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림, 조선의 586 - 그들은 나라를 어떻게 바꿨나?
유성운 지음 / 이다미디어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림은 본디 훈구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조선 9대 임금 성종이 정책적으로 키운 데서 그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조선 자체가 성리학 원리에 기반한 국가였으며, 여말에 원에서 본격적으로 이 체계를 배운 유학자들이 대거 확산하며 종래의 불교 중심 국가를 대체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국가와 군주에 대한 충절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 성리학자들이 갓 활동 범위를 넓혀갈 무렵 역성 혁명이 일어났다는 건 아이러니입니다만 본격적으로 선비를 우대하겠다는 새 나라의 비전 표방이 있었으니 그리 이상한 일만은 아닙니다.

학교에서 우리가 배우기로도 훈구는 적폐, 사림은 도덕적이고 청렴함, 뭐 이런 이분법으로 배웠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사림이 집권하기 위한 명분을 만들기 위한 세뇌 작업(의 잔재)"라고 이를 평가절하합니다.

중종실록을 보면 "<소학>은 기묘사림이 숭상했던 것이라 부형들이 자제를 가르치고 훈계함에 있어 한 사람이라도 이 책을 언급할까 걱정했습니다."라는 기술이 있다고 합니다(p31). 이는 당시 아직도 세를 크게 떨치던 훈구 세력이 사림에 대해 품었던 두려움을 표현한 것인데, 세상은 과연 그리 변하여 사림이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후에는 유학적 도그마를 바탕으로 군주의 행보를 강력 견제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삼은 게 말하자면 <소학> 등의 유교 경전이었던 셈입니다. 저자는 이를 오늘날 586이 1980년대에 즐겨 읽던 <해전사>에 비기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저자의 견해가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소학>은 p91에 이황의 입을 빌려 다시 등장합니다.

임사홍은 조선 내내 간신으로 낙인 찍혔고 저희들이 어렸을 때 읽었던 책, 만화 등에도 그런 이미지였습니다. 동시대인이었던 유자광도 그러했고, 좀 뒤인 중종 대로 오면 남곤, 심정 등이 그런 포지션이죠. 뒤의 세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부정적인 인상입니다만 드라마 <왕과 비>에서 임혁 씨가 좋은 연기를 보여서인지 임사홍은 최근 들어 다소 평가가 좋아지는 느낌입니다. 저자는 pp.34~35에서 흙비, 화재 등 천재, 인재를 두고 사실 그대로를 지적하는 임사홍과 그를 탄핵하는 사림의 태도를 대비시키며 "지금 눈으로는 임사홍이 훨씬 정상"이라 지적합니다. 이런 사림의 태도는 시대를 2400년 역행하여 고대 중국 주나라의 질서로 회귀하려는 일종의 퇴행이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저자는 계유정난 당시 사림이 받은 충격에 대해 언급합니다. (한참 전의) 왕자의 난에 대해서는 무덤덤하던 것이 이 사건에 대해서는 유독 민감하게 반응했는데 저자는 이를 두고 전두환의 12.12나 5.18에 대해 당시 학생들이 느꼈던 충격에 비유합니다. 예를 들어 20년 전인 5.16에 대해서는 초기 오히려 장준하 선생처럼 환영을 하던 움직임도 있었던 것과 확실하게 대비되죠.

p41에서는 저자가 신계륜씨가 정형근씨를 국회에서 보고 "주먹이 쥐어졌다"고 한 말을, 신숙주에 대해 사림이 당시 느꼈을 감정과 비교합니다. 이어, 정말 흥미롭게도 YS가 구 민정계, 혹은 상도동계만으로 국정을 이끌 수 없다고 여겨 김문수, 손학규, 이재오 등 이질적인 민주화운동 경력자들을 대거 영입하여 정치에 참여시켰던 행적을 성종의 사림 스카웃에 비견합니다. 이 부분 읽으면서 재미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저 세 분(적어도 두 분)은 이후 전 소속 진영과 확실히 선을 그었지만 말입니다.

p53에는 앞서 잠시 언급한 남곤이 등장하여 "우리 나라는 사대뿐 아니라 교린에 있어서도 사화(詞華)가 필요하니 문장 쓰는 능력을 결코 홀대할 수 없다"고 한 말이 인용됩니다. 실제로 앞선 시대의 신숙주도 대(對) 일본 외교를 중시했고 훈구파는 이처럼 국정 운영의 실무 능력 면에서 확실히 뛰어난 점이 있었습니다. 조선 전기는 그 앞선 고려 말처럼 왜구의 극심한 병폐가 덜했고 이런 국면이 훈구파의 집권기와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 면이 있죠. 이후 인종~명종 대는 훈구 집권기라기보다 외척에 의한 세도 정치에 가까우니 말입니다. 여튼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배운 이른바 "사장파와 도학파의 대립"은 이런 구체적인 역사 기록을 보며 의미가 깊어지기도 하네요.

정치권에서는 종종 적통의 논란이 일곤 하는데 사실 이는 적절치 못합니다. 현재의 유권자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일꾼이 선택되면 충분하지 과거사가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물론 다른 조건이 같다면 기왕이면 족보 좋은 인재를 선택하겠지만 말입니다. 권근이 학문적인 면모로도 포은과 야은에 못 할 바 없었지만, 도학의 적통을 논함에 있어 배척되고, 끝까지 조선 조정을 외면한 저 두 분이 이후 사림에 의해 내내 숭앙되었음을 저자는 지적합니다. 이 다음이 포인트인데, 건국 세력이 경멸되고 그 반대 진영이 고평가되는 건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확실히 그런 면이 있기는 합니다(저자의 견해에 찬성하건 반대하건 무관하게 말이죠).

"조선에 있어서는 사습(士習)이 비루하여 나아갈 바를 몰랐는데 김굉필이 젊어서 김종직에게 수업하여 문호를 조금 알고 스스로 송유(宋儒)의 끼친 실마리를 얻어서 규모를 극진히 하고 그 동정과 시위가 바로 정자, 주자와 같았으니..." 김굉필의 문묘 배향 여부를 둘러싸고 논쟁이 크게 일었을 때 그를 옹호하는 논변 중 일부입니다. 사실 한반도 성리학의 대종은 안향에서 찾을 뿐이며 이분은 원(元)에서 학문한 분인데도 구태여 더 멀리 정주(程朱)의 송(宋)을 거론하는 걸 보면... 여튼 그 앞에는 "멀리 정몽주의 계통을 잇고 염락(濂洛)의 연원을 찾았다"며 김굉필을 높이 평가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저자는 김굉필을 두고 그리 경지가 높지는 못했으나 오로지 제자들을 잘 길러 학맥을 이은 공 하나로 기묘사림이 이처럼 무리수를 둔다며 비판합니다. "정의를 독점하고 배타성이 남달랐던(p90)" 사림은 결국 김굉필의 문묘 배향은 달성하지 못하였으나 절반의 승리를 거두었다고 저자는 평가합니다.

썩어빠진 훈구 세력을 몰아내고 세력을 잡은 사림은 그럼 청렴하게 살았을까? 저자는 선조 연간 감사를 지냈던 유희춘을 거론하며, 심지어 첩의 집도 영암 군수와 전라 수사가 맡아 지어 줘야 했을 만큼 막강한 권세를 누렸다고 합니다. 그 뒤에는 김해에 거주하던 박천이라는 인물이 도망한 왜비(倭婢)를 반환할 것을 왜의 사자에 요구하자 "우리는 본래 사천(私賤)이 없다"고 대답했다는 태종 연간의 일화가 나옵니다. 사실 사사로이 노비를 부린 건 고려 말 권문세족 발호 후부터의 폐습이며 딱히 이걸 두고 사림을 욕하기는 좀 그렇습니다만 여튼 청신한 기풍을 내세웠다는 사림 주도의 사회에서 오히려 노비의 비중이 증가했다는 건 문제입니다.

가장 문제인 게, 사림은 이른바 "열녀"라는 왜곡된 여성상을 만들어 전근대적이고 후진적인 노예적 삶을 동시대 여성에게 강요하고 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근래 여성계 주도로 "고려 때만 해도 자녀 균분 상속 등 여성의 지위가 그리 낮지 않았으나 조선 들어 사림의 교조적 사회 개조 움직임이 크게 일며 남존여비의 사회 풍조가 지배했다"는 주장이 크게 대두하는 것과도 맥이 통합니다. ㅎㅎ

향약을 통해 사림들은 향촌 사회를 확고히 장악했는데 이른바 惡籍을 통해 일종의 블랙리스트를 만든 점도 특이합니다. 저자는 조지 오웰의 말을 빌려 "모두가 평등하지만 조금 더 평등한 사람"들의 명단이라고도 할 수 있다는군요. 오웰의 저 문장은 참 아무리 생각해도 명언입니다. 여튼 "당동벌이"의 배타성은 조선을 대외적이건 대내적이건 지극히 폐쇄적인 사회로 만들었고 국력은 날로 침체하여 결국 중국에 사대하고 왜에 뒤떨어지는 희망 없는 실패 국가로 전락하게 된 게 사실입니다.

사림이 오랜 기간 동안 소인배로 낙인 찍은 탓에 수백 년 후의 우리들도 그리 알고 있는 남곤(공교롭게도 북에서 부수상까지 지낸 벽초 홍명희의 대하소설 <임꺽정>에도 남곤 심정이가 소인배라는 말이 나옵니다)은,

"인심이 순박하지 못하여 교사한 마음이 날로 늘어나 공도로 과거를 설치하였는데도 폐단이 생겼는데 하물며 천거의 공정을 바랄 수가 있겠습니까?(p147)"

현량과의 실시를 반대하며 저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요즘 누가 이런 주장을 하면 20대 청년들이 아마 열화와 같이 지지를 보낼 것입니다.

사실 성리학이 태동했던 시기인 송대에도 道學이 오래 세력을 누리지는 못했습니다. 저자는 주장하기를 송을 정복한 몽골의 원나라가 상업과 국제무역을 활성화하여 세계 최대 규모의 시장과 자본을 발전시켰다(그래서 성리학이 설 땅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미 남송도 강남을 적극 개발하여 물산을 폭발적으로 늘렸고 상업의 번성함은 비할 바가 없어서 금나라의 그 거센 공격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경제력 하나로 버텼던 것입니다. 성리학이 지배 이념으로 완전히 자리한 국가는 따지고 보면 조선이 유일한 셈입니다. 덕천 막부도 시늉만 하다 결국관두고 중상주의로 갔으니 말이죠. 물론 사농공상의 확고한 신분질서와 성리학 체계를 바로 동시할 수는 없습니다만.

중종 때 속고내(束古乃)라는 여진족 추장의 처리를 두고 갑론을박이 있었다고 합니다. 역시 <임꺽정>에 중요한, 아주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이장곤이 선제적 정벌의 찬성론자였고, 이에 반대하던 게 조광조 등 기유사림이었습니다. 결론은 조광조 등의 의견을 수용하여 여진족에게 강경책을 쓰지 않았고(이전 세종~세조 연간과는 반대로), 그 결과 백 년 뒤 여진족은 엄청난 세력을 이뤄 우리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겼다는 겁니다. 이 사실은 근래 재주목되어 비단 이 책 저자분뿐 아니라 요즘 신진 학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이것저것 다 떠나 p173에 길게 인용된 조광조의 변론은 매우 유려하고 (많이 배운 사람 특유의) 품위를 풍깁니다. 그 담은 내용이 비록 국가 시책의 패착을 부른 어리석은 것이었다고 해도 말입니다.

사림은 결과적으로 우민화 정책을 폈다고 봐도 되는데 책 p192에는 "백성이 상공업에 종사하면 간사해진다"는 말도 나옵니다. 반면 중국은 오천 년 역사 동안 말만 사농공상이지 상인 세력이 배후에서 힘을 휘두르지 않은 역사가 없습니다. 원도 교초의 남발 때문에 유통 질서가 크게 어지러워지자 망한 것입니다. 이처럼 교조화한 유림은 대개 상인 세력을 적대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결국 이는 민생의 피폐로 귀결합니다. 저자는 586 특유의 반기업정서를 이와 연관 짓는 듯합니다.

저자는 광해군의 중립 외교에 대해 "전장 최전선에서 직접 전쟁을 겪어 본 그였기에 남다른 현실 감각으로 힘의 향방을 판단했을 것"이라 말합니다. 또 병자호란 당시의 한심한 혼란상을 길게 설명합니다. 척화파 주화파 사이의 대립을 마치 구질서 집착 - 신질서 적응 사이의 대립으로 치환시켜 친미는 죽을 길이고 새로 떠오르는 중국과 친해야 그게 실용주의라는 논리를 펴는 사람들도 대략 십 년 전쯤에 있었습니다.

책에는 다양한 역사 기사가 인용되며 이를 읽는 재미만으로도 책을 고른 보람이 충분합니다. 저자의 주장에 대한 판단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기표의 정치혁명
장기표 지음 / 행복에너지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기표 선생님은 한국 민주화 운동의 거목 중 한 분입니다. 아마도 현재 활동하시는 분 중에는 가장 연로하신 분에 속하며, 또 아마 가장 오랜 동안 민주화 운동에 헌신해 온 인사로 꼽혀야 할 듯합니다.

장기표 선생께서 서울 법대 재학생이었던 시절 평화시장 재단사였던 전태일의 분신이 있었죠. 이때 장기표 선생, 그리고 훗날 <전태일 열전>을 집필한 고 조영래 변호사 등은 현장에 제일 먼저 달려가 시대의 비극 그 현장 앞에서 오열했습니다.

생전에 조영래 변호사는 한겨레신문(창간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에 기고하여 "장기표는 무슨 죄가 그리 많은가"라는 칼럼을 쓴 적 있습니다. 민주화 조치를 단행한 후 종래의 재야 인사들이 대거 석방, 사면 복권 된 후에도 유독 장기표 선생만큼은 이런저런 법적 규제를 통해 활동에 많은 제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조영래 변호사는 장 선생보다 2년 연하인데도 두 분은 간담상조하는 벗으로 오래 교유하신 듯합니다.

저 무렵부터 장기표 선생은 차세대 야권 지도자, 대통령감으로 꼽혔죠. 실제로 2000년 그가 민주국민당에 가담했을 때 YS는 "느그들 중에서 대통령이 나와야 돼"라며 격려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그와 뜻을 같이했던 인사들은 박찬종, 김광일, 이기택 등 쟁쟁한 야권 원로들이었죠. 고 김광일 변호사도 서울 법대 출신인데 장 선생보다 6년 연상입니다. 마치 호랑이 같은 인상에, 말과 행동, 인격 등 모든 면에서 적들에게 한 치 흠을 잡히지 않는 지사이자 투사형인 거물이었죠.

장 선생은 이후로도 계속 독자 노선을 겪으며 정통 진보 세력의 한 맥을 정치세력화하려 애 썼으나 민주화 운동을 하던 시절 그의 엄청난 네임밸류에는 미치지 못하는 결과만 낳았습니다. 아마도 대중은 (그의 실제 행적에 비해) 그를 널리 인지하지 못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장기표 선생은 근년에 들어 현대 사회의 급격한 변화상에 대한 자신 나름의 깊은 통찰을 담은 저술, 강연 활동을 통해 우리 대중을 만나는 중입니다. 그 중 하나가 이 책이며, 이 책이 저술된 경위는 책 서문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최근에 저도 많은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 출판사 행복에너지 권선복 대표님의 권유, 그리고 에디터인 한영미 작가님의 도움이 있었다고 선생은 스스로 밝힙니다.

이 책에서 그가 밝히는 신념과 비전 중 하나는 민주시장주의입니다. 20세기 들어 모든 왕정, 전체주의가 타파되고 오로지 살아남아 보편적 지지를 받는 정치체제는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 아닌 어떤 체제도 이제는 인류의 심판과 타매를 받아 퇴장했으며, 혹 아직 퇴장하지 않은 레짐이 있다면 아마도 곧 그리될 운명이겠습니다. 그러니 어떤 지표와 이상이 민주주의 카테고리 밖에서 이뤄진다면, 이를 추구하는 자는 인류의 공적(公敵)으로 영원한 저주의 낙인이 찍혀 마땅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 만한 풍요를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통해 달성했습니다. 시장경제는 물론 많은 결함이 있으나 일단 전체가 먹을 파이를 이 정도씩이나 키워 줄 수 있는 다른 대안이 현재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장 선생은 "민주시장주의"를 아젠다의 첫머리에 두는 것입니다.

또한 장 선생은 보수세력 일각의 종미(從美) 경향에 대해서도 매서운 일침을 놓습니다. 미국은 물론 선진국이며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여전히 많지만, 그 사회에도 아주 몹쓸 병폐가 있으며 개탄스럽게도 우리는 어쩜 이런 가장 못된 점부터 거꾸로 배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걸핏하면 대국의 영향력 행사를 자청하는 나쁜 습성이 있는데 사실 말이야바른말이지 YS도 야당 총재 시절 NYT와의 인터뷰에서 그런 적이 있었죠. 아무튼 이게 우리의 고질적인 사대주의 습벽이며 장 선생이 책에서 이를 매섭고 준렬하게 질타하는 것입니다. 예전 원나라 때도 입성(立省)의 논의가 있었으며 명나라 때 조선의 조정이 굴신했던 역사야 두 말 하면 입이 아플 뿐입니다.

장기표 선생은 누구보다 뜨거운 마음으로 민족의 재통일을 주장하는 민족주의자입니다. 그는 중국 역시 내심으로는 한국 중심의 통일을 그리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 주장하는데, 1) 어차피 체제가 근본적 결함을 안고 있는 북한은 자기 영토 보전도 중국에 의존해야 하는 실패한 국가이며 2) 자주적이고 강력한 자체 의지를 지닌 통일 한국은 종전처럼 마냥 미국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고 3) 이런 통일 한국이라야 주한미군을 한반도에서 결국은 내보낼 수 있을 것인데 이는 중국에 눈엣가시인 현안을 근본에서 해결할 수 있으므로 그들 역시 환영하는 바가 될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그러면서 한국을 오히려 친중으로 포섭하기 위해 중국은 지금보다 한국에게 유화적인 태도로 나올 수 있다는 거죠.

이를 요약하면 장 선생의 명명으로 "신문명정치"입니다. 종래 한국에서 이뤄진 온갖 부패하고 퇴행적인 구태가 일소되고, 당당하게 민족 통일을 이뤄 자주적인 국가를 이루고, 국력의 일대 도약을 달성하여 미국과 중국 등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강국을 건설한 후 세계 평화까지 도모하는, 인류 역사의 새 지평을 열어젖히는 감격의 도정을 닦아 나가자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얼마나 원대하며 벅찬 비전의 표명입니까.

장기표 선생을 현실 정당 정치 지도자로서 제대로 동반하지 못하고 "영원한 재야인사"로만 모시게 된 건 우리들의 불운입니다. 물론 저 호칭에는 추억과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가득 담긴 표현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장 선생님을 앞으로도 오래오래, 책을 통해 강연을 통해(서나마)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책을 내 주신 행복에너지에도 독자로서 감사 드립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1 해커스 공인중개사 출제예상문제집 1차 민법 및 민사특별법 - 제 32회 공인중개사 1차 시험 대비ㅣ기출지문 빈칸노트 제공 2021 해커스 공인중개사 출제예상문제집
채희대.해커스 공인중개사시험 연구소 지음 / 해커스공인중개사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인중개사 시험 1차 과목은 민법및민사특별법, 그리고 부동산학개론 두 과목입니다. 이 중에서 수험생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건 아무래도 민법및민사특별법일 것입니다. 양이 방대하고 내용도 좀 어려운 편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민법은 최신 판례도 알 필요가 있고 법 개정 사항도 숙지해야 합니다. 공신력 있는 출판사(학원)에서 나온 책이라야, 오타 없고 정확한 내용의 제시, 편집이 가능합니다. 최신 내용의 업데이트도 그렇고요.


 

이 책은 1차 시험을 대비한 예상문제집입니다. 개념 공부가 아무리 잘 되었어도 실전 문제에 적응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많은 문제를 풀어 봐야 내 실력이 어디가 부족한지, 어디를 지금 착각하고 헷갈려하는지를 정확히 짚을 수 있습니다. 또 기왕이면 문제집은 올해, 바로 올해 출제될 문제를 예측할 수 있으면 좋습니다. 열심히 문제집을 풀었는데 고사장에 가니 바로 그 문제, 혹은 매우 유사한 문제, 맥이 거의 통하는 문제, 이런 게 나오면 기분도 좋고 성취감도 느껴질 뿐 아니라 무엇보다 합격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 책을 다 풀어 보니 피곤한 와중에도 내 정확한 실력을 가늠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 부분은 이 정도면 되었고, 이 부분은 여태 잘 모르는 걸 안다고 착각했구나, 이런 점들을 수험생 입장에서 체크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집은 수박 겉핥기 식으로 봐서는 안 되 겠더군요. 한 문제 한 문제 꼼꼼히 풀어 보고, 가능하면 처음에는 풀이 표시를 하지 말고 틀렸다는 것만 표기했다가 두 번째 세 번째 풀이에는 과연 내 실력으로 풀 수 있는지 점검하는 편이 나았습니다. 이 책에 실린 문제들이 최신 경향과도 맞고 낄끔하게들 뽑혔으므로 적어도 책을 두 번은 돌리시고 시험에 임하기를 권합니다. 

 

제1편 민법총칙

 

총칙은 각론을 다 보고 나서 공부하라는 양창수 대법관의 충고도 있었지만 공인중개사 수험생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으므로 책에 제시된 대로 몸을 맡기고 꼼꼼히 순서대로 풀어나가면 됩니다. 

 

성립요건과 효력(발생)요건의 구분이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둘 다 요건입니다. 요건이 하나라도 빠지면 그 법률행위는 꽝이 됩니다. 그런데 둘이 무슨 차이가 있는가? 성립요건이 빠지면 "(계약 등의) 부존재"입니다. 효력요건이 빠지면 "(계약 등의) 무효, 취소"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사실 무효와 부존재는 서로 원래 가까운 개념이고, 취소는 저 둘과 관계가 좀 멀지만 여튼 묶이기는 저렇게 묶이죠.

 

그런데 성립요건은 그 성립을 주장하는 사람이 법정에서 입증을 해야 하고, 성립요건을 일단 증명했으면 효력요건까지는 그 사람이 입증할 필요가 없습니다. 효력요건은, 이 법률행위의 무효, 취소를 주장하는 사람이 "효력 요건 없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이 입증책임의 문제 때문에 이걸 구태여 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인중개사 시험에서 이 사항을 물어 보는 것입니다. 공인중개사의 실제 업무와 관련이 있으니 말입니다.

 

p27의 07번 문제를 보면 효력발생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걸 묻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효력요건이 아니라 성립요건인 것"을 물을 수도 있고, "이도 저도 아닌데 효력요건과 비슷한 것"을 고르라는 뜻일 수도 있죠. 이 문제는 후자입니다. 과거 출제 경향은 전자였다면 최근에는 후자 같은 게 훨씬 자주 나오죠. 변별력을 높이기도 하고, 최신 판례를 반영도 하기 때문입니다. 

 

①에서 "의사표시에 하자가 없을 것"은 효력요건입니다. 이건 실무에서 "의사표시에 하자가 있었던 것"을 무효, 취소 주장자가 입증해야 합니다. 계약이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처음에 "의사표시의 존재"만 입증하면 되죠(이것은 성립요건입니다). 그 다음에 의사 표시 하자를 반대편이 입증하고, 이에 대해 다시 받아칠 수 있으면 받아치고요. ①에서 "의사"까지만 보고 아 이건 성립요건이구나, 답은 ①, 뭐 이러면 큰일난다는 겁니다.

 

④⑤는 일반인 눈에는 서로 비슷하게 보입니다. ④는 매매 당사자 외에도 관청이 이걸 허가를 내 줘야 계약이 유효하게 됩니다(효력 요건). 당사자 간 계약은 유효한데 다만 허가가 안 나서 미뤄지는 게 아니라, 계약 자체가 소급해서 무효가 되어 버리는 아주 강력한 겁니다. 반면 ⑤는 민사가 아니라 그저 행정 절차의 일부이며, 따라서 이게 안 갖춰져서 매매에 지장이 생겨도 당사자 간 민사 계약이 무효, 취소가 되는 건 아니라는 소립니다. ⑤는 1998. 2. 27에 나온 대법원판례에 근거를 둔 선지인데 별권으로 된 부록인 해설책에 상세하게 나오므로 이해해 가며 문제를 풀려는 수험생분들에게 유익합니다. 

 

p27의 08번 문제에서는 성립요건을 묻고 있습니다. ④에서 요물계약은 낙성계약의 반대말입니다. 낙성계약은 그냥 의사의 합치가 성립요건이지만, 요물계약은 인도까지 추가로 요구합니다. 낙성계약에서는 인도가 안 이뤄졌다는 걸 반대편이 입증해야 합니다만, 요물계약에서는 인도가 이뤄졌다는 걸 자기가 입증해야 합니다. 공인중개사의 업무에 이런 사항의 숙지가 실제로도 반드시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고객에게 설명해 줄 때 이렇게이렇게 하시라고 알려 주는 게 책임 있는 중개사의 태도이겠으니 말입니다. 

 

해답집 별책의 p10을 보면 해설 끝에 성립요건, 효력요건을 구분하고 다시 일반과 특별을 구분한 표가 나옵니다. 해설을 읽고 나서도 개념이 잘 안 떠오를 때가 있는데 이럴 때 다시 개념서를 찾아 보거나 하면 번거롭죠. 해설에서 바로 개념을 확인할 수 있어서 수험생에게 편합니다. 

 

p30의 16번 같은 게 어렵죠. 우리 생각에는 다 무효일 것 같은데 말입니다. ①은 학설에서 유효설 무효설이 대립합니다. 그러나 문제를 보십시오. 다툼이 있으면 판례에 의한다고 합니다. 역시 부록에는 해당 판례가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①은 해당 특조법이 매우 무거운 처벌(형벌)을 규정합니다. 그러나 형벌을 받는 건 둘째 치고, 해당 중간생략등기 자체는 유효라는 게 판례의 태도입니다. 그러니 형사로 불법이지만 민사는 효력을 그대로 유지해 주는 게 이 건이죠. ②는 누구라도 민사 계약 자체는 유효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식품위생법 위반했다고 그 자체로 식당에 가서 서비스 제공을 무효가 되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물론 그렇게 하자고, 급부의 하자를 이유로(불완전이행) 손님이 따질 수는 있습니다. 아니면 민사불법행위(tort) 책임을 묻든지요. 참고로 공인중개사 출제범위에 불법행위, 부당이득, 사무관리 등은 포함 안 됩니다. 

 

③은 추가보수약정 부분만 효력규정 위반으로 무효이고 나머지는 유효하죠. 문제에서 추가보수약정 부분만 물었으므로 무효가 맞습니다. 해설책 별권에 단속규정/효력규정 구분에 대해 언급이 있습니다. 이 부분 혹시 더 궁금한 분들은 이영준 저 <민법총칙> 같은 책을 참조하면 됩니다. 1,000페이지가 넘으므로 색인에서 해당 부분만 찾아서 읽으십시오.

 

p31에 ③은 반사회질서의 판단 기준이 어떤 절대 불변이 아니라는 겁니다. ⑤는 매도인이 이중매매를 통해 첫번째 매수인을 속이고 두번째 매수인에게 이중으로 팔아먹은 사건인데 이 경우 두번째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앞의 사람 무시하고 자기한테 팔라고 적극적으로 권유를 했다면 이는 반사회질서로 무효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97다45532)에서는 두번째 매수인은 사정을 몰랐고(혹 알았다고 해도 적극 가담이 아니면 유효합니다) 그 대리인이 적극 가담한 것뿐이니 반사회질서가 아니지 않냐는 게 쟁점이었습니다. 부록 p12의 해설에도 나오듯 이런 건 본인(=두번째 매수인)이 아니라 대리인을 기준으로 합니다. 따라서 본인은 몰랐다 해도 대리인이 적극 가담했으면 이 행위는 무효입니다. 살다 보면 이런 애매한 경우가 발생하는데 참 좋은 기준이 되는 판례이죠. 


 

p78의 03번에서 선지 ③이 왜 맞는 말이냐면, 유동적 무효 상태에서는 계약금 반환을 청구 못 한다는 겁니다. 나중에 확정적 무효가 되고 나면 그때 가서는 청구할 수 있죠. ⑤에서 무효는 누구에게도 무효이므로 설령 귀책사유가 있는 사람이라 해도 무효를 주장할 수 있게 해야겠죠. 

 

p85의 19번에서 ①이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틀렸죠. 취소만큼은 미성년자도 단독으로 할 수 있으므로 애초에 (부모 등의) 동의가 필요 없습니다. 유효한 취소이므로 이것을 다시 취소(즉, 취소의 취소)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부록(별책) p29의 해설에 아주 잘 나와 있습니다. 본책 저 뒤 제3편 계약법 파트 p224에 보면 개념 정리에 "취소는 단독행위이고 형성권 행사"라는 설명도 나옵니다. 이처럼 모든 파트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알찬 공부가 됩니다. 

 

제2편 물권법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공인중개사 시험에서는 물권법이 좀 어려운 편입니다. 이번에 해커스 예상문제집으로 공부하면서 특히 물권법 파트에 좋은 문제가 많다고 개인적으로 느꼈습니다. 

 

p107의 12번을 보면 ②에서 그럼 예컨대 임대인을 상대로는 소유물 반환을 청구할 수 없는가, 가능합니다. 그 사람은 "현재 점유하고 있지 않은 자"가 아니라, "간접점유를 하는 자"이기 때문이죠. 

 

특히, 중개사 시험 준비하는 분들은 점유 부분을 무척 어렵게 여깁니다(제 주변도 그렇고요). p133의 06번 문제에서 ①은 등기가 물론 공시 방법이기는 하나 그것만으로 "소유의 의사"가 표시되었다고 할 수 없다는 판례의 태도와 같습니다. ②도 참 어렵죠. 상속을 했으니 사람이 바뀐 건데 점유는 그대로 계속되는 것이다? 그래서 앞 사람의 점유에 하자가 있었으면 이 역시 뒤의 사람이 그대로 계승한다는 소리죠. 별개의 권원이 있다면 또 모르지만 말입니다.

 

p149의 03번 같은 문제에서는 "고득점용"이라고 상단에 따로 표시됩니다. 이처럼, 특히 고득점 노리는 수험생을 위해 책은 배려를 하고 있으며(고득점 합격이라고 해서 특별한 혜택이 있는 건 아니지만) 반대로 최소 노력으로 과락만 면하려는 전략인 분에게는 이런 문제는 생략해도 된다는 뜻도 되겠습니다. 다른 과목이 좀 약해서 민법에서 최대한 뽑아야 하는 분들은 역점을 두어 이런 문항들을 공략해야겠네요.

 

위 문제에서, ㉡은 민법 조문이 "~두어야 한다"면서 마치 강행규정인 것처럼 표현하지만 여튼 성질상 강행규정은 아니라고 판례가 말하는 것입니다. ㉢은 "기존의 통로가 있더라도" "기능을 못하는 경우에는" 인정된다는 뜻입니다. ㉥은 원래 맞는 말이지만 별책 부록 p43의 해설에 나오듯이 단서 사항, 즉 1년이 지나면 손해배상"만" 청구할 수 있다는 민법 규정 때문에 틀린 게 됩니다. 단서가 있으면 단서까지 다 포함시켜야 맞는 말이 됩니다. 이것은 판례가 아니라 민법 조문 자체에 있는 내용이므로 더 철저히 알아 둬야 하겠네요. ㉤은 "전세권"의 경우 법조문에 명시적으로 말이 있으므로 "준용"이고, "임차권"의 경우 해석상 그러하다(별책부록 p43 해설에 그리 나옵니다)는 것이므로 "유추 적용"입니다. 

 

p180의 13번 같은 것이 신유형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해커스 최신개정판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게 이런 신유형 문제가 많이 추가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최근 중개사 문제 난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으므로 대처를 좀 시켜 주셔야 하는데 이런데서 해커스 강사진의 저력이 엿보입니다. 

 

13번은 신유형이긴 하지만 사실 눈치가 좀 빠른 수험생이라면 답이 ⑤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선지 ②를 보십시오. "다른 특약이 없는 한, 건물 양도가 지상권 양도를 포함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제 ⑤를 보십시오. "필수적이므로 분리해서 양도할 수 없다"라고 합니다. ②와 ⑤는 서로 모순입니다. 둘 중의 하나는 반드시 답이 되어야 하는 거죠. 민법에서 특약이 광범위하게 허용되므로(사적 자치의 원칙 때문) 설령 배운 걸 잊었다고 해도 답을 ⑤로 고를 수 있습니다. ⑤는 특약이 안 된다는 소리 아니겠습니까? 너무 강한 말이죠. 즉, 틀렸을 가능성이 크죠.


 

물권편에서 또 수험생들이 어려워하는 게 담보물권, 그 중에서도 근저당입니다. p215에 고득점용으로 42번 문제가 있습니다. ②가 정답인데(=틀렸는데), 이건 말이 안 되죠. 가뜩이나 일반 보증인도 아니고 물상보증인일 뿐인데, 더군다나 연대보증도 아니고 면책적으로 해당 피담보채무만을 인수했는데 다른 채무까지 책임진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아무리 근저당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③에서 후순위 근저당권자의 경매 신청에 의해 선순위 근저당권자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의아할 수도 있으나, 어차피 경매 절차가 개시되고 대금 완납이 되면 선순위권자가 순위에 따라 채권 만족이 가능하므로 상관 없습니다. 

 

제3편 계약법

 

이 책 1~4편이 모두 그렇습니다만 예상문제집이라고 해서 문제만으로 책이 구성된 게 아니고, 앞부분에 간략하게 개념도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 풀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꼼꼼히 읽어 보고, 생각이 안 나면 앞으로 다시 돌아가서 훑어 보는 식이 되어야 하겠네요.

 

공인중개사 시험 민법 과목은 채권법 비중이 적고 이처럼 계약법만 다룹니다. 채권총론, 사무관리, 불법행위 등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계약법 파트에서 의외로 허점을 찌르는 출제가 되기도 하니 주의 깊게 봐 둬야 하겠습니다. 

 

p232에 고득점용으로 11번 문제가 편성되었습니다. ①은 원래 계약에서는 발신주의이긴 하지만 청약 도달 전까지는 철회가 가능하다는 거죠. 민법에서는 이처럼 원칙과 예외가 아주 복잡하게 꼬여 있으므로 조심해서 공부해야 합니다. ②도 발신주의 원칙이므로 틀린 거고요. 다만 교차청약의 경우 모두 도달한 시점이 기준이 된다는 게 별책 해설 p67에 잘 나옵니다. 해커스는 이처럼 말이 애매하지 않고 딱딱 짚어서(밑줄 쳐 가면서) 해설해 준다는 게 좋습니다. ④는 의사에 따라 행위가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고 상대방이 그 행위를 인식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⑤ 역시 발신주의이므로 5월 6일에 원칙적으로 계약이 성립하지만, 혹 甲(수신자)이 연착의 통지로 항변을 한다면 그것도 가능하다는 뜻이므로 ⑤가 아무 틀린 곳 없이 정답이 됩니다. 

 

p238에 고득점용으로 24번 문제가 나옵니다. ㉠에서 경개(更改)는 전후 계약이 동일성 인정 안 되므로 동시이행 항변권이 소멸하는 게 맞습니다. ㉣은 쌍무계약이 맞긴 하나 "동시이행"은 아닙니다. 변제가 당연히 먼저 이뤄지고 나서야 담보권자가 저당권을 말소해 주겠죠. 이게 동시이행이라면 담보권은 이미 담보권이 아닙니다. 

 

많은 수험서가 해설과 정답을 쉽게 분책되는 별권으로 제작되긴 합니다. 그러나 막상 해설을 찾아 보면 문제 번호만으로 빨리 찾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해커스 교재는 해설편에도 점유면 점유, 해제면 해제, 동시이행항변권이면 항변권, 이렇게 단원 이름이 같이 나옵니다. 그래서 지금 어떤 단원을 공부하면서 문제를 풀고 해답 체크할 때 찾기가 더 편합니다


 

p249의 48번 문제는 고득점용입니다. ㉡은 우리 수험생이 좀 헷갈릴 수 있으나, 짧은 기간은 안 된다는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 선지는 "최고 자체가 무효"라고 했으므로 틀린 것입니다. 최고는 유효지만 단지 기간은 최고대로가 아니라 더 늘어난다는 거죠. ㉢은 원래 임차권은 채권에 불과하지만 주임법이라는 특별법에 의해 대항요건을 갖췄으므로 매도인에 대항할 수 있다는 뜻이죠. ㉣은 "보호받는 제3자 중에 채권양수인은 해당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양수인은 그저 당사자일 뿐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다시 ㉢으로 돌아가서, 임차인은 보호받아야 할 제3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때 판례의 태도는 "(그런) 제 3자도 대항요건은 갖추어야 한다(별책 해설 p74)"고 합니다. 

 

이 단원에서도 임대차 관련 문제가 많이 나오지만, 주임법, 상임법 등은 제4편 민사특별법에서도 다시 나오므로 유기적으로 연관하여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4편 민사특별법

 

이 단원에는 주임법, 상임법, 집합건물의소유및관리에관한법률, 가담법, 부동산실명법 등 5개 법률이 포함됩니다. 소홀히할 파트는 하나도 없습니다. 

 

특히 이 책에서는 주임법과 상임법을 대조하며 같은 점과 다른 점을 분명히 구분하라고 여러 군데에서 반복하여 강조합니다. 개념 정리에서도, 문제 앞에 박스로 뽑은 "포인트"에서도, 그리고 해설에서도요. 

 

p315에 "중요" 표시가 된 06번 문제가 나옵니다. ②가 충격인데 설령 법원의 강제경매절차에 의했다 하더라도, 전유부분(專有部分)과 대지사용권은 분리하여 처분할 수 없다는 게 판례의 태도입니다. 다만 규약이나 공정증서로 다르게 정할 수는 있습니다. 또 이는 등기를 하지 않으면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없습니다. ④는 판례에 의해, 재건축시 용도 변경 결의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p325에 "중요" 표시가 된 06번의 경우 ②에서 청산금 평가액이 객관적 가액에 못 미친다는 건, 여튼 채권자의 주관적 평가가 타당하든 아니든 간에 통지로서는 효력이 발생한다는 겁니다. 채권자는 아마 청산금(부동산 가액 빼기 자기 채권액)을 되도록이면 적게 잡으려 들겠죠. ③은 일종의 항변권입니다. ⑤는 후순위담보권자가 경매를 청구했다 해도 그 과정에서 선순위권자의 채권이 만족될 수 있으므로 그의 가등기담보권이 소멸해도 무방한 거죠. 


 

책 앞부분에는 기출지문 빈칸노트가 있습니다. 특히 시험 1~2주 앞둔 시점에선 이 노트를 잘라서(자르기 편하게 되어 있습니다) 휴대하고 수시로 참고할 필요가 있죠. 빈칸에 들어갈 말이 즉시 생각나지 않는다면 해당 단원에 대해 긴급 점검이 필요합니다. 

 

공인중개사는 다른 자격증 시험에 비해 응시자층의 연령이 높은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본책의 문제, 개념 설명은 비교적 큰 글씨로 되어 있습니다. 이 역시 수험생을 배려한 편집으로 생각되네요. 

 

책은 총 4편으로 되어 있는데 매 편의 앞부분에 최근 7개년 평균을 내어 얼마만한 빈도로 각 단원에서 문제가 출제되었는지 보기 편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도 반드시 챙겨 보아야 소중한 에너지와 집중력을 단원별로 잘 분배할 수 있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이제 괜찮아지고 있습니다 - 시골책방에서 보내는 위로의 편지들
임후남 지음 / 생각을담는집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전엔 후미진 주택가라 해도, 없으면 하다못해 작은 문방구 하나 정도는 반드시 동네에서 서점 노릇을 했었습니다. 지금은 번화가에 나가도 번듯한 서점 하나 찾기가 힘듭니다. 얼마 전에는 반디앤루니스가 드디어 문을 닫아서(일부 매장 제외) 많은 이들이 우울해기도 했죠. 이런 판에 도시에서 시골(비교적)로 이사하여 작은 책방 하나를 내신 작가님의 생각, 느낌은 어떤 것인지 누구든 궁금해할 만합니다.

서점도 서점이지만 도시 생활을 접고 구태여 먼 곳으로 이사헸다는 건 특별한 심경의 변화가 있지 않으셨을지... 제목도 "나는 이제 괜찮아지고 있습니다"입니다. 책 표지에 친필로 써 주신 "OOO님, 우리 함께 괜찮아져요"라는 문구를 읽으며, 독자인 나는 어땠으며 지금 어떤가, 안 괜찮은데 혹 모르고 있진 않은가, 이런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런 세상, 정신적으로 어지럽고 물리적으로 심히 오염된 이런 시대를 살며 오롯이 "괜찮은" 분이 그리 많지 않겠다는 생각이 맞지 않을지요.

"요즘 지내는 게 어떠신지요.
마음은 어떠신지요.
생활이 낭만이 아니어도 저는 낭만적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후략)"

p47에는 저런 말이 나오고 그 페이지 앞에는 대략 다음과 같은 사정이 나옵니다. 이사 후 큰 비가 오고 4층 벽이 사라지고 옆집 창고로 내려앉아 2차 피해까지 낳았다는 겁니다. "1층 바닥엔 황토 더미가 가득하고"... 누가 시골 생활이 낭만 가득하다고 하겠습니까. 이런 일을 겪으면 금전적, 물리적 피해는 둘째 치고 정신적 충격이 참 클 듯합니다. 게다가 친구분에게는 누군가가 표절을 해서 큰 상처를 주고... 저자는 여기서 "품위"를 말합니다. 서로가 자신을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고 살면 모두가 상처로부터 조금은 안전해질 텐데...

"사진으로 보는 건 눈으로 보는 것만큼 아름답지 않습니다(p71)" 반대로 눈으로 보는 것보다 사진이 훨씬 아름다울 수도 있는데 이는 찍는 분이 기술이 좋아서겠죠. 저자는 "순간의 느낌"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눈으로 보는 게 훨씬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분명한 것은 안개는 걷힌다는 것이지요. 살면서 안개 속에 갇혔다 싶을 때에는 헤매지 말고 안으로 들어와 나의 일과 마주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p74)." 상처가 정말 크고 방향 감각마저 잃어버릴 때에는 내 일로 복귀하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긴 하더군요. 꼭 그럴 때는 (아예 너무 상처가 커서 아직도 제 정신이 안 돌아왔을 때를 제외하면) 집중도 잘 되긴 했습니다.

"집 앞에 너른 땅이 있습니다. 원래는 논이었던 곳이 농사를 짓지 않자 버드나무가 자랐습니다. 땅주인이 바뀐 뒤 나무를 모두 베어냈는데 여름이 되자 망초꽃이 가득 피어났습니다.(p100)"

이 다음에는 오후에 이웃분이 누드베키아를 들고 찾아오셨다는 말이 나옵니다. 망초꽃이나 누드베키아 모두 독자인 저한테는 낯선 꽃인데 인터넷에 검색을 해 보니 둘 다 화사하기보다는 수수한, 그러나 자태가 확실한 꽃이더군요(제 느낌으로는). Rudbeckia는 400년 전 어느 과학자의 이름을 따 그리 불린다고 합니다. 여튼 앞으로는 저 꽃이 루드베키아구나, 혹시 눈에 띄기라도 하면 반가울 것 같습니다. 그 배경에 바람이 선선히 불어 주면 더욱 더.

작가님의 전작이 <시골책방입니다>인데 어느날 손님이 한 권을 계산하고 나가다가 다른 손님이 마침 들어와 "이 책 강력 추천이에요!"라고 하는 말에 나가다 마시고 한 권을 더 샀다고 합니다. 저는 이 장면도 (상상해 보면) 재미있지만 그 다음 상황, 작가님이 그 막 들어오던 손님에게 "몸 둘 바를 몰라 연신 고마워하는" 모습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구체적인 건 궁금하면 p110 이하에서 직접 확인하십시오)

사실 오랜 동안 안 만나고 지내면, 아니 불과 2~3년만 못 보더라도 나한테 이런저런 일들이 생기면 얼굴 잊는 건 한순간입니다. 사람은 당연히 그대로인데 장소만 확 바뀌어도, 또 도회(불과 본인도 몇 년 전까지 몸 담았던) 출신인 듯 세련된 복장과 분위기로 마주하면 이상하게 (이제)시골의 나는 좀 위축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게다가 그분은 그동안 외국까지 갔다와서 새로운 일까지 시작한 분이니... 여튼 통하는 사이끼리는 깻잎에 싸 먹는 삼겹살(p111)이 제격입니다. 그래서인지(?) 도심 어느 가게라도 깻잎은 꼭 같이 내 주죠. 그 맛 아니까....(?)

"하루를 사는 게 '살아낸다'는 것, 이런저런 일들이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p124)." p4의 프롤로그에도 "살아낸다"는 표현이 나왔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아픈 곳도 많아지고 사실 몸이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사람들, 품위 없는 사람들, 상처 주기 좋아하면서 정작 자기 상처는 못 견뎌하며 더 민폐를 끼치는 사람들, 이런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얻는 정신적 상처가 더 큰 것 같습니다. 몸이 아픈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살아낸다, 안 괜찮다" 이런 느낌을 우리에게 쉴새없이 안기는 건 바로 이런 관계의 상처, 아픔인 것 같습니다.

"너무 아파서 글을 쓸 수 없어요.(p158)" p124에는 너무 아파서 샤워할 힘도 없었다는 어떤 분의 말도 나왔습니다. 물론 뒤의 말은 위경련 관련이었고, 앞의 말은 책방에서 현재 글쓰기 수업을 하시는 저자에게 어느 수강생이 한 것입니다. 상처와 자기 연면에서 비롯한... "나이 들어서 배우는 일은 속도가 빠릅니다." 어찌 들으면 통념과는 상당히 다른데, "절실함이 크고, 그만큼 무르익었기 때문"이라고 하시네요. 그런데 나이 들었다고 다 그리 될 것 같지는 않으며, "절실함이 크고 그만큼 무르익는다"는 게 또 아무나 다 그렇지도 않을 듯합니다. 무르익지까지는 못해도 절실함 하나라도 키울 수 있다면 나이 들어서도 여전한 행복을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난 글씨 쓸 줄 몰라. 좀 이따 글씨 잘 쓰는 사람 올 테니 그 사람더러 쓰라고 하면 돼(p178)." "그런데 여기 사람이 와요? 솔직히 말해 보셔." "어르신들도 오셨잖아요." 사실 어르신들이 목소리는 원래 더 큽니다. 그렇게 목소리를 키우시면 아직 기력이 정정하다는 걸 증명하시는 셈 치는 건데(모르긴 해도요)... 아닌 줄은 서로 다 알면서 모르는 척 해드리는 거죠. "공기 좋지, 책 있지, 커피 있지." 그렇죠. 커피도 있어야 할 듯합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 갈잎만 빼고 딴 것들은 두루 먹는 편이 송충이에게도 좋지 않겠습니까. 참고로 이 시골책방은 여러 행사가 열리고 유명인들도 많이 찾아옵니다(p226, p249 등).

"그냥 너 자신으로 살라고, 모자란 것은 모자란 대로 잘하는 것은 잘하는 대로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p243)." 이 문장은 엄마, 자녀에 관한 한 모든 것을 아는 엄마 이야기 끝에 나온 것입니다. 엄마는 결국 자녀를 (성인으로서) 떠나보내야 하고 자신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자녀와는 사실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는 말이 오래 남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류 모두의 적 - 해적 한 명이 바꿔놓은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
스티븐 존슨 지음, 강주헌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처럼 책이 술술 넘어가는데 읽으면서 이게 소설이 아닌 실제 역사라는 점을 깜빡 잊을 정도였습니다.

한국 영화 중에도 "공공의 적" 같은 제목을 단 작품이 있고 미국에서도 조니 뎁 주연의 <퍼블릭 에너미>가 있었습니다만 대체로 이런 별명이 붙은 가상의, 혹은 실존했던 인물 중에는 이름난 범죄자가 많습니다. "인류 모두의 적"이란 말은 저자만의 규정이 아니라 당시 실제로 이 책의 주인공에 붙여졌던 명칭인데 당시의 문어 국제어였던 라틴어로 "호스티스 후마니 제네리스"였습니다. 호스티스는 유흥업소 접객원이 아니라 "적(敵)"이란 뜻이며 영단어의 hostile이 저 라틴어에 어원을 둡니다. p248에서 저자는 현대판 "인류 모두의 적"으로 오사마 빈 라덴의 예를 듭니다.

육상의 세계는 제도적 권력을 휘두르는 이들이 장악하고 있으니, 제도에 순응할 생각은 적고 야심은 큰 이들이 진출할 곳은 (보는 눈이 없는) 바다뿐입니다. 신체적 능력도 뛰어나고 머리도 잘 돌아가는 걸물들이 바다에서 노략질로 큰 부와 세력을 쌓은, 이른바 해적들의 예는 역사상 무수히 많고 그 중에는 드레이크(이 책에서는 p78에 잠시 지나간 역사 한 대목으로 언급)처럼 마침내 제도권에 한 발을 담그는 데 성공한 자도 있습니다.

영국은 본디 해상 강국의 역사가 길어서 제도권의 해군도 강했지만 그곳 출신 해적들의 발호도 무척 극성스러웠습니다. 이 책은 "17세기에 가장 악명 높았던 해적왕이자, 최초로 전세계적 수배령이 내려진 인물로도 유명한(앞 책날개 中)" 헨리 에브리의 일생을 다뤘습니다.

저자는 "헨리 에브리의 삶이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었다면, 영국의 인도 아대륙 점령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p61)"고 합니다. 와우! 역사에 물론 if는 없다고들 하며(이 책 p242에서도 저자가 자기 입으로 이 비슷한 말을 합니다. 또 p278에서는 "대체역사는 픽션과 구분되지 않는다"고도 하네요), 인도 점령은 근 백 오십 년에 걸쳐 이뤄진 점진적 사건이며 수많은 요인과 우연이 개입한 결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악명 높았던 어느 해적의 행적이 이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은 많은 이들이 쉽사리 떠올리기 힘들지 않겠나 싶습니다. 엄청 재밌어집니다.

잉글랜드는 본래 숨막힐 정도로 수직적인 위계가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어떤 소년이 런던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면 아마 평균적인 수명도 못 채우고 끝까지 비참하게 살다가 생을 마무리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도 않았던 것이, 이 나라에는 바다라는 숨통, 출구, 계급 이동의 사다리가 있었습니다. 마치 천 수백 년전의 로마처럼, 하층민들은 군 입대를 통해 분수에 없던 부를 축적하거나 사회적 인정을 얻을 수 있었죠. 물론 대단히 위험한 일인지라 운 나쁘면 목숨을 잃기도 하고 혹은 크게 다치기도 했습니다.

헨리 에브리는 런던이 아니라 데번셔 출신이지만 여튼 그 과정은 비슷했습니다. 지금도 미국 일부 주에서는 부랑자, 노숙자, 구걸 등을 경찰력으로 단속하는데 에브리가 입대한 과정도 그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추측하는 입장도 있다고 저자는 전합니다(즉 프레스 갱의 "등쌀"에 못이겨서일 수 있다는 거죠). "당시 입대한 초보 수병의 경우 20파운드 미만의 빚이라면 채권자들로부터 보호도 받았다(p26)"라는 구절이 있는데 물론 채권자가 독촉하는 걸 시스템이 보호했다는 뜻입니다.

총명한 생존자 타입인 헨리 에브리는 혹독했던 영국 수병 복무에서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성공적인 군인으로서 어느 정도 입지를 마련했었던 걸로 보입니다. 적자 생존이라는 건 이런 예를 두고 하는 말이죠. "훤칠한 키에 우람한 체구, 잿빛 눈동자의 30대 후반" 당시의 그를 묘사한 기록입니다. 스페인 난파선 인양을 위한 원정에 일등 항해사로 참여한 그는, 아마 자신도 분명히는 몰랐을 어떤 사건을 계기로 일약 잉글랜드 전체, 아니 세계가 주목한 거물이 됩니다. 물론 범죄자로서 말입니다.

선상 반란은 역사상 유명하고 충격적인 사건들이 엄청 많지만 이 찰스 2세호의 사건도 흥미로운 구석이 꽤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이 선상 반란에 특별한 역사적 의미가 담길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p118)"는 게 중론이었겠죠. 투자자나 선원들이 험한 항해에 구태여 몸 담는 이유는 이로부터 큰 이익을 기대해서입니다.

그러나 출항 후 스페인 난파선 인양으로부터 많은 이익을 바라던 전망이 나날이 어두워졌고 임금 체불의 문제가 심각했으며 심지어 선원들이 노예로 팔릴 것 같다는 소문도 돌았습니다. 선장은 자제력과 건강을 동시에 잃어 갔으며 일등 항해사 중 한 명이었던 헨리 에브리는 말단 선원들과 다른 항해사들을 포섭 또는 협박하여 선상 반란을 성공시킵니다. 거사 당일 이미 대세가 기울었던 걸로 봐서 평소에 그가 주변에 각인시킨 리더십이 탁월했던 듯합니다. 그 리더십이 바람직한 방향이었건 아니었건 간에 말입니다.

보통 도적떼들의 무리는 가장 독재적이고 폐쇄적인 상명하복관계가 지배합니다. 미국의 이탈리안 마피아 등도 예외가 아니죠. 정말로 특이한 건, 헨리 에브리가 선상 반란 후에 일종의 미니 헌법을 만들고, 자신의 무리들에 대해 일종의 민주주의 시스템을 적용하여 가장 탈권위적인 의사 결정 구조를 이어나갔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 점으로부터 곧바로 해당 인물의 도덕성이나 탁월함이 증명되는 건 당연히 아니며 해적이 무고한 이들에게 저지른 악행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조직의 효율성 추구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은 듯 보이는 그의 선택에 어떤 상황적, 심리적 배경이 있었는지에 더 관심이 쏠리는 거죠. 책 말미인 p345에 인용되는 찰스 존슨 같은 연구자는 리베르탈리아라는 해적 민주 국가, 지상 낙원의 존재를 주장하며, 이것이 이후 유럽 계몽 사상가들에까지 영향을 끼쳤다는 놀라운 결론마저 제시합니다.

앞서 1부 3장(p50 이하)에는 영국과 한참 떨어진 무굴 제국의 역사 몇 대목이 잠시 소개됩니다. 갑자기 이 이야기가 나오나 하겠으나 헨리 에브리가 저 멀리 인도 아대륙과 엮이는 대목이 있어서입니다. 묘하게도 아우랑제브의 즉위 연도와 헨리 에브리의 탄생년이 서로 같다고 합니다.

1840년대의 아편 전쟁도 사실 영국의 對淸 무역 적자 때문에 발생한 것처럼, 이때로부터 200여년 전 자한기르(타지마할을 지은 샤 자한의 부황)가 다스리던 무굴 제국도 은화를 먹는 블랙홀과 같았습니다. 기본적으로 타 세계보다 경제력이 우월했고, 자급자족이 가능한 거대한 생태계와의 무역에서 서유럽이 이길 가망이 없었죠. 상인들은 원래 독재자와 결탁하기를 좋아하며 자한기르의 시대에는 윌리엄 호킨스가 아대륙 황제의 특별한 호의를 얻어 영국 동인도 회사를 크게 성장시켰습니다. 대외무역 기득권자였던 포르투갈 상인들이 강력 반발했으나 이미 국세가 기울던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었죠.

자한기르, 샤 자한을 이어 아우랑제브가 제위에 올랐는데 이때 동인도회사는 저 야심만만한 군주와 더욱 관계를 다져 독점 무역의 이익을 제고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습니다. 여기에, 동인도회사를 둘러싸고 잉글랜드 내부의 계급 갈등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국왕과 일부 귀족은 동인도회사를 강화하려 했으나 하원은 반대했고 스캔들이 커지자 주가는 폭락했습니다.

한편 선상 반란 후 서아프리카 앞바다의 케이프베르데에 체류하던 에브리는 아프리카 대륙 반바퀴를 빙 돌아 마다가스카르를 거쳐 인도양으로 진입할 생각을 품었습니다. 마치 한니발이나 나폴레옹 등이 험난한 알프스를 넘어 모두의 예상을 깨고 원정을 성공시켜 정복자가 된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모험은 그저 배짱 좋고 체력만 월등하다고 가능한 게 아니라 도중에 전혀 예상 못 하던 난관이 나타났을 때 어떻게 지혜를 발휘하여 이를 돌파하느냐 같은 순발력과 임기응변 대처력이 중요한 겁니다. 예를 들면 좀벌레나 따깨비 등이 선체를 위협할 때 에브리는 뭘 배운 바도 없는 사람이 기지를 발휘하여 기술적 해결책을 마련했습니다. 리더가 이처럼 능력이 있으니 나중에는 덴마크 사략선 패거리마저 "될성부른" 해적 항해에 동참하여 무리가 제법 커지기까지 합니다.

20세기 말 현지 정정 불안을 틈타 "아프리카의 뿔" 소말리아 인근에 해적이 출현했고 한참 후에는 우리 선박들도 피해를 봤죠.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해적이 나올 수 있느냐고들 했지만 책 p176에는 그곳이 예나 지금이나 최적의 사냥터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곳에서 헨리 에브리도 전환점 하나를 마련했습니다. 칭기즈칸이나 티무르는 잔혹한 무력 행사로 상대(다른 유목 부족들)를 복속시켰으나 헨리 에브리는 무슨 수완이었는지 협상을 통해 아덴 만에서 자신보다 훨씬 경력(?)이 오래된 해적들을 제 휘하로 끌여들였습니다. 앞서 선상 반란 때도 그는 가급적이면 피 안 흘리는 작전을 구상했다고 하니, "Blood is a big expense"라는 영화 <대부>의 명대사가 생각도 나네요.

저자는 에브리를 평가하기를 일단 "탁월한 지도력을 갖추었으며" "기존 규칙을 깡그리 무시하기보다는 (자신이 주도하여) 새 행동 규칙을 빨리 마련하고자 하는 편"이었으며 "유동적인 민주 체제의 선장"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인도양에 진입하여 미리 동인도회사에 경고하기를 가급적이면 충돌을 피하자는 메시지를 보냈는데 이는 주적에 집중하고 강한 무력을 지닌 상대를 회유하려는 의도도 있겠으나 여튼 그의 사고가 합리성에 의해 지배됨을 보여 주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티무르 같은 이는 광기의 사내였죠.

이미 선상 반란을 통해 범죄자, 수배자가 된 그였으나 가급적이면 이후 항해에서 "영국의 법"은 어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게 재미있습니다. 앞선 선상 반란은 임금 체불, 선원 인신 매매 시도에 대응한 일종의 정당방위로 (혹시나 영국 법정에 서면) 항변할 생각(p239)이었던 듯도 합니다.

헨리 에브리가 타깃으로 삼은 건 "무슬림 보물선"이었습니다. 무굴제국 역시 외부에서 침입해 온 무슬림 세력이 왕조 개창자였습니다. 상선뿐 아니라 훨씬 역사가 오래된 대상(카라반)도 누구 못지않은 무장 집단이었으므로 어설픈 해적질은 오히려 나 좀 죽여달라는 자폭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앞서 에브리에 자진 투항한 토마스 튜 같은 해적은 전투(에브리는 모르고 불참)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튜를 죽인 "보물선"은 얼마 후 에브리에게 포획당합니다.

에브리는 그에 만족하지 않고 오래 전부터 점찍어 둔 건스웨이 호를 마침내 대파하여 막대한 부를 거머쥡니다. 건스웨이는 이름이 서유럽에 그리 알려졌을 뿐 아우랑제브 황제가 직접 관할하는 배수량 1500톤의 엄청나게 큰 상선이었으며 정식 명칭은 "간지-이-사와이"였습니다.

아무튼 이런 일이 생기자 아우랑제브는 대체 동인도회사에 독점권을 줄 이유가 무엇인지 회의할 법도 했으며(p231에 "이는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신성 모독"이란 말이 나옵니다. 아우랑제브는 처음에 동인도회사와 영국 해적들을 구별할 필요를 못 느꼈다고도 합니다), 한편으로 영국 본토에서는 특히 토착 양모 기업들이 인도산 수입품과 경쟁해야 했으므로 (주가 조작 스캔들을 떠나서도) 이 동인도회사를 좋게 볼 이유가 없었습니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국내외에서 모두 위협을 맞은 셈이었이며 따라서 저 헨리 에브리라는 해적을 반드시 절멸(p241:16)해야만 했습니다.

저자는 필립 스턴의 말을 인용하며, 우리가 중학교 교과서에서 배워서 알듯 1757년에 클라이브가 프랑스와 한판 붙은 플라시 전투에서 이긴 후 동인도회사가 이른바 "자주권"을 획득했다기보다, 그보다 60여년 앞선 지금 이 시점(혹은 그보다 이전)에 이미 반(半) 국가처럼 행동했다고 합니다. 여튼 이제 동인도회사는 회사 존립을 걸고 해적을 찾아 약탈물을 회수하며 범죄자를 심판하고 재발을 방지할 숙명을 지게 되었습니다.

한편 건스웨이를 털어먹고 크게 한몫을 챙긴 에브리는 신대륙(아직은 영국의 식민지였던)까지 가서 일부 현금화를 하고 대담하게도 아일랜드까지 와서 나머지 일을 마쳤다고 합니다. 책에서는 이를 두고 "가장 험난한 신혼여행(p283)"이라 말하는데 건스웨이의 전리품 중에는 아우랑제브의 손녀도 있었고 평소 궁중의 풍습에 불만이 적지 않았던 그녀를 에브리가 신부로 맞이했기 때문입니다(이에 대해서는 p345 이하에서 저자가 전혀 다른 가정, 예를 들면해적들에 의한 윤간이나 이후 病死 등 다른 전개들도 제시합니다). 에브리의 부하들도 큰 부를 바탕으로 신대륙 나소에서 현지의 여인들과 맺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저자는 이를 두고 해당 지역의 인구 분포에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고까지 합니다.

에브리의 이야기는 영국 본토에 시가, 이야기 등의 형식으로 널리 알려졌는데 p138, p292 등에 자세히 나옵니다. 이런 낭만적 과장과 윤색은 대중 사이에서 에브리의 인기를 비정상적으로 높였으며, 이를 우려한 영국 정부는 해적행위를 해사(범죄)법정에서 관습법법정으로 관할 이전하는 법개정을 단행합니다. 일단 해적들 중 일부(에브리는 붙잡히지 않았지만)는 해적행위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다시 선상반란으로 기소되어 결국 처형됩니다. 이 법정다툼은 약간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제30장에 재미있게 묘사되며 저 앞 p91의 "다섯 명의 선원은 해적 처형장에서 교수형이 처해지며 참혹한 운명을 맞이했다"는 기술은 사실 그 죄목이 선상반란이었던 거죠. 제31장(p327 이하)에 처형 관련 서술이 자세히 나옵니다.

아무튼 이 사건을 계기로 특히 18세기에 해적 이야기는 문예, 연극에서 가장 인기 있는 주제가 되었으며 동인도 회사는 "새로이 얻은 권한을 바탕으로 결국 인도 아대륙을 지배하게 되었다(p339)"고 합니다. p61에서 처음 독자에게 던진 규정이 여기서 그 분명한 의미를 드러내는 거죠.

큰 재산을 챙긴 헨리 에브리는 끝내 종적이 묘연해졌으나 영국 정부도 죄목을 바꿨을망정 해적들을 처단하여 국제 사회에 반(反) 해적 스탠스를 명확히하여 이미지를 개선했고 동인도회사는 저자의 규정대로 그 세력을 더 키웠으니 손녀(와 재화)를 뺏긴 아우랑제브만 제외하고 모두가 승자가 된 셈입니다. 책에는 호메로스부터 페르낭 브로델까지 다양한 전거가 인용되는 등 학문적 바탕도 충실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