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 창비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유배된 폐족(廢族)으로 사는 법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고

이종인

일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는 아닌가보다. 나라를 바꾸는 권력의 핵심자리에서 밀려 칼끝 같은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진다. 강진으로 유배되지만 도리어 이곳에서 학문의 꽃을 피우는 걸 보면, 실패한다고 낙망할 일은 아닌가 보다. 근대식 수원화성을 쌓아올리며 부풀었던 신기술 문명의 조선건설의 꿈들이 물거품으로 사라졌다. 그리도 아껴주며 울타리가 되었던 정조임금도, 형들과 동지들도 사라지고 없다. 부산하게 수없이 오갔던 서울 도심에서 천리는 족히 더 떨어진 남해 강진으로 유배되어 폐족이 되었다. 모든 것이 끊어진 상황, 아무것도 남지 않은 때에 그가 손에 든 것은 붓이었다. 편지야 말로 그가 소통하고 호흡하며 생기를 찾을 수 있는 출구였다.

정약용에 대해서 더 말해 무엇할까? 워낙에도 유명하고 알려진 인물이라, 구태여 더 보탤 것도 없다. 그래도 말하라면, 천재적인 학자이며 사상가요, 놀랄만한 다작가이며, 누구보다 백성을 사랑한 인물이었다. 본서에서도 드러나듯, 무엇보다 그는 배우는 학생이며, 가르치는 스승이다. 근대문물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국제적 학문의 동향을 파악하고 수용하며 배우는 학생이며, 동시에 인격적이며 본받을 만한 좋은 스승이다.

유배된 땅에 머묾에도 그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자녀들과의 소통이었다. 나라의 죄인이 되어 유배된 마당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자녀에 대한 책임감이 편지에 피어리게 배여 있다. 아비 없이 ‘홀로자식’되기 않도록 징그러울 만치 집착하듯 자녀들의 일상을 파고들며, 조언한다. 폐족이 되었어도, 자식 때까지 되물림 되는 비극은 피하고자 몸부림친다. 공사다망(公私多忙)할 적에는 돌아보지 못하던 자식들이, 유배된 뒤에서야 힘겨운 편지로나마 돌아볼 수 있으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 하나를 잃되 다른 하나를 얻으니 공평한 셈이다. 자녀들을 염려하는 마음이 수많은 다작(多作)을 낳았으니, 후세들에겐 잘된 일이 아닌가.

몸은 묶었어도 묶지 못한 그의 마음, 또 하나는 형님들에 대한 애정이다. 형제상봉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서로의 사랑은 편지에 빼곡하게 차고 넘친다. 그에게 최고의 친구는 흑산도로 유배된 형님이다. 성공가도에서 만난 수많은 친우들은, 폐족 된 후에는 모두 연기처럼 사라지고 없다. 그 쓸쓸함의 한 복판을 이겨낸 힘은 삶을 논하고, 학문적 토론을 나누는 형님 덕이다. 조언을 듣고 다듬고, 저술하여 보내고 받고, 붓으로 나눈 혈족과의 끈끈한 나눔들이 모두 책으로 남았다. 홀로 남아 외로움에 몸서리 칠만한 때에도 그가 따스하게 마음을 데울 수 있었던 것은 형님과의 깊이 있는 나눔 덕이다. 4명의 누나들이 스쳐지나가고, 멀리 인도네시아에 외로움과 다툼할 여동생이 떠오른다. 시린 날 중무장한 채 오토바이를 운전하고 있을 동생이 가슴을 파고든다.

학문적 깊이를 가진 실학자로서 그는 제자들을 양육하는 기쁨으로 유배지를 학교로 바꾼다. 다산학당에서 여러 인물들이 다산의 영향아래서 배우고 익힌다. 윤종문․종억․종심 형제나 영암군수인 이종영과 정수칠․이인영 등과 같은 이들과 부지런히 소통하고 서신들을 교환한다. 멀리 변방으로 유배되었어도 자신을 알아주고, 따르는 이들이 있음은 실패한 인생이라 말할 수 없게 하는 모습이다. 허다한 많은 이들이 여전히 그를 존경하고 그의 사상과 학문적 업적을 칭송한다. 거칠고 시린 어려운 세월이 만들어 낸 작품들이다. 어렵게 되었다고, 망했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어머니가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아버지의 연 세 번의 사업실패로 집이 망했어도, 더 좋은 것을 가지게 되었는데, 광야같은 역경에서 견고하게 만들어진 단련이라고. 시련이 우리를 더욱 견고하게 마늘었다고. 저자는 유배지에서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에게 있어서 유배는 실패가 아니다. 외진 구석이면 어떤가? 있는 곳이 어느 곳이든 가치 있게 인생을 허비하는 법을 여기서 배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