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터[684]번째 책이야기

드론 정비 개론 / 김영준, 유지창, 장선호, 최명수 저 / 류지형 감수

내가 몰랐던 책 책이야기 텍스터(www.texter.co.kr)
드론 정비 개론 / 김영준, 유지창, 장선호, 최명수 저 / 류지형 감수
■ 책 소개

미래 유망 직업, 무인항공기 드론 정비사 자격증 시대를 대비하라!
각종 상업용?업무용 드론을 제대로 고칠 전문가가 되기 위한 첫 입문서!

전무후무한 국내 첫 드론 정비 입문서!

드론 정비 개론


아시아경제 최근 기사에서 인용한 프라이스워커하우스쿠퍼스(PwC) 자료에 따르면 2020년 드론 시장 규모는 1,270억 달러(약 143조 원)로, 농업 드론 규모를 324억 달러(약 36조 원)로 전망했다. 이에 따르면 공공 기반 시설 분야, 농업, 수송, 보안, 미디어, 보험, 통신, 광산업 분야 등에 광범위한 드론 시장이 구성될 전망이다. 농업용 드론 활용 분야만 해도 KOTRA 자료에 따르면 지도 제작, 파종, 살포, 관개, 작물 관찰, 생육 상태 측정 등 다양한 기능이 활용될 전망이다. 이런 객관적인 자료 외에도 드론 택배, 드론 촬영, 드론 소방관, 드론 택시 등 사람을 대신해 무인항공기 드론이 할 수 있는 역할로 기대되는 분야만 해도 손꼽을 수 없을 지경이다. 그만큼 드론의 미래는 밝게 점쳐지고 있으며, 이에 따른 드론 연구나 개발뿐 아니라 이미 사용 중인 드론의 정비에 대한 수요도 필연적으로 폭발적으로 확대될 것이란 전망 하에서 이 책은 집필되었다.
◆ 참가방법
  1. 텍스터홈페이지에 회원가입을 먼저 해주세요.
  2. 서평단 가입 게시판에 "드론 정비 개론 서평단 신청합니다"라고 써주시고 간단한 서평단 가입의도를 적어주시면 됩니다.
  3. 자신의 블로그에 서평단 모집 이벤트(복사, 붙여넣기)로 본 모집글을 올려주세요.
  4. 자세한 사항은 텍스터 서평단 선정 가이드를 참고하십시오.
※ 문의 : 궁금하신 점은 lovebook@texter.co.kr 메일로 주시거나 텍스터에 북스토리와 대화하기에 문의사항을 적어주시면 빠르게 답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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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 세계 최고 멘토들의 인생 수업
팀 페리스 지음, 박선령.정지현 옮김 / 토네이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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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퇴직한 누구더러 제2의 인생을 시작하라는 주문은 흔히 듣습니다. 하지만 주위에 그렇게나 많은 창업자들이 도전에 도전을 거듭해도, 매일같이 듣는 게 편의점, 치킨집 폐업 소식입니다. 특히 편의점은 대체로 우아해 보이는 외관 때문인지, 혹은 대기업에 다시 소속된다는 느낌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주로 갓 퇴직하신 분들이 애호합니다(그나마 이처럼 수중에 얼마 안 되는 돈이라도 벌 생각을 해야지, 몇 푼 되지도 않는 걸 그저 까먹을 생각이나 하는 인생이라면 참. 말이 좋아 학업이지 그 주변머리에 등록금이나 회수할 수 있을지 원ㅋ 정신 차리려면 몇 배는 더 심한 쇼크를 먹어야 평균수준에나 올라올 듯). 이처럼 "제2의 인생"은 흔히들 입에 올리지만, 사실은 그저 밥벌이의 주된 관문이 바뀌었을 뿐 나아질 것은 별반 없고, 오히려 더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루틴에 빠져들다 남 좋은 일이나 시키고 퇴장하는 것이나 아닌지 불안해하는 분들이 많죠.

이 책의 저자들은 "제2의 인생" 같은 추상적인 문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듣기에 따라서는 더 막연하고 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을 텐데요. "인생의 재창조"입니다. 어떠신가요? 아마 반응들이 선명하게 갈릴 겁니다. 책을 읽어 봐도 그렇습니다. "과연 이대로 해서 뭐가 나아질까?"라며 여전히 고개를 갸웃하는 이, 나하고는 안 맞는다며 일찌감치 딴데 시선을 주는 분도 있었지만, 어차피 흔하게 제시되는 대안들이 다 한계가 보인다며 이 책처럼 아예 근본적인 처방(고통스럽고 돌아가는 길처럼 받아들여지지만)이 필요하지 않냐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책 한 권 읽고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 수는 없으므로, 이런 건 각자가 현명하게 판단해서 취사선택할 일입니다. 책이 옳은 제안을 담고 안 담고가 문제는 아닌 듯 판단됩니다. 맞는 말을 해도 독자가 에고에 가득차 있으면 정답을 만나기가 힘들고, 설령 틀린 말을 해도 독자의 마인드셋이 애초에 바르다면 제 갈 길을 찾아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속이 꼬인 사람은 제대로된 책을 읽어도 못된 구절만 찾아 자기 내면을 더 황폐화시킵니다.

어제도 제가 멘탈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을 읽었는데, 확실히 사람의 진짜 힘은 세계를 바라보고 자신의 내면을 현명히 통찰하는 그 과정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사람은 정신으로부터 답을 찾으려 듭니다. 동물 중에 정신병에 걸렸다는 예 들어 보신 적 있습니까?(있긴 있습니다) 어찌 보면 그래도 여기에 길이 있겠거니 기대를 갖고 집요하게 무엇인가를 추구하다가 그 결과가 뜻대로 안 나오기도 하니 정신이 돌기도 하는 게 아닌지, 반대로, 노력과 결과가 합치하면 성과가 폭발하거나 넥스트 레벨로 도약하는 거고 말입니다.

“누구에게나 내면의 힘이 있어요. 다만 자기한테 힘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해 끌어내지 않는 거죠. 우리의 힘은 우리 내면에 머물면서 활동을 시작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책 중 일부 구절의 발췌입니다. 물론 이 내면에의 탐구라는 게, 현실 도피의 수단으로 악용되어서는 또 곤란하겠습니다. 사람에게는 분명 FIGHT라는 정면 응전의 본능뿐 아니라, FLIGHT라는 도피의 본능도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데스먼드 모리스의 책을 읽을 때, 정글의 맹수도 결전을 불과 0.1초 앞둔 그 운명의 순간 대치 중에 잠에 빠져들기도 한다는군요. 뭐 사람만큼 의식적인 도피를 시도하는 건 아니고 뇌의 피로를 풀기 위한 생리작용이겠지만(그래서, 제때 그 자발적 최면에서 풀려날 겁니다) 여튼 그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참 놀라운 반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책 주장의 특색은 이런 것입니다. (독자인 제 방식대로 정리하자면) 당신은 분명 퇴사 후 이것저것 다른 밥벌이가 없나 모색하며 새로운 수단을 모색할 것이다. 1분 1초도 멍때리지 않고 인맥을 총동원하며, 경력자를 찾는 어떤 구인 광고도 소홀히 여기지 않고 꼼꼼히 훑은 후 지원할 것이다. 당신 머리 속에는 와이프와 어린 자녀에 대한 책임감만 가득하며, 이 진정성에 대해 당신은 물론 당신의 (성인이 된) 가족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운이 좋으면 재취업에 성공하겠으나, 결국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고 현실에 만족을 못 느낀 채 자신의 포텐을 소진하거나, 다시 퇴사하여 앞의 과정을 반복할 것이다. 이런 삶은 결국 볼륨이 점차 줄어드는, 소득도 부실한 앞 과정의 반복에 지나지 않으며, 당신은 회한에 가득 둘러싸인 채 인생을 마감할 것이다...

이 소모적인 과정을 피하려면, 반성과 통찰 없는 시늉내기를 중단하고, 내면의 리빌딩에 먼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단순히 마인드를 재건하고 의욕과 마음가짐을 새로 챙겨 보자는 게 아니라, 그를 통해 실물 밥벌이 수단까지를 마련하자는 뜻이다...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기존의 방법으로는 탈출구가 마련 안 되니, 아예 내면 전체를 다 갈아엎고 다시 태어난 듯 활로를 모색하라는 뜻입니다.

상당수 독자는 거부감을 보이거나, "좋은 말이지만 내게는 무리"라며 외면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에는 두 가지 심리가 대개 작용합니다. "내가 그래도 지금까지 인생을 헛산 게 아닌데 어떻게 리셋을 하나?" 같은 자존심, 혹은 "그렇다 쳐도 이제는 너무 늦었어" 같은 체념과 두려움. 책에서는 첫째 동기의 경우, 리셋은 기존의 성과(그런 게 실제 있든 없든 간에)가 0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성과는 그것대로 보존되면서 전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던 "제2의 자원"으로부터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계기라고 규정하네요. 둘째 동기에 대해서는, 여태 다른 자계서들이 숱하게 강조한 대로, "지금은 백세인생 시대"라며 이제 겨우 반환점을 돌아왔을 뿐이라고, 앞으로도 대비해야 할 구간이 많이 남았는데 늦었다고 주저앉으면 어떡하냐고 독자를 다독입니다.

여튼 가장 필요한 과업은, 내가 진정으로 바라고, 나를 가슴 뛰게 만드는 소재와 지향점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것입니다. 여태 무심히 만나오던 사람들을, 오늘부터는 자극과 영감의 원천으로 대하게 된다는 말은, 설령 내면의 힘 같은 걸 믿지 않아도 변화와 활로는 사람과 인맥 사이에서 찾으라는 오랜 주문을 상기시키기에 반갑기도 합니다. 나 자신을 새롭게 보기 시작하면, 정말로 새로워진 내가 여태 잠재했던 가능성을 비로소 현실에서 바로 볼 수 있다는 가르침은, 누구에게나 다양한 형태로 즉각 수용이 가능하기도 하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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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감정
일자 샌드 지음, 김유미 옮김 / 다산지식하우스(다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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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쓰여진 여러 고전 문학이나 에세이 들을 읽어 보면, 필자나 등장인물들이 그리 "감정"이라는 팩터를 중시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감정은 낭만주의의 대흥성 이후뿐 아니라 그 이전부터도 문학의 영원한 주제이자 소재였으며, 인간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건 자신의 신조나 신앙보다도 차라리 감정에 가까웠습니다. 일개 미물인 동물에 대해서도 학대 등을 해서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로 "그들도 생명과 감정이 있다" 같은 것을 들기도 합니다. 지식과 이념 때문에 살인 등의 폭거를 일으키는 사람은 극히 드물어도, 감정을 상한 경우 거의 누구라도 뒷일을 생각지 않는 무리수를 둡니다. <사기>에 보면 "필부라도 모욕을 당하면 반드시 칼을 뺀다" 같은 말이 있을 정도죠.

하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들만큼, 의지나 신조, 인격의 수양 같은 덕목보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상처 안 받기, 내 마음을 잘 챙기고 평안해지기 같은, 감정의 다스림에 신경 썼던 인류는 아마 지상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는 세계화가 진척 되어서인지(?) 동양과 서양이 전혀 그 양상이 다르질 않습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개인 차원을 벗어난 어떤 추상적인 가치의 중요성에 대해 대체로 회의적이 되고 난 여파가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직장에서 트러블을 일으키고, 이직이나 사직을 하는 이유 대부분은, 일이 힘들거나 능력이 감당 안 되는 이유도 있지만, 이런 경우에도 사람들은 대개 적응을 해 냅니다. 그러나 직근 상사, 동료 들과 감정적으로 심하게 맞부딪힌 후에는, 많은 이들이 가차없이 사표를 던져 버립니다. 이후의 일은 채 대비나 생각도 않고 말입니다. 물론 감정을 잘 챙기지 못해서 억지로 환경을 참아 내다 병을 얻거나 몸을 망치는 것보다는 그런 결단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평소 자신의 감정을 현명히 관리하여, 애 써 얻은 직장에 충실하는 편이 전 인생 설계의 관점에서 더 유리한 선택임을 감안하면, 감정의 작동 원리에 대해 잘 파악하고 평소에 (향후 큰일이 터지기 않게) 대비하는 게 중요합니다. 또, 사람의 감정이 상처를 입는 건 혼자만의 세계에서 벌어지진 않습니다. 보통은 타인과의 상호 작용 속에서 이뤄집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감정을 잘 파악하는 건 그 타인을 배려한다기보다, 그 타인과 지속적으로 상호 작용해야 할 나 자신(의 감정)을 위해 중요한 선택입니다.

여태 많은 자계서를 읽으며 그간 심리학자나 뇌과학자들이 밝혀 낸 성과를 바탕으로, 여러 몰랐던 지식이나 팁 등을 깔끔하게 정리하여 이를 독자들에게 전달해 주는 걸 많이 봐 왔습니다. 아마 책을 자주 골라 정성껏 읽는 많은 다른 독자들도 사정이 같을 것입니다. 개중에는 공감이 가는 내용도 있고, 나에게 너무 무리한 주문을 한다 싶은 것도 있었겠으며, 다 맞는 말이고 수긍하지만 실천에는 가능하면 옮기고 싶지 않다,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다른 방법은 없는지 알아 보고 싶다, 같은 생각이 들게 한 것도 있었겠습니다. 

만약, 소개하는 정보가 비교적 정확하고 근거 있으며, 여러 상황을 전제로 한 제언(충고)도 귀에 거슬리지 않고 무난히 다가오는 책이라면, 그런 책은 일생을 두고 곁에 가까이하며 좌우명처럼 활용해도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새롭다기보다는 깔끔하고 센스 있게, 여러 독자에게 잘 어필할 만한 사항을 잘 정리한 책으로 보였습니다. 물론 저자께서는 현직 하버드 의대 심리학 교수이므로, 학문적 권위까지 충분히 갖춘 분이기도 합니다. 또, 그녀만의 임상례와 상담 사례를 친절하고 시의적절하게 여럿 소개하기에, 여태 여러 책에서 엿봤던 듯한 익숙함 내지 식상함도 가능한 한 최소로 줄이고 있습니다. 

책의 목표는 저자 스스로 말씀하시길, "감정의 민첩성"을 기르는 일이라고 합니다. 서평 처음에도 말했지만, 우리 이전의 사람들은 감정을 억누르고,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고, 타인의 감정을 고려하여 행동과 결단을 머뭇거리기보다는 "고지를 향해 전진(물론 그리 말하는 사람 본인부터가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면서)!"을 외쳤습니다. 그 시대에 나온 자계서(많지는 않으나 있었고, 또 인생 독본 등으로 이름 붙여졌을 뿐 자계서라고 부르진 않았죠)는 감정이란 중요 팩터를 대개는 무시했습니다. 허나, 아이디어의 질(퀄리티), 의지의 지속도, 종합적인 삶의 만족도, 구체적인 개인의 삶에서 후회 없음 같은 목적을 달성하려면, 하루하루, 순간순간의 감정에 충실하고, 잘 보듬고, 좋지 않은 감정을 재빨리 유리한 것으로 바꿔 주는 요령이, 그 어떤 다른 목표나 이상보다 중요합니다. 매일, 덜 늙고 덜 피곤해하며 더 행복해할 수 있는 나를 위해서 말이죠.

감정의 민첩성을 어떻게 기를 수 있는가? 저자는 크게 네 가지 과정(혹은 세부 목표)을 제시합니다. 1) 마주하기, 2) 비켜나기, 3) 자기 목적대로 걸어가기 4) 전진하기. 일단 예전 사람들처럼, 감정을 억누르고 무시할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녀석과 눈을 마주치며 응시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 책에서 가장 중시하는 최상위 전제이자, 이 책이 담고 있는 모든 주장의 발판이기도 합니다. 그 다음에는, 그 감정이 원하는 대로 끌려가거나 노예가 될 게 아니라, 오히려 객관적으로 거리를 두고 길을 들여야 한다는 거죠. 1)도 중요하지만 저는 그 다음 2)가 의미 깊다고 봤습니다. 

1) 관련해서는 대개 의지력 충만하고 뭔가 비범한 이들이 종종 저지르는 오류입니다. 우리는 보통 그런 유형이 아니고,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없기에 큰 신경은 안 쓰지만, 그래도 그들과 비슷한 오류를 잘 저지르죠. 예전에는 거꾸로 그런 사람들을 높이 평가했으니까요. 대개 가부장적 유형이기도 한데, 요즘 일부 독서 트렌드에서 "남자 역할의 종말"을 거론할 때는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무작정 무시하는 일부 남성"을 특히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합니다. 

반면 2)와 관련해서는, 제 개인적 생각으로 나르시시스트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입니다. 이들은 전근대적 가부장들과는 정반대 지점에 위치하지만, 그들 나름의 이유에서 역시 불행합니다. 그들에게는 감정이 곧 자기 자신의 주인입니다. 왜 나의 부모는, 내가 하고 싶은 걸 못 하게 할까(사실은 그들 부모는 자녀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평균보다 훨씬 자주, 그 정제되지 않은 욕구를 풀어 주었습니다). "왜 사회는 내 감정, 내 욕구,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발상을 바로 수용하지 않을까? 내 생각엔 내가 맞는 것 같은데." 반응하거나 생각하는 품이 그저 아이들과도 같습니다. 

어쩌면 그 부모가 단단히 버릇을 잘못 들여 놓은 건데, 물론 나이 들어 그 책임은 본인 자신이 지겠지만, 이들은 여튼 팍 싫어지고, 비위에 거슬리고, 당장 기분을 망치는 모든 요소를 "악"과 동일시합니다. 매사에 합리화를 하려 들고, 희한한 데서 이유를 찾아내어 자기가 맞는 것 아니냐고 우기고, 상황을 거칠고 어이없는 방식으로 정리하곤 자신의 세계에 팍 파묻힙니다. 저 개인적으로 이 책 전체를 통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게, 자기 감정을 어떤 초자연적 명령이나 일생을 걸고 완수해야 할 사명으로 보지 않고, 그저 길들여야 할(물론 존중은 해야 합니다만) 대상으로,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들어가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나에게 혹 그런 요소가 있으면 고치고, 타인이 그리한다면 (여튼 그의 인생이므로 중뿔나게 주제넘게 개입할 것까지는 없지만) 저 사람은 그런 동기로 움직이는 사람인가 보다 하고 "이해, 정리"를 하면 됩니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에 휩쓸리지 않은 채 거리를 두었다면, 이제는 이미 대상화해 버린(따라서 "내"가 아닙니다. 내가 나를 처리하고 다루고 처분한다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으며, 이미 과업이 불가능합니다. 아니면 정신병에 걸리거나 말이죠), 이 감정이란 녀석을, 어떻게 잘 달래느냐의 과제가 남았습니다. 이 책 70% 정도는, 다양한 상황에서 감정을 어떻게 핸들링하는지, 저자께서 참으로 정성껏 정리해 둔, 환자나 저자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소중한 가르침들이었습니다. 사실 이 네 가지 패러다임을 잘 몰라도, 그 본문에 나온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만, 패러다임을 먼저 머리에 넣고 그 개별 팁과 교훈, 처방을 접한다면 훨씬 내면화가 쉽고 오래갈 뿐 아니라, 사람이 기계가 아니고 창의적인 정신 작용이 가능한 이상 그 "응용"과 "발전"이 가능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개별 방법론의 상세함, 진정성에 못지 않게, 저자의 프레이밍이 매우 유익했던 책 중 한 권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세번째 단계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또하나의 중요 과제는, "감정은 나의 감정이지, 어떤 일반화하고 추상적인, 혹은 공통적인 무슨 별개의 감정 이데아 같은 게 있지 않다"는 겁니다. 자기 감정에 휘둘리는 이들 대부분은, 자기 자신의 감정만을 최우선으로 배려, 고립화하면서도(즉 타인을 고려 안 함), 동시에 감정을 절대시하는데 이게 자가당착입니다. "그건 너의 개인 감정일 뿐이야"라는 말 중에는, 다른 사람이 자기 감정을 위해 희생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뜻이 들어 있죠. 그런데도 이런 사람들은 "너(혹은 그)는 내 감정을 이해 못 해"를 두고, "너(그)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 못 해"로 일반화, 혹은 격상시킵니다. 내 감정이 내 감정이 아니라 인류 일반이 존중해야 할 위대한 가치로 바꾸어 버리는 거죠. 이런 이들이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그럼 이해라도 하고 저런 요구를 하느냐,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목전의 이익을 얻기 위해 알랑거리기는 합니다. 그조차도 대단히 피상적이죠.

네번째 단계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전진하기"는, 퇴행과 현실 도피와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생을 살며 순간 맞이하는 모든 도전에 대해 정면으로 응전하고, 사소한 작은 나쁜 습관을 교정해 가며 큰 변화의 동력으로 삼으라는, 어찌 보면 공자나 맹자, 주자의 가르침처럼 대단히 윤리적이고 지행합일의 경지를 바라보는 성격입니다. 일일이 실천에 옮기다 보면, "감정(옛 사람들이 무작정 억누를 것을 주문했던)"에서 토픽이 시작되었으나, 결국 수신제가와 덕업정진으로 마무리되는 느낌도 듭니다. 

책은 또한 유머 감각으로 가득합니다. 저는 처음에 읽다가 "카드신용을 휴지통에 버린다"는 대목에서, 오타는 오타인데 참 이상한 오타다, 귀엽다고나 할까, 그런 느낌이었는데, 한 장 뒤로 넘어가니 "마음챙김, 마음흘림"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예로 든, 고의적인 미스프린트였더군요. 저자는 관심사가 참으로 넓으신지, 시대별로 서양이 동양과 접촉하며 소중한 교훈이나 수련 방법으로 얻어내고 발전시킨, 예컨대 요가라든가 다양한 노하우를 망라적으로 정리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효험을 본다 싶은 모든 바람직한 트렌드는, 우리의 현재에는 특히 다 "감정 수련"과 직결되어 있음을 재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앞서도 말했습니다만 감정이 다스려지면 결국 의지, 도덕성, 추구해야 할 목표 까지 덩달아 해결되기도 합니다. 심리학이 결국 감정 트리트먼트를 위한 학문이었던가 싶기도 하게, 이 석학의 자상하고 위트 넘치는 충고가 어느새 인생 전체를 관조하는 계기까지를 만들어 주더군요. "감정은 곧 당신 일상의 모든 것이다. 그러나 결코 노예가 되지는 말라. 마주하고, 다루고, 친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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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창조경제 살림지식총서 508
정성호 지음 / 살림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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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란 개념은 거창하게 들릴 수 있지만, 소박한 언어로 바꾸면 '생산'과 거의 동의어입니다. 노동자가 작업 현장에서 작은 물건을 공정에 따라 생산하는 것도 창조고, 아침 출근길 시민을 실어 나르는 전철 기관사 역시 운전이라는 용역을 통해 효용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조"는 결국 경제 시스템의 영원한 과제인 '생산에의 고민"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농경 혁명 이래 인류가 언제나 떠 안고 있던 이슈이지 현대에 들어와 새삼스레 부상한 화두가 아닙니다. 


만약 어떤 정부가 그 출범과 더불어 새삼스럽게 "창조"라는 단어를 강조했다면, 사전적 의미 이상의 각별한 주석이 덧붙여져야 하고, 관찰자의 실망을 유발하지 않게 구체적인 각론이 성실히 전개되어야 마땅하겠습니다. 표어가 중요한 게 아니라, 현실감 있는 방법론이 문제입니다. 여기에, 아젠다 설정이 과연 어디까지 상호 모순 없이 그 적정 길이와 외연의 리스트를 확보할 수 있을 지도 중요합니다.


김광두씨는 서강대를 나온 분입니다. 이 학교 명칭이 주는 느낌에 너무 주시할 것은 없습니다. 얼마 전, 박정희 정부에서 오랜 기간 경제부총리로 재임했던 남덕우씨가 타계했습니다. 이 분의 영향력이 당시 정, 관계를 통틀어 상당했었기 때문에, 세간에서는 서강학파라는 명칭도 붙여지곤 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와 대비되는 서울상대계열도, 성장을 중시하는 정통 관료들(김학렬씨 등), 성장과 복지를 두루 중시하는 분위기(조순- 정운찬), 진보 성향이라 할 수 있는 변형윤교수 라인 들 스펙트럼이 다양합니다. 출신 학교에 따라 일률적으로 그 성향이 정해진다고 보는 시각은 나이브하고 부정확합니다.  


김광두씨를 어느 클래스로 분류하건, 그 개인의 성향은 중도 보수에 가깝고, 리버럴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과거 그는 한겨레21 등의 매체에 글을 기고할 시절부터,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 선단식 경영을 강도 높게 비판해 왔습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그의 스탠스는 보다 우성향으로 선회하는 것으로 보였는데요,  이 책에서 그를 "박근혜의 경제 과외교사"라고까지 표현한  건 다소 과장된 면이 있습니다만, 보수정당의 집권 시 대체로 그 경제정책 기조를 옹호하거나 우군화한 입장이었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기업에 대해 집중 견제하는 듯 신랄한 모습은 변함이 없지만 말입니다.


상대 대담자이자 주로 인터뷰어의 입장인 김영욱씨는 오랜 시간 중앙일보에 글을 써 온 기자입니다. 이분의 태도에 대해 제 개인적으로 느껴 온 바는, 어떤 독자적인 거대 시각을 갖고 현상을 포섭, 해석하기보다는, "현장의 생생한 분위기와 절실한 니즈"를 저널리즘의 미덕을 잘 살려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데 능했던 분으로 기억합니다. 김광두씨가 패러다임 메이커에 가깝다면, 이분은 "캐스터"에 유사합니다. 스포츠 중계도 캐스터가 있고 코멘테이터가 있듯, 이 두 분의 대담집은 반대되는 입장의 격론이 아닌, 협업의 정책 설명회에 유사합니다. 두 사람 모두, 체제의 변혁보다는 개량과 생산성 강화를 지향하는 데 한 목소리를 내는 쪽입니다. 이분이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출신이나, 그 정보는 이분의 성향을 짐작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진 않습니다. 그보다는, 보광과 삼성에 긴밀한 연을 대고 있는 중앙일보사에 일생을 몸담은 그 커리어를 주목해야 합니다. 


하지만, 김영욱씨의 견해와 시각이 상당히 대기업의 이익 옹호에 편중된 감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김광두씨의 발언이 진보적으로 들립니다. 만약 이분이 정말 박근혜의 경제 과외 교사였다면, 앞으로 이 정부의 대기업 관련 정책은 상당히 볼만한 게 많을 것만 같습니다. 두 분의 성향이 이처럼, 크게 봐서 초록동색이나 세부적으로 음영차가 진하게 대비되기에, 어찌 보면 섀도우 복싱 같고 어찌 보면 신경전깨나 벌이는 진짜 승부 같은 인상도 줍니다. 대체로 신정부에 대해 호의적일 수밖에 없는 두 인사가 그래도 의견이 갈라지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놓고 벌이는 논쟁입니다.


여기서 다시 "창조"로 돌아가겠습니다, 앞서 제가 "창조"라는 단어에 큰 방점을 찍을 게 없다고 한 건, 이 책 곳곳에서도 드러나는 주장과 통합니다. 토니 블레어의 "제3의 길" 이래, 이 이슈는 지구 어디서나 정치인들이 목소리를 높이던 이슈입니다. 책에도 나와 있듯, 김대중정부의 "신지식인" 프로그램과 소위 창조경제는 내용상 대단히 유사합니다. 표절 문제가 거론될 정도로요. 냉전 종식 이후 신성장 동력의 고갈은 언제나 기업인과 정책 당국자를 괴롭혀 왔습니다, 과거의 컨벤션을 깨고 새로운 생산 프레임을 정립해야 함은 국지적 과제가 아닙니다. 그러니 그 표어의 문언이 어떠했든, "창조경제"는 과거의 "신지식인"의 틀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문제는, 그 다음 진보정권에서의 "참여" 요소를 어느 정도 배합하느냐에 있습니다.  


김영욱기자가 묻기를, "너무 경제민주화만 강조하면 대기업의 사기가 죽지 않겠는가?"라고 합니다. 사실 질문의 표현에는 어폐가 있습니다. "사기"는 약자의 입장에서 고려되어야 하지, 덩치 큰 거인을 배려할 계제가 아니죠. 여기에 대해 김광두씨는 모호한 표현으로 얼버무리는 느낌입니다. "경제민주화의 뜻은 대단히 넓어서, 물적 생산품의 범위가 아닌 지식 생산 작업도 포함시켜야 한다." 어찌 보면 동문서답입니다. 아마 그는 "경제민주화의 초점을 지식산업에 둔다면, 대기업의 입장이 딱히 위축될 건 없다."는 뜻이었던 것 같습니다. 판을 키워서 봐야지, 대기업과 벤처의 제로섬 게임으로 볼 게 아니라는 점 강조하고 싶었겠지요. 대기업 공격의 예봉이 과거보다 다소 무뎌진 느낌도 저는 이 언급에서 받았습니다.  


리버럴이 진보 스탠스와 뭐가 다른지 김광두씨는 자신의 이 언급에서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 줍니다. "창조경제는 노조도 그 예외가 아니다. 흔히 창의성과 노조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데, 일반 협약으로 근로시간과 임금을 규정하여 틀에 박아 두려는 것이 노조다. " 어떻습니까? 이 점에서 그의 입장은 정운찬 등의 "동반성장"과 궤를 같이하거나, 더 보수화한 느낌마저 있습니다. 창의성과 노동 계급의 이익은 정반대의 상관 관계를 보이는 건 최근의 그 예뿐이 아닙니다. 산업 혁명 초기 러다이트 운동이라는 게 다 뭐겠습니까? 혁신은, 단순 반복 혹은 저부가가치 업종 종사자의 이익을 가장 먼저, 그리고 큰 폭으로 침해합니다. 혁신과 창의의 적은 대기업이라기보다, 오히려 그 반대편에 있음이 그리 어색한 명제는 아닙니다. 세상은 다변수 다각 대결 구도이지, 자본 - 노동의 이분법 구도가 더 이상 아니기 때문이죠.


이 책의 제목은 "한국형 창조 경제의 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포인트는 오히려 "한국형"에 놓여 있습니다. 그만큼 "창조"의 이슈는 새로울 게 없는 오랜 것이기 때문이죠. 역설적이게도, 창조경제의 성패는 오히려 그 상충 요소에 가까운 "경제민주화" 비중을 어떻게 배합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게 이 책을 읽고 정리한 제 개인의 느낌이었습니다. 이 책이 발간된 지 몇 주가 채 되지 않아, 그 당시 직전 정부는 증세와 복지 후퇴를 변명하고 나서서 많은 지탄을 받았습니다. 이 책의 두 대담자는 그 점을 일치된 어조로 이미 예견하고 있었구요. "창조경제"의 허와 실은 그 점에서 이미 누구의 눈에도 뚜렷이 보이는 바 있었던 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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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전략
장석만 지음 / 다할미디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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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한국인들은 "량원건"이라는 기업가도, "싼이"라는 대규모 기업의 이름에도 익숙지 못한 게 보통 아닐까 싶습니다. 뚜렷한 실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실체의 지난 이력이 보잘것없다는 이유만으로, 그 실체가 우리의 생존과 번영, 안위에 직접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까지 애써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면 썩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겠죠.

 

 

저는 이 "량원건 성공 스토리"를 읽고, 마치 한국의 정주영처럼 불굴의 기업가 정신을 가진 어떤 개척가의 빛나는 입지전을 훑어낸 후 제 자신이 큰 감동을 받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출판사의 소개글에도 나와 있듯이, "미국의 19세기 초 골드러시 당시, 돈을 번 측은 골드 디거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장비를 제조하고 조달하거나 여정에 필요한 식량을 공 급하던 상인들이었다."는 거죠. 마치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챙긴다는 말처럼, 한창 국가 건설의 붐이 일던 도약기의 중국에서, 일시적인 승자와 행운아는 이후 허무하게 자리를 내어 주기도 했지만, 이들 기업가들이 무슨 영역에서 활약하건 그들의 사옥, 그들의 헤드쿼터, 그들의 이동 경로 그 구축과 안위를 보장할 건설 사업만큼은 지속적인 수요 엄청난 규모의 시장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산 업 분야도 탑 비즈니스맨도 그 부침(浮沈)을 거듭했지만, 그들을 뒤에서 보조하는 중장비 제조 산업은 경기를 타지 않고 굳건히 알짜 수익원으로 남는 게 당연했고, 곳곳에서 흙을 파고 땅을 다지며 건물을 지어올리는 모습이 그칠 날이 없는 만큼, 이 량원건의 싼이집단(그룹)은 여태 큰 위기 없이 승승장구했습니다. 이 책의 제 2장 p31에 나오는 마이클 포터의 말처럼, "무슨 산업에 진출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잘되는 산업을 선택하면 돈을 못 벌기가 어려울 것이고, 전망 없는 산업에 진출하면 돈을 벌기가 어려울 것이다."가, 이 책의 핵심을 잘 요약해 줍니다. 량원건이란 사업가가 특별히 미래를 보는 안목이 뛰어났다기보다는, 전략을 현명하게 짜서 치밀한 사업 관리와 능수능란한 인맥관리 능력으로 오늘의 그 자리에 올랐다고 보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한국의 정주영 창업주처럼 남들이 보기에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영역에 비범한 배짱과 초인적인 집착으로 뛰어들어, 그야말로 무에서거대 제국을 창출한 경우와는 좀 다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솔직히 들었습니다.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어느 천재 사업가의 일생을 되짚어서 그로부터 교훈을 추출하는 데에 있다기보다, 오히려 지금의 중국 사업가들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오늘날의 부와 성취를 이루었는지 그 전형적인 성공 공식을 추출해 보는 작업, 또 책을 읽는 중 얻을 수 있는, 중국의 정치, 사업 환경에 대한 갖가지 부대 지식을 늘릴 수 있는 기회를 갖는 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뇌리에 깊이 새겨졌던 것은, 중국은 누가 뭐래도 공산당 1당 독재가 지배하는 사회주의 국가이며, 당국의 규율과 규제의 수준이란, 다른 자유로운 문화권 출신의 사업가가 쉬이 적응하기 어려울 만큼 강도 높으면서도 독특한 컬러를 띠고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이 책의 서두는, 미국 오리건 주에 진출한 싼이 그룹의 미국 현지 법인 Ralls가, 연방 정부로부터 "국가 안보 저해 우려"를 이유로 시설 철수를 명령한 조치에 대한 법원 제소를 결정한 일화로부터 시작합니다. "법치주의가 지배하고, 공평한 기회가 보장된다는 미국에서, 어떻게 이런 부당하고 편파적인 행정이 시행될 수 있는가?" 싼이 그룹은 전 중국의 분노와 의기를 대변하겠다는 듯 가망 없어 보이는 법정 투쟁에 나서는데요. 사실 자국 내에서는 외국 출신 기업가들에게, 도저히 납득 못 할 불합리한 규제를, "여기는 너희 땅이 아닌 중국"이라는 이유만으로 강요하는 저들이, 타지에서 당한 불이익에는, 전세계적 차원의 정의 구현 책임을 홀로 떠맡기라도 한 양 과장된 언사를 발하는 모습이 실소를 자아내기도 합니다. 중국의 행태는 국외에서도 고운 시선의 대상이 아닌데, 예를 들면 그들이 아프리카에서 소위 자원 확보라는 기치 아래 벌이는 이기적이고 약탈적인 행보가 현지인의 비난을 받는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죠. 재미있는 것은, 그들의 법정 투쟁을 두고 "호상(湖湘) 문화의 의기남아는 천하의 문제를 자기 일마냥 생각하여 총대를 매고 진두에 나서며..." 같은 말로 미화하고 있는 점인데요. 국부 마오도 후난 성 출신이고, 수호지에 등장하는 호걸 상당수도 이 지방 출신이라는 게 의미심장하죠. 의기가 서로 투합한 지역 연고의 협객 집단이, 대의와 조국을 위해 분연히 나선다는 로망은 몇 천 년이 지나도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 같네요. 물론 그 낭만이 주변 모두를 위해 좋은 결과를 낳을지, 아니면 그들만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호기에 지나지 않을지는 큰 의문으로 남지만요.

 

량 원건은 가난한 직공의 아들이었습니다. 집안이 한미했고 학창 시절 학업에서 딱히 두각을 드러낸 바도 없었지만 대단히 성실하고 영리했던 타입이었던 걸로 추측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작은 국영 공장에 관리직으로 취임했는데, 어느 순간 괜찮은 돈벌이가 될 구상이 떠올라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아직 중국은 성장의 전망이 보이지 않았고, 관[官]은 민간에 거의 재량과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 단계였습니다), 동창과 동향 친구들과 더불어 사업체를 차립니다. 당시만 해도 공공 섹터의 일자리를 마다하고 "돈벌이 따위"에나 나서는 모습이란, 명분과 실리 그 어느 것도 갖추지 못한 어리석은 짓으로 받아들여질 뿐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창엊 초기의 어려움을 일정 기간 완화해 줄 자본금이 넉넉했던 것도 아니었구요. 이처럼 무일푼, 주위의 비웃음을 한껏 안고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한국의 정주영과 공통점이 존재하긴 합니다.

싼 이그룹의 놀라운 점은, 중장비 제조와 건설 부문에서 거둔 국내에서의 큰 성공을 기반으로, 바로 해외 공략에 나섰다는 그 패기입니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기존의 거인들과 마찰이 일 수밖에 없었는데요. 책의 초반에 잠시 소개되는 것처럼, 벤츠와 (일본의) Sony를 상대로 법적 쟁송을 한바탕 치르기도 했습니다. 그림에서 보시듯, 벤츠의 로고(우리가 잘 아는)와, 이 싼이그룹의 로고는 대단히 비슷합니다. 저도 책을 받아들었을 때 바로 벤츠가 떠올랐을 정도였는데요. 어쨌든 싼이는 이 투쟁에서 최종적인 승리를 거둡니다. 그때의 승리가 가져다 준 쾌감이 아직도 생생한 듯, 저자는 량원건이 그 미미한 출발을 다질 무렵부터 무명의 한 디자이너에게 받은 이 유서 깊은(?) 도안이 어떻게 탄생하고, 창업주가 지금까지도 그 관대한 보상을 행하고 있는지 자못 유쾌한 어조로 늘어놓고 있습니다.

 

이 책의 원제목은 <나와 량원건>입니다. "나"는 누구냐면, 허진린(何眞臨. 하진림) 전 싼이 부사장입 니다. 그는 공산당 당료로 초기 경력을 시작하다가, 비교적 일찍 민간 사업 분야에서 진출하여 비즈니스맨으로서의 커리어를 뚜렷하기 다진 케이스로, 싼이로부터는 오래 구애를 받았으나 비교적 늦게 합류한 편이라고 합니다. 장기 비전의 설계, PR, 그룹의 "입"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하네요. 량원건 회장이 그다지 학식이 빼어난 편이 아님을 잘 커버하는, 요긴한 가신 노릇을 측근에서 수행하는 핵심 막료입니다. 그 자신도 스스로 량회장과의 인연을 "군신 관계"로 칭하고 있습니다. 제 8기 전인대(아마 1996년으로 추정됩니다)에서 "국가지도자"에게 대담한 발언을 통해, 민간 기업이 그 영역에서 자율성을 보장받기를 강력히 청원한 전설적인 에피소드가 소개되는데요. 여기서 "국가지도자"는 "심판이 휘슬도 불고, 공도 차면 승부의 공정성이 있을 수 있겠는가?" 라는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소위 state capitalism의 폐해와 모순을 경계하는 이 표현은, 지금까지도 매체에서 즐겨 거론되는 관용어입니다. "국가지도자"는 책에 그 실명이 나와 있지 않으나 장쩌민임이 거의 확실합니다. 마치 "피휘"라도 하듯 삼가는 태도를 저자는 보이고 있더군요.

 

량원건의 출신이 비천한 직공의 아들임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명문 공산당 당료의 딸에게 구애했다가 여성의 양친으로부터 거절당한 일 역시 유명하다는데요, 저자 허진린은 이 일에 대해서도 "빈부 격차라는 시선으로 볼 게 아니라, 중산 농민 계급의 끝자락에 속한(참.... 읽으면서도 그런 개념이 있을 수 있나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습니다) 량과, 소농의 부르주아 근성을 적대시하던 당료의 시각 차이"라고 애써 미화하는 대목도 있습니다. 승자에게는 시비를 따지지 않는 법이라던, 스탈린의 마오에 대한 코멘트가 생각이 나더군요. 하지만 량원건이, 주변 사람들에게 관대하고 한번 맺은 인연과 은혜는 절대 잊지 않는 보기 드문 인품의 소유자임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대목은, 중국이 현재 국제 M&A 시장에서 돌풍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음을 이책에서도 확인할 수있다는 건데요. 세 달 전에 <국제인수합병>이 라는 책의 리뷰를 통해, "유럽 기업은 콧대가 높아서, 거액만 제시한다고 바로 기업을 팔지 않는다. 하물며 동양인에게는"이라고 적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 책의 저자도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푸츠마이스터社 카를 슐레히터 회장이, 이 량원건에게 선뜻 회사의 운명을 맡긴 건, 대단한 상징성을 지닌 것으로 봐야 한다는 거죠. 이 사건을 두고 저자는 놀랍게도, "육조 혜능이 홍인으로부터 법통을 물려 받은 대사건이나 마찬가지"라고 하고 있습니다. 좀 분별없는 과장이라고까지 생각되면서도, 한편으로 혜능이 미천하고 빈한한 출신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긴 합니다.

 

큰 물에서 놀면 같은 그릇이리도 성공의 가망이 높다는 뜻을 유명한 표현으로 남긴 고사는, 사실 이사(李斯)의 그것을 따를 말이 없죠. 어느 날 관의 창고를 지키며 쥐가 배불리 쌀을 갉아먹는 모습을 보고, 같은 쥐라도 담장 밖을 떠도는 놈은 배를 주리는 반면, 곳간 안의 녀석은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호강을 하는 걸 보고 큰 충격을 받은 그는, 이후 대국의 무대로 진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영화를 진시황의 아래에서 누리게 됩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말로가 말할 수 없이 비참했죠. 저자 허진린이 그 고사를 모를 리 없음에도 굳이 인용하지 않은 건, 주군의 장래에 행여 불길한 언사를 띄우기 저어하는 마음이 컸을 줄 압니다. 량원건이 한고조 유방 같은 성공한 창업주가 될지, 2인자 권신으로서 그 극심한 명암이 교차했던 이사와 같은 길을 걸을지는 지켜 봐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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