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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소 - 현대 주식시장의 핵심 메커니즘을 밝히다 막스 베버 선집
막스 베버 지음, 이상률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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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거래소는 아득한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군부대 내 매점을 PX라 부르는데 이 역시 "거래소"에서 온 이름이며 이 고전 서문에서 저자 막스 베버 본인이 자세하게, 혹은 난해하게(?) 설명하는 바와 같습니다. 이 간략한 고전은 본디 막스 베버(<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저자로 한국에는 널리 알려진, 지지난세기의 독일사회학자)가 "노동자를 위해 쉽게 거래소의 본질을 요약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사실 너무 쉬운 설명서와 PPT에 익숙해진 현대의 게으른 대중에게는 이마저도 어렵고, 아니 어렵다기보다 "거래소의 본질이 이처럼이나 심오했나?" 같은 경외감을 부르기도 합니다. 여튼 세기의 천재였던 막스(Max) 베버(Weber)의 책은 그 주제가 무엇이 되었든 간에 정독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이 고전에서 베버가 주제로 삼는 건 주로 "증권거래소"입니다. 꼭 폼나는(?) 증권거래소뿐 아니라 무슨 농산물, 원유 등 중간재, 하다못해 공동어시장의 거래소 역시 그 나름 꽤 복잡한 원리에 의해 작동됩니다. 책을 통해 베버는 아마 독일의 노동 대중에게 최대한 간명하게 거래와 거래소의 본질을 가르치고 싶었겠지만, 우리가 얻는 건 간단한 이해와 끄덕거림이 아니라 체제와 현상 저 깊이에서 작동하는 근본원리에 대한 심오한 통찰입니다. 저자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말입니다.

막스 베버는 보면 책 서문이 참 어렵습니다. 물론 본문도 어렵지만 서문이 왜 이처럼 어려운지 텍스트와 씨름하다가, 혹은 대체 왜 이렇게 서문을 어렵게 썼는지 그 의도를 이해하려 들다 잠깐 눈이 감길 만큼 어렵습니다. 사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도 서문을 보면 독자가 책의 내용을 이해하게 단초를 잡아 주는 게 아니라, 아직 나오지도 않았을 초판의 내용에 대한 (평단이나 반대 진영의) 예상되는 (가상의) 반론을 놓고 미리 재반박을 뭐 한다든가, 천재 특유의, 일반인에게는 도무지 이해 안 되는 부지런한 세팅(?)이 엿보일 정도지요. 이 고전도 저는 본문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서문으로 돌아와 여기여기는 왜 이런 말을 썼는지 다시 이해하려 노력했습니다만 저의 능력으로는 여전히 한계가 있었습니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주식을 채권과 혼동하기 쉽다(p28)." 제 주변에는 아주 감이 좋아서 주식은 물론 채권도 그저 차트만 보고 어느 순간 깨달음을 얻어 최상의 시점에 매도 매수를 능란하게 하는 이가 있고, 이런 분에게는 사실 주식/채권의 분별도 필요가 없겠지만,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되고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공부를 하고 나서 무슨 투자를 해도 해야 합니다. 이 책에서 베버는 주식을 일러 "말하자면 채무 증서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채권의 본질은 채무증서와 완전히 같지만(같음을 전제로 하고), 주식은 "비슷하다"고 그는 말하는 거죠. 이렇게 말을 해야 회사법제에 대해 아무 기초 지식이 없는 노동자가 잘 이해할 수 있겠지요(그나마). 이 구절은, 본인의 그 명석하고 천재적인 두뇌로는 주식과 채권을 혼동할 우려가 꿈 속에서조차 없을 텐데도 무지한 노동자의 처지에 최대한 서 보려는 관대한 그의 태도를 증명하는 부분입니다.

현대의 주식 거래에서 많은 이들은 유상증자를 할 때 예컨대 왜 60,000짜리 "시가"의 주식을 100% 유증한다면서 30,000짜리 두 장으로 나눠 줄 뿐인지 궁금해합니다. 액면분할과 무엇이 다른가 하면서요. 베버는 이 책에서 "주주에게는 (액면) 1000마르크로 평가되었음을 의미한다"고 하며, 주식, 혹은 지분의 가치가 일단은 액면가임을 설명합니다. 물론 실제 납입한 금액은 그때나 지금이나 액면가를 훨씬 넘는 게 보통입니다. 또 그는 "채권자의 채권(債權이기도 하고, 여기서는 債券이기도 합니다)"과 주식이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 파산 시 잔여재산청구권이라는 점에 있음을 지적합니다. "당연히" 채권자는 주주보다 선순위여야 한다는 거죠. 이게 바로 주식이 채권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입니다.

주식회사 제도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세계 최초로 알려졌지만 법제화가 치밀하게 이뤄져서 사업가는 물론 일반 대중도 어떤 속임수나 갑작스러운 부도 위험 등에 대해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않고 참여 가능한 반영구적인 제도로 주식회사 시스템이 정착한 건 독일에서 그로부터 350년 정도가 지나 악치엔레히트, 즉 주식(회사)법이 만들어진 후입니다. 즉 이것은 막스 베버와 동시대의 사건인 거죠. 베버는 "경영 자체는 관심이 없고 배당 수익에만 골몰하는 주주 혹은 투자자를 위한 제도(p33)"라며 그 본질을 정확히 짚습니다.

베버는 사회학자답게 중세의 장원제도도 예시의 하나로 듭니다. 장원 역시 영주와 농노가 일정 공동 투자를 한 산물이라는 겁니다. 영주가 외부 세력으로부터 무력적 보호를 베풀고, 농노는 일정한 토지를 "경작 가능한 땅"으로 만들기 위해 노동으로 투자를 합니다. 이렇게 해서 형성된 장원에는 외부인이 함부로 들어오거나 이익을 그로부터 취할 수 없는데 "투자자"에게 배타적으로 이익이 주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베버의 설명을 들으니 주식뿐 아니라 중세 장원까지도 새롭게 보이네요.

주주가 받는 자본수익, 즉 배당금을 두고 그는 "자본을 빌려 준 저당권자가 받는 이자"로 비유(p34)해서 설명합니다. 물론 이는 노동자 독자의 수준을 감안한 일종의 "비유"이며, 주주의 권리는 보통 개별 부동산에 특정하여 설정되는 저당권과는 법제적으로 크게 다르지만 비슷한 구석도 분명히 있습니다.

p45에서 그는 독일 거래소만의 "물리적" 특징을 설명합니다. 상품이건 증권이건 한 군데에 모여 있는 게 특이하다는 거죠. 이 책에서 "거래소"라 함은 물론 증권거래소가 주된 토픽입니다만 역사적 발달 과정을 고려한 서술이다 보니 상품거래소도 자주 언급되며 실제로 우리가 지금 다루곤 하는 "선물"도 비록 증권화되긴 했으나 기본적으로 물건이 그 본체입니다. 대두, 옥수수, 구리, 은, ...

거래소의 중개인, 입회인 등의 직책이 설명되며 이런 자리 역시 "사실상" 팔고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 나라도 한국거래소가 국가 기관이 아니며 민간 조직에 지나지 않는데 다만 은행처럼 고도로 공신력이 높은 것뿐입니다. 서유럽(독일 포함)은 당연히 민간에서 오랜 역사를 두고 이런 제도가 만들어졌으니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영국, 프랑스 등은 독일처럼 늦게 통일이 이뤄지고 인위적으로 무슨 제도를 급히 만든 게 아니라서 당연히 거래소 조직이 한 군데 모여 있질 않았겠죠. 함부르크 거래소의 중개인들이 프랑스 등과는 달리 특권이 없다는 점도 베버는 지적하는데 이것도 연혁적으로 같은 이유입니다. 베를린 거래소는 함부르크와 사정이 달라 "상인 사회의 장로들 집단"에 가깝다고 하는데 그다운 노련한 비유입니다.

"명예감정은 모든 사회조직의 힘이다(p53)" 독일어에는 다른 언어에는 없는 독특한 개념이 많은데 저 명예감정이라는 말도 법학에서 명예훼손이나 모욕죄 등의 보호법익으로 삼곤 하는 것입니다. 사실 거래소뿐 아니라 어음 수표 제도도 그렇고 지점, 대리인, 지배인 등을 여러 지역에 둔 상인 제도 자체가, 고도의 신뢰가 없으면 애초에 유지가 안 되는 거죠. 중세 베네치아의 상인들은 그리스의 왕족들이 즉위 후 채무를 갚지 않자 군대를 조직해서 다른 일 하는 척 하면서 엉뚱하게 콘스탄티노플로 쳐들어가 쑥대밭을 만들고 직접 채권 추심을 헸는데 그게 바로 4차 십자군 운동이었습니다. 저 말에 대해 베버는 각주에서 "나의 (이) 의견은 이 분야의 가장 유명한 전문가들과 일치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ㅎㅎ

공동어시장이나 농산물 시장에 가면 새벽 시간에 다소 기이한 형태로 "경매"를 벌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죠. 주식 거래 역시 (지금은 전산화가 완벽히 이뤄졌다뿐) 매도자와 매수자의 상호 경매 형태가 발전한 것입니다. p62 이하에서 베버는 가상의 중개인 "마이어"가 러시아 루블 화를 매매하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구태여 루블화를 예시한 건 p97 각주에 나오듯 저자가 은행가 파울 폴케 스캔들을 아마 염두에 두어서인 듯합니다(스캔들은 이 책이 쓰여지기 3년 전에 일어났습니다) . "An Sie(당신에게)!" "von Ihnen(당신에게서)!" 독어에서 경칭을 나타내는 2인칭 대명사는 저처럼 대문자로 시작하죠.

p67에는 재정거래의 개념이 나오는데 몇 달 전 비트코인에 유독 큰 프리미엄이 한국의 코인거래에서만 붙는 걸 이용해서 중국인 투자자들이 엄청 돈을 벌었다고 하죠. 이게 바로 알비트리지, 즉 재정거래의 좋은 예입니다. 베버는 이를 통해 "투기", 즉 시간에 따른 가격의 앙등을 이용한 이익 수취의 개념에까지 설명을 이어갑니다. 그리고 그 다음, pp.72~82로 이어지는 설명은 바로 "선물(先物. future) 거래입니다. 이 열 페이지 동안의 설명은 매우 쉽고도 정확해서, 거의 백 년 전에 이뤄진 서술이지만 현재의 선물 거래에도 그대로 적용한들 별로 어색한 구석이 없습니다. 무슨 단톡방에서 나눠주는 얄팍한 pdf보다 이 고전의 이 파트가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p67의 재정은 裁定이고 p96의 재정은 책에 나와 있는 대로 財政입니다. 발음만 같을 뿐 완전히 다른 말이죠. 거래소의 규모가 커지면 이 품목을 거래하는 (세계) 시장 안에서의 위상도 커지고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거래소가 소재한 국가의 위상이 커진다는 말도 해당 페이지에서 베버는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잡주 잡주 하는데 이게 속어나 비어가 사실은 아니며(?) 이 책 p97에 나옵니다. 원문에는 kleine Papiere(작은 株)라고 되어 있습니다.

당시의 독일 고전 답게 거래의 세세한 과정에서 중개인의 업무와 신분까지, 경제학적 측면은 물론 사회학적 고찰이 이뤄지며 결론부분에 가서는 미시가 아닌 "국민경제"에의 파급까지 두루 분석이 이뤄집니다. 투자의 기본은 일확천금이 아닌, 언제나 기본에 충실하고 대상에의 철저한 연구 끝에 이뤄지는 매매임을 잊지 않게 해 주는 명저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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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에서 온 남자 울릭 - 프랑수아 를로르 장편소설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지연리 옮김 / 열림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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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북극에서 온 남자" 울릭이지만 프랑수아 를로르의 기존 작품 꾸뻬 씨 시리즈라고 봐도 되겠습니다. 중간쯤인 p77에 꾸뻬 씨가 이 책 중에서는 처음 등장하고 이후 계속 감초처럼 나와서 울릭이 방황할 무렵 수시로 도와 주는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울릭은 물론 강한 사람이라서 남의 도움이 거의 필요 없긴 하지만요.

이누이트 족은 세상이 온통 영(靈)으로 가득찼다(p17)고 믿습니다. 울릭이 어느 석유 회사와 그 외 여러 단체 협업으로 기획된 행사에서 이누이트 대사 역할을 맡아 세계적인 대도시인 파리에 왔을 때, 그는 이상하게도 여기에서 영을 만나볼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이누크라서 카블루나(이누이트 입장에서 이방인이라는 뜻의 단어)의 영을 못 본다고 여겼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 도시 사람들이나 도시 안에는 영이 이미 떠나서인 줄 나중에 (우리 독자들과 함께) 알게 됩니다. p122에는 프랑스에서도 "숲"은 영으로 충만하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제이기도 하지만) 도시 사람들도 언제부터인지 떠나서 부재한 영을 찾기 위해 알게모르게 노력 중이며, 문제를 안 이상 도로 찾기 위해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약간 스포지만) 울릭은 방송 대담 쇼에 출연하고 광고에 등장한 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는데, 세계인들이 그에게 호응을 보낸 건 물론 개성이 재미있었서도 있겠지만 그에게서 자신들이 오래 전에 잊은 그 무엇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겠죠.

벽지 문명(현대인들이 원시 혹은 야만이라고 부르는 전통 문명)에서 한 개인이 도시를 찾아 이방인처럼 고독을 느끼는 설정은 여태 여러 영화나 문학 작품에서 채용해 왔습니다. 이 작품이 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가 그러겠거니 생각하는 전통 문명 출신 개인의 사고과 행동이 아니라, 보다 철저히, 진짜 현지인의 마인드와 느낌으로 주인공의 세계를 꾸려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소설을 읽고서야 "진짜 현지인이라면 아마 이렇게 하겠구나" 같은 각성이, 기존의 선입견을 몰아내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울릭은 물론 이누이트의 전형 범주에 넉넉히 속할 만한 개성이지만, 그저 정의롭고 순박하며 성실한 사람만은 아닙니다(물론 우리들 도시 사람에 비하면 여전히 그러합니다만). 그는 처음 파리에 왔을 때 고독을 못 이겨 여성을 찾는데 고향에 두고 온 구(舊) 약혼녀 나바라나바를 꿈에도 못 잊는다는 사람이 할 행동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실 울릭이 아직 혈기왕성한 청년임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긴 합니다(또 p83에는 좀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이누크 남자는 여자가 없으면 안 된다는 말도 나옵니다). 여튼 그가 파리 호텔에 묵으며 밤에 한 행동은 엄연히 성매수인데 이를 알선해 준 자가 에스키모(틀린 표현이라고 하죠)한테는 중국인이 알맞겠다고 여겼는지 중국인 성매매여성을 들여보낸 것도 눈에 띄었습니다.

울릭은 카블루나들이 "모두 직업이 있다"는 걸 아주 특이하게 생각합니다. 이누이트는 남자는 모두 사냥꾼, 여성은 집에서 가사노동만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p28에서 그는 대뜸 파리에 오자마자 이 생각부터 하며, 저 뒤, 소설 중후반 TV 토크쇼에 출연해서도 이 말을 꺼내 대중의 관심, 호기심을 얻게 됩니다. "아 저 사람은 우리를 그런 식으로 보겠구나" 같은) 앞에 나온 이름 모를 그 중국인 여성은 "다정함을 판다"는 식으로 그는 이해합니다. p233에서 울릭은 "남자가 고독을 더 탄다"고 하며, p103에는 "고독과 맞서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도 합니다.

울릭은 꿈에도 나바라나바를 잊지 못한다지만 동시에 그는 자신의 눈으로, 고향 마을의 여성들과 이곳의 카블루나 여성들이 어떻게 다른지를 꼼꼼히도 분석합니다. 분석이라기보다 일차 관심사가 그쪽이니 그런 생각부터 하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스로를 "최악의 조건(p266)이라며 자학하는 아드린느에게 그는 "이누이트 사회에서라면 인기가 좋았을 것"이라 위로하며 저 앞 소설 중반부에서도 "도움"을 제안했었지만 거절당했던 적 있습니다. 그래서 아드린느가 나중에 울릭이 유명인사가 되고 난 후 집에 초대했던 건데 한 맺힌(?) 여성들의 열띤 토론을 듣고 무섭지 않았냐는 질문(농담)을 하자 그는 아니라고 합니다. 당황하긴 했지만 이누크(p218에서 이누크는 단수, 이누이트는 복수[종족명]라며 울릭이 명확히 설명하는 대목이 있습니다)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죠.

울릭은 용감한 사람이라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지만, 북극곰 올라와 함께 영상을 찍을 때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아마 이를 본 카블루나들이 이상하게 여겼겠으나, 그는 이미 곰 두 마리를 죽인 적도 있는 타고난 사냥꾼(p68에서 자폐아 토마스가 얘기를 해 달라고 조릅니다)입니다. 다만 그는 당시 룰을 어기고 사냥을 했으므로, 이에 노한 곰의 영이 그를 벌하지 않을까가 두려웠고, 이는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인과응보의 죄의식, 혹은 명예감정에 가깝죠.

울릭에게 카블루나 여성들은 남자들보다 더 수수께끼입니다. p67에서 그는 카블루나 여성들이 "이해심 많은 남자"를 찾는다고 했을 때 무슨 뜻인지 정확히 이해를 못합니다(이해보다는 동의에 가깝지만). p231에서 여성들의 대화를 듣고 난 후 울릭은 혀를 차는데 세상에 그런 남자가 어디 있겠냐는 뜻에서입니다. p202에서는 꾸뻬 박사에게 "백마탄 왕자"라는 말이 있다는 걸 처음 듣고 자기 나름대로 "좋은 남자(줄리엣의 친구 디안[p94]이 말한)"를 떠올립니다.

당연하지만 울릭은 이누이트에게 아주 스테레오타입인 전통적인 여성관을 갖고 있습니다. p241, p244에서 그는 처음으로 "마초"라는 단어를 들었는데 무슨 뜻이냐고 묻는 울릭에게 여자들은 "한물 간 고루한 남자"라고 대답해 줍니다. 울릭이 언제나 되고 싶어했던 게 바로 그런 유형이며 이 여자들이 말하는 마초가 사실은 자신임도 눈치채게 됩니다. 아니 대체 마초가 무슨 잘못이냐, 울릭은 이렇게 생각할 뿐이지만 비단 이 부분뿐 아니라 아직은 젊은 울릭이 "사람들의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으며 그 점에 적응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그 성숙해 가는 과정이 이 소설의 중요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플로랑스 같은 여성은 "남자의 영을 가졌다(p108)"고 그는 여기며, p33, p180, p185 등에서 남자 없이도 자기 일을 척척 해 내는 여성들을 보고 그는 "'추장'이 될 자격이 있다"며 높이 평가합니다(p108에서 올릭은 플로랑스를 두고 "신기한 방법으로 얻은 완벽한 금발"이라 평하는데 물론 그 뜻이 뭔지는 우리가 다 잘 알죠. 한국인 중에도 많습니다). 추장은 '리더, 보스' 정도로 옮기면 적당하겠습니다. 사회에는 크고작은 다양한 보스가 있으니 말입니다.

p135에서 울릭은 "진정한 남자라면 나클리크를 타인에게서 얻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 말은 "위안" 정도의 뜻입니다. 닥터 꾸뻬는 그 말을 듣고 "나는 나클리크를 파는 사람이군요"라고 대꾸합니다. 이처럼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처지 개성, 또 서로가 속한 문명의 특징을 객관화하는 과정에 깊이 몰입합니다. p81에서 나폴레옹이 많았다면 작은 문명들은 일찍 다 멸망했을 것이라고 닥터 꾸뻬가 말하자, 그를 위대한 사냥꾼으로 알고 있던 울릭은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폴레옹을 침략자로 인식하는 건 독일, 영국 등의 정서인데 닥터 꾸뻬는 리버럴 성향인지 프랑스인이면서도 이러네요.

p210에서 울릭은 불과 몇 번 잤을 뿐인데도 이제 마리가 다른 남자와 자는 걸 상상도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ㅎㅎ 하긴 우리도 전 여친이 결혼했다는 소식에 분해서 밤잠을 설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울릭과 이야기가 잘 통할 것 같습니다.

p199 이하에는 토크쇼 장면이 나오는데 울릭은 그 당찬 여성이 객석의 파란 셔츠 입은 남자(그저 관객이며, 사실 쇼의 재미를 위해 방송국 측이 일부러 심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에게 모욕을 당하고도 왜 웃어넘길 뿐인지 이해를 못합니다. 하긴 우리 나라라고 해도, 이런 쇼의 포맷과 특징에 익숙지 않은 시골 노인이라면 똑같이 이해 못 할 형식, 상황이긴 하죠. p74, p37에서 욕설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이누이트 사회라면 살인이 날 만했을 겁니다. p37에서 울릭은 마리 같은 용감한 여성이 왜 지나가는 남성 난폭 운전자에게 욕을 듣고도 그냥 넘기는지, 그녀의 명예는 대체 어떻게 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실 우리 한국에도 이런 사람은 많죠. 또 저는 p37을 읽으면서, 상대가 여자라고 무조건 무시하고 욕하는 난폭운전자가 파리에도 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p162 이하에서 울릭은 마리 알릭스와 긴 대화를 나누는데, 이 대목이 현대 프랑스 돌싱 정서를 잘 보여 줘서 흥미롭습니다. 남자건 여자건 같은 또래에게는 매력을 못 느끼고 나이 어린 상대를 찾는데, 나이 어린 상대는 재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없으면 관심을 안 보인다는 식으로 고충을 말합니다. 물론 이는 한국도 다를 바가 없지만, 한국의 돌싱들은 또래의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에게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게 보통이니 한국이 프랑스보다 돌싱에겐 더 나은지 모르겠습니다. 뭐 마리 알릭스의 설명에만 의한다면 말입니다.

"남자들은 누구한테 존경을 받지 못하면 불안해하며 이것이 바로 젊은 여성과 불륜이 터지는 주된 이유(p83)"라고 닥터 꾸뻬가 말하는 대목이 있는데 마리 알릭스의 전남편이자 자폐아 토마스의 아빠인 샤를르의 경우를 설명하면서 이 말을 합니다. 이 책에는 "아드린느, 샤를르" 등 예전 독자들이 더 눈익어할 만한 방식으로 프랑스어 인명을 표기하네요.

울릭은 어디서 교육을 받았길래 불어를 이렇게 잘하며, 또 특히 라퐁텐의 우화를 자유자재로 인용하는지 궁금했는데 중후반인 p245에 편지를 통해 어느 대위의 사연이 나옵니다. p34, 또 p234에 라퐁텐 우화가 "서울쥐 시골쥐", "무갈인의 꿈"이 각각 나오고 p234에서는 마리 알릭스가 감탄하는 장면 있습니다.

이누이트는 설령 탁월한 사냥꾼이 포획한 수확물도, 아무 노동 능력 없는 다른 구성원과 평등하게 나누는데 이것은 마을의 평화를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 대목(177)에서 탐욕스러운 석유회사의 CEO를 의식하여 청중들이 환호를 보내며, 그러나 셀럽이 되어 큰 재산을 지니게 된 울릭은 p233에서 이제 그것을 다른 이와 나누기 싫어졌다는 사실도 정직히 표현합니다. 물론 (스포일러) 다른 사정이 생기기도 했습니다만.

울릭은 고아 출신입니다. 고아의 삶이 팍팍한 건 이누이트 사회가 사정이 더 나쁜가 봅니다. 그래서 그 대위(p245)가 죄책감을 가졌었고(남이지만 여튼 고아를 더 돌보지 못하고 버리고 옴), p24에서 울릭은 "고아가 된 기분"을 느꼈다고 말하는데 원래부터 고아인 그가 왜 새삼스럽게 이런 말을 하나 싶을 수도 있습니다. p270에 보면 "오랜 동안 봉인해 둔 고아의 기억"이 풀렸다고 하는데 이 대목이 앞 p24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겠습니다. p127에서 그는 "소년, 소녀, 그리고 장신의 여성"에 대해 "연결되는 느낌"을 가졌다고 하는데 p103에서 "고독과 맞서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한 말의 동기를 더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에게 가장 필요한 건 "여성"보다는 "가족"이었으니 말입니다.

이누이트 족은 마치 몽골 족이 탁월한 시력을 가졌듯 신체 능력이 뛰어납니다. p116, p94에는 귀가 밝아서 남들 하는 말을 다 엿듣고(엿들은 게 아니라 그들이 설마 울릭이 자기 말을 못 들을 거라 여김), p159에는 역시 시야가 남달리 넓어서 득을 보는 장면이 있네요. 동물원(p220)에서 곰이 잠시 울릭을 보는데, 토마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지만 울릭은 그 곰에 "자신이 규칙을 어기고 죽인 나누크의 영(p18, p45)이 깃들었다고 여깁니다. p48에서 그는 TV 쇼 사회자가 매우 나이 많은 사람이면서도 꽤 젊어 보이는 사실에 놀라고, 점잖은 외모이지만 눈에 "사냥꾼의 날카로움"이 빛나는 걸 알고 더 놀랍니다. 울릭이 잘 본 것이, 그 사람이 그런 날카로운 눈이 있었기에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그 자리에 설 수 있었겠죠.

무슈 꾸뻬, 아니 닥터 꾸뻬 시리즈를 보며 언제나 느끼는 건, 이렇게 단순한 말을 하면서 어쩌면 이렇게 질문의 정곡을 찌르나 하는 점입니다. 읽다 보면 인생 궁극의 진리와 해답은 꾸뻬 박사한테 다 들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특히 p130). p139에서 그는 서구사회가 이처럼 방황하는 이유를 놓고 전통 사회가 이미 다 발견한 해답을 그들이 잊고 있으며 이제 다시 찾아가는 과정이라서라고 설명합니다. p150에서 출산율이 주는 이유를, 본디 서구는 개인의 자유를 더 중시하며, 가족이 생기면 이는 구속과 의무를 뜻하기에 그로 인한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라고도 설명합니다.

약간 슬픈 엔딩이지만 여튼 울릭 커플은 북극은 아니지만 비슷한 영혼을 지닌 이들이 사는 마을에 정착합니다. 그들이 그들의 영을 그곳에서 영원히 간직했으면 좋겠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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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틴 시절의 로망 혹은 동경의 대상은 천재소년(소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젊은 나이에 큰 돈을 벌 수 있는 직종은 스포츠스타 같은 것도 있겠으나, 이런 사람들은 잘 가꿔진 리그 안에서만 성취를 거둘 수 있고, 험한 세상 속에서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스스로의 지혜로 해결해 가는 뛰어남, 탁월함 같은 건 역시 머리가 좋아야만 가능하겠습니다.

원판은 시리즈 제목이 그냥 "지니어스"이며, "게임"은 1편에 붙은 부제입니다. 그런데 어차피 (설정 속의) 지니어스 게임에서 이 모든 난장판의 단초가 마련된 데다, 이 소설 전편에서 세 명의 주인공들은 일종의 게임을 하는 중이라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2편의 부제는 한국어판에서는 "속임수"라 붙었고 원판에서는 "The Con"입니다. 3편도 이미 미국에는 나와 있는데 "The Revolution"입니다.

시리즈이므로 당연히 1편부터 읽어야 옳겠으나 저도 그랬고 꼭 1편을 읽어야 2편이 이해되는 건 아닙니다. 이 2편에 1편 내용이 꽤 많이 요약되었고 인물들 각각의 성격은 2편만으로도 충분히 파악됩니다. 2편부터 읽게 된 독자들은 소설의 형식, 시점이 좀 낯설 수 있는데 세 명의 주인공 이름을 번갈아 가며 챕터 제목으로 붙였고 그 챕터 안에서는 1인칭 "나"가 제목의 이름과 같습니다. 즉 챕터 제목이 "렉스"이면 이 챕터에서 "나"는 렉스입니다. 제목이 "툰데"면 "나"는 그 안에서는 내내 툰데를 가리킵니다. 어차피 진행은 1인칭으로 가야 하겠고 세 사람의 비중이 서로 같아지려면 이렇게 해야 했겠습니다.

1편에서 세 명의 틴에이저들은 누명을 쓰고 세계의 공권력에 쫓겨 다녔나 봅니다. 1편을 안 읽은 저로서는 왜 "카이"라는 제목의 챕터에서 "내"가 "페인티드 울프"인지 몰랐는데, 화장을 하고 선글라스를 낀 일종의 부캐가 페인티드 울프이고 본명은 카이 장입니다. 여성 청소년이고 중국계인 걸로 나옵니다. 렉스가 얘를 은근히 좋아하고 라이벌이 될 만한 인물, 예를 들어 나이젤(p30) 같은 키 크고 멀쑥한 젊은 남성이 나오면 렉스가 긴장합니다. 저는 이런 사정을 소설 1/4 정도까지 읽은 후에야 자체 정리, 이해할 수 있었는데 책 뒷날개를 나중에서야 보니 이런 설명이 다 잘 요약되어 있더군요(ㅠ).

렉스와 툰데는 내내 그녀를 "울프"라고 부르다가 소설 중반 "카이 장"이라는 정체가 드러난 후부터는 본명대로 "카이"라고 부릅니다. 이것 관련, p186에 "페인티드 울프를 받아들인다는 건 카이를 지운다는 의미가 아니라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으로 진화한다는 뜻"이라는 카이의 말이 나옵니다. 이 장르가 영 어덜트 판타지이니만큼 이런 게 독자의 성숙을 간접 촉구하는 의도가 있겠습니다.
 
이 2권에서는 일단 빌런인 키란에게 (1권에서) 크게 당했다고 하는 세 주인공이 설욕을 해야 하는데, 키란은 "웬만한 국가 하나를 운용할 만한" 엄청난 힘을 가진 자라서 이 세 주인공이 상대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입니다. 다만 키란은 세 주인공이 어떤 힘든 과업(스포일러이므로 설명 생략)을 완수하러 저 먼 나이지리아(툰데의 고향)까지 가서 분투하는 동안 그들을 찾아와서는 엉뚱한 제안을 하며 렉스를 지구 반대편으로 데려갑니다. 거기서 렉스는 참으로 오랜만에 형(예전의 어설픈 모습이 싹 가신)과 반갑게 조우하게 됩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맞죠.

렉스가 키란에게 설득당해 멀리 인도 콜카타의 실험실로 와 올리비아 등을 만날 때 올리비아가 렉스에게 다섯번째 실험실을 가리켜 "마이단"이라고 부른다고 알려줍니다. p219 각주에는 마이단이란 단어 뜻이 "페르시아어로 광장"이라 나옵니다. 음... 인도에서 왜 페르시아어 단어를 쓸까요? 북서부 인도는 역사적으로 이슬람 전투 종족이 많이 침투해 들어왔었고 이들이 페르시아 문화를 숭상한 까닭이 있어서입니다. 바부르가 세운 마지막 통일 왕조 무굴 제국도 궁정에서 페르시아 시스템을 널리 채용했고 이들은 인도 전통 문화를 몹시 경멸했습니다. 아마 2014년 우크라이나 시민혁명 당시 유로마이단이라는 말도 귀에 익을 텐데 이 역시 어원이 같습니다.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그 주변에 문화적 영향을 널리 끼쳤음도 확인 가능합니다.

이 책은 이처럼 한국의 어린 독자들이 문화적 맥락을 어려워하지 않게 세세한 배려를 베푼 게 또 큰 장점입니다. p155에는 중국의 민속춤 "앙가(秧歌)"라는 게 잠시 언급되는데 이게 한국식 한자음으로 일일이 고쳐 놓은 거라서 제가 읽으면서 놀랐습니다. 영어 원 텍스트에는 yangge라고 중국어 발음(당연하죠)으로만 나오기 때문입니다(한자는 당연히 없고). 보통 번역서에서는 이렇게까지 성의를 베풀지 않는 걸 감안하면 정말정말 마음에 드는 태도입니다.

p210에서 키란은 여튼 약속을 지키죠? 우리나라에도 디지털 장의사라는 게 있지만 키란도 세 주인공에게 어떤 반대급부를 제공해야 하므로 전과(누명이지만)로 얼룩진 그들의 과거를 싹 지워 주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스포) "페인티드 울프는 죽었다. 페인티드 울프 만세!"는 "The king is dead! Long live the king!"의 패러디입니다.

p236에서 툰데는 자신(들)의 과거, 이메일이나 기타 웹의 소소한 기록 포함 모든 게 지워진 줄 비로소 확인하고서도 그리 서운해하지 않습니다. 물론 자유를 찾은 기쁨이 압도적으로 더 커서이겠지만, 툰데의 다음 말은 우리 모두가 새겨들을 만합니다. "친구들, 이런 것들은 덧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다!" 어른들도 쓸데없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상실에 미련을 갖곤 하지 않습니까?

소설은 세 주인공이 전지구적 음모를 분쇄하러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니만큼 스케일이 큽니다. 나이지리아의 자연 풍광 같은 게 아주 세밀히 묘사되는 건 아니지만 예를 들어 p248의 바오밥나무 같은 건 <어린왕자>에도 나오던 거라 반갑죠.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게, 정작 가까운 미래에 첨단 기술로 등장하는 건 공간이동 수단이나 광선검(...) 같은 게 아니라 이처럼 발전된 네트워크입니다. 망의 원리를 이해 못하면 세 주인공 같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또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아날로그식 기계 수리, 설계에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한 사람은 코딩의 천재입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기계 수리에 취미를 들이라고 권하기는 좀 그렇지만, 코딩은 이제 미래 사회에서 어떤 직업에 종사하건 필수 소양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네트워크, 데이터베이스 아키텍처도 이 판타지 소설 안에서 일상용어처럼 언급되는데 어른 독자들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뭐 잘 몰라도 소설 즐겨 가며 읽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지만 말입니다.

1권부터 먼저 찾아 읽어 보고 이후 국내에 번역 출간될 3권을 기다려야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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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닭다리 탐정 - 비밀 짜장 소스 도난 사건 명탐정 닭다리 탐정 1
정인아 지음, 정예림 그림 / 모든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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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닭다리 탐정이며, "박 조수"가 항상 그를 따라다닙니다. 이름이 괜히 닭다리 탐정이 아니라서 변신을 할 때에는 "완전한 닭의 모습"으로 가능하다고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닭다리 탐정도 특이하지만 박 조수가 더 놀라웠는데 p3의 등장 인물 소개를 보면 "스마트 황금 젓가락"를 귀에 꽂고 다닌다고 합니다. 그림을 보면 귓구멍에 꽂는 게 아니라(그랬다간 크게 다칠 수 있어서 위험하죠), 귀 뒤에 꽂아 놓고 다닌다는 뜻 같습니다.

이 황금젓가락 기능이 예사롭지 않아서 중간쯤의 p23을 보면 이 젓가락을 빙그르르(큰따옴표가 쳐진 걸로 봐서 다르게 돌리면 안 되고 반드시 "빙그르르" 돌려야 하는 것 같습니다) 돌리면, 그 근방의 모습이 360도 입체 촬영된 후 홀로그램으로 저장된다고 합니다. 놀라운 건 냉장고를 찍으면 그 속까지 다 보인다고 하는데 투시 기능도 있나 봅니다. 이걸 박 조수 혼자서 개발한 건 아니고 닭다리 탐정과 함께 개발했다고 나오는데 박 조수의 본업은 "요리 과학자"입니다. 참 다재다능한 캐릭터 같습니다.

박 조수는 특히 닭강정 요리를 잘 만든다고 하는데 닭 요리에 관한 한 모든 걸 다 좋아하는 닭다리 탐정이 절대 이 박 조수를 곁에서 멀리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이 사람에 비하면 렉스 스타우트가 만든 니어로(=네로) 울프의 컴패니언 아치 굿윈은 아무 쓸모도 없는 조수죠. 농담따먹기 말고는 특별한 재주가 전혀 없으니 말입니다. 울프가 그렇게나 음식을 좋아하는데...

p7에는 실제로 닭강정 만드는 방법이 그림과 함께 나옵니다. 이뿐만 아니라 p19에는 닭다리 튀김 만드는 방법이 나오는데 진짜 레시피입니다. 사건이 다 해결된 후인 p77에는 금먹방 셰프의 짜장면 만드는 방법이 나오는데 이거는 레시피까지는 아니고 그림만 참 맛있게 보이는 정도입니다. 이 책은 스토리도 재미있지만 그림이 너무 선명하고 예쁘게 그려져 있어서 그냥 그림만 봐도 재미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p77의 내용은 레시피가 아닌데도 레시피 같은 착각을 안기게 그림이 잘 그려졌습니다.

"아니 어떻게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만 듣고도 누구인지를 알 수 있나? 나도 분명 보았는데 어떻게 자네만 알고 나는 모를 수 있지?" "왓슨, 그것은 본다고 되는 게 아니네. 관찰을 해야지. 아주 기초적인(elementary) 것이야." 명탐정 중 가장 유명한 셜록 홈즈와 왓슨이 나누곤 했던 유명한 대화입니다. 이 책의 닭다리 탐정은 셜록 홈즈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가졌기에, 계단 올라오는 소리만 듣고도 키와 몸무게를 정확히 맞힐 뿐 아니라 앞치마 펄럭이는 소리까지 듣고 그 주인공이 "금먹방 셰프"임을 정확히 추론(p9)해 냅니다. "관찰"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p73에서 닭다리 탐정이 다시 강조합니다.

금먹방 셰프는 요리 대회 출전을 준비 중이었는데 비밀리에 만들어 온 짜장 소스가 도난을 당했습니다. 이거만 있으면 1등은 따놓은 당상인데, 이번 기회를 놓치면 10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금 셰프로서는 매우 난감한 처지가 됩니다. 사람들은 짜장 소스를 훔쳐 자신의 요리에 쓰고선 우승을 노리는 자의 소행이라고 추측합니다.

<태조 왕건>에도 아버지에게 불만을 품은 아들이 큰일을 저지르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금셰프는 평소에 자신의 아들인 "금주방"이 자신에게 불만이 많았다고 말합니다. 닭다리 탐정도 일단 그를 의심하여 꼬치꼬치 캐묻지만 "이런 놀라는 표정이 연기일 리가 없다!"며 용의선상에서 제외합니다. 닭다리 탐정도 형식적인 알리바이나 범행 동기만 따지는 게 아니라 사람의 표정, 기색을 따진다는 소리입니다.

사실 저는 예전에 크리스티 여사의 <목사관 살인>을 읽고 그 결말을 봤을 때, 그 사람이 범인이라면 어떻게 그처럼 대단한 연기를 통해 주위를 감쪽같이 속일 수 있었을까? 이게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현실에서는 수상한 기색, 당황하는 태도 같은 게 (법적인 증거로서 효력은 없어도) 더 큰 단서가 되겠으며, 닭다리 탐정이 이런 점을 중시하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외 용의자는 보조 요리사, 장요기(금셰프의 고향 후배), 넘버투(금셰프 식당의 주방장이며 요리 대회 우승자) 등입니다. 뒤의 두 사람들은 행방이 묘연합니다.

범인은 p49 이하에서 밝혀지는데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이 의외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용의자가 세 명밖에 없고 그나마 한 명은 조기에 제외되었는데(이런 장르에서 초기에 명탐정이 확신을 갖고 제외하면, 그 사람은 아무리 수상쩍어도 결국은 범인이 아닌 걸로 드러나죠), 어떻게 의외가 될 수 있느냐? 뭐 여튼 의외는 의외입니다.

범인만 밝힌다고 다가 아니라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지까지도 다 해명을 해야 합니다. 원래 고전 추리물은 범인만 오리무중이 아니라 범행방법도 미스테리입니다(밀실 살인이라든가). 현실적으로 이는 수사당국이 형사재판에서 전과정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그저 장르문학의 관습이 아니죠. 닭다리 탐정은 여기서 범행 방법도 다 해명을 해 냅니다. 그리고 p73에서 "관찰을 하세요 관찰을!"을 외치는 거죠.

수수께끼 세 개가 나오고(해답은 바로 뒤 페이지에 나옴), 미로찾기 가 pp.34~35, pp.58~59 두 군데에 나옵니다. 미로찾기의 해답은 책 맨뒤에 몰아서 제시됩니다. pp.34~35의 미로찾기에 보면 "하늘색 티셔츠를 입고 노랑색 모자에 햄버거를 먹는 아이를 찾아 보세요"라는 말이 있는데 이거는 미로찾기에의 힌트가 아니고 별개 문제로 봐야겠습니다. 그 아이는 p35의 하단에 있는데 아이가 서 있는 지점은 사방이 막혀 있어서 닭다리 탐정의 자동차가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pp.90~91에 다른그림찾기가 나옵니다. 난이도가 좀 높아서 신경 쓰고 찾아야 하겠으며 닭다리 탐정 이야기가 너무 좋았던 어린이 독자에게는 큰 선물입니다.

하드커버판입니다. 혹시 책날개(하드커버니까 책날개가 없지만)나 뒤표지에 시리즈 다른 권 소개가 있을까 싶어서 봤는데 이 책이 닭다리 탐정의 첫번째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꼭! 후편이 계속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읽은 어린이책 중 개인적으로 최고였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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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의 눈 -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포착하는 관찰의 기술
양은우 지음 / 와이즈맵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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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은 객관적으로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보는 사람의 눈, 안목, 통찰력은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사람은 멀쩡한 외관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있는 모습 그대로만 간신히 관찰하며, 어떤 사람들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줄 압니다. 남들이 채 보지 못한 거대한 트렌드의 조짐이 꿈틀대는 걸 이른 시기에 포착한 사람은 큰 돈을 벌거나 성공하며, 다른 이들은 그러지 못해 현상 유지도 버거워하곤 합니다. 그래서 성공하고 싶은 사람은 "매의 눈"을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사냥꾼이 되어 먹이를 사냥할 것인가, 아니면 그런 사냥꾼들에게 먹잇감이 될 것인가? 책표지와 프롤로그에 나오는 말입니다. 누구나 이 치열한 경쟁의 장(場)에서 승자가 되고 싶어하지만, 그럴 자격과 역량을 갖춘 이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영 앤 리치", 온갖 신산과 풍파를 다 겪고 늦은 나이에 간신히 일정 부(富)를 거머쥔 분들도 분명 존경스럽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창의와 과감함으로 한순간에 일약 거대한 성취를 손에 넣고 싶어합니다. 사냥꾼은 그저 시력만 뛰어난 게 아니라, 이른바 "킬러 인스팅트", 히딩크 감독이 이야기한 것처럼 죽여할 정확한 시각을 포착하여 일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결행하는 그 단호함과 민첩성도 갖춰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거대한 트렌드를 알아보는 심안(心眼)과 인사이트를 장착해야 하는데 이 책에서는 저자가 연구한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독자가 배울 수 있게끔 돕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에 살던 제니 돈(p29)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가정주부였ㄷ다고 합니다. 남편과의 금슬이 얼마나 좋았는지 슬하에 일곱 몀의 자녀가 있었다고 하네요. "물가가 가장 싼 곳"을 찾아 미주리주 해밀턴으로 이주했다고 하는데, 여기서 그녀는 "딸이 구해다 준 재봉틀 하나"로 일약 유튜브 스타가 됩니다. 원래 이분이 살던 곳은 샌루이스 오비스포(캘리포니아 중에서도 남쪽으로 한참 가야 있죠)이며, 여기서 저 중부 미주리까지 갔으니 거리가 무려 2900km나 됩니다. 서울~부산 거리가 400km 정도임을 생각해 보면... 이분이 1957년생이라고 하니 우리 기준으로는 거의 할머니입니다. 해밀턴이라는 이름을 가진 도시가 미국에는 꽤 많은데 이분의 회사라고 해도 되는 "미주리 스타 퀼트" 덕분에 현재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해밀턴 시"가 되었습니다. 평범한 가정 주부 하나가 도시 하나를 새로 만들어 세운 셈입니다.

책에는 자포스의 창업자 토니 셰이도 잠시 언급(p35)됩니다. 이름난 신발 메이커만 해도 두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데, 아무 힘도 없던 개인이 이런 레드오션에서 뭘 할 수 있을까, 누구나 이렇게 생각들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보란듯이 엄청난 성공을 해냈고, 특히 "링크익스체인지"의 거액 매각은 이후 IT 스타트업 개척자들의 롤모델 사례가 되었습니다. 나이 오십이 채 되지 않았는데 안타깝게도 자택 화재로 입은 화상 때문에 몇 달 전 타계하고 말았습니다. Hsieh(셰이)라는 성씨 표기에서도 알 수 있듯 이분은 대만계 미국인입니다. 대만식 영자 표기에서는 권설음 sh를 저렇게 쓰죠.

책에서는 저 토니 셰이의 예와 함께 한국의 배민 창업자 김봉진씨의 이름도 거론합니다. 여튼,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세상에 없던 걸 만들어낸 게 아니라(그건 너무 힘들죠), 감춰져 있던 걸 찾아낸 것"이라고 합니다. 너무도 평범하고 흔해서 남들은 다 예사로 보고 지나친 걸, 그들은 쉬이 보아 넘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에 약간의 아이디어만 더하면, 누구나 기획자가 될 수 있고 사업가가 될 수 있다(p38)."

어떤 사람은 "최신식 쥐덫"처럼, 아무리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가미되더라도 전혀 상품성이 증가하지 않는 분야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미 산업혁명 시절부터 지금의 형태였던 "우산" 같은 흔해빠진 상품을 개량해서 뭐하나 하는 생각을 누구나 또 할 겁니다. 그런데, 이런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깨뜨리고, 비대칭 우산을 만든 사람도 있습니다. 사실 우산을 쓰고 가다 보면 그저 머리만 안 젖어도 다행이지, 세차게 비가 내리거나 하면 결국 옷은 쫄닥 버리기가 십상입니다. 비대칭 우산은 한쪽 면을 길게 만들어서 바람의 방향이나 사용자 습관에 따라 특별히 더 젖는 곳을 방어하는 게 기본 아이디어입니다.

어떤 우산은 면을 발수 소재로 만들어서, 밖에서 몇 번 털기만 하면 뽀송뽀송해집니다. 사실 방수도 아니고 발수 소재라면 원가가 좀 비싸긴 할 건데 여기서 비용 절감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여튼 밖에서 우산을 탈탈 털고 실내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란 그저 흔한 풍경인데, 여기서까지도 아이디어를 내는 게 참 대단합니다. 혹 상품으로 바로 히트는 못 쳐도, 고급 브랜드 판촉물에다 적용하면 호응이 좋을 듯합니다.

스포츠에서 오랜 세월 동안 선수들에게 "이럴 땐 이런 기술을 써야 한다"며 통용되어 온 기법은 아마 어린 유망주들에게 철칙으로 통용될 겁니다. 코치가 이리 가르치면 아무 대답 말고 시키는 대로 할 뿐이죠. 그러나 책에서는 그간의 상식과 전면 배치되는 새로운 기법을 시도한 개척자들의 멋진 예를 듭니다. 수영선수 아돌프 키에퍼의 "발로 터치하는 턴", 육상선수 딕 포스베리의 "배면뛰기" 등이 그것입니다.

남들의 생각과 반대로 가서 유명해진 투자자로는 강방천 회장이 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 그는 아파트 값 등 국내자산에 거품이 너무 꼈다고 보고 반대로 달러에 투자했는데, 외환위기가 터지자 엄청난 돈을 벌었습니다. 외환위기 후에는 "여튼 한국이 망하고 자본주의가 소멸하지 않는 한 증권업은 계속 갈 것"이라 확신하고 증권회사 주식에 대거 투자했는데 이 역시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여기서 저자는 강방천의 투자에 다분히 운이 따랐음(p54)을 지적하면서도, 예리한 관찰 습관이 있었기에 적시에 말을 갈아타는 순발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평가합니다.

산업의 향방과 흥망성쇠는 다양한 파동과 효과를 내기 때문에 사이클이 한 번 파도를 치면 한 분야 한 섹터에서만 돈이 도는 게 아닙니다. 돈 버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해서, 중국에서 크게 산업이 일어나면 아 중국 기업(혹은 중국에 생산 기지를 둔 기업)에다 투자를 해야 되는가 보다 하겠지만 어떤 사람은 낯선 법제 낯선 풍조의 땅에다 돈을 묻는 걸 달갑지 않아 할 겁니다. 중국에서 아무리 물건을 많이 만들어도 이를 다른 나라에 팔려면 배로 옮겨야 합니다. 항공 운송은 수송량도 제한될 뿐더러 운임이 비쌉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선박 해운에 집중 투자했는데 이게 대박을 쳤습니다. 사실 불과 한 달 전에도 해운 선박 관련 종목(주식)이 갑자기 급등해서 돈 번 분들이 많습니다.

"선천적으로 시각적 지각 능력에서의 작은 수준의 편차가 지능을 높이는 비계(scaffold)로 작용하고 일생에 걸쳐 주의를 집중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p65)." 저자가 이 문장을 통해 지적하고자 하는 건, 그만큼 일상에서 두 눈 크게 뜨고 관찰만 잘해도, 대한민국에서 큰 돈이 오가는 강남 번화가만 신경 써서 구경해도 의외로 배우는 바가 많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예사로워 보이는 현상 속에, 의외로 큰 돈을 벌 수 있는 단서가 꼼꼼히 숨어 있다는 뜻입니다. 또 저자는, 천재들의 경우 시상(thalamus)의 효율이 다소 떨어진다고 재인용(p65)을 통해 말합니다. 시상의 효율이 떨어지면 필터링 기능이 약해져서 두뇌로 과하게 많은 정보가 전달되는데, 이것 때문에 약간의 신경 쇠약 증세마저 보일 수 있고, 이것의 결과 혹은 부작용 때문에 남이 산출 못하는 기발한 성과물이 나온다고 합니다. 고흐, 뭉크 등이 그 좋은 예라고 하네요. 여튼 요지는 "관찰만 잘해도 IQ가 향상된다"입니다. 두 눈 크게 뜨고!


아무리 상상이 기발해도 그 기초는 현실 속에 이미 존재하고 목격되던 기존의 모습이나 원리 등입니다.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창의력의 산물 같은 건 없다는 뜻이죠. 희한하고 신기한 시각 효과로 대중의 찬사를 받았던 짐 캐머론의 <아바타>에 나오는 기괴한 형상들도, 사실 그 요소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다 우리가 익히 주변에서 봐 오던 것들입니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혁신은 연결에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잡스는 일류 엔지니어도 아니었고 아이폰에는 타사들이 개발한 특허가 매우 많이 들어갑니다. 이걸 연결연결해서 엄청난 마진을 쓸어담는 건 애플이죠. 그저 연결을 잘해서 말입니다. 반면 삼성은 마진폭이 적어서 점유율로 승부를 힘들게 봐야 합니다.

구글의 웨이브는 브라우저, 소셜미디어 등 모든 걸 통합한 플랫폼으로 처음에 엄청난 기대를 모았습니다. 그러나 사전에 준비가 충분치 못했는지 "피드가 꼬이면서(p86)" 고장난 신호등처럼 혼란이 빚어져 유저가 결국은 다 떠났다고 합니다. 분명 웨이브는 많은 편의 기능을 추구했고 기술적으로는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 사용자들이 당장 원하는 니즈"를 외면하고 개발자 시야 중심으로 프로세스가 이뤄졌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지금 개편 후 네이버 카페, 블로그의 글쓰는 보드를 보면 참 기가 막히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유저의 편의를 철저히 무시하고 온갖 불편한 요소는 다 끼워넣었을까요? 한번 길을 잃으면 무조건 나갔다 들어오거나 새로고침을 해야 합니다. 마침 책에는 복사 붙여넣기 기능의 유래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성공은 이처럼, 개발자 발명가의 자기 만족이 아니라 사용자의 니즈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불편을 잘 캐치하고 이를 해소, 극복할 방법을 만들어내는 게 성공의 요체인데 어떤 앱은 불편함만 모아 놓고 성공했다고 합니다. 맛집 소개는 인터넷에 너무 많아서 뭐가 진짜 맛집인지 가려낼 수가 없으니 별 쓸모가 없는데, "닛픽"은 반대로 맛없는 식당 정보 공유 앱으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물론 블랙컨슈머 진상질이 목적이 아니라, "좋지 않은 점의 개선"이 유저들의 목적이었으며 이뿐 아니라 일상의 불편이 이런 의견 공유로 개선된다면 뜻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아주 예전에 어떤 발명가는 지우개를 연필 끝에 끼운 초 간단 아이디어만으로 돈을 벌었다고도 하죠. 2015년 삼성전자는 액티브워시라는 신상 세탁기를 내면서 내부에 곡선형 빨래판(애벌빨래용)을 빌트인하여(p102) 호응을 크게 얻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간단한 아이디어가 돈이 되나 싶지만, 이게 다 소비자의 편리를 거대 제조사가 배려한다는 분명한 증거 중 하나지요.

미국에서 패스트푸드가 큰 성공을 거두고 여세를 몰아 해외로까지 진출하는 건 그만큼 그 나라의 소비자들이 "빠르고 편한 식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프랑스처럼 품위 있고 풍취 있는 식사가 인생의 중요 목표이기까지 한 나라에서라면 제한된 성공밖에 거두지 못하겠죠. 이처럼, 책에서는 소비자의 성향을 정확히 분석하고 시장 파악을 제대로 한 후에야 성공이 가능하다고 말하며, 그 근원은 역시 "매의 눈, 사냥꾼의 시야"입니다.

한때 이미 성숙기 내지 정체기에 접어들었다고 판단된 산업이 있습니다. 그러나 꺼진 불도 다시 본다고, 새로운 거대 트렌드를 맞아 엉뚱하게도 "회춘"하는 산업군이 있기 마련입니다. 책 p129에서는  그 예로 편의점을 드는데, 편의점은 이미 1990년대 중반에 서울 거리 곳곳에 들어섰고 너무 치열한 경쟁 때문에 레드오션으로 꼽혔으나, 이제 티케팅 대행, 간이식당, 택배허브 노릇을 겸하며 다시 주목 받습니다. 

wealth management라고 은행이나 증권회사에 보면 간판에 써 붙여 놓은 곳이 많습니다. 강남이나 분당 등 중산층 거주 지역에 이런 지점이 많죠. 이런 서비스를 좀 엉뚱하지만 온라인 소매점인 미 아마존이나 중국의 알리바바가 이제 시도한다고 합니다. 충성심 높은 구독 고객이 원스톱으로 한 군데에서 모든 니즈를 해결하려니 이제 이런 현상까지 등장하는 거죠.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이면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힘을 통찰력이라고 한다(p139)." "센스메이킹은, 문화를 분석해 맥락을 파악하고 그 맥락의 인과관계로 인간행동패턴을 찾아내 매출을 올리는 전략개발이다(p141)." 세상은 본래 "주류"라는 것이 압도적인 힘을 갖고 운용하기 때문에 "원래 하던 방식" 외에 다른 길을 찾아 개척하는 건 너무도 힘듭니다. 책 p152에는 세일즈포스닷컴이 어떻게 시장의 강자로 군림하게 되었는지가 나오는데, 예전에는 이른바 셰어웨어라고 해서 시한을 정해두고 일정 기간 써 보게 한 다음 마음에 들면 구매를 통해 락을 푸는 방법을 소프트웨어 업체에서 썼었습니다. 클라우드를 통해 어디서건 그저 서비스 제공 방식으로 유저를 끌어들이는 방식을 이 회사가 처음 도입한 겁니다. 저도 MS 오피스를 학생 때 20만원 주고 샀었는데, 지금은 이런 방식이 굉장히 낯설 겁니다.

사람의 뇌는 본래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만 향하게 되어 있어, 설령 고릴라가 앞을 지나가도 목격 못 할 수 있다고 하죠. 책에서는 컬러배스효과, 칵테일파티효과 등을 소개하며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걸 놓치고 지나가는지를 상기시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제 시야만 좀 달리 잡고 주의만 집중하면 그동안 못 보던 고릴라를 캐치할 수 있다는 거죠. p203에는 그저 상하반전만 했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형상이 보이는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흥미로운 그림이 나옵니다. "의도적으로 (여태 낯익은 걸) 낯설게 보는 것"을 데자뷰 아닌 뷰자데라고 부른다는데, 로버트 서튼 교수의 창안이라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기시감이 아닌) "신시감"으로 번역한다네요. p209에는 지붕이 땅으로, 바닥은 하늘로 향한 신기한 집이 나옵니다.

"사냥꾼은 오직 성과로 말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오직 성과로 말할 수 있을 만큼 유능해질 수 있을까요? 분석의 첫걸음은 "의문"입니다. 당연한 걸 당연하게만 보지 말고, 왜 저렇지 않고 이러면 안 되는지 의문을 가지라고 합니다. 이로부터 새로운 걸 유추할 수 있고, 또 부끄러워하지 말고 모방을 통해 창조를 시도하라고 주문합니다. 책에서는 마네의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과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을 비교합니다. 사실 이때 피카소는 엄청 욕을 먹었습니다.

대가의 그림에는 의외로 숨겨져 있는 이스터에그가 많습니다. 책에서는 밀레의 <톱질하는 벌목인부들>을 제시하며 그림 하나에 숨겨진 의미와 암시가 얼마나 많은지를 설명합니다. 요즘은 추세가 바뀌어 상상을 자극하는 추상화가 아니라 극사실화가 다시 유행하는데 이때 관찰력이 여간 뛰어나지 않으면 보는 이로 하여금 극사실성에 감탄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어렵게 배운 것은 오래 머리에 남는다." 매타인지를 적극 활용하면 그간 보이지 않던 내 사고의 허점도 눈에 띌 뿐 아니라 정보의 기억 자체도 오래갑니다(존 플라벨. p281). "주의 모드"가 아닌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기발한 각성도 가능합니다.

우리가 매의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면 그간 전혀 눈에 띄지 않던 "무수히 많은 기회"가 우리 곁을 스쳐지나감을 알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비롯 평범한 사람의 힘으로는 감히 상상도 못할 듯한 최첨단 기술의 산물도, 알고보면 지극히 일상적인 관찰과 상식적인 사고에서 느닷 탄생할 수 있다는 걸 확인 가능합니다. "관찰만 잘해도 IQ가 향상된다. 나아가, 큰 돈을 벌고 성공할 수 있다!" 눈 크게 뜨고 기억합시다. 위에 쓴 대로 책에는 여러 사진, 명화 등이 많이 실렸는데 도판뿐 아니라 텍스트도 독자가 읽기 편하게 아주 깨끗하고 선명하게, 좀 이례적이라 할 만큼 잘 인쇄되었습니다. 책을 실제 읽어 본 입장에서 이 점 꼭 강조하고 싶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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