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보수와 퇴직금 규정 작성매뉴얼 - 개정판
강석원 지음 / 코페하우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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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금"이란 좀 특이한 제도입니다. 요즘이야 그런 생각을 하는 이가 없지만 과거에는 고용주가 나를 써 주는 처사에 대해 일종의 은혜로 알고 직장을 다니다가 퇴직할 때 목돈까지 챙겨주니 고맙게 여기는 풍조가 있었죠. 그런데 이 퇴직금은 근로자(사무직 직원 포함) 본인의 급여 일부가 적립되고, 여기에 사용자가 따로 자기 부담부분을 붓는 시스템이니 엄밀히 말해 "이연(=미뤄서) 지급되는 급여", 혹은 "노동에 대한 대가"일 뿐 어떤 시혜 같은 건 아닙니다. 더군다나 이미 반 세기도 전에 제정된 근로기준법의 법정의무사항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노태우 정부 당시 한창 노사분규가 심했을 때, 노동자의 임금이 어디까지 범위가 책정되어야 하는지를 두고 정말 치열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그때 확립된 원칙이 "무노동 무임금"이라든가(그래서 지금도 소위 "노조전임자" 급여에 대해 까다로운 기준이 적용됩니다), "통상임금"의 범위 문제 같은 것입니다. 통상임금에는 지금도 "상여금"은 포함 안 된다고 하며(통상임금이 왜 중요하냐면 해고라든가 산업 재해 같은 게 발생할 시 몇 개월치의 통상임금 지급금을 정할 때 아주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이죠), 대신 명절 떡값은 포함된다는 게 판례의 태도라서 매우 흥미롭습니다. 문 정부 들어서 드디어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려는 입법 시도가 (올해 상반기에) 있었는데 지금 경기가 최악이고 거의 YS 때 외환위기 수준의 불안감이 사회 전체를 엄습하는 터라 그 귀추가 주목됩니다.

노태우 정부 당시에 임금의 범위, 혹은 본질이 무엇인지를 놓고 학자들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있었는데 그래도 그 당시에는 많이 배우고 책임 있는 중량감 있는 논리가 오가는 면이 있었네요. 지금은 뭐 막돼먹은 인간들이 아무 근거도 없이 엉터리 같은 유언비어, 낭설로 치고박는 판이라서... 아무튼 당시 이른바 "생계 보장 부분"이 임금에 포함이 되느냐, 아니면 순수하게 노동의 대가로만 구성되느냐를 놓고 정말 대단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근데 자유주의 진영에서도 너무 임금 도그마에만 집착할 건 아니라고 생각도 됩니다. 요즘 그... ISO 26000을 보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명시까지 되어 있습니다. 기업은 이미 이윤 추구에만 몰입하는 조직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사회적 책임도 분담할 책무가 있는 거죠.

이런 퇴직금 제도 하나만 봐도, 근로자들의 최소 생존 부분을 국가와 기업이 어느 정도는 나눠서 지는 게 현대 사회 구조의 본질 중 하나입니다. 다만 그 범위, 한도가 어디까지냐가 문제인 거겠고... 소탐대실이라고, 모든 걸 가지려 들면 정말 필요한 것까지 다 놓칠 수도 있습니다.

퇴직금 관련해서는 우리나라는 기업이 좀 많은 부담을 지는 구조입니다. 즉 그 직원의 퇴직 직전 임금을 기준으로, 그게 얼마가 되든 그의 일정배수를 두말않고 사측이 지불해야만 합니다. 반면 외국에서는 확정기여형(이른바 DC)을 주로 채택하는데, 기업은 일정 금액(그 근로자의 급여와 무관하게)을 금융 기관에 납입만 하면 끝입니다. 이 기금을 금융기관이 굴려 대박이 나든 쪽박을 차든 퇴직시 그 결과물을 지불하면 됩니다. 한국은 금융기관의 운용기술이 매우 후진적인데다 이 방식대로라면 많은 근로자들의 노후 설계가 위협받게 되므로 이 방식이 아닌 확정 급여형(보통 DB라고 부르는 방식)을 채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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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마주서는 용기 - 하버드대 10년 연속 명강의
로버트 스티븐 캐플런 지음, 이은경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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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온 힐, 데일 카네기 같은 저술가(분명 자계서 저자)들의 책을 자계서로만 인식하는 이들은 오히려 적습니다. 무슨 톨스토이 인생독본처럼 경건한 고전이라든가, 넓은 범위의 경영서에 한 자락 걸치는 명저처럼 받아들이는 게 보통이죠. 정말 직장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전시키려는 용도로 자계서를 (곧이곧대로 순수하게) 소화하고 싶다면, 그리고 요즘 나온 책 중 알곡과 쭉정이를 바로 고르는 데에 자신이 없다면, 정평이 난 자계서 고전을 고르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이 로버트 슐러의 책도 그런 범주에 들어갑니다.

직급이 뭐든 간에 회사에서 "배짱있게 살아갈 용기"라는 제목을 단 책을 펼쳐 놓고 읽을 때, 남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겁니다. 이걸 내가 부하들, 혹은 동료 보는 데 펼쳐 놓고 있으면 뭔가 스스로 추진력이 부족하다는 걸 노출하는 거나 마찬가지 아닐까? OO은 자계서를 읽을 만큼 상황이 한가한가? 등등. 그런데 책이 재미있으면, 또 (고전이 흔히 그렇듯) 시대를 초월해서 참 적실성 있는 교훈이다 싶은 걸 요점만 착착 잘 제시하면, 어느 새 책의 저자와 정신 없는 소통에 빠져 현실의 소소한 눈치가 하찮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 이거? 다 읽고 나서 잠시 빌려 줄게." 사실 이런 직접적 반응에서의 자신감, 확신이 상대에게도 더 효과 있게 전달되기 마련이기에, 앞 단계에서의 사소한 교란은 진정성 아래 덮이는 게 보통입니다(소위 moment of truth).

이 오래된 책의 원제는 <Let's learn with Boldness>입니다. 당신을 둘러싼 객관적 상황이 어떠한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지혜가 무엇인지, 너 자신의 진짜 약점이 어디에 있는지, 이런 것들을 배우기 위해 결코 망설이거나 머뭇거리지 말라는 의미죠. 영어에서 "배짱"은 grit라든가, 혹은 gut 같은 단어를 써서 표현하기 때문에 좀 그렇긴 합니다만, 한국에서는 어쩌면 모든 문제가 "직장인 자신의 자신감 부족"에서 비롯하는 게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형 자계서의 원조라 할 이시형 닥터의 그 책에도 제목에 "배짱"이란 단어가 들어가죠. 집단에 끼기라도 하면 무서울 게 없는데, 혼자 서면 확신도 없고 뭘 해야할 지 모르는 한국인들의 흔한 속성 때문에 아마도 특히 강조되는 덕목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배짱"만으로도 충분한데, "용기"까지 피수식어로 한 번 더 들어갔으니 역자분의 의도가 짐작되고도 남습니다.

초기 자계서 저자들 중에는 기독교적(정확히 말하면 "청교도적") 도덕관을 사상적 배경으로 지니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이 저자 로버트 슐러도 목사님이라서 그런 경향성은 한층 더한 편인데요. 현재의 자계서 주류에서 흔히 접하는 "세속주의적 솔직함"과는 거리가 멀게(그렇다고 저자가 솔직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슐러 목사님은 물질적 탐욕과 집착에 젖은 사람은 참된 성공, 그리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그걸 갖고 싶다면, 결코 그것에 집착하지 말라는 가르침, 이를 자신의 삶 속에서 몸소 실천한 저자의 경우, 비슷한 표현을 쓰는 것 같아도 아주 청신하고 경건하게 다가옵니다. 우리가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을 때 언제나 감동을 받는 건, 그게 그저 흘낏 시선을 줄 수 있었던 책 앞표지의 저자 이름란을 확인한 후 비로소 시전하는 위선적인 "결과론"만은 아마도 아닐 것입니다. 그게 그 (이름난) 저자의 말이라서가 아니라, 그 말 자체가 내 영혼에 진정으로 파장과 공명을 주기 때문에 감동이 밀려 오는 게 분명하죠. 반면 평범한 저자의 경우, 그게 진심의 순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독자도 밋밋한 반응에 그치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사회에서 성공하려는 자, 남 앞에 두드러진 성과를 내려는 자가, 진정 제 목표를 달성하고 싶다면 먼저 자신에게 정직하라는 가르침을 펴고 있습니다. ㅎㅎ 제목대로 너무 "배짱"만 강조한다거나 안면몰수식 추진력만 내세우는 내용은 아닙니다. 영어의 "boldness"라는 게, 현실에 안주하지 말라는 뉘앙스가 기본으로 깔려 있거든요. 당신이 안주하는 현실이 어느 순간 재앙, 심지어 죄악으로 화할 수 있다는 게, 그래서 언제나 의존할 것은 도덕적, 객관적, 보편적 진실밖에 없다는 게 이 저자의 일관된 기조입니다. 자계서에서 대체 왜 "물질"의 가치를 낮잡아 말하는가, 그 점이 의아하셨던 분들은 이런 배경을 알고 책을 읽어 나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직장에서 차라리 더, 직원의 일관된 인격, 캐릭터, 개성이 더 필요하고, 이게 흔들리지 않으려면 먼 근본에서는 물질에 초연한 자세가(역설적이지만) 더 필요합니다.

뉴질랜드에 가 보거나, 혹은 친지를 두고 있는 분들이 요즘은 한국에 많죠(대략 십오 년 전부터 이주자가 확 늘었으니). 뉴질랜드는 의외로 정부 정책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나라인데, 이 책이 쓰여진 당시에도 자유방임주의하고는 거리가 좀 멀었던 것 같습니다. 성경 말씀처럼 진심으로 구하면 이루어지지 못할 바 없다는 내용인데, 그 예를 저자는 뉴질랜드 최초의 상업(민영) 방송국 허가 에피소드를 통해 들고 있네요(기독교 관련 내용은 아니고요). 제가 또 하나 느낀 건, 독창성 높은 자계서일수록 이처럼 다른 책에서 못 보던(얼핏 봐선 이상하게까지 들리는)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다는 겁니다. 모르겠습니다, 만약 제가 이 책 최초 출간시점과 동시대의 저자라면 적어도 이 이야기만 읽고서 큰 감흥이 못 느껴졌을 수도 있는데요. 사실 공무원이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뭐 하나 허가를 따 내거나 승인을 받으려면 이분들 대하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닙니다. 그래서 그만큼이나 많은 비리가 생기고 사건이 터지는 거겠습니다만,.. 여튼 저는 1970년대 뉴질랜드에서 인허가 관련 이런 재미있는 사실이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고, 주로 미국에서 활동한 저자가 이런 형편에까지 밝을 만큼 인맥이 넓다는 점에도 주목했습니다.

명연설 명설교 명저술로 유명했던 저자지만, 구수하게 풀어 놓는 경험담이나 유익한 일화에만 치중하지 않고, 특히 11장 같은 데서는 좀 독자 머리에 부담이 느껴질 만큼 강렬한 명제화, 교훈화를 시도합니다. 이런 걸 보니 이 책 자계서 맞구나 싶을 만큼요. 내가 최소한 이 정도는 내 실제 인생에서 다 실천해 보고 쓴맛단맛 다 보고 나서 하는 소리다, 뭐 이런 "어조"가 느껴지게, 결론 파트에서 독자에게 교훈을 압축적으로 정리하는 "포스"가 장난 아닙니다. 대담하게 인생을 산 사람이, 같은 말을 해도 훨씬 강렬한 진정성과 교훈을 담아 "대담하게" 결론을 이렇게 추려낼 수 있는 거겠죠? 내가 내 자신에게 "배짱 좋게" 심층 내면을 향해 다가서고 불필요한 감정의 잔가지, 잔해를 정리해 낼 수 있다면, 그 참된 배짱이 대인 관계에서, 혹은 공적 소통에서도 자연스럽게 제 기능을 합니다. 그릇된 외관에서 비롯한 헛된 욕심을 버리라는 그 깨끗한 가르침이 왜 많은 독자들을 설복했는지 잘 알게 하는 고전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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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공부하는가 - 인생에서 가장 뜨겁게 물어야 할 질문
김진애 지음 / 다산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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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착륙 음모론이 이상하게도 어린 세대 사이에서 인기입니다. 음모론은 본디 귀를 기울일 게 못 됩니다만, 당대인들도 의심 없이 믿었다고 하는 걸 왜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 와서 새삼 의혹의 눈길이 쏠리는지는 의아할 뿐입니다. 이에는 아마, 1980년대 후반 들어 성과가 지지부진하고, 간헐적으로 (그저 실패에 그친 게 아니라) 대형 참사까지 몇 건 발생하기도 했던 게 한몫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사실 나사의 이런저런 프로젝트는 성과가 없지는 않았으나, 그게 "달 착륙" 만큼 대중에 임팩트를 주지는 못한 탓도 있죠. 앞으로도 무엇을 성취하건, 인간이 달에 한 발을 내디딘 것만큼 큰 인상을 남긴 사건은 좀처럼 다시 벌어지기 힘들 것입니다.

여튼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역시, 1960년대의 미국 같은 초강대국은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겠죠)이 뭘 주도해서 인류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준 이벤트가 재연이 안 되는 상황에서, 다만 성장 과정에서 저 달 착륙에 대해 엄청난 감명을 받고 자란 세대(솔직히, 그 이후에 태어난 이들은 그저 그러려니, 역사적 사실의 하나로 여길 뿐인데)는, 우주에 몸(정신적으로야 그간 인류가 이룬 간접 성과를 통해 얼마든지 침잠시킬 수 있죠)을 보다 가까이 접근해 보려는 꿈을, 국가 단위가 아닌 개인 차원에서 내 것으로 삼아 보려 들 수 있습니다. 적어도 극소수는 이를 (아직은 미미한 단계에서나마)실천에까지 옮겼고, 이런 이들의 노력을 통해 어쩌면 (성장 동력이 모두 소진되어 간다는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세계 경기 재생의 힘찬 모티브 중 하나로 발전할 가능성마저 보입니다. 아마존 창업자이자 현 CEO인 베조스 같은 이의 몸부림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사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이들이야 또 그런 꿈을 가진다 쳐도, 아무 배경도 없이 그저 동네 아저씨(할아버지?) 같은 분이 이런 야무진 희망을 현실에서 일부나마(일부라고 헐하게 표현하고 말기에는 제법 성과가 중대해 보입니다) 이루었다면, 그건 참 놀랍고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자 우에마쓰 쓰토무(이분은 노력이라는 努자를 쓰시는데, 일본에는 쓰토무의 경우 단 한 글자로 이처럼 이름을 짓곤 하더군요. 개인마다 뜻이 통하는 다른 한자들을 두루 적용해 가면서)씨는, 시골 탄광 마을에서 태어나, 간신히 진학(책을 읽어 보면 정말 천신만고 끝의 과정이더군요)에 성공한 후, 어려서부터 키운 꿈 그 원형대로 별반 타협도 없이 자신의 진로를 펴 나갔습니다. 이분도 부친의 철물점을 이어받긴 했으니 가업 계승이 이뤄지긴 한 셈인데, 그게 그저 철물점에 그친 게 아니라 재활용 전자석 기업으로 확장, 재탄생했으니, 부친의 이름을 이보다 더 빛낸 아들도 찾아보기 힘들다 하겠습니다.

재활용 전자석 분야의 개척적 기업이라고는 하나, 책에 보면 나오지만 사실상 도심 외곽이나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작은 공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의 공장에는 대졸자가 단 한 명도 없는데, 사실 기업이라는 게 그렇더군요. "내 편"이 되어 줄 사람이 직원으로서 필요하지, 학벌이나 심지어 능력 요소조차 그리 긴절한 건 아니더라는 겁니다. 학벌과 능력이 좋아도 조직에서 겉도는 사람은, 회사에 장기적으로 해만 끼칩니다. 하긴 뭐 일도 안 하고 내가 원래는 뭐였네 이런 데서 일할 계제가 아니네 하며 환상에만 빠진(나이까지 많으면서 지하고 나이 차도 몇 살 안 나는 남들더러 어르신 소리는 악착같이 붙이고 다니죠. 그래서 애들 같은 싸구려 패션을 걸치고 다니나 봅니다) 인간보다는, 그래도 인맥이라도 갖췄거나 맡은 업무라도 야무지게 해 내는 사람이 물론 낫기는 합니다만(충성심이야말로 진정, 흔히 볼 수 있는 미덕이 아닙니다).

근데 저는, 뭔가 자기 분야에서 안 될 만한 상황을 극복하고, 남들 보기에 가망 없는 일을 해낸 분일수록, 그분의 입에서만 나올 수 있는 "명언"이 있다는 게 참 신기하더라구요. "안 해 본 사람은, 안 되는 이유만을 남에게 가르쳐 줄 수밖에 없다." 거 참, 맞는 말입니다. 뭐 정주영 창업자의 "이봐, 해봤어?" (해 보기나 하고 그런 소리를 하라는 뜻) 처럼, 기업가 정신은 일단 되든 안 되든 현장에서 부딪혀 보고, 안 되면 안 된 대로 뭔가 교훈을 얻어내기라도 하라는, 대단히 질박한 성격의 것입니다.

반대로, 일단 해 보고 작은 성과라도 얻어낸 사람은, 남한테 "이렇게 하면 되더라"를 가르쳐 줄 만한 위치에 서게 됩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하면 안 돼"를 말하는 사람과, (아무리 작은 거라도) "이렇게 하면 할 수 있어"를 말하는 사람, 얼마나 타인에게 끼칠 수 있는 영향의 차이가 큰지를 말입니다. 그냥 말동무를 삼고 싶은 사람이라고 해도,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끌릴 것입니다. 탄광촌에서 로켓을 쏘아 올릴 꿈이라니 얼마나 허황하고 실속도 없이 들립니까. 그러나 순수한 자기만의 열정을 품은 이였기에, 지금 대기업들이 눈독 들일 만한 소소한 특허(개중에는 중대한 것도 보유)를 저리 여럿 따 낸 거죠. 그게 탄광촌에서 불평불만이나 품고 거짓말이나 일삼는 인생이었으면 어디 가능이나 할 법했겠습니까. 인간은 이래서, 진정성 있는 인성의 세팅이 그만큼이나 중요한 겁니다. 근본 없고 가식과 뻘소리만 일삼는 늙은 스토커의 헛발질과는 엄청 큰 차이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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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유대인인가 - 상위 1% 유대인의 부와 성공의 비밀
마빈 토케이어 지음, 박현주 옮김 / 스카이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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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 지긋하신 분들 중 마빈 토케이어라는 이름이 많이들 귀에 익으실 줄 압니다. 지난시절 워낙 이분 명의로 된 책이 많이 출판되었으므로 4, 50대 이상이시라면 이 이름이 익숙해야 정상입니다. 아직도 생존해 있는 저술가이자 랍비이고요, 그 이름을 아는 분들은 대개 약력까지 다 알고 계시겠지만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포교" 활동에 힘쓴 분입니다(물론 유대교 랍비이니 유대교를 전파하는 거죠). 일본은 풍신수길 집정기에도 천주교가 예수회를 중심으로 널리 퍼진 적이 있고, "순교자"도 다수 배출된 역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기준 이런 외래 종교의 교세는 대단히 미미한데, 일본에서 지난시절 엄청 큰 열풍을 일으킨 마빈 토케이어의 저서들(사실, 그 바람 때문에 한국인들도 이 이름을 기억하는 거죠. 요즘이야 일본 독서계의 영향이 크게 줄었지만)과 그의 대외 활동이, 유대교의 교세 신장에는 과연 얼마나 기여했는지 궁금하긴 합니다. 그는 젊은시절부터 주일미군 군종 사역자로 복무했는데, 전역 후에도 아예 일본에 터잡고 전 커리어를 헌신한 경우입니다. 이 덕분에, 미국에서는 그가 누군지 전혀 모르는 수도 있지만, 일본에서는 종교에 무관하게 최소한 베스트셀러 저자로서의 그에게 대단히 큰 친밀감을 느끼는 게 보통입니다.

대개 그의 책들은 탈무드의 교훈을 적절히 축약하고 쉽게 설명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이 책도 크게 다르지는 않으나, 그보다는 현대인들이 일상에서 갈등하고 상처 입고 속을 썩이는 여러 보편적인 문제들에 대해, 저자 나름의 답을 내어 놓은, 보다 현실에 친밀해진 논의라는 게 눈에 뜨입니다. 예전 저서들이 현명하고 근엄한 교훈(moral)에 치중했다면, 이 책은 소소하지만 치사할 만큼 내면을 번잡하게 만드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자상한 충고에 가까운 토닥임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용기는 지성에서, 지성은 책에서 나온다." 이때 용기란, 만용이나 욱 하는 감정, 혹은 혈기와는 다릅니다. 형세가 아주 불리할 때도 끝까지 항전할 수 있는 건, "이 특수한 사정에선 혹 우연히 내가 궁지에 몰렸는지 모르겠으나, 보편적 조건에서는 내가 옳다"는 게, 그간 교육과 훈련을 통한 뿌리 깊은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책 몇 권 읽고 암기한 몇 줄짜리 단편적 지식만으로는 그런 확신이 생기질 않으며, 사이비에 가까운 엉터리 고집이라면, 위기에 몰려서는 자취도 없이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아 내가 당장 살고 봐야지 명분이니 지식이니 하는 게 다 뭔데 그걸 위해 희생하겠습니까. 그러니 여기서 말하는 지성은, 피상적인 지식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에 완전히 안착한 지혜를 가리킵니다. 엉터리들이 가당찮은 거짓말, 합리화하는 수작이 한눈에 다 꿰뚫어보이는 경지를 뜻한다고도 할 수 있죠.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걸 중시합니다. 기독교 역시 모세의 십계를 중시하지만, 유대인들처럼 교조적으로 이 규범을 준수하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나 근거야 여태 수도 없이 많은 현명한 랍비들이 논변을 펴 왔습니다만, 마빈 토케이어는 짧고 명쾌하게 우리들에게 유효한 설명을 베푸는군요. "자신을 해방시키는 날이 진정한 휴일이다." 일과 관계와 이익을 살피는 게 평일의 과업입니다. 유대인들은 대개 완전히 몰입하여 직업을 수행하므로, 다른 생각을 품을 여유도 없이 일에 집중하죠. 이게 끊임없이 정신을 점유하면 그러나 그 사람의 정신에 탈이 난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희년"이라는 개념도 중시하는데, 계급과 채무채권 관계가 완전히 리셋되는 게 그 이상이라고 합니다(그러나 실천에 옮겨지기란 극히 힘들죠). 한번쯤은 원점으로 회귀하는 계기가 있어야, 생산을 위한 에너지도 충전되고, 꼬이고 꼬인 인간관계에 건강도 찾아진다는 생각은 확실히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습니다. 또 이런 리셋 지향의 사고가 있었기에, 유독 유대인들 중 "혁명가"가 많이 배출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단단한 쇠붙이도 내부에서는 활동하고 있다. " 이는 기초 수준의 화학, 물리를 배운 분들이면 다 아는 내용입니다. 내부의 맹렬한 수련, 시련, 모색, 극복을 위한 도약이 없다면, 결코 고체가 그 튼실한 외관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 이미 랍비들은 근대과학이 발전하기 이전부터 가려진진실을 통찰하고 있었다는 뜻일까요? 사실 랍비들 중에는 꽤나 과격한 이들도 많아서, 전통의 해석과 명제를 충실히 학습하되, 개인의 이견이나 반대, 이설을 대단히 존중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이단을 정죄할 때 서슬이 퍼런 기독교와는 차이가 너무도 크죠. 전 언제나 인상에 깊이 남은 말이, "랍비 열 사람이 모이면 입장이 열 두 개로 갈린다."였습니다. 그렇게 합리적인 풍조가 정착되었으니 오랜 세월을 불리한 여건 속에 살아남은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그런데 왜 통일된 정치 단위는 못 이루고 그토록 오래 떠돌이 생활을 했을지는 좀..).

"돈은 자기 도취의 지름길, 자기 도취는 악의 지름길."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역시 지갑이 든든해야 생활의 최소 기반도 마련 가능하고, 다른 자아 실현의 통로도 개척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유대인 커뮤니티에서 언제나 놀랍게 받아들이는 건, 근검 절약과 혁신으로 결코 마르지 않을 듯한 부와 이윤 창출의 근원을 그들이 지켜 왔다는 사실입니다. 유대인들은 언제나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을 최상의 모범으로 여겼습니다. 남들이 발견 못 한 재산증식법이나 투자 기법을 개발해 낸 것도, 하루 24시간이 부족하고 아까워 그의 효율적인 활용을 궁리하고 궁구한 끝에 어렵사리 도출해 낸 지혜들이지요. 이런 걸 두고 무슨 못된 꾀를 배타적으로 꿍쳐 놨다가 남들한테 사기나 치는 양 여겨서는 곤란합니다. 남들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더 성의있게 문제에 대처하다 발견한 노하우를, 공유할 자격이 있다 싶은 이들에게만 귀띔하고 협업하는 게 나무랄 일은 전혀 아니지요. 여기서 가르치는 교훈은, "돈을 모으되 자기도취에 빠질 만큼 집착하지는 말고, 주객이 전도되지 않게 항상 나의 중심이 유지되도록 본질을 바라보라"는 정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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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투 원 발상법 - 어떻게 사고의 한계를 뛰어넘을 것인가?
오마에 겐이치 지음, 이혜령 옮김 / 21세기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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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발상이란 특별한 지능을 갖춘 이에게만 떠오르거나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고, 이미 많은 학자나 전문가들이 주장한 바 있고, 우리의 경험으로 이를 때때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구글 등의 기업에서 직원들에게 최대한의 자유와 재량을 부여하는 이유는, 고급의 아이디어와 착상은 인재를 닦달한다고 나오는 성짏이 아님을 이미 기업 수뇌부 차원에서 일찌감치 깨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디어는 가장 평범한 사람에게도, 예컨대 집에서 쾌적한 여가를 즐기는 그 한 순간에 "도적처럼" 찾아오는 게 보통입니다. 정형화한 문제를 정해진 알고리즘에 의해 해결하거나, 처음 접하는 문제를 기존의 절차를 교묘히 응용한 (새로운) 방법에 의해 해결하는 건, 연산 능력이 뛰어나거나 훈련이 잘 된 정신에 의해서만 가능하죠. 하지만 "착상"자체는 언제 어디서나, 또 누구에게나 공평히 찾아옵니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정주영 현대 창업주의 소위 "유조선 공법"은, 숙련된 엔지니어들은 오히려 죽어라 노력해도 떠올리지 못할 아이디어였습니다. 문제는, 작금의 화두인 "혁신"은 세부 기술적 인자가 좌우하는 게 아닌, 이런 순간의 아이디어와 영감에 의해 촉발되는 점에 있습니다. "혁신"이 필요한 것은 아는데, 그 "혁신"의 단초를 제공할 섬광 같은 아이디어를, 어떤 조건 하에 두뇌를 놓아 두어야 그나마 편하게 얻을 수 있을지,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고민이라고 하겠고, 이 책의 기획 의도 역시 거기에 있습니다.

 

자, 그런데, 이 책 공저자인 두 분의 면면을 보십시오. 얼핏 보아서는 그런 책의 애초 목표에 전혀 부합하지 않을 것만 같은 인사들입니다. 

마스카와 도시히데(益川敏英)는 이 책이 나오기 2년 전, 이미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원로였습니다. 도시히데의 한자는 敏英인데, 우리 나라에서도 이 분 나이 또래(1940년대 초반 生) 중에 이런 이름(민영)을 가진 어르신들은 이 한자 구성대로 많이 쓰는 모습입니다. 이분이 노벨상을 받은 사유는, 이른바 CP 대칭성의 깨짐(violation of the postulated CP-symmetry)이라는 혁혁한 이론상의 개척이었습니다.

이분보다 20년 연하인 다른 공저자(즉 대담자) 야마나카 신야는, 이 책이 나온 지 2년 후에, 노벨 셍리학상을 받은, 신진 무명 학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묘하게도, 이 책은 그런 점에서, "혁신적 발상"의 본질을 제대로 짚은 (두 명 중) 다른 한 저자에 대해 그 상서로운 운명을 예견이나 해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큰 방향을 제대로 짚은 이들이라면, 큰 성과와 영예가 따르기 마련이라는, 평범하나 실생활에서의 실례를 접하기 어려운 진리를 다소 불가사의할 만큼 가르쳐 주는 책이라고 해도 큰 과장이 아닙니다. 이 책을 읽으시는 분들은 (출판사 소개글과는 무관하게) 이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훌륭한 저자 두 분이 나눈 대담집인 이 책이 왜 "혁신적 착안의 본질"을 배우기 위한 좋은 책이 못 될 수도 있다는 것인가? 아 인슈타인처럼 그 사상 천착의 분야가 철학, 인문 전 분야에 걸쳐 안 미치는 분야가 없다시피한 천재라면 모를까. 해당 분야의 기술지식에 도통한 이들에게 "경영 분야의 신 착상" 비결을 배우는 일은 대부분의 경우 연목구어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아니나다를까, 책의 도입부는 두 분의 전공 분야에 대한 회고와 현안 진단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이런 화제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책을 읽어나가는 데에 피로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자기 본래의 기획 의도를 배신하지 않고, 독자와의 공감을 이어나갑니다(바로 이 점이 이 책만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1) 이들이 이룬 업적(그래서 이미 받았거나, 앞으로 받을 노벨상의 시상 이유가 되기도 하는)에 대해, 과연 달인다운 능숙한 솜씨로, 문외한에게 최대한 쉬운 언어로 설명해 주고 있다는 점  그래서 이 부분만 읽으면 훌륭한 교양 지식을 쌓을 수 있습니다. (본래 독서의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2) 이 책의 본래 취지인 "어떻게 하면 유용하고 창의적인 발상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알려 주고도 있다는 점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2인의 대담자는 가장 편안한 어조로 하드한 주제에 대해 대화를 주고 받습니다. 이런 하드한 자연과학. 혹은 응용공학상의 주제를 놓고 세상에 자랑할 만한 업적을 내놓으려면, 까다롭고 번잡한 실험 절차를 최소한으로 간이화하는 OR상의 수월성을 발휘해야겠고, 그 이전에 남들이 하지 않는 생각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마스카와 박사는 그런 회고를 합니다. "내가 주제를 연구할 때만 해도, 자연계에는 쿼크가 4종만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고정된 사고의 틀로 아무리 방정식을 도출하려 해도, 답이 나올 수가 없었다. 그때 나는, 따뜻한 욕조에서 처음으로, 기존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왜 6개이면 안되겠는가?" 홀수개의 기본 입자가 존재할 수는 없으므로, 4개가 곤란하다면 6개에서 답을 찾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순리였으나, 당시 물리학자들이란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게 상황적 제약이라면 제약이었습니다. 아무도 하지 않으려 드는 생각, 그런 생각을 하면 바보 취급 당하기나 딱 좋다는 생각, 그 경계 너머로 과감히 이행하려는 노력이 혁신의 첫 발짝이라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이 책에 명확히 나오지는 않지만, CP 대칭성의 깨짐(우리 학계에서는 CP위반이라는 용어를 더 일반적으로 씁니다) 역시 발상의 전환에서 나온 업적이었습니다. 물질과 반물질이 같은 수로만 존재한다면, 물리계의 실체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서로 만나 소멸되므로). 물질이 반물질보다 조금이라도 더 존재하는, 소위 대칭성이 깨어져야만 무가 비로소 유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일견 까다롭기 짝이 없어 보이는 물리학의 이론들도, 우리 일상에서 피부로 깨달을 수 있는 자명의 이치와 그리 멀리 떨어져서만 존재하는 건 아닙니다. 마스카와 박사는 쉽고 명쾌하며 가식 없는 소탈한 언어를 통해, 초보 물리학 강의를 하면서 놀랍게도 혁신 이론의 기초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실 시사적인 관점에서 더 주목할 쪽은 야 마나카 박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앞으로 자신이 2년 후에 받게 될 노벨 생리학상 분야의 혁명적 업적인 인간 iPS세포에 대한 재미있는 설명을 해 주고 있습니다. 이분이 이런 혁신적인 성취를 이뤄 낸 것도, 결국은 남들이 하지 않는 생각을 과감히 시도한 데에 그 비결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바로 일주일 전, 30살의 여성 과학자가 이 iPS세포보다 한 걸음 더 진보한, 만능 세포를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이른 STAP cell 방법이라는 걸 개발해 내어 전 세계에 충격을 준 바 있습니다. 그녀의 발견 역시, 어이없을 만큼 간단한 절차로 이뤄 낸 (거의 우연이나 행운에 가까운) 방법이라서, 그녀의 동종 영역에 종사하는 이들보다 오히려 다른 분야의 전문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성질이었습니다. 이 책을 찬찬히 읽어 보신 분들은, 인터넷에서 "만능 세포"라는 키워드로 해당 뉴스 기사를 검색해 읽어 보시면, 이 책의 내용이 보다 심화한 의미로 다가 올 수도 있겠습니다.

 

번역은 대체로 잘 되어 있으나, "공액" 같은 일본식 용어보다 "켤레"같은 이미 정착한 우리말을 써 주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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