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몬 상·하 세트 - 전2권
최아일 지음 / 너와숲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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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 드라마는 특이한 게, 끔찍한 범죄자인 ooo도 9화쯤에서 다 처리가 됩니다. 믈론 우리가 아는 진짜 빌런들은 아직 남았지만 말입니다. 게다가 왜 타투가 그렇게 말썽이었는지도 다 밝혀지는데 3화(상권의 p150 등)에서 아주 코믹한 모습으로 나타났던 ooo씨가 9화(하권 p80)에서 정체를 다 드러내며 타투의 비밀도 다 가르쳐 줍니다. 아, 그런 것이었던가! 그랬던가! ㅠ 네, 물론 판타지물을 자주 접한 독자, 시청자라면 쌩판 기발한 이야기들로만 느껴지진 않겠으나, 세부 설정이 정말 센스있기 때문에 장르의 뻔한 공식대로 절대로 안 간다는 게 놀랍습니다. 

이 대본집은 각 에피소드의 끝과 다음 화 시작 부분이 중첩되는데, 드라마도 전 화 결말을 시청자에게 상기하기 위해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9화 후반, 10화 초에 정체를 다 드러낸 o은 정구원에게 그렇게 말합니다. "세상은 의외로 대충 돌아가.(하권 p89)" 캬! 진짜 명언 아니겠습니까.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에서 대심문관(the inquisitor)도 사정없이 예수를 책망합니다. "네가 애초에 인간 새끼들을 개판으로 창조했기에 지금 우리가 온갖 나쁜 짓을 다 저지르며 이 고생을 하는 거 아니냐!" ooo는 대단히 무책임하게 섭리의 끝자락을 폭로하는 것 같아도, 사실은 치밀하고 납득도 되는 보충 설명을 해 줍니다. "나머지는 인간들이 알아서 선택하기 때문에" 그런 부조리가 빚어지는 거죠. 하권 p64에 보면 광철이가 "인간이 신이나 악마보다 위대한데, 그 중 무엇이라도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살인마 찰스 맨슨도 비슷한 소릴 한 적 있습니다. 

9화에서는 ooo의 주제곡(?) <당신만이>가 더 이상 일부 소절이 찌그러진 채로 들리지 않는데 ooo이 처리되는 운명을 암시하는 건지 원곡대로 깨끗한 버전입니다(상권 p102에 최초 등장). 하권 p33을 보면 도희가 "이렇게 좋은 노래를 망치다니"라고 하는 대사가 나오는데, 지문을 보면 딱히 특정 소절이 바로잡혀서 재생된다거나 하는 그런 설명은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몇 번 반복해서 돌려보고 확인한 거라서 아마 맞지 싶습니다. 여튼 이 노래는 엄청난 동안을 자랑하는 원로 가수 이치현씨의 40년 전 아주 감미로운 톤의 히트곡인데 5화~8화에서는 앞서 말했듯이 ooo의 등장곡처럼 쓰이기 때문에 으스스한 느낌을 줍니다. 

이 드라마는 OST도 참 좋습니다. 포미닛 현아의 구남친 던(Dawn)이 부른 <우리 사라져도>가 아주 감미롭고 좋았습니다. 배우 송강은 의외로 좀 굵직한 목소리이긴 한데, 그 얼굴은 저 던의 목소리에 잘 어울립니다. 상권 p293를 보면 "껍데기만 괜찮은 이사장인데 뭐 껍데기만 남아도..." 어쩌구하는 박복규의 대사가 있는데 이것도 진짜 웃겼습니다. 이 외에도 뉴진스가 커버한 1996년 코나의 히트곡 <우리의 밤은 당신의...>도 참 좋았습니다. 사실 이 노래는 더 끈적끈적하게 불러야 제맛인데 아직 뉴진스 멤버들은 그 정도의 짬이 차지 않은 것 같네요. 11화 초반에 ooo도 전혀 예상 못한 방법으로 일단 문제가 해결된 후 블랙커피를 마시며(p149) 여유를 만끽하는 정구원이 핑거스냅 후 LP에서 듣는 곡은 <당신만이>가 더이상 아니라 쇼팽의 녹턴인데 대본집에는 아무 설명이 없습니다. 

여튼 노가네 빌런들은 여전히 지긋지긋한 수작들입니다. 저는 예전판 DC 슈퍼맨 프랜차이즈를 보고 번외로 감탄했던 게, 악당인 렉스 루서는 그저 필멸의 인간일 뿐인데도 악착같이 머리를 짜내고 자본력을 동원하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기어이 히어로를 위기에 몰아넣습니다. 주어진 능력만 보면 애초에 게임이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개기는 걸 보면 그 의지와 집요함에 존경심이 들기도 하는데(?)... 여튼 돈은 돈대로 끌어다쓰며 사람(사이버 렉카, 경찰 수뇌부 등. 상권 p474에서 구속적부심 결과를 뜸 들이고 말하는 이형사도 진짜 웃겼습니다)도 고용하고 도청장치, 설명서 절도 등 온갖 술수를 부리는 꼴을 보면 저것도 참 할짓 아니겠다 싶고, 출발선상이 그렇게 유리했으면서 정작 지 몸에 지닌 능력치가 등신이니 그 좌절감이 오죽했을까, 능력자들이 주어진 과제를 하나하나 해결하고 지 발밑까지 기어올라오는 걸 보면 미치기 직전까지 가겠고, 2대를 거쳐 획득형질이 유전(??)되다 보니 손자대에 저런 괴물이 나왔지 싶습니다. 

드라마는 정말 영리합니다. 이제 남은 이야기가 뭐 있을까 싶은 단계에서도 신비서 같은 사람을 은근 의심하게 하는 등 트릭과 유머도 현란합니다. 처음에는 배우 송강의 대사 연기가 참 어색하다는 느낌도 들었는데 이 배우도 회차가 거듭됨에 따라 대본의 해석에 깊이가 생겨서 나중에는 송강과 정구원이 혼연일체가 됩니다. 김유정은 예전에 <구르미...>에서 제가 처음 저런 배우가 있다는 걸 알았는데(이 블로그에 원작 소설 리뷰도 있습니다. 그때 썼던), 몇 년 전 <편의점 샛별이>에서 또 보고, 이제는 아주 능숙한 연기자가 다 되었다는 느낌입니다. 주석훈, 진가영 캐릭터에 시청자들은 로맨스 훼방놓는다며 너무 짜증낼 필요 없습니다. 별로 유능해 보이지 않지만 알고보니 엄청 유능한(하권 p48) 각본의 힘이 엄청나기에 충분한 존재 이유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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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몬 상·하 세트 - 전2권
최아일 지음 / 너와숲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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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하순 이 드라마가 처음 방영될 때는 흔한 판타지 드라마인 줄 알았습니다. 일단 남녀 주인공의 뛰어난 외모 때문에, 다른 채널로 돌아가는 중에라도 잠시 주목하게는 되는 컨텐츠였고, 내용을 전혀 몰라도 화면이 참 예쁘게 찍혔기 때문에 몇 분 정도는 넋을 잃고 지켜봤었습니다. 처음에는 대사가 좀 오글거린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서사가 깊이 있었고 매번 예상을 빗나가는 전개 때문에 웃음도 났고 각본을 참 영리하게 썼다 싶었습니다. 

초자연적 존재가 어쩌다 인간 세상에 떨어져 결국은 자신보다 못한 존재들한테 동화한다는 테마는 익히 봐 오던 것이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경쾌하고 참신한 전개 덕분에 전혀 진부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초자연적 능력(이 드라마와 대본집에서는 그냥 "능력"이라고 불립니다)을 지닌 남주와, 재력, 미모, 재능(p116을 보면 학교 스펙도 좋습니다)을 모두 지닌 여주라면 삶의 난도가 참 낮겠다 싶은데, 이 드라마에서는 그런 초기 설정에서 전혀 뜻밖인 위기 상황을 끌어내기 때문에 우리 힘 없는 시청자들이 조마조마해하며 응원을 계속 해 줘야 할 판입니다. 하권 p100에 보면 "뭐든 잘하는 도도희, 밤새는 것도 잘해?"라는 대사가 있는데 오글거린다는 생각도 이제 안 듭니다. 9화부터 얘들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고 더 이상 틱틱거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권 p42(1화)를 보면 도희가 구원더러 이름이 좋다고 칭찬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한참 뒤 9회에 보면 그 이름의 유래가 나오는데 시청자들도 어이가 없어 웃게 되죠. 도희도 그때서야 정말 시시한 작명 동기였음을 알고 구원을 타박합니다. p27을 보면 정구원이 박복규를 처음 만나는 장면인데, 이때만 해도 저는 박복규가 그냥 코믹 릴리프인 줄만 알았지 앞으로 그렇게나 중요한 구실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하권 p174(11화)에서 "저는 무성애자 성애자입니다."라고 할 때 진짜 뒤로 넘어가는 줄 알았습니다. 

김유정(도도희), 송강(정구원)의 비주얼이 워낙 압도적이라서 단연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박복규가 씬스틸러입니다. 대본집에는 안 나오지만 드라마를 보면 박복규의 이름은 계약서에 朴福規라고 쓰입니다. p127을 보면 복규가 제 이름대로 팔자가 박복하다고 푸념하는데 이런 드립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 펜에 복규의 손가락이 찔리고 그 핏방울로 서명이 갈음되는 장면은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 <고스트 라이더>의 그 장면과 비슷합니다. 하권 p58에 신비서님이 이름 갖고 장난치는 장면 있습니다. 

최아일 작가 대본은 지문(地文) 설명도 코믹하게 합니다. 별로 좋지 않게 끝나긴 했으나 <철인왕후> 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더랬습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예를 들어 p132를 보면 구원이가 레슬러들 곁으로 차를 거칠게 몰고 오는데 이걸 "드리프트"한다고 해서 책을 읽으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p117을 보면 캐릭터 한민수는 홍보 팀장으로 언론 담당 업무를 맡았는데 이 배우 박진우씨는 2019년 같은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도 프로야구단 드림즈 홍보 담당 변치훈 역이었기 때문에 일종의 배우 개그(actor allusion)이겠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두 남녀 주인공은 대체 인생(정구원의 경우는 귀생[鬼生]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이 불편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일이 꼬이고 16화분 드라마가 구태여 만들어진 이유는 p89에 나오듯 타투가 느닷 정구원에게서 도도희의 팔목으로 옮겨가서입니다. 아직까지는 그 이유를 대체 알 수가 없는 이 기현상은, 앞으로 16화 내내 시청자들 손에 땀을 쥐고 탄식을 지르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p262를 보면 이제는 아무 능력을 발휘 못하는 정구원은 들개파 깡패들에게 둘러싸여 꼼짝없이 죽을 판입니다. 물론 이 깡패들이 나쁜 놈들이지만 정구원도 자기가 한 짓이 있으니... 여기서 아마 충전기인(ㅋ) 도도희가 짠하고 나타나 주겠거니 시청자들도 다 예상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나타난 도도희는 입에 호루라기를 불고 열심히 불고 있고(ㅋㅋㅋ 왜 그러는지는 알겠지만 너무 웃기죠), 10m 떨어진 거리에서 열심히 전기 충격기를 쏴 댑니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전기 충격기는 테이저 건이 아닙니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시청자는 웃음이 안 날 수가 없는데, 이건 대본집으로만 보면 절대 그 효과가 안 납니다. 혹시 관심이 생긴 분이라면 다시보기 등을 통해 이 드라마를 꼭 한 번 보길 권합니다. "경호원의 경호원이다!"라는 대사도 얼마나 웃기는지 모릅니다. 

p177을 보면 소아암에 걸려 모진 고생을 하는 어린이 연서가 등장하고 정구원은 모종의 계약을 맺는데, 이게 9화 중에는 충격적인 반전이 생깁니다... 우리가 그저 최강인 줄 알았던 정구원은 알고 보니 이렇게 취약한 존재였던 것입니다. 아, 그 사정은 저 뒤 9화에 가야 확인됩니다. 

앞에서 도희와 구원 모두 의외로 취약한 상태라고 했습니다만 p122를 보면 도도희는 노수안을 갖고 놀고 있습니다. 이렇게 악의에 가득찬, 동시에 적당히 약은(아무리 약게 굴려 해도 도도희가 훨씬 지능이 높기 때문입니다), 수적으로도 우세인 노씨 재벌 일가를 고아 출신인 도도희가 당해 낼 수 있을까 싶은데, 이 나이 먹도록 그 나름 대처하는 방법을 알아 내고 그간 잘 방어했지만 저그가 저렇게 물량공세로 쏟아져 나오는데 결국은 밀리고 부식되고 잠식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가슴아프고 답답하지만 이 드라마 보는 재미는 유감스럽게도 여기에 있습니다. 한참 뒤 하권 p111을 보면 노수안이 "항상 나보다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이노무 기지배를 내가 이길 수가 있어야지!"라는 대사가 있는데, "이노무"라는 부분은 대본집에는 없고 드라마에서 배우 이윤지씨 대사로만 나옵니다. 

저는 여기서 참 의의였던 게 주여사(김해숙씨 扮)의 캐릭터였습니다. 애(부모가 사고로 죽고 이제 막 고아가 되기까지 한 애)한테 처음엔 대체 왜 저러나 싶었는데, 역시 반전이 있었습니다. 실망스럽다 못해 인간말종에 가까운 아들과 그 손자 탓도 있지만, 공감 능력과 지능이 모두 뛰어난 도희에게 딸, 손녀, 아니 거의 인생의 동반자에 가까운 친구로까지 그 관계를 발전시키고, 죽고 나서까지 수시로 출몰하는 참으로 속 깊은 츤데레가 아니겠습니까. 사실 처음에는 배우 김해숙씨 인상 쓰는 게 마음에 안 들었는데 나중에는 얼굴만 봐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스타워즈의 오비원 케노비처럼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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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언어 - 상 - 논어와 함께 노자, 열자, 장자 읽기 고전 아틀리에 3
최기재 지음 / 인간사랑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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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제자 백가는 유가와 별개로 보고 따로 떼어서 논합니다. 사실은 제자백가도 그 안에 속한 입장들이 판이하게 다른 철학체계들이기 때문에, 제자백가라는 말 자체가 백가쟁명의 유의어구로 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자 최기종 선생은 제자백가 중 많이 알려진 학파들 중 도가의 시조, 중조 세 분을, 유가의 대표 경전 <논어>에 비추어 재해석하려 듭니다. 어찌보면 수천 년 동안 갈라져 싸웠던 중국의 대표 사조 둘이, 한국의 박학한 지성에 의해 변증법적으로 통합되는 국면을 우리 독자들이 비로소 목격하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1장은 도가의 여러 태두들을 개략적으로 살피는데, 수천 년 동안 후학과 논자들에 의해 쌓인 해석과 평가에 기반하기보다, 그들 혹은 그들의 제자들이 정리해 남긴 원전에 근거하여 도가의 정수를 분석합니다. 시간이 없는 분들은 이 제1장만 차분히 읽어 봐도 도가 평설에 대한 핵심이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이며, 동시에 이제 어떻게 현대적으로 유(儒)와 선(仙)이 합일하는지 그 치밀하면서도 조화로운 논증 과정에 압도될 것입니다. 

제2장은 <도덕경>에 대한 강설입니다. 한자 원문을 톺아보며 그 글자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새기는데, 인간사랑에서 전에 펴낸 고 신동준 저 <춘추전국의 제자백가>라든가, <도덕경>, <열자> 등도 원문과 해석, 평론, 시론을 한 권에 모두 담은 편제입니다. 그 책들을 흥미롭게 읽은 독자들이라면, 최기재 선생의 이 탁월한 책도 매우 새로운 관점에서 진지하게 탐독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건 예를 들어 p67 같은 곳을 보면, 고대(혹은 신화로만 엿볼 수 있는 시대)에 메소포타미아, 지중해 세계, 남아시아 등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또 중원에서는 다른 어떤 철학자가 활동하였으며 굵직한 정치적 사건으로는 무엇이 있었는지를 요약하여, 대체 <도덕경>의 집필 추정 시기와 다른 고대의 시간들은 서로 얼마나 떨어졌는지 살필 수 있게 배려한 대목입니다. 옛날이라고 해서 다 똑같이 곰삭은 옛날들이 아니기 때문이죠. 

p104 이하를 보면 도덕경 중 재영백포일(載營魄抱一)하여... 로 시작하는 유명한 구절이, 한문 원문과 함께 깊은 뜻이 상고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너희가 어린이의 마음을 회복해야 천국에 들 수 있다고 했는데, <도덕경>의 이 대목도 "어린아이와 여인처럼 해야 현묘한 덕이다"라는 한 문장으로 저자는 요약합니다. 한국 토착 종교인 동학과 증산도의 경우 말세를 논하면서 학대받은 여인들의 한(恨)이 체제의 석양을 부른다는 식으로 이른바 개벽을 읊었는데, 도덕경에서 구태여 여인의 마음을 들고 나온 것도 참 독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개 유가는 여인네와 소인배는 함께 말을 섞을 상대가 못된다는 식으로 남성 우월 스탠스를 잡는 게 보통이니 이런 점에서도 두 학파가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하겠습니다. 

최기재 선생은 여기서 유와 선의 대조점 하나를 선명하게 짚습니다. 즉 그는 노자가 어린이를 두고 어른이 마침내 도로 돌아가야 할 순수와 무구의 원형으로 권면한 것과 대조적으로, 공자는 자(子)가 입신양명을 통해 그 부(父)와 가문을 빛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보았으며, 또 사람은 생이지지자(生而知之者)가 되기 몹시 힘드므로, 학이지지, 즉 후천적으로 갈고 닦아 궁극의 도에 수렴한다고 보았는데, 이런 것만 보아도 어린이는 빈 그릇에 학식을 채우고 덕성을 빛내어 선학의 경지에 도달하려고 노력해야 할 존재이지 타의 모범이 될 그 무엇은 아니라고 보았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처럼 유가와 도가는 곳곳에서 대조되는 사상의 가지를 쳐 나가는데, 최기재 선생의 박식한 해석을 따라가는 재미가 독자 입장에서는 쏠쏠합니다. 

경전의 원문들만 분석되는 게 아니라, 책 곳곳에는 저자의 상념과 통찰을 담은 아포리즘이 담겼습니다. 예를 들어 p321을 보면 "삶은 길을 걷는 여행이다"라는 서두 다음에, 롱펠로, 몽테뉴, 셰익스피어와 호라티우스의 금언들까지 소개하며 독자의 깊은 성찰을 유도합니다. 동과 서를 넘나드는 학문의 성찬에 독자자가 황홀해지는 대목이며, 이 글은 <열자>의 자생자화(自生自化), 자형자색(自形自色)... 으로 시작하는 구절 끝에 덧붙은 코멘트입니다. 황제(黃帝)가 나라를 다스린 방법은 화서지몽(華胥之夢)이라고 요약되는데(p329) 물 흐르듯 백성과 화합하는 게 정치의 정도이며 어떤 잔기술의 발휘가 오히려 역효과가 날 뿐이라는 게 요지입니다. 지언거언(至言去言), 지위무위(至爲無爲)라는 구절은 <열자>의 유명한 고사, 갈매기를 잡으려는 마음을 가지니 벌써 갈매기들이 알고 해안을 미리 싹 떠나버렸다는 신비로운 이야기에서 유래했는데. 역시 도가의 핵심을 우화적으로 잘 표현한 듯합니다. 

열자와 논어를 오가며 저자가 독자를 일깨우는 포인트 중 하나는 "삶의 균형을 찾자(p370 등)"는 것입니다. 유명한 지음의 고사, 즉 연주자 백아와 평론가 종자가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도 <열자>가 그 출전입니다. 반면 <논어>에는 익자삼우, 손자삼우라는 잘 알려진 구절이 나오는데 마음이 따스해지는 <열자>에 비하면 매우 공리적이고 다분히 타산적인 느낌도 드나 이 역시 바른 인격을 함양하는 노력의 일환이니 배울 바가 많습니다. p376을 보면 <열자> 중 인력과 천명의 고사가 2018년 서울시립대 논술고사에 출제된 점을 들며 출제자의 의도를 분석하는 대목도 있는데, 확실히 이 책은 수험생들이 논술 대비용으로 읽어도 유익할 듯합니다. 

하권은 <장자>가 통으로 다뤄질 예정이라고 합니다. 독자로서 기대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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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운이 좋아지는 잠재의식의 비밀
김문형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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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모든 외부 요소를 일일이 통제하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소기의 성과가 나지 않는 게 더 흔한데,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은 불운, 비운을 탓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결정적일 때 나를 도와 주었으면 하는 행운도, 수십 년 넘게 성실히 살아 온 나의 노력이 축적되어야 이를 바랄 만한 자격이 생기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김문형 작가님은 매일같이 어떤 유익한 습관을 들여 이를 실천함으로써 나의 운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며, 이를 위해서는 잠재의식 단계에서 변화를 주어야 한다고 독자들에게 제안합니다. 

저자님께는 어려서부터 친한 사이였던 J란 분과 오랫동안 교유(p41)했다고 합니다. 친구따라 강남 간다고 보통 친한 이들끼리는 비슷한 대학, 비슷한 직장 입사에까지 길이 나란히 나곤 하는데, 아쉽게도 J님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저자께서는 인생에서 다소 고전하는 듯 보이는 J님에게 "더 노력해서 나은 직장을 다닐 것"을 권했는데, 아마도 이 말이 친구분께는 (설령 의도가 좋았다 해도) 스트레스 혹은 자존에 상처로 남았겠다며 후회한다는 말씀도 책에 나옵니다. 그런데 이 친구분께서 부친상을 당한 후에는 전에 없던 의욕을 내어 자격증 공부에 전념하시더니 기어이 대기업 입사를 뚫으셨다는 겁니다. 

인간은 이처럼 어떤 마음을 먹기만 하면 종래 자신의 한계를 가뿐히 뛰어넘는 놀라운 능력을 보이기도 합니다. 저는 독자로서 혼자 생각해 봤는데, 김문형 작가님의 평소 충고도 그에 악의가 없다는 점을 친구분께서 충분히 아시고 이를 도약의 발판으로 평소부터 축적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남들이 내게 해 주는 말을 고깝게 듣지 말고, 나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이를 듣고 개선의 기준으로 삼는 일에 주저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또, 남한테는 행여 실례가 될 수도 있으므로 괜한 간섭으로 들릴 말은 자제해야 할 듯합니다. 

"당신은 운이 좋은 사람입니까?(p61)" 서로 어지간히 친해지면 이런 질문을 하기도 합니다. 아마 돌아오는 대답은 "에이, 전혀요." 같은 게 보통이겠습니다. 학창 시절 보물찾기 한 번 당첨되지 못했다거나 하면서 말입니다. 이런 대답을 들으면서, 다른 사람들도 별 수 없군, 하며 안도하곤 하는 우리들인데... 저자는 이런 "부정편향성"을 마음 속에 기본으로 깔면 운수가 더 나아지기란 무척 힘들다고 독자들에게 이릅니다. 그 근거도 재미있는데, 다른 맹수나 날랜 초식동물들에 비해 육체적으로 나은 점이 없는 인간은 타 동물들을 보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나를 포함하여 우리 주변에 "난 재수가 없어"라며 비관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은 게, 인간의 유전자 안에 그런 속성이 새겨졌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워런 버핏은 투자의 대가입니다. 그의 투자는 처음에 "왜 저런 종목에?"라며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해도, 나중에 가면 기어이 옳았다는 걸로 판명이 납니다. 주식판에서 누가 아무리 아는 게 많아도, 시장에는 워낙 변수가 많기 때문에 이런저런 잔계산만 잘한다고 투자에 성공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워런 버핏 같은 사람은 운이 억세게 좋은 것인가? 저자는 일단 그렇다고 합니다(p65). 그런데 버핏이 운이 좋은 데에는, 운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어온 비결은, 남들이 모르는 게 따로 있었던 것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요약합니다. "그의 성공은 자신만의 원칙과 규율을 지키는 것에서 시작했다. 그의 변함없는 노력과 헌신이 운을 부른 것이다." 이런 일상에서의, 매일 같이 꾸준히 반복된 노력이 행운을 부르고, 어쩌면 유전자 단위에까지 변화를 이끈 것 아니겠습니까? 야생 동물과 마주하며 그저 패배자의 본능으로 비관만 하던 유인원은 모두 도태되고, 과감하게 다른 시도를 해 보던 개체는 멋지게 생존에 성공하여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사고방식, 유연한 사고방식, 문제 해결 능력, 목표 지향적 사고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p140)." 하지만 아무리 책상 앞에 좋은 말을 써붙여 놓고 세부적인 계획을 세워도, 그동안 몸에 밴 습관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이의 매일같은 실천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마음의 집중을 통해 잠재 의식 수준에서의 변화를 끌어올라고 합니다. 이를 위해 상상력과 시각화(p152)를 동원하고, 매일같이 웃는 습관을 들이며(p157), 긍정적인 에너지, 감사하는 태도를 지켜 나가며 나의 작은 부분까지 바꾸라고 충고합니다. 직관의 힘(p198)도 중요한데, 이런 직관이 평소에도 높은 적중률로 발휘되려면 역시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뼛속까지 스며들어야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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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클래식 리이매진드
루이스 캐럴 지음, 안드레아 다퀴노 그림, 윤영 옮김 / 소소의책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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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캐럴이라는 필명을 썼던 옥스포드 출신의 수학자가 쓴 이 판타지 소설은, 알고보면 치밀하게 구성된 구조 안에 인생의 쓰디쓴 진실, 시사를 반영한 언어 유희, 수학-논리학적 패러독스의 우화적 설명 등이 촘촘히 녹아들어간 이지적인 고전입니다. 정확하고 꼼꼼하게 이뤄진 번역이 뒷받침되어야 이런 원작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데, 이 책은 게다가 현대적이고 아름다운 일러스트까지 포함되었기 때문에 재미는 재미대로 느껴 가면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혹시나 머리가 들어가도 어깨에서 걸릴거야. 어깨 없이 머리만 있으면 무슨 소용이야? 아, 차라리 망원경처럼 몸이 접힐 수 있다면!(p29)" 앨리스답게 천진스러우면서도 재치있는 대사입니다. 누가 생각해도, 어깨 없이 머리만 있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어떤 소용을 따지기 전에 그런 상태가 물리적으로 가능이나 할지가 걱정이지만 말입니다. 저는 망원경처럼 몸이 접힐 수 있는 엄청난 편익을 망상하면서 그 앞에 "차라리"라는 불만, 양보의 부사를 붙이는 게 더 재미있고 엉뚱했습니다(영어 원문도 대체로 비슷합니다). 앨리스는 아마 그런 기능이 생긴다면, 몸은 아마 보기에 좀 볼품없어질 것이며 그런 큰 희생(!)은 감수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 듯합니다. 어린 소녀다운 생각입니다. 

학습이 아직 불충분하게 이뤄진 어린 나이이지만 앨리스는 지금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자신의 주변 상황이 매우 황당하다는 정도는 충분히 압니다. 말도안된다, 터무니없다 같은 말을 수시로 내뱉으면서도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의 룰과 한계를 정확히 파악하려 들고, 최선을 다해 적응하고 역경을 극복하려 애쓰는데, 어떤 현실 도피 같은 건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상한 현실에 너무나 열심히 적응하는 나머지, 이상한 나라의 네이티브들이 얘를 더 신기하게 여길 정도입니다. 외국어인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우리들도 느끼는 거지만, tale과 tail처럼 발음만 같을 뿐인 이의어가 때로는 기묘한 상황에서 서로 만나 희한한 어이러니를 빚는 걸 보고 놀라거나 우스워할 때가 있습니다. p63에 그 유명한 대목이 나오며, 적절하게 역주가 삽입되어 독자의 이해를 돕습니다. 이 고전은 이런 맛에 읽는 것입니다. 

아, 성장, 성장이란 무엇인가? 때로는 아프고 괴롭지만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겪고 치러내야 할 통과의례입니다. 아직 어린 앨리스는, 자신처럼 성장이 한참 남은 애벌레에게 묻습니다. "아직 겪어보지 못하셨겠지만, 언젠가는 번데기가 되고 언젠가는 나비가 되실 거잖아요. 그때가 되면 뭔가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겠어요?(p94)" 이렇게 말하는 앨리스 자신은 (지금) 아마 그런가 봅니다. 그런데 본인도 더 자란 틴에이저가 되고 처녀가 되고 누군가의 신부가 되고 어머니가 될 때 조금도 뭔가가 이상하다고 안 느낄 거면서 지금 어린 소녀로서의 기분만 갖고 이런 말을 하는 게 무책임하네요!(ㅋ) 이런 앨리스의 질문이 가당치않다는 듯 "전혀!"라고 망설임없이, 단호하게 부정하는 애벌레의 말투도 웃깁니다. 얘는 애벌레답지 않게 무슨 낭만이라는 게 없네요. 

예수 그리스도도 남을 평가하지(judging)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너 역시도 평가받을 것이라면서 말입니다. 사실 모자 장수도 무슨 나쁜 뜻이 있어서는 아니고, 그냥 지가 이상한 나라에 살다보니 미감이 이상해져서 앨리스가 그리 보여 "너 머리 좀 잘라야겠다?"라고 한 것일 뿐이겠습니다. 그런데 빅토리아 시대에 살다 온 앨리스는 "처음 본 사람한테 대뜸 인물평부터 하는 게 대단히 무례하네요!"라며 모자 장수한테 쏘아붙입니다(p134). 모자 장수는 모자 장수답게 앨리스의 이 말에 뜬금없는 수수께끼로 응수합니다. "큰까마귀랑 책상이 닮은 이유는?" 큰까마귀와 책상이 닮았는지도 우선 동의 못 하겠는데 그 이유를 대라니? 아마 질문의 의도는 닮은 점을 찾아보라는 것이겠습니다. 

이 다음 말이 정말 재미있는데 앨리스는 "적어도 나는 내가 의미하는 걸 말하며, 의미하는 걸 말하니, 말하는 것과 의미하는 것은 같은 거에요."라고 합니다. 저도 어렸을 때의 영어 공부 중에서, mean이 어떤 때에는 곧 say, tell의 뜻과 같아진다고 느꼈는데, 영어의 mean은 진정으로 발화자가 의도하는 바이며, say, tell 등은 어쩌다 삐끗해서 말이 잘못 나온 것까지 다 포함입니다. 법학에서 말하는 표현주의와 의사주의의 대립과도 비슷합니다. 앨리스의 대사 중에 "적어도"라는 한정어가 붙은 걸 보십시오. 자기는 표현과 내심이 언제나 같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도 압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어른들은 그렇지 못하죠. 

찰스 도지슨(=루이스 캐럴)은 명백히 에르빈 슈뢰딩거보다 앞선 시대의 사람입니다. 생전에 슈뢰딩거는 자신의 고양이 비유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캐릭터 중 하나인 체셔 고양이에 영향 받았다고 명확히 밝힌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p172에 나오는, "머리가 차츰차츰 희미해지다가 마침내 사형집행인이 들어오자 완전히 사라진 고양이"를 묘사한 대목은, 누가 뭐라해도 슈뢰딩거가 든 그 비유의 세밀화 버전입니다. 읽을 때마다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며 도지슨 역시 "있으면서도 없고 없으면서도 있는 확률분포상의 존재"에 대해 양자역학을 전혀 모르면서도(택도 없죠), 뭔가 천재답게 일찍부터 영감이 왔던 건 아닌지 저 혼자서 추측해 봅니다. 고전은 이처럼 읽을 때마다 새로우며, 독자를 신기하고 이상한 나라로 이끕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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