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기 인간관계론 (반양장)
데일 카네기 지음, 최염순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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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금의 가치를 지닌 생각도, 효과적인 화술을 통해 상대에게 전달하지 못하면 그런 고귀하고 유용한 생각이란 처움부터 부재(不在)함만 못합니다. 현대는 바야흐로 소통의 시대라고 하나, 이미 이 시절부터 데일 카네기는 그 소통의 비중과 가치를 인식하고 이를 대중에게 깨우치려고 했던 거죠.

총 15장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각 챕터가 모두 실용적이고 효과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으며, 실전에서 잠시라도 잊어선 안 될 교훈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크게 보면, "개인 사이의 대화(물론 비즈니스 상대일 수가 많습니다)"와, "대중을 상대로 한 강연, 연설", 이 둘로 크게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전자는 경제 활동을 하는 이에게 필수적 생존 스킬이며, 후자는 사람에 따라 큰 필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꼭 직업적으로 많은 이들 앞에 나서야 하지 않더라도, 예컨대 회사에서 높은 분들을 상대로 PT를 할 때에도, 이 책에 나와 있는 원칙들은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아니, 잊어선 안 될 원칙들이 전부라고 해도 됩니다.

데일 카네기는 링컨의 사례를 여러 군데에서, 거의 쉼 없이 인용하고 예거합니다. 그만큼 링컨이라는 인물의 자취가, 데일 카네기라는 이 저자, 그리고 그의 동시대인들에게 영향을 끼친 바가 컸다는 뜻입니다. 링컨은 이 셋째 권, <성공대화론>에서도 예외 없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그는 일단 메모를 중시하는, 몸에 밴 습관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사전(事前)의 준비란 누구에게도, 또 어떤 목표를 위해서도 필수로 요구되는 과정입니다. 즉흥의 연기, 수행이 언제라도 가능한 사람은 천재이겠으나, 그런 사람은 애초에 극히 그 수가 드뭅니다. 아무리 능수능란한 사람이라 해도 사전의 준비는 필요합니다. 메모는 이 연설에 있어 사전준비의 필수 요소였습니다.

그런데 메모만 평소에 열심히해 둔다고 반드시 실전 상황에서 훌륭한 수행이 보장될까요? 링컨은 평소에, 즉 실전에 임박해서가 아니라 평소부터 자신의 생각과 관점을 정리하고 다듬는 습관이 몸에 밴 사람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준비된 연설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 역시, 이런 그의 깊이 사색된 상념과, 이를 타인에게 정확하고도 간곡히 전달하려는 그의 성심 성의가 반영된 결과물이었습니다.

이 제3권이 아닌, 다음 편 제4권에 나오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이들 교과서에서까지 필수로 공부하게 하는 명문 중 명문인 이 게티스버그 연설이, 과연 당대, 아니 게티스버그 싸움터 바로 그 현장에서, 연설 당일의 청중들에게 얼마나 큰 호응을 받았을까요? 데일 카네기가 전해듣고 연구한 바로는, 요즘 말로 "분위기가 싸해지는" 실패작이었다고 합니다. 왜인가? 당대의 일반적 관행이었던 긴 길이의 상투적 표현 가득한, 기독교적 훈계와 엄숙함으로 가득한 연설이 아니고, 담백하고 짧은 내용이었기 때문이죠. 당시 청중들의 기준으로는 "뭐 저런 성의 없는 연설이 다 있어?" 정도였을 겁니다.

이 사실은, "효과적이고 감동적인 소통"의 실천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 잘 증명해 주는 일화라고도 하겠습니다. 나의 진심과 깊은 고민을 가득 담았는데, 막상 그 현장에 모인 이들에게는 별 공감을 자아내지 못했다면, 그것은 그저 실패작으로 비난받아야 할까요? 데일 카네기는 이애 대해, 우리 식으로 말하면 "진인사 대천명" 정도의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최선을 다했으니 그만"이라는 자기만족적 합리화는 아닙니다. 정당한 노력을 투입하고 나의 진실성을 담은 소통은, 당대 아니면 후대에라도 올바른 평가를 받는다는, 그만의 긍정적, 실용적 가치 중시의 견해에 결론적으로 부합한다 하겠습니다. 이 책에는 2장, 10장 등 여러 곳에서 이 링컨의 사례가 원용되고 있습니다.

자신감이 언제나 중요한 요소입니다. 왜 타인 앞에서 분명한 자기 의사를 전달하는 데에 실패하는가? 로이드 조지와 같은 명연설가도, 정치 초년생 시절, 비유적 표현이 아닌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혀가 입천장에 붙어 떨어지지 않아" 연설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반대로, 일단 혀가 풀리고 분위기에 적응하면, "하던 연설을 중단하느니 차라리 총을 맞겠다" 고 할 정도로, 대규모 청중 앞에서 자기 말을 열심히 전달하는 경험은 마약처럼 매혹적이라고 합니다. 시작이 반인 셈인데, 그 시작을 상쾌하게 떼기가 그 무엇보다 어렵습니다. 데일 카네기는 "심사 숙고가 자신감을 만들고, 자신감이야말로 멋진 소통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결론냅니다.

인간관계의 기본 원칙이 이 연설과 대화에도 적용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라." 왜 청중들이 연사의 말에 하품을 하고, 떨떠름한 표정을 짓거나 주의를 흐뜨릴까요? 그것은, 연단에 올라서서 열심히 무엇인가를 말하는 이가, 자신들의 관심사와는 전혀 무관한 주제를 갖고 자기만의 소통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청중을 매혹하려면, 청중이 가장 관심있어 하는 주제와 소재를 정면으로 부각하고 다뤄야 합니다. 좋지 않은 사례이긴 하나, 히틀러 같은 자가 독일 국민들을 그토록 매혹한 것도, 그들의 좌절에서 비롯한 불건강한 욕구와 갈망을 정확히 꿰뚫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앞서 예로 든 링컨의 연설도, 당시 기준으론 너무 짧다는 이유만으로 현장의 청중에게 반감과 실망을 유발했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말할 것도 없고, 시대를 관통하는 청중의 욕구란 "길지 않고 요령 있는 연설"이라는 게 카네기의 주장입니다. 흥미롭게도 카네기는 사도 바울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1장에서 그는 성공적인 소통의 예로 예수의 산상 수훈을 거론하기도 하는데, 물론 그가 종교적 인물이라서가 아니라 당대 독자에게 가장 쉬운 예시를 들려는 의도였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때로 독설가의 면모를 보이는 사람이었는데, "당신의 가르침이 생소하니 우리에게 설명을 해달라"는 대중의 요구에 그가 "당신들은 미신적입니다."라며 대뜸 면박부터 주고 시작했던 행적을 이야기합니다.

이는 데일 카네기의 원칙에 부합하는 행동은 아닙니다. 그의 가르침은 언제나 "상대방의 감정과 자존을 공연히, 아니 어떤 경우에도, 자극하지 말라"는 걸 상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이 행동은, "짧게, 현대 단위로 2분 정도의 시간 안에 연설을 끝냈다"는 장점 때문에,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었습니다. 물론 그의 가르침에 야유를 보내는 이들도 있었으나, 짧은 시간 덕에 청중들은 주의를 최대한 집중할 수 있었고, "그게 다는 아닐 터이니, 당신의 다음 가르침은 무엇인가?" 라는 일종의 앵콜 요청을 받을 수 있었다는 거죠.

이로 미루어 볼 때, 대화와 소통, 그리고 강연의 요체는, 상대와의 공감과 소통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이 왜 대화에 약한가? 상대의 마음과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어떤 이들은 성공하는가? 그는 상대의 감정을 정확히 포착해 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이성이다 원칙이다 합리성이다를 냉정히 내세우기 전, 상대방의 감정이란 요소를 먼저 생각하고 고려해 보라"라는, 데일 카네기의 일관된 원칙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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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관리실무 - 제13판
이유춘 지음 / 한국금융연수원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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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요소는 이미 투자에서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자리한지 오래입니다. 아무리 기준금리가 차이 나도 환전 수수료 부담이 크면 쉽사리 외국 상품에 돈을 묻어둘 마음이 얀 생기는 게 현실이죠. 수백 년 전 데이비드 리카도는 생리적으로 자본은 국경을 넘지 않으려 든다는 현실적 진단 하에 그의 이상 모델을 전개하긴 했고 당시의 제약 조건이 많이 허물어졌다고는 하나 투자의 국경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자유롭고 합리적인 선택을 가로막습니다.

여튼 지금은 다국적 초국적 기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며 적어도 기업의 재무관리에선 환율 팩터를 심각하게 고려해야만 합니다. 재무제표에 표시되는 통화는 여러 기준으로 번거롭게 표기하는 것을 가급적이면 피해야 하며 이른바 "기능통화"가 무엇인지 먼저 정한 후에 모든 자료를 작성해야 합니다. 여기서 "외화"는 기능 통화 외의 모든 통화를 가리키고, 이 외화들은 기능통화로 환산이 된 채 표기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회계에서는 "기능통화와 외화 사이의 교환 비율"이란 말로 "환율"의 새로운 정의가 가능한데 물론 이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아는 뜻과 다르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회계사건의 인식은 그 기준 시점을 뭘로 잡을지가 무척 중요합니다. 더군다나 환율은 수시로 변하지 않습니까? 일자가 정해져도 종가, 시가 중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지는 중요한 문제인데 과연 여러 기간에 걸쳐 있는 사건에다 어떤 일자의 환율을 적용할지부터 먼저 결정되어야만 하겠죠. 국제회계기준에서는 "해당 거래 요건을 최초 충족하는 시점의 현물환율"이라고 이를 규정합니다. 현물환율이라야 하며 어떤 스왑 협정이나 파생상품의 사정이 아니라는 게 중요합니다.

"기능통화"라 함은 해당 기업의 영업활동에 가장 주된 위상으로 쓰이는 통화이며, 재무제표에 표시되는 통화는 "표시통화"라고 부릅니다. 실무에서 여러 단위의 통화가 적힌 예는 종종 보는 편인데, 국제회계기준은 "표시통화는 기능통화로 환산되어야 함"을 원칙으로 표명합니다. "최초 인식"은, 예를 들어 도착지 인도 조건 수입이라고 하면, 항구에 그 물품이 도착한 일자의 환율을 적용하라는 뜻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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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 투자론
유진 지음 / 비즈프레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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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을 본인이 지닌 종잣돈만으로 꾸려갈 수 있다면 좋겠으나 그런 좋은 조건을 지닌 처지는 극히 드물 뿐더러 개인 범위에서만으로도 커버 가능한 사업이라면 이미 사업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영세 프로젝트일 뿐입니다. 오히려 현대 사회는 유망한 사업일수록 공개리에 자본, 투자자를 모집하여 규모를 키울수록 그것이 일종의 능력으로 인정 받는 추세죠. 물론 이런 제도상의 허점을 악용하여 다중으로부터 돈만 끌어모으고 종적을 감추는 악질도 있긴 합니다만, 여튼 이런 것도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느 정도는 룰의 일부, 체계적 위험의 일종으로 보고 현명하게 대처해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이 자본을 형성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회사의 지분 일부를 나눠주며 "주인"이 되라고 권하는 "주식의 공모"입니다. 다른 하나는 오너십과는 무관하게 대여금에 대한 (바교적 높은) 보상을 약속하며 채권자를 모으는 방식인데 이것을 사채라고 부릅니다. 사채는 서민이나 영세 자영업자를 괴롭히는 일부 악덕업자의 업종처럼 "私債"가 아니라, 회사가 발행한(채무자 입장의) "社債"라고 씁니다. 이 둘은 발음만 같을 뿐 전혀 성격이 다른데도 社債라고 하면 대뜸 사채(私債)업자부터 떠올리는 무식한 인간들도 있긴 합니다.

주식의 전형은 보통주이며, 전환사채라고 하면 처음에는 사채 신분이었으나 일정 요건 하에 이를 "보통주"로 바꿀 수 있는 증권을 말합니다. 사채, 주식, 전환사채 모두 이를 투자자의 입장에서 포트폴리오의 일종으로 구성할 수 있으므로(혹은, 금융기관에서 그리 구성하여 판매할 수 있으므로) 이를 모두 "금융상품"의 일종으로 보기도 합니다. 주식은 다른 말로 "지분상품"이라고 하는데, 회계 계정상으로는 이를 "자본"으로 봅니다. 반면 사채는 회계에서 "부채"로 다루며, 부채의 "채"와 사채의 "채"는 한자가 같습니다.

전환사채는 그래서 계정상 자본이기도 하고 부채이기도 한 복합적 성격을 띱니다. 혹시 전환사채가 만기까지 결국 보통주로 전환되지 않고 채권자가 그대로 채권 행사를 한다면, 회사에서는 그에게 "상환할증금"도 지급하여야 합니다. 이는 일반적인 부채가 처리되는 과정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렇기에, 이런 전환사채는 아예 발행시부터 부채요소와 자본요소를 분리하여 인식하여야 하며, 전환사채의 회계 처리가 다른 거래사건과 달리 복잡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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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사회, 조직활력을 어떻게 높일까 - K-매니지먼트 3.0
이경묵 외 지음 / 클라우드나인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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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부터 한국 직장에도 연공 서열, 직제에 얽매이지 않는 일종의 "계급 파괴" 바람이 불었습니다. "OO부 XX과"라는 소속 대신, "∆∆ 팀"과 같은 성과 위주의 유닛이 일상화되었죠. 심지어는 공식 직제가 큰 의미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팀제나 다름 없는 구조였던 중소기업이나 영업팀 같은 곳에서도 (그 실질이야 어찌되었던 이름만이라도) 이를 따라했습니다. 이런 트렌드에서 완전히 무풍지대일 것 같은 공무원 사회, 공기업에서도 현재는 "태스크 포스"제를 흔히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팀 개념"은 자유로운 개인을 기본 단위로 하는 서구 사회에서 그 효용이 극대화할 수 있는 제도지만, 한국이나 일본 같은 유교, 농경사회적 전통을 보유한 곳에서 오히려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면도 있습니다.

본디 서양은 "슈퍼맨"을 지향하면 했지, 집단에 개인을 매몰하는 문화는 기피하는 편입니다. 그런데도 막상 팀을 짜서 일하면, 동양인들(공, 사 불문)보다 더 높은 효율을 내곤 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의 성향이 "팀 활동"에 맞아서가 아니라, "팀"을 잘 짜고 잘 굴러가게 하는 방법을 깨우쳤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런 "팀" 중에서도,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임무(여기에는, 개인 단위로는 아예 성취가 불가능한 것도 포함됩니다), 도무지 달성이 불가능한 높은 실적을 올리는 "드림팀, 슈퍼팀"이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드림팀이 슈퍼팀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모든 드림팀이 다 슈퍼팀이 되는 건 아닙니다. 슈퍼팀은커녕, 평범한 팀보다도 못한 성과를 내고 온갖 비난을 다 받는 드림팀도 많았습니다. 이렇다면, 구성원의 능력이 탁월하다고 해서 그들로 이뤄진 "팀"까지 잘하란 보장은 없다고도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불가능한 일, 최소한 남들이 전혀 바라보지도 못했던 일을 해 내는 팀은 어떤 비결을 가지고 있을까? 이 책은 그에 대한 일반적인 답을 내기보다, 최근에 존재했던 슈퍼팀의 성공 사례 7가지를 제시함으로써, 독자가 자신의 상황에 응용할 수 있는 답안의 pool을 제공합니다. 각 챕터는 "슈퍼팀" 하나씩을, 경영 분야뿐 아니라 군사, 대중문화, 스포츠 경기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선택하여 그 구체적인 성과의 경위를 자세히 풀어주고 있으며, 챕터 말미에는 이로부터 추출할 수 있는 교훈을 명제 형식으로 정리합니다.

첫째 장에는 픽사의 사례가 나옵니다. 제 생각에는, 첫째 장에서 굳이 이들을 다룬 데에는 저자의 분명한 동기가 존재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픽사의 예에서 우리가 반드시 살펴야 할 것은, "대체 왜 팀이 필요한가"하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공동의 목적이 없다, 팀을 꾸려서까지 이뤄야 하는 열정의 대상이 없다면, 처음부터 팀제를 검토해야 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죠. 또한, 활동 영역이 아무래도 예술 분야다 보니, 영화를 위해 일을 하느냐(-돈을 버느냐), 그 반대로 돈을 벌기 위해 애니메이션을 만드느냐 같은 기초 인식에서 혼란이 올 수 있습니다. 이 "팀 픽사"의 예에서 금전적 보상은, 빼어난 개인의 동기 유발을 위한 하나의 장치에 불과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뒤 챕터들에서도 나오는 포인트이지만, 너무 단결이 잘 되고 대외적으로 순조롭기만 한 팀도 지속성 이슈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적절한 긴장감은 팀의 건강성 면에서 오히려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테니스에 데이비스 컵이 있다면, 골프에서 국가(미국 대 유럽의 형식입니다만) 대항전으로는 라이더 컵이 있습니다. 그런데 테니스에는 복식이라는 형식도 있지만, 골프에서는 압도적으로 개인 단위의 시합이 주류 포맷입니다. 게다가, 골프는 그 어느 스포츠보다 개인 멘탈 조절의 비중이 승부에 큰 영향을 미치며, 이로 인해 직업 골퍼들은 극도로 예민한 감정적 성향을 보입니다. 이런 골퍼들로 한 팀을 꾸린다면, 팀웍이니 매니지먼트니 하는 게 타 종목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렵게 꼬입니다. 그런 면에서 콜린 몽고메리가 중심이 되어  2010년 라이더 컵 대회를 위해 결성했고, 결승전에서 미국 팀을 맞아 극적인 승리를 거둔 사례는, 경영학적 측면에서도 여러 시사점을 줍니다. 우리가 지금 피파 월드컵을 보면서도 알 수 있지만, 개인기가 능숙하다고 반드시 팀에 적시적소의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며, 단 한 번의 슛으로 팀의 운명을 좌우하는 승부차기를 잘 해내는 것도 아닙니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선수들로 이뤄진 팀일수록, 그에는 강력한 리더십이 요구됩니다. 콜린 몽고메리는 그 자신이 필드 멘털의 달인이었고, 이런 체험과 소신, 강렬한 스타일로, 상대에 비해 그닥 강하다고 할 수 없는 전력으로 승리했습니다. 특히 그가 타이거 우즈에 대해 코멘트한 걸 눈여겨 볼 필요가 있더군요.

전쟁은 개인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전쟁이 꼭 필요하다는 게 아니라, 이미 터진 전쟁이라면 그냥 손 놓고 패배하는 게 최상의 선택이 결코 아니라는 점에서, 전쟁의 "승리"는 필요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이라도, 한 명(혹은 소수)의 힘으로 수행할 수 없는 게 전쟁이요, 평화시에는 이 전쟁의 축소판이 될 수 있는 게 범죄자 소탕, 폭력 진압, 인질범으로부터 인질 구조 같은 작전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세번째로 다룬 게, 1980년 주영(駐英) 이란 대사관에서 이란 내 쿠제스탄 분리주의(이란은 다민족 국가이므로 이런 위험이 상존합니다)자들의 인질극이었습니다. 여기서 영국 툭수부대 SAS는, 놀라운 능률과 과감한 작전, 치밀한 계획으로 인명 손실 0에 가까운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SAS는 영국군 뿐 아니라 전세계 군사조직 중 최고의 명예를 상기시키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시사하는 교훈은 강렬했는데요. 최고의 팀은 결코 개인의 개성을 죽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잘난척하고 누구와도 비길 수 없는 탁월한 재능을 과시하고, 더 날카롭게 갈고 다듬을 것으로 조장됩니다. 그러면 과연 팀이 유지가 될까? 이 스쿼드는, 워낙 빼어난 개인들이 모였기 때문에, 스킬이나 체력만으로는 분명한 우열이 안 갈라집니다(구테여 가를 필요가 있다면 말이죠). 따라서, 조직원으로서 추앙받을 수 있는 기준은, 같은 동작을 수행해도 그 동작이 가능하면 팀을 위한 것으로 선택할 수 있느냐입니다. 잘하는 건 누구나 다 잘합니다. 더 잘하는 팀원은, 같은 노력을 들여도 팀의 다른 구성원이 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선택한다는 점을, 우리는 이 사례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팀 때문에 개인을 죽이는 우를, 이 슈퍼팀은 결코 저지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한국의 많은 "엉터리 팀"은, 무능한 팀원을 피곤하게 만드는 우수 팀원을 기를 쓰고 끌어내리려고만 들기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우수한 팀은 결코 개인을 죽이지 않습니다.

그룹 롤링 스톤스는 비틀즈와 대조되는 컬러로도 유명하지만, (그 음악적 성취의 레벨은 별론으로 하고) 비틀즈와는 달리 지금까지도 멤버가 거의 다 살아 있으며, 개인 단위로 활동하기보다(이 정도 나이면 팀은 고사하고 개인 단위 활동도 어렵습니다. 물론 롤링스톤스의 이 빼어난 멤버들은 개인 활동도 합니다) 여전히 팀을 이루다시피 한다는 점에서 놀랍습니다. 더군다나, 뮤지션들이야말로 세상과 융화를 못 이루는 가장 극단적인 개인주의자들임을 고려하면 경이로운 일이죠. 우리가 잘 알지만 믹 재거니 키스 리처즈니 하는 사람들이 인간성은 또 좀 괴팍한 사람들입니까. 그런데도 무려 반 세기를 잘 "굴러 온" 비결이 과연 무엇인가? 실제로 이 책에 나온 바로도, 믹과 키스는 불과 얼음이라 할 만큼 상극이었더군요. 여기서도 알 수 있는 게,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 제 스타일대로 하게 내버려 두는 게 하나의 요령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은근히 강조한 건, 로니(론) 우드의 조정자 역할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개성이 내 개성과 실제로 충돌만 안 한다면, 그냥 보기 싫다는 이유로 태클을 걸지는 않는다는 게, 이 무지막지한 개성이 모인 팀이 그리 오래도록 굴러간 비결이라는 거죠. 이 챕터는 "공연은 열심히 하는데 돈을 못 버는" 초기의 실패에서 시행 착오를 거쳐, "인기와 공연 성공을 고스란히 수입으로 연결시키는" "사업 단위로서의 롤링스톤스"가 커 나가는 모습도 알려 줍니다(이 책의 주제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흥미로운 대목).

요즘 잠잠한 동네가 있습니다(더 시끄러워진 우크라이나, 이라크 같은 데도 있지만). 바로 북아일랜드입니다. 요즘 "신페인당"이니 IRA니 하는 말은 아예 뉴스에 안 나옵니다. 이유는 바로 지난 세기말, 벨파스트 협정(=굿 프라이데이 협정)이 잘 체결되어, 더 이상 싸우지 않고 평화로운 공존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 백년(최소한으로 잡아서요) 불구대천지 원수들이 이런 극적인 화해에 다다를 수 있었을까요? 토니 블레어 행정부가 구사한 전략은 1) 상대를 악마적인 모습으로 만드는 일을 중단 2) 그 자리에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이미지를 대신 채움 3) 같은 자리에 나란히 앉되, 억지 화해가 아닌, 대립하는 현실의 긴박함도 상기하게 함 등의 모범적 수순이었습니다. 원칙은 알아도 실천이 어려운데, 토니 블레어 팀은 분리주의와 연방주의 세력 대표자들을 한 데 모아, 이들을 "평화'라는 공통 목표를 추구하는 "팀"으로 새로 만들었습니다. 팀은 이처럼, 종래의 피아 구분을 극복하는 인식상의 도약을 이루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도 배울 수 있는 바는, 억지로 개성을 누르는 선택은 필패로 이끌어진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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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Brexit) 본질, 위기, 유망산업 보고서
비피기술거래 편집부 엮음 / 비피기술거래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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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죠. 사실 돈은 거짓말도 안 할 뿐 아니라 오판도 하지 않습니다. 물론 개인의 돈은 잦은 실수를 범하지만, 간절히 이익을 바라는 마음과 마음들이 합쳐진 대세는 대개 미래를 정확히 맞힐 뿐 아니라, 심지어 미래를 형성하기까지 합니다. 브렉시트가 언론과 학계의 (희망섞인) 바람을 정면으로 배반하고 국민투표에서 가결되었을 때 시장은 처음엔 혼란상을 보였지만, 이후 차차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이는 시장(곧 "돈")이 바라본 미래가 그리 불안정하거나 비관적이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후 브렉시트 변수는 그보다 큰 폭으로 장을 흔든 다른 사건들과 뒤섞여 무엇이 그 순수한 효과인지 알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는데, 여기서부터는 전문가의 진단이 필요하죠. 그것도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사실 다른 배경색 때문에 혼란이 유발되는 불리한 점 없이 "그것만의 순작용"을 캐치하려면 초기에 정밀한 관측을 반드시 해 내야만 합니다. 조명진 박사님의 이 책은 그런 관측자들, 혹은 이후에라도 대세를 정확히 추적하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좋은 지침을 마련해 줍니다.

 

작금의 세계적 대세는 globalization이 아닌, (책의 표현대로) 국수주의 유사의 어떤 것입니다. 딱히 국수주의라고 규정하기도 어려운 게, 일단 흐름을 이끄는 지도자가 분명하지도 않고, 적극적으로 무엇을 주장하기보단 현재의 대세에 저항하는 "소극적"인 흐름이며, 결정적으로 이런 움직임이 그리 장기적인 추동력을 가질 것 같지 않다는 이유에서입니다(물론 어디까지나 희망섞인 추측이지만). globalization이 불과 20년전만 해도 세계의 미래를 완전히 결정지을 거역할 수 없는 대세로 여겨졌는데 이처럼 가까운 시점에서 커다란 장애물을 맞을 줄은 아무도 예상 못 했을 겁니다. 아직도 학부 교과서(분야 불문)는 globalization을 대전제로 삼고 각론을 전개해 나갑니다. 이제 어린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까지 수정이 이뤄져야 할 국면일까요? "브렉시트"는 그 자체로 의미심장한 사건이라기보다, 향후 이를 계기로 전체의 국면이 완전히 바꿔질지 그 상징성을 놓고 붙는 타이틀에 불과합니다. 이 책도 그런 분석과 예측이 내용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유럽의 통합은 원래 보수당(영국의 그 정당뿐 아니라 각국의 우파를 대변하는)에서 주도하던 것입니다. 미국이 단일 시장, 거대 영토, 축적된 자본으로 세계의 패권을 쥐어 가자, 자신들도 종래의 각개 약진상을 유지해서는 가까운 미래에 도태되리라는 절박감이, 특정 산업의 효율화(석탄, 철강 기반)라든가 "단일 시장의 형성"을 일단 목표로 만들기 시작했었죠. 노동과 자본을 싼 값에 이용하려면 이런 자본가측의 단일 대오 형성이 시급한 과제였고, 분명한 전망을 할 수 없었던 노동자측은 이에 저항하는 게 당연한 반응이었습니다(현 영국 노동당 당수 코빈 같은 사람). 그러던 게 주로 수정주의자, 혹은 지식인 좌파를 중심으로 "차별 없고 국경 없는 연대와 평화"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었고, 일정한 정책적 양보 끝에 우파가 노선 일부를 수정함으로써 양측이 합의에 도달, 항구적인 동력을 얻기에 이르렀죠.

 

좌우 양쪽이 공감하는 정책이 왜 이런 저항을 맞고 있는가? 저자는 명쾌하게 두 가지 논점을 듭니다. 하나는 이민자 감소, 다른 하나는 알지도 못하는 먼 곳에 사무실을 두고 결정을 내리는 관료제에 대한 반발입니다. "이민자 감소"같은 이슈가 이 소동의 중심에 선 걸로 보아 현재의 움직임이 어떤 이념적 기반까지를 지닌 건 아닌 게 확실하며, 이 때문에 "포퓰리즘" 같은 일시적 변덕이나 집단 감정 표출 정도로 격하하는 쪽도 있는 것입니다. EU 출범의 목표 중 하나가 단일 노동 시장 형성을 통해 인건비를 절감하자는 쪽에 분명히 있었던 만큼, 이제 국경 철폐가 명백한 현실로 다가온 지금 특히 노동자층이 가부간에 분명히 무슨 의사표시를 할지가 표면화되었을 뿐입니다. 그들은 "노"를 투표로 표명했고, 아직까지는 개별 국민들의 의사를 존중해야 할 체제의 룰에 비추어 이는 존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관련 명백한 "임기응변"식 대응을 현재까지는 보이는 트럼프도, 자신을 찍은 자국의 개별 노동자들의 "긴급하고 당면한" 요구에 부응하는 모습이 분명해 보입니다. 미국 역시 이주 노동자 문제 때문에 심각하게 골치를 앓는데, 이는 멕시코와의 엄존하는 국경이 아직 철폐되지 않았는데도(nafta는 장기적으로 이를 추구합니다) 불법으로 국경을 넘는 라틴인들 때문에 촉발되었고, 하루이틀 지속된 문제가 아닌 만큼 단칼에 해결되기는 매우 어려우며 무엇보다 미국의 자본가들이 이를 암암리에 반기고 있습니다.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재닛 리노가 불법이민자 여성을 베이비시터로 고용한 데서 크게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듯, 이미 뚜렷한 현실을 형성한 "불법"을 마냥 방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대거 추방이나 방벽 건설(그것도 상대국 부담)으로 밀어붙이기도 매우 어려운 현실입니다. "브렉시트"와 직접 관계가 없는 미국의 사정도 현재 이런 판입니다.

 

미국은 불법이민자를 국외로 추방하고, 영국은 "국민의 뜻에 따른 이혼"을 감행하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요? "브렉시트"로 촉발된 국수주의가 지속성을 못 가지는 이유는, 이런 일시적 과거회귀 움직임이 더 많은 사회 문제, 경제난을 낳을 수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영국은 거대 시장에서 고립된 후 과연 누구와 경제 파트너십을 새로 쌓아야 할까요? 해가 지지 않던 식민 영토도 다 잃은 판에 말입니다. 영국산 물품에만 관세가 높이 붙으면 어느 나라에서 이들 상품을 사 주겠으며, 보복으로 관세 장벽을 높인들 고충을 겪는 건 자국 노동자층입니다. 결정적으로 심각한 건 기업들이 아예 EU로 본거지를 옮기려 드는 경우입니다. 트럼프처럼 일일이 정치인들이 나서서 딴지를 걸거나 협박을 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저자께서는 달러의 장래가 불투명하므로, 향후 강세를 보일 전망이 있는 타국의 통화로 품목을 분산한 투자 전략을 짜는 게 중요하다고 합니다.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때 금값이 등귀하고 시장이 혼란스런 움직임을 보였을 때 전문가들이 내놓은 조언과 비슷한 내용입니다. 게다가 저자는 EU의 약화가 곧 NATO의 약화로 이어져,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 전체에서 중국의 패권국 역할이 커질 것으로 전망합니다. 이렇다면 외환 품목 다변화의 요구가 무엇을 암시하는지는 비교적 명확히 드러나죠. 중요한 건 한 가지 노선에 고지식하게 얽매일 게 아니라, 수시로 급변하는 세계 정세를 잘 살펴 현명하고도 정확히, 빠르게 대응하는 융통성이라는 게 저자의 충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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