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추리소설 필독서 50 - 셜록 홈즈부터 히가시노 게이고까지, 추리소설의 정수를 한 권에 필독서 시리즈 26
무경 외 지음 / 센시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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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장르란, 한번 사람을 빨아들이면 도통 놓아줄 줄 모르는 매력을 지녔습니다. 이 책 5인 공저자 중 한 분인 박상민 닥터는 <십자가의 괴이>라는 앤솔로지(몇 달 전 출간됨)에 "그날 밤 나는"이란 작품으로 참여한 작가이기도 합니다(은평성모에서 제가 이분 본 적 있습니다). 다른 네 작가분도 기발한 아이디어와 쿨한 스타일로 독자들에게 이름이 익은 분들입니다. 시중에 필독서라고 여러 명작을 꼽아 놓은 책들은 많이 있습니다만 이제 시대가 많이 바뀌었고 젊은 감각으로 모든 게 재평가받을 시점도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문학의 진짜 가치는 실제로 머리를 써서 작품을 꾸며 본 사람만이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책을 펼쳐 드는 독자들 중에, 정말로 미스테리 장르에 문외한이라서 50권만 먼저 읽고 싶었다는 초심자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물론 그런 분들이 이 책을 고른다면 최상의 선택이 되겠죠). 그보다는, 이미 추리물을 충분히 사랑하고 그 맛도 충분히 본 분들이, 다른 전문가들의 감상평과 관점을 엿보며, 내 생각과 느낌과 어떤 지점에서 차이가 나는지 더듬어도 보고, 혹 아직 못 읽은 작품은 없는지, 기 읽은 작품이라고 해도 내가 놓친 포인트는 없었는지 체크하는 기쁨, 설렘이 더 크게 작용할 독자들이 많지 않겠냐는 게 제 추측입니다. 누가 읽어도 미스테리 장르 팬들한테는 이 평론 앤솔로지가 큰 선물이 될 것입니다. 프롤로그 말미에 인용된, 일제 강점기의 장르작가 김내성 선생의 한 마디도 울림이 깊습니다. 

개별 작품 제목은 홑화살괄호, 책 제목은 겹화살괄호로 표기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모르그가의 살인"은 작품이므로 전자, "셜록 홈즈의 모험"은 모음집 제목이므로 후자입니다. 영국 근세 모험 미스테리물 중에 <월장석>이란 게 있는데 동서미스터리 시리즈에 있으므로 한국에서도 읽은 독자가 많을 것입니다. 그 작가 W W 콜린스가 쓴 <흰 옷을 입은 여인>이 이 책 리스트 두번째로 소개됩니다. <월장석> 역시 걸작이므로 (비록 50선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이 글에서 자주 언급됩니다. 추리물의 개조(開祖)가 에드거 앨런 포이므로 그를 (어떤 책이라고 해도) 첫머리에 거론하는 게 맞지만 보통 두번째를 누구로 채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립니다. 한국에서 의외로 저평가되는 작가의 대표작이 리스트에 나와서 그것만으로도 반가웠습니다. 

13번째, p102에 나온 작품은 조르주 심농의 <타인의 목>입니다. 이 심농의 작품은 십여년 전 열린책들에서 일일이 한국말로 완역하여 전집을 내기도 했습니다. 전집 완역이 뉴스가 될 만큼 심농은 20세기 중반에 엄청 다작을 한 사람이기도 한데, 같은 작가들한테 그렇게나 호평을 받을 만큼 대단한 재능과 생산력의 작가이긴 합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그리 좋아하는 분은 아니었습니다. 추리작가뿐 아니라 헤밍웨이 같은 이도 오랜 비와 함께 지루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최고의 동반자로 꼽았는데, 타인의 목 뿐 아니라 이 챕터에 언급된 다른 장편(장편이 유독 많습니다)들도 읽어 볼 만한 명작입니다. 박소해 작가님이 특히 재미있게 보셨나 봅니다. 

작가가 두세 개 필명을 쓰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지만 이상하게 추리작가는 더 다양한 필명을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농도 처음에 다른 이름을 썼고, 14번, 15번에 나온 엘러리 퀸과 바너비 로스는 같은 사람(들)이죠. 또 16번 <세 개의 관>의 존 딕슨 카는 카터 딕슨이라는 필명을 쓰기도 했고, 22번 <환상의 여인> 윌리엄 아이리시도 코널 울리치 명의의 작품들이 많습니다. 37번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는 개인적으로 그리샴 작품 중에서 최고라고 생각하는데 요즘은 원서로 읽는 이들도 많고 원제 The Firm으로 바로 아는 이들도 많지만, 한국어 제목(공경희씨 번역 김영사 출간 당시)이 희한하게 붙어서 독자들의 뇌리에 깊이 남은 케이스이기도 합니다. 소설 원작, 번역판, 영화판 워킹 타이틀이 모두 다르게 이름지어진(한국에서) 기묘한 케이스이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사회성이라는 말이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공감하는 성향을 가리키지만 과거에는 작가가 자기 작품에 사회와 세태를 정의롭게 비판하며 독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어떤 경향을 뜻했습니다. 모리무라 세이이치(이 책에서처럼, 誠一이라는 한자를 따로 읽어 세이이치라고 쓰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의 작품들은 그래서 사회성이 풍부하다는 평가를 듣는데, 그를 평가할 때 뺄 수 없는 개념어가 바로 "사회파"입니다. p235에서 박소해씨가 지적하듯 원조는 마츠모토 세이초죠. 1990년대에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메디컬 스릴러의 인기 작가 중 한 사람이 로빈 쿡이었는데 박상민씨가 <코마(작품 자체는 1977년 발표입니다)>를 자신의 전문 분야에 걸맞게 픽했습니다. 

다섯 분 작가가 꼽은 만큼 다양한 작품들이 포함되어서 더욱 즐거운 독서였습니다. 책 맨앞에는 동서양 작가의 계보도가 나오는데 이 도식화가 절대적인 건 아닙니다만 많은 추리팬들이 동의할 수 있는 재미있는 정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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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2학기 급수표 받아쓰기 - 2022 개정 교육과정, 초등학교 입학하면 꼭 하는 초등 급수표 받아쓰기
컨텐츠연구소 수(秀) 지음 / 스쿨존에듀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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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2학기만 되어도 생활 태도, 바른 마음가짐에 대해 가르치는 여러 텍스트들이 이렇게 나옵니다. p29를 보면 주제가 "서로 존중해요"인데, 텍스트로는 "방법을 여쭤보면", "기분이 상하지 않게" 등이 나옵니다. 그런데 저 구절에서 "여쭤보면"의 띄어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걸어 보다"의 경우에는, 걸다 혹은 걷다 같은 동작을 시도한다는 뜻이지만, 물어보다, 여쭤보다에서는 그런 시도, 시범이라는 뜻이 많이 희석됩니다. 그러므로 이는 본용언+보조용언으로 분해되지 않고 하나의 단어로 이미 융합이 된 상태입니다. 따라서 이 교재에서처럼 붙여쓰는 것이며, 눈썰미 좋은 아이들은 이런 것도 예리하게 물어 봅니다. 물론 이런 게 나중에 수능에 출제된다거나, 논술에서 중요 포인트를 점유하는 건 아닙니다만 국어를 정확하게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 주는 건 틀림없습니다. 스쿨존에듀의 정확한 교열, 편집에 대해서도 거듭 신뢰하게 되는 대목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41을 보면 "나를 내던져서 이웃을 돕는"이란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내던지다는 물리적으로 어떤 물체를 투척한다는 게 아니라 "희생하다"라는 비유적, 파생적 의미겠습니다. 이 페이지를 보면 "부끄러운 비밀을 털어놓는"이라는 구절도 있는데, 털어놓다도 이걸 하나의 굳어진 단어로 보기 때문에 띄어서 쓰지 않고 저렇게 붙여씁니다. 탈탈 털어서 어디에 위치시킨다는 뜻이 아니라 누설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끗수" 같은 것도 "끝"처럼 잘못 쓰기 쉬운 단어이며, 사실 저게 비속어가 아니라 표준어인지도 잘 모르는 이들이 태반입니다. 앞의 "내던지다"도, "내어서 던지다"같이 분해가 가능하지 않으므로 내던지다라고 붙여 쓰는 것입니다. 

p53을 보면 8급 텍스트들인데 "절구에 넣어 쿵더쿵 빻고"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절구가 어떤 믈건인지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쿵더쿵이라는 의성어도 "덕"처럼 잘못 쓸 수 있습니다. 사실 "빻다"도 어떤 동작인지 모를 수 있는데, 한 팔 년 전부터 인터넷에서 못생긴 사람더러 "얼굴 빻았냐?"라는 표현이 유행했기 때문에 의외로 인지도가 높아졌습니다. "흙을 나르느라"도 운반한다는 뜻의 "나르다"를 아이들이 낯설어할 수 있죠. "냄새 맡은 값이라니요?" 제가 국어 교과서를 미처 보지 못해서 무슨 맥락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냄새 맡은 데에 값을 매긴다니 너무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p59를 보면 "마치 사막처럼 황량해"라는 문장이 있는데 2학년 2학기 과정의 아이들이 "황량하다"는 표현을 배우는 걸 보면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드네요. "머리를 갸우뚱거리다"라는 말도 있는데, 갸우뚱이라는 의성어를 정확하게 쓸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소금을 싣고 가던"이라는 구절에서, "실어라"처럼 활용(conjugation)하는 동사의 기본형이 저렇게 "싣다"라는 걸 아이들은 처음에 어려워할 수 있습니다. "꽃들은 더욱 만발했고"에서 만발(滿發)도 사실 쉬운 말은 아닙니다. 맞은편 페이지에도 역시 가로노트 연습코너가 나오는데, 평가란을 보면 잘했어요/훌륭해요/최고예요"라고 나옵니다. 다 칭찬이죠. 여기서도 "최고에요"인지 아니면 "최고예요"인지가 논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고 다음에는 "이"라는 서술격 조사의 어간이 와야 하므로 이+에요의 준말이 "예요"가 되는 게 맞습니다. 이런 대목에서도 스쿨존에듀의 꼼꼼함을 신뢰하게 됩니다. 

p77을 보면 "내 생각은 이래요"라는 주제 하에 역시 다양한 문장을 배웁니다. "왜 책임이 필요하죠?"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일단 아이들이 "책임"이라는 말을 먼저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어른도 책임이 뭔지를 정확히 이해하기 힘든 판에, 아이들이 과연 얼마나 이를 오해 없이 소화할지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뒤뜰을 자유롭게 꾸며"에서 뒤뜰이라는 단어도, 잘못하면 뒷+뜰이라고 사이시옷을 괜히 넣을 수 있습니다. 뒤에 된소리, 거센소리가 오면 사이시옷은 본래 들어가지 않습니다. 1-1 교재도 그랬지만 챕터 중간중간에 놀이터라고 해서 잠시 아이들이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코너가 있는데 이 역시도 스쿨존에듀의 세심한 배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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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무늬 - 청소년을 디카시집
박예분 지음 / 책고래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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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카메라는 요즘 폰카가 성능이 너무 좋아지다 보니 거의 유물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미러리스라든가 하는 하이엔드 품목은 예외입니다만 그런 걸 어린 학생들이 갖기는 쉽지 않죠. 이 시집은 아동문학가이신 박예분 선생이 쓴 작품집인데, 아이처럼 순수한 동심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또 사실 디카라는 것도 이걸 혹 가진 분들이 있다면 어느 정도 연세가 있는 분들일 텐데, 심플하고 과감한 구도로 촬영한 여러 컷들이 함께 실려서 동시 작품들과 아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58에는 <저공비행>이라는 작품이 나오는데 이 멋진 사진을 보면 이 책의 메인이 시인지, 아니면 사진인지가 헷갈릴 정도입니다. 하긴 종이를 자르는 게 가위의 윗날 아랫날 중 어느 편인지 구태여 가릴 필요는 없겠죠. 아무튼 수면 위를 아슬아슬하게 활강하는 갈매기와, (사실은 제법 거리를 두었겠으나 광각상 가까워 보이는) 갈매기를 가리키는 팔뚝이 서로 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그런데 이 사진과 함께 게시된 시도 기가 막히는데, 시에는 갈매기라는 말은 한 마디도 없고 "내 근처를 나는(=비행하는) 심장 폭격기"라는 묵직하고 짧은 구절이 독자에게 충격을 줍니다. 이 컷을 정말 한 마디로 압축하는 시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p94에는 정말 웃음이 안 나올 수 없는 작품 <초상권>이 있습니다. "내 사진 함부로 쓰지 마시고 박예분 시인의 디카시(詩)에만 올리세요"라는 구절을 보며 빵터졌는데, 이 사진 작품을 보면 정말로 오리가 그런 말을 하는 것처럼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뭔가 사람들을 향해 심각한 당부라도 하듯이 말입니다. 시인의 텍스트 작품이 미리 자리를 잡아서 그리 선입견이 생겼는지는 모를 일이나 아무튼 사진 작품과 시가 기가막히게 들어맞는 분위기라서 참 절묘한 포착이다 싶었습니다. 하긴 오리도 감정이라는 게 있을 수 있는데 자기 얼굴이 아무데나 돌아다닌다면, 또 허락을 받은 작가분 외에 다른 이가 함부로 쓴다면 거 어디 기분이 좋겠습니까? 

저는 <사랑과 전쟁> 같은 드라마 재방송을 어쩌다 주말에 볼라치면, 입양한 아이를 두고 "가슴으로 낳았다"는 표현이 그 대사에 포함된 걸 가끔 듣습니다. 배 아파 낳은 아이는 아니라도 가슴으로 낳았다는 말이 왠지 찡한데, p119를 보면 시인도 고목나무가 가슴으로 낳은 아이가 바로 애기똥풀이라고 하십니다. 수종이 다르니 얘들 사이가 부모자식이 될 수야 없죠. 그러나 지척에 두고 양분을 나눠 가졌으니 뭐 양부모라 못 부를 것도 없는 사이입니다. 또 여기서 제가 묘하게 본 부분도, 애기똥풀이 정말 멀리서 보면 하늘하늘 날개짓하는 나비처럼 보인다는 점입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광화문 아니라 전국 어디에나 있지 싶습니다. 그만큼 한국인에게는 보편적으로 숭배되는 성웅(聖雄)인데, 아마 차고 계신 그 칼을 칼집에서 뽑으신 적은 없기에(동상이니까) 녹이 슬어서 실제로는 잘 들지 않으리라는 시인의 말은 타당합니다. 그런데 이 동상이 굽어보는, 뛰어노는 아이들(대체로는 초등학교 운동장 소재이겠으므로)과 함께 이 풍경이 평화의 상징이라는 말까지 덧붙었습니다.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도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대비하라고 했으니 이 말은 여러 이유에서 합당합니다. 

p212에는 <엄마는 고민 중>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같은 종류의 생선 두 두름이 소쿠리에 나누어 담겼는데, 이 사진이 엄마의 고민과 무슨 상관일까. 그런에 다음 페이지네 나오는 "고사리 넣고 지질까, 튀길까, 찜 할까."라는 구절을 보고 아 그렇겠구나 싶었네요. 엄마한테는 덩치는 작아도 싱싱한 이 물고기들이 과연 어떤 요리로 쓰여야 제맛일지, 또 식구들에게 최상의 대접이 될지 고민이 아닐 수 없죠! 예술가의 탁월한 안목부터, 가정주부의 가장 소박한 고민까지 두루 압축된 멋진 시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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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의 시선
이재성 지음 / 성안당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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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시인은 2005년생이니 이 시집을 출간한 작년에 열아홉살이었습니다. 그는 고3때까지 야구 선수로 활약하다가 재작년부터 소셜미디어를 통해 시를 발표하며 사람들(=독자들)과 소통했다고 하니 우리가 SNS를 마냥 나쁘게 볼 것도 아닙니다. 소셜미디어가 아니었으면 우리가 이런 유망한 시인을 미처 만나지 못하지 않았겠습니까. 물론 성안당(보통 자격증 교재 만드는 곳으로 알았는데) 같은 출판사에서 만든 책이 시인과 독자를 이어주는 다리 구실을 했지만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물이란 분자는 사물의 색을 더 진하게 만들어 줍니다. 시인은 p34의 <비>에서 자연은, 혹은 모든 물체들은 비를 피하는 법이 없다고 합니다. 이들도 비 때문에 몸 혹은 마음이 아플 수 있지만, 내 타고난 빛깔이비로 인해 더 선명해진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여기서 제가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비를 맞았을 때 그 맞는 입장에서 "아플" 수 있다는 그 상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밖에서 비가 후두둑 떨어지면 피하기 바쁩니다. 당연히 옷이라든가 머리, 혹은 휴대한 물건이 젖을까봐인데, 시인은 그것도 다 비 맞는 게 아파서라고 해석하는 거죠. 그러나 자연도 사물도 의연히 맞으며 상처를 낫우려 들듯, 사람도 비를 구태여 피하지 말고 그냥 맞으면서 내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고 시인은 (나이도 어리면서) 우리에게 충고합니다. 

해외 대도시에 놀러가면 우리는 미술관에 꼭 들러서 사진도 찍고 인스타에 올리려고 아주 발버둥을 칩니다. 그런데 p40의 <미술관>이란 작품에서, 시인은 바로 우리 근처에 미술관이 있다고 합니다. 입장료도 없고 전시품도 더 그럴싸한데 우리는 근처에 그게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칩니다. 그건 바로 하늘입니다. 이 미술관은 전시품도 매일매일 바뀝니다(눈이 어두워서 그게 바뀌는 줄 모를 뿐). 미술관은 휴무일이라는 게 있으나 하늘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하늘을 미술관으로 바로 볼 줄 아는 그 맑은 눈이 어린 나이에만 있을 수 있다는 게 부럽습니다. 

수평선이 하나의 프레임이라고 생각해 본 적 있습니까? p50의 <수평선>을 보면 푸른 하늘 아래 푸른 바다, 하얀 구름 아래 하얀 갈매기, 노란 태양 아래 노란 등불처럼, 수평선을 대칭축 삼아 양편에 비슷한 빛깔이 전개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는 이치를, 시인은 "화가가 그림을 너무 크게 그려 수평선으로 나누어 놓았다"고 설명합니다. 너무 큰 그림은 좁은 시야에 들어오지 않지 않습니까. 바로 맞은편 페이지에는 출퇴근도 일정한, 피곤해서 흐느적거리는 노을에 대해 안쓰러움을 표현합니다. 이처럼 시인의 가장 큰 재주는 바로 그 보는 시선의 독창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구라는 공간은 진공이 아니고 중간에 매질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래서 열(熱)의 전도 현상이라는 게 벌어지는데 시인은 p60의 <늦가을의 너>에서 날씨가 추워짐에 따라 덩달아 자신에게 차가워진 "너"에 대해 아쉬운 마음을 표현합니다. 공기가 차가워진 건 알겠는데 왜 너까지 차가워지냐는 겁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 않냐고 하는데, 본래 차가워진 공기는 사람한테서도 열기를 뺏어가게 마련이니 당연하게 여기...라는 건 아주 무책임한 조언이겠죠. 사람은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따스해질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시인도 알고 우리도 다 압니다. p61의 <시의 계절>에서 시인은 솔로(그래서 헤어졌나 보죠?)인 신세를 가볍게 탄식하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의 건강한 남자는 누구나 병역 의무를 이행해야 합니다. p86의 <신체검사>에서 시인은 신검 결과가 1급이라면서(야구 선수 출신인데 오죽할까요?) 마치 투쁠 등급을 받은 한우가 이렇지 않겠냐는 말에 빵터졌습니다. 그 솔직한 느낌 표현에 대한민국 모든 남성들이 공감할 수 있겠는데, 이처럼 이 시집은 나이 어린 시인의 꾸밈없고 기교없는 작품들 때문에 독자의 마음까지 뿌듯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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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2010년대편 1 - 증오와 혐오의 시대 한국 현대사 산책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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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부터 전북대 신방과 교수로 재직하셨으며 당대에 큰 논란이 될 만한 이슈를 과감히 제기하여 언제나 담론의 중심에 서 있었고, 현재는 명예교수직인 강준만 박사님의 새 책입니다. 이 제1권은 2010년, 2011년을 각각 다룬 1부, 2부로 구성되었는데, 그렇다면 앞으로 2010년대는 다섯 권의 책들이 더 나온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근간예정도서들의 목차가 이 책에 마치 예고편처럼 실려 있기도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2010년에는 유시민씨가 국민참여당이란 당을 만들었다고 p78에 나옵니다. 이런 책에서 상기시켜 주지않으면 이제 기억에서도 가물가물한 사건이 되어버렸습니다. 사실 유시민씨는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장관에 임명되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많은 노선과 불일치하는 행보를 자주 보여서 주류에 의해 이단시되던 경향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모두 지난 과거가 되어버렸지만 말입니다. 이 챕터의 말미에, 파리의 택시운전사로 유명한 홍세화씨가 "절독을 하려면 조용히 하면 되지, 구태여 선언을 해 가며 해야 했나?"며 일침을 놓은 발언이 실렸습니다. 홍세화씨는 작년(2024) 4월에 타계했습니다. 

이무렵에는 이명박 정부가 서서히 임기말에 달하며 권력 누수 현상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청와대 참모였던 권재진씨를 법무장관에 임명하려 하자 야권에서 많은 반발을 표시했습니다. 정부는, 특히 법무행정과 검찰권 감독을 맡은 부서는 청와대로부터 독립된 인사가 그 장을 맡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뜻에서였습니다. 이런 사건들은 이런 책을 통해 되짚지 않으면 전혀 생각조차 안 날 듯한데, 강준만 교수가 마치 실록처럼 상기시켜 줘서 기억을 더듬어가며 재미있게, 또 의미깊게 읽을 수 있습니다. 

p226에서 저자는 물리적 인의 장막과 심리적 인의 장막을 지적합니다. 전자는 이른바 문고리권력 실세 집단으로 우리가 아는 것이며, 후자는 특정 정치인을 광적으로 지지하는 팬덤이라고 이해하면 될 듯합니다. 후자에 대해서 저자는 특히 "사모(思慕) 집단"이라고 규정하는데 책에서 박근혜씨를 지지하던 약칭 박사모를 그 대표적인 예로 듭니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정치인은 팬덤이 아니라 항상 보편적인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데 이런 인의 장막이 그를 막는다는 점에서 대단히 정치인에게 해롭고 국가를 위해 불행한 결과를 낳는다고 저자는 소결론을 냅니다.   

p248을 보면 2011년 4월 27일에 (봉하마을이 소재한) 김해을 선거구에서 보궐선거가 있었나 봅니다. (거듭되는 말입니다만) 이런 사실은 책에서 알려주지 않으면 기억에서 까맣게 잊혀진 사건들이라서 새삼 지난 역사의 의미에 대해 반추도 하게 됩니다. 당시 유시민씨는 여전히 국민참여당을 유지하며 자당의 후보 이봉수씨를 민주당과의 협상을 통해 단일후보로 내세웠으나 선거에서는 패배합니다. 이때 원래 민주당에서는 김경수(나중에 경남지사를 지내는 바로 그 인물)씨가 나올 예정이었다고 하네요. 또 강금원씨가 유시민씨에 대해 그는 친노가 아니라며 강하게 비판했던 사실도 적혔습니다. 그리고 이 챕터에는 문재인 비서실장, 탁현민 공연기획자 등 진보 진영의 다음 시기를 이끌어갈 중요인물들이 슬슬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원래 2007년 즈음에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내부가 아니라 재야단체(지금 명칭으로 시민사회단체)에서 대부처럼 활약한 박원순 변호사를 차기 대선 후보로 모셔오면 어떻겠냐고 한 적 이 있습니다. 그런데 박 변호사가 한사코 고사했죠. 그때만 해도 박원순이라는 인물에 대해 일반 시민들사이에서는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011년 이 시점에서는 분열만 거듭하는 민주당에 대해 사람들이 크게 실망하여, 박원순 등 외부 인사를 영입하자는 여론이 크게 일었습니다. 이때 안랩이라는 벤처 기업의 성공으로 크게 주목받았던 안철수씨가 갑자기 인기가 높아져서 단번에 서울시장 보선 후보로 떠올랐는데, 결국 박영선(민주당 내 인사. 방송인 출신), 박원순 등과 단일화를 거쳐 박 변호사를 서울시장에 당선시키는 데 일조합니다. 

p334에 나오듯이 이때는 토마 피케티라는 프랑스의 경제학자가 제기한 불평등 아젠다가 크게 주목받았는데, 저자는 동물학자 리처드 코니프의 말도 인용하며 무슨 이유로 빈자들이 부자를 찬양하고 고마워하는지를 두고 호되게 비판합니다. 또 저자의 전공이 전공이다보니 종편 허가, CJ E&M 등의 창립에 대해 상대적으로 큰 비중을 두어 서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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