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러피언 드림 - 아메리칸 드림의 몰락과 세계의 미래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원기 옮김 / 민음사 / 200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보의 비대칭성 이슈는 경제학자들을 꽤 오래 괴롭혀온 난제 중 하나입니다. 신고전학파가 그 이른 시절 "완전 균형, 완전 청산"을 (감히) 주장할 때부터, 왜 그럼 현실에서는 그 깔끔하고 아름다운 지복점을 찾기 어려운지 많은 이들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의문들은 지엽말단의 예외나 일시적 교란으로 취급되고 말았을 뿐, 아름다운 경제학 이론의 대(大)체계에 근본적인 회의를 부르지는 못할 요인 정도로만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조셉 스티글리츠 교수의 쾌거 이후로는 (우리가 잘 아는대로) 이 현상이 그저 일시적 예외가 아닌, 이론의 정합성을 근본에서 무너뜨릴 수 있는 상수 자격으로 더 심각하고 진지한 조명을 받게 되었죠. 더 중요한 상황 변화는, 이른바 인터넷 혁명을 계기로 일뱐 대중들도 엘리트들 못지 않게 중요 정보에의 광폭 노출이 가능해졌을 뿐 아니라, 정책 결정에까지 제법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런 입장을 견지해 온 그가 "유로 화의 근본 위기"를 들고나온 건 시의적절할 뿐 아니라 학자적 양심과 지평에 비추어 일관되고 어쩌면 당연하기까지 합니다. 단일 유럽의 통화인 유료는 그 태생 시점에서는 많은 축복을 받고 시작했습니다. 진보 진영은 생산요소 중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으로 실업률 0의 달성에다 상품 가격의 균등화까지 머지 않은 미래에 이뤄질 것을 기대했습니다. 보수 진영 역시 싼 값에 노동력을 쓸 수 있다는 희망을 다분히 품었고요. 예전 노 대통령은 단일 통화 출범 즈음(그의 대통령 취임보다 훨씬 앞선 시점의 일)을 회고하며 "사람 사는 세상이 이게 올바른 모습 아니겠는가."라는 코멘트도 한 적 있습니다. 이랬던 유로화가, 재작년의 브렉시트 파동, (그 훨씬 이전)그리스, 이탈리아, 에스파냐, 아일랜드 등의 불확실한 경제 전망 때문에 그 존재의 근본에까지 회의의 그늘이 드리워지는 겁니다.

유로의 장래에 대해 냉소적인 건 삼십 년 전에는 대개 보수 진영과 유대 자본 측이었습니다. 세계는 달러를 기축통화 삼아 그럭저럭 잘 돌아가는데 왜 "인위적으로" 새로운 장치, 제도를 비싼 비용을 들어 만들어내는가, 그를 부양하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추가 비용이 투입되겠는가, 취지는 좋아도 각국의 경제력이 천양지차인데 어떻게 부실과 거품이 끼지 않겠는가 등등이었지요. 스티글리츠 교수의 입장은 (자칫 잘못보면 결론은 비슷한 듯 해도) 그와는 정반대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요약하면 "유로는 초심을 잃었기 때문에 지금 좌초 위기를 맞은 것이다" 정도입니다.

저자 스티글리츠 교수는 우선 유로화의 운용에 결정적 입김을 끼치는 "최종 보스"인 트로이카를 맹비난합니다. 여기서 트로이카라 하면(꼭 스티글리츠 교수뿐 아니라 다른 맥락, 입장, 진영에서도 쓰이는 말이지만), IMF, 유럽중앙은행(ECB), EU 집행위원회를 가리킵니다(p30). 이 책은 "폐쇄적이고 근시안적이며 (이미 정보의 비대칭성이 상당 부부 극복된 현실을 애써 외면한 채 과거의) 그림자, 환각에만 빠져 있는(이상은 독자인 저의 요약입니다) 저들 엘리트 트로이카의 과오로 유로는 고사 직전이다"라는 메시지를, 500여 페이지 분량 내내 강조, 증명, 확장, 전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도 1998년 당시 마찬가지였지만 이들 "트로이카"가 위기 국가에 찾아와서 도와준답시고 돈보따리를 들고 와서 내리는 처방이란 매우 단순하고, 효험이 의심스러울 만큼) 획일적입니다. "허리띠를 졸라매라." 한 마디뿐입니다. 첫째도 긴축, 둘쩨도 긴축만을 강조하는 이 단일 처방은 그간 많은 진보진영, 리버럴 경제학자들의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다만 한국은 워낙 모범생 국가라서, IMF가 내리는 처방(이라기보다 지시, 명령)을 한치의 망설임, 어긋남도 없이 실천, 복종했고 유격훈련 코스나 마치듯 졸업장을 따 냈습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트로이카(유럽 안 국가라면)의 이런 (가짜)만병통치약에 대해, "그 나라의 기층 민중, 서민, 중산층이 겪어야 할 엄청난 고통을 전혀 '비용'으로 계상(計上)하지 않은, 잔인하기 이를데없는 방안"으로 신랄히 비판합니다. 노엄 촘스키(물론 그 천재 언어학자 말입니다)도 그의 저서에서 비슷한 비판을 한 적 있는데, "이들 강자의 대변인들은 약하고 가난한 나라에 가서는 살인적인 고금리(우리도 당시 그랬습니다)로 서민을 괴롭히고, 자기네 나라에서는 제로 금리 정책을 강권한다." 같은 대목이 나오죠. 이 지점에서 두 석학은 견해를 공유하는 셈입니다. 


긴축은 왜 나쁜가? 저자의 분석은 선명하고 설득력이 높습니다. 씀씀이를 줄이라니 (가뜩이나 침체된) 투자심리는 자본을 다른 나라로 유출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씀씀이가 줄면 사람이라고 어디 더 많이 고용하겠습니까? 단순 노동력이건 고급 인재건 해외로 유출되기 십상이니 그 나라 안의 생산품은 질과 양 모든 면에서 추락합니다. 실제로 트로이카는 그리스 위기 당시 "국민들이 해외(독일 같은 곳)로 나가 돈을 벌어와서 국가 부채를 갚으라"고 명시적으로 주문했습니다. 마치 1970, 80년대에 한국 노동자들이 중동에 파견되어 땀흘려 번 돈을 고국에 송금하던 현상, 혹은 월남전 당시 파병 군인(급여의 상당 부분은 정부 수중에 들어갔습니다)이나 서독 파견 광부, 간호부(당시 용어)들의 사례와 비슷하죠. 기층 국민의 고통과 수고는 대변 차변의 기장 요소로써 싹 무시한 발상이라야 이런 처방을 거침없이 내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잔인하고 비정하며, "반민주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본"의 장부에서 보기만 한다면 그저 합리적이고, "흑자"인 발상이겠지만 말입니다.

역주에도 나옵니다만 저자는 논의의 근본 틀을 "수렴이나 발산이냐"의 이분법으로 일단 단순화합니다. 유로라는 통화, 유럽 연합이라는 단일 정치 단위(의 지향)는 "수렴'을 위해 만든 것입니다. 한 지역 안의 자원과 노력과 의지가 사방팔방으로 분산, 휘발하는 상황은 어느 관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만을 낳습니다. 통일은 획일화, 억압의 기제가 아니라, 모두의 노력과 정성을 보다 효과적인 방향으로 조직화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다름이 있는 곳에 불화, 전쟁이 언제나 발생했던 만큼, 유럽은 (두 차례의 끔찍한 전쟁을 겪고 나서) 더 이상의 다름과 분열을 조장하기보다, "하나의 가치로 수렴하기"를 선택했습니다. 각국의 경제상황은 천차만별이었음을 집행부도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단일 통화 사용이라는 강력한 조치로, 이 "다름"은 "모두가 넉넉하게 잘 살게 되는 지복점"으로 점차 수렴해갈 것임을 그들은 확신했던 겁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책 중에도 나오지만) 이 단일 통화 유로라는 장치가 많은 결함을 안고 있음을 당시부터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내심) 그들의 성공을 응원했고(여기서, 싸늘하고 이기적인 유대 자본의 심성과는 극과 극의 차이를 보이죠), 이 흥미론운 실험 귀추를 주목했습니다. 이제 이 두꺼운 책은, 거대한 실험의 중간 평가 보고서이자 동시에 저자 본인의 (학문적) 입장에 대한 임시 결산 마니페스토이기도 한 것입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보급판 서문(원 서문이 있고 보급판 서문이 따로 있습니다)으로 돌아와 보십시오. "우리들 중 그 누가 트럼프 같은 위인이 미국 대통령직에 오를 미래를 예견할 수 있었던가?" 보급판과 하드커버판의 출간 시점이 1년 정도 차이 나니, 이 (추가) 서문은 그 사이의 시대적 격변에 대한 임시 보론(補論) 구실(혹은, 호외[號外] 노릇?)도 하는 것입니다. 책은 대석학이 쓴 책치고는 마치 신문 칼럼 읽히듯 쉽게 내용이 파악되고, 영어권 독자들(원서를 읽는 층)을 위한 배려이긴 하나 예컨대 SECULAR 같은 단어도 "경제학 용어로서, 어느 경제 구조에 만성적으로 배어 든 속성을 가리킴" 같은 설명을 저자 본인이 해 놓고도 있을 만큼 친절합니다. "알렉시 드 토크빌"처럼 현행 표준 외국어 표기법에 충실한 번역도 깔끔한 편집의 미덕을 자랑하고(다른 책은 "알렉시스" 같은 오류를 종종 노출합니다), 적절히 개입하는 역주는 혹 스티글리츠 교수의 평소 지론이나 이 책 자체의 지향에 덜 밝은 독자들이 행여 샛길로 빠지지 않게 적정 지점에서 주의를 환기합니다. 정확한 동시에 친절한 본문이라고 해야겠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전시가 사랑을 노래하다
황병익 지음 / 산지니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전이 왜 고전이냐면, 시대를 초월해서 독자들에게 무한 공감을 안겨 주는 강한 자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이 모든 고전을 익히 읽고, 이를 현대적 감성으로 재해석하여 독자에게 전달할 능력까지 가진 저자가 자신만의 감성으로 우리에게 뽀송뽀송 알기 쉽게 이야기 해 주면 엄청 좋을 거 같습니다. 아닐까요?

이 책은 참 재미있고 유익합니다. 재미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십시오. 근세에서 현대에 이르는 동안 존재했던 그 많은 고전에서 로맨스만 추려 내어 엑기스만 전달해 주시니, 고전 요약만 해 주셔도 읽는 재미가 쏠쏠할 텐데, 그것도 가장 오랜 테마, 공감의 이슈인 사랑의 갖가지 양태만 모아 놓은 책, 말 그대로 페이지 터너죠, 제 2권이 없는 게 아쉬울 만큼요. 유익하다는 건 뭔가, 하루키류의 달달한 사랑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어서입니다. 톨스토이의 <안나 까레니나>는 뭐 그렇다고 하죠. 이 책에는 워튼의 <순수의 시대>,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까지 나와 있습니다. 로맨스를 이야기하는 책을 읽으며, 우리는 고전 공부도 함께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입니다.


대체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과, "아직 오지 않은 가장 좋은 사랑"이 무슨 상관일까요? 여기서 작가는, 반면교사적 의미에서 "사랑의 극단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랑도 결국은 그 자체로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영혼, 인격의 한 발현입니다. 표도르 카라마조프 같은 광적인, 야성의 격정을 가진 인간한테 걸리면(나이가 어리든 늙었든), 정상인은 대단히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 이야기를 가장 나중에 배치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그저 달콤한 여정이 아닙니다. 그렇기는커녕, 가장 모진 역경과 쓰디쓴 좌절을 인간(그것도 아직 모든 게 미숙한 어린 나이의)에게 톡톡히 안기는, 독한 처방약입니다. 이 이야기를 놀랍게도 한 교수는 이 고전을 인용하여 우리에게 해 주고 있습니다. 카라마조프쉬나!


제가 개인적으로 사랑이라고 하면 언제나 떠오르는 명작이 있죠. 바로 이책 첨에 나오는 투르게니예프의 <첫사랑>입니다.연상의 여인 지나이다를 좋아하는 주인공 소년의 사랑이 너무도 강렬히 묘사되어 있어, 이 작품에 관한 한 저는 모르는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군요. 제가 모르는 게 너무 많았습니다. "남자들의 가슴에는 그녀들의 무덤이 있다." 연애는 연애 많이 해 본 분한테 강의를 들어도 들어야 합니다. 하물며 고전에 밝은 분이라면? 답은 그저 하나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의 해항도시 1 - 아시아편 해양문화 총서 3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지음 / 도서출판선인(선인문화사)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계 5대 항만이 혹시 어디어디인지 아십니까? 정해진 답은 없고, 매년 물동향이라든가 여러 기준으로 순위가 바뀝니다. 세계 3대 미항(美港)은 어디, 어디, 어디(나폴리, 시드니, 리우) 등으로 고정일지 모르지만 이처럼 항만으로서의 저력을 나타내는 순위는 매년 바뀌는 게 당연하고 그래야만 합니다. 고정된 어떤 랭킹에 유난히 집착하는 건 일본이나 (이를 어느 시점부터 뭐가 좋다고 흉내내는) 우리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이상한 관행입니다.

과거에는 앤트워프(벨기에), 로테르담(네덜란드) 등 북서유럽의 저지대가 두 군데나 탑 파이브에 끼었으나, 다 옛날 이야기이며 현재는 중국계 도시들의 활약이 압도적입니다. 싱가폴, 홍콩, 심천(선전), 상하이 등이 몇 년째 그 순위를 놓치지 않고 있으며, 재미있는 건 부산이 5위를 계속 차지한다는 건데 이것도 아마 물정 모르는 외국인들이 보면 저것도 중국 어딘가에 짱박힌 도신가 착각할 수도 있겠다는.... (항구가 그 본질상 "짱박힐" 수는 없긴 합니다만)

이 중에서 싱가폴은 1980년대부터 소위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하나로서 홍콩과 함께 각광받았는데 뭔 소리냐 할 수도 있지만, 사정이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싱가폴은 1980년대에는 순위권에 잘 들지 못했고, 말레이시아와의 정치적 긴장이 완전히 해소된 후에야 지금 같은 발전상이, 특히 항만 처리 저력 면에서는 본격 전개되기 시작했던 겁니다.

1980년대~90년대에는 대만의 가오슝(高雄)이 곧잘 순위권에 꼈는데, 이곳이야말로 "네 마리 용"의 기운을 타던 시절의 활약이며 요즘은 정치 불안으로 꽤 고전합니다. 부산 역시 1980년대에는 입지조건상 고베(神戶) 등에 밀려 빌빌대었으나 오히려 요즘 들어 맹활약한다고 봐야 합니다(최근 여러 악재 때문에 다시 움츠려듭니다만). 한국도 정치적으로 시끄럽기는 어디 가서 안 빠지는데, 아랑곳않는다는 듯 인천 국제공항이라든가 이런 물류 시설은 자체 혁신을 거듭하여 고객을 모으는 걸 보면 좀 신기한 면이 있습니다.

홍콩도 내부 진통이 상당합니다만(4년 전 소위 "우산 혁명" 등) 여튼 1980년대부터 계속 세계 최고 항만 중 한 곳의 위상을 계속 점하고는 있습니다. 오히려 강성 노조의 발호(게다가 마피아의 횡포는 덤이고)로 제조업 전반의 침체와 함께 쇠퇴, 침체 일로를 걷는 건 미 국 동부 대서양 연안의 여러 항구도시들인데 이것이 과연 무엇을 시사하는지는 우리가 좀 생각을 해 봐야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왕초보 경리실무 - 회사에서 바로 써 먹는
손원준 지음 / 지식만들기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득세법에는 중간예납제라는 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어떤 금액이든 한꺼번에 마련하려면 무척 힘이 드는 게 당연합니다. 그래서 아직 신고기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무당국에 미리 납세액 일부를 납부할 수 있게 하는 장치가 필요하겠죠.

어떤 이들은 "국가의 편익을 위한 제도인데 왜 마치 납세자를 위해 준비한 양 생색을 내느냐?"고 반문합니다. 일리가 있고, 사실 제 생각으로는 어느 정도 구시대적 관존민비 관념의 잔재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아마 과거에는, 관서(官署)에서 인적, 물적으로 준비가 된 기간에 무슨 접수, 신고를 받아도 받아야 공무원들이 편했겠으며, 과세 표준 신고, 과세액 납부 역시 한 번에 처리해야 공무원 입장에서 그 처리가 원활했을 듯합니다. 뭘 띄엄띄엄 가져오면 수기로 다루기에 번거롭기만 하고 머리도 잘 안 돌아가는(?) 난감함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실제로 어제 제가 어느 채널에서 고령의 영세민이 법률 상담을 하는 걸 봤는데, 어느 변호사분이 나이도 있고 인상 쓰는 걸로 봐 성격도 좀 있어 보이던데 그런 외관이 주는 기대와 달리(?) 사건이 조금만 정형성에 어긋나도 머리가 안 돌아가는지 인상을 쓰고 횡설수설하는 장면이 있어 보기에 참 안타까웠습니다. 변호사건 의사건 자신의 진짜 적성에 안 맞아서 루틴에 어긋나는 부분이 조금만 생겨도 당황을 하는 겁니다. 나이가 어린 루키면 루키라서 그런가 보다 하겠는데 베테랑처럼 생긴 사람이 저러는 데다, 머리가 안 돌아가는 화풀이를 엉뚱하게도 의뢰인에게 하고 있으니 까딱 잘못하면 갑질이다 뭐다 해서 불미스런 일로 TV에나 나오지 않을지 걱정이 되더군요. 뭐 물론 이런 소위 전문직의 삽질은 한국만의 현실은 아니고, 미국에서도 서투른 중년 변호사, 의사 등의 더듬거림은 그리 드물지 않게, 또 대단히 민망하게 목격되기는 합니다.

여튼 요즘은 업무가 전산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꼭 이런 중간예납제가 아니라 수시 납부라고 해도 세무 당국에서 별 불편함을 겪지 않을 뿐 아니라 (당연하게도) 납세자의 편익을 더 고도로 도모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게 모두 전산, 디지털 혁명의 성과이며, 가뜩이나 모호한 규정으로 원성이 자자한 판에 그나마 이런 부분에서 편의를 마련해 주는 게 시대적 소명을 다하는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은 얼핏 보아 정말로 왕초보들이나 참고할 만한 편집이지 싶어도, 꽤 분량이 많고 두꺼워서 책상에 비치해 두고 자주 참조할 만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건의료관광 실무 - 국제의료관광코디네이터 2차 실기시험 대비
서병로.김민성 지음 / 박문각 / 2016년 5월
평점 :
품절


의료관광이라 하면 아직 국내에는 낯선 분야처럼 여겨지지만 현대인의 기대수명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에 비추어 볼 때 가까운 장래에 급부상할 유망 산업 중 하나임은 분명합니다. 마이클 포터의 다이아몬드 모형을 적용할 때 한국은 특히 인적자원, 가격 경쟁력, 상품의 다양성 면에서 우위를 점하는 편입니다. (그 외 근원적 입지 요인으로, 13억 인구라는 거대 수요 집단을 이웃에 두었다는 어드밴티지가 있습니다) 반면 산업 발달의 장애요인이라면 "의료 민영화"에 대한 공중의 강한 반감인데, 만약 의료관광이 의료서비스의 공적 순기능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를 위협할 수준이라면 독자로서 저 역시도 반대가 당연한 입장입니다.

의료관광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정체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거시경제에 새로운 출구가 될 수 있음을 확인했던 게 원종하 교수님(외 공저)의 저서였는데요. 이런 저술 말고도 벤처기업 창업시 유의할 점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던 깔끔한 책도 지으신 교수님의 새 책에 눈길이 가서 읽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은 현재 인제대학교에 재직 중인데, 학교에서 다양한 보직을 거친 분답게 "대학행정"에 대한 권위서도 집필하신 적 있어서 그에 대해서도 유익한 공부가 독자로서 가능했던 기억입니다.

KIPP 교육이라는 게 무슨 뜻일까요? 여러 맥락에서 사용될 수 있는 약어(略語)이지만 이 책은 원 교수님 스스로 창안한 모토와 방침, 프로그램상의 의미를 설명하고 그 방법론을 제안합니다. 헨리 8세, 메리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치세를 거치는 기간의 영국은 아직도 정치적으로 불안정했을 뿐 아니라, 국토는 협소하고 안보는 허술하며 국민적 통합이 이뤄지지 못했음은 물론 경제활동도 부진한 쪽이었습니다. 이런 많은 약점을 지닌 국가가 이후 세계 패권을 논할 만큼 번영을 누린 건 어떤 비결 덕택이었을까요? 이유는 여태 다양한 학자들로부터 많은 논거가 지적되었습니다만, 저자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지적, 실천적 펀더멘털이 사회로부터 널리 수용된 데에서 그 기원을 파악합니다.

제가 다른 책들의 리뷰에서도 지적했지만, 한국은 현재의 번영상을 가져다 준 표준화 교육, 지식 주입 양태의 시스템으로부터 큰 혜택을 본 바 있습니다. 교육의 객체들(학생들 중 주입식 교육을 충실히 이수한)도 중추 기능을 사회에서 맡으며 중산층으로 기반을 잡았고, 시스템 역시 양질의 인적 자원이 수행하는 서비스로부터 많은 기여를 받아내었습니다. 허나 이는 과거에는 그리 해서 성과가 났었다는 소극적 체험, 교훈일 뿐, 과학기술이 눈부신 발전을 보이고 산업 패러다임 자체가 변화하는 지금 큰 도움이 되질 못하며, 오히려 바른 교육과 인적 자원 계발에 방해요인으로 작용할 뿐입니다. 창의력과 순발력이 지상의 순위를 점해야 하며, 지식의 반복 재생이 아닌 창의적 안출과 건설 능력이 중요해짐은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 저자 원 교수님은 이에 대해 어떤 실천 방안을 마련할까요?

그가 제안하는 정답이 KIPP 교육입니다. 앞서 말한 프랜시스 베이컨의 유명한 금언(金言)이 "아는 것이 힘이다"인데, 이의 원 표현에서 앞 한 글자를 따온 애크로님이죠. 공교롭게도 프랜시스 베이컨 역시 "대 혁신(그레이트 이노베이션)"을 당시에 주창했고, 암묵적 동의이건 명시적 추종이건 영국 사회, 경제, 강단, 시민 사회 전체가 이에 호응했기에 여튼 국내 차원에서 대도약을 이루는 게 가능했습니다. 원 교수는 이의 현대적(그리고 한국적) 변용을 주장하며, 어린 학생들에게 먼저 "나 자신을 알자"는 선결 과제를 제시합니다. 외우는 지식, 베끼는 학습을 통한 자기과시 혹은 자기기만이 아닌, 책 한 권을 읽어도 내면의 발전이 뒤따르는 공부가 되려면, 우선 학습 주체인 내가 누구이며 어떤 세계관, 어떤 필요, 어떤 적성을 지녔기에, 향후 무슨 학습과 연구를 통해 어떤 인간으로 발전해 나갈지 먼저 분명한 상(像)을 잡아 놓아야 한다는 거죠.

이를 위해 저자는 "어떤 대답도 그 학생에게는 정답이 될 수 있으니 무슨 해답에도 일단은 긍정해 주고, 다만 왜 그런 답이 나오는지 학생 스스로 충분한 근거와 이유를 마련하게 하라"고 주문합니다. 또한 저자는 학생들이 무수히 많은 질문을 하게 만들어, 스스로 알아 가는 쾌감을 체질화하게 돕는 단계를 강조합니다. 질문은 그 자체가 성취이므로 포인트를 부여하여 동기를 심어 주고, 바른 질문이 곧 현실에 대한 바른 답을 도출하는 지름길임을 인식시킵니다. 물론 질문은 내적 호기심이 자연스럽게 추동력을 마련하는 반응이라야 하며, 멋진 질문을 통해 지도교수나 클래스 동료의 감탄을 끌어내려는 연극적 의도라면 이는 경계, 지양되어야 합니다. 교수의 역량은 이 지점에서 다시 중요해집니다.

자 그런데, 이런 가르침이 책 제목인 "인생과 사랑을 디자인하라"와 어떤 연결지점을 마련할까요? 저자는 KIP 프로그램의 초석인 "너 자신을 아는" 단계에서 형성된 강한 주인의식, 자존감, 정체성 등으로부터, 현재의 젊은 세대가 빠져든 소위 삼포, 칠포의 절망감이 치유되고, 밝은 미래의 설계를 위한 정당한 기초가 장악된다는 주장입니다. 바르게 자리잡힌 인생관과 자아관으로부터 창의력도 형성되고, 사회에 유의미한 부가가치를 빚어 낼 수 있는 인생은 곧 자신의 삶에 대한 애정도 절로 순도 높게 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과 사랑에 대한 "디자인"입니다. 자아실현, 거시경제 활성화,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개인 단계의 노력이 결코 별개가 아님을, 이 KIP 프로그램은 압축적으로 설득하여 공동체 전체를 향한 유익한 시사점을 던져 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