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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듣는 시간 ㅣ 사계절 1318 문고 114
정은 지음 / 사계절 / 2018년 8월
평점 :
있지 않다, 즉 부재(不在)는 아예 없는 것(無)과 조금 다르다고 보기로 하자. 있는 것의 없음, 있어야 하지만 없는 것으로. 이 작품은 있어야 하는 것들이 없는 것의 가능성들을 숨 막히도록 빽빽한 문장들로 번역하고 있으므로.
수지는 아빠가 있지 않다. 아빠 없이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그 남자들(일란성 쌍둥이 중 한 사람이 아빠일 것으로 예상) 중 한 명은 화성 탐사 대원으로 뽑혀 현지 적응 훈련을 하기 위해 타클라마칸 사막에 있고, 또 한 명은 ‘카리브해 깊숙이 숨겨진 잠수함’에서 코카인을 제조하고 있다.
수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관이 망가졌다. 그래서 듣지 않고 본다. 손의 말을 직접 만든다. 수지는 수지의 언어를 갖고 있다. 나중에는 할머니가 있지 않고(사망) 엄마가 있지 않는다.(가출) 할머니는 있지 않지만 거침없는 고층 빌딩 사이에 떡하니 무덤으로 있으면서 수지가 쉬는 곳으로 있다. 엄마는 가출해 미국에 있다. 오랫동안 묶어 놓았던 끈을 풀고 비로소 자유가 되어 있다. 그래서 수지는 비로소 단 한 사람이 되었다. 수지는 듣는 것이 없지만 보는 것이 흑백 두 가지만 있는 한민의 친구가 되어 있다. 두 사람은 자신들에게 ‘있지 않는 것들’로 그동안 없었던 특별한 산책길을 만들었다. 수지와 한민에게 있지 않는 것들은 이제 있는 사람들에게 없는 것이 되었다.
장애인은 비장애인에게 있는 것들이 없거나 기능이 무효가 된 사람들을 일컫지만 이 작품을 통과하고 나면 그 말이 온전치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수지와 한민에게 있지 않는 것으로 있는 것이 내게는 있는 것으로 없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장애와 비장애는 그저 있고 없음의 차이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곰곰 생각해 볼 것도 없이 맞다. 그걸 증명하는 말이 정성스럽고 정확해서 우리는 기분 좋은 충격을 받는다.
장애를 다루는 그간의 이야기들은 장애를 ‘딛고 극복’하는 존재를 향한 응원이거나 장애가 있지만 대신 또 다른 능력을 갖게 함으로써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장애인의 사랑은 특별한 것이고 그들의 재활은 눈물겨운 사투가 되어 비장애인을 종종 경외감과 죄책감에 빠지게 하곤 했다. 비슷해지거나 닮으려는 대신 개별자로서의 고유성을 획득하고 인정이 아니라 인식하는 방식은 훨씬 설득력 있다.
사건으로 진행되기보다는 1인칭화자의 내면을 촘촘하게 표현하는 말의 과잉이 다소 뻑뻑하긴 하다. 이 작품을 끝까지 읽어내기 위해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시적인 문장이 주는 감동을 기꺼이 즐기기로 한다면 옮겨 적느라 오히려 독서 시간이 더뎌질 수도 있다.
“뜨개질하듯이 손으로 말을 엮는”다는 말에서부터 심상치 않았으나 처음엔 읽느라 놓쳤고 중반쯤엔 “못 듣는다는 것은 그들 삶의 핵심적인 정체성이었다.”라거나 “이 상태로 이미 내게는 완전한 세상이니까.” 또는 “질서정연하게 어지럽혀져있다.”라는 말들을 옮겨 적어 보려고 하다가 포기하고 그냥 읽기로 한다.
하지만 내가 이 작품이 좋았다고 결정한 이유는 수지와 한민이 누군가의 도움이 아니라 자신의 있지 않음으로 남들의 있지 않음을 대신할 삶의 방식을 찾아서다. 그게 먹고 사는 일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건 장애의 당당함이라기보다 존재의 의무로 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