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정치 홍성민 교수의 알기 쉬운 정치철학 강의 2
홍성민 지음 / 인간사랑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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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23) 7월에 홍알정(=홍성민 교수의 알기 쉬운 정치철학 강의) 제1권을 리뷰했었고 이번이 그 두번째 권입니다. 이 2권에서는 자유주의 정치 철학과 현실태를 커버합니다. 자유주의는 영국, 프랑스 등 민주주의의 가장 오랜 기초를 꽃피운 나라에서 발달한 정치 사조이며, 그 양태도 어느 하나로 단정지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하게 작동합니다. 반면 전체주의는 비록 내세우는 지향이 좌와 우로 달라도 시민을 억압하는 행태는 놀랄 만큼 닮아 있다는 게 큰 차이입니다. 

윈스턴 처칠은 일찍부터 "민주주의는 최악의 시스템이지만 현존하는 체제 중 최선의 것이다"라고 한 적 있습니다. 좋아서 쓰는 게 아니라 그보다 더 나쁜 억압적 기제에서 살 수가 없기 때문에 운용하는 제도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도저히 자유민주주의를 그 원형대로 쓰기 어려운 지경까지 왔는데, 저자는 그 위기의 본질을 다섯 가지로 짚습니다. 첫째 대표성의 위기, 둘째 빈부 격차, 셋째 포퓰리즘으로 인한 주권자 개념의 타락, 넷째 관료의 부패, 다섯째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집단 간의 투쟁과 차별 등입니다. 

이 책은 크게 5부로 나뉘며 자유주의 정치 사상의 대부 다섯 명을 각각 다룹니다. 이 중에는 그 사상적 경향을 자유주의에 한정할 수 없는 훨씬 큰 스케이프를 가진 이도 있으나, 오늘날 자유주의의 재모색 과정에서 반드시 참고해야 할 사상가로서 꼽힌 이도 있습니다. 그 다섯은 홉스(대표성의 고찰), 로크(소유권), 루소(일반의지), 칸트(공공성), 헤겔(인정투쟁) 등입니다.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을 논한 홉스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싸움의 원인을 3가지로 짚었습니다. 첫째 경쟁, 둘째 자신없음, 셋째 명예. 이처럼 자연상태라는 게 개체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을 지경까지 가자 리바이어던이라는 거대한 권력이 안전 보장을 위해 호출되고, 시민의 도구적 이성이 "폭력과 공포의 심리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작동된다는 게 홉스적 시민계약설의 핵심입니다. 영국은 적어도 권리청원(Petition of Right. 1628) 이래 왕의 권력인가, 아니면 의회의 주도권인가를 놓고 끝없는 논쟁이 있어 왔습니다. p29에 나오는 아이자이어 벌린(이 사람은 E H 카의 책에서도 자주 인용되죠)과 퀜턴 스키너의 해석 다툼(20세기)이 그 좋은 예입니다. 

로크의 소유권 개념을 다루기 앞서 저자는 중세 교부 철학상의 원시 개념을 먼저 환기합니다. p57에서 말하는 교부철학자 클레멘스는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를 말합니다. 다음으로는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모스가 등장하며, 마지막으로 스콜라 철학의 개창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나옵니다. 저자는 이 셋의 사상을 토지공유제, 노동가치설, 손상의 한계, 충분의 한계로 요약하는데 현대 자유주의 정치사상의 재의의를 규명하려는 게 그 의의입니다. 이어 저자는 자본주의에 대해 강력한 안티테제로 등장했던 칼 마르크스와 (약간 뜻밖에도) 토머스 페인을 설명합니다. 물론 <상식>을 저술하여 미국 독립 혁명에 불을 지른 그 사람이며 시기상 칼 마르크스가 태어나기도 전에 타계한 그 인물입니다. 토지 소유권에 내재한 사회적 합의설을 거론했던 이유에서입니다. 

루소의 일반의지, 즉 volonté générale에 대해 이후 프랑스 대혁명의 주역 중 하나였던 시예예스 주교, 또 한참 후의 슘페터의 해석이 갈립니다. 시예예스는 국민의회에서 입법권을 행사하는 대의원들이 이 일반의지를 대표하는데 국민의 일반의지라는 게 분명히 선재한다고 여깁니다. 이때의 국민이란 주로 부르주아지(제3계급)이지만, 이후 레닌과 마오는 이를 노동자와 농민으로 바꿔 해석했습니다. 반면 20세기의 슘페터는 전문가의 식견과 능력이 중요하며 일반의지도 하나의 고정된 모습이 아니라 수시로 변용된다고 여깁니다. 저자는 여기서 일본의 문학가 아즈마 히로키(1971~)의 "일반의지 2.0"을 인용하며 루소의 개념이 21세기 현대에 들어 어떻게 재탄생, 재해석되어야 하는지 하나의 시안을 논합니다. 

칸트의 도덕감정 논의는 가장 소박하고 어찌보면 유치하기까지 한 단초에서 가장 추상적이고 고도의 개념을 논의해 가는 그 치밀함에 위대함의 본질이 놓입니다. 계몽을 논하며 그는 "이성의 공적 사용(p195)"을 자세히 추급하는데, 시민은 정부의 공권력 행사에 복종도 해야 하지만(예:납세), 동시에 후견인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미숙한 상태에 놓인 존재가 결코 아니므로 비판적으로 행동해야만 할 때가 있다고 합니다. 국가 전체가 이런 자유사상에 기반해서 작동해야 성숙한 단계로 접어든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공론장의 구조변동>을 인용하며 칸트적 계몽의 현대적 변용을 알기 쉽게 논합니다. 

헤겔은 국가를 인륜의 최고형태라고 규정했었습니다. 이때 인륜의 원어는 Sittlichkeit입니다. 헤겔은 젊었을 적 피가 끓는 개혁주의자였으나 그 역시도 어리석은 자코뱅파가 혁명의 대의를 어디까지 망가뜨릴 수 있는지 본인이 목도한 세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사상은 기존의 자유주의에 대해, 인륜의 객관성을 바탕으로 비판합니다. 헤겔 사상의 2단계에서 저자는 인정투쟁(Kampf um Anerkennung)을 집중 분석하며, 대체 왜 인간 사회에 분쟁이라는 게 발생하는지, 어째서 종교나 이념 등 추상적인 가치 때문에 이처럼 치열한 싸움이 빈발하는지를 규명합니다. 

홍성민 교수님 특유의 쉽고 명쾌한 필치로, 어려운 정치사상의 이슈들이 설명되기에 책이 술술 잘 넘어갑니다. 즐거운 독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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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쉬운 독학 새벽하늘 부동산 경매 첫걸음
새벽하늘(김태훈)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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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경매에 싸게 나온 양질의 부동산을 잘 노려 좋은 가격에 취득하려는, 전문가 아닌 일반인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그런데 경매에 나온 것 중에도 이러저런 예상치 못한 함정이 붙은 게 많고, 까딱 잘못하면 오히려 덤터기까지 쓸 수 있습니다. 내가 나중에 감당할 수도 없는 비용이 줄줄이 지출될 수 있다면 이는 낙찰가만 낮게 받았다고 해서 낮게 구입한 게 아닙니다. 경매는 입찰 과정에서의 세세한 기술뿐 아니라 부동산 취득과 운용의 전 과정을 두루 이해해야 하는데, 이 책은 컬러 도판이 많고(부동산 취득에는 각종 서식과 증빙이 필요하므로 독학용 책에는 이런 견양, 견본이 많이 실려야 합니다), 경수와 하늘이라는 두 가상 인물이 우리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을 배려하면서 대화를 이끌어 가므로 쉽게 머리에 쏙쏙 들어옵니다. 

p45에서 하늘이 적절하게 말하는 것처럼, 경매 사건에 입찰하기 위해서는 "권리 분석"이라는 게 필요한데, 본래 이런 건 개인이 등기사항전부증명서를 "유료로" 발급받고 나서야 살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구독료 50만원 정도를 1년에 받고 제공해 주는 사이트들이 있다고 합니다. 하늘은 이걸 10명 정도가 아이디 하나를 구매해서 돌려쓰는 게 경제적이라는 충고까지 해 줍니다. 이용약관이나 기타 법규에 위배될 소지는 혹시 없을지는 물론 개인이 개별적으로 체크해 봐야 하겠습니다(물론 이렇게 책에까지 실었다는 건 문제가 없음을 믿어도 된다는 뜻이겠습니다만). 심지어 하늘은, 해당 업체와 제휴가 되어 있는 멤버십 가입까지 권하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원스톱 서비스입니다. 그만큼 경매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사이트까지 생기는 것입니다. 

가등기라는 건, 이런 부동산을 취득하려는 이들이 정말 주의깊게 살펴야 할 권리사항입니다. 가등기는 책 p89에서 잘 설명하듯이, 쉽게 말해 "누군가와 매매계약이 이뤄졌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현재의 등기 명의자는 조만간 명의자가 아니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것인데, 잔금까지 다 치렀다고 해도 우리 나라는 명의가 넘어가야 소유권이 넘어가는 이른바 "성립요건주의"를 취하므로 매수자가 아직 (누구에 대해서도) 소유권을 주장 못 합니다. 그런데 계약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계약일 뿐이므로 그게 끝까지 쌍방이행으로 이어지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가등기는 그저 가등기로만 해석되어야 하며, 다른 결과가 벌어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게다가 가등기에는 소유권 이전을 반드시 전제로 삼는 게 아니라 담보목적 가등기라는 것도 있으므로 더욱 주의깊게 살펴야 합니다.  

경매에 낙찰되었다고 해도 그 물건의 가액이 모두 내 것이 되는 게 아닙니다. p118에서 하늘이가 말하는 것처럼 우선은 집행비용이 먼저 제해집니다. 원칙적으로 이 비용은 채무자 부담이지만 돈이 없어 집이 넘어가는 판인데 그 비용이 납부되었을 리가 없고 그래서 낙찰가에서 이걸 먼저 제하는 것이니 사실상 채권자가 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부분에서 경수가 한탄하는 내용이 있는데, 경수는 까딱했으면 보증금 중 상당액을 그냥 날릴 뻔했으나 천만다행으로 위기를 면합니다. "왜 이렇게 중요한 내용을 학교에서는 안 가르치는 걸까?"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학생들이 나중에 사회에 나와서 정말로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이런 것이기 때문이죠. 

사정이 이러니 채권자가 만약 낙찰이 되어도 선순위 물권자, 소액우선보증금 등을 다 떼고 나면 아무것도 안 남는다, 이러면 경매가 애초에 기각이 되어 버립니다. 이걸 책 p158에 나오듯이 "무잉여"라고 부릅니다. 책에 나오는 예라면 3차 최저매각가격 5억 6350만원 가지고서는 오히려 8850만원 마이너스가 됩니다. 이때 무잉여가 안 되는 최저가격이 6.9억이라고 책에 나오는데 그 이유를 제가 좀 보충해 보자면 선순위 근저당액 6억 5천 2백에다가, 경매신청 채권자의 채권액 4천이 더해진 금액이라서이겠습니다. 

p204를 보면 여튼 대항력 있는 임차인은 있을 수 있으며(경매 절차 신고 여부에 무관하게), 따라서 그 점유자가 어떤 지위인지, 탐문을 통해서건, 금융기관이나 기타 이해관계자한테서건 정보를 얻어내야 한다고 하늘이는 경수에게 가르칩니다. 하늘이도 이야기하듯이 등기부상 권리 분석보다는 임차인에 대한 분석이 훨씬 어렵다는 게 현실입니다. 

가상인물 하늘이가 워낙 모르는 게 없이 가려운 곳을 쏙쏙 긁어주고, 경수도 우리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을 대변해서 필요한 걸 잘 물어 주기 때문에 독자가 대리만족할 수 있습니다. 전에는 이런 책에서 그저 이름만으로 지적되던 걸, 이 책에서는 컬러 사진으로 각종 법적 서류나 건물들을 다 보여 주기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 훨씬 머리에 잘 들어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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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의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
가에쓰 히로시 지음, 염은주 옮김, 기타무라 다이이치 감수 / 북멘토(도서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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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その犬の名を誰も知らなあい입니다. 신석기 이래 개는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 중 하나였습니다. 아니, 인간과 종이 다른 생명체 중에 개처럼 친숙하고 정이 많으며 생사고락을 함께한 존재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물론 인간이 문명을 이처럼 가꾸고 번영하며 살아 온 데에는 개보다 더 큰 기여를 해 준 다른 동물들도 있겠습니다. 실험용 쥐, 모르모트라든가, 가축으로 고된 노동을 해 준 소, 단백질의 주된 공급원이었던 돼지와 닭... 하지만 개의 경우 그 희생의 상당수가 자발적(?)이기도 했고, 유독 많은 야외 활동에서 인간과 제법 교감까지 하며 난이도 높은 기여를 했기에 그들을 더 특별히 기억하게 되는 듯합니다. 

한국도 1980년대 중반부터 남극에 과학기술 인력을 파견했었기에, 극한의 기후 여건에서도 나라의 이익을 위해 많은 고생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지금 이 책은 일본의 남극 기지 주재원들이 현지에서 함께했던 여러 개들에 대한 감동적인 사연을 담았는데, 저도 책을 읽고서 비로소 알았지만 일본은 1955년 파리 제1회 남극회의에 처음 참여할 때부터 남극과 관련을 맺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일본은 당시 패전국으로서 대단히 국제 평판이 나빴고, 이런 회의나 국제 활동에 부지런히 참여함으로써 다시 국제 사회에 재편입도 이루고 장기 국익도 도모하자는 생각이었다고 나옵니다. 시기가 이처럼 오래전이라서 기지 이름도 쇼와, 당시 재위 중이었던 일본 임금의 연호를 그대로 딴 채입니다. 물론 이 군주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그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가라후토라고 하면 일본이나 한국이나 대단히 나이가 많은 이들이라야 익숙한 명칭이겠습니다. 알다시피 남극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극한의 기후입니다. 사람이 외쿠메네에서 가동하던 이동 수단은 각종 인프라가 깔려야 이용할 수가 있습니다. 게다가 남극처럼 추운 곳에서는 스마트폰, 자동차 등의 기기가 제대로 작동하길 기대하기도 힘듭니다. 더군다나 1950년대 중후반이라면 아직 (일본뿐 아니라 어느 나라라 해도) 기술 수준이 일천할 때이니, 남극에 진출하려던 기술진은 개썰매를 대뜸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썰매를 이끌 동력은 당연히 개들이겠으며, 일본 기술진에게 가용 가능한 견종은 가라후토견(樺太犬)밖에 없었습니다. 

책 16, 17페이지에는 모두 19마리의 개들이 사진과 함께 그 이름이 나옵니다. 이들 개들에게는 마리라는 조수사를 막 대기도 미안할 정도입니다. 이 개들이 아무리 가라후토견이라 해도, 사할린과 남극의 추위라는 건 아예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19마리 중 9마리가 죽었고, 7마리는 행방불명되었으며, 오직 세 마리만 살아남았을 뿐입니다. 사람도 시설 안에 오래 견디기 힘든 판에 개들까지 일일이 챙기기 어려워서 현지 기지에 안타깝게도 몇 마리가 남겨졌습니다. 비정하게 그럴 수 있냐 싶어도 당시는 일본이 패전국으로 형편이 녹록지 않았던 데다, 기지 관리 노하우가 매우 부실했다는 점 감안은 해야 하겠습니다. 

"가라후토견은 (본능적으로) 썰매를 끌고 싶어한다(p131)." 정말 그런 것인지, 아니면 고된 노동을 시키는 인간이 미안하니까 그저 그렇게 생각할 뿐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개는 개일 뿐이라서 예측 불허의 행동을 합니다. 사람도 단체와 조직의 목표에 일일이 호응하지 않고 일탈을 일삼는데 동물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리키는 끝내 그 행방이 밝혀지지 못했고, 내성적인 벡은 앓다가 결국 숨이 끊어졌습니다. 개들도 다 개별 생명체라서 견종만 같다고 해서 성격이 같은 게 아니기에, 얌전하고 착했던 애가 유명을 달리하면 사람 입장에서 훨씬 마음이 아프기 마련입니다. 엄마 젖 먹고 자라는 포유류의 감정선은 아주 원초적인 면에서 다들 닮은 데가 있습니다. 수십 년 전 일을 독자가 그저 지면으로 읽는데도 마음이 이처럼 슬퍼지는데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대원들이야 오죽했겠습니까. 

이런 극한지에 파견되는 대원들은 자기 분야 최고의 전문가일 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강건하고, 마치 전쟁이 한창인 theater에서 순간순간 변화하는 상황에 기민하게 적응하여 판단을 내려야 하는 야전사령관의 자질까지 갖춰야 한다는 점 다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어떤 매뉴얼이 마련되어서 그대로만 따른다고 끝이 아닙니다. 그 나라에서 최초로 극지에 파견되었는데 매뉴얼이 어디 있겠으며, 패전국에게 다른 나라들이 뭘 넉넉히 공유해 줄 리도 없습니다. 그런 생사고락을 같이하고 마침내 살아남은 개들에게 얼마나 한편으로 미안했겠으며 또 그 건재한 모습에 반갑고 대견했겠습니까. 

사실 저는 일본이라는 사회가 한국에 비해 개인적 자유가 억압되는 면이 많다고 보며, 비합리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도 여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예를 들어 p303 같은 곳을 보면, 지원도 변변치 않으면서 진실을 알리는 소통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검열하려 드는 당국에 대한 분노가 표시됩니다. 극한 상황에서 분투하는 인간들의 생생한 감정이 드러나는 한 편의 서사시를 읽은 느낌이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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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 라이프 밸런스 - 디지털 세상에서 똑똑하게 살아가는 101가지 방법
타이노 벤즈 지음, 이은경 옮김 / 책장속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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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온라인 네트워크가 발달하면서 각종 커뮤니티 활동에 과몰입하거나 게임 등에 중독된 이들도 많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그만큼 삶의 질도 높아지지만, 그만큼 부작용도 만만치 않게 늘어납니다. 우리는 당연히 대용량 메일계정을 여러 개 갖고 그 안에 스팸메일이 얼마나 늘어나든 말든 그게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며 관리도 제때 않고 방치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아무 쓸 데 없이 쌓인 스팸메일들이 우리의 환경을 망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기 쉽습니다. 나도 알지 못하는 새에 환경을 내가 더럽히기도 하고, 내 생활 습관을 소셜 미디어 등이 악화한다면 우리는 테크놀로지의 과잉 때문에 점차 어떤 늪으로 빠져들어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삶과 기술 사이에 어떤 균형점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p77을 보면 어떻게 해야 소셜미디어 중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지, 인텔리전트 잉크(웹 디자인 제작 스타트업)에서 관리직을 맡고 있는 베리티 크래프트라는 분의 말을 인용하여 저자는 제안합니다. 우리가 이미 사회 활동을 SNS 없이 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아예 끊으라는 말은 비현실적입니다. 시간을 정해 놓고 염두에 두었던 일정 활동만 하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별반 새로운 내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계정(내 계정 포함)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많습니다. 이게 심해지면 다 중독으로 발전하는 것이죠. 

p19에는 오프라 윈프리의 말이 하나 인용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바로 시간이다." 이게 그 무엇으로도 대체가 안 되는 시간을 아껴 쓰라는 말도 되지만, 가끔은 너무 바쁜 일정에서 좀 벗어나서 여유 있는 시간을 좀 가지라는 뜻에 더 가깝겠습니다. 이 머리말 파트에서 저자는 테크라이프밸런스, 이른바 테라밸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들이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독자들에게 워밍업을 준비시킵니다. 이 책은 우리가 어떻게 첨단 IT 인프라와 우리 삶의 질을 조화시킬지를 가르치되,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실천 방안을 알려 주려는 목적입니다. 따라서 책에서 시키는 대로 기술적인 부분까지 하나하나 따라하는 게 좋겠습니다.  

폰 홈화면에 이것저것 쓸데없는 단축아이콘을 깔아두는 건 비능률적이라는 지적이 p53에 나옵니다. 일단 아이콘이 너무 많으면 정작 필요할 때 내가 그 앱에 바로 진입하기가 힘듭니다. 또 아무래도 이런저런 앱이 폰에 지나치게 많이 설치되면 앱이 서로 꼬여 오작동이 일어나기도 쉽죠. 그래서 p53 같은 곳을 보면 앱 단축 아이콘을 그냥 다 지워버리라고 과감하게 충고합니다. 그냥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지우는 게 가장 잘 지우는 건지 p115에 따로 나온다고 가르쳐 주기까지 해서 웃음이 살짝 나왔습니다. 실제로 별 이야기가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가 보았는데 의외로 미처 생각이 못 미치던 부분이 있어서 고개를 끄덕이게도 되었습니다. 

나이 많은 이들은 가족, 사랑하는 가족들의 사진을 지갑 속에 넣어다니기도 합니다. 요즘은 스마트폰 시대이니 만큼 배경화면을 가족 사진으로 채우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것마저! 심지어 이것마저 과감하게 지워버리라고 합니다. 가족 사진이 아니라 고양이 사진 같은 거면 더 과감하게 지우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책 p117 이하에 어느 정도 설득력 있게 나옵니다. 스마트폰은 어디까지나 내 삶을 편하게 이끌기 위한 수단이지, 비정상적인 집착 매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읽힙니다. 대신에 예전 방식대로 오프라인 사진과 지갑으로 돌아가면 어떻겠냐고 제안합니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팁들은 1단계에서 3단계로 나뉘어 어떤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단계가 높으면 높을수록 실천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 기존의 중독적 습관에서 좀 벗어나기 어려워하는 독자라면 먼저 1단계 사항만 죽 모아서 실천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 책 저자는 많은 기업들이, 이른바 관심끌기 기술(attention-grabbing technology. AGT)을 사용하여 우리들을 무익한 중독 습관 속에 몰아넣는지 예리하게 지적합니다. 정말로 가치 있는 기술 혁신에 대해서마저 이른바 혁신 무감각(innovation numbness) 상태에 빠진 우리들이라서, 무가치한 관심 경제(attention economy)에 더욱 매몰되기 쉽기에 더욱 절실한 각성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충고가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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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인간, 그리고 하나님 - 실재에 대한 통전적 앎을 위한 과학과 신학의 연대
이안 바버 지음, 김연수 옮김 / 샘솟는기쁨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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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턴 상은 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보통 불립니다. 2013년에 타계한 저자 이안 바버는 독특하게도 핵물리학자 출신인데, 서구 세계에서 예리한 지성들이 간혹 보이는 패턴대로, 순수 사유의 영역인 철학 일부 영역에서도 큰 성취를 이룬 인물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술과 과학을 메타적으로 바라보며 이를 윤리, 종교와 연결하여 조화적으로 성찰하는 데 탁월한 진전을 이룬 저술가이기도 합니다. 본연의 필드가 핵물리학이었는데 종교 영역에서도 뚜렷한 업적을 이룬 분이라서 그 글들이 더욱 깊이와 매력을 갖는다고 하겠습니다. 

Come Holy Spirit, come, make us truly new creatures in Christ! p91을 보면 성령을 향해 이렇게 간구하는 문구가 나옵니다. 1991년의 세계교회공의회에서 작성된 기도문이 그 출처입니다. 기독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아담과 이브의 배덕행위 이후 우리 모든 인간은 원죄를 안고 태어난 것으로 나옵니다. 죄 없이 깨끗하게 태어난 몸과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회개하고 또 회개하여 깨끗한 존재로 거듭나야만 합니다. 저자는 이 결론에 이르기 전 이른바 과정 사상에 대해 설명하는데 어쩌면 신학을 메타적으로 조감할 수 있는 자연과학자의 시선이라서 이 대목이 더욱 박력 있고 정연하며 설득력 있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p76에서 저자가 거명하는 앨프리드 화이트헤드는 1947년에 타계했으므로 이 책 저자 이안 바버와 살짝은 생존기간이 겹칩니다만 직접적인 인적, 학적 연계점은 없습니다. 그러나 저자 바버 박사(물리학으로 학위를 딴 분입니다)는 저 화이트헤드 사상에 대한 심오한 통찰과 사색의 결과물을 이 책 안에 대단히 명징하게 담아냅니다. 양자물리학은 20세기에 출현하여 물리학계에는 물론 철학계에조차 엄청난 역설의 과제를 던지며 논쟁의 핵심으로 자리했는데 화이트헤드 역시 이 논쟁에 참전하여 그만의 독자적인 기여를 한 바 있습니다. 다만 바버 박사는 상대성이론, 양자물리학, 진화론으로부터 모두 화이트헤드의 과정 철학이 일정 부분 빚을 졌다고 규정하는데 보기에 따라 화이트헤드가 거꾸로 이들 분야에 기여를 했다는 해석도 존재하므로 독자는 더욱 흥미롭게 바버 박사의 견해를 좇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과연 타 유인원에 비해 질적으로 구분되는 특질을 지닌 존재일까요, 아니면 그저 양적으로 우연히 타 종(種)에 비해 몇 발 앞서가 만물의 임시 영장 노릇을 하는 중일 뿐일까요? 저자는 예컨대 p109 같은 곳에서 네안데르탈인 등 타 유인원과 비해 인간의 지적 능력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하다고 할 수 있을지, 아니면 그저 "전통적으로 생각해 오던 바에 비해 타 종과의 간격이 훨씬 좁을 뿐인지"에 대해 다소 혼란스러워하는 태도를 솔직히 드러냅니다. 

그리스도는 칼케돈 공의회 이래 신과 인간의 양성을 지닌 존재로 더 명확히 인식되었으며 단성론은 이단으로 배척되었습니다. 저자는 p124 같은 곳에서 과학적 진화론과 신학을 조화롭게 이해하려는 다소 과감한 시론을 보입니다. "단지 몸으로가 아니라 인격으로서도 그리스도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초기 생명 형태에 이르기까지, 전체 진화를 관통하는 연속적인 과정 중 어느 한 부분이었다." 확실히 이런 전향적인 서술은 아직도 구시대 인식에 머물러 있는 많은 목회자나 신도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대목이겠습니다. 

신학은 여태 이성, 감정을 어떻게 이해할지를 두고 중근세 이래 인문주의 진영과 치열한 논쟁을 벌여 왔습니다. 체스터튼 같은 이는 그의 피조물 브라운 신부를 통해 "이성을 함부로 폄하하는 건 천박한 신학"이라는 한 마디 말로 가짜 신부 플랑보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그의 단편 <푸른 십자가> 중). 지금 이 책 p163에서 저자 바버 박사는 감정의 정체를 구명하려 시도합니다. 구교 신교를 막론하고 크리스트교는 이성과의 400년 간 대전투에서 그렇게나 힘들게 포지션을 잡으며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았는데 이제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예측불허의 기질을 뽐내는 감정과도 싸워야 합니다. 저자는 모두 다섯 가지의 접근법을 고찰하며 신학이 바라보는 감정의 정체, 나아가 21세기의 현대인들이 고루 수용할 만한 해석론을 전개하려 분투합니다. 읽으면서 이 석학의 인식 지평의 한계는 대체 어디쯤인지 새삼 경외감을 느끼게 된 대목 중 하나였습니다. 

화이트헤드는 이 책에서 날카로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책의 핵심 토픽 중 하나가 과정 신학인 만큼 화이트헤드의 관점은 이 책이 디디고 선 가장 보편적이고 튼튼한 비계판(scaffold) 중 하나로 보입니다. 이처럼 서양에는 자연과학의 최변방 분야를 개척한 학자들 중 신학과의 새롭고 단단한 접점을 마련하려 분투한 뛰어난 지성들이 있으며, 이 책에서도 우수한 두뇌가 시도하는 미지에의 영역 정찰을 위한 부지런한 발걸음들이 단연 돋보이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지성과 영성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낙원에의 머무름이 즐거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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