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빛이 된 당신을 마음에 담습니다 - 사랑하는 안석배 기자에게 보내는 고마움의 편지들
장용석.이인열 외 76명 지음 / 행복에너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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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년 전인 2020년 6월 타계한 고 안석배 기자님에게 보내는 같은 회사 선배, 동료, 후배 기자분들의 찬사, 회고, 고백, 오열, 애도 등을 담은 책입니다. 어떤 분야에서건 열정을 불 사르며 직무에 몰입하던 분을 먼저 떠나보내는 사우(社友)들의 마음은 비장하고 안타깝기 마련입니다. 안 기자님처럼 이리 폭 넓게, 남은 이들로부터 따뜻하고 열렬하며 진정성 가득하게 기억되는 분이라면 진정 한 세상 제대로 살고 제대로 죽음에 면했다는 높은 평가를 들어 마땅할 것 같습니다.

물론 동료 기자분들만의 회고를 실은 건 아니고, 생전에 그가 교육 전문 기자였던 만큼 이주호 전 교육부장관, 염재호 전 고대 총장, 감경범 교수, 야스오미 교수 등의 추모글도 실려 있습니다. 가족분들의 안타깝고 사무치게 그리운 마음을 담은 글 세 편도 실렸는데, 고인의 외조카분,  여동생분, 그리고 형님의 절절한 심경을 표현했습니다. 책 끝에는 고인의 인생 각 국면을 담은 사진들도, 흑백은 흑백대로 컬러는 컬러대로, 생각보다 많은 수가 실렸습니다.

특히 해당 신문사에 합격했던 응시표 사진, 연대 졸업 당시에 친구분들과 함께 찍은 사진, 가족분들의 반듯하고 화목한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특히 독자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기자로서 그가 남긴 명문이 지면에 실린 모습을 담은 사진도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해당 신문을 평소에 아주 열독하지는 않았고 교육 분야에서 얼마나 높은 식견을 보이셨는지 미리 캐치할 만큼 큰 관심도 없었기에 (좀 부끄럽게도)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아 그러셨던가" 하며 고개를 간간이 끄덕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주변의 지인들한테 이처럼이나 뜨겁게 기억될 수 있다는 점 자체만으로도 참으로 보람 가득하고 존경스러운 삶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박정훈 논설위원은 "티오를 받아내는 것, 지면을 확보하는 것 등이 다 녹록지 않았다. 교육 현장에서 그의 존재감은 발군이었다. 어느 기자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교육계 인맥을 독보적으로 장악하고 있었다... 흥분한 상황에서도 조근조근 설득하는 그의 화법은 옆에서 듣는 사람마저도 감탄하게 했다... 화를 내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그를 회고합니다.

"다들 아는 것처럼 우리는 선배한테 님자를 붙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은 나도 안 부장도 조금 흥분 상태에 있었던 것 같다. 2018년 9월 그가 논설위원에서 사회정책부 부장으로 발령났을 때 그 자리에서 탄성을 지를 만큼 기뻤다" 이는 김광일 논설위원의 회고입니다.

"잘생긴 데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정했던 형은 함께 어울리면서 늘 뿌듯했던 친구이기도 했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형과 어울리는 나를 과하게 평가했겠어요." 이는 한현우 문화전문기자의 말입니다. p49에는 논설위원 야구 경기 단체 관람 사진이 나오는데 (구) SK 와이번스의 팬들이신지 모르겠네요.

"환자복 차림에도 석배는 품위가 있었다. 멋진 외모, 기품 있는 스타일, 온화한 성격... 이 친구야말로 혹독한 근무 여건 속의 사스마와리들이 비빌 언덕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이는 최보식 선임기자의 말입니다. 사츠마와리는 한자로 察番이라는 것으로, 초년생 사회부 기자들이 번갈아 경찰서에서 번을 서다시피하며 취재하는 걸 가리킨다고 들었습니다. 기자라고 하면 젊은 시절부터 막강한 파워를 휘두르는 것만 같지만 세상에 쉬운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쁜 여건 속에서도 품위를 지켰던 선배라야 이후 후배들에게 든든한 그늘이 되어 줄 수 있겠다는 점도 확인이 가능했네요.

"회사에 대한 세무사찰과 그에 따른 사주 구속의 여파로 상당수의 검찰 간부들이 (해당 신문사) 기자들을 기피하던 시절이었지만, 귀하를 무시한 검사는 단 한 명도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단정한 외모에 글로벌 스탠다드 매너,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포스를 풍기던 귀하를 무시하면 큰일나겠다 싶었겠죠." 이는 정권현 선임기자의 회고인데 참 어떻게 직장 생활을 하고 인간 관계를 꾸려 나가면 이런 평가를 들을 수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저 일이 2002년이었다는데 고인의 연령 34세였을 때이니 아직 젊다면 젊은 기자이셨겠네요. 하긴 고인의 향년 53세는 젊은 나이가 어디 아니겠습니까. 당시에 어떤 야당 국회의원이 "공산주의식 세무조사"라 비판했던 기억도 들고, 라이벌 타 신문사 사주의 부인이 투신자살했던 기억도 그러고보니 있습니다.

"술자리는 사람의 품격을 보여 준다고 하지. 하지만 너에게는 신사의 품격만 보였어. 입시생을 둔 부모들이 한 번쯤 만나보고 싶어하는 기자, 그게 너였어. 후배였지만 반듯한 너를 항상 마음속 깊이 존경했었다." 이것은 윤정호 티조 보도본부 부본부장의 말입니다.

2부에서는 제 생각에 가장 값진 기록들이 이어집니다. 정말로 어렸을 때 친했던 친구들(전교 1, 2등을 다툰)이, 커서도 명문대에 진학하고, 사회 저명인사가 되어 다시 만나는 건 뜻깊고도 감동적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초등생 시절의 개성, 개인사, 이런 걸 성인이 되어서도 고스란히 기억하고 현재의 모습에 비추어 각자의 성장을 가늠하고... 이런 관계가 진정한 친구의 교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실제로도 이렇게 친교를 나눈 친구들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독자인 저하고야 전혀 관계 없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가슴이 벅찼습니다. 이렇게 산 분이니 동료들한테 그렇게나 칭송을 듣는 것 아니겠습니까. p87에 나온 사진도 참으로 보기 좋습니다.

"어릴 적 애늙은이가 이제서야 물을 만났구나 싶었다. 그래서 보기 좋았고 이런 친구를 둔 내가 복이 많구나 여겼다." 정규철이란 벗의 회고입니다. 이런 말에도 어린 시절의 인상과 기억이 성인의 그것과 탄탄한 연속선상에 놓여 있는 게 확연히 보입니다. 반대로 이런 지점들이 불연속적이고 단절된 게 많은 인간일수록 영혼이 타락했다고 봐야 하죠. 또 "어릴 적 애늙은이"라는 게, 어려서부터도 그만큼 많은 책을 읽고 사색을 했다는 소립니다. 그런 사람이라야 술자리 매너도 중후하고 인격도 뻬어나며 이른바 신사의 품격을 풍길 수 있는 거죠. 인상도 나쁘고 언행도 거친 자가 자칭 신사라고 떠들고 다니는 가관과는 대조될 뿐입니다.

이 독후감 앞에서도 말했지만 독자로서 저는 해당 신문을 그리 열독한 편도 아니었고 공력 깊은 어느 언론인의 기사를 꾸준히 찾아보며 아 이 분야를 진정 꿰뚫는 분이시다, 이런 느낌을 스스로 정리했을 만큼의 진지한 독자도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책을 평가할 자격도 없죠.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 어쩌면 한 사람이 이렇게나 직장 선배, 후배, 동료 들에게 일치된 평가를 받을 수 있는지, 또 어려서부터 그가 크게 될 걸 알고 배울 점을 찾아 배우던 친구들을 여럿 곁에 둘 수 있었는지, 이런 점을 그 진정성 뚝뚝 흐르는 회고를 읽고 고인이 가신 지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아 한국에 이런 큰 사람이 있었구나" 하고 알게 된 체험 그 자체가 보람되고 뿌듯합니다. 생을 올바르고 보람되게 산 분은 이처럼 전혀 연이 없고 끝까지 한 줌의 매우 미약한 교차점도 없을 뻔했던 어느 미미한 독자에게도 이처럼 감동을 주고 떠나는 법이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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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안아준다는 것 - 말 못 하고 혼자 감당해야 할 때 힘이 되는 그림책 심리상담
김영아 지음, 달콩(서은숙) 그림 / 마음책방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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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누구나 크건 작건 상처를 받습니다. 이 상처는 어떤 방식으로든 치유가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내 상처를 좀 힐링해 줬으면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듭니다. 하지만 그런 도움은 쉽게, 누구에게서나 받기가 매우 힘듭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는 저마다 지울 수 없는 한 아이가 살고 있다.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에 나오는 오스카처럼 성장을 멈추어 버린 아이, 그래서 어린아이의 시선과 두려움과 공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사는 아이.(p28)"

저자는 한 내담자의 사연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딜레마를 만납니다.

- 사랑해서 결혼하는 게 맞는가, 아니면 결혼 후에 사랑을 키워 가는 것이 맞는가?

여튼 저자와 그 내담자분이 얻은 답은 후자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내 부모님이 내게 준 사랑은 결코 찌질하지 않다, 그 이후에 겪은 사랑과 체험 또한 결코 찌질한 게 아니었다, 이 정도가 두 분이 얻은 꽤 큰 깨달음의 요지였겠습니다. 사실 우리가 받은 사랑, 또 지금까지 겪고 느껴 온 체험 등은 모두 찌질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걸 내심으로 찌질하다고 여길 때, 그 체험이나 당사자의 그릇, 인간됨은 의문의 여지 없이 정말로 찌질한 게 되어 버리는 듯합니다. 자기 기만, 과장, 허위에 빠지자는 게 아니라, 얕은 체험으로부터도 깊은 감성을 뽑아내는 게 내 생을 진정 아끼고 사랑하는 길이란 뜻입니다.

p49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나를 가로막을 수 있는 사람이 오직 나뿐이듯이, 나를 사랑하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도 오직 나뿐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 열정순이다.(p67)"

저자의 말씀대로, 열정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은 그게 무슨 일이든 가치있고 아름답게 만드는 듯합니다. 일의 성질이 원래 그러하여서가 아니라, 그 일에 종사하는 이가 일의 천하고 귀함을 그 투입하는 열정에 의해 결정하는 것이 아닐지요.

"내 삶이 내 삶이 아니라 누군가가 세워놓고 닦아 놓은 목표를 따라 길을 내놓은 데로 가기만 하면 되니 일정 정도 편해서 타협해 버린 것이다. 이런 세대들이 사회 곳곳에서 주체가 되어 생활하며, 자기 표상과 대상 표상이 어그러진 채 심각한 징후들을 보여 주고 있다.(p98)"

어찌보면 무서운 일입니다. 사람은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책임을 지고 주인의식을 가지며 살아야 합니다. 일정 연령이 넘으면 자연스럽게 리더가 되고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진로와 역량까지도 이끌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일생 내내 성장을 거부한 타율적, 유아적 마인드에 머문 거죠. 이런 사람들이 알아서 조직으로부터 도태되기라도 하면 그나마 다행인데, 그렇지를 못하니 조직과 공동체 전체가 와해의 위기에 놓인 것입니다.

누군가는 말했습니다. 도전을 해서 실패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실패가 두려워서 도전 자체를 않는 게 진정 부끄러운 것이라고요. 저자는 말합니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을 믿는 일이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건 실패가 아니라 포기다.(p101)"

안타까운 일이지만 군대에서는 관심사병이라는 이들이 있습니다. 군이라는 조직은 철의 규율로 움직입니다. 한국의 남성들은 신체에 특별한 이상이 없다면 일정 기간 동안 병역의 의무를 마쳐야만 합니다. 그래서 군의 체질에 적합하건 그렇지 않건 의무적으로 징집이 되는데, 절대 다수가 군 질서에 잘 적응하지만 간혹 그렇지 못한 이들이 있습니다. 아마 저자께서는 이런 관심사병들과 상담을 하셨나 봅니다. 정말 뜻 깊고, 또 감사한 일을 해 주셨다고 생각되네요.

한번 관심사병으로 낙인 찍힌 그들의 낙담과 열패감이란 이루말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은 입대 전에도 일정 부분 문제를 안고 들어온 이들입니다만, 군 생활 중 다른 전우들처럼 무난한 적응을 이루지 못하고 "불편한 관심의 대상"으로 찍혔다는 자체가 더 큰 수치심을 부르는 것입니다. "교수님, 가시고 나면, 결국 우리에게 변한 게 뭐가 있나요?" 가슴 아픈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들에게 집단 상담 중 동병상련의 감정이 일게 한 것은 큰 위안이 되었다고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자신의 상처가 자신만의 상처가 아님을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파트를 읽으면서 관심사병 상담이라는 난도 높은 코스를 선뜻 맡아 이끌어 주신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일정 부분 성과까지 내신 점이 더 놀라웠습니다. 사실 많은 경우 상담은 그저 들어 주는 데서 의의를 찾고 끝나는 게 보통이며, 관심 사병들의 경우는 답이 없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데도 저자께서는 놀라운 통찰력을 발휘하여, 저마다의 이유로 관심사병이 되었지만 그들 사이에는 일정 부분 공통점이 있다는 걸 그들 스스로 깨닫게 했습니다. 내가 나 혼자가 아니라 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동지"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든든한 마음을 갖게 했겠습니까. 인생의 같은 아픔을 공유할 뿐 아니라 비로소 "전우"까지도 곁에 생겼으니 말입니다.

이 책은 치유심리학자 김영아 박사님이 저술했지만 일러스트레이터 달콩님도 기여한 책입니다. 김박사님은 여러 내담자들에게 적실한 상담을 해 주실 뿐 아니라, 각각의 치유에 적합한 다양한 "그림책"들을 추천해 주기도 합니다. 이 책 중에서도 여러 번 그런 책들이 언급됩니다. 따라서 독자들도 혹시 내가 여기 해당된다 싶은 케이스가 있으면, 그 파트에서 언급된 그림책도 꼭 찾아 읽어 봤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어떤 가족에게는,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고 창피스럽고, out of the league다 싶은 낙오 구성원이 있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을 보통 가족들은 closet 안에다 가둬 둡니다. 그 사람 역시 "나는 부끄러운 사람"이란 자책 끝에 closet 안에 결국 자발적으로 갇힙니다.  더 이상 이럴 필요가 없다는 자각 후에 스스로 골방에서 나오는 게 coming out of the closet이죠. p170에 소개되는 <쿵쿵이와 나>에서 쿵쿵이는 나의 단짝 친구라 소개되지만, 사실은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숨겨진 부분입니다. 이런 점까지 과감하게 남들에게 드러내고, 더 이상 나의 일정한 부분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비로소 그는 일에 열정을 제대로 쏟을 수 있고, 당당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나를 제발 그냥 좀 놔두시오."

파트릭 쥐스킨트의 소설에서 좀머 씨라는 주인공이 입버릇처럼 내뱉곤 하던 대사입니다. 특히 학업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던 수험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기도 했죠. 생(生)에서 너무 한 장면 한 장면을 집착 말고, 그저 관객의 입장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 줄도 알아야 한다(p251)는 게 저자의 말씀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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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스 보카 수능 필수 2000+ - 수능 영단어 해커스 보카 수능
해커스어학연구소 지음 / 해커스어학연구소(Hackers)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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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50일 동안에 1회독을 하게 구성되었습니다. 자매편인 <수능완성1800+>은 45일 코스였었죠. 이 책도 3회독이 권장되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3회독을 할지는 책 p6에 표준적인 사용법이 나옵니다. 이렇게 해도 되고, 자신 있는 수험생은 더 확실하게, 책 내용 구석구석을 다 소화하는 방식으로 4~5회독을 시도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내용이 워낙 풍성하다 보니 사용 방법은 얼마든지 (자신에 잘 맞는) 시나리오들이 나올 수 있겠네요. 혹 자신 없는 수험생들이라고 해도 이 책이 워낙 세밀하게 단어를 구분하기 때문에, 취약한 부분만 집중적으로 공부하거나, 아니면 빈도가 낮다 싶은 단어는 좀 건너뛰는 식으로, 자신에게 맞게끔 전략적으로 학습하는 선택이 가능합니다. 


 

자매편인 <수능완성1800+>이 최빈출/빈출로 이분해서 단어를 다뤘다면, 이 책은 그 방식과는 좀 다릅니다. DAY 10까지는 기본 어휘를 다루지만, DAY 10에서 45까지는 주제별로 어휘를 나눠 놨습니다. 심리, 대인관계, 사회, 경제, 미디어-음악, 물리학 등 모두 36개 영역입니다. 평소에 모평, 학평을 치면서 특정 분야 지문에서 유독 점수가 안 나온다고 판단되면 그 부분만이라도 집중적으로 공부해서 약점을 보완할 수 있겠습니다. 

 

DAY 16에는 "법, 정치" 주제 관련 어휘가 정리됩니다. 모든 단원 앞에는 재미있는 일러스트가 나오는데, 그냥 상황이 재미있는 거고 딱히 암기 비법을 알려 주는 건 없습니다. attorney 같으면 변호사라는 뜻인데, 그와 관련된 말 district attorney(지방검사) 같은 걸 함께 정리해 놓았네요. 

 

proof 같은 단어를 보면 일단 대표 뜻으로 "증명, 증거"가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 책은 "시험에는 (이 단어가) 이렇게 나온다"면서, shatterproof(부서지지 않는), waterproof(방수) 등을 가르쳐 줍니다. 이럴 때에는 "증거"하고는 무관해 보이는 뜻들이죠. 이처럼 이 책은, 꼭 독해 지문 안에서만큼은 전혀 다른 뜨뜻으로 탈바꿈하여 수험생들을 괴롭히는 단어들을 잘 정리해 주는 게 장점입니다. 


 

p225, DAY 22의 표제어 중 하나인 RENEW를 보면 TIPS라고 해서 renew a book(책의 대출기간을 연장하다), renew a contract(계약을 갱신하다) 처럼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이 단어가 어떻게 쓰이는지 알려 줍니다. 이 용법들도 여태 학평, 수능 등에서 출제가 1회 이상 되었던 것들만 추렸겠습니다. 

 

p255를 보면 표제어 중 하나로 apologize가 나오는데 TIPS에서 "for 뒤에는 사과의 원인, to 뒤에는 사과의 대상이 온다"고 합니다. 물론 전치사 for에 이유, 원인의 용법이 있다는 건 다 알지만, 이렇게 동사와 연결하여 완성된 뜻을 다시 상기시키는 건 유익한 시도인 것 같아요. 

 

p406에는 표제어 중 하나가 costly인데, 공부 좀 한 학생은 척 보기만 해도 뭘 말하고자 하는지, 유의해야 할 포인트가 무엇인지 알 것입니다. 이 단어는 부사처럼 생겼지만 사실은 형용사죠. 이런 모습을 한 다른 예는 timely, leisurely, erderly 등이 있다고 TIPS에 몰아서 제시됩니다. 

 

매일 학습분이 끝나면 말미에 "1등급 완성 단어"라고 해서 약간 수준이 높은 단어를 따로 모아 놨습니다. 함께 하루분 공부로 마치는 게 바람직하지만, 혹시 좀 힘에 부친다 싶은 학생은 이 부분은 2회독, 혹은 3회독 시로 미뤄 둘 수 있겠습니다. 


 

어휘 자체를 위한 어휘 공부가 아니라, 결국은 독해를 잘하기 위해 어휘 공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연결어"를 성격에 따라 분류하여 따로 공부하게 했습니다. 연결어의 뜻만 정확히 알아도 독해 지문의 맥락, 흐름을 미리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또다른 특징은, DAY 46~50은 혼동어만을 집중적으로 모아 놨다는 점입니다. 아마 대학생이라고 해도 때로는 헷갈릴 만한, 비슷하게 생긴 애들을 용케도 모아 놓았네요. 이처럼 헷갈리는 항목들을 한 자리에 모아서 이렇게 대비를 시키면 더 기억이 오래 가는 건 당연합니다.

 

p482의 aptitude, altitude, attitude 같은 건, 고등학생이 보았을 때 서로 충분히 헷갈릴 만합니다. 이처럼 겉모습만으로 수험생들이 충분히 혼동할 만한 단어들만 잘 모아서 이렇게 정리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의다 싶습니다. 

 

또 거의 모든, 빠진 것도 있긴 하지만 거의 모든 표제어는, 너무 어렵지 않은 범위 안에서 "어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수험생의 기억을 돕는 배려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어원 설명이 너무 쉬운 것만 다루지도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p507의 neutral 같은 걸 보면 이게 왜 "중립, 중성"이란 뜻인가. ne(부정)+utr(어느 한 편)처럼, 제법 어려운 형태소 분해도 시도하고 있습니다. 동의어로 unbiased, impartial 같은 걸 함께 제시한 것도 멋집니다. 특히 unbiased는 요즘 부쩍 자주 보이는 단어이기도 하죠. 

 

이 책의 또하나 특징은, 보통 "동사+particle"로 이뤄지는 구동사(句動詞. phrasal verb)에 대한 설명이 아주 자세하다는 겁니다. p151에 look만 봐도, look down on, look up, look for 등 다양한 예가 나오고 이게 또 생생한 예문과 함께 나온다는 게 또 장점입니다. 

 

자매편인 <수능완성1800+>하고 이 책을 비교하면, 어떤 레벨 차이가 나는 건 아닙니다. 아무래도 이 책이 커버하는 어휘 수가 더 많고(따라서 분량도 더 많습니다), 주제별 분류라는 막강한 무기가 있으니 이 책을 더 마음에 들어하는 학생들이 있을 겁니다. 제 생각에는 한 권을 먼저 마스터하고, 그 책이 좀 지겹다 싶으면 다른 각도에서 접근한다 생각하고 이 책으로 옮겨타서 기분전환을 시도해도 좋을 것 같네요. 


 

이 책도 분책 가능한 부록으로 미니암기장을 제공합니다. 어휘 구성이 다르므로(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당연히 부록의 내용도 다릅니다. 역시 절취+휴대가 간편하다는 게 최고 장점입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으로부터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서평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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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스 보카 수능 완성 1800+ - 수능 영단어 해커스 보카 수능
해커스어학연구소 지음 / 해커스어학연구소(Hackers)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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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 영어도 역시 1위 해커스다" 첫 페이지에 이런 말이 써 있는데요. 제가 지금 중학교 보카 책도 함께 보고 있습니다만 진짜 잘 만들긴 잘 만들었습니다. 요즘은 무슨 공부를 해도 일단 책이 공부를 하고 싶게끔 깔끔하게 만들어져야 하는데, 편집과 디자인 면에서 정말 입이 딱 벌어집니다. 

 

1800 뒤에 플러스 기호가 붙은 건 1800개 이상의 어휘가 수록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1800개 어휘는 학평모평(평가원이나 시도교육청), 수능 기출, 그리고 EBS 연계 교재 등에서 추출했다고 합니다. 혹시 EBS 연계 교재를 본 분은 알겠지만 어휘 수준이 결코 낮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익히 아는 어휘라고 해도 잘 못 보던 뜻으로 제시되기 때문에 단어를 알아도(사실 제대로 아는 게 아니지만) 해석이 안 되는 경우가 많죠. 그냥 영단어 하나에 대표 뜻 하나만 아는 식이 되어서는 독해가 안 됩니다. 이 교재는 제가 여태 본 중 저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한 것처럼 보입니다. 


 

p14에서 commonplace는 생긴 것만 보면 무슨 장소를 뜻하는 명사 같지만 형용사로 주로 쓰이며, 명사로 쓰일 때에도 (장소가 아니라) "다반사"라는 뜻입니다. 이 비슷한 게 household라는 단어죠. 그러니 common+place로 이 단어에 접근하면 뜻이 통할 리가 없습니다. 공부할 때 가장 무서운 게, 내가 모르면서도 안다고 착각할 때입니다.

 

p44에 보면 virtue(명사)라는 단어를 설명하면서 TIPS를 제시하는데 virtue의 혼동어를 잠시 짚습니다. 형용사 virtual하고 혼동하지 말라는 겁니다. 사실 영단어에서 둘은 어원이 같고 뜻도 깊은 레벨에서는 서로 통합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공부한다면 수능 지문에서 완전히 미로에 빠지고 말 겁니다. 실제 어원이 어떠하든 무관하게 둘은 구별해서 virtue은 미덕 선행 장점, virtual은 "가상의"로 외워야 하겠습니다. 후자는 뭐 모르는 사람이 없겠고, 전자도 선행 장점이라는 뜻을 반드시 알아야 실제 독해 지문에서 햇갈리지를 않습니다. 


 

p73에 보면 TIPS에서 "시험에는 이렇게 나온다"라는 제목을 달고, substitute ⓐ for ⓑ: ⓑ를 ⓐ로 대신하다, 또 substitute ⓑ with ⓐ도 같은 뜻임이 설명됩니다. 그러니 어휘 책으로 구문 공부도 겸할 수 있죠. 또 잘 보면 뒤의 with는 by로 바꿔 쓸 수 있다고도 일러 줍니다. 

 

p85에 보면 omit라는 표제어 밑에 TIPS에서 "주의해야 할 혼동어"를 다시 짚습니다. 이처럼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수험생들이 이 단어와 잘 혼동하는 다른 단어를 세밀하게 짚어 준다는 점입니다. 많은 이들이 공부할 때 "어? 이거 비슷한 게 전에 뭐가 하나 있었는데..."라며 헷갈려하는 경험을 꼭 겪습니다. 이때 해결이 안 되면 알던 것도 (벌써) 까먹었고, 지금 하는 건 그것대로 또 공부가 안 됩니다. emit(내뿜다)이라는 단어를 같이 정리하여 알려 주는군요.


 

지금까지 예로 든 저 단어들뿐 아니라 이 책에 실린 1800+의 모든 단어들은, 잘 보면 표제어 뒤에 [모평]. [학평], [교과서], [수능] 하는 식으로 그 출처를 다 표시하고 있습니다. 고교 수준에서는 좀 어렵게들 느껴지는 단어이므로, 그냥 같은 레벨이라거나 이런 단어도 나올 수 있다는 정도로는 이 책에 안 실었음을 확실히 보여 주는 듯합니다. 또 현실적으로, 내가 지금 시간이 촉박하니 그냥 수능기출만 하겠다, 교과서에 나왔다고 하니 그것마저 안 할 수는 없다, 뭐 이런 식으로 좀 걸러 가면서 하고 싶은(그러지 않기를 바랍니다만) 학생들에게 일정 부분 참고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p301에 보면 표제어가 claim인데, TIPS는 아니지만 여튼 동의어로 insist, assert, demand 등을 제시합니다. 이처럼 꼭 편집상 TIPS라고 안 되어 있어도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이 있으니 수험생들은 놓치지 말고 챙겨야 하겠네요. 

 

p300에는 popular가 나옵니다. 물론 우리가 아는 그 뜻입니다. 다만 제가 개인적으로 본 바로는 최근 출제 지문에 이 단어가 "대중을 상대로 한" 같은 뜻이 있었기에 그 뜻들도 좀 추가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예컨대 popular vote라고 하면 꼭 인기투표가 아니라(그런 뜻도 있지만) 국민투표, 혹은 선거하고 같은 뜻입니다. 또 "사람이 많이 사는"의 뜻으로 같은 계열의 populous도 옆에 배치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네요. 

 

이 책은 최빈출단어를 연두색, 빈출단어를 보라색으로 구별해서 표시합니다. 그래서 역시 시간에 쫓기는 수험생들에게 옵션을 제공해 주는 셈입니다. 그렇지 않고 모든 단어를 다 커버하려는 의욕 넘치는 학생들에게도, 이렇게 빈도를 구별해 주면 효율이 더 오르는 게 당연하죠. 참 볼 때마다 너무도 세심히 주의를 기울인 솜씨에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생용 어휘책, 혹은 미국에서 출간된 고교생용 어휘책도 마찬가지이지만 아무리 단원을 열심히 공부해도 내가 과연 객관적으로 성취를 하고 넘어가는 건지 점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Daily Quiz란이 매 단원 끝마다 나오는데, 여기서 간단하게 문제들을 풀어 봐야 자기 실력 점검이 가능하죠. 

 

이 책에서 또하나의 장점은, 종전의 교재들은 편집만 예쁘다거나 혹은 코믹한 암기 요령만 덧붙였을 뿐 사실상 단어장이나 마찬가지였다는 건데, 이 책은 그렇지 않고 중간중간에 "어근으로 외우는 어휘"란을 넣었다는 겁니다. 한국에서 대학생용 어휘책은 VOCA라는 단어를 반드시 넣곤 하죠. 그런 책들을 보면 반드시 어근, 어원 중심으로 설명합니다. 이 책은 고교생용인데도 어근을 통해 설명하는 시도를 합니다. 물론 어근 중심 설명은 해커스가 최초는 아니고 N사에서도 이미 오래 전에 한 것입니다만 그런 책은 대학생용 교재를 그저 요약했을 뿐이라 고교생이 학습하기에 좀 버거운 게 사실이었습니다. 


 

어떤 책이건 막상 외운 단어가 생각이 안 날 때, ABC순으로 페이지수를 다 적은 색인(index)가 있으면 찾아보기에 정말 편합니다. 이 책도 색인이 충실하게 짜여져서 수험생의 편의를 더합니다. 

 

책 뒤에는 91쪽 분량의, 떼어 내어 휴대하기 편한 부록 미니암기장이 제공됩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으로부터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서평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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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성철 2 - 너희가 세상에 온 도리를 알겠느냐
백금남 지음 / 마음서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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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p151에 보면 대중공사에서 통과된 결의라면 조실이나 주지도 어찌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옵니다. 극단적인 경우지만 "절을 팔아먹는 결의"라고 해도 마찬가지라고 하는데, 이 점을 들어 절의 살림살이는 철저히 민주적이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성철 스님은 철저한 수도의 자세로 유명합니다. 2권 p122과 p38에 보면, 그 공력 높은 춘성 스님(욕쟁이 스님)도 성철의 장좌불와를 따라하다가 치아가 다 빠졌다는 말이 나옵니다. 성철 스님도 노년(스님에게는 나이를 안 따지지만)에 신장이 나빠져 큰 고생을 했지만 여튼 그토록 혹독한 수행을 하고도 정정했기에 그런 명성을 얻었죠. 건강이 나빠지고 안 나빠지고가 문제가 아니라 어지간히 독한 마음가짐(혹은 득도를 향한 감연한 심지)이 아니고서는 수행을 시작한다는 자체가 어렵습니다. 장좌불와에 대해 약간의 의심을 품은 어느 학승의 질문에 대해 혼쭐을 내는 성철의 모습이 p171에 나옵니다. 

 

이런 성철도 젊었을 적 간월암에서 힘든 수행 끝에 결국 포기하자 만공 스님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으나, 세월이 많이 지나고 "괴각쟁이"에 대한 명성을 익히 알던 만공이 정혜사로 찾아오자 성철도 급히 그곳을 찾고 반갑게 해후합니다. 여기서 성철은 청담 스님을 처음 만나게 되죠. 


 

p27에 다시 탄허 스님이 나옵니다. 성철 스님의 스승 동산은 탄허 스님을 두고 "선(禪)의 무리가 아니다"고까지 했지만 여전히 성철은 그를 경외했습니다. 1940년 여름, 그의 나이 스물 아홉 되던 해에 드디어 성철은 득도합니다. 소설에서는 이 대목에서 잠시 그가 신동, 책벌레 소리를 듣던 어린 시절로 돌아갑니다. 

 

성철 스님이 득도한 후 명성이 높아지자 속세에서 그의 처였던 이덕명이 찾아옵니다. 이미 성철의 모친 마산댁 강씨도 출가하여 법문에 귀의했지만 덕명은 십 년을 더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차에 득도한 스님(남편)의 명성이 들리자 작정을 하고 찾아온 것입니다. 

 

"이 인간아, 나 이덕명이다."

 

성철은 당연히 호통을 쳐서 쫓았고 부인은 "잘 먹고 잘 살아라"며 절을 나섭니다. 명문가의 여식이고 선비 가문의 교양을 두루 쌓아 만석꾼의 집에 시집 온 그녀로서는 기가 찼을 터입니다. 후반부 p205 이하에서 출가하여 일휴라는 법명을 받은 그녀가 꿈에서 싯다르타를 만나는 장면이 있으며, p238에서는 열반에 듭니다. 천하의 성철 스님도 속세의 부인이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듣자 일시 평정심을 잃습니다. 앞서 모친이 찾아왔는데도 만나지 않았다는 말을 듣자 승려들도 "스님이기 전에 인간이 아닌가?"라며 비판했다는 대목이 있었죠. 그러나 큰스님의 경지를 어찌 짐작하겠습니까.


 

p97에 우파사나라는 여인의 불교 설화가 나옵니다. 이 이름은 1권의 p85에도 언급된 적 있었습니다. 그때는 청년 이영주가 그를 두고 무슨 뜻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했으나, 이제는 훤히 도통하여 그 의미를 두루 설법하는 경지가 되었습니다. 1권에서 "석가모니야, 아들 말고 나를 잡아가라!"며 아들을 향해 화를 내고 아내의 눈을 멀게 한 부친 이상언은 2권 p109에서 출가한 아들의 모습이 의젓하더라면서 마음을 풀고 불교를 존중하게 됩니다.

 

성철 스님은 종래 대승의 경전이 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오며 오역이 많아 가르침이 그르쳐진 바 크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또 대승의 경전이 실은 부처님의 육성은 아니라고도 했죠. 그러나 결국 불심(佛心)을 담았으니 문제될 게 없다고도 했는데, 이 발언이 큰 논란을 빚었습니다. 큰스님의 호방한 말씀이야 어찌보면 달과 손가락을 분별하자는 취지로 선해할 수 있는데, 속 좁은 이들의 관점에서는 또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 

 

"조사가 오면 조사를 죽이고, 부처가 오면 부처를 죽여야 하지 않겠습니까?(p152)"

 

"정화에 매진했던 동산 스님은 열반하는 날까지 도량을 청소했다고 하니...(p140)" 맥락이 좀 다르긴 하나 1권의 p213에는 "도량을 쓸고 또 쓰는" 주리반특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성철 스님은 사소하고 번잡한 예를 극히 꺼렸습니다. 본인 자신이 왜정에 대한 거부감이 극도로 컸었고 스승들도 항일에 한 발 담근 분들이기도 했는데... 어느날 일본 승려들이 한국의 고승으로 이름 난 성철을 찾아와 다례를 선보이자 성철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거친 매너로 차를 마셔 버립니다. 해방 후 대처 등 왜습을 일소하려는 움직임에 성철 스님도 한 몫을 보탭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되 결코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받거나 굴욕을 느끼지 말게 하라는 동산 스님의 가르침이 1권 후반부에 나왔죠. 성철도 득도 후 많은 부자들의 방문, 시주를 받았으나 세속의 권력, 부 등에 초연한 대스님 답게 그들을 골탕도 먹여 가며 가난한 사람들의 딱한 형편에 눈도 돌리게 만듭니다. 

 

속세의 현실에 대해 결코 외면하지 않은 스님이, 예를 들어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군부 출신 지도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박 대통령은 생전 그를 여러 차례 만나려 했고 한번은 그의 장모가 찾아온 적도 있으나 성철은 매번 거절했다고 합니다.

 

"출가한 승은 부모와 국왕을 예(禮)하지 않는 법이다.(p184)"

 

성철 스님 하면 "삼천배"로 유명합니다. 삼천배를 한 사람이라야 자신을 만날 자격이 있다는 겁니다. 법정은 이를 두고 "굴신 운동"이라 비판했으나 성철의 의도는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삼천 번 절을 하면 당연히 기진맥진이 됩니다. 그 와중에, 수행하여 득도한 여러 고승이라든가 석가모니의 고행에 대해 조금이라도, 정말 조금이라도 실감해 보게 되죠. 내 안에 있는 부처님을 만나 보라는 게 성철의 의도였지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게 당연히 아니었습니다.

 

따님인 수경은 할아버지(이상언)로부터 각별히 신경 써서 교육도 받은 신여성이었건만 기어이 출가하여 불필 스님이 됩니다. p243에는 "와 개한테는 불성이 없노?"라는 부친, 아니 큰스님의 질문에 미소만 짓습니다. 마치 마하가섭의 심심상인 고사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죠. 개한테 불성이 있고 없고는 1권의 p92에 "구자무불성" 화두가 언급되었더랬습니다. 스님의 청년 시절이었죠. 

 

이 땅에 조계종을 처음 만든 지눌이 무려 700년 전에 "돈오점수"를 제창했건만 성철은 이를 수정하여 "돈오돈수"를 내세웠습니다. 이 역시 수백 년 종조의 가르침을 뒤엎는다 하여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글자 자구에 집착하면 이는 이미 교승(敎僧)이요 소승(小乘)에 지나지 않는다며 대범하게 대처한 자세 역시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바입니다.

 

"승은 잘나서는 안된다. 알음알이의 사냥꾼이 되어야 한다. 나무꾼도 돌아보지 않아야 한다.(p248)"

 

"석가는 원래 큰 도적이요, 달마는 작은 도적이다."

 

"사탄이여 어서 오십시오. 나는 당신을 존경하며 예배합니다."

 

이 법어는 많은 오해를 받았으나 법어 뒤에 나오듯 "악마와 성인을 구별 않고 다 같이 섬긴다"는 불교의 본래 정신에 조금도 어그러지지 않는 말입니다. p249에는 못된 남편에게 학대 받은 아내더러 오히려 네 남편에게 가 사과를 하라고 권합니다. "금마도 인간이면 뭐 느끼는 기 안 있겠나." 기가 막혔지만 스님의 가르침이라서 여인은 시킨 그대로 합니다. 남편은 처음에 너무 학대를 많이 받아 아내가 미친 줄 알았으나 전후 사정을 듣고 스님 앞에 나아가 진심으로 참회를 합니다. 이렇게 해서 구제불능의 악인을 교화하다니 과연 우리 곁에 왔다 간 부처님이라는 말을 들을 만합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으로부터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서평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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