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달 문학동네 청소년 38
최영희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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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가 판타지와 다른 매력 중 하나는 합리적인 인과 관계로 독자를 설득한다는 것이 아닐까.

지금 구달이 살고 있는 재개발 지역에 인체실험이라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셈인데 그것은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것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적 사건이다. 믿고 싶지 않은 마음 혹은 사람들이 들이미는 알리바이는 믿을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알리바이와 충돌하고 그럴수록 이야기는 믿을 수밖에 없는 현실로 나아가며 긴장하고 쫀쫀해진다.

인체 실험 설계자와 가담자로 분류할 가해자가 한 축, 인체 실험 대상이 된 감염자와 피해자가 또 다른 이야기의 한 축, 그들의 비밀을 폭로하려고 고군분투하는 공직구와 구달이 다른 한 축이다. 감염자와 폭로자는 이웃, 연인, 친구라는 밀접한 관계로 얽혀있으므로 피해자는 폭로자를 돕고 폭로자는 피해자를 위해 목숨을 건다. 피해자와 폭로자들은 구체적이지만 가해자의 정체는 당연히 모호하고 가해자의 대리인 격인 의사만 겨우 등장하여 피해자와 폭로자 편에 서면서 끝내 가해자의 실체, 그들의 목적 등은 미해결로 남았다. 그 과정에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미움의 대상이라기보다 자주 연민의 대상처럼 다가온다.

음모 혹은 비밀이 있고 폭로자가 있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양상들과 소홀하기 쉬운 세부까지 꼼꼼하게 기록하는 것은 최영희의 장기가 아닌가. 사이사이 박혀있는 웃음들이 작품의 분위기를 가볍게 띄우는 것도 마찬가지.

재개발로 곧 사라질 흔전동은 연결도로없음, 막다른 골목의 현실태로서 비정상적이거나 옳지 못한 실험을 설계하고 실행하기에 적당하다. 대부분 빠져나간 그곳에서 최후까지 남아 사는 사람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예의는 필요치 않으니까.

노름빚에 떠밀려 딸을 버리고 사라진 구종대를 아빠로 둔 구달이나, 소모품으로 쓰이고 마는 구직자 공직구가 폭로자로서 한 팀이 되는 건 그들이 최후의 사람들이기에 자연스럽다. 문학의 감동은 여기에서 생겨나기 시작한다. 끝이라고 생각한 것들에서 새롭게 싹트는 무언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가 연결도로 없음의 골목 그 자체로 보인다. 그들이 피해자와 조력자, 폭로자로 뭉치면서 빚어내는 소리가 구달을 통해 드러난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인물들을 짝 지워 놓음으로써 생겨나는 불협화음의 즐거운 맛을 아는 작가답게 구달을 중심으로 박 집사와 은혜 점집 보살, 공직구와 구달, 공직구와 최주아, 구달과 강문, 보름내과 원장 등 흔전동 남은 사람들을 모두 불러낸다.

그들 모두는 곧 헤어질 것처럼 위태로운 관계지만 끝내 그들을 그러잡는 건 구달이 갖고 있는 한때의 기억들이다. 그 기억의 힘으로 구달은 흔전동 연결도로 없음을 연결하며 끝내 그들을 구해내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막막할수록 한때의 기억은 눈물겹도록 소중한 것이고 그 기억을 갖고 있는 한 인간의 관계는 막다른 골목에서도 돌아 나올 수 있다.

구달 또한 실험 대상자였으나 감염을 이겨내고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도 흥미롭다. 구달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 하나를 제시하는데 그것이 청각이다. 특별한 능력은 때로는 그 자신을 고통스럽게도 하지만 구달은 드디어 그 능력을 제어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누군가를 구하고 돕는 일에만 자신의 능력을 쓰려고 하는 구달이어서 기특하고 끝내 서로를 향한 관계의 기억을 놓지 않는 인물들이어서 갸륵하다.

실험자들이 또 하나의 심장을 키우고 수거해 가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유를 감춘 실험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은밀히 진행 중일 것이라는 상상은 재밌다.

이 작품은 글을 쓰는 작가의 감각, 그 감각을 전달하기에 충분한 문장, 그 문장을 읽고 작가의 감각을 전달받을 수 있는 글 읽는 사람의 관계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 삼각관계가 원활할수록 작품 몰입도의 즐거움은 커질 것이다.

그러니까 청각에 집중했을 때, 온 몸이 청각의 기능체가 되는 과정과 소리가 육화되는 상황 묘사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작가가 분명 또 다른 감각이 열리는 체험을 직접 겪어봤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들만큼 치밀한 묘사를 가능케 한 문장은 인상적이다.

관계를 지탱하게 만드는 한 때의 추억은 가장 절망적인 순간을 함께 넘어 준 사람들과 그들에 관한 기억이기에 되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하다. 그런 기억의 소환이 이 작품에 온기를 더한다. 그것은 수많은 소리 중 달이가 선별해서 듣는 소리일테고 온 몸으로 듣는 소리일 것이다. 온 몸으로 소리를 듣는다는 행위는 그 자체로 극진하고 아름다운 모습이고 제안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조금은 편안하게 덮을 수 있는 것은 사건이 일단락되었기 때문이다. 청소년은 가능성의 존재들이기에 습관적인 희망 같은 낭만적 결말이 아닌가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인물들은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는 곳까지 몰려버린 존재들이다. 다만 지금보다 조금 나아진 상태이기 때문에 약간의 해방감이 달콤하고 그 기억으로 또 얼마간 살아갈 힘을 믿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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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서다 - 소설로 읽는 한국 현대사 아름다운 청소년 15
김소연 외 지음 / 별숲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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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들의 시간적 나열인 역사가 문학이 되려면 자연적 시간을 해체해야할 것이다. 일반화되기 이전의 개별성을 회복하는 것. 역사로 일반화되는 과정에서 빼앗긴 개별성과 구체성을 되살려놓아야 비로소 문학이다.

광장에 서다는 해방 공간부터 2016년 촛불 광장에 이르는 70여 년의 한국 현대사를 아우른다. 흔들리고 불안하지만 뜨끈한 시간인 것은 이 시기가 불가역적인 자연 즉 역사로 확정되었다기보다 복원하고 보완해야 할 살들이 아직은 훨씬 더 많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아직은 당대 사람들이다. 기록되었거나 기록되려는 시간을 무너뜨리는 것,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개별과 구체를 더 많이 시간의 식탁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쩌면 시간의 방향이 바뀌는 일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이 작품집에서 특히 개별과 구체만이 문학의 일이라고 말함으로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독자의 감정을 건드리는 작품들은 이렇다.

해방 이후 이념 대립으로 시계제로였던 서울 풍경을 그린 김소연의 손거울은 어제까지 제국의 아들이었던 일본인 소년의 시선이라는 개별, 90년대 대한민국을 심장마비 상태로 몰고 간 외환 경제 위기를 다룬 주원규의 내 친구 종현은 그야말로 무수한 개별 중의 개별, 동학농민혁명, 4.19 학생 혁명, 5.18 광주시민혁명을 이을 민중혁명으로서의 촛불시민혁명을 다룬 점 하나는 지리적(창원), 신체적(여고생), 사회적(대학포기자)으로 비주류 혹은 주변 인물인 여고생이라는 개별을 전면에 내세웠다.

반쪽자리 독립이라는 정치적 한계와 그에 따른 극심한 혼란, 이후 이어질 분단비극과 친일파청산의 실패를 하필이면 어제까지 제국이었던 (일본은 대신하는) 겐타로의 시선은 낯설지만 감정을 걷어내고 사건을 들여다보는 데 효과적인 설정이다.

외환 경제 위기는 더 많은 개별들이 수집 될 필요가 있으며 이 작품이 흥미로운 점은 뻔한 실패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종현이와 친구들이 멈춘 기계를 돌린다는 것은 아버지들의 자명한 좌절에 그의 아들들이 보내는 응원일 것이다. 낭만적이지만 어떻게든 절망에서 돌아오려는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인간만의 생래적 특성이다. 역사적 시간의 바탕은 개별적 존재들의 구체적 실천들일 것이다.

촛불 광장의 이야기는 아직 그 날들의 열기가 거의 온전하게 남아있고 그 결과를 목격하고 체험하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리하여 지금은 개별의 순간들이고 더 많은 개별들이 수집될 필요가 있다. 점 하나의 생동감과 감동은 동시대적 감각에 우리가 거의 무방비로 동일화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최영희는 특유의 지방 언어적 감각과 유머로 가장 외부 혹은 가장 먼 바깥에 오하나라는 강력한 개별 중심을 만들었다.

서울 광화문은 다만 표면적 중심이었을 뿐이다. 그곳은 무수한 중심들의 집합소였고 중심들로 인해 더 큰 중심이 되었다. 그날 거기 모인 우리들은 모두 개별적인 중심들이었고 그 경험이야말로 중요하다. 노동자, 비정규직, 대학포기 여고생, 늙다리 할아버지가 희미한 점이 아니라 저리도 밝은 빛이었다는 자각은 촛불 광장이 낳은 소중한 유산이다. 시간(역사)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중심들의 다짐도 의미심장하다.

개별과 구체로 시간을 해체한다는 것은 부분으로 전체를 보게 한다는 문학의 전략이다. 이미 드러난 것을 개별과 구체로 다시 보게 하는 것, 달의 뒤편을 봐야 달이 온전해지는 것처럼. 시간을 따라 달리지 말고 시간을 멈춰 세우는 것, 역사소설의 윤리적 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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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실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80
이나영 지음, 이수희 그림 / 시공주니어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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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실이 짜 올리는 뜨개는 어떤 무늬인가. 실과 관련한 동서양의 풍속과 신화(서양신화 속 실은 믿음, 동양풍속에서 실은 생명 혹은 인연)를 안뜨기로 해서 은결, 강우, 민서의 현재적 삶을 겉뜨기로 교차시키면서 용기와 화해라는 무늬를 짠다. 악연으로 헤어진 친구에게는 목도리가, 곧 태어날 동생에게는 조끼가 되었다.

붉다에는 각각 생명과 인연이라는 의미가 포함된 것이어서 작품 전체적인 분위기는 여성적이다. 뜨개질하는 남자도 있으나 뜨개는 좀 더 빠르게 여성과 이어지고 여기에 따뜻하고 상냥한 새엄마의 임신, 친엄마가 짜다 만 무언가, 새엄마가 끓여주는 꽃잎 생강차, 강우에게 유일한 안식처가 되는 따뜻한 벽난로 앞, 뜨개 하는 강우, 밥하는 아이 민서 같은 이미지는 여성성의 분위기를 짜 넣는다. 여성성은 부정적인 남성성에 의해 부각된다. 특히 낚시 광이며 성공지향적인 강우 아빠의 폭력성, 남편에게 굴복하는 강우 엄마의 무기력은 가장을 중심으로 한 현대 핵가족의 가족 계급 구조를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가족 계급 구조 속에서 가장 약자가 강우이며 강우가 떠야 할 과제는 아빠를 극복하는 것. 아빠에게 가기 위해 우선 찬혁이를 만나 목도리를 전해주며 전하는 미안하다는 용기 있는 화해였다.

부족할 것 없는 은별이가 떠안은 과제는 새엄마의 딸이 되는 것. 뚱뚱한 은별이가 새엄마를 닮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다이어트다. 이것은 사실 죽은 엄마와 비로소 이별하는 것이며 새로 올 가족-동생을 맞이하기 위한 과정으로 작용할 것이다. 친엄마가 뜨다 만 조끼는 은별이의 조끼였으나 은별이가 완성한 조끼는 곧 태어날 동생 것으로 완성되는 것은 헤어지고 만나는 인연의 연결코들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의젓한 딸이겠지만 나로서는 가장 불행한 인물이 민서라고 하겠다. 아침저녁을 차려 부모의 출퇴근을 돕는 미성년 딸을 어떻게 봐야하나. 민서의 과제는 오해로 멀어진 뚱스의 은별과 재결합하는 것. 그리고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싶다고 선언하는 것. 그러나 엄마의 다짐은 저녁이 되기도 전에 바뀔 것 같아 불길하다. 그럼 그렇지 하면서 별 저항없이 쌀을 씻고 된장국을 끓일 민서가 떠오르니. 부모를 먹이기 위해 당연한 듯 밥을 하는 열세 살 민서를 효로 포장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것이 열세 살 민서의 과제여서도 안 되지 않나.

뜨개라는 행위는 풀었다 다시 할 수 있다는 것 외에도 결국 완성된 형태를 향해 멈출 수 없다는 확정이다. 이야기와 뜨개는 구조가 닮았다. 각자의 뜨개가 완성되듯이 이야기도 아퀴를 지었다. 당연하다는 듯 단정하게!

뜨개질이라는 행위에 내포된 여러 겹의 의미, 실과 관련된 동서양의 풍속과 신화, ‘붉다에 담긴 상징성 등이 결국 인연과 화해라는 무늬로 완성되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시도들이 반갑다.

그러나 이것이 손의 감각과 힘 조절, 뜨는 사람의 감정과 자세까지 녹아 있어서 세상에 하나 뿐인 조끼나 목도리가 되는 것처럼 개성적인 작품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야기를 짜기 위해 선택한 무늬들이 낯익음과 새로움 사이에서 새로운 무늬를 상상하지 못했다는 게 아쉽다. 착한 새엄마, 가부장적인 강우아빠와 순종적인 강우 엄마는 낯익고 쌍으로 철없는 민서 부모, 뜨개질하는 강우, 밥하는 민서가 주는 배반의 쾌감도 사실은 이면의 드러냄이라는 패턴으로 익숙하다. 단 하나의 작품, 유일한 뜨개(뜨갯것)를 위해 풀고 다시 짜는 일의 반복은 글쓰기나 뜨개질이나 같은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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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소녀 혹은 키스 사계절 1318 문고 109
최상희 지음 / 사계절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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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소녀 혹은 키스8편의 단편을 아우르는 제목으로는 썩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멋있다. 멋있다는 우리말보다 스타일리시하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이 작품집에는 온통 상실감과 외로움이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그래서 불안하지만 끝내 누군가의 손을 잡거나, 함께 울거나, 드디어 고백하거나, 잘 이별해서 안심한다.

읽으면서 할 말이 생기거나 읽고 나서 남은 말이 없도록 독서 행위의 여러 가지 양상은 작품 안에서 해결된다. 읽고 있는 그 순간 자체가 독서 행위의 모든 것이 되는 신기한 체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 상황에 따라 다른 감정들을 표현한 언어들에 꼼짝없이 끌려들어간다.

흠뻑 빠졌으나 도취되지 않을 방법도 가뿐하다. 가볍게 책장을 닫으면 된다. 감정이 책 밖으로 흘러나와 독자를 사로잡지 않는다는 것도 신기한 체험이다. 작품 안에서 알뜰하게 갈무리해서 샐 틈없이 마감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독자는 흐르는 바람에 찰랑찰랑 머릿결을 맡긴 채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 걷기만 하면 방금 전 읽은 책에서 떠나올 수 있다. 하지만 방심할 수 없다. 다시 책을 열면 고스란히 되살아날 외로움, 상실감, 울음 같은 한없이 촉촉한 생의 감정들이 다시 독자를 괴롭힐테니까.

최상희에게 놀라는 것은 흔한 이야기를 특별한 사건으로 만드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남은 사람들의 상실감은 낯익지만 상실감이 깊어 생기는 강박적 불안이 방주를 만들게 하는 과정을 따라간다거나(방주) 사고로 정지된 한 남자의 시간과 최선을 다해 발레를 했으나 그만 두어야했던 소녀의 시간을 무언가를 안 한 십 년과 무언가를 한 십년을 나란히 놓고 이제 함께 시작하는 시간 앞에 둔다거나(잘 자요, 너구리) 다른 작품들이 말하는 사랑 이야기의 또 다른 변주들이 그렇다.

그것은 사랑 혹은 사건이 놓인 상황에 맞는 어조와 선택된 언어들로 표현되고 특히 뜻밖의 선택으로 독자를 긴장시킨다. 대체로 그들의 선택은 어둠이 걷힌 뒤 나타날 길을 가늠케한다.

말했다시피 여기 실린 작품들은 상실감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향한 위로, 회복의 가능성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을 모으며 마침표를 찍은 것처럼 느끼는 것이고 우리는 안심하는 것이다. 작품이 불안하게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가볍게 책을 덮는 것이고 작품 안에서 위로 받았기 때문에 찜찜하지 않을 수 있었다.

상실의 문, 외로움의 문을 열고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사랑이라는 것은 흔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은 늘 강력한 힘으로 독자를 설득시킨다. 최상희는 그 사랑의 형식을 눈물, 고백, 첫 인사 등으로 달리 표현한다.

좋은 음악을 듣는 것처럼, 그림을 보고 특별한 인상을 받는 것처럼 이번 작품들은 읽는다기보다는 느낀다는 감각에 더 가깝다.

사계절 1318문고 시리즈를 잇게 되었으나 자기감정 읽기나 표현하기가 어렵고 서툰 사람들에게도 품을 내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문제의식이나 강한 시대정신의 맥이 약하지 않은가 할 수도 있겠으나 한없이 출렁이는 감정에 다소 어지러울 뿐, 우리 시대가 예상치 못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 그로 인해 파괴되는 개인의 미래에 대해 작가가 위로를 보내고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작품집이 자리한 곳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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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푸 아니고 똥푸 - 제17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초승달문고 41
차영아 지음, 한지선 그림 / 문학동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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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로 똥을 싸고, 반려견과 이별하고, 생존을 위해 모험을 하는 일을 하찮지 않게 느껴지게 하는 것이 문학이겠다.

작품 속 생활을 좀 더 엿보자면 쿵푸~는 결혼 이주민 엄마를 둔 아이가 문제적이고, , 미지의 택배는 새로운 가족 형태인 반려동물의 죽음에 따른 어린 아이의 상실감, 라면 한줄은 인간의 타자-약자로서 동물의 삶과 그들의 연대를 다룬다. 이것을 문학화하기 위해 이 작품들은 판타지, , 의인화 장치를 선택했다.

똥푸맨의 판타지는 불가능의 가능을 경험케 하고 꿈은 치유의 방법으로 선택되며 생쥐와 고양이의 의인화는 다른 세계를 열어 보인다.

여기까지의 낯익은 음계를 한 두 음 올리는 것이 이 작품집만의 개성이다.

그것은 문자를 읽지 않고 말을 듣는 것 같은 발랄한 대사와 청각적 언어, 상상과 이해의 범주 안에서 널뛰기하는 귀여운 과장과 허풍, 허를 찌르는 반전 묘사가 주효하게 작용했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철학적 깊이 혹은 작가의 세계관을 가늠케하는 문장들이다. 그들로 인해 얇디얇은 단편이 겹으로 깊어지고 풍요로워진다.

 해피엔딩이 어설프지 않고 치유의 가능성이 독자에게 전해지고 연대가 억지스럽지 않은 것은 이 문장이 머금은 힘들 때문일 것이다. 그 어렵다는 재미와 감동이 모처럼 한 작품에 녹아 있다.

잡소리나 사설로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이런 낯선 문장을 눈여겨보게 하는 것, 이것으로 생활동화의 밋밋함을 잊게 하는 것이 이 작품집만의 개성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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