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가의 독서법 - 분열과 고립의 시대의 책읽기
미치코 가쿠타니 지음, 김영선 옮김 / 돌베개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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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쿠타니에 의하면 보르헤스는 이른바 아방가르드 작가나 이론가보다는 자신이 품은 "사물에 대한 경이감"을 공유하는 이야기꾼들에 더 친밀감을 느꼈다. 이 판단을 뒷받침하는 보르헤스의 말, "불가지론자가 된다는 건 내가 더 크고 더 미래적인 세계에 살게 합니다."

그러게, 문학이 경이감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큰 쓸모 하나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 서평집은 대단히 좋은 서평집이다. 대체로 좋은 서평은 텍스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제대로 잘 찾아 원문 그대로든, 서평가의 말로든 독자에게 잘 전해주는 것이다. 서평을 읽는 독자가 그 텍스트를 읽지 않아도 충분한 것, 서평이 읽을만한 또 다른 텍스트가 되는 것이 내가 쓰고자 하는 서평이다. 더불어 가쿠타니의 서평이 좋은 건 그녀의 책읽기와 서평이 현실을 향해 있어서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행위가 현실과 접점이 없다면 중얼거림과 다를 게 없다.

가쿠타니의 문장은 단정하고 정확하게 사실을 압축한다. 그가 그래픽노블에 대해 설명한 부분이다.

이 장르가 자서전 그리고 절박하고도 복잡한 이야기를 위한 혁신적 플랫폼으로서 가능성을 갖는다는 것.(86쪽)

그동안 그래픽노블을 몇 편 읽었기에 절박함의 감정을 언어가 아닌 표정으로 나타내거나 복잡한 이야기를 문자와 그림으로 함께 표현하는 것의 가능성이 이해가 되었다.

가쿠타니의 서평은 신문 기고라 짧다. 2000자~2500자 정도. 그런데 텍스트의 핵심을 잘 잡으면서도 관련 자료가 풍부해 볼륨감이 크게 다가온다. 작가에 대해 한두 줄이라도 꼭 취재한 내용을 적는다.

서평은 텍스트를 통해 서평가의 생각이나 의도를 말할 수 있을 때, 텍스트를 읽지 않고도 서평과 소통할 수 있다. 잘 쓴 서평은 텍스트 내용을 충실히 담고 텍스트의 주제를 잘 파악하여 텍스트 고유성을 유지하되 텍스트를 통해 서평가는 자신의 견해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가쿠타니는 그런 점에서 탁월하다.

요즘 내 관심사이기도 한 디아스포라와 관련해, 주목할 지점. 미치코는 이민자 작가들을 호명하면서 이들의 작품이 이민자들이 미국 문화에 가져온 혁신, 복잡성, 활력을 상기시킨다. 라고 표현했다.(102쪽) 이민자들은 예리한 관찰자로 한 사회의 모순 또는 많은 사람이 무시하거나 당연시하는 일상의 측면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에 동의한다.

피해자나 소수자, 무시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의 가능성을 다룬 작품들은 우리도 필요하다.

우리나라 이민자2세대나 당사자로 그들의 역사를 쓰는 작가가 나올 수 있을까.

가쿠타니의 깊고 단단하지만 짧은 문장의 예를 들자면,

동생과 함께 하는 프리스비 경기를 삶에 관한 실존적 사색으로 바꿔놓을 줄 안다.(119)

아이젠버그는 극작가의 감각으로 대화를 제시하고 정확한 레이더로 흥미로운 사실을 드러내는 세부를 포착해 보여주면서 장편소설과도 같은 감정의 진폭을 지닌 단편소설을 쓴다.(121) 같은 것.

대단히 복잡할 수 있거나 난삽하거나 다양한 내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힘이 대단하다. 이때도 핵심이 단단해서 그 한 문장으로 한 작품, 한 작가를 다 담는다.

가쿠타니는 끊임없이 독서 혹은 책을 통해 현재를 읽고 말한다. 특히 트럼프 시대 지식인으로 살면서 트럼프의 야만적 정치 행위를 전면적이다 싶게 비판한다. 

미치코 가쿠타니의 이 짧은 서평들에서 가장 놀랍고 감동했던 건 한 작가와 그의 작품이 갖는 자리를 잘 살펴준다는 거였다. 그가 한 소설 속 인물이 다른 소설 속 인물의 사촌이라거나 한 작품과 이웃이 될 다른 작품을 한 자리에 놓으면 그야말로 책의 세계가 구축이 되는 기분에 젖는다. 가장 비인공적인 세계가 주는 인간의 온도가 그 세계의 분위기다.

작가와 작품, 작품 속 인물에 대한 해석과 존경이 작품이든 자신의 글이든 글 안에 갇히게 두지 않는 것이 단연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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