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서쪽에서 - 시에서 잃어버린 것들이 출렁이는 그 곶 이야기
탁현민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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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음의 힘을 믿으며, 이 글을 그대가 볼 거라고 믿으며, 편지를 써요.

그래요, 이 책은, 탁이 쓴 제주도의 서쪽 이야기는, 그가 트위터에 물고기나 노을, 바람을 찍어 올릴 때만해도 그냥 거기 일이 있어 가나보다 했어요. 상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는 그냥 거기 있었던 '남'이니까요. 그대의 외로움을 알고 나서야 탁의 외로움 혹은 생각보다 깊었을 상처가 조금 느껴졌다고 해야겠어요. 그러니까 내게는 언제나 그대의 상처가 먼저인거죠.

 

탁의 이야기를 읽는 시간은 내내 석양이었어요. 서쪽이 비로소 제게 인식되었다고 해야겠어요. 해가 지는 쪽, 저무는 쪽, 쓸쓸하고 외로운 쪽, 어둠을 가장 먼저 만나는 쪽, 어쩔 수 없이 슬픈 쪽, 당신이나 내게 더 익숙한 쪽, 그러나 지금은 그대 혼자 응시하는 쪽!

 

"스러지는 것에 대한 본능적 슬픔 같은 것일까?

 저물어가는 것에 대한 경외 같은 것일까?

 일상의 속도보다 훨씬 느린, 어쩌면 지루할 정도로 천천히 저물고 있는 일몰을 본다.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마치 다시 못 볼 것처럼

 바라들 본다."

                                   - <사람들> 중에서

 

 하지만 탁이 말한 일몰의 시간이 아름다운 것 처럼, 나는 지금 당신이 뚫고 가는 일몰의 시간 또한 그렇다고 느껴요. 내가 지켜본 당신은 충분히 그럴수 있을만큼 힘이 있었으니까!

 

 우리 언제 제주도에, 서쪽에 가볼 날이 있을까요? 아내의 시간, 엄마의 시간, 동료의 시간을 내려놓고 당신과 나, 또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생각나는 누군가를 끼워서 함께 늙어가는 여자들끼리 한껏 느릿한 시간을 보낼 날이 있을까요?

 혜심언니도 만나고, 추의 여인숙에 짐을 부려놓고 문어 삼촌이 여전히 문어를 잡는지도 보면서, 나란히 앉아 일몰을 보는 날이!

 그냥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좋군요! 바라는 게 꼭 이뤄지는 것보다 먼 후엣일로 미뤄두고 설레는 것도 나쁘지 않군요.

 

탁이 열렬히 살았기 때문에 깊이 상처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깊이 상처받은 남자, 상처를 해풍으로 핥으며 회복하는 그가 쫌 멋있다고 생각해요. 멋이 아니라 맛으로, 끼니를 위해 낚시를 하는 모습도 꽤 좋고 말이죠.

 도시의 삶, 특히 나의 삶에서 한 끼 식사를 위해 내가 들이는 품은 돈을 쓰는 일 뿐이라니. 생산하는 노동이 아니라 소비하는 노동으로 차린 내 밥상이 잠깐 미워지기도 했어요. 15층 공중에서 사는 나의 삶이 문득 측은해졌다면 오버일까요?!

 

 내가 아는 사람중에는 열렬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몇 있는데, 그 중에서도 당신은 맨 앞이라는 말, 했던가요? 어떻게 순간순간을 저토록 집중해서 사나 싶어서 아주 가끔은 그냥 맥 놓고, 요즘말대로 '멍 때리고' 살아보라고도 말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탁처럼 살 수는 없기에 가끔은 팽팽한 마음에 바람을 좀 빼는 일로 쉬어가기를! 아마 입밖에 내 본 적이 없을 거예요. 그토록 진지한 당신에게 차마 그 말을 할 수가 없었지요.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은 한껏 미간을 모으고 뭔가에 집중하고 있겠지요?

 그게 당신이니까그걸 바꾸라고 말하지 못하겠어요.

 탁의 서쪽이라면, 지금 당신이 있는 그곳은 당신의 서쪽이겠지요. <<당신의 서쪽에서>>라는 이 책의 제목은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당신이 있는 삶의 현장, 바로 그곳이겠군요.

 

 그러니, 당신! 지금 당신이 잘 살고 있는지 의심해서 힘들어 하지 말았으면 해요. 나 또한 늘 나를 의심하고 잘 살고 있는건가 차갑게 따져묻고 허망하게 일상으로 돌아오는 삶을 반복해서 이런 말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거 알아요.

 그렇다고 해도 당신에 대해 말을 해 줄 수는 있어요. 그건 내가 본 당신이니까요.

 내가 본 탁의 제주도 이야기가 "훗, 뭐야, 좋잖아! 다행이야" 했던 것 처럼, 당신은 지금 훌륭하게 당신 삶을 살아내고 있어요.

 

 이 책을 같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내게 보내왔을 때부터 조금조금씩 읽으며 당신과 참 많은 이야기를 했네요.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좋아할만한 장면들이 많았다고 생각해요.

 압권이었던 일몰장면이나, 허당 김봉민 선장님이야기, 문어삼촌, 혜심언니, 추, 담배를 두 갑만 판 할머니, 강아지풀 모자에 꽂고 돌아가던 그 여자, 제주도의 말랑말랑 야릇한 지명, 바람 혹은 태풍, 그리고 KEEN! 추가로 친구의 발문에서 느껴지는 남자들만의 그 머시기!

 

 고마워요, 당신!

 그리고 힘내요, 당신! 당신은 거기에서 지금 잘 살고 있는 거, 맞.아.요!

 

 당신의 서쪽에서 보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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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지음 / 마음산책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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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것은 이토록 숨막히게 아름다운 것이다.그가 정확해지기 위해 내어놓는 느린 말의 걸음이 황홀하다. 글읽는자의 행복은 글에 홀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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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 김민정 산문
김민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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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쓴 산문을 읽는 건 글로 그린 그림을 보는 것 같다. 감각적이고 에로틱하기까지하다. 글의 아름다움이 어디까지 치달을 수 있는 지 보고 싶다면 시인이 쓴 산문을 읽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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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선 그리다
김점선 글.그림, 김중만 글.사진 / 문학의문학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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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선은 열정적이고 그가 만난 사람들은 서로 닮았고 그가 그린 말과 오리와 꽃은 동심이 뚝뚝 묻어나고 무엇보다 그가 글을 통쾌하게 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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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뱅이 언덕 - 권정생 산문집
권정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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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이라고는 하지만 실린 글들은 이미 20여 년 전에 발표되었던 글들이다.

오래된 글이다. 그러나 권정생의 문제의식이나 그가 안타까워했던 농촌 현실은 지금도 여전하다. 언제 쓴 글인가 다시 들여다 본 것도 아마 바로 오늘 쓴 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권정생이 안타까워 하고 속상해 하고 불쌍해 하는 모든 일들이 지금도 뉴스와 신문을 통해 접하고 있는 일들인 까닭이다.

권정생이 생전에 그토록 염원했던 것이 나라의 통일인데, 요며칠 NLL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이 모든 일들이 잊혀질 새 없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것도 남북이 갈라져 사는 까닭이리라.

 

권정생 글이 재미있는 것은 그가 더러 고스란히 옮겨 놓는 안동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거나 거기 담긴 입담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시골 할머니들이 얼마나 재미있게 말하는 지 알고 있다. 그 할머니들과 한나절만 밭에서 함께 김을 매보면 안다.

고등학생일 때, 엄마 품앗이로 동네 아주머니들 틈에 끼어 김을 매던 때가 있다. 일은 서툴고 도저히 그 아주머니들이 일하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어서 엉덩이를 쳐들고 김을 매는데, 그 아주머니들이 주고 받는 말에 웃느라 내 밭고랑만 저만치 뒤쳐졌다. 그래도 누구하나 왜 일을 그렇게 못하는가 타박하지 않았다.

 

했니더혹은 했니껴와 같은 독특한 끝말은 내 아버지도 살아 생전에 더러 썼던 말이다. 그것이 안동 지역말이라는 것을 권정생을 통해 알게 되었다. 강원도 산골에 살던 아버지가 어찌 그 말을 쓰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염무웅도 발문에서 썼듯이 권정생은 사상가가 아니다. 사상가가 아니라서 그가 속상해하고 안타까워 하는 것들을 받아들이기가 쉽다.

책상 앞에 앉아서 터득한 것이 아니고 온 몸으로 겪어내고 깨달은 일이라 그가 전하고 싶은 말을 좀 더 잘 알아 듣는 것이다.

 

개발 논리로 망가지는 농촌과 자연, 돈의 노예가 되는 현실, 망가져 가는 교회, 비극적인 개인사, 전쟁 체험, 육체적 병이 주는 고통, 가난 등은 고스란히 우리 현대사다. 권정생 개인이 체험한 인생 역정이 그 세월을 겪은 사람이면 누구나 겪어본 일이다. 그 모든 것을 다 체험한 사람이 권정생이고, 그래서 그가 보여준 삶이 감동인 것이다.

 

그가 어떻게 동화와 동시를 쓰게 되었을까 한편으로는 의아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오래 전부터 책을 읽어왔고 글을 써 왔음을 알게 되었다. 그가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읽은 책과 그가 썼던 글 때문이다.

이름을 얻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살고자 했던 일이다.

 

더러 들은 이야기가 비극적이고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과한 일인 듯하여 머뭇거리게 하는 사람이 있다. 권정생이 그런 사람이다. 나하고는 다른 세상 사람이라는 생각도 했다. 이 책을 읽고나면 그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그가 여전히 올려다보기 쉽지 않은 이유는 그가 살아낸 삶이 감히 따라할 수 없을 만큼 진실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태어난 사람인 것이다. 낮고, 가난하고, 목숨 있는 것은 1cm 벌레도 죽일 수 없고, 골무만한 쥐도 제 방에 들어오면 함께 뒹굴고, 망가지고 파헤쳐지는 것을 못견뎌하고, 가난하여 굶어 죽는 것을 못견뎌하고, 나라가 갈라져서 할아버지가 고향에 가지 못하는 것을 못견뎌하고, 사치하는 것을 못견뎌하고, 교회가 부자가 되는 것을 못견뎌하도록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다.

 

그렇게 태어난 사람과 전혀 다르게 태어난 나 같은 사람은 지금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는 것에 눌리고 눌려 숨이 막히고 답답해도 별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그가 그렇게 태어났다는 말은 비겁한 말이다. 그는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산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빌뱅이 언덕>을 내려오면서 내 삶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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