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의 마음처방전 : 행동 - 천방지축 아이를 위한 행동처방전 오은영의 마음처방전
오은영 지음 / 웅진리빙하우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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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가 시대만 좀 잘 만났으면 아주 돈방석에 앉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요즘입니다^^ 하긴 이처럼 각양각색의 컨텐츠에 자기 이름이 인용되는 것도 엄청난 영예이며, 그게 다 자기 인생을 치열히 산 공정한 대가를 사후에나마 받는 중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평가도 이미 무덤 속에 누워 백골이 진토된 고인의 넋이 어찌 알겠으며, 다 세상 이치가 바르고 고르게 마련이라고 애써 생각하고 싶은 우리 후세 사람들 마음 편하라고 지어내는 소리인지도 모릅니다.

요즘은 워낙 코칭을 자처하는 분들, 카운슬링의 대가라고 자부하는 이들이 많아서 경력을 꼼꼼히 따져 보고 "상품"을 선택해야 하는 시절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일반인 불특정 다수를 많이 상대해 온 인물보다, 유명 인사, 사회에 구석구석 영향력을 미치는 거물급을 고객으로 모시고, 실질적인 성과를 도출해 온 이들을 더 신뢰하곤 합니다. 이 책 저자 오히라 노부타카 같은 분이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아들러의 노작에서 뽑아낼 수 있는 결론이 언제나 "행동이 답!"으로 정리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이런 자계서의 연구 노력(...)들이, 유독 그런 명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이 시대의 대중이 유독 이 지침에 호응을 보낼 만한 환경이 조성된 까닭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저자가 강조하는 건, 큰 결심을 하고 냅다 행동에 옮기라는 주문이 아닙니다. 우리 독자들이 더 잘 알죠. 이런 식의 무리한 결심은 결심 자체가 힘들 뿐 아니라, 이를 행동에 옮기다가 좌절하기가 쉽고, 그런 좌절이 모이고 모여 정신적 에너지를 갉아먹는 나쁜 습성만 키우기가 쉽다는 점을 말입니다. 저자가 강조하는 점은 그래서 살라미스 전술의 핵심처럼,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실천"하되, 그 실천을 "습관"으로 만들라는 겁니다.

살라미스 스트래티지의 핵심은, 목표를 아주 작은 조각으로 잘라 놓을 수 있느냐 여부입니다. 우리는 흔히, "1시간이 무리이니 10분, 15분 단위로 쪼개라"는 식의 코칭을 접합니다. 이것도 학습자, 행위자를 배려한 원칙이나, 역시 실천에 옮기기란 쉽지 않죠. 그런데, 저자는 아예, 10초를 기본 단위로 설정합니다. 10초. 도대체 무엇인가를 10초 단위로 잘라서 뭘 현실에서 얻어낼 수 있을지 일단은 의심쩍은 눈길을 보내게 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이 10초의 시작이 당신의 인생을 바꾼다고 합니다. 책에 나와 있는 예시들은, 예외 없이 실천에 옮기기 편한 것들입니다. 독자로서 제가 맞닥뜨린 난관은, 그 예시 중에 제가 지금 직면한 과제, 혹은 그 비슷한 범주로 넣을 만한 항목이 없었다는 겁니다.

저자 역시 이런 반응을, 그의 오랜 경험을 통해 예상했을 겁니다. 이 책 2장(2레슨)에서 그는, 당신이 "사실은 무엇을 정말로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정직하고 정확한 답을 내어 보라고 합니다. 여기서 저자가 독자를 이끄는 그 과정이 참신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책을 봐도 요즘 트렌드처럼 강조되는 게, "바른 질문이 먼저 던져져야 바른 대답, 나아가 바른 실천과 성과가 나온다"는 점입니다. 또 하나, 사람이 어떤 습관을 들이는 데에는 "그걸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걸 정직하게 납득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자기 사고로 소화도 못한 내용을 길게 떠들기만 하고 스스로도 무슨 내용인지 갈피를 못 잡는 헛소리를 늘어놓는 자도, 저렇게 하면 스스로 기분이 좋아지니 저런 습관, 아니 강박에 빠져 들었을 겁니다. 이런 중독적 거동이 그 장본인의 가뜩이나 비틀리고 병든 정신을 더욱 해롭게 한다는 점이야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습니다.

시동을 거는 게 자동차든 그 외의 기계든 어떤 대상을 다룸에 있어서도 중요합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흔한 명제를 확인해서도 있습니다만, 이 책의 저자가 지적하고 있듯 일단 F가 발생하면 그에 필수적으로 a, 즉 가속도가 붙기 때문입니다. 10초가 10초로 그치면 그건 아이들 장난 깨작거리다 마는 겁니다. 저자가 제안하는, 거대한 성과로 이어지는 두번째 발걸음은, 일단 시동이 걸린 10초 액션에 가속이 붙게 하라는 주문이네요. 여기서, 밀도 향상이니(처음과는 달리, 같은 10초도 내실을 더 채워서 이어가라는 것), 환경 가속화(나의 힘뿐 아니라 과업의 최적화가 이뤄질 환경을 꾸미라는 것) 등등 다른 데서 못 들어본, 정말로 저자 자신이 고생고생해서 원칙화시킨 소중한 매뉴얼이 잔뜩 이어집니다. 추상적인 훈령으로는 가까운 사람들마저 교화시키지 못합니다. 잘하는 사람도 자신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잘하게 되었는지 일일이 알고리즘화할 수 있는 이들은 드뭅니다. 저자의 노고에 대해 다시금 경의를 표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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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19-01-21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책에 리뷰가 쓰여져 있는 것 같아요.
이 리뷰는 오은영씨 책이 아니라 <나를 바꾸는 연습>으로 옮기셔야 할 것 같아요.
 
린 스타트업 - 지속적 혁신을 실현하는 창업의 과학
에릭 리스 지음, 이창수.송우일 옮김 / 인사이트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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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실현적 예언"이란 개념화도 있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생각 없이 툭툭 내뱉곤 하는 말 하나하나가 의외로, 정말 의외로 우리 자신의 먼 앞길을 형성하는 데에 결정적 구실을 하곤 합니다. 어떤 사람은 상사 앞에서 동료 곁에서 제깐엔 날카로운 척 결정적 한 마디를 내놓는 척하며 그 나름 "분석의 한 마디"를 꺼내는데, 이게 윗사람 보기에, 그리고 이 상사와 선이 바로 닿아 있는 동료들 보기에 여간 신경 거슬리는 게 아닙니다. 말 자체도 부정확하고 진부하기 짝이 없거니와 아무나 다 알 수 있는 뻔한 이치를 혼자 특별한 안목으로 꿰뚫어 본 양 거드름을 피우는 그 "태도"에 더 큰 문제가 있는 거죠. 이런 사람도 남이 발견한 (객관적으로 우월한) 안건의 시방화(specification)을 두고선 "아무나 다 하는 걸 말만 꼬아서 표현했다"느니 뭐니 폄훼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자기한테 할당된 기본 업무를 탁월하게 수행하고서 이런 밉상을 떨어도 떨어야 할 텐데, 일도 못하는 자가 이런 작태를 보이니 승진은커녕 제 자리 하나를 지켜낼 재간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노력을 하는데도, 재능이 있는데도 위에서 안 써 주는 게 아니라, 그 누구한테도 쓰일 가망이 없는 겁니다. 춘추 전국 시대나 중세라면 모를까, 요즘 같이 정보가 흔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경쟁상대조차 뭘 하고 있는지 바로 지득이 가능한 세상에서, 자기만의 노력을 열심히 경주하나 성과가 나지 않는 비운의 직장인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노력의 방향성보다는, 애초부터 노력의 질과 양이 남보다 처져서 도태되는 겁니다. 혹 방향성을 처음에 잘못 잡았다고 하죠. 남들이(협업이든 경쟁이든) 어떤 쪽으로 지표를 파악하는지 주변만 둘러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사교성이 전무하고 네트워킹 능력이 없거나 뭔가 지적 장애가 있지 않은 이상, 방향성을 잘못 잡아 애써 기울인 노력이 헛되이 썩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CEO라면 혹 모르겠습니다. 예컨대 지금 해양플랜트 투자의 대패착 때문에 한꺼번에 부도를 맞게 생긴(어찌어찌 헤쳐나가겠죠) 한국 조선 3사처럼 말입니다. 그 정도 요직에 있는 이가 아니고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그런 종류의 실패는 일부러 할래야 할 수가 없죠. CEO급 과오를 평사원 레벨에서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대단한 희귀성을 지닌 경우겠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운이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실패자, 무능자는 어떤 환경에도 감사하지 않고, 어떤 사소한 우연에 의한 성과도 모조리 자신의 덕으로 돌립니다. 오너의 3세, 4세가 부서에서 이런 행태를 보여도 곱게 봐 주지 않는데 하물며 아무 배경도 능력도 없는 사원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운이 좋은 사람은 자신의 미래를 예언한다." 마찬가지로 능력이 없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과거를 윤색, 왜곡한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모든 게 남 탓인데 이런 사람한테 무슨 발전이 있겠으며 어느 조직에서 쓰임을 받겠습니까.

일본 자계서 저자분들 중에 "운"에 대한 논급을 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일본이나 우리나 아직 합리적인 의사 결정 문화가 자리잡지 않고(그래서 최악의 무능자가 요리조리 핑계를 댈 여지가 생기겠고요), 좁은 국토에 사람은 많고 경쟁은 덩달아 살인적이다 보니 "왜 이렇게 운에 의해 모든 게 결정되는가?"라며 한탄하는 이가 많아서겠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동시에, "운 역시 머나먼 시간 전에 당신 본인이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반대로 남탓 타령에 허송했는지의 냉엄한 응보"라며 일찌감치 결론을 내고 있더군요. 이 책 저자분은 아예 모든 토픽을 "운"이란 키워드 하나로 다 설명하고 있습니다. "운"이란 대상에 대해 이처럼 틀리든 맞든 절절히 사례 분석을 해 보면, 그 역시 다른 모든 난제처럼 통제의 손아귀에 들어 올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저자의 진정성이 과연 얼마나 문장에 배어 났느냐가 이런 책의 가치를 좌우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정성이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정말 고민을 하고 책을 썼는지, 내가 독자라고 생각하고 정말 이 주제에 대해 절실하게 머리를 짜낸 결과 답 같은 답을 줄 수 있을 자신이 있는지는 문장을 읽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답이 어디 매번 나오겠습니까. 그러나 이렇게 성실히 쓰여진 책을 읽고서는, 독자가 혼자 나중에 정리하는 시간에 자기 생각이 전보다 발전됩니다. 아주 조금이라도요. 회삿일도 마찬가집니다. 정답이나 무슨 구원의 아이디어를 내라는 게 아니라 자기 일처럼 최선을 다해서 머리를 짜내라는 건데 어차피 망한다며 정신이 딴 데 팔려 있는 직원을 누가 데리고 있으려 하겠습니까. 행운이건 불운이건 자신이 다 자초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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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책을 읽기로 했다 - 서른 살 고시 5수생을 10만 부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든 기적의 습관!
김범준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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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의 탄생은 기적입니다. 어떤 인생이라도 태어날 때는 부모님 포함 주변 모든 이들로부터 축복을 받고 태어납니다. 그러던 이들이, 왜 자라서는 질시와 모함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스스로의 존엄을 포기한 채 목숨을 끊고, 혹은 무모한 위험에 자신을 방치하여 불구가 되거나 공적 장부에 치욕스런 이름이 등록된(예:전과자) 꼴로 남는 걸까요? 또 어떤 사람은 소속한 회사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고 밀려나 거리를 헤매는 초라한 실업자 꼴이 되는 걸지요?

아마존 종합 베스트셀러 1위도 이론적으로 한 해에 52권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그리 값진 기록이 아닐 수 있지만, 이 책은 제법 수위권에 오래 머무른, 많은 미국인들로부터 꽤 진지한 주목을 받은 내용을 담았던 책입니다. 그 이유는 읽어 보고 나니 더 분명해졌는데요. 저자가 생사의 기로에서 "6분 동안 죽었다가" 다시 깨어난 체험을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기고(꼭 코마 상태에 진입했다가 깨어난 게 아니라도) 살아난 것도 관심을 집중시키기 충분하지만(그래서 사후 체험이니 뭐니 하며 알고 보면 몽롱한 꿈에 가까운 "브로큰 메모리"를 상품화하는 경우도 있죠), 그렇게 한번 "물건너 갔던" 생을 다시 이어가는 "두번째 기회"를 얻고 정신적으로나 체질적으로나 다시 태어난 사람의 간곡한 증언을 듣는 건 누구의 관심도 끌 만합니다. 위기에 몰렸다가 다시 태어나고 싶은 사람은 없지만(의식을 되찾는다는 보장이 설사 있다 해도), 권태와 환멸에 찌든 영혼을 가뿐하게 리프레시하고 싶은 욕구와 필요는 누구나 갖고 있을 테니까요.

여튼 저자의 말은 그겁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보니, 매일 맞는 아침이 너무도 반갑더라" 여기에서 새로운 각성이 시작하여, 일상의 모든 시간을 계획성 있게 설계하고, 주어진 시간을 알차게 보내야 하겠다는 결의로 자신의 정신이 가득차게 되더라는 거죠. 솔직히 말하면, 만약 저라면 그런 큰 사고를 겪고 대략 6일 정도, 아니 6개월이라고 하죠, 여튼 그런 긴 기간 동안 무의식으로 있다가 깨어났다 쳐도, 모르죠, 직후 6주 정도는 정말 감사하고, 다시 태어난 느낌일 지 모르지만, 이후에는 예전의 타성에 젖은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요.

그래서 저는, 베스트셀러 저자가 되고 전미 권역에 걸쳐 유명인사가 된 건 그저 죽었다 깨어난 희귀 체험을 해서가 아니라, 그 각성한 인격에 그만한 자격을 이분이 갖춰서가 아닐까, 그런 판단을 내렸습니다. 실제로 전세계 70억 인구 중 치명적 사고를 겪고 재기한 사람이 한둘이 겠습니까. 당장 우리만 해도 국회의장을 지낸 김 모 원로 정치인의 경우, 김영삼이나 허문도보다 훨씬 고령임에도 지금까지 생존해 있고, 이미 유신 시절(40년도 전이죠) 뇌졸중 발병 때문에 운신을 못하고 의사로부터 뇌수술을 권고 받았으나 극력 만류한 후 자가 재활 노력 끝에 살아났죠. 전 그게 더 놀랍고, 그런 스트로크가 왔음에도 지금까지 건강히 생존한 게 더욱 놀랍습니다.

이 책은 담은 내용도 참신합니다. 그 중 하나를 예로 들면 "기록이 기억보다 우선한다"는 건데요. 저 역시 겉으로 아주 사소해 보이는 하루하루의 로그(주제는 밝힐 수 없지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게 일단 남겨 두면 목표를 일정대로 이루는 데에도 도움이 되고, 체계적으로 장기적인 전략적 사항을 조망할 때도 뭔가 가시적으로 기여합니다. 절실하게 당면한 과제에 부딪히고, 필사적으로 그 해결을 도모해 본 사람이라야 이런 아이디어가 내면에서 솟아납니다. 하루하루를 떠밀리듯 사는 사람은 결국 직장에서도 밀려나는 게 필연일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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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생각에 속을까 - 자신도 속는 판단, 결정, 행동의 비밀
크리스 페일리 지음, 엄성수 옮김 / 인사이트앤뷰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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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저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어느 교수님의 저서, 그리고 토론집에서 그런 주장을 발견한 적 있습니다. "임금에는 생활 보장의 요소와 근로 대가의 요소 모두가 포함된다." 지금은 글쎄요 이게 당연한 상식이 된 세상일지 모르겠으나 과거에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의 정당성이 어디까지, 또 어디에서 근거를 마련할지 한창 논쟁이 진행 중이었기에 이게 핫한 이슈였습니다.

현재 근로관계(고용관계)의 유연성 이슈를 놓고서는 여전히 사회 각 계층의 이해를 놓고 대립이 진행 중입니다. 사용자와 노동자는 기본적으로 대등한 관계에 서야 한다며 "함부로 남용하는 해고권"은 철저히 법 밖으로 퇴출되어야 한다는 이들도 있고, 반대로 생산성의 극대화와 보다 많은 이들의 노동 기회 마련을 위해 "자유로운 해고"가 차라리 불황 타개의 돌파구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일부 어르신들이 향수를 갖고 있는 "평생직장"의 신화는 이미 깨어져 지구상 어디에서도 구현되지 못하는 실정이며, 어차피 이 신화도 노동자측에 마냥 유리한 이념이라기보단 사용자 측의 시혜적 스탠스라든가 자본 측의 철저한 주도권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들어가는 패러다임이므로, (부담스러워할) 사용자나 (인식이 바뀌고 현실을 직시해야 할) 노동자나 모두 만족 못 할, 언제 깨어져도 깨어져야 할 환각이었음은 분명합니다.

"동맹(alliance)"은 여러 의미로 쓰이는 단어입니다. 나치 독일을 격멸하기 위해, 기존에 완전히 다른 이해관계를 지녔던 여러 국가들이 맺은 군사 협력 관계도 이 단어로 표현했으며(Allied Forces), 우리 역사에서는 드물게도 자리 보전이 위태로웠던 공양왕이 느닷 권신 이성계에게 제의했던 게 군신(君臣) 간의 "동맹"입니다. 물론 공양왕의 측근들은 "천지가 개벽한 이래 군신의 동맹 같은 해괴망측한 일은 없었다"며 격렬히 반발했고, 이성계 측에서는 이 동맹이 장차 새 왕조의 개창에 큰 걸림돌이 될까 우려한 끝에, 이 제안은 얼마 안 가 무마되고 우리가 아는 바 새 체제의 시작이 진행되었지요.

거창하게 고사(古事)를 거론한 건, 전통적인 노사관계가 현재 전세계에 걸쳐 패러다임적 도전을 맞는 요즘, 어쩌면 기존 시스템의 모순과 비능률 요소를 일거에 걷어낼 혁신이 이 "얼라이언스"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이 책을 읽고 난 후 들어서입니다. 사실 이런 식의 고용 형태는 (전통 노사관계가 위기를 맞았다는) 요즘에서야 대두한 게 "전혀" 아닙니다. 이를테면 로펌은 일찍부터 주종 관계가 불분명한 파트너십 형태이며, 소위 "생협" 조직에 몸 담는 분들은 애초에 누가 누구에게 월급을 주는지도 관계 파악이 애매한 편입니다. 이런 평등한 생산 조직 참여 패턴이 마냥 바람직하다는 건 아니고, 이런 조직이 절도(節度)와 기강을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성원 개개인의 자질과 모럴이 일정 수준을 넘어야만 합니다.

애플이나 구글의 경우 직원 개개인이 대등한 입장에서 아이디어를 안출하고, 충분한 자율이 부여되어도 업무의 질이 떨어지지 않기에 그런 형태의 운용이 가능한 거죠. 이 책은 주로 실리콘 밸리의 예를 들고 있는데, 이런 형태의 느슨한 듯하면서도 고도의 업무 효율, 유연성을 유지할 수 있는 조직이 되려면, 역시 균질한 인쟁 pool 사이에 자율적이면서도 꽤 유기적인 네트웍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부정과 정실이 개입해서도 안 되며, 투명성과 업무창의성이 자발적으로 유지되어야 "얼라이언스"가 존립 가능하다는 자각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흔히 출신 대학을 놓고 어떤 카스트 구조니 뭐니 하면서 이의 강제적, 전면적 해체를 주장하기도 하는데 일단 사적인 조직에 대고 국가적 강제를 들이대는 자체가 자율과 민주주의 원리의 중대한 위반입니다. 뿐만 아니라 학창 시절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인맥과 평판이야말로 고과의 기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유효한 조직의 건설과 점검, 지속적인 작동을 위해 생각외로 중추적 기능을 행사한다는 결론, 이 책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이었습니다. 비공식적으로 아이비리그 출신들이 미국 주요 정부 기관을 이끌어 나가는 현실에 비추어 보아 이는 이미 유효함이 검증된 모델이기도 합니다. 조직의 틀을 비공식과 공식 두 가지 프레임으로 묶어, 상황에 따라 A 혹은 B를 유연히 끌어댈 수 있다는 논리가, 여태 경색되고 침체된 국면이었던 경영 이론 중 조직론에 아주 신선한 활기와 충격을 줄 듯합니다. 이론을 떠나 우리처럼 동문회 네트워크가 촘촘히 구성된 사회에서 적용해 보기에 대환영인 그런 시론이기도 합니다. 현실을 외면하고 비뚤어지고 종래의 틀에 고착된 사고 방식으로는 좀처럼 수용하기 힘들, 멋진 아이디어로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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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가의 질문
박영준 지음 / 북샾일공칠(book#107)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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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건 신(이라고 불려야 마땅할 극소수의 인간)에게나 가능한 과업입니다. 무에서 유는커녕, 유에서 유를 만들어내기도 어렵고, 어쩌면 유에서 약간의 유를 까먹지나 않고 유지한다는 것도 요즘 세상에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지나 모르겠습니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가진 돈을 얼마나 잘 굴리냐의 게임입니다. 돈을 굴리겠다고 빌려갔으면 이자를 치러야 하고, 물건이나 시설을 사용하면 그에 상응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봉건사회와 달라진 면이 있다면, 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개인들이, 그저 현상 유지나 하며 유유자적할 여지를 거의 용납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대개 농민들에게 가혹한 지대와 부역이 착취되었던 배경은, 외부로부터의 위협(생명, 재산, 신체의 자유)을 지켜주는 대가(對價)가 있어야 하지 않냐는, 보호자를 자처하는 영주들이 내세운 명분이었죠. 안정된 시스템의 영속이 전혀 내일을 담보할 수 없던 세상, 언제 외적이 침입해 애써 가꾼 소출을 잿더미로 만들고 처와 자녀의 안위를 해칠지모르는 상황에서, 어쩌면 차변과 대변이 그럭저럭 균형을 맞추는 거래였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이러던 무법천지가 지금 개명된 세상을 맞이하여 저처럼이나 안정을 찾은 게 기적일지도 모릅니다. 기록되지 않은 부분은 물론, 기록된 부분만 살펴 봐도 어떻게 이런 미친 폭력과 혼란상을 극복하고 여기까지 문명이 버텨왔는지가 놀라울 뿐입니다(서로 싸우다가 일찌감치 다 자멸해 버린 게 아니라). 그러니 테러리스트라든가, 국가 간 무력 긴장이 고조되는 국면이 있어도, 지난 수천 년의 역사상에 비춰 볼 때 이만큼이라도 평화가 유지되긴 하고, 간헐적 혼란이 발생한다 쳐도 불가피한 면이 있겠거니, 혹 내가 작은 힘이라도 보태어 모두가 편해지는 길에 조금이라도 빨리 다가설 수는 없겠는지, 건설적 사유와 고민을 해야 그게 인간의 도리겠습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만 비즈니스와 일상 경쟁의 장(場)도, 벌써 평온한 영역나눔이나 상생의 판이 실종된지는 오래입니다. 사방천지가 다 레드오션이며, 정코스를 걸어서 지갑을 채우려는 생각은 딴 우주의 생명체나 먹을 법한 한가한 발상입니다. 블루 오션은 패러다이스가 아니라, 거기에 도달하기까지 생명을 걸어야 할 험난한 미션일 뿐입니다. 도달한다고 끝이 아니라 그 텃밭을 지키는 데에도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이처럼 경쟁이 치열한 현황에서, 과연 누가 살아남고 승자의 여유를 즐길 수 있을까요?

안정적으로 자신의 진로와 수입원을 지킬 수 있었던 미온적 경쟁만이 진행되던 때에도, 구태여 큰 모험을 하며 미개척의 시장을 넘보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무리수를 둬 가며 분수에 넘는 과한 투자를 일삼는 것도, 지난시절 그런 선구자(...)들이 대성공을 거둬 그 자녀들에게까지 거대한 부와 자산을 물려준 사례를 보고 자극을 받아서인 면도 있습니다(근본적 이유는 그런 개인적 팩터보다, 자본주의 자체의 무한 경쟁 유발 구조 때문). 억을 가진 자는 조를 내다보는 게 당연한 생리이죠.

제로원이란 말 그대로 "제로"에서 "원"을 만드는 도약의 첫단계를 지적하는 개념입니다. 어떤 이들은 "제로에서 원을 만드는 게 아무리 놀랍다고 해도, 이미 원헌드레드를 가진 이가 투헌드레드로 가는 게 훨씬 쉽고, 결과면에서 200배의 차이가 나지 않는가? 물론, 무한대의 격차를 유한한 수로 줄였다는 게 대견하긴 해도." 처럼 반론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맞긴 한데, 저자의 관점대로라면, 이런 사고야말로 현재의 덫에 걸려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고착적 시야의 맹점입니다.

사물은 어떤 특정 지점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추세라는 게 있습니다. 현재의 지점이 높아도 구조가 부실하고 내면이 위태롭기에, 급강하의 곡선을 탈 운명만 남은 경우가 있고, 맹렬히 exponential curve를 타며 상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뉴튼의 업적은, 거리(s)만 재고 끝났던 과거와 달리, 그 거리를 장기간에 걸쳐 축적한 속도(v)라는 인자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아냈으며, 그에 그치지 않고 다시 속도를 쌓아올리는 가속도(a)의 속성까지 파고들어 실체를 규명했다는 것입니다. 리먼 사태때도 추세를 일찌감치 주목하여 대재앙의 도래를 예측한 이들은, 손해를 최소화하며 파국을 남들보다 미리 떨어내었을 뿐 아니라,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이들로부터 막대한 이익을 챙기기까지 했습니다.

제로원의 breakthrough를 한번 맛을 본 경제주체는, 그 추세를 이용하여 타 분야에서도 남들을 훨씬 상회하는 성과를 거둡니다. 에컨대 이건희씨 같은 경우,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의 기업이 한국 내에서조차 2인자에 머물렀다는 냉엄한 사실을 우리는 종종 까맣게 잊곤 합니다. 시야가 국내에 머물러 있으니, "그때 2등하던 이들이 지금은 1등하는 것 아냐?"처럼 안이하게 정리하고 마는 건데, 사정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뭐 고작 그렇게 본다고 쳐도, 알고보면 20등과 10등의 차이보다, 1등과 2등의 실력 차가 더 큰 법입니다. 20등은 바짝 분발하면 3등도 4등도 할 수 있지만, 2등은 가진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도 1등을 추월 못 할 수도 있습니다).

세계로 시야를 넓혀 보면, 등수 안에도 없던 기업이 어느 시점부터 탑텐을 오르내리는 현상은, 예컨대 1980년대에 활약하다 지금은 이세상 사람이 아닌 몇몇 일본 기업인들이 목도라도 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일 뿐 아니라 있어서도 안 될 일"이라며 쇼크사로 두번째 죽음을 맞이할 만한, 극히 예외적인 prodigy입니다. 우리는 남의 성취에 대해, 그저 배아픈 마음에 아예 실체를 외면하고 너무 가벼이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진정한 제로원 모범 사례는, 현상에 얼마든지 안주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고, 모든 걸 걸고 다른 차원의 도약을 성공시킨 이건희 같은 인물입니다. 이 사람은 한국에서 넘볼 자가 거의 없는 재벌가의 2세였다는 점을 상기해 보십시오.

그렇게 한번 몸에 밴 체질과, 영감을 상시화하는 능력은, 이제 다른 분야에 전이되어 폭발적 생산력을 추동할 수 있습니다. 이 역시 생의 단 한순간이라도 체험을 해 본 이라야 공감할 수 있는 주문들입니다. 전에 겪지 못했던 성취를 해 내고 온몸이 전율하는 느낌은, 다시 그 느낌을 찾기 위해서라도 사람으로 하여금 목표에 온전히 정진하게 만듭니다. 조직에서 성과를 내고 인정을 받으며 만인의 부러움을 산 채 단상에 오르는 나를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경쟁에서 승리한 자만이 맛볼 수 있는 원초적 쾌감은, 정글에서 전력질주하여 경쟁자를 따돌리고 맨 먼저 먹잇감의 따스한 육질을 물고 입가의 피를 핥는 사자의 긍지에나 비길 만합니다. 이미 백을 가진 자라 해도, 편안히 200과 300을 바라기보다, 뜻밖의 미개척지에 알몸으로 달려들어 보는 편이, 장기적으로 자신의 밑천을 더 굳건히 지킬 수 있는 길입니다. 공격은 최상의 방어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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