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것들의 기록 - 유품정리사가 써내려간 떠난 이들의 뒷모습
김새별.전애원 지음 / 청림출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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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글을 두 번째 만난다. 앞서 출간된 책을 읽으면서, 어느 매체에서 봤던 죽은 지 한참 지난 후에 발견된 백골 시신 이야기가 생각나곤 했다. 누군가 떠난 자리를 정리하는 일이 쉬울 거로 생각한 적은 없지만, 마음까지 어려워질 거란 생각을 크게 하지는 않았다.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은 남겨진 사람이 당연히 하는 거로 여겼던 마음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도 종종 나의 마지막 순간을 걱정하는 걸 보면, 나를 보내주는 이가 있을 거라는 당연한 생각은 접어두어야 할 것 같다. 나 혼자 지내다가 나 혼자 떠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마저도 누군가 확인해 주지 못한다면 죽음 이후의 모습마저 고독하고 쓸쓸함으로 각인될 것 같아서, 혼자 있다가 혼자 떠났다는 것 자체가 죽기 전까지 외로웠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보여서 우울해진다.


정말 많이 바쁜 상황이 아니라면, 하루에 한 번씩 엄마에게 전화를 하고,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는지 묻곤 한다. 장난처럼, 엄마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하는 전화라고 말하곤 하는데,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혼자 계신 엄마가 넘어져서 움직이지 못 하는 상황에라도 처했을까 봐, 저자가 방문하는 작업 현장처럼 엄마가 돌아가시고 며칠이나 지나서 발견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특히 여기저기 아픈 데가 많아지는 요즘에 엄마를 걱정하는 시간은 배가 된다. 새해가 시작하자마자 손을 다쳐서 입원했고 퇴원하고서도 손을 제대로 쓰지 못해 불편한 것뿐인데, 곧 다른 부분을 치료받으러 다시 입원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니 별일 없는지 묻는 안부는 끝이 나지 않겠지. 나이를 먹고 하루가 다르게 노쇠해지는 몸은 어쩔 수 없지만, 육체의 질병보다 아픈 상황에서의 마음마저 불안해진다면 몸의 회복은 더디거나 아예 낫지 않을 거다.


25년이 넘도록 이 일을 하는 저자는, 매번 유품을 정리할 때마다 전해지는 고인의 외로웠을 시간에 안타까워하고 먹먹함을 느낀다. 누군가의 관심이 한 사람의 죽음을 막는다거나 외롭지 않게 할 수는 없겠지만, 덜 외롭게 떠나보낼 수는 있다는 마음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떠난 이들이 남겨놓은 것들, 남겨진 공간의 흔적들은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온 집안에 쓰레기와 물건으로 가득 차 집 앞 도로에서 잠을 잤다는 노인의 외로움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자기 인생 책임지며 살아가는 어른이 되고 싶었으나, 번번이 좌절하는 날들에 세상을 놓아버린 청년. 자기 인생 찾겠다며 이혼하고 새 삶을 시작했던 아내가 스스로 놓아버린 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남편은 알지 못했다. 매일 짐을 싸서 이삿짐 트럭을 부르고, 그때마다 아들의 연락을 기다리며 출발하지 못하는 이삿짐 차를 붙잡고 있는 치매 노인의 안타까운 사연은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파진다.


희로애락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한 사람의 인생을 지우는 작업은 참으로 공허했다. 문득 이것이야말로 고독사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고독사는 다른 말로 절망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절망과 좌절 때문에 조금씩 생활이 무너지고 관계도 끊겨 홀로 죽게 되기 때문이다. (144)


말로 다 전하지 못하는 고독사의 여러 현장과 그들의 사연은 이 시대의 어둠인 듯하다. 그들이 삶의 애착을 가지는 동안 살아가려고 발버둥 치고 애쓰는 모습을 그려보기도 한다. 내일을 기다릴 수 없고, 더는 붙잡고 있을 여력도 없을 때 놓아버리는 생의 쓸쓸함은 누구를 탓해야 할까. 그래서 어떤 의미로든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필요한 건가 보다.


엄마가 밥맛이 없다고 할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남편이 있을 때는 시간이 걸려도 식사준비를 하는 편인데, 나 역시도 혼자 있을 때는 매 끼니를 챙기는 게 아니라 그저 배가 고프다는 걸 느낄 때 밥을 먹는다. 그마저도 제대로 차려놓고 먹지는 않는다. 귀찮으니까. 간절한 허기를 채울 정도면, 어떤 것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입으로 무언가를 밀어 넣는다. 그러니 엄마가 밥맛이 없다고 하는 마음이 저절로 이해가 되는 거다. 누군가를 챙겨야 하거나 꼭 시간 맞춰 식사해야 할 상황이 아니라면, 그저 먹는 일조차 번거로울 뿐이다. 혼자서 먹는 밥이 맛있기도 어려울 테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그저 죽지 않으려고 먹는다는 표현을 종종 하시는데, 배고픔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외로움의 자리가 커진 건 아닐까 걱정이 되는 거다. 바빠도 일주일에 한두 번 시간 내서 엄마를 보러 가는데, 사실 그것도 쉽지 않다. 매일 전화하는 걸 챙기는 것도 잊을 때가 있는데, 직접 가서 보는 게 쉽지는 않다. 그래도 수시로 찾아드는 외로움과 서글픔을 조금 덜어낼 수만 있다면, 외로움에 치여 혼자 떠나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나의 이 번거롭고 귀찮음을 이기는 듯하다.


희망은 자가발전이 잘 안된다. 혼자서 아무리 기를 써봐야 쳇바퀴 위를 구르는 것 같아 지치기 십상이다. 작은 것이라도 함께 나누고 꿈꿀 때 희망이 생겨난다. (178)


저자가 떠난 이들의 사연으로 전하고 싶은 것도 비슷하다.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여력도 없이 숨 가쁘게 살아가야만 하는 일상이지만, 그 사이에 생의 의지를 놓아버리는 이들이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분명히 있다고. 그가 하는 일은 누군가의 인생을 지우는 일이지만,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진심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고독사에 관한 사회적 관심은 많아지고 국가의 정책도 마련되어 있다는데, 이상하게 고독사 자체가 줄어들지는 않았다고 한다. 1인 가구도 늘어나고, 점점 더 개인화되어 가는 세상에서 쉽게 낙관할 수도 없다고 한다. 그가 정리하려고 방문한 현장의 상황과 다르게, 단정하게 이별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의 바람일 테다. 그러려면 자기 삶을 스스로 방치하지 않아야 한다고, 혼자가 아니라 서로의 마음으로 안전망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 정도만으로도 우리는 주변 사람에게 더 다정해지고, 외롭고 쓸쓸하지 않은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길 바랄 수 있지 않을까.



#남겨진것들의기록 #김새별 #전애원 #유품정리사가써내려간떠난이들의뒷모습

##문학 #에세이 #책추천 #관심 #돌봄 #고독사 #절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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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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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늘 두 가지 선택의 순간이 존재한다. 그런 까닭에 후회할 가능성 역시 늘 존재한다. 첫 번째 순간은 뷰파인더에서 우리를 노리는 사건이 벌어질 때다. 두 번째 순간은 촬영한 필름을 모두 현상 인화하고 효과가 떨어지는 것들을 버려야 할 때다. 그 두 번째 순간에서 우리는 자신이 어느 지점에서 실패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지만 이미 때늦은 순간이다.’ (본문 중에서)


아마도,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만 하는 것 사이에서 마음이 왔다 갔다 하지만, 결국 해야만 하는 것을 선택하고 책임을 다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그래도 마음 한편에 남은 갈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해도 불안하거나 무책임하게 여기지 않을 시간이 올 거로 믿는다. 어쩌면 그 믿음이 지금을 살게 하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벤의 현실도 그러하다. 월가의 잘나가는 변호사이고, 아내와 두 아이도 있는, 다른 이가 보기에는 충분히 행복한 삶인 것 같다. 중산층의 여유로움이 그의 일상을 더 풍족하게 해주는 듯하면서도 사회적 지위도 놓치지 않을 날들을 지내고 있다. 그렇게 만족하면서 살면 좋을 것을, 사실 그는 현재 자신의 삶에 구멍이 뚫린 것만 같다. 사진가로 살아가고 싶은 오랜 염원을 이루지 못 했기에, 변호사의 삶이 그의 현실을 풍요롭게 했을지 몰라도 그의 꿈까지 채워주지는 못 했다. 그의 빈 마음은 돈이 채워주었다. 사진을 찍지 못하지만, 언제라도 최상의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사진 장비 마련에 아낌없이 돈을 쓴다. 최신의, 최고급 장비로 그의 암실을 채웠다. 그의 마음을 채워주는 건 그것뿐이었다. 아내와의 불화만 아니라면, 그럭저럭 만족하면서 살아갔을 것 같은데, 아내와 마음을 나눈 지도 오래다. 아내 역시 작가가 꿈이었지만, 결혼과 육아, 부족한 자기 시간으로 꿈을 이루지 못한 불만족이 가득하다. 그래서 자기 마음 읽어주지도 못하는 남편 말고, 앞집 남자 게리와 불륜을 저지른다.


렇다면 게리는 어떤 인물인가. 부모가 남겨준 신탁으로 겨우 생활을 유지하는 정도의 경제력인데, 그의 태도는 거만하기 이를 데가 없다. 설상가상, 벤이 놓친 사진가의 꿈을 이뤄가는 걸 자랑하느라 입을 다물지 못하는 그가, 벤은 참 꼴도 보기 싫었다. 안 그래도 자랑질에 미쳐 있는 게리가 미웠는데, 불화를 겪는 아내가 불륜을 저지른 상태가 게리라니. 어느 날 게리와의 말다툼 끝에 살인을 저지른 벤은, 이 위기를 벗어나고자 완전범죄를 기도하면서 만반의 준비를 한다.


바로 앞에서 벌어진 살인을 수습하는 게, 완전 범죄로 만들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살아가는 게, 가능한 일인가? 도망을 친다고 해도 언제 잡히느냐 하는 건 시간문제일 텐데, 그가 겁도 없이 이 상황을 이런 식으로 수습할 수 있다는 게 말이 안 되는 듯했다. 그런데 점점 그가 게리의 시신을 수습하면서, 그 자신이 어떻게 이 상황에서 벗어날지 계획하고 준비하면서 보여주는 치밀함은 놀라웠다. 고객의 마음을 돌리고 최선을 선택(변호사가 일을 더욱 원만하게 처리할 수 있는 선택)하게 만드는 그의 영업 기술이 발휘된 걸까. 의외의 행운까지 그의 편이 되어 주었다. 이제는 그는 게리를 죽인 살인자 벤이 아니라, 그가 혐오했던, 아무도 찾아주지 않던 능력 없는 사진가 게리 서머스가 되었다.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사람의 외모까지 바꾸기를 어려울 테다. 벤이 게리가 되어 살아가기 위해 첫 번째로 지켜야 할 원칙은 얼굴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 적당한 돈과 머물 곳이 있다면, 배가 고플 때 허기를 채울 정도만 된다는 게리로 살아가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다. 그렇게 바라던 사진을 찍으면서 지내는 일상, 누구의 눈에 띄지도 않게 그저 조심히, 조용히 살아가면 죽을 때까지 살인자라는 것을 숨기고 살아갈 수도 있다. 나 역시 벤의 남은 삶이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게리를 죽인 건 이미 벌어진 일,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완전 범죄까지 만들어 놓았으니, 이제 그 완전범죄를 유지하면서 살아가면 될 일이 아닌가. 정처 없이 떠돌면서, 발길 머무는 곳에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가면서 살아가는, 게리의 이름을 쓰는 벤을 상상하면서 읽었다. 늘 그렇듯, 인생이 어디 내가 바라는 대로만, 계획했던 대로만 흘러가지 않아서 문제였지만.


미 오래전 출간된 책이라 입소문은 익히 들어왔지만, 쉽게 읽게 되지 않아서 미뤄두었던 책이다. 페이지 수가 상당한 소설인데, 의외로 잘 읽힌다. 벤의 시선에서 보이는 여러 상황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것처럼 생생하다. 아내와의 불화에 불편한 집안 공기, 아내가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육아 상황,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를 때 목격한 아내의 불륜, 모른 척하면서 한방 먹이고 싶어서 대면한 아내의 불륜 상대를 죽이게 된 일 등, 어느 것 하나 벤의 마음처럼 되는 게 없어서 안타깝기만 했다. 그러다가 기어코 벌어지고야 만 살인에, 벤이 앞으로의 항로를 어떻게 설정할지 궁금해서 계속 지켜보게 된다. 한동안 숨어 살 수 있겠지만, 언젠가는 살인자로 붙잡힐지도 모르지. 벤이 붙잡히는 게 맞는 건지, 그래도 다른 사람 이름으로 살아가게 내버려둬야 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겠더라. 내가 심판할 것도 아니면서, 이상하게 와 닿는 벤의 간절함이 읽혔다고 해야 하나. 이왕 이렇게 된 거, 남은 시간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마음.


남은 건 단 하나, 벤이 그의 살인 사실을 철저하게 숨기고 살아가는 것뿐이다. 알겠지만,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살인자가 조용히 살아가게 만들지 않는다. 꿈을 이루지 못해서 갈증을 안고 살아가던 삶, 부유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시간, 살인자가 되어 비로소 그 꿈을 이루게 되었던 남자. 하지만 결코 그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었기에, 또다시 불안한 날들을 감당해야 했던 그의 인생이었다. 이제 또 어디로 흘러가려나.


한편으로는 이 소설이 혹시 코미디는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매 순간 이 남자가 잡히지는 않을지 걱정하면서 읽게 되는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그때마다 우연처럼 행운(?)이 따른다. 누군가 그의 정체를 알고 신고할 것 같은데, 그의 살인을 혐오하면서 다시는 안 볼 것 같은데, 사람은 위기의 순간에 어떤 손이라도 잡을 수 있다는 듯이 보이는 설정에 웃음이 나는 건 왜인지. 아마도 작가가 벤을 통해 많은 사람의 간절함을 대신 이뤄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벤의 잃어버린 꿈, 가족이 있지만 여전히 느끼는 고독, 현실에 안주하면 편안하긴 하겠지만 가슴 속 간절함까지 놓고 살지 못하고 망설이는 나날들. 어느 곳에서도 완전한 나로 살아갈 수 없고, 내가 바라는 만족을 포기한 채로 살아가야만 하는 이들에게 소설로 전하는 일탈이라고 해야 하나. 언제나 우리 삶은 현실과 로망 사이에서 왔다가 갔다가, 간절히 바랐다가 포기했다가. 결국 를 잃어버리고 나니 이 실현되는 아이러니를 어쩌면 좋을까.


꿈을 꾸는 삶도 좋지만, 잃어버리고 나서야 아는 주어진 삶의 소중함도 잊지 말기를.


#빅픽처 #더글라스케네디 #도서출판밝은세상 #소설 #외국소설 #문학

##책추천 #소설추천 #완전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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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가 담겼는지 궁금해서 읽어봤는데,

마냥 쉽게 읽히지는 않아서 잠깐 주춤거리다가,

시집에 담긴 시 중에서 한 편 적어본다.



4월이면 바람나고 싶다

 

우수 경칩 다 지나고

거리엔 꽃을 든 여인들 분주하고

살아 있는 것들 모두 살아 있으니

말 좀 걸어달라고 종알대고

마음속으론 황사바람만 몰려오는데

4월이면 바람나고 싶다

바람이 나도 단단히 나서

마침내 바람이 되고 싶다

바람이 되어도 거센 바람이 되어서

모래와 먼지들을 데리고 멀리 가서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 나라

어느 하늘 한쪽을

자욱이 물들이고 싶다

일렁이고 싶다




이 시집에 담긴 시들이 대체적으로 우울한 느낌인데,

'4월이면 바람 나고 싶다'는 이 시는 그냥 제목에서부터 좀 웃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

곧 황사 바람도 불어올 거고, 4월도 올 건데, 그럼 바람이 나도 괜찮을 걸까 묻고 싶은.

아마도, 여기에서 느끼는 답답함을 좀 날려 보내고 싶은 마음이려니 한다.

시 구절에서 그의 삶이 보이는 듯하기도 하지만, 내가 단정해서 말할 수는 없고,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누구나, 어느 정도의 우울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고.




우울증의 애인을 위하여

 

내가 마신 술들을 한순간 토해낸다면 집 앞에 작은 또랑 하나를 이루리라 그 취기를 풀어 권태로운 211번지 주민들을 알 수 없는 슬픔과 열정으로 몰아가고 나는 빈 소주병이 되었으면,

혼이 빠져나가듯 바람에 흩어지는 담배 연기를 모아 뭉게구름을 만들면 우울증의 애인을 잠시 즐겁게 할 수도 있으리라 그리고 웃는 애인 앞에서 구겨진 담뱃갑이 된다면,

 

내가 읽어온 책들의 활자를 풀어 벽촌의 싸락눈으로 내리게 하고 만남과 이별의 숱한 사연들을 가랑비로 내리게 한다면, 그리고 속이 텅 빈 가을 벌판의 허수아비가 된다면,

주저하다 보내지 못했던 수많은 편지의 허리 굽은 글씨들을 바로 펴 삼천리 금수강산을 그릴 수 있다면 북어대가리 같은 사유의 흔적만 남더라도 한결 가벼워진 몸을 쉽게 눕힐 수도 있으리라

 

그렇게 누워 썩을 수 있다면,

제 영혼은요 거름이 되고 공기가 되어서 우울에 지친 그대 어깨 위에 잠시 머물고 잠시 머물며 썩어 거름이 되는 것들의 아름다움과 썩기 위해 우울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고 한없이 깊은 어느 곳으로 스며들 것입니다




이 시집의 제목이 되어버린 시도 같이 읽어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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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못했던 그 친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구론산바몬드 지음, 루미 그림 / 홍림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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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밥 먹여주는 시절이 있었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믿음도 굳건했다. 부모가 가난해도, 명문가의 자녀가 아니어도 성공의 길로 갈 수 있던 날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서 그때 많은 부모가 공부 노래를 불렀나 싶기도 하다. 우리 부모님은 그러지 않았지만 말이다. 자식이 공부를 못하는데도 공부하라는 잔소리도 한 적이 없다. 그저 숙제는 하고 놀라고 했을 뿐. 공부를 잘 하면 원하는 학교 선택할 폭이 넓어지니 당연한 거겠지만, 공부를 잘 해야만 잘 먹고 잘 산다는 말을 무조건 믿었다. 어렸을 때는 그랬다. 지금도 많은 부모가 공부와 성적을, 좋은 학벌을 노래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공부 못 해서 불안하고 걱정만 가득하지는 않을 거 아닌가. ㅎㅎ 공부를 잘 하는 것도 분명 중요한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뭔가 찾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명확하다면, 나는 굳이 공부나 대학이 인생 진로의 순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학의 과정이 필요하다면 당연히 대학이 필수 코스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대학이 인생 필수 코스라고 생각하지 않게 됐다. 졸업장을 목표로 학교 다녔던 시간이 가끔은 후회되곤 하니까.


제목이 재미있어서 읽게 됐는데, 저자가 바로 공부 못 했던 그 친구. 뭐 하는 사람인가 하고 책날개에 적힌 이력을 살펴보니 영어 선생님이다. 지금은 교감선생님이라는데, 공부 못 했는데 어떻게 선생님이 되고 이렇게 오랫동안 교직 생활을 하고 있는가 싶었다. , 그 과정은 이 책 안에 고스란히, 그의 인생 흐름 순서대로 담겨 있으니 읽어보면 되는데, 한 사람의 성장 과정이 이렇게 유쾌하게 읽히기도 오랜만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런 책을 썼나 싶겠지. 어느 날, S법대를 나와 변호사가 된 초등학교 동창이 저자에게 40년 만에 문자 한 통을 보냈다고 한다. “, 밥은 먹고 사니?”라는 단 한 문장에 자격지심이 들었다고, 공부를 지지리도 못 했던 저자가 지금 밥벌이는 하고 사는 것인지 묻는 것으로 느껴졌단다. 하긴, 내가 봐도 그렇게 들리긴 한다. 내 마음이 비뚤어져서 그런가, 뜬금없이 40년 만에 받은 문자가 저런 내용이라면 반가운 마음에 안부를 보내는 거로 들리진 않는다. 어쨌든, 저자는 그 문자에 직접 답하고 싶어서, 저자 역시 공부 못했던 친구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 마음에 이 책을 쓰게 되었다는 게, 이 책의 탄생 배경이다. 한 권의 책이 나온 이유 치고는 참 재미있다.


읽으면서 깨알 웃음을 놓치지 않는데, 그 웃음이 전혀 가볍지 않아서 무겁게 읽힌다. 한 사람의 생이 이렇게 진지하고, 그의 인생 참 파란만장 하면서도 기가 막히다. 여유롭지 못한 가정 환경에, 초중고 시절을 거쳐 대학에 입학하기까지 힘들었을 것 같다. 대학에 입학했다고 해서 가난한 생활이 끝난 건 아니다. 스스로 학비를 벌고 공부까지 해야 했다. 30여년 전 얘기지만, 학자금 대출을 필수처럼 안고 살아가는 지금의 대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이다. 몇십 만원 들고 상경하여 대학을 다니고, 그를 살려준 운명인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선생님이 되었어도 사정은 비슷했다. 출근하려고 새벽 5시에 버스를 타러 나가는 하루를 상상해 보기도 하지만, 그 아침의 출근길이 아니라 그날 퇴근 후가 더 염려스러웠다. 그 정도 출퇴근 시간이 소요된다면, 퇴근 후에는 그냥 기절하면 다음 날 아침이 되는 거 아닌가? 그래도 공부 바보가 영어 선생이 되겠다고 인생 전환점을 만들어 놓았으니 책임져야 했다. 스스로 선택한 길에 이 정도의 힘듦 쯤이야 하는 마음이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차하고 운전자하고 똑같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는 욕은 묘한 특징이 있다. 그딴 짓을 어디서 배웠느냐?(사교육의 출처를 묻는다). 네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냐?(가정교육의 수준을 묻는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단박에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다). 야 이 양반아!(상대방의 신분을 높여준다). 개 같은 놈!(비유법을 즐겨 사용한다). 아무튼 차는 그 사람이 아니다. 차는 그냥 차다. 그리고 이건 상식이다. (151)


그래도, 어려운 형편에 건강하게 잘 자랐다. 돈 벌면서 공부하고 자기 진로 만들어 탄탄하게 닦아 놓았으며,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많은 경험을 하고 세상을 배웠다. 공부 바보의 과거 기억은 잊고 인생을 책임져줄 공부도 열심히 했다. 임용고시에 합격해서도 그의 시작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교사 연수에 가서도 머물 곳이 없어서 목욕탕 아르바이트 하면서 숙박을 해결했다. 그 덕분에 매일 샤워하면서 연수 받으러 가니, 연수생 중에 가장 깨끗했다나 뭐라나. 이렇게 저자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곳곳에서 묻어 나는 긍정의 에너지가 저절로 보인다. 선생님이 되겠다고 연수 받으러 가는데도, 돈이 없어서 머물 곳도 못 찾게 되니 막막하기만 한데, 그 와중에 다짜고짜 목욕탕에 아르바이트 하겠다면서 재워 달라고 말하는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상황의 막막함은 뒤로 하고 그 위기의 해결책을 찾아내는 걸 보면, 안 될 거라는 부정보다 어떻게든 해내겠다는 긍정의 마인드가 뿜어져 나오는 사람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선생님이 되어서도 인생이 쉽지는 않았다. 학교라고 회사와 다를 바 없었다. 상사(교장, 교감)에게 잘못 찍혔을 때 아침 출근길이 괴로웠고, 실수로 넘어져 교감 선생님의 바지 자락을 붙잡은 일이 전화위복이 되어 충성심을 인정받기도 하는, 그저 우리가 하는 밥벌이와 똑같은 시간을 저자는 학교에서 보내는 거였다. 그렇게 차곡차곡 사회생활 만랩을 쌓으면서 학교라는 공간에서, 비슷하면서도 다른 양상으로 사람들을 경험했다. 젤 타입의 파스를 교장의 치약과 바꿔 놓으며 소심한 복수를 하고, 학생 스파이를 고용하여 인성부장 교사의 명성을 드높이고, 자기를 괴롭히는 부장 교사에게 삭힌 홍어로 향수 냄새를 덮어버리기도 하는, 선생님이지만 평범한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랄 때는 공부 바보로, 성인이 되어서는 생활 바보로 살아간다는 저자 스스로의 표현에 공감하게 되는 이야기는, 어른이 되고 선생님이 되어서도, 결혼을 하고 아내에게 잔소리 듣는 남편으로 살아가면서도 계속된다.


그의 성장(?) 에피소드를 듣고 있자면,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정말이지 눈물이 찔끔 날 만큼 웃기다. 가볍게 웃기면서도 그 의미가 무거워서 중심을 잡는다. 80년대에 초중고와 90년대의 대학 학번이라는 소개에 더 공감하는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 나도 저자와 비슷한 나이를 살아가는 세대로, 저자가 들려주는 요즘의 경험 역시 비슷해서 놀랍기도 했다. 요즘에 주변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오랜만에 동창이나 친구를 만나도 친구라는 관계의 어렸을 적 편안한 이야기는 멀어지곤 했다. 집값 얘기, 주식 얘기, 자식 공부 얘기 등, 기본적으로 자기가 가진 것을 이야기하느라 바빴다. 글쎄, 나는 돈도 없고 주식도 못 하고 자식도 없어서 그들의 이야기에 완전히 공감하지는 못 했는데, 그보다 더 아쉬웠던 건 그런 주제 말고 우리가 해야 할 이야기가 그렇게 없었나 싶은 거다. 나이를 먹으면 이런 건가 싶기도 하고, 서로 가진 거 자랑하듯 꺼내 놓는 거 말고는 할 얘기가 없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고, 뭐 그렇더라.


그래서인가,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되었다는 그 배경, 변호사 동창이 40년 만에 보낸 문자 한 통에 대한 답을 이렇게 전하고 싶은 마음을 알 것도 같다. 그때 공부를 지지리도 못 했던, 네가 궁금해 하던 공부 바보는 이렇게 잘 살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답을 하고 싶은 거 아니었나 싶은 마음.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이 별일 없이 이렇게 잘 살아왔고, 그때 못 했던 공부가 내 인생에 해를 끼치지도 않았고, 열등한 성적이 삶의 성적과 비례하지도 않는다는 걸 증명하듯, 잘 살고 있다! 됐냐?!’


가끔 나 스스로에게 자문해 본다. 나는 과연 올곧은 감성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고 있는가? 가족에게는 따뜻한 사랑을 전하는 가장이며, 교사로서는 학생에게 진심 어린 격려를 해 주는 사표였는가? 장학사가 된 지금 학교 현장과 민원인에게 해갈의 물 한 모금 건네는 소통가인가?

아내의 폰을 자주 빌려야겠다. 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주고 지친 마음을 위로해 주는 말 한마디 던지는 방법을 빅스비에게 배워야겠다. 시리 기능은 영원히 꺼두는 걸로. (256)


저자가 직접 등장한 책 소개의 한 장면을 옮겨본다. 오늘 일찍 일어났다고 해서 하루를 잘 보낸다는 보장도 없고, 오늘 늦게 일어났다고 해서 하루를 망친다는 것도 아니라는, 공부를 잘 했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우리 삶의 평범한 한 장면에 불과하다는 것. 웃으면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고 하루를 마감할 수 있다면 정말 잘 살고 있다는 것 아닐까 한다고. 정말로, 가볍게 읽힌다고 의미를 상실한 책이 아니라고, 위트와 유머, 감동이 더해져 무거운 책이 되어버린 이야기에 빠져들어 읽었다.


#공부못했던그친구는어떻게살고있을까 #구론산바몬드 #루미 #홍림출판사

#문학 #에세이 ##책추천 #공부못해도밥벌이는한다 #웃으면서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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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지 2024-03-11 0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씨의 글을 읽고 하루 일정을 시작합니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는 환경적 영향과 개인의 의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며 지냅니다. 35년째 교직에 있으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몇몇 제자와는 여러 고민을 함께하는 인생 선배, 동료 교사에게는 권위를 인정받고 싶지만 쉽지 않은 듯합니다.

구단씨 2024-03-11 23:35   좋아요 0 | URL
어렵죠? ^^
그래도 그 오랜 세월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한 시간이 만들어준 무언가가, 분명 단단하게 자리 잡았을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에 늦잠을 자서 해야 할 일을 한 가지 놓쳐서 신경 쓰였는데, 그저 삶의 평범한 한 장면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웃으면서 다시 해야지,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