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전 시집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서거 77주년, 탄생 105주년 기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뉴 에디션 전 시집
윤동주 지음, 윤동주 100년 포럼 엮음 / 스타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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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은 온 민족의 마음과 영혼 속에 영원토록 그 시혼과 작품이 아로새겨질 문학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 전집은 그의 짧았던 생 중에 창작되었던 모든 작품들을 담았습니다. 

p30을 보면 <또 태초의 아침>이라는 그의 작품이 수록되었는데 전신주 울음소리를 하나님의 계시로 표현합니다. 시인이 받은 계시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후에 이어지는 내용이 참 독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빨리 봄이 오면 죄를 짓고 눈이 밝어..." 봄이 빨리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사람을 넘어 동물, 모든 생명체에 공통된 생리이겠는데, 죄를 짓고 눈이 "밝어"진다니요? 신의 계시를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은 후 부끄러움을 알았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모두 압니다. 문제는 이미 한 번 겪은 일인데도, 이 시적 화자(아마 아담이겠지만)는 또 같은 과정을 반복하겠다고 천연덕스럽게 표백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제목에도 태초의 아침 앞에 "또"라는 부사가 들어갔습니다. 아담이 딱히 배덕의 영혼이라서 이러는 게 아니라, 그만큼 원초적 인간은 순수하고 자신의 본능을 (말과는 달리) 부끄러운 줄 모르고 표출하는 존재라는 뜻이겠습니다. 

p74는 <비로봉>이라는 작품을 담았습니다. 비로봉은 지금은 북한 땅인 금강산에 속한 대표적인 봉우리인데, 분단된지 74년이 지났지만 현대 한국인들도 이 봉우리가 금강산의 절경을 압축하여 담은 줄 잘 알 정도입니다. "만상을 굽어 보기란 - 무릎이 오돌오돌 떨린다" 아마 몸소 봉우리에 올라 보고 시인이 직접 느낀 바를 솔직히 토로한 것으로 보입니다. 백화는 어려서 늙었고 새는 나비가 된다... 이런 신비스럽고 몽환적인 산세 안에서는 저런 초자연적인 현상도 얼마든지 가능하리라고 시인은 여겼나 봅니다. 

윤동주 시인이라고 하면 서정적이고 차분한 어조에 청명한 심상을 표현하는 고유의 시구들이 바로 떠오릅니다만 p91의 <닭> 같은 작품을 보면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분노와 저항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잠시 인용해 보면 "자유의 향토를 잊은 닭들이/시들은 생활을 주잘대고/생산의 고로를 부르짖었다"라는 구절인데... 당시 표기를 그대로 따르느라 "시든"은 "시들은"으로 저렇게 쓰였습니다. 이 시에서 닭들이란 일제에 의해 자존을 박탈당한 우리 겨레를 상징합니다만 어찌보면 공장식 대량 사육 시스템에서 고생할 일이 없었던 저때 닭들이 더 행복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생산의 고로(苦勞)" 같은 표현은 뭐 누가 봐도 노동계급에의 착취 행태를 꼬집은 말입니다. 

p106의 <애기의 새벽>을 보면 닭이 또 등장합니다. 이 집은 닭도 없는 집이며, 다만 배가 고파 우는 아이 울음소리가 새벽을 알릴 뿐입니다. 부업으로 수익을 올릴 수단이 없는 것도 서러울 텐데, 철없는 아기 먹일 것도 없는 가정 형편이 얼마나 딱합니까. 제2연에서는 "시계도 없음"을 다시 하소연하는데 이게 의미 없는 되풀이는 아니고, 냉혹한 시스템의 생산 강요를 저 시계라는 장치가 상징한다고 봅니다. 궁벽한 시골이라서 아예 시스템의 감시, 독촉의 눈길로부터도 일시 이탈한 채라는 뜻이겠습니다.  

<모란봉에서>는 제목과는 다르게 평양의 근대적인 풍경 일단을 묘사합니다. "철모르는 여아들이/저도 모를 이국말로/재잘대며 뜀을 뛰고..." 현대의 북한이라면 모란봉경기장이라는 시설에서 이런 풍경들이 보일 법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일제 말엽이라면 어떤 상황이기에 어린 소녀들이 일어, 혹은 영어 외마디말로 소통하며 유희를 즐기는건지 감이 안 잡힙니다. 어쩌면 식민 본국에서 이주해 온 일인들의 자녀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튼 시인의 마음은 착잡해 보이며 "난데없는 자동차가 밉다"는 말로 시를 마무리지으며 시대의 모순에 아랑곳않는듯한 도시의 평정을 탓합니다. 

시집 후반에는 여러 문인들의 평론이 실려서 이 독보적인 청신한 심상의 시 세계에 대해 해석의 성찬을 제공합니다. 정지용과 박두진의 이름도 보이며, 교과서에 <다도해 기행>이라는 명문이 실리기도 했던 평론가 백철의 묵직한 글도 있습니다. 이 책 자체가, 지금은 이렇게 스타북스에서 판권을 입수하여 예쁜 장정으로 내었지만 이미 1967년에 정음사가 제3판까지 찍어서 낸 책이라는 사실이, p251에 나와 있습니다(초판은 1955년). 이 연표는 2017년까지의 사실이 정리되었으며 이렇게 망라적으로 깔끔하게 편집한 출판사의 노고에도 독자로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네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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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전 시집 : 카페 프란스 - 윤동주가 사랑하고 존경한 시인 전 시집
정지용 지음 / 스타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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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수, 이동원이 부른 가곡으로도 유명한 <향수(鄕愁)>는 시인 정지용의 대표작입니다. 이 시 전집에서는 p55에 실렸습니다. 이 책 서문에도 나오듯이 정지용 시인은 한때 납북/월북 여부가 불분명하여 교과서에 그의 작품이 실리지 못한 것은 물론, 그의 성명이 일부 혹은 전부가 가려진 채로만 표기되어야 했습니다. 지금은 제약 없이 그의 모든 작품을 읽을 수 있으며, 우리 독자들도 그 느낌을 거리낌없이 표현할 수 있으니 새삼 자유의 소중함을 실감하게 됩니다. 박인수, 이동원 두 분이 몇 년 전에 타계해도 그들의 목소리가 영원히 우리 곁에 남듯, 정지용 시인이 사거한지 한 세기가 가까워 와도 그의 아름다운 작품들은 여전히 한국의 혼을 공유하는 독자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스타북스의 이 전집은 몇 가지 특색이 있습니다. 이 책 표지만 봐도 카페의 ㅍ, 프랑스의 ㅍ에 ㅇ이 병기되어 있습니다. 이런 표기는 현대 한국어 맞춤법에서는 전혀 허용하지 않는 것인데, 작품 발표 당시의 표기를 그대로 살려서 대단히 멋스럽기까지 합니다. 사실 훈민정음 창제 당시(15세기)의 표기 관행은 자음 몇에 ㅇ이 붙어서(ㆄ), 그 자음이 이른바 순경음(脣輕音)임을 드러냈는데, 요즘 언어학 용어로 하면 일종의 마찰음(fricative)입니다. cafe, France의 f은 labial fricative인데, 이 음소들이 우리말 [ㅍ]과 다름은 명백합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어학에도 일정 조예가 있었던) 정지용 시인이나 당시(20세기 전반) 한국어(조선어) 문예지 편집진들이 더 합리적인 원칙을 가졌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 외에도, France의 n이 ㄴ으로 표기되었는데 이 경우 [ŋ]으로 발음되는 걸 모른 채 당대인들이 그저 문자대로만 읽은 오류로 생각됩니다(아니면 식민 모국인 일본의 표기를 그대로 따랐었든가). 여하튼 출판사의 이런 의도적인 효과가 현대 독자의 눈에는 그저 정겹습니다. 

시인의 시대가 지금과 거의 90여년 차이가 나다 보니 저런 표기뿐 아니라 어휘도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꽤 낯선 게 많습니다. 책에는 그래서 어려운 단어 밑에 일일이 각주를 달아 놓았습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이 전혀 모르는 어휘라고 해도, 작품 속에서 우리는 그리 큰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편안히 읽습니다. 편안히 읽을 뿐만 아니라 시어가 주는 본연의 리듬과 감동까지 받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우리가 한국인이고 둘째 시인의 작품이 워낙에 잘 짜여졌다 보니 사전지식 없이도 본연의 의도가 그대로 잘 전달되어서가 어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가곡 덕분에 "성근"으로 그냥 받아들인 시어도, 이 책에서는 잡지 <조선지광>의 태도를 따라 "석근"으로 정했으며 다만 각주에서 성근, 석근 각각의 경우에 시에서의 맥락이 어떻게 달라지는지까지 자세히 설명합니다. 

p160에는 작품 <절정(絶頂)>이 소개됩니다. 아마 고교 교과서에는 잘 실리지 않았던 작품이겠습니다. 절정이라는 제목을 가진 가장 유명한 작품은 이육사의 시이겠습니다. 나붓기오(나부끼오), 섰오(섰소) 등 종결어미도 오늘날 우리가 쓰는 원칙과는 무척 다른 결과물들입니다. 제2행의 주사(朱砂)는 아래 각주에 상세히 뜻이 나오지만, 당시에는 여성의 입술에 오늘날의 립스틱처럼 바르던 물질이었습니다. 철새를 "기후조"라고 쓴 부분도 무척 흥미로운데 저는 심지어 1970년대 한국 현대 문학 작품에서도 이를 줄여 후조(候鳥)라 쓴 경우를 자주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 어휘를 당시 일본어 corpus에서 수입된 것이라기보다, 더 오래된 중국 기원 한자어로 봅니다. 

정지용과 동갑이었던 소설가 채만식은 그의 단편 <치숙(痴叔)>에서 조선 여성과 이른바 내지(일본) 여성을 대조하며 전자의 열등성을 너절하게 설파하는 1인칭 주인공을 내세운 적 있습니다. 물론 채만식이 실제로 그런 생각을 가진 건 아니고 식민화가 진행되며 본연의 혼까지 빼어놓고 사는 한심한 인간상을 반어적으로 비판한 것입니다. 이 책 p232를 보면 제목이 "우리나라여인들은(띄어쓰기가 없습니다)"인데, 조선 여인들의 미덕과 아름다움을 절절한 형용어구들로 기막히게 묘사합니다. 남자나 여자나 이족의 철제 하에 얼마나 어렵게 살던 시절이었습니까. 그 상황에서 이런 말들이 나오니 구십 년 후에 읽어도 눈물이 핑 돌 정도입니다. 일부 못난 세력이 악질적으로 성별 갈라치기를 하는 요즘, 제발 이런 작품을 교과서에 좀 실어서 젊은 세대가 반대 성별에 대해 근거없는 적대감, 혐오심을 갖지 않게 도와야 하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표기법은 발표 당시의 것을 살렸기에 더욱 맛이 잘 살고 시대 분위기까지 간접으로 풍기게 합니다. "오월ㅅ달"처럼 오늘날과는 전혀 다른 사이시옷 쓰임도 눈에 확 띄어 신기하고 재미있습니다. 표지 안쪽에 실린 정지용 시인의 사진을 보면 그대로 21세기에 모셔 와도 여성들이 환호할 만한, 이지적이고 단정한 외모입니다. 예쁜 책 장정과 잘 조화되어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한눈에 지성인임이 느껴지는 그였기에, 그 작품들도 더욱 강렬한 매력을 풍깁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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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 한달 완성 일본어 말하기 Lv.3 한권 한달 완성 일본어 말하기 3
최유리.시원스쿨어학연구소 지음 / 시원스쿨닷컴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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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스쿨에서 펴낸 일본어 시리즈를 여태 여러 권 읽고 리뷰를 써 왔습니다. 이 책은 말하기 교재인데 시리즈 중에서 레벨 1이 가장 낮은 단계이며 레벨 6이 프리토킹 수준의 가장 높은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 앞표지에 보면 "あなたに必要なすべてがこのー冊に!"라는 문장이 있는데, 뜻을 새기면 "당신이 필요한 모든 것은 이 책에 있다!"입니다. 물론 독자 입장에서는 시리즈 전체를 꼼꼼하게, 한 권을 한 달 안에 마스터한다는 자세가 따라줘야만 하겠습니다. 

p3의 머리말을 보면 "히라가나를 몰라도 되며, 문법보다 말로 배운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사실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들을 보면 우리하고 말 구조가 전혀 다른 인도유럽어족 원어민들도 아주 천연덕스럽게 한국말들을 잘합니다. 그들이 한국어 문법에 통달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한국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표현의 묘한 면과 자연스러운 발음을 배워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말과 매우 닮은 일본어를 배울 때 구태여 힘들게, 문법 위주로 고통스럽게 학습할 필요도 없지 않겠나 생각도 됩니다. 입말 위주로 원어민 발음(mp3)을 듣고 반복적으로 따라해 보면, 이 단계에서 배워 줘야 할 표현들은 이 책의 계획표대로 차분히 따라갈 때 충분히 학습자 몸에 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레벨 3 교재는 학습자가 앞 교재들의 내용을 충분히 잘 배우고 따라왔다는 전제 하에 내용이 진행됩니다. 교재는 마치 저자 최유리쌤이 독자에게 이야기를 현강에서 건네듯이 차분한 대화투로 전개됩니다. part 03을 보면 총 4주차 코스를 전제로 해서 1주차 3일째에 배울 내용들입니다. "3그룹 동사의 て형은 불규칙적으로 활용된다고 배웠습니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내용은 레벨2에 나왔었습니다. 일본어도 우리말과 비슷해서 몇 가지 불규칙 활용형이 있는데 이게 비원어민 입장에서는 너무도 어렵죠. 책에서는 "하고, 해서"라는 활용형이 "하다"는 기본형으로 바뀌는 게, 이 일본어 3그룹 동사에서 "して"가 "する"로, 來て(きて)가 來る(くる)로 바뀌는 것과 같다고 설명합니다. 이 내용은 원칙을 아는 것보다, 입으로 소리 내어 3그룹 동사 변화형을 몇 번이고 소리내어 반복하는 게 중요합니다. 

회화에서 아무래도 여러 번 반복해서 따라하고, 이것을 자기 귀로 들어서 계속 머리에 맴돌게 하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어학은 그저 반복, 반복이 중요하며 반복 학습 끝에 입에 안 떠오르는 표현은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6강에서 부탁의 표현을 배우는데 "~해 줘"라는 뜻입니다. "사 줘"는 買って(かって)이며, 책에서는 이 て형 동사가 "그 자체만으로 이거이거해 줘,라고 반말로 명령, 부탁하는 표현"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좀 정중한 표현은 어떻게 말하는가? て에다가 그대로 "ください"를 붙이라고 합니다. 이 표현은 아무리 일어 첫 코스만 배우다가 중도에 그만둔 사람이라고 해도 익숙할 만한데 이제는 전체 체계 안에서 정확히 어디에 해당하는지 배울 필요가 있겠습니다. 

모든 파트에서는 살펴보기, 연습하기, 응용하기, 말해보기 체제로 진행해가며, 반복이 필수니까 학습자에게 반복은 시키되 지루하지 않게 다양한 그래픽(일러스트)도 넣어가며 학습자들을 이끕니다. 또 매 챕터 뒤에는 오모시로이 니홍고(おもしろい にほんご. 面白い日本語)라고 해서, 일본어에 관한 재미있는 상식을 알려 줍니다. 예를 들어 p98(파트 10)에서는 오사카, 교토에 대해 여러 흥미로운 상식을 가르쳐 줍니다. 또 5챕터씩이 끝날 때마다 "실력 업그레이드"라고 해서 문장 복습, 변형된 다른 예문 소개, 추가 단어 적용 등을 제시합니다. 추가 단어 표를 보면 색깔별로 구분을 해 놓았기 때문에 눈에 잘 들어옵니다. 

파트 23에서 い형용사의 변화 표현을 배웁니다. 형용사에다 적당한 어미를 붙여 ~게 되다, 라는 뜻을 갖게 하려면 먼저 い를 떼어 내고, くなります를 붙인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강해집니다, 라고 하려면 强くなります(つよくなります)라고 하면 되는데 뜻은 (당연히) "강해집니다"가 됩니다. 다음 페이지에 바로 "~지고 싶습니다"를 배우는데, 앞에 나온 强い을 활용시켜 보면, 强くなりたいです가 되겠습니다. 밑에 다른 동사들을 활용하여 다양한 표현들을 배우는데 편집도 산뜻해서 덜 지루하게, 뭔가 머리에 잘 들어오는 느낌입니다. 

*시원스쿨에서 제공한 교재를 공부하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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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전영애.박광자 옮김 / 청미래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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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르브룅은 한때 왕족, 귀족의 초상화 커미션을 도맡다시피했던 화가였습니다. 마담 르브룅의 나이 사십대에 터졌던 세계사적 대사건이 바로 프랑스 대혁명이었습니다. 물론 그녀는 혁명 이후에도 자신의 탁월한 솜씨와 유럽에 두루 퍼진 인맥 덕에 큰 고비 없이 천수를 누린 편에 가까웠습니다만 개인적인 크고작은 고뇌까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녀의 화풍은 30년 전쟁이나 종교개혁 후에도 오히려 더 큰 경제적 풍요를 향유했던 프랑스의 활기 그 자체의 산물, 바로크, 로코코의 정수를 담은 것이었습니다. 지금 청미래에서 올해 새로 펴낸 이 리커버판을 보면, 마담 르브룅의 화사하고 섬세한 작품 세계의 핵심, 대표작이라 불러 지나치지 않습니다. 실제로도 그녀에게 궁정 화가로서 결정적인 명성을 얻어다 준 게 이 작품이었습니다. (큰 의미는 없으나) 마리 앙투아네트와 마담 르브룅은 나이도 동갑이었습니다. 

이 그림을 보면 많은 상념이 떠오릅니다. 혁명 발발 6년 전에 그려졌는데 그린 르브룅이나 그려진 왕후나 28세였을 때입니다. 오늘날 28세의 여성들과 비교하면 다소 나이 들어 보이는 느낌인데, 표정에는 심지어 이처럼 편안한 일상의 스탠스에서도 어떤 위엄이 풍깁니다. 그 어머니의 딸이라서 당연하긴 합니다만 마리아 테레지아 황후와도 닮았습니다. 그러나 황후의 경우 본인부터가 불세출의 군주 기질을 갖고 태어난 만능인이었으며 그 내면의 능력이 위엄으로 겉모습에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이겠지만, 28세의 철모르는, 정치적으로는 더욱 서투르기 짝이 없었던 그 딸이 뭘 안다고 (덩달아) 저런 표정을 지었는지 사실 딱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어쩌겠습니까. 왕족의 운명이 본래 그런 것을. 없는 위엄이라도 지어서 표현해야죠.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해서는 오히려 21세기 들어 더 다채로운 평가가 나오는 듯합니다. 프랑스 대혁명 자체가 구시대 전근대의 썩은 문짝을 걷어차고 새 시대를 확립한 대사건이라는 데 거의 이론의 여지가 없었던 편이었고, 앙시앙 레짐의 적폐를 모두 책임지고 상징하다시피한 루이 16세 왕 부부에 대해 모든 오명이 쏟아지는 건 너무도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과연 마리 앙투아네트가 죄를 짓고 죽었는지에 대해 적잖은 회의론이 제기됩니다. 아예 프랑스 대혁명 자체에 대해서도 새로운 증거와 사료를 바탕으로 프랑스 본토에서조차 회의적 시각이 제기되는 터라 왕비 개인의 평가라면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스테판 츠바이크는 본래부터가 박력있고 흥미로운 전기 서술로 유명했던 20세기의 문필가였고, 어떤 시대의 분위기나 경향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시각을 유지했었기에, 역사 연구가 더 진척된 오늘날에 읽어도 그리 어색하거나 위화감이 덜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전기인데도 소설처럼 재미있습니다. 

p154를 보면 쥘 드 폴리냑 백작부인(=욜랑드 드 폴라스트롱)을 처음 보았을 때 마리 앙투아네트가 어떤 느낌이었을지 츠바이크는 자신의 상상력을 가득 담아 서술합니다. 이때에는 백작부인이었지만 나중에는 남편의 작위가 공작으로 승급됨에 따라 공작부인이 됩니다. 이 부인은 마리 앙투아네트보다 다섯 살이 많았는데 물론 마담 르브룅이 이 부인을 그린 그림도 있습니다. 이 부인은 나중에 프랑스가 왕정 복고(復古)를 이루고 나서 샤를 10세를 보필한 재상이었던 쥘 드 폴리냑 2세 공작(우리에게 드 폴리냑이라고 하면 이 사람이 더 유명하죠)의 모친이기도 합니다. p155를 보면 마리 앙투아네트가 이 부인의 빚도 갚아 주고, 가문을 공작으로 올려준 사실이 다 나오는데 어쩌면 이런 생각없는 총신 편애가 왕조와 체제의 몰락을 앞당겼는지도 모릅니다. 저런 행적들은 엄연한 팩트입니다. 다만 드 폴리냑 가문의 사람들이 귀족 특유의 품격과 인격, 적어도 매력을 충분히 갖추었는지는 또 별개의 이슈입니다. 1세 공작은 러시아로 망명하여 예카체리나 2세에게 농장도 하사받고 말년을 보냈으니 말입니다. 

아... 누군가가 자신을 뒤에서 조롱하고 비웃을 때 이에 오불관언 무시하는 태도(p192)를 보이는 건 과연 왕족다운, 황족다운 태도이긴 합니다. 드레스에 똥파리 몇이 앉았다고 분노를 가볍게 표출하면 그게 똥파리와 같은 격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린 헌트의 <포르노그라피의 발명>이라는 책을 예전에 읽고 저급하고 야비한 시중의 농간이 위엄 가득한 왕실도 거꾸러뜨릴 수 있었음을 처음 알았습니다. 생산의 주력으로 어느새 등장한 부르주아지가 제 역량에 걸맞은 대접을 못 받자 불만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제3계급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아니었다(rien)! 무엇이라야 하는가? 모든 것이다(tout)! 이제 그들은 무엇을 바라는가? 그 어떤 것이다(quelque)." 시에예스의 너무도 유명한 선언입니다. ㅎㅎ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의 저 언명을 혁명 즈음에 접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제 출신 계급을 배신한 저 담대한 젊은 주교에게, 적어도 그 모후였으면 대갈일성으로 쏘아붙였을 만한 몇 마디가 혹 있었더라면 역사가 (설령 방향을 바꾸지는 않았더라도) 더 다채로워졌을 터입니다. 

이 책은 일단 츠바이크 원저의 완역판이라서 볼륨이 무척 두껍습니다. 게다가 독자로서는 생각지도 않게 각종 회화와 자료 사진들(올컬러)이 많이 실려 독자의 눈이 호강합니다. 역시 마리 앙투아네트, 비엔나에서 종자를 빌려 베르사유에서 피어난 장미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하여 대중의 흥미와 환호, 혹은 개탄을 이끌어내는 것 같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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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짧고도 사소한 인생 잠언 - 마흔, 후회 없는 삶을 위한 처방
정신과 의사 토미 지음, 이선미 옮김 / 리텍콘텐츠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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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6월에 정신과 의사 토미님이 쓴 <1초 안에 고민이 사라지는 말>을 읽고 리뷰를 썼었습니다. 저자의 본국인 일본에서는 이 시리즈가 큰 인기를 끈다는데 그 전작이나 지금 이 책도 과연 읽으면서 그럴 만하다 싶었습니다. 모두 4챕터로 이뤄졌고 각 챕터마다 여러 꼭지의 좋은 말들이 실려서 우리 독자들의 마음음을 달래 줍니다. 특히 저는, 정신과 의사라든가 이 부류에 속한 다른 책들이, 으레 하곤 하던 말과는 크게 다른, 일종의 반전 매력을 풍기는 조언들이 꽤 있어서 책을 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어떤 지인의 동기분이 소속 모임에서 따돌림을 당한 일을 겪고 크게 분노하여 타 모임을 바로 주선해 주고 마음의 상처를 바로 잊을 수 있게 그 지인이 조치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물론 기민하고 단호하게 잘한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사자가 쉽게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겠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런 일은, 당사자가 확고한 자존을 가진 분이라면 별 타격 없이 넘어갑니다(따돌림 같은 유치한 짓을 한 자들이 물론 나쁜 거겠고요). 저자는 p46에서 이런 일은 그냥 쿨하게, 내가 저 사람들과 처음부터 잘 안 맞나 보다 하고 넘어가라고 조언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하기도 해서, 내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이라면 쿨하게 잘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아는 독자들은 따로 사정을 알지만, 저자는 한때 이보다 더 심한 일을 겪고도 결국 일어선 분이라서 이런 충고가 더 진정성 있게 와 닿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인싸"라고도 하는, 커뮤니케이션 잘하는 사람은 어느 집단 안에서나 인기가 좋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p72 같은 곳에서 이런 사람들이 꼭 좋은 사람들은 아니라고 알려 줍니다. 이런 사람들이 무조건 옳고 이 사람들에 의해 배척당하면 내가 잘못이었던 거다, 이런 생각을 단호하게 버리라고 조언합니다. 저도 중학생 때 반장한테 크게 면박당한 어떤 애가, 평소에는 제법 강해 보이다가 유독 그 일을 겪고 정말 서럽게 울던 걸 보고 의아했었는데 그 애는 그저 한 명의 친구한테 당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서였다는 느낌이 지금 드네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인싸도 그저 한 명의 인간일 뿐이며 때로 억텐을 통해 분수에 넘는 영향력을 유지하려 애쓰는 불쌍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하물며, 흐름을 잘못 타면 한순간에 아싸 내지 왕따로 떨어지기도 하는데, 이런 사람한테 타격을 받았다고 해서 그걸 "1인분 이상"이라고 과대평가할 필요는 전혀 없겠습니다. 다만, 나 역시 객관적으로 잘못한 부분은 없었는지 겸허하게 돌아볼 필요는 당연히 있겠지요. 

p120을 보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신경쓰지 말고, 내가 무엇을 지금 해야 행복해지는지를 먼저 생각하라고 합니다. 얼핏 보아서 "무슨 뜻이지?" 싶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짧게 덧붙입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내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에 달려 있다." 생각해 보면, 남을 의식하는 사람은 자신이 남들의 생각을 다 계산해서 그렇게 행동한다고 여기지만, 사실 남들도 그 사람의 그런 계산은 다 읽어 냅니다. 결국 자기가 제 꾀에 넘어가는 셈인데, 반대로 남 신경 안 쓰고 자기 할 일 신명나게 하는 사람을 보면 아 저 사람에게는 진짜 뭔가가 있나 보다 하며 오히려 더 관심을 가지고 동경의 시선을 보냅니다. 이게 대중적 관심의 역설인데, 그런저런 사정을 떠나 순전히 내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내 일에 전념하는 게 결국 승자의 선택 아니겠습니까. 이 말도 저자 자신이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더 공감이 깊어지기도 합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 다툼이 없을 수 없고 가까움 사람 사이라고 해도 언쟁이라는 게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이 부분도 참 역설적인데, 언쟁이 없다고 그게 문제가 없는 관계가 전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일방 당사자가 꾹 참고만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이게 우리 나라도 약간 좀 이렇고, 특히 일본에서 자주 보이는 패턴입니다. 을의 입장에서 그저 자제만 하다가 어느 순간 문제가 크게 터질 수 있다는 건데, 설령 안 터진다고 해도 한쪽만 부당하게 화를 참는다고 그게 올바른 상황이겠습니까? 저자는 과감하게 말하기를 아니다 싶으면 그냥 터뜨리는 게 장기적으로 더 나을 수도 있다고 과감하게 충고합니다. 심지어 의도적으로라도 말입니다. 마치 막장드라마에서 불륜 파트너가 일부러 상황을 들키는 것과도 비슷한데, 물론 이런 걸 마냥 환영할 수는 없어도 한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p52를 보면 "지나침"의 미덕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지나침이라 하면 extreme이 아니라 lookover, pass를 뜻합니다. 친절한 사람들(그렇게 평가받는 사람들)이 그렇게 평가받는 비결은 뭐냐, 친절하게 굴지 않고 따지고 다투고 상대를 뒤집어 놔야겠다 싶은 "건수"를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결코 그들이 착해서가 아니라는 겁니다. 냉정하게 따져서 내 실리에 영향이 없다면 그냥 넘어가라는 겁니다. 만약 이렇게 안 하면 당사자가 당장 살아남기가 어려운 지경까지 갑니다. 깡패 앞에 서면 분노조절장애가 바로 치료된다는 우스개가 있듯, 괜한 일에 일일이 신경 곤두세우지 말고 사소한 일은 그냥 지나치는 게 현명한 선택이라는 뜻입니다. 

이 책이 재미있는 점은, 얼핏 보면 상처를 달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불을 지르는 듯한 역설적인 충고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들이 무책임하게 그냥 지르는 게 아니라, 잘 살펴 보면 인간 심리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빛나는 진리들입니다. 책 전체를 통해 "사람 사이의 관계를 지나치게 잘 가꾸려고만 들지 말고, 때로는 자연스럽게 마음 가는 대로 흐르게 놓아두라"는 결론을 저는 마음에 남겨 두었습니다. 사람 마음은 engineering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겠죠. 잠언집 답게 말들이 짤막짤막하게 던져지면서도 울림은 묵직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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