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라트 산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 시공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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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라트 산은 창세기에 나오는 산으로 노아의 방주가 대홍수 끝내 표류하다가 닿은 산이다. 노아의 방주가 안착함으로써 인류가 하느님과 최초로 계약을 맺은 곳, 그곳이 바로 아라라트 산이다. - 옮긴이의 글 중에서

아라라트 산은 아르메이니아인들이 많이 거주했던 지역의 중심지에 있었기 때문에 아르메니아인들이 민족의 성지처럼 여기는 곳이라고 한다.


루이즈 글릭은 《아라라트 산》을 1990년에 5번째 시집으로 출간하였다. 《아라라트 산》에서는 죽음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이 시집의 시들에서는 아버지의 죽음을 많이 언급한다. 글릭은 아버지를 많이 닮은 딸이었다고 한다.

시 <구제 불능 닮은 꼴>에서 시인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한다. 동시에 그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죽어 가는 게 어떤 건지 내게 말해 주고 싶어 하셨다.

고통스럽지 않다고 하셨다.

고통을 예상하고, 기다렸지만, 고통은 오지 않았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일종의 나약함을 느낄 뿐이었다.

다행이라고 말씀드렸고, 아버지가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구제 불능 닮은꼴 중에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죽음을 맞이한다. 부모의 죽음, 친구의 죽음, 먼 친척의 죽음 등 나이가 들어가면서 많은 죽음들이 우리의 삶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중에 가족의 죽음은 우리의 삶을 슬프고 아프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를 성숙하게 만들기도 한다. 내가 읽은 『아라라트 산』은 가족의 죽음에 관한 시집이었다.

그리고 시인 그녀의 가족사를 이야기하는 시집이기도 했다.

노아의 방주가 표류한 산, 시인의 아버지와 이모가 표류한 산은 아니었을까

우리에게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암묵적으로 금지된 행위였다. 시인의 가족의 죽음을 이야기했고, 그녀가 떠나보낸 사람들을 시로써 추모한다.

시집에서 죽음은 아름답게 포장되지 않는다. 시인은 그녀의 관계된 사람들의 죽음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녀를 포함한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도 담담하게 말한다. 시를 읽는 독자들도 죽음을 비참하게 무너지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시를 읽으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정확히 일 년이다..

작년은 더웠다. 장례식에서 사람들은 날씨에 대해 이야기했다.

구월 치고 얼마나 더웠는지, 정말 때 아닌 더위였다.

올해는, 춥다.

이제 우리만 있다. 직계 가족.

화단에는

청동 조각, 구리 조각들

앞에서, 여동생 딸이 자전거를 탄다.

작년에 그랬던 것처럼,

인도를 오르내리며. 그 아이가 원하는 것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노동절 중에서

가족의 죽음을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스스로 성숙해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이 시집을 읽으며 성숙해져가는 시인을 느낀다. 그리고 지금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미성숙함을 생각한다.

나의 삶에서 미성숙함을 생각하며 시집을 닫았다. 담담하게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시집은 나의 과거를 돌아보게 한다. 이 가을 좋은 시집 하나를 접하게 된 것 같아 흡족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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