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겨울 2023 소설 보다
김기태.성해나.예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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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경칩이란다. 봄이 오나 싶었는데 아직은 겨울 같은 날씨에 외출을 망설이게 된다. 그래도 마무리해야 할 일들을 가방에 넣고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비가 오는 듯 아닌 듯, 우산을 챙길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하는 마음으로 가방에 작은 우산 하나를 챙겨 넣었다. 이래서 작은 가방을 들고 다니지 못하는 건가 싶어 또 한 번 웃어본다. 얼마 전에 만난 지인의 작은 가방에 한참 눈길이 머물렀는데, 그냥 보기만 하고 말았다. 작은 지갑 하나, 휴대폰 하나 정도만 간신히 소화할 것 같은 가방은 그냥,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꾸역꾸역 챙겨 넣은 것들로 빈틈없는 가방에 이 책 한 권 더 넣어 가지고 나갔다. 미처 다 읽지 못한 작품들, 오늘이 지나면 날씨도 포근해질 거라고 하니 겨울을 보내는 마음으로, 마저 다 읽어보자는 다짐으로. 알다시피 소설보다 시리즈 안에는 짧은 소설 세 편이 담겼다. 매번 읽을 때마다 갸우뚱하기도 하고, 새롭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세 편의 작품 중에서도 김기태의 보편 교양이 가장 많이 생각나는 오늘이다.


고등학교 선생인 고전 읽기수업을 담당하게 되었다. 요즘 같은 때 고등학교 수업 중에 고전 읽기가 있나 궁금했는데, 내신에 필요한 한 과목으로 개설되었다. 이것도 싫고(?) 저것도 안 되는(?) 아이들이 어쩔 수 없어서 선택하는 과목쯤으로 보인다. 글쎄, 라떼 얘기를 해보자면, 그때도 문학 수업은 있었으나 관심이 없었다. 그때의 내가 책을 좀 읽는 인간이었다면, 문학 수업 참 재밌게 들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어쨌든, 이 시대에 고등학교에서 열리는 고전 읽기 수업에 당첨된 은 열심히 수업 준비를 한다. 그 자신이 엄선해서 고전 목록을 고르고, 수업 계획을 전달하고, 교실도 예쁘게 단장하여 고전 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준비했건만... 현실은 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엎드려 자는 학생, 교재 밑에 다른 교재를 두고 공부하는 학생, 인강 듣는 학생 등 이 수업에 집중하는 학생이 거의 없음에도 그의 역할을 열과 성을 다해 이 수업을 이끄는 것이다.


이 정도 되면 선생도 이 수업을 포기하지 않을까 싶지만, 아니다. 그는 그 환경을 이해하고 그가 준비한 수업을 진행한다. 아무도 들을 것 같지 않지만, 그의 역할은 그가 준비한 강의를 진행하는 것이니까. 그러던 어느 날, 학부모의 항의를 전달 받는다. 자기 아이가 자본론을 읽고 있는 게 걱정스럽다는 학부모의 염려스러운 말을 듣고 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혹시 주눅이 들어 이 수업에서 아예 그의 영혼을 내보내는 건 아닐까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걱정의 주인공 학생과 대화를 하던 은 기우였다는 걸 알게 된다. 자본론을 읽고 있다고 소문이 나면 빨갱이 만든다고 소문날까 봐 걱정하던 교장의 말이 무엇인지도 알겠지만,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지식의 방향과 다를 수 있겠지만, 어쩌면 이 이 수업을 준비하면서 가졌던 의의를 학생이 그대로 찾아내 준 것 같아서 반갑기도 하다.


이 그 학생의 수행평가 내용에 최고의 평가를 남기면서 서울대 진학이라는 결과를 내었는지는 모르겠다. 버려진 아이처럼 진행되었던 고전 읽기수업이 인기 과목이 되어버린 것도 조금 우습기는 하다만, 더 웃긴 건 주변 선생들의 반응이 아니었을까. 머리에 빨간 띠도 매주고, 공산당 선언도 읽히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선생들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이 사람들,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더 궁금해지기도 하고 말이다. 이상과 현실 그 사이에서 주저하면서, 이상의 실현을 위해 마음이 향하는 곳과 현실이 확인 시켜 주는 선택에 혼란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우리의 오늘이 그대로 보이는 듯했다. 이상한 건, ‘이 느끼는 혼란에 모범생 은재가 더 침착해 보여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앞으로 이 진행할 인기 수업 고전 읽기만큼이나 대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어가는 은재의 행로가 궁금해진다. 이상을 좇고 있는지, 현실과 타협하면서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던 아이들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서울대 권장 도서라는 말로 은재 아버지를 설득하려고 준비하던 이나 모범생 은재가 컨설턴트의 한 마디로 아버지의 걱정을 차단하면서 이 시대의 보편적 인물로 표현되었다는 게 이 소설의 인상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서로를 더 살피며 보게 된다. 불안한 어른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과 읽고 싶은 권리를 가진 한 사람이 만들어가는 순간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지켜보게 되는 소설이다.


#소설보다 #소설보다겨울2023 #김기태 #보편교양 #문학 #한국문학

##책추천 #단편소설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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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캐나다의 한국인 응급구조사 - 나를 살리러 떠난 곳에서 환자를 살리며 깨달은 것들
김준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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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감으로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물론 모두가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할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현실에 타협하는 이유가 가장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이다. 먹고 살 걱정만 아니라면 당장 때려치우고 싶다는 말을 심심찮게 들을 때도 있는 걸 보면, 오랫동안 바라고 준비하면서 닿은 목적지라도 그 일의 사명감이라는 것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 건가 보다 싶기도 하다.


좋은 상황에서, 좋은 조건으로 캐나다로 향한 건 아니다. 바닥을 치고 일어서는 마음으로, 이게 아니면 더는 붙잡을 수 있는 게 없다는 간절함으로 캐나다의 파라메딕으로 채용된 그의 삶을 듣는 게 쉽지는 않았다. 한국인이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이방인으로 그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란 더욱 만만하게 볼 일은 아니다. 그렇게 마주한 응급구조사로 일하는 그의 역할은 누군가의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함께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그가 그 일을 하면서 겪은 일과 감정으로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게 되었다. 죽음에 가까이 닿을 뻔한 순간에 생의 영역으로 다시 돌아온 환자를 볼 때는 기뻤다. 심각한 외상 환자를 이송하게 된 후에도 다행이다 싶었다.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절망에 빠지다가도 곧 회복하는 의식을 확인하고 안도하기도 했다.


그것 뿐일까? 혹시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는 그의 한 마디가, 어쩌면 그를 살게 하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은 나만 하는 걸까. 생으로 이끄는 그의 역할에도 죽음은 늘 가까이 있었다. 그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건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과 죄책감, 가족의 죽음에 슬퍼할 이들의 마음을 가늠하는 것 역시 그가 꼭 해야 할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 혼란스러운 마음이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듯해서 모른 척할 수가 없다. 누군가에게 먼저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바뀐 그의 이야기는, 그저 누군가의 작은 변화쯤으로 여길 수 없었다. 그의 직업 때문에 생긴 습관인가 싶다가도, 그의 업무 시간이 아닐 때도 스스럼없이 나오는 그 말에 그의 진심을 느낀다.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나라에서 선뜻 내미는 손이 어떤 의미일까. 어쩌면 그 마음이 그에게 그대로 되돌아온 경험 때문에 그는 잊을 수 없는 경험과 습관을 갖게 된 건 아닐까? 어떤 이유로든, 그의 이 아름다운 습관이 부디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여러 번 드나들었던 응급실, 다급한 환자와 보호자와는 다르게 절차에 따라 치료를 시작하는 병원의 방식, 그 사이에 또 여러 번 마주치는 구조대원들을 볼 때마다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그저 하나의 직업으로, 그들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거겠지 싶은, 나와 다른 일상을 사는 그들의 모습을 그저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다르지만 비슷한 역할을 하는, 주변에서 자주 보는 그들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한국과 캐나다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 다르기도 하고, 총기나 마약 사고가 빈번해서 그 잔혹함이 그에게도 충격이었을 테다. 내 눈앞에 펼쳐진 타인의 비극과 고통을 살펴볼 겨를도 없이 업무에 뛰어 들겠지만, 그만의 방식으로 사건 현장을 마주하고 지켜낸다. 그가 하는 일에도 규정이 있지만, 때로는 그것을 무시하고 간절한 마음이 앞서 나갈 때가 있다. 그것이, 그가 타인의 고통과 비극 앞에서 취하는 태도였다. 올바르다 그르다 판단하기에 앞서,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마음 자세가 아닐까 싶다.


죽음을 앞둔 여러 환자가 자신의 마지막을 보내는 다양한 방식을 듣고 있노라면, 나 역시 마지막을 보내는 순간을 상상하게 된다. 매번 그 상상에서 멈추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마주할 그 순간에 타인과 연결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혼자 쓸쓸하지 않게, 내 앞의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면서, 이렇게 가는 순간까지 즐거웠다고, 앞서 경험한 슬픔도 괜찮았다고 말할 수 있게 말이다. 호스피스 시설로 이동하는 시한부 환자의 웃음에 어떻게 인사를 나눌지 혼란스러워하는 저자의 표정을 그려보기도 하지만, 그 순간마저 한 사람의 마음을 읽으려고 애쓰는 태도가 아름다웠다. 죽음을 앞둔 많은 환자가 자신의 마지막을 보내는 다양한 방식 앞에서 우리가 저절로 배우게 되는 것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죽음 너머에 있는 삶의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언젠가부터 병원에 드나드는 횟수가 늘었다. 나는 환자와 보호자로 병원에 익숙해졌지만, 그 익숙함에 점점 무던해지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두려움은 더욱 커진다. 죽음에 조금씩 가까워진 기분 때문이다. 언젠가 닿을 그 순간을 생각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어떻게 닿을 것인지 생각하는 건 낯설다. 저자가 만난 많은 환자와 가족이 보여준 것들로, 저자가 자기 자신을 친절하게 대하는 방법을 알게 되는 과정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에 이르기까지 살아가는 우리를 더 아끼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걸 알게 하는 이야기다. 요즘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로 많이 힘들었는데, 정신적으로 피로하니 몸까지 내 말을 듣지 않는 시간이 계속되어 울고 싶었는데, 나를 더 소중하게 대하며 살아가기를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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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창창
설재인 지음 / 밝은세상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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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계의 스타 작가 곽문영의 딸로 살아가는 일이, 썩 괜찮을 거로 보였다. 부족할 거 없는 현실의 풍요로움과 쓰기만 하면 중박 이상을 터트리는 엄마의 명성에 자식까지 저절로 뿌듯해질 것 같은데. 아니었나?


곽문영의 딸 곽용호는 용과 호랑이가 나왔다는 태몽처럼 이름이 지어졌다. 위풍당당, 어디에서도 그 힘을 발휘하며 살아갈 거로 보였던 이름이었건만, 현실의 곽용호는 그저 스물아홉의 백수일 뿐이다. 삼수 끝에 서울의 4년제 대학에 입학했고, 졸업 후에도 매번 취업에 실패한 패배자로 살아가는 중이다. 뭔가 있어 보이는 이름 빼면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존재, 그가 바로 곽용호다. 엄마의 유명세만큼이나 그 자신도 쓸모 있는 인간이 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한 채로 성장했다. 엄마에게 관심 받지 못하고 자라왔고, 그의 인생에 비치 비춰지는 순간은 엄마 곽문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뿐이라니. 어째 형제자매 사이의 비교도 힘들다고 여겼는데, 능력 있는 작가인 엄마와의 비교도 힘들 것 같긴 하다. 그래서일까, 엄마와 사이가 좋았던 적이 없다. 매번 다투고, 서로의 인생 참견하지 않은 채로 살아가던 어느 날. 새 드라마 제작을 앞두고 엄마가 사라졌다.


이 사실에 당황스러운 사람이 한둘이 아닐 터. 엄마의 수족인 오혜진이 곽용호에게 제안을 한다. 엄마의 새 드라마의 대본을 대신 써 달라는 것.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일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곽용호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여기까지 읽고 나면 온갖 상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 이제 엄마 대신 대본을 쓰는 곽용호는 엄마보다 더 재밌는 드라마를 완성한다. 그동안 엄마의 기세에 눌려 발하지 못한 그의 능력이 화산 터지듯 폭발하는 순간이다. 그럼 다음 문제를 해결해야겠지. 사라진 엄마는 어떻게 찾을 것인가. 이 드라마의 완성에 곽용호의 이름이 들어갈 수 있을까 없을까. 엄마 대신 유령 작가로 드라마를 쓴 곽용호의 인생은 이제 날아오를까? 사실 어릴 적 곽용호의 꿈은 작가였다. 자꾸만 엄마의 재주에 비교하다 보니 그의 재능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걸 일찍 깨달았을 뿐이다. 그런 꿈마저 사라지니, 저절로 존재감 없는 인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순간, 엄마 대신 대본을 쓰고 있는 지금 그의 재능은 어떻게 평가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마치 숨겨졌던 어떤 길을 여는 기분이다. 문제는, 곽용호가 엄마의 대본을 대신 쓰는 이 문제를 해결해도 문제, 해결 못 해도 문제라는 거다.


엄마 대신 드라마 쓰기에 한창 빠져있을 무렵, 잊고 있던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다. 집중해서 글을 쓸 때는 생각나지도 않았던 엄마의 부재. 엄마를 찾아야 했다. 곽용호가 엄마를 찾기로 결심하고, 같이 글을 쓰던 함장현과 배우 주민호까지 함께 엄마를 찾아 나선 여정은 전혀 예상 밖의 이야기였다.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는 이궉산의 광혜암. 사람들의 발길도 뜸하고 암자 같지도 않게 흉흉한 외관, 수상한 관리인 스님까지 의심스러운 게 한둘이 아니다. 이곳에 엄마가 자주 드나들었다는 단서로 곽용호 일행 역시 이곳에서 엄마의 흔적을 찾으려고 애쓴다. 이 과정에서 그들이 발견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놀랍기도 하고 아프기도 했다.


죄책감이 원인이 되는 치매, 상당히 오랜 시간 죄책감이 쌓이면서 기억을 잃어버린단다. 실제로 이런 치매가 있는지 소설 속 설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치매 환자가 기억을 잃는다는 게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죄책감이 쌓여 기억을 잃는다는 게 왜 이렇게 무서운지 모르겠다. 얼마나 미안한 게 많았으면, 얼마나 그 마음 끌어안고 살아왔으면 이렇게 기억을 잃게 되는 걸까. 더군다나 그런 이유로 기억을 잃은 이들은 누군가를 돌봐야 한다는 마음만 남아 있다고 한다. 밥을 먹이고 씻기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가만히 앉은 채로 살아갈 수 없게 누군가의 한마디에 몸이 먼저 움직인다. 더 아픈 건, 그들 자신을 돌보는 법을 잊었다는 거다. 누군가를 보살피는 게 그들이 유일하게 기억하는 일이라면, 자신을 돌보는 법을 가장 먼저 잊고야 말았다. 스스로 먹고 씻고 하는 것조차 잊은 채로 살아간다. 처음 곽용호가 아파트 현관 문 앞에 쌓여 썩어 가는 배달 음식을 보고 조금만 더 깊게 생각했더라면, 일하느라 바빠서 음식 배달 시킨 것도 깜빡할 정도로 엄마가 대본에 집중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었더라면, 지금 뭐가 달라졌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것도 단정할 수가 없다. 오랜 세월 혼자 곽용호를 키우면서, 자식은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일만 하면서 이기적으로 살아왔다고 보였을 지라도, 곽문영의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은 그 죄책감을 우리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생각해보면 마음의 병은, 생각한 대로 되지 않을 때 생기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곽문영의 인생을 들여다보며, 광혜암에 모여든 사람들의 병이 왜 시작되었는지 추측하게 된다. 해주고 싶은 건 많고 시간은 없고, 아빠 없는 아이로 자라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은 게 인생이었고, 아이 키우며 살아가기 위해 죽을 것처럼 일했고 성공도 했는데, 그렇게 살아오고 보니 남은 건 혼자 자라듯 성장한 딸에게 미안함과 죄책감 뿐이었다는, 그런 거 아닐까. 서른이 다 되도록 아무 색깔도 가지지 못한 채로 실패자로 살아온 곽용호의 인생을, 엄마인 자신이 만든 것 같아서.


결국, 이 모든 사건과 진실을 파헤치는 동안 곽용호와 그의 친구들이 마주한 것은 괜찮다는 말이었을 거다. 인생 왜 이렇게 꼬질꼬질한지, 그 창창했던 꿈은 어디에서 무너져 버렸는지, 성공하고 싶은 인생은 어쩌다 매번 실패만 하게 되는지. 그동안 살아오면서 계속 경험한 게 절망 뿐이었다면, 이제는 조금씩 나아가는 마음을 붙잡아준 소설이 아니었나 싶다. 광혜암의 그 많은 사람이 갖게 된 죄책감 말고, 괜찮다는 말로 그저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마련해준 시간이었다. 곽용호뿐만 아니라, 그 시간을 살아가는 많은 이가 똑같이 겪는 불안정한 경험 속에 있다고 말이다. 그러니 괜찮다고 말한다. 기억을 잃은 이들의 이야기를 미친 듯이 써 대면서 사람들에게 기억하게 하고, 그 기억을 산 대가로 그들의 몸과 마음을 다독이는 일에 앞장서고, 다정하게 대할 수밖에 없던 누군가의 마음이 그대로 읽힌다. 그저 그 시간에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현실이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고, 그러니 괜찮다고. 설령 이 인생의 엔딩이 또 다른 패배자의 기록으로 남는다고 해도, 그저 나아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지 않은가. 뭐가 하나 부족해도, 가야지. 앞으로,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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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같은 나무 하나쯤은
강재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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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누구에게나 그런 장소, 그런 대상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살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에 답을 중 책이 아닐까 싶다. ‘분교 사진가라 불리며 사라져 가는 작은 학교를 사진으로 담아낸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 마음 머물 곳 하나쯤 새겨두게 한다. 30여년 분교를 찾아다니며 찍은 사진 속의 나무들은, 이제 그의 오랜 친구가 되어 그곳에 머물고 있다. 때로는 그의 푸념과 걱정을 들어주며, 때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주며, 때로는 많은 동물의 삶을 전하면서 말이다.


우리 집 거실 큰 창으로 바라보는 앞 발코니에는 화분이 하나 있다. 이렇게 말하니 누군가는 내가 화초 키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 여기던데, 아니다. 엄마가 주신 알로에 화분이다. 가끔 물만 주면 잘 자라는, 조금 말라 있어도 괜찮은 그 화분은 사실 상처 치료용으로 둔 거다. 수시로 손가락에 상처가 나곤 해서, 상처와 염증 치료에 좋다는 알로에 화분은 내가 돌보는 유일한 식물이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잘 돌보지 못하니 아예 곁에 두기를 꺼려하는 나 같은 사람이 이 책을 보고 살짝 놀라기도 했다. 마음이 머물다가 찍은 사진, 그 자리에 잘 있겠거니 하다가 우연히 다시 만날 수도 있는 존재라고 여기던 나무가, 그 자리에서 여전히 머물고 있기만 한 건 아니었다. 이상하리만치, 마치 숨을 쉬고 있다고 말한다면 좀 과장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정말 그런 것 같다.


그 오랜 시간 나무 사진을 찍으며 살아온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 우리가 겪는 온갖 마음이 있었다. 상처 받은 마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처럼, 든든하게 의지가 되는 힘을 뿜어내면서,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려주는 누군가가 되어주었다. 가로막힌 철망 사이를 뚫고 자라면서 살아냈다. 마치 여기에서 이렇게 버티고 있으니 언제나 와도 내가 있을 거라고 말하는 것처럼. 일상에 치이고 마음이 힘들어질 때마다, 인생에 충전이 필요할 때마다 에너지를 내어주는 존재로 머물러 있었다.




지금 이 책이 나에게 더 가깝게 다가오는 건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싶다. 뭔가 뚜렷하게 한 게 없는 듯한데, 작년 가을부터 마음이 너무 바빴다. 마무리해야 할 일을 하다 보니 새해가 되었고, 작년에 다 정리되지 않은 자잘한 일들 정리하느라 또 1월이 훌쩍 가버렸다. 그 사이의 병원 생활은 1월이 더 짧게 느껴지게 했다. 일주일 정도 미친 듯이 잠을 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숨이 막힐 정도는 아니었는데, 피곤이 쌓여 학교 다닐 때도 안 났던 코피가 났다. 이게 맞는 건가 싶은 일에 고민하느라 주저하고, 그냥 결정하면 되는 일에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지기도 했다. 지나고 보면 단순하던데, 왜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하게 되는 건지, 그저 어렵기만 하다고 생각하는 시간들이었다. 그냥,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에 분노하고, 생각대로 되지 않을까 봐 불안하기만 했다. 읽는 이의 이런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이, 작가는 나무와 사귀어 보라고 말한다.


글쎄, 나무와 사귀는 어떻게 하는 걸까? 작가는 이렇게 조언한다.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고, 집 가까이에서 마음에 드는 나무 하나 골라 친구로 만들면 된다고. 아침 출근길에 살펴보고, 저녁 귀갓길에 또 살펴볼 수 있는 나무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이다. 동네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산과 숲, 강가에서 친구 나무를 찾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오랜만에 찾아가 안부를 묻는다면 더 각별해질 수도 있다고 말하는 저자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정말 오래되고 친한 친구는, 몇 달만의 통화에서도 바로 어제 통화하고 만난 것처럼 느껴지는 게, 작가가 말하는 나무와의 안부와 너무 닮았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물으면서, 행복하거나 힘들었던 마음을 들으면서, 서로 사는 이야기 나누는 그 시간이 너무 애틋해서 좋은 기분. 혼자서 견디기 어려운 게 세상살이라면, 이런 친구 이런 나무 하나쯤 꼭 옆에 두고 싶은 마음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많은 나무의 사진이, 나무의 삶이 아름다웠다. 앙상하게 가지만 남아 있어도, 우아하게 꽃을 피우고 있어도, 그 자체로 자기 모습을 지키고 있는 게 우리 살아가는 모습과 닮아 있어서 한참을 보게 된다. 어느 시기에 꽃을 피우다가도 언젠가는 다 떨어진 꽃잎을 아쉬워하며 가지만 남아 있기도 하는 게, 우리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인 것 같다. 봄의 생동감(), 여름의 왕성함(), 가을의 풍성함(열매), 겨울의 고요함(나무껍질(수피))으로 다가오는 나무의 삶에서 인간의 삶을 보게 되는 건, 이미 나무와 친구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러니 이제 그 친구 중 하나 정도 마음에 새겨두고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어도 좋겠다. 작가가 많이 힘들 때 우연처럼 손을 흔들었던 그 나무가, 이제는 사진과 글로 우리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친구같은나무하나쯤은 #강재훈 #문학 #에세이 #한국문학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8#사진에세이 #책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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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 - 영 케어러와 홈 닥터, 각자도생 사회에서 상호의존의 세계를 상상하다
조기현.홍종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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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케어러 조기현 활동가와 방문 진료 의사 홍종원의 대담집이다. 이 두 사람의 수식어를 보면 어느 정도 예상되는 게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는데, 역시 깊고 굵은 메시지를 가득 담은 이야기였다. 이 시대에 빠지지 않는 화두인 돌봄과 그 돌봄에 깊게 관여하고 있는 두 사람이 대화의 중심에 있다. 나 역시 지금 가족 돌봄에 관련된 한 사람으로, 이들이 하는 이야기가 낯설게 들려오지는 않는다. 더 나아가, 나도 언젠가 돌봄의 대상의 될 수 있는 게 자연스러운 변화이기에, 조금 더 집중해서 듣게 되는 이야기다.


이 책에서 하고자 하는 얘기를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돌봄이 사회적 책임 안에서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 돌봄의 역할에서 개인이 해야 할 부분도 있겠지만, 온전히 개인만의 책임에 묶어둘 수는 없다. 이 사회의 변화하는 과정에서 분명하게 보이는 돌봄의 문제를 사회적 책임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다. 누구나 경험하게 될 일이 돌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이 더욱 강조하는 게 돌봄의 주체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된다는 것. 그러니 돌봄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아야 하는 건 너무 당연하고, 사회가 돌봄 인프라 구축에 힘써 돌봄 위기 사회가 아니라 돌봄 사회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렇게 말로만 하고 있으니 막연하게 들리는데, 내가 최근 경험한 경우를 생각하다 보니, 사회가 같이 책임져야 할 돌봄의 문제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나 역시 처음부터 내가 돌봄의 주체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살아오지는 않았다. 어쩌다 보니, 또 누군가 해야 하니까 하는 일이 되었다. 아버지가 편찮으셨던 몇 년 동안, 혼자 감당할 수 없던 엄마와 함께 돌봄의 주체가 되었다. 응급실과 중환자실, 일반 병실을 거쳐 요양 병원까지 입퇴원을 반복했던 시간이 5년 정도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이제 돌봄의 시간에서 벗어난 우리는 이제 각자의 삶에 집중해야 했다. 마음의 부담과 피곤함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할 무렵, 이제 엄마가 아프고 몇 번의 병원 신세를 지곤 했다. 병원에서 생활하는 동안, 퇴원하고 집에서 지내는 동안 누군가 해야 할 일을, 나는 또 하게 되었다. 물론 다른 형제자매도 있고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였지만, 이상하게도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하게 되는 게 돌봄이 되어버리는 건, 또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덜 피곤한 일이기도 했다.


사실 간병인을 고용하는 비용이 저렴하거나,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내가 병원에 상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여건이었고, 보호자나 간병인의 상주를 원하는 병원 생활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환자 본인도 혼자서 움직이기 어려웠으니, 뭐 다른 방법이 있겠나. 어쨌거나 엄마의 병원 생활은 끝났지만, 여전히 걱정은 남아 있다. 집에서 생활하는 엄마를 자주 살피러 가야 하고, 혹시나 다른 일이 생기지 않을까 미리 걱정하는 일이 늘었다. 저자가 말하는 돌봄 위기의 근본 원인을 나는 여기에서 살피게 된다. 고령화 사회의 진입은 더 많은 돌봄을 필요로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요즘은 나이 드신 분도 정정하시니 각자의 일상을 잘 살아가고 있지만, 나이 드신 분이 젊은 사람과 같은 몸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러니 돌봄이 필요한 건 너무 당연하다. 거기에 개인주의는 돌봄이 각자의 문제라는 인식을 만들 수도 있다.


돌봄이 관계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하는 저자들의 대화가 뜬금없어 보였는데, 듣다 보면 그 관계가 순환하는 돌봄의 문제에서 꼭 필요한 관계였다. 돌봄이 일방적으로 개인이 고통 속에서 견뎌나가야 하는 문제도 아니고, 사회와 국가만이 책임져야 할 문제도 아니었다. 그 사이에 엮어진 많은 관계 안에서 이뤄나가야 할 문제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인간이 많은 관계를 통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한 개인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서로 관계 맺음으로 돌봄 인프라가 형성된다고 한다. 이때 지역 사회의 발전은 중요한 과제가 된다. 아픈 가족을 돌보며 일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멀리 있는 병원에 가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지역 공동체의 도움으로 내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치료 받을 수 있거나, 내 집에서 돌봄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을 줄여야 한다. 이러한 환경을 만드는 게 돌봄을 수행하는 데 정말 큰 역할을 한다.


어느 것 하나만으로 돌봄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저자들의 대화 역시 단순하게 돌봄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만도 아니다. 돌봄 사회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찾으려고 애쓴다. 돌봄 노동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돌봄 인프라의 확충이 중요하다. 돌봄이 중심이 된 지역공동체의 역할과 관계도 탄탄해져야 하고, 돌봄 사회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의 실현이 따라와 주어야 한다. 거기에 우리의 역할도 분명히 있다. 우리 자신이 돌봄의 인프라가 될 때, 돌봄 위기 사회는 돌봄 사회가 될 것이다.


최근에 지역아동센터에서 실습한 기억을 떠올려 보고, 엄마의 병원 생활을 기억해 보면, 돌봄의 문제는 이 사회 전체의 분야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였다. 일상의 관계 맺음에서 돌아보는 일이 돌봄이라는 게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사회적 제도가 확충되어야 하는 일과 사람이 채워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기에, 어느 한 가지만으로 완벽하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돌봄이었다. 어느 날 늙고 병들어 돌봄의 대상이 될지도 모를 순간에, 나 자신을 혐오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까지, 돌봄의 가치가 올바르게 평가될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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