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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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엄마가 입원한 병실에는 4명의 환자가 거쳐갔다. 작은 병원의 2인실인데, 대부분 노인인 데다가 몸의 어디 한 군데든 수술을 한 환자들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건 당연했으니, 누군가 돌볼 사람이 상주해야만 했다. 그중 세 번째 환자는 보호자도, 간병인도 없었다. 당연히(?) 내가 그분을 화장실에도 모시고 갔는데, 밤에 내가 없는 시간에는 엄마가 그분을 휠체어에 태워 화장실에 같이 갔다고 했다. 엄마도 손을 수술해서 불편한 사람인데, 환자가 환자를 돌보는 상황이 된 거다. 그것도 생판 남을. 그럴 수도 있는 일인데, 치료 받고 쉬어야 할 엄마가 이런 일에 신경을 쓰고 있으니 내 마음이 전혀 편하지 않았다. 어지럼증으로 고생하는 엄마가 옆 침상의 소리 때문에, 밤에 잠도 못 자고 불편한 상황은 더 커져만 갔다. 화장실에 가겠다고 부스럭대면서 몸을 움직이는 소리를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그분은 연신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말씀하시지만, 나는 그런 말도 불편했다. 사소한 일인데 사소하지 않았고, 모른 척하고 싶었는데 모른 척할 수 없는 상황이 그저 어렵기만 했다.


돕는다는 의미. 크게 작게, 많은 상황에서 가능한 일이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도움이 되는 존재로 살아간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온전히 나만 생각하면서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행복을 위태롭게 하는, 나의 가족에게 닥칠 불행을 알면서도 타인을 도울 수 있다는 게 언제나 가능할까?


40대의 남자 빌 펄롱의 그날은 이상하기도 했고, 특별하기도 했다. 나라 전체가 실업과 빈곤에 허덕이는, 혹독한 겨울이었다. 빌은 부자가 아니었지만, 먹고 사는데 부족함은 없었다. 아내와 다섯 명의 딸과 행복했다. 특별할 게 없어도 별일 없는 날들이 그저 감사하다는 게 뭔지 보여주는 가정이 아니었을까. 도시는 쇠락해가고, 굶주린 사람은 늘어만 가는 날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아침, 그는 수녀원으로 땔감 배달을 갔다가 창고에서 한 여자 아이를 발견한다. 맨발에 때가 낀 상태로, 추위에 떨고 있는 아이를 아무 일 없듯이 수녀원에 데리고 들어간다. 수녀원에서 불법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그는 확인할 수 없었다. 설령 그가 알고 있다고 해서 무슨 일이 벌어지기는 할까 싶기도 하고. 수녀들의 품으로 돌아간 여자 아이는 말끔한 모습을 하고 그들의 공간으로 돌아간다.


빌은 여자 아이의 첫 모습을 잘 못 본 거라고 여기고 싶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마주친 모습은 그의 일상에서 잊히지 않았고, 수시로 떠올리는 기억이 됐다. 그 여자 아이의 모습이 수녀원의 실상은 아닐까. 소문으로만 듣던 수녀원의 불법적인 일이 사실일까. 만약 사실이라면, 빌은 이 여자 아이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끝도 없는 고민이 그의 머릿속을 채웠고, 그는 잊으려는 듯하면서도 잊히지 않는 그날의 기억을 안고 지냈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수녀원으로 찾아간 그는 확신했다. 그 여자 아이가 다시 창고에 갇혀 있으리라는 것을, 다시 그 여자 아이를 창고에서 발견한다면 함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그가 몰랐을 리 없다. 그의 마음이 가는 대로, 그 여자 아이를 집으로 데려갔을 때 벌어질 일을. 그의 삶이 아주 불편해질 것이고, 그의 딸들이 다닐 학교에서 어떤 불이익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주의를 줄 정도로 위험에 빠질 것을. 그의 가족의 안위가 보장 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여자 아이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 마음을, 우리는 안다. 그렇기에 그가 그런 선택을 하기에 이르기까지, 그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혼란스럽고 많은 생각 끝에 그 여자 아이의 손을 잡았는지 알기에 숨이 트인다. 추운 새벽, 그의 야적장 자물쇠가 얼어붙어 있던 날, 처음 본 집의 문을 두드리고 따뜻한 물이 담긴 주전자를 건네받았던 그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어떤 친절은 누군가의 목숨을, 삶을 구원하는 기적을 만들기도 한다.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어렵기만 한 시절에, 시들어가는 채소 한 바구니에도 고맙기만 한 날들에 보여준 손길이었을 것을.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119페이지)


미시즈 윌슨은 미혼모인 엄마와 그를 버리지 않고 도움을 주었다. 그에게 올바르게 살아가는 방식을 가르쳐주었고, 그의 형편에 부족하지 않고 성장하게 해주었다. 물론, 바라는 모든 것을 채우려고 한다면 한없이 부족할 수 있지만, 그가 가진 조건으로 보자면 그의 성장 과정은 누구도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그게 미시즈 윌슨이 내민 손길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면, 그가 수녀원 창고의 여자 아이에게 내민 손길은 한 사람의 인생을 구원하는 첫 온기였으리라. 그에게 다가올 불행을 걱정하면서도 그의 선택에 은근한 응원을 실어주고 싶은 이유는 그 작은 여자 아이가 나일 수도, 나의 가족일 수도 있어서. 어느 날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누군가 나를 외면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 때문에 말이다. 서로 돕고 사는 삶에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빌 펄롱의 말이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엄마와 같은 병실에서 보호자 없이 지내던 어르신은 다인실로 병실을 옮겼다. 입원한 첫날부터 돈이 없다고, 다인실에 자리가 생기면 자기부터 옮겨 달라고 간호사만 보면 말씀하시곤 했는데, 대기자가 많다고 했는데 갑자기 옮긴 걸 보면 그분의 사정을 누군가가 배려한 건 아닐까 추측해보기도 한다. 어제는 엄마가 그분 병실에 가서 인사를 나누었다는데, 그분은 보자마자 또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했다고 한다. 여기 병원에서는 식사 때 개인적으로 수저를 준비해야 했는데, 첫날 아무 준비도 없이 입원한 분에게 내가 집에서 일회용 숟가락 젓가락을 몽땅 갖다 드린 일이, 그게 아직도 고맙다고 하신다. 자녀들이 있지만 멀리 산다고, 이렇게 병원에 입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서 이번에는 아예 연락을 안 했다고 말씀하시던 그분의 말이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았다. 자녀가 부모의 간병을 책임져야 한다거나 부모가 자녀를 키우는 일을 보험 드는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아이가 없이 살아가는 내가 언젠가 이런 상황을 경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그분의 모습은 어느 날의 나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씁쓸하기도 했고, 서글프기도 했고, 변해가는 세상의 당연할 수도 있는 모습이기도 한 그 장면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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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4-01-18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몇달간 병동생활을 했어서 느낀 점들이 많네요. 그곳의 공기와 적막함은 지금도 기억납니다...

그보다 이 작품 자주 보이던데 리뷰보니까 읽고싶어지네요. 겨울이라 그런지 좀 울적해지고 싶나봐요🙂

구단씨 2024-01-18 16:28   좋아요 1 | URL
그곳의 공기와 적막함은 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

이 작가의 전작도 좋았는데, 이번 작품도 짧은 글에 느끼는 바가 많아지네요.
 
아무튼, 잠 - 이보다 더 확실한 행복은 없다 아무튼 시리즈 53
정희재 지음 / 제철소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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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의 황금기가 곧 인생의 황금기임을 모르는 젊은이는 상상도 하지 못한다. 새벽에 세 번, 네 번 깨느라 통잠을 못 자는 시절이 온다는 것을. 그뿐인가. 부모나 조부모가 새벽에 깬 이후에 다시 잠들지 못한다고 호소해도 그게 얼마나 막막하고 몸에 무리가 되는 일인지 구체적인 실감이 없다. 그래서 어른들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하기 힘든 나이. 젊은이란 그런 것이다. 인생의 이런 면모를 미국의 소설가 코맥 매카시는 이렇게 정리했다.

그는 텅 빈 식당 창가에 서서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신께서 젊은이들에게 인생을 시작할 때 삶의 진실을 모르게 하신 것은 정말 옳은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젊은이들은 아예 인생을 시작할 엄두도 못 낼 것이기 때문이었다.(모두 다 예쁜 말들. 코맥 매카시. 민음사. 2008) (44~45페이지)


엄마가 잠이 안 온다며 새벽 3시부터 깨어있기도 했는데, 그냥 엄마가 그런 건가 보다 싶었다. 코맥 매카시가 그의 작품 속에서 했던 말처럼, 엄마의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몰랐다. 수면에도 황금기가 있다는 것을, 잠들지 못하는 시간의 막막함이 얼마나 몸을 힘들게 하는지를. 어떤 날은 미친 듯이 잠이 오고, 어떤 날은 아무리 애써도 잠이 오지 않고. 어젯밤이 그랬다. 밤에 잠을 설치고 너무 일찍 일어났나? 준비하고 나가려던 시간이 애매해졌다. 피곤한데, 밖은 추운데, 그냥 나갈까, 조금 더 누워있다 나갈까. 고민하다가 10분의 꿀잠을 선택했다. 분명 알람을 맞춰놓고 누웠는데, 왜 알람 소리가 안 났던 건지. 10분의 꿀잠은 10분의 지각을 만들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이상하다. 그 잠깐의 잠은 왜 이렇게 맛이 있을까. 왜 새벽에 일어날 시간의 잠이 더 달콤할까.


저자가 수시로 잠을 비축하며 살아왔던 날들. 잠을 자다가 날짜도 착각하고 중요한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다니. 믿을 수가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순간,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자세한 상황은 말하기 어려운데, 새벽에 모든 식구가 큰집에 가게 된 일이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뜬 나는 텅 빈 집이 당황스러웠다. 모두 어딜 간 거지? 오늘은 운동회 날인데? 아침도 못 먹고 체육복을 입고 학교에 갔는데, 이미 학교에 엄마와 동생들이 와 있었다. 이른 새벽에 식구들 모두 큰집에 가야 했는데, 나를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아서 한참을 깨우다 그냥 가버렸단다. 내 기억에는 없는 일이다. 누구도 나를 깨웠던 적이 없단 말이다.


잠에 진심이라고, 잠을 자는 것 자체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저자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특히 요즘처럼 잠이 고픈 날에는 더욱 그러하다. 배고픔도 이기고야 마는 잠이, 절실히 필요한 날들이다. ? 머리가 맑지 않은 시간이 많아져서 그렇다. 잠이 내 몸에 하는 일을 내가 막고 있는 기분이다. 충분한 수면이 뇌를 건강하게 만들 테고, 기억력도 좋게 한다. 숙면은 나를 기분 좋게 하니, 화가 나려는 순간에도 한 번쯤 나를 릴렉스하게 하는 듯하다. 고된 현실에 자극하는 자아의 활동이 자는 동안 휴업에 들어가면서 정화 작업을 거친다는 표현이 딱 어울렸다.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잠이 보약이라는 옛 어른들 말씀이 하나도 틀린 게 없다는 걸 알겠더라.


그렇다고 잠이 한없이 긍정적인 순간만을 만들어주는 건 아니다. 어렵고 두려운 순간을 잠으로 잠깐 달아날 수는 있지만, 언젠가 잠으로 외면했던 진실과 대면해야 한다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하긴, 그걸 꼭 말해야 하는 건 아니다. 이미 여러 번 경험했기에, 자면서 잠깐 미뤄둘 수는 있어도 잠으로 아주 안 보고 끝낼 수는 없다. 언젠가 마주해야 할 진실, 그 시간을 잠깐 유예할 뿐이다. 시험 공부도 마찬가지. 지금 이 시간에 공부하지 않으면, 다가올 시험 시간은 공포가 될 것이다. 공부에 집중하기에 앞서 졸리지 않아야 하는데, 이놈의 잠은 밀어내도 끝까지 밀고 들어온다. 그래서 문제의 타이밍이라는 약에 접근한다. 졸리지 말아라, 말아라 기도하면서 먹었던 그 약. 저자의 그 시간에 공감하게 되는 약 이름이었다. 그 시절의 필수품처럼, 누구나 한 번쯤 접해봤을 그 약을 이 책에서 마주하니 반가움도 잠시, 씁쓸했다. 잠만 줄이면 공부를 잘 할 것 같은 믿음이 바로 사라졌던 기억도 같이 떠올라서 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커피를 달고 달았던 시절의 연속. 글쎄, 커피가 정말 잠을 달아나게 할까 싶었는데, 엄마도 잠을 못 잔다면서 오후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더라만. 나는 아침이든 오후든 저녁이든, 커피를 마시는 게 나의 수면 시간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커피를 마시든 안 마시든 별 상관이 없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나의 잠 성향은 극과 극을 달리긴 한다. 조그만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서 잠을 깨거나, 시체처럼 꼼짝 않고 깨울 때까지 자거나. 주변에서는 성격대로 잔다고 하던데, 내 성격이 극과 극을 달리나? 저자의 잠 수행 경험, 수행자를 만나 잠깐의 접촉(?)이 끝나면, 또 다른 진실이 남는다. 수행자의 매끄럽고 반짝이는 피부로 잠과 피부의 상관관계를 깨닫게 된다. 꿀잠은 꿀피부를 만든다. 이건 잠깐의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어느 날이었던가. 오랜만에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화장실 거울을 보고 화들짝 놀란 적이 있다. 어머나, 이렇게 뽀송뽀송(?)하고 피부가 뿌연 얼굴이 내 거야?!(미안, 피부가 검은 편인 내가 이렇게 뽀샤시한 얼굴을 보는 건 극히 드문 일이라 너무 놀라서 말이야)


학교 문예부실에서 도둑잠을 자고, 대학 기숙사에서 내내 잠을 자고, 히말라야 계곡에서도 잠을 잤다는 저자의 잠 세계는 놀랍기도 했다. 어떤 순간에는 나와 같아서 놀라고, 때로는 어쩜 이렇게까지 잠을 잘 수 있는지 놀라고. 저자가 마주한 잠의 얼굴은, 그냥 잠이었다. 잠을 줄이면서 해내야 할 일상의 많은 것이 있기에, 늘 잠에게 있었던 죄책감은 지워버려도 된다고. 그저 잠이 오면 자고 눈이 떠지면 그냥 일어나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는데, 왜 그렇게 밀려오는 잠에게 안달복달하면서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그래야 했고, 잠을 쫓아야 가능한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자는 동안 지나가는 것들이 있다는 생각까지 하지 못했다. 안 되는 것만 떠올리며 살았다. 지금 붙잡아야 하는 것만 보였다. 이상하게도, 지금의 내가 과거의 그 시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아서, 이 책에서 말하는 잠의 시간이 온전히 와 닿지 않아서, 또 다른 방식의 수행이 필요한 건 아닌지 고민이 된다.


지나고 보니 잘 생각이 안 나는데, 올해가 참 바쁘게 흘러갔다. 뭔가를 했고, 뭔가가 남아 있기도 하다. 잠을 밀어내며 했던 일들이 보람되기도 했고, 차라리 그 시간에 잠을 잘 것을 하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나온 1년을 생각하니, 왜 많은 것을 해내는데 잠이 중심에 서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 궁금증은 잠시만 더 뒤로 미뤄두어야겠다. 지금은 그냥, 잠이 오면 자고, 눈이 떠지면 일어나는, 그 자체를 받아들이며, 잠에 예민하게 굴지 않기로 한다. 잠이 안 온다고 이런 저런 방법을 찾느라 애쓰지 않게, 그냥 이대로 오늘은 일찍 자기로.



#아무튼잠 #정희재 #제철소 #문학 #한국문학 #에세이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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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혼합니다
가키야 미우 지음, 김윤경 옮김 / 문예춘추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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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사망을 알리는 친구의 엽서에 부럽다고 말하는 여자의 마음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일단 크게 한숨 쉬지 않을까? 이 한숨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을 것 같다. 한 가지는 남편의 사망 이후로 혼자 지낼 친구의 안부가 걱정되어 한숨, 다른 한 가지는 이제 그녀를 힘들게 하던 고민 하나가 줄었으니 얼마나 좋을까 싶어서, 말 그대로 부러움의 한숨. 아마 이 상황을, 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내 남편이 빨리 죽었으면 하고 바라는 여성의 삶을 경험해본 적 없을 테니 말이다. 남편과 함께인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남편이 빨리 죽기를 바랄까. 아니, 남편의 죽음이 아니어도 좋겠다. 그저 눈앞에서 남편과 마주하지 않는 일상이라도 바라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만큼 남편과 함께 사는 일이 고통스럽다는 게, 친구 남편 사망 소식에 부럽다고 말하는 여성의 진심일 테니까.


이혼을 예능의 소재로 삼을 만큼 이제는 이혼을 숨겨야 하거나 가십으로 여기지 않는다. 물론 그중에는 다른 사람의 이혼을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신나게 얘기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과거의 우리 사회가 이혼을 무슨 큰 잘못을 하는 것처럼 수근대는 시대가 아니라는 말이다. 내 주변에도 이혼한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처음 그들의 이혼을 접했을 때는 의외의 소식에 놀라기도 했다. 그럴 만도 한 게, 누구보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걸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혼 소식 후 이어지는 그들의 결혼생활은 내가 봤던 것만큼 행복하지만은 않았다는 거다. 여기서 그 식상한 말을 또 한 번 해야겠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타인의 삶 내면을 우리는 결코 알 수 없을 거라는 진실을 다시 확인하는 셈이다. 어쨌든. 이 소설의 주인공 스미코의 삶도 타인의 시선으로 판단하는 행복에 맞춰있었다는 거다.


58세의 평범한 주부 스미코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동안 남편의 수입으로만 살다가, 아이들이 크고 제 갈길 가면서 그녀도 시간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알겠지만, 돈으로만 따지자면 그녀의 수입은 남편과 비교할 수 없다. 그래도 그녀의 일상과 노동을 시간제 일의 수입으로만 따질 수 있을까? 모든 집안일을 혼자 해야 했고, 몸이 불편한 시부모도 간병했다. 며느리가 시부모를 간병하는 게 당연하게 여기며 남편을 비롯한 남편 집안 남자들은 그녀에게 많은 의무를 지웠다.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러니 속이 터질 것 같아도 참고 그 모든 걸 감당하면서 살아왔겠지. 그러다 순간, 친구 남편의 부음에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녀의 인생 이제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대로는 안 된다.


처음 이 책을 펼치고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아도 바로 숨이 막혀왔다. 일방적으로 모든 집안일을 떠 앉은 그녀의 하루를 머릿속에 그리기 시작했다. 새벽부터 분주하게 아침을 차리고, 남편이 출근하면 뒷정리하면서 발을 동동 구를 것이고, 그녀 역시 급하게 아침 출근길을 서두를 테지. 시간제라도 일하는 게 힘든 건 마찬가지고, 퇴근 후 또 다른 집안일을 하다 보면 하루해가 저문다. 이어지는 남편의 퇴근 후 아침 상황이 반복된다. 남편의 식사를 준비하고, 주방을 정리하고, 지친 몸으로 잠이 들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비슷하게 흘러가는 하루의 시간이 그녀에게만 잘못된 건 아닐 테니. 문제는 가족인 남편이 그 집안의 모든 일에서 남보다 못한 존재라는 거였다. 문득, 아이들이 자라면서도 혼자서 힘든 많은 일이 있었을 텐데, 그녀는 그걸 어떻게 다 해내고 여기까지 왔을까 싶더라만.


우리의 엄마들이 그렇게 살아왔다는 걸 부정하진 않겠다. 모든 엄마가 그러지는 않을 테지만, 엄마니까 아내니까 며느리니까 해야만 했던 일들 앞에서 고통의 시간을 견디는 게 당연한 의무처럼 여겼던 시절을 건너왔을 거다. 그래. 당연하게 생각했던 게 문제였나 보다. 그러니 58세 여성의 이혼 결심을 그냥 한번 던져보는 말로 여기기도 했겠지. 막상 아내가 꺼낸 이혼이 진지한 현실이라는 걸 실감했을 때 남편의 태도가 우습기만 하다. ‘내가 번 돈이고 내 집이니까, 모두 내거야. 당신에게 하나도 줄 수 없어!’ 아무리 부부 공동재산의 분할을 얘기해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읽으면서 조마조마 했던 게, 스미코의 이혼 결심이 혹시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였다. 남편의 일방적인 재산재산 분할 반대와 시골 동네의 가십으로 떠오르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그냥 이대로 살자고 지레 포기하는 건 아닐까 두근거렸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삶의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남편이 보기 싫다는 단순한 이유가 아니라, 그녀 자신의 삶을 되찾고 행복해지고자 이혼을 선택한다. 그래, 이제 스미코는 이혼한다.


이 소설 속에서 스미코뿐만 아니라, 이혼한 중년 여성(그들 대부분은 스미코의 고교 동창생이다)이 몇 명 더 등장한다. 혹자는 주변의 그런 여성들 때문에 영향을 받은 건 아니냐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만, 그럼 그녀들이 왜 이혼했는지 듣는 일도 필요하다. 저마다의 인생, 색도 모양도 달랐지만, 그녀들이 바라는 건 오직 하나였다. 자신의 삶, 행복, 진정 바라는 것을 찾아가는 여정 말이다. 그 과정에 이혼이 있었을 뿐이다.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 삶의 가운데 있어야 할 존재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그 삶을 찾아가는데 나이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소설이 아닐까 한다. 그동안 가키야 미우가 보여준 소설 속 인물들이나 내용을 보면, 이번 소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사회 문제를 주인공의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면서 웃음도 놓치지 않았던 저자가, 이번에도 날카롭고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세대도 변했지만, 여전히 남성 중심적인 편견이 머문 세상에서 주인공 스미코가 찾아갈 자유와 새로운 삶이 기대되는 게 나만은 아닐 터.


결말이 참 시원시원한데, 웃음이 나면서도 씁쓸한 건 어쩔 수가 없네. 그래도. 많은 독자가 스미코의 같은 상황이라면, 이혼이라는 선택으로 확인하게 될 행복을 더 기대하며 살아갈 것 같다. 세상 모든 스미코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이제이혼합니다 #가키야미우 #이혼 #자유 #자신의삶 #중년의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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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사형 집행 레시피 - 제3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우수상 수상작
이석용 지음 / &(앤드)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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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선고는 물론이고 사형 집행은 더더욱 진행되지 않는 나라. 사형 집행이 단순한 의미도 아니고, 외교적인 이유도 있다고는 하니 쉬운 문제는 아닐 테다. 범죄자에게 사형을 선고한다고 해서 범죄가 줄어드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범죄심리 전문가의 말을 떠올려보자면, 연쇄살인을 일으킨 범죄자를 만났을 때 그가 물었단다. 자기 사형이 선고되는 거냐고. 아무 잘못 없는 이들을 잔인하게 살해했으면서, 정작 자기 죽음은 겁나는 거였구나 싶은 게, 어쩌면 본보기라도 이런 잔혹 범죄에 사형 선고가 필요한 건 아닐까 생각했다.


집권 3년 차 대통령 지지율이 바닥을 쓸고 있는 와중에 사회적 이슈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얼마나 일을 못 했으면, 한번 떨어진 지지율이 오르지도 못하고 임기 끝나가는 시기에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까. 어지간히 일을 못 하는 대통령인가 보다. 대통령과 주변인들은 지지율 상승을 위해 시나리오를 짠다. 바로 오랫동안 없었던 사형 집행을 이뤄내는 것.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이보다 더 큰 이슈는 당분간 없을 것이고, 무너진 지지율 회복에도 분명 효과가 있을 거로 여긴다.


그동안 사형 선고는 있었지만, 사형 집행은 없었던 세월이 얼마나 길었던가. 뉴스를 장식하는 잔혹 범죄를 접할 때마다 사형 선고를 운운하지만, 정작 사형 선고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니 사형 집행을 떠올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거야말로 정부가 준비한 깜짝쇼가 될 테다. 정부 관계자들이 사형수 60여 명 중 사형 집행의 주인공 3명을 선발하는 작업을 한다. 인권을 외치는 이들에게 대항할 인간미 넘치는 장면도 연출하려고 계획한다. 사형 집행 전날 사형수가 원하는 음식으로 최후의 만찬을 제공하는 게 바로 그거다.


소설은 이 치밀한 계획과 이 계획에 참여하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흘러가는데, 이게 참 묘하다. 정부 관계자들이야 자기네 원하는 지지율 회복이 목적이라지만, 그 구성에 모인 사람들 각자는 또 자기만의 목적이 있다. 참관인으로 선발된 기자는 특종이 목적이겠고, 일반인 위원은 자기를 알리는 게 원하는 일이다. 그 외의 사람들, 정부 관계자들이야 자기 맡은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기도 하고, 정치적 목적을 이뤄내는 게 궁극적 바람이다. 그 중심에 요리사 X’가 있다. 철저하게 신분을 감춰주는 것을 조건으로 사형수의 마지막 식사를 책임진다. 가장 궁금하고 가장 뜬금없이 주인공처럼 비치는 인물로 보였던 요리사 X. 그가 만든 음식을 먹고 분위기를 바꾸고, 절대 입을 열지 않았던 피해자들이 숨겨진 장소를 말하는 등 사형수들은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마지막 모습을 장식하고 떠난다.


읽다 보면 사형수의 마지막 식사에 얽힌(?) 비밀이 드러나지만, 물론 처음부터 그걸 알 수는 없다. 그저 막연하게 이거 뭐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의문과 요리사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고(보고) 사형수들이 보인 반응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한 명의 사형수가 음식을 먹고 떠나갈 때마다, 요리사는 말이 없었다. 그런데도 별다른 요구나 설명이 없었는데도 사형수의 마음을 깊게 건드릴 수밖에 없는 음식을 제공하며 그들의 마지막에 다른 모습을 보이고 가게 하는 능력을 갖춘 이의 정체가 궁금했던 거다. , 결말을 보면 다 알게 되지만, 읽는 내내 이 궁금증으로 소설의 몰입감은 저절로 높아진다.


특이한 소설이라는 생각에 읽기 시작했는데, 등장인물 각자의 사연과 목적 있는 사형 집행 참여에 놀랍기도 했다. 소설의 끝부분에 다다라야 이 조각들이 모여 소설이 완성되는 느낌이다. 사형 집행의 찬성과 반대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설 수 없는 마음이 갈팡질팡하다가, 사형수의 잔인함에 눈을 뜰 수 없을 때는 사형 집행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다가, 이 모든 선택은 각자의 이익과 목적에 따라 달라지는 의견일 수도 있겠다는 씁쓸함까지. 어느 것 하나도 완벽하게 한쪽으로 치우치지 못하는 마음이었던 거다. 그러면서 소설 속에서 묻는 것들을 생각한다. 아무리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사형수에게 인권이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지, 혹시라도 잘못된 판결로 억울하게 사형수가 된 건 아닌지. 웃으면서 읽었는데, 추리 소설이 아닌가 싶을 만큼 반전이 있고, 대한민국의 현실과도 맞닿은 이야기에 더 어려웠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죽음에서까지 쓸모를 찾는 등장인물들에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이기심이 그대로 담긴 것 같아서 서늘했다. 사형제도의 존폐를 따지는 것 역시 각자의 이익을 계산하며 이뤄지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절대 가볍지 않은 주제로 소설을 즐기게 하면서 상당히 깊은 고민을 남기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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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감지 마라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기호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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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년도 더 전의 이야기니까, 요즘의 대학 생활과 비교할 바는 못 되겠지만, 학자금 대출을 모르고 졸업을 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해서 등록금 걱정 없이 학교에 다닌 것도 아니고, 공부를 너무 잘해서 장학금을 받은 것도 아니다. 어쩌다 보니 좋은 조건을 이용하게 되어, 어느 정도의 학점만 유지하면 안심하고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후에 시작되는 거라고, 졸업하고 취직하고 또 그다음의 인생 문제를 해결하며 사는 것만 걱정하면 되는 거로 생각했다. 그것마저도 쉽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청춘을 보면 나도 모르게 걱정의 마음으로 보게 된다. 내가 여유로우면서 던지는 시선이 아니라, 그 시간을 살아가야 하는 막막함에 더해진 무언가가 더 삶을 힘들게만 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당장 가까이 있는 큰조카만 봐도 그랬다. 자세하게 몰랐는데, 이미 학기마다 학자금 대출을 받았고, 학생이면서 채무자 신분으로 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거다. 졸업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채무자의 의무를 다해야 하고,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고단함도 감당해야 한다. 생각하고 계획한 그대로 다 잘 된다면 다행인데, 그마저도 쉽지 않다. 취직도 어렵고, 일하면서 돈 모으기도 간단하지 않다. 중년도, 노인도 힘들지만, 청년도, 힘든 세상이다.


이 소설 속 주인공도 다르지 않았다. 이 청춘들이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 한가득 마음으로 읽게 된다. 두 주인공 정용과 진만은 지방 사립대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도 그들의 취업은 진행 중이다. 저렴한 월세를 구하고 둘이 함께 산다. 돈을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선택한 방법인데, 나는 이때부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와 함께 사는 일의 끝이 좋은 걸 거의 못 봤기에. 함께 살기 시작한 둘은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 편의점, 고속도로휴게소, 출장 뷔페, 택배 상하차 등 돈이 되는 일은 무조건 했다. 한겨울의 추위를 이기려고 팬티스타킹을 입어가면서 말이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사는데, 그럼 이들 앞의 세상이 조금은 살기 괜찮아져야 하는 거 아닌가? 아무리 많은 일을 해도 그들은 그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20대일 뿐이고, 언제나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서 삶을 버티는 이들을 볼 때마다 울컥해지고, 때로는 수치심도 느낀다. 이렇게까지 악다구니 써가며, 비난의 시선을 받아내며 살아가야만 하는가 싶은 마음. 읽는 나도 이들의 하루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몰입감이 상당한 소설이다. 슬프고, 애틋하고, 한숨이 나고, 한때 나도 엄마에게 할 소리 못 할 소리 했던 것도 기억나고. 부모가 무엇을 물려주느냐에 따라 자식 인생도 정해질 수밖에 없다고 따지듯 말한 적이 있다. 부가 부를 낳고, 가난이 가난을 낳고. 복권에라도 당첨되지 않는 한 인생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나니, 그저 별일 없이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긴다.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정용과 진만이었다. 특히 진만은 좀 어리숙해 보이고, 마음이 여리기까지 하다. 내 코가 석 자인데 무슨 오지랖인가 싶을 정도로 타인의 문제에 잘 빠져든다. 단순히 공감 능력이라고 하기에는 진만의 현실이 너무 심각하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일까. 정용은 진만과 그런 면에서 좀 다른데, 그게 두 사람의 동거 생활의 갈등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진만을 보면서 답답했던 마음이 터져버리고 진만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게 된다. 그 길로 사라진 진만의 행방이 묘연해지고,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진만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마주한 진만의 소식에 놀란다.


나도 놀랐다. 솔직히 어느 정도 예상하기도 했지만, 설마 하는 마음으로, 아니겠지 하는 기대로 진만의 소식을 나도 정용만큼이나 기다렸다. 현실이 팍팍하지만, 몇 년을 함께 산 친구에게 아픈 말을 들었지만, 그래도 털어내고 돌아올 거로 믿었다. 매번 두루뭉술, 속 좋은 사람처럼 행동했던 진만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으니까. 잠깐 바람 쐬면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진만이라고 여겼으니까. 그런데, 아니었네. 여전히 진만에게 현실은 고단했고, 무엇이든 하면서 일상을 유지하는 돈을 벌어야 했고, 그러려면 뭐든지 해야 했다는 거. 그것 말고는 남은 게 없었다.


이들의 슬픔마저도 웃으면서 읽게 하는 재주를 가진 작가이지만, 그래도 마냥 웃음만을 선사하지 않았다. 작가가 그려낸 웃음 속에 진득하게 가라앉아 있던 현실의 무게감이 이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한 게 아닐까 싶었다. 혼자 키득거리면서 이 소설을 읽었지만, 아무리 해도 벅찬 현실이 지워지지 않았다. 때로는 간신히 버틸 수밖에 없는 날들, 위태롭고 아슬아슬하게 그려지는 문장 속에서도 드러나는 건, 정용과 진만이 함께 했을 때 튀어나오는 웃음이었다. 무슨 만담을 주고받듯, 각박한 일상에서 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웃을 수도 있구나 싶은 안도. 그러네, 둘이 함께였을 때 더 잘 살아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믿음 같은 거였나 보다. 혼자서는 한없이 어렵고 엄두도 내지 못할 날들이, 둘이어서 그렇게라도 살아갈 수 있었던 듯하다. 크게 바라는 것 없었고, 그저 평범하게 살아갈 날들에 필요한 가장 중요했던 거 하나가,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날들이었다고 말이다.


작가가 아무리 소설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냈다고 해도, 현실의 막막함과 불평등을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태어난 순간 이미 결정된 것만 같은 불평등의 시작이 참 우울하기도 하다. 다른 사람을 보면서 부러운 것도 많고, 노력하면 바뀔 것 같은 기대도 하지만, 사실 뭐 그렇게 큰 기대가 되지도 않는다. 이만큼 살아오면서 보고 느낀 게 삶의 진리 같다는 생각이 진해서. 그래서 더 생각이 많아지는 소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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