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무엇을 하든, 누가 뭐라 하든, 나는 네가 옳다 - 나의 삶이 너희들과 닮았다 한쪽 다리가 조금 ‘짧은’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한 ‘길고 긴 동행’, 그 놀라운 기적
황정미 지음 / 치읓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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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교육을 전공, 수많은 아이들에게 '선생님'을 넘어 '엄마'로서 함께헸다.(책날개 중)" 아이들은 어른에 비해 많이 약한 존재입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선생님을 넘어 "엄마"로까지 불린다는 건 그저 학습에의 도움을 주는 존재를 넘어 그들의 아픔과 고민에 속속들이 공감할 수 있는 능력자란 뜻이겠죠. 더군다나 선생님 본인 역시 아픔을 안고 살아오신 분으로서, 이 책 저자께선 한 사람 몫도 힘든 인생(우리는 누구나, 타인은커녕 우리 자신의 아픔도 온전히 감당하기 힘듭니다)을 두 사람 세 사람 몫을 살아내신 초인이라고 할 만합니다.

"생각이 깊거나 부모님과의 마찰이 있는 아이들은 나와의 관계가 싶어지면 속에 깊이 묻어 두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p57)." 바로 이처럼, 능력 있는 선생님들을 보면 아이들의 내면이 살짝 문을 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소통에 성공하는 게 공통점입니다. 물론 아이들과 진정성 있게 소통하려는 의지와 열린 마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겠고요. 하율이는 이 책 저자 선생님의 표현에 의하면 "나와 닮은 아이"인데, 또래가 읽지 않는(너무 어려워서) 책들을 읽고 공부를 등한히하는(?) 아이이며, 이 때문에 어머니와 자주 갈등을 빚습니다. 아니, 어쩌면 원인과 결과가 반대로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튼 선생님은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보이는지, 어려운 책을 읽는 동기와 그만의 능력, 관심사는 무엇인지 적극적인 소통을 시도합니다.

하율이는 왜 이런 행동을 보이게 되었을까요? 이 하율이와의 에피소드는 책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데, 선생님 역시 이 수업을 통해 아이의 마음과 대화하는 "차원이 다른 교사"로 업그레이드되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이 챕터는 펼칠 때부터 독자인 저를 궁금하게 만들었는데, 이 까다로운 아이가 과연 어떤 과정을 통해 선생님께 마음을 열게 될지 짐작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 읽어 보니 과연 어떤 사연이 있긴 했습니다.

저자가 의도한 바는 아니겠으나, 이 책은 감동 수기로 술술 읽히기도 하지만 그를 넘어 "불가능해 보이는 어떤 미션을 결국 해 내는" 주인공(선생님)의 동선이 무척 궁금해지는 진행이기도 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숙제, 과업을 신실하게 해 내는 분의 삶은, 어찌 보면 장르소설 못지 않은 몰입감을 독자에게 주기도 하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율이는 "누구"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안고 있었으며, 이 상처는 다시 선생님에게 오래 전 과거의 어떤 아픔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상처가 있다고 언제나 (비슷한 상처를 지닌)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릇이 크고 순수한 마음을 가져야만 이를 소통의 계기로 삼을 수 있겠죠. 저자는 그런 분 같습니다.

저자는 아이들과 소통을 더 효과적으로 이루기 위해, 본교과인 영어 외에도 심리학 등 소통 자체를 위한 공부를 따로 하셨다고 합니다. 진지한 소통에 있어 심리학 등의 베이스가 꼭 필요조건은 아니겠습니다만 그간의 경험 덕에 무엇이 소통에 필요했는지 진지한 고민을 하셨을 저자였기에 교과서를 보는 족족 이해하셨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아이들은 별 생각을 다 하는 법입니다. 저도 어렸을 때 친구와 함께 "위에서 아주 큰 존재가 내려다 보고 있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했는데 이런 게 영화나 소설 따위를 보고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고, 아이라서 그 감정, 정서가 마구 파도를 탔을 수도 있습니다. 큰 문제 없이 넘어가는 게 대부분이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죠.

"심리학에서는 누군가가 자신의 모든 일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심리를 투명성 착각이라 한다(p91)." 민호의 경우는 마치 줄리아 로버츠를 닮은(책 중의 표현입니다) 어머니가 데려온, 부유한 동네에 사는 특별한 계층의 표본 같은 아이였습니다. 엄마 말로는 "착한 아이"였지만, 사실은 과외방이나 학원에서 매번 사고를 치고 밀려난 부적응자에 가까웠습니다. 특별하게 받은 혜택과 편의도 때에 따라선 사회에의 원만한 적응을 막는 족쇄 노릇을 하는 법이죠. 이런 것도 상처라면 상처지만, 여튼 위의 하율이하고는 경우가 다릅니다. 이 민호를 "어린 왕자의 여우처럼 길들이는" 과정도 꽤나 흥미로웠는데 물론 진정성과 성의, 오픈 마인드, 선의 등이 모두 결합한 결과입니다만 사람 대하는 스킬로 봐도 참 유용했습니다. 속물적인 분석이 아니라 결국 사람 마음 사로잡는 궁극의 비결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도와줬기 때문이죠. 영어의 "정직은 최상의 책략이다." 같은 금언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아이들 상대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정신적, 감정적으로도 아이들일 뿐이라고 여기지만, 아이들은 몸만 작을 뿐 어른들과 독립적인 자존을 갖춘 존재이며 어른에 결코 못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른들과는 달리 예측 불허의 면이 있습니다. 이래서 아이들 상대하는 게 어렵다는 거죠. 아이들을 잘 다루는 선생님은, 아마 마음만 먹는다면 어른들과도 막힘 없는 소통을 이루고 상대의 마음을 훤히 읽어낼 것입니다. 조금 더 읽어 보면 민호 어머니도 저자 선생님 앞에서 다른 비밀 하나를 더 털어놓는데, 읽어 보니 참 그럴만했구나 싶더군요. 이 과정도 마치 저자만의 마법이 펼쳐지는 것 같아 흐뭇하면서도 신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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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서 이기는 법
퀸투스 툴리우스 키케로 지음, 필립 프리먼 그림, 이혜경 옮김, 매일경제 정치부 해제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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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서 이기는 법." 마침 시즌이 또 시즌이고 보니 제목부터가 우리 독자들의 눈길을 끕니다. 이 책을 읽으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유능한 후보자가 될 수 있을까요? ㅎㅎ 물론 우리 독자들의 99%는 선거와, 적어도 선거 출마와는 거의 무관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겠습니다. 그래도 아마, 내가 응원하는 정치인, 나중에 국회의원도 되고 대통령도 되었으면 하고 내가 바라는 거물급 인사는 한둘 정도는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선거라는 게임의 관전 포인트"가 생기는 셈이므로 이 책은 일단 흥미를 끕니다.

그런데 이 책은 그것 말고도 다른 매력 포인트가 하나 더 있습니다. 아니 매력 포인트 정도가 아니라, 어쩌면 독서에 있어 본질이라 할 만한 유념 사항이겠습니다. 그건 바로 이 책의 저자인데, 무려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앞선 시기에 출생하여 자신의 시대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고, 이후 서유럽(적어도) 역사와 문화에 큰 업적을 남긴, 퀸투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그 빛나는 이름 때문입니다.


사실 키케로는, 요즘은 아마 홈스쿨링을 통해 자녀의 미국 명문대 진학을 노리는 분들이 많기에 특히 주목 받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미국 대입을 위해 필수 이수 학점 과목 중 라틴어가 있는데, 바로 라틴어 reader(독해 교재)에 단골로 등장하는 이름이기 때문이죠. 꼭 그런 실용적 목적이 아니라도, 키케로는 현대인에게도 필수로 여겨지는 인문 교양서 여럿의 저자이므로 그의 저자 명의가 걸린 책은 그 이름만으로도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키케로는 본인 역시 공화정 로마에서 여러 번 선거에 출마하거나, 출마하려는 유력 정치인의 유능한 벗, 조력자였습니다. 따라서 그가 "선거에 대해 펴는 논변"은 이미 달인의 그것으로서 한 번쯤은 경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키케로는 로마 공화정 시대를 다룬 문학 작품이나 미드에서도 조연급으로 자주 등장하므로 대중 문화를 즐기는 이들에게도 이 책은 충분히 관심을 끌 만합니다.

아무리 그렇다고는 하나, 예수 그리스도보다도 (조금) 더 이전 시대를 산 고대인의 충고가, 현대 선거에도 과연 통할 수 있을까요? 저도 사실은 약간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책을 넘겼습니다. 의외로 책은, 현대 선거에도 얼마든지 통할 만한, "금언 명언"으로 가득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선거"에만 적용되는 교훈이 아니고, 사람 사이의 관계에 두루 통할 만한 소중한 가르침을 담고 있더군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선거에 이기려면 어떤 조건을 우리가(생전 선거 같은 건 출마할 일이 없지만, 그래도 혹 그런 일이 있다면) 갖추어야 하겠습니까? 인심을 얻어야 합니다. 적을 가급적이면 만들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 조건들이 그저 얕은 잔꾀나 테크닉만으로 얻어지지는 않고, 진심을 기울이거나 정성을 들여야 이뤄지는 소중한 관계임은 분명합니다. 책에서 말하는 건 주로 그런 내용입니다. 그러니, 선거에 나갈 사람이 아니라도, 예컨대 회사 안에서 "정치를 잘하기 위해", 혹은 부서 성원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 유익하게 쓰일 만한 조언을 이 책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요즘 선거에도 직통으로 적용할 만한 교훈도 많아서 흥미로웠습니다. 인터넷에 "금귀월래"라는 말을 검색해 보면 바로 정치인 한 사람의 이름이 뜰 건데요. 지역구에서 여러 번 당선되는 거물이 되려면 확실히 지켜야 할 어느 한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이 정치인을 지지하고 싫어하고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건 뭐 사람마다 입장이 당연히 다 다르죠). 그게 바로 이 책 p15에 나옵니다. "지역구를 떠나지 말라."

사실 "지역구"의 개념이 이천 년 전 로마에 있었다는 자체가 저는 놀라웠습니다만, 지역구에 상주하며 지역구민들의 애환과 고충을 듣고 이를 처리해 주는 게 국회의원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임을 고려하면 이는 너무도 당연한 말입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도 유독 "제 말을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유권자들의 칭송을 듣는 그런 국회의원이 있습니다(앞의 그 사람은 아닙니다). 그래서 올드 팝 중 <As Time Goes by>라는 노래에 "근본적인 건 변하지 않아(The fundamental things ♬apply)"라는 가사(구절)가 있는 거죠.

씁쓸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들어 주겠다"고 약속하라." 이 말 자체도 사람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지만, 더 놀라운 건 그 다음에 나오는 설명입니다. 아니, 우리는 "나중에 뒷감담을 어떻게 하려고 그런 헛된 약속을 함부로 하는가?" 싶지만, 저자는 이렇게 말하네요. "당신은, 약속을 안 지켰다고 원망을 듣기보다, 저 사람이 아예 내 부탁을 들어 주려 하지도 않았다는 원망을 더 크게 들을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은 더 걸작입니다.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소중한 가치를 지키겠다고 약속하고, 개혁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현상 타파를 약속하라." 아, 충격입니다. 아닐까요?

저는 이 구절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람을 속이라는 게 아니라, "경청"의 중요성을 강조한 구절이라고 말입니다. 그릇이 큰 사람은, A라는 사람의 말에는 A라는 타당성이, B라는 사람에게는 또 그 나름의 일리가 있다는 걸 압니다. 그래서 황희 정승 같은 명재상도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으며, 이런 나의 태도를 우유부단 무주견이라 나무라는 네 말도 또한 옳다"고 한 것입니다. 황희 정승이 무슨 기회주의자나 사기꾼이라서 이런 태도를 취한 건 아니겠죠. 키케로도 결국 같은 포인트를 지적하는 겁니다. 한편으로, 이 구절은 당시 로마 공화정 하의 선거 타락상을 날카롭게 비꼰 풍자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독특한 편제로 되어 있습니다. 왼쪽(짝수) 페이지에는 영어 원문이 실렸으며, 오른쪽(홀수) 페이지에는 한국어 번역이 실려 있습니다. 사실 키케로는 고대의 로마인이며 따라서 라틴어를 구사했고, 이 영문은 책 표지에도 나와 있듯 필립 프리먼이 옮긴 것이므로 영문이 곧 원문은 아닙니다(라틴어가 원문). 그런데 책이 이런 체제이므로 우리 독자들은 간단한(사실 간단하지는 않아요. 영문 자체도 고전의 번역이므로) 영문을 통해 영어 독해 공부도 할 수 있습니다.

농담이 아니고 이런 문장은 대개 문장 교본으로 쓰일 만큼 명문이므로 영어 공부의 소재가 얼마든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p76을 보면 "Make it clear to each other under obligation exactly what ypu expect from him."이란 문장이 나오는데, 여기서 it은 우리가 학창 시절에 배운 이른바 가목적어입니다. 목적어가 너무 기니까 그 자리에 it 하나를 두고 진(짜)목적어는 맨 뒤로 돌리는 거죠. 그럼 진목적어는 뭘까요? 맨 뒤에 나오는 복합관계대명사 what 이하의 구절입니다. "to each other"이라든가, "under obligation" 같은 건 다 수식어구에 불과합니다.

이 책으로 영어 공부도 할 수 있고, 선거에 혹 출마하시려는 분은 실전 선거에서 쓸 만한 유용한 팁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외에 또 다른 장점은 없을까요? 놀랍게도 이 책은 키케로의 원저를 옮긴 영문과 국문만 담은 게 아니라, 예컨대 pp. 56~63에서처럼 로마 공화정 시대에 대한 간략한 해설도 있습니다. 키케로의 가르침이 아무리 시공을 초월한 보편 타당성을 갖췄다고 해도, 그로부터 이천 년이 지난 우리 시대가 전혀 이해 못 할 만한 특수성도 적지 않기에, 우리 독자가 본문을 아무 해설 없이 막바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일종의 "해제"가 필요한데, 이 책은 회색 페이지에 별도로 로마 공화정 시대에 대한 해설도 포함합니다.

"한국 정치는 2500여년 전 로마보다도 못한 것일까." 매일경제신문 정치부 기자분들이 해제한 이 책에는 p56에 저런 말이 실려 있습니다. (2500년 전은 로마 공화정의 시작이며, 키케로의 활동 시대는 예수보다 조금 전이라는 제 말이 맞습니다) "공화정"의 영단어인 republic 자체가, 라틴어 res publica의 후예라는 설명도 유익(p57)합니다. 라틴어 res가 영어의 thing이란 뜻이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공화정의 기본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엄격히 준별하는 게 그 기본이 된다는 뜻이죠. 그러나 세상에는 공과 사를 구분 못 하는 정치인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정치인을 몰아내고 참된 일꾼을 뽑자면 먼저 우리 유권자부터 옛 성현의 가르침을 옳게 익혀 일상에서 선거에서 실천에 옮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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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리츠가 온다 - 부동산으로 꾸준히 고수익을 내는 새로운 방법
이광수.윤정한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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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츠"가 뭔지 아십니까? 혹시 과자 이름을 대뜸 떠올리지는 않나요? 저금리 시대, 아니 마이너스 금리 시대에 우리는 누구나 효과적인 재테크 수단을 찾습니다. 그 중 어떤 분들은 "한국에서 불패(不敗)라는" 부동산에 주목하지만 투기꾼이라는 달갑지 않은 시선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시선만 따가운 게 아니라 때론 법적인 제재까지 받습니다. 제재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 나라에서는 부동산 가격 안정에 워낙 민감해들 하기 때문에 세금, 건보료 등 해서 여러 제약이 있습니다. 합법적으로 부동산 투자해서 돈 벌기가 무척 까다롭다는 뜻입니다.

리츠는 이 모든 제약을 피해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쉽게 말해, 부동산을 취득, 관리하여 수익을 올리는 회사에다 주식처럼 투자하는 방법이죠. 직접 건물을 관리하는(이른바 "건물주") 경우와 대조하여 "부동산 간접 투자"라 부를 만합니다. 직접이 아닌 간접 방식이니 이리저리 경비가 들겠고 따라서 직접 손 대는 것보다는 이리저리 떼는 돈이 많겠다 싶으며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다른 이점들이 많기도 합니다.

책에서는 다음처럼, 알기 쉽게 설명합니다. 우선 "직접" 투자는 유동성이 크게 제한됩니다(p19). 급전이 필요해서 가진 매물(땅, 건물, 아파트 등)을 내놓으면 바로 임자가 나타나는 게 보통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식 등 유가증권은 언제든지 처분이 가능합니다. 또, 아파트를 처분하면 세무 당국에서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합니다. 양도소득세 등을 허술히 처리하면 바로 불이익을 입게 됩니다. 이는 취득시에도 마찬가지라서 한국에서는 부동산으로 이익을 직접 보건 아니건 간에 취득세와 재산세를 부담합니다(p20). 그러나 리츠는 이런 부담이 없거나 현저히 적습니다.

몇 년 전에 삼성전자 주식이 액면 분할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주식을 사고 싶어도 1주 가격이 워낙 커서 이를 사서 보유할 수 있는 사람 자체가 드물었으나 액면 분할 이후에는 꽤나 대중적인 주식이 되었습니다. 부동산은 어떻습니까? "강남 아파트의 수익성이 좋다 하니 1채당 지분의 10%만 좀 보유하고 싶다"며 2~3억을 들고 간들 그런 투자는 실행에 옮길 방법이 없습니다. 뭉칫돈이 있어야 애초에 입장이 가능한 거죠. 반면 리츠는 증권의 형태이므로 자신의 에산 범위 안에서 참여가 가능합니다. 책에서 요약하는 바는 "부동산 소액투자가 가능하다(p19)"입니다.

그래도 아파트 등을 사서 직접 매각하는 것만은 못하지 않을까? 그렇기도 합니다. 첫째 앞에서 말한 대로 투자, 관리 회사가 따로 있고 그로부터 우리는 배당을 받는 식이므로 "처음부터 떼는 돈"이 많습니다. 허나 이건 어쩔 수 없죠. 두번째로 회사는 매매 차익도 물론 올리겠으나 이는 일반적이지 않고 주로 임대 수익을 안정적으로 받아 투자자들에게 나눠 주는 식입니다. 그래서 책에서는, 어떤 대박 같은 걸 노리기보다 일정 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현금 유입을 기대하는 분들에게 리츠를 추천한다고 합니다.

이런 리츠는 과연 얼마나 배당이 안정적으로 이뤄지느냐가 핵심입니다. 주식 투자 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어떤 회사는 주가가 쏠쏠하게 올라 좋은 반면 배당을 잘 안 해 줘서 골치이기도 합니다. 하긴 배당과 주가 상승은 서로 반대 관계가 있죠. 배당 자주 안 하고 회사 안에 차곡차곡 쌓아 두는 곳이 대개는 미래 전망이 좋다고 여겨져서 주가가 오르는 게 보통이니까요. 그러나 리츠는 법으로 배당이 정해져 있습니다. 따라서 대주주들이 배당을 잘 안 하기로 주총에서 정하는 등 소액주주의 피해가 생기는 경우가 리츠에서는 드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리츠는 횡재, 대박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배당이 법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꾸준하기는 하지만 거액이 갑자기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일반 주식은 연도에 따라 거액의 배당이 이뤄지기도 하죠. 또 부동산을 직접 매매하는 이들은 (우리가 괜히 부러워하는 게 아니듯) 거액의 시세 차익을 올리기도 합니다. 이런 게 더 좋은 분들은 리츠에 관심을 주지 않습니다.

또 리츠의 장점은, 건축 허가 취득, 민원 처리(내 땅에 내가 집 지어도 옆에서 소음, 먼지 등으로 민원 넣는 건 거의 일상사입니다), 세금 납부(법을 어기려고 작정해서가 아니라 우리들 대부분은 법을 잘 몰라서 온갖 과태료를 물기도 합니다) 등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회사가 알아서 대신해 주니까요. 책 p27에는 재미있는 문장이 있는데 "(대신 리츠의 단점은) 주차장 관리를 직접 할 수 없다"는 거죠. 이런 게 체질인 분도 있겠으나, 혹 주차장 관리가 골치 아픈 분이라면 리츠로 갈아타야 할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리츠에 투자할까요? 주식하고 비슷합니다. 물론 시중에는 꼬마 호텔에 투자하라면서 개별 투자자를 모집하기도 하고 아마 배당 수익이 더 크겠지만 좀 불안정합니다. 리츠는 이런 것과 달라서 주식처럼 "상장"이 되어 있습니다. 책 p53에는 이런 상장 리츠에 대한 소개가 나옵니다. 한번 옮겨 적어 보면, 에이리츠(이게 최초라고 하네요), 케이탑, 이리츠 코크랩, 신한알파, 모두투어, 롯데, NH프라임 등입니다. "상장에 성공"했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상장을 원하는 모든 회사가 증시에 상장되는 게 아니고 거래소의 심사를 거쳐야 가능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YG 같은 회사도 상장에 실패했다가 성공했다는 뉴스가 다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상장에 성공한 리츠라면 구조가 투명하고, 투자자한테 예측 불허의 손해를 안길 우려가 적다고 거래소가 어느 정도는 보증하는 셈입니다.

리츠회사는 부동산에 투자해서 그 수익을 투자자에게 나눠 주는데, 그럼 구체적으로 어디어디에 투자하길래 이게 가능할까요? 책에는 예시가 다 나옵니다. 우선 롯데리츠는 주로 롯데백화점(광주, 강남, 구리, 창원, 의왕, 서청주, 대구 율하, 장유)입니다. 장유점은 요즘 김해 신도시가 들어서는 그곳인데 이 일대가 요즘 각광받고 있으며 아마 그 수익 중 일부를 이 지점이 크게 빨아들일 것입니다. 신한 알파도 일본계 자본, 또 금융기관의 남다른 촉이 기대되는데 대표 부동산은 판교 크래프톤, 용산 더프라임 등입니다. 이런 건물들은 그 건물에 입주한 "임차인"들의 면면도 빵빵한데 리츠의 안정성은 바로 여기에 기댈 수 있는 겁니다. 이런 입주자들이 임대료 밀릴 걱정은 없지 않겠습니까. 반면 악성 임차인을 만나면 건물주께서 얼마나 고생을 하겠습니까. 부끄러운 일이죠.

그럼 리츠로 갈아탄다 치고, 이 정도로 든든한 기관에서 발행하니 아무 거나 골라도 되겠다 생각되시죠? 저는 그런데, 책에서는 그래도 꼼꼼하게 따져 보라고 합니다. "총 자산의 70%이상을 부동산에 투자하여 배당가능이익의 90%를 배당하는 회사"라는 게 법에서 정하는 바입니다. 꼭 리츠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지만, 감가상각비는 실제로 그 돈이 발생하는 건 아니고 회계 장부상으로만 그리 계산하는 겁니다. 그래야 장부가 뻥튀기되지 않고 현실을 어느 정도 충실히 반영하게 되죠. 실제 발생하는 비용이 아니므로, 감가상각비를 제하기 전 금액이 배당가능이익입니다. 뭐 상장법인이 고작 이런 걸 속이지는 않겠으나 우리가 원칙을 잘 알아야 현명한 투자가 되는 거겠죠.

책에는 EBITDA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뜻은 "어닝 비포"+ "인터레스트, 택시스, 디프리시에이션, 아모타이제이션" 입니다. 그러니 이자 비용, 세금, 유무형 감가상각비 등을 제하기 전의 이익이라는 뜻이 됩니다. 이 말도 약관이나 재무제표에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리츠 투자자는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겠죠.

책에는 재미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임대료 상승 조건이 잘 갖춰질수록 이 리츠는 해자가 잘 갖춰져 있다고 본다." 그런데 "해자"가 뭘까요? 혹시 "혜자"를 잘못 쓴 걸 아닐까요? ㅎㅎ 그렇지는 않습니다. 해자는 사극에서 자주 보는, 성 주변에 둥글게 물길을 파고 적군의 침입을 막게 한 구조물입니다. 뭔 소리인가 하면, 리츠가 설령 안정적으로 6년이면 6년 이렇게 수익을 배당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매력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리츠가 보유한 부동산의 임차인들은 연 몇 퍼센트 이상으로 임대료를 올려 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고정 상승분이 투자자와 회사에 이익으로 돌아오는 거고요. 이걸 두고 비유적으로 책에서는 "해자" 즉, 안전장치로 표현한 겁니다.


p101에는 샤프지수라는 말이 나옵니다. 아마 상경계 졸업하신 분들은 학부 3학년쯤해서 재무관리나 화폐금융론을 배울 겁니다. 이때 나오는 개념이 샤프지수이죠. 책에도 간단히 개념 뜻이 나오는데 표준편차를 이용해서 펀드의 성과를 나타낸다(p101)고 합니다. 뭐 꼭펀드뿐이 아니고 모든 상장 법인, 아니 비상장이라고 해도 회사의 수익을 나타낼 때 참고해야 할 중요 지표입니다. 수익률이 크면 무조건 좋은 건가, 그렇지는 않고 그에 따르는 위험이 얼마나 큰지도 고려에 넣어야 합니다. 위험 대비하여 수익이 얼마나 되는지를 나타낸 게 샤프지수이죠. 이 샤프지수를 리츠의 수익성 평가에도 (당연히) 쓸 수 있습니다.

책 후반부에는 여러 해외 리츠에 대한 소개가 있습니다. 특히 제가 눈여겨 본 건 일본리츠와 싱가포르 리츠였습니다. 이들 나라는 관광 인프라가 잘 갖춰졌기에 특히 호텔 리츠가 많습니다. 투자자는 각기 저한 환경이 다르고 투자자의 성향도 천차만별이므로 남들이 좋다고 해서 나도 따라가는 건 전략적으로도 취향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리츠가 만능이고 최고라고는 못하지만, 아 나한테는 이런 게 맞구나 싶은 이들도 분명 있을 겁니다. 또 투자 포트폴리오는 구성이 다양할수록 좋으므로 리츠도 적절히 끼워 넣으면 적어도 손해 볼 건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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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해도 괜찮아 졸혼해도 괜찮아 - 이대로 괴로울지, 버리고 행복할지 선택하라
강은송 지음 / 라온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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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에 이혼이 큰 흠이야?" <사랑과 전쟁> 어느 에피소드 중의 대사입니다만 딱히 드라마를 예를 들 것도 없이 어느새 씁쓸한 상식이 되어 버린 게 또 현실입니다. 그래서는 안 될 거 같은데도 말입니다. 많은 부부들이 "젊어서 설레던 그 느낌은 간 데 없고 그저 의리로 산다"고 하는데 이런 말만 나오면 사방에서 공감이 쏟아집니다. 원래 그럴 수밖에 없는 건지, 아니면 어떤 극복 방법이 있는 건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 책 저자께선 (제목에서 보는 그대로) 설령 이혼한들, 혹은 일본에서 만들어낸 말대로 "졸혼"한들 뭐 어떻겠냐고 하십니다. 상할 대로 상한 관계를 억지 춘향으로 버티게 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며, 물론 우리들은 현재의 배우자와 (가능하다면) 알콩달콩 좋은 연을 가꾸는 게 바람직하겠지만 그게 정 어렵다면 과감히 결단하라는 선의이겠습니다.

언제서부터인가 "돌싱"이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말 자체는 잘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사실 엄마 뱃속에서 날 때 누구나 (쌍둥이 아닌 이상) 솔로이므로 우리들 중 모태 솔로 아닌 사람은 없습니다. 현재의 삶만이 삶은 아니다(p36)는 건, 책에 나오는 대로 "시간이 해결해 주지 못하는 문제라면 미련 없이 떠나 보내야 하는" 해법밖에 없겠기 때문입니다. 씁쓸하지만 이 책 대부분은 그런 내용입니다.

그럼 과감하게 이혼하고 어떤 삶을 선택할까? 그게 바로 책의 핵심인데 재미나게 즐겁게 화려하게(?) 돌싱의 삶을 줄기라는 겁니다. 이것이 이 책에서 얘기하는 "과거에 집착할 필요 없이 지금 당장부터 가꿔나갈 미래"이며, 물론 멀쩡한 커플더러 하는 말이 아니라 회복의 가망이 없는 이들에게 신나게 던지는 충고입니다. "생각만큼 무섭거나 나쁜 게 아니에요!"라고 하듯.

실제로 <사랑과 전쟁> 여러 에피소드들에 보면 "친구들, 지인들이 우리를 어떻게 볼까?" 같은 시선의 의식이 자주 나옵니다. 어떤 부모는 "내 자식을 이혼남, 이혼녀로 만들 수 없다"고 합니다. 이혼을 망설이는 이유가 그것뿐이라면 그런 분들은 이 책을 읽고 생각을 좀 해 봐야 할 듯합니다.

성격 차이로 이혼하는 경우도 많지만 보다 현실적인 장벽도 많습니다. 예컨대 남편이 경제적으로 무능하여 생계를 아내가 도맡다시피 한다거나... 요즘은 남편이 가사일을 전담하기도 하며, 여성이 사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지만 아직까지는 한계가 있습니다. 만약 아내에게 생계를 꾸리는 책임 전부가 맡겨지다시피 한다면 현실적으로 그런 가정이 유지되기가 애초에 힘들 것입니다. 이 경우 경제적으로 힘들다 아니다를 떠나 아내 입장에서는 남편의 무책임에 대한 분노가 더 크게 작용하겠고 말입니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어." 이혼을 과감히 못 하는 이유는 첫째 미련이 남고 둘째 "그때 그 선택을 하지 말걸" 같은 괴로움이 정신을 책망하기 때문이겠습니다. 저자는 그럴 것 없다고 합니다. 왜냐? 그때는 그것(그를 선택한 것)이 최선이었고, 지금은 "이게 아니다 싶어 과감히 그와 헤어지는 것"이 또 최선이기 때문이죠. 예전에 서양 셀럽들을 보면 하도 이혼을 밥먹듯이들 해서 과연 저렇게 사는 게 제정신이 유지될까 싶었는데, 좋은 건 아니겠으나 맞지 않는 상대와 살면서 "제 정신이 아니게 되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도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습니다. 여튼 이 책은 "그와 사는 현재가 최악인 분들"을 위해 쓰여진 것 같고, 그런 독자들에게는 분명 마음을 아주 후련하게 해 주는 고마운 충고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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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사랑을 읽다 - 명작으로 배우는 사랑의 법칙
김환영 지음 / 싱긋 / 2020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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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연애를 책으로 배웠냐?"는 건 비웃을 때 쓰는 말이지만 때로는 내가 못 느껴 본 경지까지를 엿보고 싶을 때 책에 기댈 필요도 있습니다. 내가 직접 못 해 본 사랑의 단계나 못 느낀 감정이 없고 전부 몸으로 배웠다고 하는 사람은 그게 이미 셰익스피어이지 일반인이 아니겠습니다. 만약 사랑을 하다가 크게 다치기라고 했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책으로 "미처 못 나갔던 진도를 마저 나가고" 자기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달달한 감정과 다른 세상에나 간 듯 황홀한 느낌이 가득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이 책은 다 읽고 나면 인문 교양 상식이 많이 느는 깊이가 있었습니다. 기독교 신자들이 깜짝 놀라는 게 성경, 특히 <아가>나 시편 같은 데서 꽤나 절절한 애정의 정서가 묻어난다는 점이고, 이 책도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아가씨는 왜 가뭇했을까?(p76)" 하긴 대체로는 순백의 피부를 뽐내는 아가씨가 아름답(게 느껴지)지, 그 반대가 아닌데 성경의 해당 구절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게 사랑에 대한 중의적 표현인가? 여기 나온 사람들은 "모두 관계를 마친 후에" 그 절절한 느낌을 표현하는 건가? 저자는 그런 해석이 반드시 옳을 수는 없다고 하지만, 누가 알겠습니까. 옳고 그르고를 따지면 이미 문학의 해석이나 감성이 아닙니다. 며칠 전 어느 프로그램을 보니 어느 원로 전문가가 "우리 때 트로트는 청중의 해석과 감정 이입이 가능한 여백이 있었다(요즘은 아쉽게도 그렇지 못하다)"고 하던데, 해석은 진짜 독자의 특권입니다. 설령 "야설"로 읽는다고 해도 그 역시 독자 마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특히 성경의 경우 그게 가능하려면 "내용적 동등성"보다는 직역(가능하면 원문)으로 읽어야 합니다.

메데이아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조국과 부왕을 버린 비정한, 아니 너무도 다정한 여인입니다(나중에는 싸이코패스가 되지만 여튼 처음에는). 이런 분은 우리 한국에도 그 한 원형이 있어서 자명고를 찢은 낙랑 공주의 이야기가 또 오래 전해지죠.

얼마 전에 리니지 M이라는 게임이 새로 나왔는데 그 광고 배경 음악이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였습니다. 이게 왜 배경으로 쓰였는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지만 저희 부모님 세대가 대학 다니면서 이 노래를 부를 시절에는 뭔가 있어 보이면서도 분위기를 잡는 필수 아이템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 에디트 피아프 개인(그 "개인" 아님)도 그렇고 노래도 왠지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어떤 대목은 악에 받친 것 같기도 하고 욕설을 내뱉는 듯도 하고... 그런데 이 책에는 그에 대한 솔직하고 공감 가는 평설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아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구나... 여튼 사랑의 이야기 주인공 중에는 저런 메데이아 같은 원형이 있곤 해서 뭔가 찜찜한 느낌도 주는 게 사실입니다. 에이.

"성적인 우정"이 있을 수 있나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을 두고 저자는 이 이슈를 끄집어냅니다. 영화 <프렌즈 위드 베네핏>도 결국은 이런 이야기인데 베네핏이 바로 그 뜻(?)입니다. 사람 사이의 친밀감이 무슨 장벽을 염두에 둘 필요는 없지만 우리는 많은 경우 "어떤 선을 넘지 말고, 지켜야 할 건 지키는 중에" 더 흐뭇한(므흣한이 아닌) 관계의 보람을 얻습니다. 어떤 성적인 거리낌을 애써 쌓을 필요야 없지만, 반대로 모든 걸 성으로 귀결시키는 것도 우습습니다(사드 후작처럼).

문학에서의 모든 체험은 간접적입니다. 세상에는 모든 걸 직접 겪을 수 없기에 간접으로 백신을 맞고 겪어도 겪어 보는 게 더 안전할 수 있습니다. 혹 사랑이라는 게 직접 만져 보기엔 무서운 불 같은 것이라면, 그냥 안전하게 책으로 배우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 짜릿한 걸 못 해 보고 죽는다면" 너무 아쉽고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확 줄어들겠죠. 과연 그런 건지 아닌지도 여튼 책에서 확인 가능하니 한번 도전은 해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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