 명예는 그에게 비극을 불러온다.


정말 유쾌하게 읽었던 작품 테오듈 사보의 고해성사였다. 자기가 싫어하는 것은 싫어하는 대로 배척하면서, 원하는 것을 얻는 일에 한발 양보하고 다가가는 척하는 그 자세를 배워야 하는 걸까. ^^ 시의원 테오듈 사보는 교회를 멀리하는 자다. 그에게는 교회의 재보수 일감이 필요했는데, 교회의 신부 마리팀은 일감을 원하는 테오듈 사보에게 고해성사를 받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종교가 없고 세속적으로 살았던 테오듈 사보에게 고해성사의 시간은 배출하지 못한 변이 가득한 뱃속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 일은 받고 싶고, 교회를 멀리했던 시간은 돌이킬 수 없고. 이때 익살맞은 테오듈 사보의 활약이 시작된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말이 되어버리는 수상한 논리로 고해성사를 통과하는 그의 재치가 기가 막힌다. 내 주변에 이런 사람 있다면 진짜 짜증 나는 순간 많을 것 같은데, 이런 순발력과 융통성(?)을 배우고 싶은 간절함마저 생길 정도인 이 마음은 무엇이란 말인가. 암튼, 난 이제부터 테오듈 사보를 닮고 싶은 사람으로 정했어!


우리가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 고통을 마주하게 될까. 그때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또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가야 할 테지만, 오롯이 자기 선택의 결과가 되겠지만, 알면서도 마음의 혼란과 불안은 잠재우지 못할 것 같다. 무슈 파랑의 주인공에게 닥친 인생의 혼란은 그의 모든 삶을 송두리째 흔든다.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고 아들까지 낳았지만, 아내는 처음부터 그를 기만했다. 그걸 모르고 살아오던 파랑은 어느 순간 자신에게 불어온 회오리바람을 피하지 못하고 무너진다. 아내와 아이를 잃고, 그의 인생도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로 살아간다. 그렇게 쓸쓸하고 외롭게 늙어가는 그를 보면서, 왜 그래야 했을까 생각하게 된다. 아내의 외도를 모른 척해야 했을까? 그랬다면 지금의 그와 얼마나 다른 채로 살아가고 있을까? 진실을 드러내면 드러내는 대로, 모른 척하면 또 그런대로 살아가겠지만, 어떻게 해도 완전한 삶은 아닐 거다. 매 순간 그때의 선택이 옳았는지 떠올릴 거고, 그때마다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쩌랴. 그렇게 또 살아가야 하는 게 인간의 삶인 것을.


작품들의 감정이 너무 섬세해서,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어느 장면에서는 선택의 순간에 고민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사랑하고 아끼는 이의 곁에 더 머물고 싶은 마음, 인생에 없을 것 같은 돈과 명예가 나를 찾아왔을 때는 어떤 삶을 그려야 하는지, 종교의 의미와 믿음의 정도는 누가 판단할 수 있는지를, 외면하고 싶은 진실이 내 앞에서 춤을 출 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게 인간이겠지. 결국은 우리가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어떤 태도로 삶을 꾸려나가야 하는지 묻는 이야기가 아닐까. 소설이 문학이 그래왔듯이, 1880년대의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2023년의 현실과 전혀 다르지 않아서 놀랄 수밖에 없다. 테오듈 사보와 웃고 무슈 파랑과 울다 보면, 절망의 순간에도 삶을 놓지 않으려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알게 된다. 사는 동안 고난이 내 삶에 끼어들더라도 가뿐히 무시하고 즈려밟고 건너갈 재치, 내 인생의 주인으로 책임감 있게 살아갈 자세를 배우게 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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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 워크 - 비윤리적이고 불결한 노동은 누구에게 어떻게 전가되는가
이얼 프레스 지음, 오윤성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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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 워크를 간단히 표현하면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분명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지만, 누구나 선뜻 먼저 하고 싶지는 않은 일. 이 사회나 국가가 굴러가는 데 필요하지만, 많은 사람이 두 손 들고 반길 만한 일은 아니라는 것.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이니, 어떤 상황인지 감이 온다. 이 사회 구석구석 찾아보면 이런 일이 많을 테다. 이 분야에 있는 사람들 덕분에 우리 삶이 편한 부분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런데도 그 면면을 들여다볼 생각은 깊게 하지 못했다.


저자가 미국 내에서의 환경을 근거로 설명하고 있기에 우리 정서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더티 워크를 설명하려는 기본 취지는 다르지 않다. 교도소의 정신병동 근무자, 전쟁 상황에서의 드론 원격 조종사, 미국 국경의 국경수비대원, 대규모 도살장 노동자의 경우를 소개한다. 이들이 겪는 육체적 정신적 고충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지경이다. 사회와 국가가 필요로 하지만, 많은 사람이 불편해하고, 현장에서 그 일을 감당하는 이들의 도덕적 외상을 외면하는 일이 빈번하다는 게 더 아픈 일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럼 다른 일을 선택하면 되는 거 아니겠냐고 말이다. 하지만 이 분야에 뛰어들어야 하는 이유가 대부분 경제적인 문제라면 다른 선택지를 쉽게 고르지 못하는 것 역시 현실이다.


어느 시험에서 봤던 문제가 생각난다. 직업으로 규명되려면, 비윤리적이지 않아야 하고, 사회적으로 가치 있고 쓸모 있는 일이어야 한다고 했다. 저자의 설명을 듣다 보면 여기에서 소개된 일들은 직업으로 규명하기 어렵다는 건데, 그럼 이들의 직업은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실제로 여기에서 더티 워크라 불리는 일은 여러 가지 의미를 포함한다. 때로는 폭력을 행사하면서 인간이나 동물, 환경에 피해를 주는 것도 해야 하는 일. 선량하다고 불리는 사람들의 시선에 비윤리적이거나 더럽다고 보이는 일. 다른 사람의 무례한 시선을 감당하거나 상처받게 되는 일. 선량한 사람들은 그 일이 사회질서 유지에 필요하다고 여기지만, 암묵적으로는 그 일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일. 누군가 이런 일을 하면서 고통과 책임을 치른다는 걸 알면서도 위임한다.


문득 나는 이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 이걸 몰랐다고 하기에는 얼마나 책임을 피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더라. 나는 정말 몰랐을까? 전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느끼고 생각하고 있었을 거다. 그러면서 내가 그 역할을 하지 않으면 된다고 여기거나, 그들의 고역을 이해한다고 함부로 판단하거나, 그 일을 하면서 당연히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것도 아니라면, 나는 그 일에 관한 많은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거나.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일이 왜 더티 워크가 되었을까 궁금했다. 겉으로는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내는 것으로만 보였는데, 그 이면의 이야기를 내가 전혀 몰랐던 거였다. 사회질서 유지에 힘쓰는 교도관이 더티 워크로 소개되는 게 놀라웠는데, 가장 큰 이유가 보이지 않는 집단이라는 거였다. 재소자를 관리하고 그들의 갱생에 한 역할을 한다고 여겼는데, 그 안에서는 내가 상상하지 못한 비윤리적인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 주변의 나는 분도 교도관으로 일했는데, 겉으로 보기에 근무환경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랜 고민 끝에 그만두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좋은 자리 박차고 나왔다는 생각도 했는데, 말하지 못한 이유가 있다는 표정이었다. 그때 다 이해하지 못한 것과 이 책에서 말하는 걸 조합해보니, 어쩌면 내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인간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역할을 해야만 하는 게 고역스러웠을지도.


드론을 원격으로 조종하며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은 드론 조종사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그런 죄책감은 일을 계속하는 걸 어렵게 한다. 여러 가지 감정의 고됨을 돕고자 부대 안에 목사나 상담사가 있지만, 아무리 이들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그들이 원격 조정하여 사람을 죽이는 일로 생기는 고통은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좋은 먹거리를 찾을 때 도축 현장의 노동자들은 더 힘겹게 일하고 있으며, 노동현장은 더 열악해지고 있다. 환경과 동물을 생각한다면서 돌린 시선에서 현장 노동자들의 환경은 열악한 그대로였다는 것을. 선량한 사람들이 사회와 국가, 지구를 생각하며 전환한 소비의 이면이었다.


암묵적으로 용인되는 많은 차별이 더티 워크를 만드는 게 아닐까? 더럽고 지저분한 것을 보면 피하고자 하는 게 새롭지는 않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두고 싶은 것도 당연하게 계속되어왔다. 하지만 눈앞을 깨끗하게 만들고자 해왔던 일은 야만적이거나 비도덕적인 경우가 허다하다. 때로 이 역할을 하는 이들이 보이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이런 역할이 존재하면서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는 존재하기 마련이고, 수면 위로 떠 오른다. 이 책의 설명처럼,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필수노동자에 관한 관심은 커졌다. 그들의 자리에서 해내는 일들에 노고를 위로하고,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말하는 게 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필수노동자가 그들만 있는 건 아니다. 이 사회의 필수노동으로 규정하지만 더티 워커라 불리는 이들의 존재를 생각하지 않았다. 이들이 수행하는 필수노동 작동방식과 사회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 불평등 구조의 과정과 책임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게 이 책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어둠 속 필수노동자에 대해 연대와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상기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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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맨 브라운
너새니얼 호손 지음 / 내로라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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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영화의 홍보 문구처럼, 믿었던 모든 것을 의심하며 살아갈 필요는 없겠지만, 의심 없이 사는 것도 인생의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배우며, 그 지식을 바탕으로 자기 안에 신념이 쌓일 것이고, 그 신념은 일상의 거의 모든 것의 바탕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삶이 이미 완성된 그림처럼 선명하게 보이는 게 아닐 텐데, 사는 동안 예상하지 못한 다양한 많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데, 그때마다 우리가 신념이라 믿었던 것이 삶의 모든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때로 이런 믿음은 나를 옭아매는 편협한 가치관이나 편견이 되지는 않을까?


세일럼 마을에 사는 젊은 남자 굿맨 브라운은 아내 신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길을 나선다. 이 밤이 지나면 절대 아내 곁을 떠날 일이 없을 거라고 말하며 그 밤에 숲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중이다. 그에게는 그날 그 밤에 떠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가 들어선 캄캄한 숲에서 자기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오십 대의 남자를 만난다. 아마도 야속한 눈빛을 보내던 아내를 뒤로하고 길을 떠난 이유가 그 남자와의 약속 때문이었나 보다. 그는 남자에게 약속을 지켰으니 이제 돌아가겠다고 말하지만, 남자는 그에게 계속 동행할 것을 요구한다. 마음과 다른 제안에 뿌리치고 돌아설 것 같지만, 희한하게도 굿맨 브라운은 남자를 따라 계속 걷고 있다.


그 숲이 무슨 마법을 부린 걸까? 그들은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 걸까. 분위기를 보니 좋지는 않다. 남자를 따라 걸으며 그는 이 동행이 절대 옳은 일이 아니라고 느끼며 말한다. 자기 집안의 사람들은 이런 곳에 오지도 않을 것이며, 자기가 속한 종교의 사람들에 대한 믿음을 숭배하는 걸 숨기지 않는다. 그들이 얼마나 신을 믿고 살아왔는지, 그들의 신념이 삶을 얼마나 선하게 만들고 있는지, 그런 사람들과 교류하며 살아가는 자신의 세상이 얼마나 훌륭한지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믿는 선의 세상이 너무도 단단하여 누구도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인다. 그런 그에게 남자는 그 어떤 믿음도 섣불리 단정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 장면만 보면, 꼭 까만 옷을 입은 악마가 천사의 말에 의지하고 살아온 누군가의 귓가에 자꾸만 속삭이는 것 같다. 믿지 말라고, 의심하라고, 천사의 말이 틀렸다고 말이다.


혼란스럽다. 아무리 믿음이 강한 사람도 이 정도로 옆에서 말한다면 한 번쯤 흔들릴 것 같다. 옳다고 믿으며 살아왔던 모든 시간을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 괴롭기까지 하다. 자신의 세상이 무너지는 강도로 충격이 클 것 같기도 하다. 굿맨 브라운은 어떨까. 그는 남자의 말에 휘둘릴까? 글쎄, 아마도 그는 남자의 말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아내 신념의 곁으로 어서 빨리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었으니까. 어쩌면 그 순간 그게 보게 된 것만 아니라면, 그의 신념은 더 단단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신념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그는 남자를 따라가던 그 숲속에서 많은 사람을 본다. 교회의 영적 지도자인 목사, 장로, 권사, 그리고 더 많은 마을 사람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들이 숲속의 그 남자를 숭배하며 우러러보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랬다. 그가 남자를 따라가던 곳은, 그가 신념이라 믿었던 사람들이 모여 남자를 숭배하는 의식의 자리였다. 그렇다면 그들이 믿었던 신은 어디에 있을까. 그들의 영혼을 어루만지며 지켜주던 믿음의 말들은 다 거짓이었을까. 그들의 무리에 속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아내 신념을 떠올리고 이겨내려고 했던 순간에 들려오던 목소리는 악마의 속삭임이었을까. 의문에 의문은 꼬리를 물고, 우리가 살면서 신념이라 믿었던 것을 되돌아보게 한다. 한번 시작된 생각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생각은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소설의 배경에는 종교가 있다. 종교로 뭉쳐진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은 선을 신념으로 삼아 살아가지만, 이 소설 속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종교에 한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겪는 거의 모든 순간에 관한 이야기다. 살아가는 시간이 자신의 역사가 되듯, 굿맨 브라운이 가진 신념 역시 그의 인생에 자리한 역사의 바탕이 되었을 거다. 아마도 그가 스스로 선택한 삶의 방식은 아니겠지. 지금의 우리가 있기까지, 아이였던 우리가 자라면서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서 주입된 모든 것이 우리가 말하는 신념이 되었을 거로 생각한다. 배우고 담으면서 살아오긴 했으나, 성장하는 과정에서 빠트린 것 하나가 있다. 우리가 신념으로 삼았던 것이, 삶의 모든 과정에서 옳은 선택만을 하게 했는지 검증하지 않았던 것.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일은, 삶을 완성하는 이 순간에 필요하다. 누구도 판단해주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이 깨닫게 될 때, 자기 인생의 기준이 생기는 게 아닐까. 그건 종교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자기 삶의 방향을 자기가 정하면서, 오직 하나의 신념이 아니라 그때의 고민이 주는 답을 찾아가면서 살아가는 게, 더 나은 삶을 향해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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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5-25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굿맨 브라운을 다른 책으로 읽었는데 신선했어요.

구단씨 2023-06-09 01:20   좋아요 0 | URL
좀 많이 생각하면서 읽게 된 책이네요. ^^
내가 가진 생각이, 믿음이 정말 부서지지 않고 단단한지 보게 되고,
그게 맞는 건지 또 한번 생각하고요...
 
공포와 광기에 관한 사전 - 99가지 강박으로 보는 인간 내면의 풍경
케이트 서머스케일 지음, 김민수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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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렇게 많은 공포증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에서 인간은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읽다 보면, 나는 어떤 공포를 느꼈는지 저절로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벌레는 물론이고, 물을 무서워해서 바닷가 근처를 서성이는 것도 두렵다. 혹시 전기 사용을 잘못해서 불이 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집 밖으로 나갈 때마다 문단속을 잘했는지 몇 번을 되돌아와서 확인하기도 한다. 작은 벌레에서부터 점점 뻗어 나가는 온갖 공포에 일상에서 수시로 두려움을 느끼는 게 정상일까 생각해본 적도 있다. 물론 그 답을 쉽게 찾지는 못했다.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99가지 강박으로 인간 내면을 본다는 이 책은, 공포와 광기를 두려움과 집착으로 설명하고 있다. 공포증과 불안을 같은 종류에 속하는 정도로 분류하여 그 특징을 들려준다. 동물에 관한 공포증, 우리 몸으로 느끼는 공포증, 물건과 관련된 공포증, 타인(사람)과 연관된 공포증, 접촉에 관한 강박이나 공포, 시대의 증후인 집단 공포증, 멈출 수 없는 강박적 광기, 특색 있고 흔한 광기와 공포증을 말한다. 많이 놀라웠던 것은 스티브 잡스의 터틀넥이었다. 단추 공포증 때문에 입게 되었다는 것도 놀라웠는데, 이게 버튼 없는 마우스를 만들게 된 아이디어를 제공한 셈이 되었다니. 발명은 의외의 것에서 시작되는 게 맞는가 보다. 많은 이야기를 듣고 보면, 인간은 정말 생각하지도 못한 공포증을 갖게 되면서, 그것을 극복하거나 피하고자 애쓰는 삶을 이어나가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디 이것뿐일까. 하루의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휴대전화는 우리 일상의 많은 것을 해결해주면서 주도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서울에 다녀왔다. 기차표 예매에서부터, 기차역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휴대전화 검색과 확인으로 안심을 얻는 시간이었다. 만약 휴대전화가 없었다면, 나는 미리 확인한 내용을 메모해서 들고 다니면서, 이렇게 가는 게 맞는 건지 수도 없이 들여다보며 확인하면서 목적지를 향해 갔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또 다른 불안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런 간단한 것까지 이제 우리 삶을 이 작은 기기 하나에 의존하는 게 되어버렸다. 휴대전화가 있으나 없으나, 불안과 공포가 우리 곁에 남은 건 마찬가지일 테다.


그렇다면 이 많은 공포증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이유와 설명이 다양하지만, 그 기저에는 인간이 세상에 적응하려는 것에 있다고 한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앞서 있던 어떤 사건을 근거로 삼기도 하면서 모든 공포증에 공통으로 해당하는 게 아니라는 측면도 있다. 공포증은 심리학적 문제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요즘에는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다루어지기도 한다. 공포증과 동시에 광기에 관한 이야기도 하는데, 광기는 인간이 무언가 하고 싶어 하는 강박으로 본다. 결국, 공포나 광기 모두 인간 내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 증상들은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흔한 불안장애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듣다 보면 나를 옥죄는 불안이나 강박감이 내 삶을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 살펴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내가 가졌다고 생각한 이 공포가 진짜 공포일지, 나를 불안하게 하는 강박일지 되짚어 보게 된다. 어쩌면 단순하게 생각하고 싶기도 한데, 이건 그냥 내가 싫어했던 습관이나 태도는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누구나 본인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가 두렵기는 하겠지만, 그 두려움 역시 인간이 극복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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