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임팩트
이주선 지음 / 굿인포메이션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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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란, 참 무섭기도 하고 기대도 되는, 양가 감정을 유발하는 존재입니다. 아주 예전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미래 인류의 모든 행동과 감정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마치 사악한 신과도 같은 스카이넷이라는 시스템이 고유의 의지를 갖고 군림하던 모습이 아마 가장 널리 퍼진 AI의 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길 때도 관전자들은 그 가공할 만한 랜선 너머의 대국자를 그저 게임기로 보질 않았습니다. 


가장 앞서가는 미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기술적, 인문적 연구가 열심히 이뤄진다고 하며, 우리 나라 역시 2000년대 초의 IT 혁명 당시 주류 트렌드를 잘 타며 크게 성공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는 있는 듯합니다. 일반인들도 앞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 직업과 사회 구조가 크게 뒤바뀔 거에 대비하여 AI가 무엇인지 잘 알아 둬야 미래에 생존이 가능하겠으므로 우려 반 기대 반의 시선으로 이를 바라봅니다. 


책에서는 공간을 좌표로 해석하는 방법을 최초로 만든 르네 데카르트가 제시한 "인간은 생각과 경험을 쌓았으며 뇌라는 태엽에 의해 움직이는 기계"라는 관점을 AI 태동의 기초로 평가합니다. 에이다 러브레이스, 또 앨런 튜링 등 컴퓨터의 개념과 실제 기능의 초석을 놓은 선구자들에 대해서도 소개합니다. 한국에서도 기호학을 깊이 연구한 학자들이 일찍부터 이를 인지과학으로 확장하고 여러 주목할 만한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인공지능은 의외로 그 발달 과정이 순탄치 않았는데, 책에서도 몇 번씩이나 "그저 비싼 장난감"이란 혹평을 받으며 지원이 중단되고 연구가 끊긴 역사를 거론합니다. 사실 지금도 여전히 회의어린 눈으로 인공지능의 장래를 어둡게 보거나 현란한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후려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알파고 시리즈가 바둑이라는 게임에 특화되었다면, 알파제로는 2인용 보드게임 모두를 할 수 있으므로 범용 인공지능 개념에 한 걸음 더 접근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p71)" 이 외에도 딥마인드는 단백질 구조 예측 경연대회에서 3차원 접힘 구조를 사람 전문가 모두를 따돌리고 압도적 성능을 과시한 알파폴드를 3년 전에 선보였다고 합니다(좀 뒤인 p120에도 다시 언급됩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역시 완전정보 하의 의사결정이라는 점에서, 사람처럼 불완전한 정보 하에서의 의사 결정에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에도 잘 적응하는, 완전한 인공지능까지는 갈 길이 멀다고 평가합니다. 이런 걸 잘 해 내는 우리 사람이라는 존재가 대견해 보이기도 합니다. 또 현재 AI의 발달상이 여기까지 이르렀다는 정보를, 관련 전공자들이 잘 파악하고 대비해야 할 듯합니다. 이제는 머리만 좋아서는 자기 분야엑서 대박을 칠 수 없고, 나만의 보조 도구로 AI 시스템 하나를 나의 작업에 최적화하여 항시 활용할 줄 알아야 할 듯하네요.


사실 전통적인 전산 시스템에 대한 이해, 즉 창조주 같은 프로그래머가 모든 상황을 감안하고 설계도를 깔아 준 후 사고 과정을 계산으로 치환한 컴퓨터가 연산을 대신 행해 준다는 식의 개념으로는, 기계에게 학습을 시켜 방대한 데이터를 주입하고 기계가 알아서 알고리즘을 만들어 결과를 내어 놓는다는 게 아직은 꽤 낯선 개념입니다.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레이블된 데이터 세트가 이산적인 경우에는 분류, 연속적인 경우에는 회귀, 그리고 인공 신경망 학습 기술의 핵심인 역전파(p93)" 이 셋을 책에서는 간단히 거론합니다. 레이블된 데이터 세트를 통해 레이블 되지 않은 데이터를 유형 구별하는 기술! 이를 통해 컴퓨터는 기존의 단차원 연산이 아니라 비로소 사람처럼 복합적인 판단과 가치 부여를 하는 데 한 걸음 더 다가서는 것입니다. 


반면 비지도학습이라는 것도 있는데, 아예 처음부터 레이블 안 된 데이터를 학습해서 데이터 안에 내재한 구조를 추출하게 시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차원축소, 군집화, 패턴 규칙 인식 등이 있는데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인 딥페이스가 대표적인 예라고 하는군요(p95). 이후 책에서는 비선형 방정식도 해결 할 수 있는 다층 퍼셉트론에 대한 설명도 간략하게 이어가며, 과적합 현상, 시간 복잡성, 경사 소멸 문제 등 여전히 이 분야의 발전을 가로막는 이슈를 독자들에게 최대한 알기 쉽게 설명합니다(만 애초에 한계가 있습니다). 전체 최솟값이 아니라 여전히 국지적 최솟값만을 구할 뿐인 한계도 여전한 듯합니다. 우리도 중3때 이미 2차함수의 최솟값을 구합니다만 극솟값은 고2 이후 미분을 배우고 나서야 관련 문제를 풀기 시작하죠. 


요즘 주식 투자자들도 꼭 전산이나 전자공학에 소양이 있어서가 아니라 대화에 끼기 위해서라도 수박 겉핥기 식으로 GPU가 뭔지 자주 이야기들을 하죠. 근데 이제는 아무리 피상적 지식의 과시적 낭독에 불과하더라도 이 책에 나오는 심층오토인코더, 합성곱사신경망, 심층신뢰망, 순환신경망 등이 뭘 말하는지 정도는 꿰고 있어야 할 듯합니다. 예를 들어 CNN 하면 방송국 이름보다 합성곱신경망이 먼저 떠올라아 하겠죠. 가짜 효자가 마을에서 자꾸 칭찬해 주니 어느새 진짜 효자가 되었다는 민담처럼, 어디 가서 아는 척 좀 하려고 어깨너머로 주워 듣고 읊어대던 지식이, 돈 좀 벌어 보겠다고 전공서적 뒤져 가며 진짜 공부 좀 하다가 일정 경지에 도달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자기 분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요즘은 이 분야를 좀 파야 합니다(그래서 저도 이런 대중서부터 읽기 시작하는 거고요). 전공자가 무슨 태어날때부터 손목에 전공분야 찍혀서 태어나는 것도 아니겠고 말입니다.


아직도 인공지능 분야의 한계는 뚜렷합니다. 책 p117, p135 등에서 거론되듯, AI는 현재 특정 분야에서는 최고 수준 전문가를 능가하는 성능을 발휘하지만, 두루두루 상황에 적응하는 면에서는 1살짜리 아기보다도 못하며 이것을 두고 모라벡의 역설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p141에서는 기억의 기제에 대해 단서지정과 위치지정 두 가지 방식을 설명하는데 사람은 주로 전자를 이용하므로 볼품없는 성능일 뿐이지만 기계는 후자를 이용하므로 체계적이고 정확한 검색이 가능하다고 하네요. 사실 공부 잘하는 애들일수록 자기 머리에 기억해두는 정보마저도 CAM이 아니라 LAM을 주로 쓰더라구요. 본능적으로, 두뇌가 우수한 애들은 그렇게 하나 봅니다. 그러니 두문자라든가 기타 우스꽝스러운 방법은 주로 공부 못하는 애들이 선호하기 마련이고 말입니다. 전자는 특히 확증 편향의 우려가 있다고 합니다(본질이 아니라 감정적 친근도에 따라 중요도와 우선순위를 결정). 


사실 우리 어른들도 말 안 듣고 장난만 치는 아이들을 보면 "저거 언제 사람 될꼬?"라며 걱정을 합니다. 그러는 우리들은 대체 언제 어디서 티핑 포인트를 넘어 자기만의 고유한 기억과 감정과 문제 해결 능력을 갖게 되었을까요? 학자들은 이 점에 주목하여 특정 분야 전용에서 번용으로 넘어갈 수 있게 발전시키는 단서를 여기서 찾으려고 합니다. 이런 걸 두고 리버스 엔지니어링 오브 마인드, 즉 정신역공학이라 부른다고 하네요(p153). 


우리 같은 일반인 입장에서 가장 관심 있는 건 인공지능이 현재의 직업이라든가 뭘 생산하는 방식, 사회가 작동하는 기제를 어떻게 바꿀 것이며 우리는 이에 어떻게 적응할지의 문제입니다. 과거에는 기술과 과학이 발달하면 그 혜택을 얼마나 우리가 잘 누리고 더 행복해질지에만 관심이 있었는데, 막상 21세기의 1/5가 지나고 보니 당장 내 직업이 유지나 될지, 살아남으려면 무슨 기능을 배워야할지를 걱정하게 되는 게 역설적입니다. 책에서는 인더스트리 4.0을 설명하며 단순반복노동은 그게 정신적인 것이라도 쉽게 도태, 대체될 것이며, 특히 저숙련과 중숙련 노동은 아주 낮은 수준에서 임금이 정해질 것이라고 합니다(p202). 


p216에서 거론하는 노드하우스는 폴 새뮤얼슨의 수제자죠. 이 사람은 "향후 수십년 혹은 금세기 안에 인공지능이 가속화한 혁신으로 어떤 특이점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함"을 "경제학적으로는 최초로" 보여 낸 업적이 있다고 합니다. 여튼 요즘은 "결정장애"라는 말이 유행인데, 발달된 알고리즘은 이런 선택의 문제를 훨씬 수월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하며(p235) 이것이 분명 소비 촉진에 기여하는 바 있겠습니다. 또 1990년대 WTO 체제가 만들어지고부터 분업화, 오프쇼어링, 아웃소싱을 주축으로 하는 세계화가 촉진되었지만, 이제는 정반대로 데이터 중심의 경제가 본격 발전하고부터 자국우선주의가 대두하며, 또 AI 덕분에 기존 개발도상국들의 노동집약비교우위가 사라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구태여 가격이 싼 중국산을 쓸 이유가 없으며 미국도 자국산 제품으로 충분히 원가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되죠. 과거에는 관세장벽, 블럭화가 세계적 재앙을 불렀다면, 현재는 자국 일자리 창출을 기하고 유권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라도 보호 무역을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AI는 심지어 국제 정세의 근본적 변화마저초래한다는 것이니 우리들도 남의 일, 전공자만의 영역으로 치부할 수가 없습니다. 배워야 살아 남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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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파랑, 어쨌든 찬란
케이시 맥퀴스턴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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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세상은 다채로운 빛깔이 한데 모여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 단색으로 채워지면 그 세상이 빛을 발하기 힘듭니다. 약육강식의 진화 논리가 지배한다고 하나 실제 세상을 보면 사자, 호랑이 등 맹수만으로 가득한 게 아니고, 다양한 초식 동물들이나 식물, 곤충의 수가 더 많습니다. 세상의 질서는 강자만으로 완성될 수 없으며, 다양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더 나은 생존의 길이 모색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의 자녀는 덩달아 셀럽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준과 알렉스는 물론 대통령의  자녀는 아니지만, 특히 준은 관련 학위가 있기에 각종 저널에 실리는 특정 인물의 동향에 다소 민감(p11)합니다. 이 소설은 실존하는 여러 미디어의 제호가 일상 용어처럼 작품에 등장합니다. 한때는 우리 일반인들도 이런 사항을 잘 알아야 상식이 풍부한 사람으로 평가 받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각종 대안 미디어가 발달하여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고 사회의 권력도 크게 이동한 상태이죠. 


네타냐후는 얼마 전 실각한 이스라엘의 총리입니다. 이 소설 p79에서는 아직 이 사람이 해당 직을 유지하고 있던 시점임이 드러납니다. 알렉스의 엄마 엘런은 국제 정치의 미묘한 이슈에 대해 제법 명쾌하게 상황을 파악, 정리하여 아들에게 알려 줍니다. 하긴 워낙 이 사람이 오래 집권했기 때문에 특정 세대는 이스라엘 하면 대번에 네타냐후부터 떠오를 수도 있겠습니다. 


여튼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어도 원하던 결과를 미처 얻지 못 할 수 있고, 많은 일은 사람의 힘으로 이뤄 내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아빠는 정치인으로서 아빠가 원하는 삶이 있고, 이 방향성이라는 게 나머지 가족들과 안 맞기도 하죠. 그래도 알렉스는 제법 이해심을 발휘하여 당시의 상황을 이해(p112)하려 듭니다. 준 역시 생각이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이 소설에는 생각지도 않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들의 자제가 많이 등장합니다. 그 중 헨리는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왕족이며, 동시에 게이이기도 합니다. 그는 p165에서 알렉스에게 키스하려 드는데, 그러면서도 "네가 혹시 날 죽이려 들면 어쩌나 걱정했다"고 합니다. 그럴 만합니다. 


p230에서는 분위기에 알맞게 퀸의 <돈 스탑 미 나우>가 나옵니다. 퀸의 메인 보컬 프레디 머큐리는 동성애자였는데, 그의 보컬 실력은 물론 불세출의 것이지만 예전 사람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잊을 만도 하건만 몇 년 전 어느 영화 때문에 젊은 세대도 다시 다 아는 이름이 되어 버렸습니다. 


p301에는 애니스 송이 언급되네요. 이 노래는 들으면 한국 사람들도 다 알만한 아주 유명한 노래입니다. 존 덴버가 불렀는데 이 사람은 물론 헤테로이며 성소수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헨리는 알렉스의 입술을 노리는데 보는 독자 입장에서는 다소 난감합니다. 


이 소설은 젊은 감각이 물씬 배어나며 소설의 형식도 시대가 변함에 따라 다양해진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는 그만큼 다양한 감성과 가치를 소화해야 하며, 우리가 하는 일도, 어떤 다양성에 대한 관용의 마음가짐 없이는 유지해 나가기가 그만큼 힘들어짐을 실감하는 요즘이죠. 정치나 일상이 젠더 이슈와 함께 어떻게 엮이며 어떻게 복잡해지거나 단순히 해법을 찾는지 유머러스하게 확인 가능한 소설이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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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호랑이 책 - 그 불편한 진실 특서 청소년 인문교양 12
이상권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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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친실"이라 함은, 아무래도 팩트사항을 파악했을 때 그 밝혀진 바가 우리들이 기존에 알고 있던 사실과 달라 일종의 인지부조화를 겪을 만한, 그런 진실을 보통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한반도는 두 개의 큰 강으로 대륙과 분리되어 마치 섬 같은 위치지만, 여튼 대륙의 엄연한 일부라서 큰 산짐승들이 대간을 타고 멀리 남쪽까지 출몰하며 서식하는 조건입니다. 열도에는 없는 호랑이가 꽤 많이 살아 왔고, 호랑이에 얽힌 민담과 전설도 풍부하여 민족 정서를 크게 환기하거나 심지어 공유(...)하기까지 하는 동물이죠. 이런 동물을 민족 정기 말살 차원에서, 마치 한반도 곳곳에 쇠말뚝을 박듯 일제가 조직적으로 말살해 왔다고 그간 우리는 알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일본 극우, 혐한 세력은 이번 올림픽 때 우리 선수단이 "범 내려온다"는 현수막을 숙소에 걸자 이것 역시 호랑이를 한반도에서 멸종시킨 일제의 악행에 대한 환기라면서 정치적 의도가 담긴 메시지라고 생트집을 잡았더랬죠.


일제가 36년 간 이 땅에서 저지른 온갖 만행과 착취는 그것대로 분명히 평가하더라도, 과연 "한반도에서 호랑이가 멸종된 게 일제의 소행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접근이 필요하겠습니다. 비판은 결론이 옳다고 해서 다 옳은 비판이 되는 게 아니라, 올바른 근거와 팩트에 기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왕성한 생명력으로 광범위하게 분포하던 야생동물이 멸종했다면 그 경위를 정확히 파악해야 앞으로 비슷한 잉일이 재발하는 걸 막을 수 있겠으니 말입니다. 


책에서는 일단 이런 말을 합니다. "조선의 등장은 호랑이의 시대가 가고 인간의 시대가 왔음을 의미한다. 불교에서는 살생을 금하기에 인간과 호랑이의 갈등을 어느 정도 종교가 중재했으나, 유교는 이 세상의 중심을 인간이라고 생각했으니...(pp.18~19)" 이 지적은 탁월하다고 독자인 저는 생각합니다. 사실 처음에 이 책을 펴 들었을 때는 어린이책이라고 오해(...)했는데, 이 구절을 읽고 정신이 버쩍 들었습니다. 고려를 조선이 대체한 건 그저 다스리는 가문의 성씨가 바뀐 게 아니라, 국가가 체계적으로 돌아가는 기반 이념이 바뀐 것입니다. 불교는 물론 우수한 점이 많은 고등 종교이나, 기본적으로 주관적 관념론이라서 이성과 논리에 기반한 문제 해법을 제시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조선의 기본법인 경국대전에는 "호랑이는 아무나 잡아도 된다"는 말이 명시되었다(p22)고 합니다. 


반면 유교는 객관적 관념론 체계라서 모든 것이 인간 중심 논리이고, 사후세계나 윤회, 환생, 영혼 등의 불명확한 개념을 배격하는지라 국가 행정, 민생 관리 시스템을, 적어도 불교 기반 사회에 비해서는 합리적으로 재조직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호랑이의 멸종이 천적으로 조선 유교 통치 기구, 지배층인 사대부의 인식 때문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도, 적어도 어느 정도는 그런 기반이 마련된 게 사실이겠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논과 밭은 강에서 떨어져 있었다... 잦은 홍수 때문에 강가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유달리 활동적인 호랑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강과 물가에 접근할 수 있는 조선의 땅이 아주 살기에 적합했다.(p20)" 확실히 호랑이는, 우리가 <동물의 왕국> 같은 다큐를 봐도 알 수 있듯, 물질을 좋아하는 동물입니다. 이런 호랑이였지만, 조선 들어 농경 방법을 전면 개선하고 보다 효율적인 벼농사를 짓기 위해 물가로 더 가까이 이주하게 된 후로는 이런 물길을 통한 이동이 어렵게 되어 결과적으로 산중에 머물게 되었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그 전 고려때까지만 해도 산 아니라 어디라도 호랑이가 자유로 돌아다녔다는 거죠. 


호랑이를 몰아내어야 사람이 그 땅에 정착하여 체계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으니 조선에서는 1416년에 착호인이라 하여 조직적으로 호랑이를 사냥하는 인력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무렵이면 한글이 창제, 반될 시기이기도 하죠. 발자국도 잘 안 남기려 바위 위로만 이동하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그만큼 뛰어난 전문 지식이 필요했으며 착호갑사들은 호랑이의 배설물 등을 연구하거나, 특별한 포상 체계까지 고안하여 호랑이 사냥을 촉진했습니다. 포상이 두둑하다 보니 너도나도 위험을 무릅쓰고 호랑이 잡기에 나서기까지 했고 조선 정부는 과장된 영웅담을 퍼뜨려 이런 분위기를 조장했습니다. 착호군은 무용이 출중하며 때로 왕의 신변 경호까지 맡는 최정예 부대였으며 공이 크면 고을 수령까지 지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다만 착호군이 지방에 머물 때 대접이 융숭해야 했으므로 민폐가 적지 않았고, 이 때문에 호랑이를 잡는 게 아니라 백성의 피를 빨아먹는다는 원성(p35)도 있었다고 이 책에 나옵니다.


호피는 또한 국제 무역에서 좋은 가격으로 쳐 주는 인기 상품이었으며, 책에는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고양잇과 고기를 즐겨 먹었다(p41)고 합니다. 즐겨 먹은 다른 고양잇과 동물로는 삵이 있었다고도 하네요. 이처럼 꼭 정부의 장려책이 아니었어도 어느새 민간에서조차 여러 이유로 호랑이 사냥에 앞장서게 되었습니다. 호랑이는 그 고기를 먹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말까지 퍼져 고깃값이 매우 비싸게 거래되었다고 합니다. 책 뒤 p119에도 탈북자들의 증언을 빌려 "아직도 북조선에서는 호랑이잡이가 로또"라고 하니 호랑이들의 수난은 진정 이 땅에서 끝이 없나 봅니다. 가죽은 다만 무늬가 아름답다는 이유로 호랑이보다 표범의 것을 높이 쳤다고 합니다. 책 p132이하에는 여러 도판과 함께 조선 표범 이야기가 자세히 나오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참조할 만합니다. 


호피는 명, 청 등에서 공물로 자주 요구했고, 조선은 이런 과도한 공물 요구를 피하기 위해 세련된 외교술을 구사했으나 호피는 조선 중기 이후 정말로 대량 조달할 방법이 없어 서서히 맥이 끊어졌다고도 합니다. 왜에서도 호피, 매 등이 인기 상품이라 쓰시마에서는 저희네들의 본토에 바치기 위해 애를 써서 구입했다고도 책에 나오네요. 정부에서 거두어 간 호피만 해도 한 해에 여튼 1000장이 넘었다고 하니 이 땅에 정말로 호랑이가 많이 살았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도 곳곳이 핏줄(p20)처럼 물길로 이어져서 그랬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이처럼 호랑이가 많이 죽었으니 호랑이 입장에서는 "대학살(p53)" 수준이었겠다는 저자의 표현도 있습니다. 


윌리엄 그리피스의 <은자의 나라 한국>은 한능검 수험서에도 자주 이름이 나오는 유명한 책이죠. 여기서 사냥꾼을 두려워하는 보통의 호랑이와 달리 용맹하게 자신을 방어할 줄 아는 개체를 당시에 "칼범"이라 불렀다고 나옵니다. 오백 년 가까이 사람과 대적하다 보니 호랑이도 그에 맞게 진화하지 않았겠습니까. 책 p65에는 17세기에 유독 호환이 심했다는 기록이 인용되는데 저자는 "호랑이가 사람을 집중 공격한다는 건 그만큼 상황이 정상이 아니라는 뜻"이라고까지 합니다. 호랑이는 사냥꾼과 보통 사람을 구별할 줄 알아서라고 합니다. 착호군만으로 감당이 안 되자 훈련도감에서 병력이 차출되어 어지러워진 민심을 달랬다고 하네요. 


이 대목에서 저는 19세기 제국주의 영국에 아프리카에 발을 들여놓고 철도를 건설할 때 식인 사자가 출몰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대체로 사자는 사람을 즐겨 먹지 않기 때문에 더 공포를 유발했었다는...


또 책에는 비슷한 시기에 한국을 방문했던 비숍 부인의 책도 인용합니다. "조선은 개들의 천국이다." 사실 저도 영국이나 유럽과 달리 사냥 문화가 대중에까지 널리 퍼지지 않은 조선에서 왜 이렇게 개들이 많이 사는지 의아했는데 호랑이의 민가 습격을 예방하기 위해서였다는군요. 역시 그리피스의 책을 보면, 병인양요, 신미양요 당시 프랑스군, 미군은 미개인들만 살 것으로 본 이 땅에서 의외로 화력이 좋은 군대가 정확한 솜씨로 반격하는 걸 보고 크게 놀랐다는 기록이 나온다고 합니다. 이것이 일부는 착호군의 용맹과 실력에 기인한 바 있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조선이 망한 후에는 일제가 들어서서 정책적으로 호랑이 사냥을 장려했습니다. 최창학이란 사람은 자신이 사냥한 호랑이 등에 올라탄 사진으로 유명해지고 큰 돈까지 벌었다고 합니다. 사실 개체끼리 만나면 호랑이만큼 무서운 동물이 없지만, 집단으로 몰려들어 사냥을 하는 사람들보다 야생동물에게 더 무서운 존재는 없습니다. p105에는 사람들에게 사냥을 당하며 어쩔 줄 모르는 불쌍한 호랑이에 대한 묘사가 있는데 여길 읽으면서 저도 절로 동정심이 우러나오네요. 호랑이가 가장 무서워하는 건 불이라는데 소설 <정글북>에서도 모글리가 시어칸에게 횃불을 들고 맞서는 일러스트가 아주 유명하죠.


이 책의 장점은 호랑이와 표범에 초점을 맞추어 우리가 여태 모르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준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적극적으로, "이 땅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호랑이들의 한"을 대변하는데 조금은 코믹하지만 여튼 우리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책에는 또 컬러 도판이 아주 많이 실려 있습니다. 작년에 발행되었던 홍범도 장군 관련 우표 2종도 나옵니다. 얼마전 홍범도 장군 유해(이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미디어에서 요즘 그렇게 쓰니 일단 이렇게 사용하겠습니다) 봉환도 있고 했으니 시의적절한 환기이기도 합니다. 


저는 독자로서 솔직히 민본 농본 정책을 국시로 표방한 조선 정부에서 호랑이 포획을 장려한 것 자체는 오히려 국가 시스템의 효율화라는 점에서 괜찮다고 봤습니다. 농사를 마음 놓고 지을 수 있어야 일단 백성이 편하지요. 필요 없는 살생이나 과시적 욕구를 위한 사치품 확보 등은 비판 받아야 마땅하지만, 그렇지 않고 직접 백성의 생업을 위협하는 요인을 정부가 제거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직무 유기입니다. 역시 대민 수탈의 일환이라고 본다면 애초에 정부 존재를 부정하는 무정부주의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물론 저자는 호랑이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불쌍히 여기는 스탠스라서 저의 이런 감상은 책의 뜻에는 어긋나긴 하지만요. 여튼 여러 가지로 재미있게 독해될 수 있는 책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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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멋진 책입니다.


우리가 성장 과정에서 존 F 케네디라든가, 마틴 루서 킹 주니어라든가, 마더 테레사라든가, 이런 성인(成人)들의 연설을 모은 책은 여러 권 읽고 자랍니다. 그런데 나이가 비교적 어린 유명 인사들의 연설은 그리 자주 접한 적이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어린 시절에는 물론 위대한 어른들의 발자취도 눈여겨 보고 따라 밟을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만, 같은 또래, 혹은 몇 살 위인 언니 오빠들의 종적과 행동, 개성, 생각 등을 목표로 삼고 따라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보다 더 배울 게 많지도 않을 연예인, 스포츠 선수들은 그렇게나 열을 올려 가며 선망의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말입니다.


이 책은 모두 45인의 청소년 혹은 청년들의 연설을 담았습니다. 남들과 달리 이른 나이에 세상에 대한 눈을 뜨고 당당히 목소리를 높이며 모순과 병폐를 지적하는 건, 여느 연예인이나 스포츠 아이돌보다 더 멋지고 더 성숙하며 많은 수련과 사고 과정을 거쳐야 보일 수 있는 행동이고 성과입니다. 그러니 이런 젊은(혹은 어린) 사자들, 연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행동을 살피는 건 특히 청소년기에만 쌓을 수 있는 체험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들 중에는 연설을 행할 당시 청소년이었으나 지금은 성년에 도달한 경우도 있습니다.


시우테즈칼 마르티네즈라는 이름을 들어 본 분 있을까요? 저는 처음 듣는데 원주민 출신(첵에 있는 대로 옮기겠습니다) 기후 운동가이며 현재 나이는 22세라고 합니다. 그는 행동에 나설 뿐 아니라 적성을 살려 대중 앞에 퍼포먼스를 펼치는 힙합 뮤지션이기도 합니다. 그는 원주민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밝히며 환경 파괴의 심각성을 고발하고, 그러면서도 또래 친구들에게 자신처럼 세상의 어두운 면을 향해 과감하게 No!라고 외치자고 청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또래 친구들이 많이 망설이고 확신 없이 방황할 줄 알고, 당당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기 죽지 말라고 격려합니다. 청소년다운 이런 소탈한 면이 좋았습니다.


다음에는 우리 모두가 잘 아는 툰베리가 나옵니다. 그녀가 앓는 병은 여럿이라고 나오는데 자폐 말고도 선택적 함구증이 있다고 합니다. 병자가 아니고 어른인데도 이러는 사람이 제 주변에 있어서 아주 미칠 것 같습니다. 여튼 그녀의 언사는 (이 책의 표현을 빌리면) 정말 "벼락 같이 퍼붓습니다."


벨기에에 큰 도시 중 하나로 앤트워프가 있죠. 툰베리의 연설을 듣고 아누나 데 베버라는 소녀는 자신도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어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합니다. 책에 그 연도가 명확히 나오지는 않는데 아마 2019년 즈음에 큰 시위가 저 도시에서 있었나 봅니다. 세계적으로 당시 화제가 되었던 듯한데 한국에서는 크게 뉴스화하지는 않았죠. 책에 언급되는 조크 쇼브리즈 장관은 50대 여성인데 문제의 발언은 제가 위키백과에 찾아 보니 앤트워프 시위보다는 브뤼셀에서 열린 75,000명의 시위와 관련된 것이었다고 합니다. 여튼 이런 말은 장관이자 정치인으로서 신중했어야 했습니다. 


십대인데도 놀라운 과학적 발견을 통해 세상에 이바지하고 동시에 대중(청소년 포함)에 행동을 촉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에머 히키, 시아라 저지, 이 두 명은 "겨우 열 네 살의 나이에" 뿌리혹박테리아에 대한 연구를 통해 작물 수확량을 증가시킬 수있다는 결과를 밝혀 냈습니다. 사람은 일단 식량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다음 단계로서 자유를 논할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또래 청소년들과 어른들에게 말합니다. "누구라도 아이디어만 있으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 행동으로 옮기세요!"


크르틴 니띠야난담은 2000년생입니다. 15세의 나이에 그는 알츠한이머를 조기 진단하는 테스트를 출품해서 상금도 받고 해당 분야의 연구에 큰 기여를 했다고 합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죠. 아무리 재능이라는 게 어린 나이에 결실을 맺기도 한다지만 생각해도 생각해도 놀랍기만 합니다. 그의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과학은 나이가 아니라 아이디어로 하는 것입니다."


불의의 사고로 신체의 일부를 잃고 큰 불편을 겪는 분들이 많습니다. 16세의 소년 이스턴 라샤펠은 3D 프린터로 로봇 팔을 만들어 이런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도움을 받은 이들 중에는 일곱 살 어린 소녀도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세상에 대해 이런 방식으로 기여하는 이들이야말로 우리가 진정 영웅으로 존경하고 감사해야 할 분들입니다. 그 나이에 무관하게 말이죠. 


케네스 시노즈카(성씨도 그렇고 책의 일러스트로 보아 일본계인 듯합니다)는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치매로 고생하는 걸 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양말에 센서를 달고 치매 환자가 밖으로 혹 나가기라도 하면 바로 간병인에게 통지가 되는 장치를 만들었죠. 사소해 보이지만 구글 과학 경진대회 등의 행사에서 그는 큰 주목과 갈채를 받았다고 합니다. 당장 이 장치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큰 편의와 희망을 안겨 줬기 때문이죠. 우리의 불편을 덜어 주고 삶에 의지가 되는 이런 소중한 공헌을 남기는 분들에게 마땅히 그에 합당한 보상이 주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직 나이가 어린 이들에게서 이런 멋진 작품과 기여가 행해진다는 게 더욱감탄스럽네요. 


좀 예전의 사례도 나옵니다. 지금이야 상상할 수 없지만 1960년대에는 지성과 자유의 전당, 상아탑이라 일컬어지는 대학에서도 여러 부조리와 차별, 지나친 제약이 횡행했습니다. 이때 마리오 사비오를 비롯 일단의 대학생들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며 과도하게 정치적 자유를 캠퍼스에서 제한하는 대학 당국의 조치에 대해 과감하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이것이 1964년에 절정을 이룬 FSM, 즉 자유언론운동인데 이때의 성과를 바탕으로 많은 대학에서 학생들이 지금은 (때로는 도에 지나치게) 자유를 누립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에는 이처럼 과거의 투쟁을 통해 오로지 대의를 위해 몸바친 소중한 족적이 있었다는 점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물론 엉뚱한 자가 공적만 가로채려는 사기 행각을 벌이는 건 경계해야 합니다.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우리가 이름을 잘 아는 행동가입니다. 그녀가 노벨 평화상을 받았을 때 아직 어린 소녀였는데 지금은 꽤 성숙했죠. 이 책에는 2015년 당시 그녀가 UN 총회에서 행한 연설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 용감한 자매 살람과 모든 난민 어린이들에게, 전쟁이 배움의 기회를 빼앗아가지 못할 거라고 약속해 주세요." 그녀의 외침입니다. 


p196에는 자유를 찾아 압제로부터 탈출한 조셉 킴이라는 청년도 나옵니다. 그가 탈북을 감행하게 된 건 딱히 대단한 용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희망은 온전히 개인적인 것이니, 누가 만들어주기를 기대하지 말고 스스로 자신만의 희망을 만들어 내라"고 그는 말합니다. 


마야 S 펜은 어렸을 때 사업을 시작하여 큰 돈을 번 사업가입니다. 의류 회사의 대표이자 영화 제작에까지 손을 대는 대단한 역량과 성과를 자랑합니다.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그녀는 다만 이윤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마인드가 아닙니다. 특히 어려운 처지에 놓인 여성 청소년들을 위해서도 뜻 깊은 행사를 자주 주관합니다. 그가 만들어내는 의류품은 100% 친환경적입니다. "나는 강하다. 나는 똑똑하다. 나는 멋지다. 나는 내면과 외면이 모두 아릅답다. 나는 다른 소녀들을 응원하고 지지할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젊은 영웅들이 우리 독자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희망을 잃지 말며, 자신의 진짜 가능성을 찾아 꽃 피우라는 거죠. 청소년기는 질풍 노도의 시기입니다. 무엇을 찾아 배우고 따라하려 해도 마땅한 롤모델을 찾기 힘듭니다. 그런 청소년들에게 하나의 미래상을 제시해 줄 수 있는 게 이 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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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네시아, 나의 푸른 영혼 - 세계일주 단독 항해기
알랭 제르보 지음, 정진국 옮김 / 파람북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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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작은 터전 안에 머무르지 않고 끝없이 펼쳐진 평원, 대양을 향해 나아가는 결단은 실로 대단합니다. 야마오카 소하치의 대하소설 <대망(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보면 이른바 남만인, 홍모인 들을 평하며 "야만인들이기는 하나 그 먼 곳에서 험한 파고를 헤치고 여기까지 온 걸 보면 대단하지 않냐"는 말을 합니다. 사실 이야말로 코미디 같은 품평이며, 서양인들이 19세기 한때 서세동점을 주도하며 세계의 패권을 잡은 건 15세기부터 꾸준히 시도해 온 저런 모험 정신, 탐구 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만인은 제 좁은 방구석에 머물며 밖에 나갈 줄 모른 채 남을 평가하는 일에만 맛이 들린 종족들을 가리키는 게 맞습니다. 


이 책은 프랑스인 알랭 제르보가 1929년에 쓴 기행문이자 에세이입니다. 알랭 제르보는 만능 스포츠맨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이런 명저를 지을 만큼 폭 넓고 정확한 인문 지리 지식을 보유한 매우 뛰어난 지성인이기도 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엄친아 소리를 들을 만한, 공부도 잘하고 운동 실력도 빼어난 만능인이었던 셈입니다. 그래서 당대에 국민영웅으로 사랑 받았겠죠. 이 저자분에 대해서는 책 말미 20여 페이지에 달하는 역자 정진국씨의 "귀로에서"라는 해설을 읽어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본문도 엄청 유익하고 재미있지만 해설도 그에 못지 않습니다. 참고로 이 멋진 책의 제목은 "폴리네시아, 나의 푸른 영혼(이 구절도 제목으로 멋지죠)"이지만 원제 Sur la route du retour 역시 프랑스어로 "귀로에서"라는 뜻입니다. 


이런 저자들을 보면 인문 지리 지식도 빼어나지만 언어학적 호기심과 감각, 습득력도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제르보 자신이 타고난 머리 자체가 대단해서이겠지만, 생소한 언어를 접했을 때 일단 배우고 싶어하고, 어떤 사전의 체계적 지식도 없이 네이티브의 말을 듣는 즉시 형태소와 음운을 분석하고, 그것을 모국어나 자신이 아는 다른 외국어와 대조하고... 이런 과정이 거의 본능적으로 행해지는 듯합니다. 이 책 p17 같은 곳에서 제르보는 현지인의 ng 발음 같은 것을, 자신이 전에 들었던 동폴리네시아에서는 못 듣던 것이라며 즉시 분석하려 듭니다. 사실 한국인 입장에서는 프랑스어 특유의 ng 역시 어말의 자음이 아니라 모음과 일체화하여 발성되는 그 자체가 신기합니다. 중국어도 이를 운모로 처리하며 별개의 자음으로 취급하지 않죠.


"건강하고 잘생긴 인종이다.(p20)" 제르보보다 훨씬 앞선 시기 프랑스인들이나 영국인들도 미지의 세계(그들 입장에서)를 탐험하며, 그저 현지인을 무지하고 추하다며 무시하기만 한 게 아니라, 이처럼 훌륭하고 강건한 육신, 건강한 정신을 가진 이들은 존중했습니다. 이를테면 인도 북서부의 펀자브인, 네팔의 구르카인, 또 시크 교도 등은 영국 제국주의자들에게 특별 대우를 받았고 일부 탐험가들의 눈에 비친 마사시족도 그러했습니다. 조선인들에 대해서도 비숍 부인이 대체로 칭찬을 했었죠. 잘난 건 누구 눈으로 봐도 잘난 것입니다.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착륙에 성공했을 때 암스트롱, 올드린, 콜린스 등의 "우주인"들도 다 신체 강건하고 빼어난 지능, 상황 대처 능력을 갖춘 엘리트들이었습니다. 이 책 p48 같은 곳에서 제르보와 그의 동료들이 겪는 고초를 보면, 오늘날 무슨 호화 크루즈를 타고 세계를 일주하며 즐기는 항해 같은 것은 그저 도락이나 호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뭐 간혹 뱃멀미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고작 그 정도이며, 제르보가 활약하던 시기만 해도 먼 거리 항해는 목숨을 걸거나 신체 일부가 크게 다칠 각오를 하지 않으면 감행할 수 없던 "모험"이었죠. 제르보는 20세기 초반 사람이라서 그 전 세기와 상황이 같지는 않았겠지만 여튼 책에서 보듯 이런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선교단이란 사실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요즘 길에서 아주 간혹 마주치곤 하는 이들을 대단한 존경심을 갖고 대하지는 않겠지만, 15세기 이래 해외에 파견되는 선교단은 대단한 자질로 무장한 인재들이었고 현지에 자리를 잡거나 했을 때 누리게 되는 특권도 결코 적지 않았습니다. 이 책에도 p55 같은 곳에 "왕의 권력은 허울뿐이었다. 모든 일을, 마리스트 선교단이 선택한 토착귀족 장관들이 선택했다"는 구절이 있는데, 일단 토착 귀족과 협력하게 된 선교단은 정치, 행정, 경제 모든 면에서 그 지역의 실권을 장악하게 되는 거고 조선의 경우 이재수의 난도 따지고 보면 이런 배경이 있죠. 혹은 18세기 과라니 족의 사정도 이것과 비슷했을 겁니다. 선교단은 아주 간혹 로마의 본진(Holy See. 당시에는 바티칸이 그저 지명이었으므로)이나 식민 본국과 충돌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아무래도 제르보 자신이 운동이나 잡기에 능하고 두뇌도 영리했던 만큼 현지 마타우투의 청년들과도 쉽게 친해졌을 겁니다. 평판은 이처럼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거지 소수의 친분을 의식적으로 조작해서 어울리지 않는 외투처럼 걸칠 수 있는 게 아니죠. 제대로 된 한 사람의 관찰자만 나타나도 "엉터리"라는 게 바로 판명이 되지 않습니까. 그냥 모자란 분수에 맞게 정직하게 살면 되지 뭐하러 그렇게 불안하게 사는지 모를 일이죠. "황토색 분장을 칠하고, 꽃잎을 엮어 목에 걸고 화관을 썼다. 춤은 활기와 야성미가 넘쳤다." 예를 들어 스트리트 워먼 파이터 같은 프로그램을 볼 때 우리가 받는 느낌 같은 걸까요?


"불 위를 걷는 사람들"의 능력은 봐도봐도 신기합니다. 저자도 그리 생각했지만, "교묘하게 위장된 환상일 것이다"라며 역시 지성인다운 분석력을 발휘하려 듭니다. 12일이 지나 그 유명한 부갱빌이 인상 깊게 보았던 에로망고 섬에 도착합니다. 부갱빌이 누구인지 모를 독자를 위해 책에서는 따로 각주를 달아 놓았습니다. 이처럼 위대한 인물의 행적은, 그보다 앞서 태어난 또하나의 두드러진 인물의 전철과 궤가 겹치곤 하죠. 패튼은 생전에 자신이 한니발의 환생이라며 큰소리 쳤는데 비록 픽션상의 인물이라고는 하나 이 제르보를 20세기의 오디세우스라 부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그리 과장만은 아닙니다. 


섬들에는 영국 정부도 있고 프랑스 정부도 있다고 합니다. "멀티플 주리스딕션"이기라도 할까요? "각자 자기네 정부의 일을 보았는데 분쟁이 생기면 희한하게도 에스파냐 판사가 주재하는 국제법원이 맡았다" 독자가 읽기에도 정말 희한합니다. 이 정부와 법정이 자리한 콘도미니엄을 현지에서 판데모니엄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우습습니다. 제르보는 "태평양의 프랑스 총독 기용 씨"의 초대를 받았으나 일정을 수정하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아직 전간기의 풍요를 누릴 프랑스, 그 식민지의 한 풍속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나는 그 사람이 스프레이호의 유명한 슬로컴 선장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해 주었다. 이곳을 30여년 전에 지나갔을 것이다." 촌장이 진짜 순종 양키라면서 늘씬하게 말랐다고 감탄하면서 전해 주는 이야기에 저자 제르보가 답을 하는 대목입니다. "벌써 30년이 지났어? 하긴." 옆에는 루이스라는 소년이 타는 듯한 호기심(책의 표현입니다)으로 눈을 반짝이며 제르보와 아빠인 촌장의 말을 듣습니다. 촌장은 제르보에게 부탁합니다. 아들을 데려가 달라고. 이 촌장은 현지인과 프랑스인의 혼혈들과 오래 섞여 살았는데 낭트 태생이라고 하니 본인은 순수 프랑스인인 셈입니다. 그래도 피부가 검게 그을렸고 현지의 풍토에 적응하다 보니 혼혈인지 헷갈리게 하나 봅니다. 프랑스인인데도 모국어를 거의 잊고 어설픈 영어와 현지어를 씁니다. 제르보는 여기서도 자신이 더 익숙한 폴리네시아를 떠올립니다. 촌장의 딸 하나가 시중을 드는데 정말 예전 영화에서 보듯 외지인에게 딸을 애써 주려는 현지인 추장의 클리셰 같은 행태를 보는 듯합니다. 물론 이 시점은 20세기 전반이라서 그런 풍습의 일환은 아니겠습니다만.


아무래도 태평양 상의 섬까지 건너와 살게 된 사람들은 매우 강건한 육신에 총명한 정신을 갖춘 사람들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래서 이 책 곳곳에는 훌륭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저자의 감탄이 자주 나옵니다. 또 아무래도 인구 수가 많다 보니 여기까지 건너 온 말레이 인들의 목격도 언급되는데 "남자 같지 않다"는 게 그의 평가입니다. 칭찬은 아니겠으나 이때로부터 몇 년 후 아인슈타인도 중국 근방의 사람들을 보고 비슷한 말을 한 적 있죠. 


인도양을 통과하여 제르보는 무려 희망봉에까지 이릅니다. 이것은 사적인 항해이다 보니 위도 경도 등을 일일이 본인이 다 점검해야 하고 이 일정이 얼마나 고달프며 또 고도의 기술을 요할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세인트헬레나까지 와서 현지 군인들과 축구도 한 판 합니다. 프랑스의 만능 스포츠맨과 축구 종주국 청년 병사들과의 대결이 볼만했을 듯합니다. 


카보 베르데를 지나 대서양에 진입한 그는 북위 5도(즉 적도 근방이라는 뜻이죠)상에서 상어떼를 만납니다.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우리 흑산도 앞바다에서 보곤 하는 홍어와 달리 몸집이 매우 큰 외투홍어도 목격합니다. 산 빈센테에서 그는 거의 좌초하여 여기서 피레크레를 잃을 뻔합니다. 책 처음부터 활유화하여 내내 언급되는 피레크레는 역주에 친절히 설명되었듯 파이어크레스트, 즉 그가 몰고 다니는 배 이름입니다. 배의 그림도 자세히 책에 그려져 있으니 배의 모양을 떠올려 가며 이 책을 읽어야 실감 만점입니다.


그는 긴 항해를 마치고 르아브르 항에 진입합니다. 혹시 그에게 사고나 나지 않았는지 영사관원과 기자들이 미리 알아보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이 무렵 미국의 린드버그라는 비행사가 큰 화제를 모아 가며 대서양을 비행기로 횡단한 역사를 알고 있습니다. 알랭 제르보란 이름이 낯선 독자라면 그 린드버그 비슷한 위상의, 프랑스 태생 셀럽이 펼친, 훨씬 더 어렵고 장거리에 걸친 항해였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용감한 사람의 위대한 모험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하여 보편적 환영, 감탄, 열광을 모으게 마련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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