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클래식 - 지휘자 여자경이 들려주는 일상 속 클래식
여자경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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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음악을 듣는 사람에서 성장해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국내 최고의 여성 지휘자인 여자경 저자가 이 책 p5에서 우리 독자들에게 겸손되이 이런 말을 합니다. 음악의 효용은 무엇일까요? 책에 나오듯이 우리는 잠이 오지 않을 때(...), 뭔가 마음이 어지럽고 안정되지 못할 때, 심지어 코로나블루가 엄습해 올 때에도 음악을 듣습니다.


저자는 음악이야말로 우리에게 신이 준 가장 큰 축복이라고 단언합니다. 우리가 외국 영화를 볼 때 해당 언어의 관습, 문법, 문화적 배경, 어휘를 못 알아들으면 온전한 감상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고전음악은 어떤 문법이나 지식 등이 딱히 필요 없습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의 아름다운 선율은 어느 누구라도 작곡가의 평온하고 안정된 심성(의도)에 공감하고 그 효과를 나눠 받을 수 있습니다. 또 베토벤의 로망스를 들어 보면 당장이라도 그 절절한 구애와 열정과 안타까운 감성을 전해 받고 눈물을 뚝뚝 흘리지 않을 수가 없죠. 이처럼 공감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데에 어떤 자격 요건이 전혀 필요 없는데 이처럼 고귀한 감정의 정화를 겪으면서 오로지 청각 경험만으로 가능하게 돕는 매개체라면 음악말고는 없다시피 합니다. 


생상스 작곡 동물의 사육제는 우리가 초등학생 때부터 널리 듣고 감상하는 명곡입니다(성인이 되고 나면 그 중 <백조>만 편식하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만). 책 p18에서도 이 모음곡 중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백조>를 꼽습니다. 


우리가 서양고전음악을 어렵게 여기는 이유 중 하나가, 이름이 따로 붙지 않고 작품의 형식에 따라 나눈 후 번호만으로 부르는 데에도 있죠. 그래서 곡명을 정확히 기억하려면 사실 공부가 따로 필요합니다. 미뉴엣이 뭔지, 협주곡이나 소나타가 뭔지, 조성이 어떠한지를 알아야 해당 곡과 이름이 정확히 매치되겠죠. 이 책 pp.28~29에 쉽게 잘 설명됩니다. 또 "표제음악"에 대해 pp.63~64에서도 아주 시원하게 설명이 이뤄지네요.


비발디는 오늘날 우리가 광고 배경 음악, 효과음 등으로 일상에서 가장 자주 들을 수 있는 명곡들을 작곡한 분입니다. 예전 어느 가수는 그의 작품 <겨울> 2악장을 자신의 노래 중에 샘플링하기도 했죠. 저자는 비발디 선율 고유의 특징, 즉 "느린 악장을 사이에 두고 앞뒤로 빠른 악장을 배치(p46)"하는 경향을 예리하게 짚어내며, 바로 여기에 듣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비결이 있음도 지적합니다. 이 때문에 스트라빈스키가 그의 독창성 부족을 꼬집기도 했는데, 오늘날 한국인들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는 가수 나훈아씨의 작품(자작곡)들도 따지고보면 서로 비슷비슷합니다. 스트라빈스키에 대해서는 책 저 뒤 p160 이하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집니다. 


쇼팽은 폴란드 망명자 출신으로, 역시 현대인들에게 여전히 사랑 받는 주옥 같은 곡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녹턴으로 대표되는 서정적인 곡이 있는가 하면, <혁명> 같은 작품은 정말 한 시대가 송두리째 변하여 일체의 악습과 구폐가 사라질 듯한, 박력 있고 설레는 곡조가 지배합니다. 과연 같은 사람이 작곡한 게 맞을까 싶을 만큼요. p55에는 바리아스의 회화, 쇼팽의 죽음 순간을 포착한 멋진 그림이 실렸는데 이처럼 이 책에는 (우리가 흔하게 접하지는 않는) 컬러 도판이 적절한 곳에 함께 실려 독자의 이해를 돕습니다. p164에는 그의 작품 <강아지 왈츠>에 대해 자세히 풀어 줍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사랑 받는 게 클래식곡의 특징이며, 그 중에서도 유독 근래 들어 예전보다 더 자주 들리는 게 바흐의 곡들입니다. p87애서 저자는 "천재인데다 부지런하기까지 했던" 작곡가로 그를 극찬하며, 무려 20명의 아이를 낳은 다둥이 아빠로 설명합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로맹 롤랑의 장편 <장크리스토프>는 베토벤의 일생에서 영감을 얻어 창작되었으나 그 본문 중에는 "빈민굴에서 지내며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자녀를 둔 바흐의 비참한 삶"에 대해 개탄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G선상의 아리아 같은 건 가사가 붙은 가요, 배경음악 등 셀 수 없이 많은 다양한 포맷으로 편곡되어 여전히 우리가 자주 듣는 명곡입니다. 이게 원래는 다른 포맷이었는데 후대의 연주자 아우구스트 빌헬미가 바이올린 G현만으로 연주 가능하게끔 편곡한 후에 오늘날 우리가 듣는 그런 형태가 되었다고 책에 자세히 설명(p88)이 나옵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 역시 우리가 다양한 경우에, 주변에서 참 자주 듣는 곡입니다. 클래식곡이 "깊은 수면"에 도움이 된다는 건 좀 아이러니이지만 현실적으로 우리 문외한들이 그런 용도(?)로 쓰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자는 이 곡을 숙면용 배경음악으로 추천하면서도, 사실 이 곡은 기법이 매우 화려(p107)하고 연주 파트가 꽉 찬 곡이라서 수면과는 거리가 먼 게 사실이라고 귀띔도 해 줍니다. 바탕이 되는 선율이 워낙 아름답기 때문에 수면이면 수면(?), 다른 용도면 또 그에 걸맞게 다양한 편곡으로 응용이 가능한 듯합니다. 


프란츠 리스트도 그의 곡에 가사가 붙거나 적절히 편곡되거나 해서 오늘날 대중이 그의 이름을 설령 모른다 해도 곡조만큼은 잘 아는 명곡들을 많이 지은 작곡가입니다. 이분은 생전에 너무도 많은 여성들과 염문을 뿌렸는데 작곡가로서의 위대함 못지 않게 그 로맨스 행각으로도 유명하죠. 더크 보가드 주연의 영화도 만들어진 게 있습니다. 책에는 p137 이하에서 리베스트라움, 즉 <사랑의 꿈>에 대해 가사 해석도 덧붙이며 재미있는 설명을 들려 줍니다. 


요즘 배우 이제훈을 기용한 IBK기업은행 광고를 보면 배경음악으로 <랩소디 인 블루>가 나오는데 이 책 p212 이하에 자세히 그 탄생 배경에 대해 나오네요. 전 이 곡을 들을 때마다 개인적으로 어쩌면 이렇게 전에 전혀 없던 새로운 선율로 발랄함과 장중함과 몽환적 분위기와 명징한 각성을 두루두루 잘 표현했는지, 과연 천재의 작품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하는 감탄을 절로 연발하게 됩니다. p214의 모리스 라벨은 우리가 잘 아는 볼레로의 작곡가인데, 그에게 한 수 배우려고 찾아온 거슈윈에게 "당신은 이미 일류인데 누구에게 뭘 배우려 하느냐?"고 되물은 유명한 일화가 이 책에도 잘 나옵니다. 어렵게만 느껴지던 클래식도 이처럼 명쾌하고 재미있는 해설과 함께하면 그 풍취와 감흥이 몇 배는 더 증폭되는 듯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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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언니, 못된 여자, 잘난 사람 - 글로리아 스타이넘, 삶과 사랑과 저항을 말하다
글로리아 스타이넘 지음, 서맨사 디온 베이커 그림, 노지양 옮김 / 학고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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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아예 적대적인 입장이라고 해도 이 책 저자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이름 정도는 한 번쯤 들어 봤을 가능성이 큽니다. 정치적 신념이 어느 편에 가깝건 간에, 그녀의 열정적인 활동, 기존의 어떤 교조적 측면에 기대지 않는 창의적인 사고, 구태의연한 클리셰에 기대지 않고 자신만의 언어로 재소화하는 능력, 재치있고 예리한 시각과 그것을 표현하는 감각적인 문체는 확실히 어떤 종류의 재능을 그녀가 지닌 게 아닌가, 이 사람은 여튼 능력 있는 사람이다, 뭐 이런 결론에 (독자 중) 누구라도 이를 만합니다.


원 가족(=생물학적 가족, 타고난 가족)과 선택한 가족, 물론 이런 구분은 여성에게만 유효한 게 아니라 남자도 마찬가지로 가능합니다. 장인 장모님, 처남, 처제 등은 다 선택한 가족인 배우자의 혈족들이죠. 여기에 대해 저자 스타이넘은 도러시 디너스틴의 견해를 인용(p28)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들 중에는, 가족이 아니었으면 결코 만나거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사람들도 있다. 생물학적 가족의 가장 중요한 점은, 나와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사람에 대해 알고 귀히 여기고 깊이 사랑하는 것이다."


어떻습니까? 우리는 페미니즘 하면 전통, 기존의 가치, 이런 걸 송두리째 뒤엎으려 드는 과격한 견해와 이를 극성스럽게 타인에게 강요하는 그 주장자 정도의 이미지를 자동으로 떠올리기도 합니다. 바로 이 책 저자 스타이넘도 그런 편견의 딱지가 붙어 다니는 사람 중 하나죠. 그러나 위 구절을 읽어 보십시오. (페미니즘이 아예 상극으로 싫어할 만한) 유교 경전이라든가, 아니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성 오거스틴 등의 경건한 책에 실릴 법한, 절제되고 관조된 통찰의 산물이 아닙니까. 어쩜 이처럼이나 성숙하고 사람 마음을 숙연하게 만드는 언술이 다 있을까, 순간 고개가 숙여질 정도였습니다. 


반면 "선택된 가족"의 개념에 대해 저자는 다소 넓게 잡습니다. 친구, 학교 둉창, 직장 동료, 연인, 파트너 등이라고 합니다(p30). 스타이넘이 이런 기초 개념에 대해 자신만의 고유한 쳬계로 무엇이라 규정하는지 독자인 제가 무지한 탓에 잘 알 수 없으나, 아마 처가, 시가 식구분들은 (배우자라는 한 다리를 건너) 생물학적 가족의 범주에 속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배우자는 내가 선택할 수 있으나 (배우자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듯) 내가 장인 장모님을 따로 선택할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가족"에 대해서도 피붙이처럼 공경하고 사랑할 줄 아는 덕목, 품성이, 또한 인간이 존엄해지는 하나의 이유가 되겠죠. 


놀라운 건 이 가족의 개념에서 저자는 민주주의의 속성까지 새로 도출, 정의한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 넘어가는 과정이 매우 유려하고 설득력 있습니다. 더 나아가 저자는 "이래서 여성은 정치적이(라야 한)다"라며 다시 페미니즘 본령으로까지 논의를 확장합니다. 전개되는 논리 구조가 아름답기까지 하며 이런 페미니즘이라면 보편 가치의 교육 일환으로 중고교 교과서에 실려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읽으면서 정말 감탄했습니다. 이 대목 한번 꼭 읽어들 보십시오. 


"우리는 서로서로 필요하다. 설사 돈을 받지 않더라고 (당신에게) 하고 싶은 일이 있기를, 당신이 직접 선택한 가족인 친구가 있기를 바란다. 지역사회에 대한 나의 사랑은 사회 운동에서 나왔다.(p40)" 


이런 구절들을 볼 때 저자 스타이넘이 염두에 두는 "선택한 가족"은 배우자나 성 파트너 같은 것보다, 어떤 신념 등을 공유하는 동지에 더 가까운 성격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마치 프랑스 혁명 3대 정신 중 하나인 "박애"라든가, 아니면 "연대"를 떠올리게도 됩니다. 


"군비 축소의 유일한 방법은 우리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다(p41)" 뭐 이미 잘 알려진 슬로건이기도 한데, 이 챕터에서 저자는 mother라는 단어가 동사로 쓰이지 않았다면 이 세상에 "행동"이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대단히 시적이고 격정적인 표현을 이어서 내놓습니다. 이 책의 맥락과는 무관하지만 BBC 드라마 <셜록>에도 형 마이크로프트가 동생 셜록에게 "I'm mothering you."라며 코믹한 대사를 하는 장면이 있죠. 여튼 저기서도 mother은 동사로 쓰였습니다. 


"민주주의는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p51)." 참 장엄한 선언입니다. 비단 페미니즘 관점(해석)이 아니라도 저 명제에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고, 또 각자의 이유에서 그리해야만 합니다. 스타이넘은 여기에 자신의 주장을 다시 선명히하여 다음의 구절을 추가합니다. "민주주의의 시작은 내가 내 몸을 소유하는 것이다. 이 기준으로 보자면 민주주의 안에 사는 여성이 그리 많지 않다." 하다못해, 지독한 속물이자 바람둥이이며 이중인격자인 존 게이지 같은 자도 다이애너 머피에게 "당신이 원하지 않는 건 하나도 하지 않겠다"고 수작을 겁니다(영화 <인디쓴트 프러포절>에서 로버트 레드포드와 데미 무어의 배역들). 여성이 스스로의 신체에 관한 모든 걸 결정할 수 있어야 참다운 민주주의와 휴머니즘의 초석이 놓입니다. "내가 나의 몸을 축복하면 몸도 나를 축복한다(p87)."


이 저자분도 어느새 운동가, 활동가 중에서 시니어가 되었습니다. 세월은 참 야속하고 무정하기도 하죠. "나는 그 친구들보다 노장이고 선배이며 이보다 나빴던 시절을 기억하기에 그들에게 희망과 낙관주의라는 선물을 줄 수 있다(p81)."


p97에서 저자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잠시 회상합니다. 활동가로서 저자는 페미니스트의 영역에만 머문 게 아니라 그 당시 미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인종 차별 이슈에도 깊이 관여하여 열정적인 활동을 폈습니다. 일상에서 주변에서 차별과 혐오는 자주 접하는 곤욕이자 시련이었습니다. 이때 저자는 간단한 몇 마디로 어설픈 가해자들을 퇴치했는데 이 역시 그녀만의 슬기와 지혜, 순발력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어떤 도그마나 교조적 교의에 사로잡혀 몇 마디를 주문처럼 암송한 채 활동가를 가장하는 엉터리하고는 크게 차이가 나죠.


"일반화하려고 하지 마라. 모든 백인 남성들이 다 똑같지는 않다(p114)."


p124에는 뮤지션인 나오미 저드와 그녀의 딸인 애슐리 저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애슐러 저드는 1990년대 후반 <더블 크라임>, <히트>, <퍼펙트 머더> 등 여러 화제작에 주연으로 나온 여배우이며 당차고 독립적인 여성상을 잘 표현했었죠. 이 책에서처럼 "저드(Judd)"라는 표기, 발음이 맞고 그 당시 일부 통했던 "주드"는 틀린 것입니다. 


"말을 하는 동안에는 배우지 못한다. 듣는 동안 배운다.(p140)" 


이 책에는 이처럼, 페미니즘이나 특정 사조, 혹은 정치적 이념을 떠나 보편적 감동을 줄 만한 경구들이 도도히 흐릅니다. 


웃음이란 예컨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처럼 참된 인간 본성의 정수를 표현하는 방식이고, 불의에 저항하거나 신랄히 풍자하는 수단이며 그렇기에 어리석고 눈먼 광신자 호르헤는 (가상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편> 제2권을 그리도 경계했던 것입니다. 이 책 p169에서 저자는 "웃음은 곧 자유의 증거"라고까지 말합니다. 웃음의 부재가 곧 자유와 인간성의 부재, 박탈을 뜻한다고 역으로 새길 수도 있습니다. 


"여성 운동과 시민권 운동은 모두 둘러앉아 이야기하는 것에서 시작하였다.(p197)"


소통과 교감, 공감은 사회적 존재인 인간에게 가장 기초적인 덕목이자 필수의 작용입니다. 모든 차별, 부조리, 비위, 폐습이란, 사실 계급장을 떼고 마음을 터놓으며 이야기하는 담론의 공간에서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습니다. "자유는 전염성이 있(p205)"으며 서반구에서 진정한 평등이 구현될 때 인권이 압살되는 중인 지구의 반대편 어느 곳에서도 비로소 희망의 서광이 비칠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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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토크라시 - 모두를 위한 21세기 실천 교육 미래 사회와 우리의 교육 2
이영달 지음 / 행복한북클럽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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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화(p75)"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기업이 연구 개발, 상품화를 할 때 과거에는 내부 R&D, 외주 정도에 그쳤다면, 이제는 "기업대학"을 활용해 심화된 연구개발을 행하며, 인력의 교육, 채용, 조직 내 역량 개발에까지 이른다는 거죠. 또 이런 "기업대학"은 잠재적 고객, 일반 대중, 기업을 상대로 한 교육도 수행한다고 합니다. 나쁘게 보면 대학의 기업유착, 상업화이지만 기업과 대학 입장에서 보면 비용도 절감하고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죠. 앞에서 "인력의 교육, 채용, 조직 내 역량 개발"라는 기능을 언급했는데, 현재 이 책에서 소개하는 기업대학은 벌써 "5세대" 버전이며, 저 기능만 따로 떼어 놓고 보면 이미 4세대 기업대학에서 다 구현된 것입니다. 우리도 아마 산학협동이라는 프로젝트를 재학 중 직간접으로 겪어 봤을 터입니다. 


책 p52 이하에서는 전통적인 우수 공과대학과 기업대학의 예를 하나씩 들어 설명합니다. 저는 처음 들어 보는데 캐나다에는 워털루 공과대학이 "현장 실습 교육"으로 아주 유명하다고 합니다. 이 "현장 실습 교육"은 줄여서 co-op이라고 부르는데 이 역시 자주 들어 보셨을 겁니다. 이 학교의 정식 명칭은 University of Waterloo인데, univerisity는 그저 "종합대학(非단과대학)"으로 기계적으로 번역할 것이 아니라 대학을 둘러싼 대학 체계를 가리킨다는 설명이 이 책 1권에 나와 있었습니다. 그러니 우리식 개념으로는 분명 종합대학인데도 컬리지라는 이름을 붙이곤 하는 게 다 이유가 있었죠. 혹은, 오랜 전통으로 그리 이름이 익었기에 놔 두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여튼 그처럼이나 우수 co-op으로 이름이 높지만, 이 책에서 역점을 두어 소개하는 또하나의 예인 다이슨 공과대학은 저 co-op의 레벨을 훨씬 뛰어넘어, "산학 일체 몰입 교육"을 실시한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하면 너무 특정 기업의 업무에만 최적화한 인력 양성이 아닐까 우려할 수도 있지만, 마치 독자의 그런 우려를 알아채기라도 한 것처럼 책에서는 "전인적 엔지니어의 육성"에 주력한다고 나옵니다. 삼성도 대략 십 년 전에 "반도체 사관학교"의 설립 운영을 발표한 적 있고 현대차그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향후 결과를 지켜볼 일입니다. 


1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세계 각국의 첨단 산학 협동 양상, 교육 제도 등을 소개, 분석, 전망하는 내용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저처럼 둔한 독자에게는, 왜 책 제목이 "메리토크라시"인지? 하는 의문이 아직 해소가 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대체로 한국에서는 "수능 일원화 입시 전형(다시 말해 정시 통합 선발)"을 주장하는 쪽이 메리토크라시 옹호론자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죠(이게 옳건 그르건 간에 현재 통념이 그렇다는 뜻). 그런데 이 책의 입장은 정반대입니다. 특히 1권에서 정시 위주 전형은 시대 트렌드에 반하는 길이라는 입장을 저자는 명확히 밝힌 바 있었습니다. 이 2권 p159 이하에서 저자는 이 책에서 논하고자 하는, 의의를 두어 독자를 깨우치고자 하는 메리토크라시의 개념이 무엇인지 본격적으로 논의를 펼칩니다. 


우선 메리토크라시 옹호론자(한국 한정)는 대체로 엘리트 양성론자가 많습니다. 어려서부터 국영수 교육을 충실히 받고 이런 탄탄한 배움의 기초 위에서 심화, 상위 교육 과정을 이수하게 한다는 편이죠. 이 책에서는 그런 개념을 "전통 엘리트"라 규정하며, 반대로 다이슨공대, 피플대학, 미네르바스쿨, 올린공과대학 등에서 배출하는 혁신형 인재 중시 경향, 혹은 그의 양성 시스템을 "네오엘리티즘"이라 부릅니다. 특히 이런 신 엘리트들은 "혁신을 통한 경쟁에서의 승리, 그리고 승자 독식"이라는 현상과 매우 가깝습니다. 


확실히, 예컨대 국민 앱을 만들어 낸 배민 창업자라든가 카카오의장 같은 분을 보면, 예전에 사시 합격 후 판검사 코스를 밟아 정치인이 되던 이들, 혹은 이름난 의사, 삼성전자 회장단 같은 이들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전통 엘리트들은 평생에 걸쳐 경력과 평판을 쌓고, 재산, 부 등은 인생의 후반에나 가서야 남들과 현격히 차별화할 만큼 축적하곤 했죠.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는 신 엘리트들은 대부분이 영 앤 리치입니다. 또 어떤 과시적 소양, 품격, 뭐 이런 것과는 외모에서부터 좀 거리가 있다는 인상입니다. 어떤 것이 바람직하고 또 그렇지 못하다는 식의 이분법이 아니라, 이전 세상에는 없던 어떤 계층, 성공사례, 파워, 이런 게 지금 새로 생성되며 또 실력을 행사한다는 뜻입니다. 전통 엘리트는 전통적으로 명문학교라 여겨지는 곳의 졸업장을 받아 사회에서 출세의 발판, 위신의 상징으로 활용합니다만 이른바 신 엘리트들은 2년제 전문대학을 나온 이들도 꽤 많습니다. 


책에서는 이어 사이먼 사이넥의 견해를 인용하여, 종래 미국 사회에서 널리 수용된 "라이트 형제 = 밑바닥에서 시작한 건실한 기업가, 새뮤얼 랭글리 = 그저 유명해지고만 싶었던 '관종' 실패자" 라는 이분법 등식을 폐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랭글리 역시 현대의 눈으로 보면 혁신가의 면모를 분명히 갖춘 사람이었으며 이후 비행기 발명과 실용화의 크레딧을 모두 가져간 라이트 형제 못지 않게 해당 성과에 자신만의 기여를 한 사람이라고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네요. 사이먼 사이넥의 의도를, 해당 강연을 아직 못 본 입장에서 독자인 제가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랭글리의 좌충우돌식 생애가 현대의 괴짜 스타트업 창업자들과 닮은 면이 많다(물론 생전에 성공을 못했지만)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 같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라이트 형제의 업적을 까내리는 건 아니며, 다만 빈손으로 시작해 자수성가한 사업가라는 세간의 이미지는 과장된 게 많고 엘리트인 부모 밑에서 처음부터 좋은  교육을 받았다는 유리한 점도 분명히 부각해야 한다는 편입니다. 


한때 영국은 신분제의 고루한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나, 애초에 인류사 최초의 산업혁명이라는 대사건이 일어난 본고장이며 여왕부터가 평민(이기는 하나 엄청난 부자) 가문에서 손자며느리를 맞이하는 등 열린 마음으로 사회, 경제 혁신을 장려하는 길로 나아가는 중입니다. 책 p284에서는 "표준적인 기업가 양성 프로그램에서 먼저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부터 시작한다"며 편향적이지 않고 전인적이며 사회 친화적인 CEO 육성에 주력하는 그 나라의 풍토를 엿보게 돕습니다. 여기서 저자가 다시 강조하는 바는 "실력과 매력이 학력과 재력을 이기는 시대(p263)"입니다. 물론 실력도 매력도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부풀려진 에고, 과대망상, 현실도외시, 허풍 등으로 폭주하는 인간을 두고 신 엘리트라고는 하지 않죠.


과연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는가? 책에서는 다소 비관적인 연구 결과를 하나 소개합니다. "학업적 성취에 영향을 미치는 건 지능이며, 60~80%는 유전적으로 좌우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p323)" 여기서 저자는 매우 의미심장한 결론으로 전환하는데, 이처럼 그저 유전인자에 의해 결정되다시피하는 학업적 성취(이에는 그 부모가 만들어 놓은 교육 자본도 크게 기여합니다)라 하여 메리토크라시를 무작정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하향평준화, 창의력 퇴행 같은 매우 비생산적인 결과를 피할 수 없다는 거죠. 


교육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이동성"을 지향해야 합니다. 다만 이것이 전통적 엘리트 양성의 틀에 박힌 교육이 되기보다, 창의력과 혁신 정신을 발휘하여 변혁을 이끄는 네오 엘리트의 출현을 돕는 것이어야 하며, 이런 이론적 제안 이전에 이미 한국에서 속출하는 스타트업 전문가들의 출신 배경을 봐도 그 타당성이 확인됩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오해 없이 이해된, 참된 페다고지와 안드라고지가 동시에 구현되는 교육심리학 인프라"에 투자하자고 하며, 이것이 사회에 팽배한 불만 해소와, 모두를 위한 사회, 경제 발전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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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토크라시 - 학교 교육의 새로운 미래 미래 사회와 우리의 교육 1
이영달 지음 / 행복한북클럽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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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서나 교육 제도의 정비와 원활한 기능은 개인의 행복과 공동체의 번영을 위해 매우 중요한 조건이었습니다. 한국 역시 그 근대화 성장기를 보면, 비록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수월성 교육이 그럭저럭 성공을 거두었기에 오늘날과 같은 풍요를 누릴 수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삼성, 현대, SK 등의 성공은 그저 오너의 담대한 결단과 영리함에만 기댄 게 아니라 해당 기업들이 보유한 우수한 인적 자원, 천재적인 엔지니어들의 공헌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 뛰어난 엔지니어들이 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다가오는, 급변하는 미래에도 지금의 교육 시스템으로 대처가 가능하리라고 믿는다면 이는 대단히 안이한 생각입니다. 저자는 "디지털 노동자"의 등장으로 기존에 당연히 여겼던 우리의 모든 상식과 생산 구조, 기여의 방식과 과정이 바뀔 것으로 예상합니다. 여기서 "디지털 노동자"란 손발과 기술과 감정을 지닌, 말하자면 현재의 우리 같은 노동자가 아니라, AI, 로봇 등이 결합한, 지금의 인간 노동자를 대체할 그런 디지털 솔루션을 뜻합니다. 이는 제법 멀리 남아 있는 미래의 상황이 아니라, 저자가 2017년(그러니 "과거"인 셈입니다) 미국 어느 회사를 방문하여 직접 "만나고 온" 아멜리아라는 디지털 은행원(p7)으로 대표되는 현재진행형의 현실입니다. 


이미 일본의 어느 회사는, 사람이 진행하던 고객 상담 서비스를 로봇 등 시스템에게 대신 시킨다고 하는데 목소리를 들으면 사람인지 기계인지 구분이 안 갈 만큼 자연스럽다고 합니다. 그래도 텔레마케터 한 자리 정도는 있겠지, 택시라도 몰면 되겠지 같은 어떤 최후의 보루는 아직 남아 있다고 여기기 쉽지만, 미래에는 정말 이런 일자리도 자동화, AI에 밀려 사라지는 겁니다. 그러니 교육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 완전히 달라진 사회의 수요에 대응하고, 실직의 염려를 일소할 필요가 생기는 거죠. 교육 혁신은 사치나 잉여의 걱정이 아니라 절실한 생존의 문제입니다. 


2020. 6. 22.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라는 회사가 토요타의 시총을 넘어선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저 무렵 한국의 2030세대도 이른바 서학개미라고 해서 하루가 멀다하고 최고가를 갱신하는 저 회사의 주식에 투자하느라 난리였죠. 저자가 이 기업을 새삼 거론하는 건, "태생적 디지털 기업"의 범주가 현재는 자리를 굳히는 현실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한국에는 아직 낯설 것"이라며 음원 스트리밍 기업인 스포티파이도 거론하는데 현재 TV 광고가 제법 자주 집행되기 때문에 마냥 낯설지만도 않습니다. 


한국에서 유독 입시 비리가 사회적으로 큰 지탄을 받고, 대치동 등 학원가가 거의 세계적 규모로 집적될 만큼 사교육이 극성을 이루는 건, 젊은이가 출세하는 루트가 명문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보다 쉽게 취업하는 길 거의 하나로 굳어졌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당연히도) 그렇지 않으며 재능 있는 젊은이가 사회적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길이 다원적으로 보장되어 있기에 기여 입학제 등 대학의 자율권도 폭 넓게 인정됩니다. 책에서는 "창업의 세계"가 젊은이들의 참다운 자아 실현의 경로로 널리 인정되어 가는 추세를 지적하며 어떤 학교의 학위 같은 것이 그 미래를 보장하는 수단이 더 이상은 아님을 환기합니다. 


지난 30여년 간 한국에서 대기업의 눈부신 발전을 이끈 고급 두뇌는 더 이상 배출되지 않는 걸까요? 그럴 리는 없으며, 다만 장래성 있는 고급 인력의 해외 유출이 부쩍 두드러지는 것만큼은 사실입니다. 특히 미국은 알찬 박사과정 교육제도의 마련으로 외국의 우수한 젊은 두뇌를 부쩍 많이 흡수한다고 합니다. 창의력과 자율성을 대폭 지원하는 미국의 시스템과, 관료주의 문화에 찌든 한국의 그것 중 젊은 고급 인력이 어느편을 선호할지는 자명합니다. 


조기 유학 등을 목표로 하는 한국의 학부형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건, 미국의 학제가 한국의 그것과 거의 대응이 되질 않고,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의 유형 수가 (한국과는 너무도 다르게) 매우 다양하다는 점입니다. 책에서는 특히 최근 혁신을 거듭하고 있는 미국의 공교육 실태(CCSS 중심)와, 오래 전부터 각각의 정체성을 부각하며 발전해 온 사교육 체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순전히 유학 준비용으로도 이 파트는 매우 유익할 듯합니다. 


한국을 비롯하여 많은 개발도상국 교육 시스템의 특징은 "획일화"입니다. 이는 산업화 시대에 기업이 요구하는 최소 수준의 인력을 길러내는 데에 큰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양성과 창의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치는 현대에는 더 이상 어울리지 않으며, 충격적이게도 "개인화된 학습"을 지표로 삼는 미국은 엄청난 비용을 들여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맞춤화한 인재상, 개개인이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돕는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 나갑니다. 


요즘은 특히 한국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우월하고 과학적이라는 한글 문자를 사용하면서도) 세계에서 손에 꼽을 만큼 실질 문해력이 뒤떨어진다는 놀라운 연구 결과가 자주 언급되는 편입니다. 물론 이 연구라는 게 어느 정도나 신빙성을 갖추었는지는 검토가 더 필요합니다만 우리 주변에 "문서나 고지를 이해 못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은 충격입니다. 가뜩이나 독서 인구의 비중이 낮은 현실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에서는 특히 학생의 독립성과 문해력 제고에 높은 비중을 두는 미국의 풍토를 지적하면서 그저 문학 지식 암기에 치우친 한국 국어 교육의 문제점을 환기합니다. 


한국은 지금 일부 한문 교육이나 문학 시간에 단편적으로 접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고전어 교육이 거의 없다시피합니다. 15세기 우리 조상들이 어떤 어휘와 문법을 구사하며 살았는지에 대해 고교에서 거의 배우는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보다 훨씬 실용 교육을 중시하는 미국조차도 고등학교에서 (실생활과 거의 연관이 없는) 라틴어, 헬라어, 수백 년 전 영어의 모습을 담은 셰익스피어 작품이 커리큘럼에서 빠지질 않으며 특히 명문대에 진학하려는 학생에게는 필수 중 필수 과목입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이겠습니까? 암기가 아닌 분석적이고 사색적이며 인간의 깊은 심리와 정신 구조를 이해하는 교육을 지향하는 게 저들 제도의 특성이라는 거죠.


인도나 중국은 지난 10년 간 세계 경제의 주요 동력을 제공했는데 그의 원천은 이공계 대학입니다. 이들 나라는 인구가 워낙 많은 데다, 근래 이공계 교육 열풍이 일어 해당 분야의 많은 인력을 배출했고 이들은 미국의 IT 기업에 취직하여 톡톡한 노릇을 해 냅니다. 반면 한국의 이공계 대학(원)생의 경우 거의 인권 문제를 걱정해야 할 만큼 열악한 환경에서 착취를 당하고 있다시피한 형국이죠. 


한편 미국의 시스템에도 그늘이 있는 것이, 학생의 능력 계발이 전통적 대학에만 의존하지 않게 되다 보니 기존의 대학 수요가 줄어들거나 연구, 강의 인력이 비자발적으로 학교를 떠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이를 오프라인 전통 방식 백화점의 폐업 현상에 비깁니다.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도 위기를 맞는 곳이 많았는데 한국도 전문대 충원율이 점점 낮아지는 추세라고 하죠. 여기서 오히려 칼리지 이노베이션을 모색하는 시도가 생겨, 미국의 경우는 이곳이 창업의 요람 구실을 하는 경향마저 새로 생긴다고 합니다. 오히려 전통적인 대학 시스템보다 존재감이 더 커지는 게 미국의 현실이라고 하니 위기는 정말로 곧 기회 아닐까 싶습니다. 


그저 자나깨나 의대만 강조하는 한국과는 달리 중국에서는 연구 중심 대학이 더욱 각광받는 추세라고 하며 거버넌스, 혁신 생테계 구축의 핵심에 대학이 제 몫을 다한다고 합니다. 특히 미국 지자체의 핵심인 주(state)가, 주지사부터 해서 교육 제도의 혁신과 지원에 두 발 벗고 나서는 트렌드라고 하니 한국의 현실과는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고 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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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의 힘 - 조직을 성공으로 이끄는 웨스트포인트 리더십 훈련의 비밀
로버트 캐슬런 2세.마이클 매슈스 지음, 오수원 옮김 / 리더스북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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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승자라고 하면, 정글의 법칙 위를 교묘하게 줄타기하여 최대한 이기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어떤 모습을 대뜸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과연 남을 이용하고, 뒤통수 치고, 말을 바꾸고, 결국 나한테 뭐 이익이 된 거 없지 않느냐며 뻔뻔스럽게도 과거를 부정하고, 이런 사람들이 언제나 승자가 될까요? 그렇다고 여긴다면 오히려 생각이 부족하고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그 정도로, 자신 혼자만의 계산기를 두드리며 날뛴다고 트로피를 안겨 주는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인성"이라는 덕목은 특히 한국 사회에서 대략 십여 년 전부터 미디어나 커뮤니티 등에서 강조되어 온 듯합니다. 물론 한국사회는 고려, 조선 시대 내내 유교 혹은 불교적 덕목을 강조했기에 재승덕박형 인물은 정계나 관계에서 대접 받기 힘들었습니다. 인품이 소인배라는 이유만으로 탄핵된 인물들도 부지기수였죠. 이러던 게, 압축 고도 성장기를 거치면서 그저 능력이 최고라는 식으로 사회적 합의나 가치가 변질한 게 사실입니다. 인성, 인격, 덕성, 품성 등이 공인(아주 널리 잡아 연예인도 포함하여)에게도 다시 강조되기 시작한 건 의외로 내력이 짧습니다. 


책 3장에서는 "지능"의 문제에 대해 접근합니다. 이 덕목, 혹은 리더십의 한 요소를 왜 다루냐 하면, "인성" 역시 리더의 자격으로서 분석되는 주제이기 때문이죠. 책에서는 지능 외에도 용기, 정의, 인간애, 절제, 초월 등도 함께 논하는데 이 역시 본 독후감에서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책에서는 "인성"이 다소 넓게 정의되는 편인데, 아주 간단히 정리하자면 인성은 곧 리더십입니다. 즉 서로가 필요충분조건이라는 게 이 책의 입장입니다. 그리고 "리더의 인성이 조직이 전부(p46)"라고까지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 인성, 혹은 리더십을 구성하는 요소가 저 여섯 가지, 즉 용기, 정의, 인간애, 절제, 초월 등이라는 거죠.


그럼 지능을 구성하는 요소는 어떤 게 있겠습니까? 로버트 스턴버그의 주장(p83)을 우선 소개하는데 이에는 분석 지능, 창의 지능, 실용 지능의 세 범주, 혹은 하위 유형이 있습니다. 책에서는 저 스턴버그 모형에다가 하워드 가드너의 주장을 적용, 변형하여 자세한 주장을 이어갑니다. 창의력, 호기심, 개방성, 배움에 대한 애정, 조망 능력 등이, 저자(들)이 지능의 핵심으로 파악한 요소들입니다. 


지능이 낮은 사람은 대개 개방적이지 않고 폐쇄적입니다. 지적 체계는, 혹은 지식이란, 어떤 것도 완전하지 않고 부단한 업데이트, 수정 과정을 거칩니다. 그래서 지식이 풍부하고 지적 작용을 활발히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일수록 어떤 폐쇄적 고정적 사고를 싫어합니다. 반면 머리가 나쁠수록, 어떤 과거에 꽂혀서 머리 안에 한번 수용한 부분적 지식을 절대 진리인 양 숭배하고 이에 어긋나는 모든 시도를 적대시, 심지어 불온시합니다. 


배움에 대한 애정을 저자들이 지능 요소로 꼽은 점도 독특합니다. 사실 지식이 오래 머리 속에 보존되고, 혹은 타 분야에 활발히 응용되려면 어떤 감정적 요소가 작용을 해야 합니다. 사람은 계산기가 아니기 때문이죠. 감정은, 사람이 어떤 행동이나 머리 속으로 사고를 할 때 결정적인 동인 노릇을 합니다. 알파고가 얼마나 전력을 많이 잡아먹습니까. 그러나 사람은 가성비를 따졌을 때 훨씬 작은 에너지만으로 그에 버금가는 사고와 전략 수립을 해 냅니다. 그래서 저자는 "배움에 대한 애정" 그 자체를 지능 요소로 파악한 겁니다. 어떤 사람은 일반적인 IQ 같은 게 그리 높지 않은데도, 특정 주제에 대한 애정만으로 천재들이나 도출하는 성과를 내기도 합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이 성과를 내는 게 아니라, 성과를 내는 그 사람이 바로 머리가 좋은 사람인 겁니다. 


역사의 큰 물줄기를 바꾼 리더들이 한결같이 공유한 덕목이라면 "용기, 배짱"이 있습니다. 마오쩌둥은 행정 능력 면에서는 류사오치에 미치지 못했고, 군사적 능력에서는 펑떠화이, 린뺘오에 비길 바가 못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결정적 순간마다 범인으로서는 품지 못할 대단한 배짱을 발휘했고 결국 이 덕목 하나가 전 중국 인민이 그를 기억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런 덕목을 거츠(guts), 혹은 그릿이라고 부릅니다. 저자는 용기 역시 세 가지 덕목으로 분석하는데 자유의지, 고귀하거나 가치 있는 목표, 개인적으로 감수해야 하는 위험 등입니다. 우선 무슨 미신이나 광신에 홀려 폭주한다거나, 사리 분별을 못 하는 사람이 설치는 건 용기가 아닙니다. "무식한 자가 용감하다"고 할 때 용감이란 비꼬는 반어법이지 칭찬이 아니죠. 또 인류 보편의 가치에 반하는 목적이 있다면 이것은 이 책(리더십 혹은 인성 관련)에서 논하는 "용기"가 결코 아닙니다. 또 어차피 잃을 게 없는 인생이라거나, 남의 부담으로 일을 벌인다면 이것은 배임 내지 도박 중독 심리이지 절대 용기라고 불릴 수 없습니다. 


책에서는 리더십으로서의 인성 요소 중 "공감"을 꼽습니다. 애정, 친절, 용서, 감사 등과 함께 리더의 "마음의 힘"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입니다. 예전 오기(吳起)라는 장수는 전쟁에 임할 때 피부에 종기가 난 병졸의 상처를 입으로 빨아 주는 놀라운 성의를 보여 그 수하의 군사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습니다. 이것이 가공할 만한 위선적 제스처일 수도 있겠으나, 여튼 병사들이 그 장군에 대해 받은 인상은 "높은 지위에도 불구하고 낮은 곳으로 한껏 내려온 리더"였기에 이런 효과를 낼 수 있었죠. 그저 업무능력이나 빈틈없는 전략적 머리만으로 부하의 존경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천성적으로, 나를 제 몸처럼 챙겨 주는 리더를 따를 수밖에요. 또, 받은 게 있으면 주는 게 있어야 한다고, 저런 성의를 보이는데 나도 해 줄 수 있는 모든 걸 해 주고 싶습니다. 


책에서는 또한 신뢰를 중시합니다. 신뢰가 무너진 조직은 이미 제 기능을 할 수 없습니다. 신뢰를 잃은 조직으로 책에서는 고펀드미(퇴역군인을 위한 모금 사기), 미국 가톨릭 교회(미성년자 성추문), 미시건주립대의 의학 주치의(역시 미성년자 성범죄) 등을 예로 듭니다. 패트릭 스위니는 신뢰의 3C를 드는데, 컴피턴스, 캐릭터(인성, 인격), 케어링(배려)라고 합니다(p131). 저자는 이에 더하여 네번째 C로 커뮤니케이션, 즉 소통(p135)을 듭니다. 


여기까지 책은 리더 개인의 인성과 덕목을 논했습니다. 2부부터는 "집단 인성"을 논합니다. 물론 집단에서 그 지도자의 품성이나 인격, 능력은 외부 대중에 대해서나 내부 성원을 향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그 이미지 대부분을 형성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조직의 성공은 그 대표자의 성공이 아니라 조직 전체, 나아가 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성공과 자질 향상을 뜻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집단 인성"의 논의가 이 책의 가장 뛰어난 점 중 하나라고 생각되었습니다. 2부 6장에서는 앞에서 논의돤 3C를 다시 짚는데 존슨앤존슨 등 다양한 사례가 소개되네요. 미국 자계서나 조직이론 대중서 중 일류의 책들은 이처럼 저자(들)이 직접 수집하고 연구한 사례가 무척 많이 포함된다는 게 또 장점입니다. 성 토마스 병원이, 경영상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도 해고하지 않은 사례를 읽어 보면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인성이 나쁜 단 한 사람 때문에 조직이 수십 년 간 애써 쌓아온 평판이 무너지는 예를 책에서 여럿 들고 있습니다. 이런 재앙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책에서는 감독 기관의 기능 강화, 내부자 고발 시스템 마련, 직원 교육의 내실화 등을 듭니다. 역시 시스템적인 대응책입니다. 근원적인 대응은 역시 리더십 교육을 전 직원에게 두루 거치게 하여 모든 구성원들의 "리더화"를 갖추는 것이며 그 핵심에 "인성 함양"이 있습니다. 그래서 8장에서는 "인성도 진화한다(p220)"는 전제 하에 여러 모범적인 프로그램을 소개합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공감 능력까지 두루 잘 갖춘 리더라고 해도, 역경 앞에서 쉽게 무너지면 이것 역시 곤란합니다. 역경의 결과는 1) 회복 탄력성이 발달하거나 2) 장애가 생거거나(육체적, 정신적) 3) 강인함이 갖춰지거나 4) 성장하거나 입니다. 3)의 경우 밑에서는 "원래 저 사람은 강한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으며 4)는 본래 성장형 리더도 있기 마련인데 전장에서 위기를 겪을 때 바지에 대변을 지린 도쿠가와 이에야스 같은 사람을 예로 들 수도 있죠. 


시련이 닥치면 리더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p264). 저자는 1) 훈련, 2) 팀 구축, 3) 기준 공개 및 집행 4) 피드백 제공을 꼽습니다. 어느 경우에도 중요한 건 리더와 팀원의 소통과 신뢰입니다. 또 여기서 명예의 조직을 건설하는 데 필요한 덕목은 앞의 3C 외에 헌신(p259, p266)을 꼽습니다. 책에서는 또한 소셜 미디어가 인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이는 걸러지지 않은 정보 유통 과정에서 기인한다고 하네요.


이처럼 이 책에서 파악하는 "인성"의 본질과 요소는, 우리가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인성 개념과 공통되는 요소도 많지만, 강인한 신념이라든가 유능함이라든가 굽히지 않는 배짱 등 다른 요소도 많습니다. 인성을 갖춘 리더를 선택헤야 할 때, 그저 사람만 좋은 유형을 아무도 따르지 않을 결과를 생각하면 복합적 자질로 인성을 파악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이 리더가 되고 싶은 사람, 조직을 더 알차고 생산적으로 가꾸고 싶은 직원 모두 이 책을 읽어 볼 필요가 있겠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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