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의 신 - 어떻게 원하는 방향으로 상대를 움직일 것인가
최철규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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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계서라기보단 근본이론 탐구에 가깝게 전략, 방향을 설정한 이 책은, 진지한 서양 학자, 저술가들이 갖는 기본 자세에 대해 다시 감탄을 하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실전에 적용해 보니 꽤 도움이 되는 협상 관련 서적도 여태 많이 읽었습니다. 자계서라고 해서 그저 동기 부여에나 도움이 될 뿐, 그 속에 적힌 주문이나 가르침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거나, 실전에서는 쓸모가 없다, 뭐 꼭 이렇지는 않더라는 거죠. 예를 들면 제가 2014년 초에 읽은 전직 미 정보기관 중견 관리자가 쓴 책(서평도 남겼지만)은, 그때로부터 3년여가 흐른 지금 오히려 한국의 여러 실정에 도움이 되더라는 체감을 제가 지금 하는 중입니다.

협상이라 하면,  아직 한국의 비즈니스 실정에서 그 누구라도 그리 능숙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게 현실입니다. 일방적으로 연설만 늘어 놓거나, 최초에 자기가 짜 갖고 온 페이스에 상대가 말려들기만을 바라며 밀어 붙이는, 그래서 자신이나 상대나 황당함만을 느끼며 파탄 나는 초등학생들의 촌극 같은 모습이 어디서나 벌어집니다. 한국인들이 아직도 약한 분야가 토론이라든가 바로 이 협상 분야죠. 기본 룰이 도통 마련되어 있지 못하고, 최소한의 컨센서스가 부족합니다.

비록 현실에서 써 먹기에 유용한 팁이 많긴 해도, "왜 그러그러한 전술과 태도가 현실에서 유용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답을 못 해 주는 게 또 보통이었습니다(물론 팁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고맙지만 말이죠. 최소한의 팁도 못 가르쳐 주는 책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이 책은, "대체 협상의 본체가 무엇인지. 왜 그런 방식으로 진행해야 결실이 나오는지"까지 알려 주는, 보다 근본적인 사항까지 해명을 돕는 내용이었습니다. 책 읽는 보람은 사실 이럴 때 느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협상의 본질과 근본 속성을 가르쳐 주니, 독자 입장에선 현실에 응용할 범위를 찾아도 이제 적용 가능성이 훨씬 커지기까지 합니다.

저자는 <원하는 것이 있다면 감정을 흔들어라>로 이미 4년 전에 국내 독자들에게도 관심을 모은 바 있던 분입니다. 그 책은 이 블로그에 서평을 남기진 않았으나, 앞서 제가 말한 "현장에서 써 먹기 좋은 유용한 팁을 많이 가르쳐 주는 부류"에 속했습니다. 이 책은 그보다는 더 심화된 내용이고, 독자가 알아서 숨은 가르침까지 파고들어 찾아내어야 할, 보다 "하드한" 컬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논의의 시작을 "어린 형제들 간의 다툼"에서 잡습니다. 엊그제에도 신문에서 그런 기사를 읽었습니다만, 한국에서는 많은 이들이 "형제보다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편이라고 합니다. 친구가 아무리 친해 봐야 남인데, 피를 나눈 형제보다 때에 따라선 더 의존이 된다니 사실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단 한국에서의 문제일 뿐 아니라, 서양에서는 당연히 성인이 된 후에는 부모도 제3자일 뿐이니(이탈리아 같은 일부 라틴 문화권에서는 캥거루 족이 늘어난다고는 하지만), 딱히 별나게 생각할 건 없습니다. 제가 관심을 둔 건, 유독 어려서부터 형제 간의 사이가 좋지 않아, 성장 과정에서 합리적으로 이해 다툼을 조정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심지어 늙어서도 여전히 갈등과 분란이 끊이지 않는 양상이 꼭 존재한다는 겁니다. 만약 어려서부터 협상의 묘미와 기술을 배운다면, 동기간의 끈끈한 정을 평생토록 자산으로 유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생판 모르는 타인 간에도 갖가지 충돌이 빚어질 시 능숙하게 협상으로 다루는 체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죠.

협상은 권력위상이 현격히 차이 나는 경우에도 규칙과 요령을 달리해서 성공시킬 수 있습니다. 이 역시 (모든 가르침이 그러하듯) 가정에서 시작되는데, 부모가 현명하게 이 시작점을 주도하고 잘 마련해 줘야 합니다. 아이들은 인격과 판단이 미숙하여 무조건 자기 충동과 욕구를 우기고 볼 수밖에 없는데, 이때 무조건 다 들어 주는 것도 문제고, 반대로 윽박지르면서 무조건 억누르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 둘을 적절히 병용하는 것도 원칙이 만약 없다면, 아이들 입장에선 "왜 이렇게 반응에 일관성이 없지?"라며 혼란을 느끼는데, 역시 교육상 좋지 않습니다. 변덕스럽지 않고 실제 효과는 그것대로 거두면서 아이 버릇을 잘 들이는 방법은, 적절한 협상력의 발휘입니다. 아이에게 소통의 규칙을 가르치고, 성인이 되어 타인과의 소통, 관계를 형성할 때 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석 삼조라고 하겠습니다.

제목부터가 "불가능한 협상은 없다"인데, 왜 없겠습니까. 없는 정도가 아니라 비즈니스의 대부분은 말이 안 통해서 불가능, 양보할 수 없는 투쟁이라서 불가능, 여기도 불가능, 저기도 불가능의 연속입니다. "대체 가능한 협상 영역이 있기나 한가?"를 물어야 할 판입니다. 저자의 지론에 따르면, 상대가 누구이건 이슈가 무엇이건 협상의 여지는 반드시 남아 있고, 상대가 그걸 인식 못 하면 내가 먼저 알아내어 "이익을 함께 나누는 것"이 바로 협상의 요체입니다. 이 포인트를 놓치면, 나뿐 아니라 그 역시 손해라서, 이름 모를 누군가를 공연히 웃게 해 줄 뿐입니다. 이 점을 눈치채고도, 처음 시나리오만 고집하다 테이블을 깰 자가 과연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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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은 은퇴가 아니다 - 퇴직선배가 알려주는 생생한 퇴직스토리
최병근 지음 / 가나북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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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퇴직한 누구더러 제2의 인생을 시작하라는 주문은 흔히 듣습니다. 하지만 주위에 그렇게나 많은 창업자들이 도전에 도전을 거듭해도, 매일같이 듣는 게 편의점, 치킨집 폐업 소식입니다. 특히 편의점은 대체로 우아해 보이는 외관 때문인지, 혹은 대기업에 다시 소속된다는 느낌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주로 갓 퇴직하신 분들이 애호합니다(그나마 이처럼 수중에 얼마 안 되는 돈이라도 벌 생각을 해야지, 몇 푼 되지도 않는 걸 그저 까먹을 생각이나 하는 인생이라면 참. 말이 좋아 학업이지 그 주변머리에 등록금이나 회수할 수 있을지 원ㅋ 정신 차리려면 몇 배는 더 심한 쇼크를 먹어야 평균수준에나 올라올 듯). 이처럼 "제2의 인생"은 흔히들 입에 올리지만, 사실은 그저 밥벌이의 주된 관문이 바뀌었을 뿐 나아질 것은 별반 없고, 오히려 더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루틴에 빠져들다 남 좋은 일이나 시키고 퇴장하는 것이나 아닌지 불안해하는 분들이 많죠.

이 책의 저자들은 "제2의 인생" 같은 추상적인 문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듣기에 따라서는 더 막연하고 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을 텐데요. "인생의 재창조"입니다. 어떠신가요? 아마 반응들이 선명하게 갈릴 겁니다. 책을 읽어 봐도 그렇습니다. "과연 이대로 해서 뭐가 나아질까?"라며 여전히 고개를 갸웃하는 이, 나하고는 안 맞는다며 일찌감치 딴데 시선을 주는 분도 있었지만, 어차피 흔하게 제시되는 대안들이 다 한계가 보인다며 이 책처럼 아예 근본적인 처방(고통스럽고 돌아가는 길처럼 받아들여지지만)이 필요하지 않냐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책 한 권 읽고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 수는 없으므로, 이런 건 각자가 현명하게 판단해서 취사선택할 일입니다. 책이 옳은 제안을 담고 안 담고가 문제는 아닌 듯 판단됩니다. 맞는 말을 해도 독자가 에고에 가득차 있으면 정답을 만나기가 힘들고, 설령 틀린 말을 해도 독자의 마인드셋이 애초에 바르다면 제 갈 길을 찾아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속이 꼬인 사람은 제대로된 책을 읽어도 못된 구절만 찾아 자기 내면을 더 황폐화시킵니다.

어제도 제가 멘탈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을 읽었는데, 확실히 사람의 진짜 힘은 세계를 바라보고 자신의 내면을 현명히 통찰하는 그 과정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사람은 정신으로부터 답을 찾으려 듭니다. 동물 중에 정신병에 걸렸다는 예 들어 보신 적 있습니까?(있긴 있습니다) 어찌 보면 그래도 여기에 길이 있겠거니 기대를 갖고 집요하게 무엇인가를 추구하다가 그 결과가 뜻대로 안 나오기도 하니 정신이 돌기도 하는 게 아닌지, 반대로, 노력과 결과가 합치하면 성과가 폭발하거나 넥스트 레벨로 도약하는 거고 말입니다.

“누구에게나 내면의 힘이 있어요. 다만 자기한테 힘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해 끌어내지 않는 거죠. 우리의 힘은 우리 내면에 머물면서 활동을 시작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책 중 일부 구절의 발췌입니다. 물론 이 내면에의 탐구라는 게, 현실 도피의 수단으로 악용되어서는 또 곤란하겠습니다. 사람에게는 분명 FIGHT라는 정면 응전의 본능뿐 아니라, FLIGHT라는 도피의 본능도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데스먼드 모리스의 책을 읽을 때, 정글의 맹수도 결전을 불과 0.1초 앞둔 그 운명의 순간 대치 중에 잠에 빠져들기도 한다는군요. 뭐 사람만큼 의식적인 도피를 시도하는 건 아니고 뇌의 피로를 풀기 위한 생리작용이겠지만(그래서, 제때 그 자발적 최면에서 풀려날 겁니다) 여튼 그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참 놀라운 반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책 주장의 특색은 이런 것입니다. (독자인 제 방식대로 정리하자면) 당신은 분명 퇴사 후 이것저것 다른 밥벌이가 없나 모색하며 새로운 수단을 모색할 것이다. 1분 1초도 멍때리지 않고 인맥을 총동원하며, 경력자를 찾는 어떤 구인 광고도 소홀히 여기지 않고 꼼꼼히 훑은 후 지원할 것이다. 당신 머리 속에는 와이프와 어린 자녀에 대한 책임감만 가득하며, 이 진정성에 대해 당신은 물론 당신의 (성인이 된) 가족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운이 좋으면 재취업에 성공하겠으나, 결국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고 현실에 만족을 못 느낀 채 자신의 포텐을 소진하거나, 다시 퇴사하여 앞의 과정을 반복할 것이다. 이런 삶은 결국 볼륨이 점차 줄어드는, 소득도 부실한 앞 과정의 반복에 지나지 않으며, 당신은 회한에 가득 둘러싸인 채 인생을 마감할 것이다...

이 소모적인 과정을 피하려면, 반성과 통찰 없는 시늉내기를 중단하고, 내면의 리빌딩에 먼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단순히 마인드를 재건하고 의욕과 마음가짐을 새로 챙겨 보자는 게 아니라, 그를 통해 실물 밥벌이 수단까지를 마련하자는 뜻이다...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기존의 방법으로는 탈출구가 마련 안 되니, 아예 내면 전체를 다 갈아엎고 다시 태어난 듯 활로를 모색하라는 뜻입니다.

상당수 독자는 거부감을 보이거나, "좋은 말이지만 내게는 무리"라며 외면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에는 두 가지 심리가 대개 작용합니다. "내가 그래도 지금까지 인생을 헛산 게 아닌데 어떻게 리셋을 하나?" 같은 자존심, 혹은 "그렇다 쳐도 이제는 너무 늦었어" 같은 체념과 두려움. 책에서는 첫째 동기의 경우, 리셋은 기존의 성과(그런 게 실제 있든 없든 간에)가 0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성과는 그것대로 보존되면서 전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던 "제2의 자원"으로부터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계기라고 규정하네요. 둘째 동기에 대해서는, 여태 다른 자계서들이 숱하게 강조한 대로, "지금은 백세인생 시대"라며 이제 겨우 반환점을 돌아왔을 뿐이라고, 앞으로도 대비해야 할 구간이 많이 남았는데 늦었다고 주저앉으면 어떡하냐고 독자를 다독입니다.

여튼 가장 필요한 과업은, 내가 진정으로 바라고, 나를 가슴 뛰게 만드는 소재와 지향점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것입니다. 여태 무심히 만나오던 사람들을, 오늘부터는 자극과 영감의 원천으로 대하게 된다는 말은, 설령 내면의 힘 같은 걸 믿지 않아도 변화와 활로는 사람과 인맥 사이에서 찾으라는 오랜 주문을 상기시키기에 반갑기도 합니다. 나 자신을 새롭게 보기 시작하면, 정말로 새로워진 내가 여태 잠재했던 가능성을 비로소 현실에서 바로 볼 수 있다는 가르침은, 누구에게나 다양한 형태로 즉각 수용이 가능하기도 하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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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건설업 회계와 세무실무
이강오.임종석 지음 / 광교(광교이택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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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移延)"이란 말은 미룬다는 뜻입니다. 이주한다는 "이"에 늘인다는 "연" 자를 씁니다. "이연"이란 개념은 법인세법 소득세법 가리지 않고 자주 등장하며 회계학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인세는 당해 사업연도의 실적을 측정하여 당기에 부과되고 이를 납부하면 끝인데 여기에 "이연"의 개념이 낄 여지가 뭐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연법인세라는 건 쉽게 말해, 덜 냈기에 앞으로 내어야 법인세와, 반대로 더 내어서 앞으로 돌려받아야 할 법인세액, 이 둘을 가리킵니다. 회계는 자산이든 부채든 그것이 발생한 시기에 인식하는 게 하나의 원칙이므로, 환급 받을 세액이든 더 내어야 할 금액이든 실제 돈이 오갈 때 그때 가서 장부에 적으면 그만이지 않겠냐면서 안이하게 취급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현금이 오가는 건 아니지만 가까운 장래에 그리 되리라는 예상 하에 앞에 "이연"을 붙여 취급하는 거죠.


회계상 발생하는 모든 "거래 사건"은 자산, 부채, 자본, 비용, 수익, 이 다섯 중의 하나입니다. 만약 아니라면 억지로라도 저 다섯 중의 하나에 끼워 넣어야 합니다. 내가 더 내어야 할 법인세인데 이런저런 이유로 아직 납부를 안 했을 뿐이라면 이는 "부채"입니다. 마치 외상매입금이나 미지급금과 같습니다. 반대로 더 낸 세금이라면 이는 과세당국으로부터 돌려받아야 할 "자산"입니다. 이는 외상 매출금이나 미수금처럼 취급합니다.


이 외에도, 이번 사업연도에 이익이 전혀 안 나고 손해만 봤을 경우, 세무상 결손금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이 중 혹시 이번 연도뿐 아니라 차기 연도로 이월이 가능한 부분이 있다면, 그 금액만큼 법인세 납부액이 줄어들 예정이 되는 셈입니다. 이때 그 부분을 또한 "이연 법인세 자산"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꼭 무슨 결손금 같은 암울한 조건에서만 이런 게 생기는 건 아니고, 세액 공제를 받을 경우 이게 꼭 당해 연도에만 적용되지 않고 다음 해 이월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면, 그 부분만큼 차연도에 법인세를 덜 내어도 되는 겁니다. 이 역시 이연법인세 자산으로 미리 인식합니다. 


이연자산은 대개 미래 시점에서 현실화할 금액으로 측정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3년 후에 받을 빚 3억이 있으면 그건 지금 시점에서 결코 3억이 아니고, 일정 이율에 따라 "할인"하여 대개 2억 9천 얼마 정도로 더 적게 인식하는 게 원칙이죠. 그러나 여기서 이연법인세자산(부채)는 기간이 길지도 않고 대개 소액이므로 번거롭게 할인을 하지 않고 액면가대로 처리합니다. 회계상의 원칙 중 "중요성"에 의거한 조치이겠습니다. 이뿐 아니라, 이연법인세 "자산"의 인식은 그저 그런 조짐이 보였다고 바로 장부에 적지는 않고, "그럴 가능성이 제법 큰 경우"에만 한정합니다. 반면 "부채"의 인식은 보다 보수적이라서 가능성을 따지지 않고 바로 인식한다는 게 큰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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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마음편한 인생선택 -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23가지 인생 선택과 결말
스즈키 노부유키 지음, 유가영 옮김 / 한샘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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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라스 후작이 "폐하, 저는 가설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라고 도도한 언명을 한 이래 결정론적 세계관은 더욱 큰 위력을 떨치기 시작했습니다.... 만, 사실 결정론/비결정론의 대립은 질문의 설정 자체가 잘못된, 비생산적인 논의일지도 모릅니다.

멘탈의 중요성을 어느 정도로나 평가할지에 따라, 세상사는 이미 결과가 다 결정되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많은 이들은 "일체가 이미 거대한 방정식에 의해 해(解)가 도출되어 있음"이라 체념하는 것보다, 적극적인 의지의 개입을 통해 무엇이건 조금이라도 변화를 가할 수 있지 않을까 판단하는 쪽이, 다분히 건설적인 사고 방식이라 여깁니다. 또한 유한한 인생을 보다 보람있게 영위하는 길도, 미미한 개인의 존재가 발버둥치고 땀흘리며 설령 결과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손쳐도 무엇인가 작은 변화라도 도출하는 그 과정 자체에 위대함, 숭고한 의의를 부여하기 마련이죠. 이 점에 대해서는 이미 위명 높은 문호, 철학자, 사상가들이 거의 의견이 일치하는 바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몇 주 전에도 한 번 언급한 적 있습니다만 프로야구에서 전설로 통했던 모 감독의 경우, "피나는 노력을 통해 종전의 나와 전혀 다른 나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느끼는 희열이 얼마나 큰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소위 "외인구단식 지옥 훈련"도 선수들에게 서슴없이 부과했던 건데... 설사 이런 식의 가혹한 단련 과정에다 고유의 가치를 인정한다 쳐도, 그게 개인이 자발적으로 수용하고 피치 못할 단계로 받아들인 후에야 소정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재 젊은 세대는 강압적 훈련(분야 불문)에 대해 거의 가치를 부정한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재미있고 봐야 한다는 주의란 말이죠. 강압은 그 자체로 부도덕하고 무의미하다고들 여기는 게 보통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멘탈 혁신이 이 박영곤 소장님처럼 자발적 수용과 내면화를 통해 개인의 내면에 침투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파르타식 강압, 주입에 몸서리를 치는 세대라고 해도(솔직히 어디 어린 세대들 뿐이겠습니까만), 현재 자신이 나태함, 게으름, 자기 합리화의 악성 루틴에 빠져 있다고 자가진단할 수도 있고, "아,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뭔가 간절히 변화를 모색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외인구단"에의 스카웃(?), 가입은 또 원치 않을 거란 말이죠. 이런 이들에게 "멘탈 혁신" 과정은 인생에서 한 번 정도는 꼭 거칠 만한 체험, 학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거창하게 어느 시설에 입소해서 집단으로 거치는 코스는 싫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이들을 위해, 책 한 권으로 간편히(대신 진지하게) 마치는 커리큘럼이라면 심적 부담이 덜하기도 하겠고 말입니다.

저자께서 핵심 프레임으로 설정한 CR/NCR은, Consensus Reality/Non- Consensus Reality의 약자입니다. 책에도 나오지만 아인슈타인의 핵심 동료이자 후원자이기도 했죠. 또 이른바 양자심리학의 거두인 아놀드 민델의 책에도 자세히 구명되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이런 이론적 바탕이 있기 때문에, 또, 이미 한 세기 전에 제시된 양자의 역설이 아직도 명쾌히 해명된 바 없기 때문에, 혹시 그 해답이 멘탈 영역에의 집요한 탐구를 통해 일거에 획득될 수 있을지 하는 희망은 많은 진지한 학자들이 여전히 갖고 있습니다. 그 전에, 개인들의 일상적 삶이 그저 다른 물리적 투자 없이 "멘탈 혁신"을 통해 개선될 수만 있다면 이 역시 어떤 위대한 학문적 업적보다 후순위에 구태여 놓일 필요가 없는 기적 같은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 다른 것보다, CR/NCR 프레임을 개인적 생활 습관 개선에 이 정도로나 응용이 가능하다는 데에 더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역시, 일독을 권할 만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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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보수와 퇴직금 규정 작성매뉴얼 - 개정판
강석원 지음 / 코페하우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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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금"이란 좀 특이한 제도입니다. 요즘이야 그런 생각을 하는 이가 없지만 과거에는 고용주가 나를 써 주는 처사에 대해 일종의 은혜로 알고 직장을 다니다가 퇴직할 때 목돈까지 챙겨주니 고맙게 여기는 풍조가 있었죠. 그런데 이 퇴직금은 근로자(사무직 직원 포함) 본인의 급여 일부가 적립되고, 여기에 사용자가 따로 자기 부담부분을 붓는 시스템이니 엄밀히 말해 "이연(=미뤄서) 지급되는 급여", 혹은 "노동에 대한 대가"일 뿐 어떤 시혜 같은 건 아닙니다. 더군다나 이미 반 세기도 전에 제정된 근로기준법의 법정의무사항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노태우 정부 당시 한창 노사분규가 심했을 때, 노동자의 임금이 어디까지 범위가 책정되어야 하는지를 두고 정말 치열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그때 확립된 원칙이 "무노동 무임금"이라든가(그래서 지금도 소위 "노조전임자" 급여에 대해 까다로운 기준이 적용됩니다), "통상임금"의 범위 문제 같은 것입니다. 통상임금에는 지금도 "상여금"은 포함 안 된다고 하며(통상임금이 왜 중요하냐면 해고라든가 산업 재해 같은 게 발생할 시 몇 개월치의 통상임금 지급금을 정할 때 아주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이죠), 대신 명절 떡값은 포함된다는 게 판례의 태도라서 매우 흥미롭습니다. 문 정부 들어서 드디어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려는 입법 시도가 (올해 상반기에) 있었는데 지금 경기가 최악이고 거의 YS 때 외환위기 수준의 불안감이 사회 전체를 엄습하는 터라 그 귀추가 주목됩니다.

노태우 정부 당시에 임금의 범위, 혹은 본질이 무엇인지를 놓고 학자들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있었는데 그래도 그 당시에는 많이 배우고 책임 있는 중량감 있는 논리가 오가는 면이 있었네요. 지금은 뭐 막돼먹은 인간들이 아무 근거도 없이 엉터리 같은 유언비어, 낭설로 치고박는 판이라서... 아무튼 당시 이른바 "생계 보장 부분"이 임금에 포함이 되느냐, 아니면 순수하게 노동의 대가로만 구성되느냐를 놓고 정말 대단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근데 자유주의 진영에서도 너무 임금 도그마에만 집착할 건 아니라고 생각도 됩니다. 요즘 그... ISO 26000을 보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명시까지 되어 있습니다. 기업은 이미 이윤 추구에만 몰입하는 조직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사회적 책임도 분담할 책무가 있는 거죠.

이런 퇴직금 제도 하나만 봐도, 근로자들의 최소 생존 부분을 국가와 기업이 어느 정도는 나눠서 지는 게 현대 사회 구조의 본질 중 하나입니다. 다만 그 범위, 한도가 어디까지냐가 문제인 거겠고... 소탐대실이라고, 모든 걸 가지려 들면 정말 필요한 것까지 다 놓칠 수도 있습니다.

퇴직금 관련해서는 우리나라는 기업이 좀 많은 부담을 지는 구조입니다. 즉 그 직원의 퇴직 직전 임금을 기준으로, 그게 얼마가 되든 그의 일정배수를 두말않고 사측이 지불해야만 합니다. 반면 외국에서는 확정기여형(이른바 DC)을 주로 채택하는데, 기업은 일정 금액(그 근로자의 급여와 무관하게)을 금융 기관에 납입만 하면 끝입니다. 이 기금을 금융기관이 굴려 대박이 나든 쪽박을 차든 퇴직시 그 결과물을 지불하면 됩니다. 한국은 금융기관의 운용기술이 매우 후진적인데다 이 방식대로라면 많은 근로자들의 노후 설계가 위협받게 되므로 이 방식이 아닌 확정 급여형(보통 DB라고 부르는 방식)을 채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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