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트 인사이트 - 예술에서 배우는 삶의 가치
김영애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5년 1월
평점 :
우리가 계측적, 수치적, 정량적 접근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와는 별개로 예술의 영역을 유보하고, 때로는 예술만의 심미적 기준과 기능을 더 우위에 놓는 것은, 예술을 통해서만 가능한 통찰, 카타르시스, 나아가 정신적 평온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살바도르 달리의 1954년작 <십자가형>을 보면 4차원 초입방체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예수의 십자가형을 묘사했는데, 이처럼 뛰어난 예술가들은 번거로운 계산, 검증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단 한 번에 진실에 도달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입니다. 이런 걸 두고 예술적 통찰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책좋사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저자 김영애 이안아트컨설팅 대표의 이 책은 그 수많은 미술품 감상을 통해 추출한, 삶과 자연과 생리와 일상 여러 국면에 대한 수상록과도 같습니다. 예를 들어 p45를 보면, "잠(sleep)"이라는 주제어에 대해, 수백 년 동안 천재들이 전면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작품 속에 묘사한 바를, 매우 쉽고도 재미있게 풀어 줍니다. 그림이란, 손기술만 뛰어난 기술자가 번잡한 색깔과 선을 잔뜩 늘어놓은 게 아니라, 그 안에 자신만의 감정, 이야기를 담은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에 남은 화가, 조각가들은 그저 기술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런 사람은 우리 시대에도 생각보다 많습니다), 최초의 표현이 탁월해서 불멸의 명성을 얻었으니 말입니다.
풍만한 여인들을 자주 그린 루벤스의 <헤라와...>는, 눈이 100개나 달린 아르고스가 헤라의 명을 받아 암소(이오)를 지키는데, 헤르메스의 음악에 속아 잠에 빠지고 소도 못 지키고 목숨까지 잃은 이야기를 담습니다. 저자는 이 이야기(p45)에서, 잠은 이처럼 인간에게 원초적인 공포를 부르는데, 죽음과 잠이 매우 닮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책에 나오지는 않으나 H J 드레이퍼가 20세기 초에 그린 <율리시즈(오뒤세우스)와 사이렌들>도, 바다의 요정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정신이 홀린 선원들의 상태를 일종의 "잠", 혹은 죽음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본문 중에서 (도판은 없으나) 저자께서 (영어 제목까지) 언급하신 고야의 그 작품을 제가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는데, 시대를 훨씬 앞서간 초현실주의 화풍이 놀라웠습니다.
p84에서 저자는 마르크 샤갈에 대해 말하는데, 샤갈뿐 아니라 유명한 작가, 예술가 중 많은 이들이, 대표님 평가처럼 우리가 이미 세월의 검증을 거쳐 어느 정도 정착된 평가로 접하는 것과, 그 사람들 당대에 무슨 평가를 받았는지와는 생각 외로 갭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1975년생이고, 일종의 보트피플 출신 예술가인, 덴마크 국적의 자인 보에 대해서도, 저자는 이른바 고향에서 추방당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았다는 점에서 샤갈과 닮았다고 평합니다. 책에 나오듯이 베트남 글자(쯔놈)으로는 Danh Vō(자인 보. 보가 성씨입니다)라 쓰며, 한자로 이름을 어떻게 쓰는지는 알려진 바 없습니다. 1975년생이니 한자 이름은 아예 갖지 않았을 수 있죠.
p144에서 저자는 아마 자신의 최근 기획과도 관련이 있었을, 런던 서펜타인 박물관에 대해 이야기를 꺼냅니다. 세즈터 게이터라는 흑인 남성 건축가를 저자는 책에서 언급하는데, 이름이 정말 어렵습니다. Theaster라는 저 이름을 디애즈터라고도 읽는가 봅니다. 여튼 구글에 찾아보니 유명하신 분인지 그에 대한 정보는 많으며, 50대 초반이지만 수염이 하얗게 세어 할아버지처럼 보입니다. 이 사람은 시카고(미 일리노이 주) 출신이라고 하며, 이 책에서 시카고 코드가 또 있나 해서 이리저리 찾아 보니 p154에 시카고 미술관에서 개최한 반 고흐 관련 행사가 나오네요. 역시 저자가 기획자라서 그 눈에 보이는 바가 남들과 다르신가 봅니다.
p226에 보면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로서의 예술, 이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픽셀에 대해 저자가 깊이 있게 성찰한 바가 나와서 독자로 하여금 깊은 성찰을 유도합니다. 컬러 도판도 많아서 이해가 더 쉬워지는 멋진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