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너머로 달리는 말 (리커버 에디션)
김훈 지음 / 파람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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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옛날에 과연 우리 조상들(가깝건 멀건 간에)에게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역사책이라는 기록에 쓰인 바도 지나치게 문자 그대로 믿을 건 아닙니다. 그래서 고대의 일을 상고할 때에는 어느 정도 상상력이라는 게 필요하며, 혹 근대의 일을 고찰할 때에도 기록이 일일이 빈틈을 커버해 주는 게 아니기에 역사소설의 할 일이 고유하게 따로 생기기도 하는 것입니다.  

김훈 소설가의 이 작품은 그야말로 순수 상상의 영역에서 펼쳐지는 장대한 사건을 담았습니다. 정복 군주나 절세 가인, 명장, 현신 들만 주인공 노룻이 아니라 이름없는 백성들도 자주 나오고, 심지어 사람이 아닌 동물들도 등장하여 한몫을 하고 격정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애초에 사람과 동물 사이의 경계 자체가 모호합니다.  

맨앞 p2의 지도를 보면 물론 이것이 가상이지만 마치 한강 유역을 보는 듯 착각이 일기도 합니다. 책 p266을 보면 이 소설책에 몇 없는 각주가 하나 나오는데, 강 양안에 월진(月津)이 있고 창기들이 넘나들었다는 서술에 달린 것입니다. 실제로 현대 서울의 비싼 술집(룸살롱)들은 한강의 여러 큰 다리들 근방에서 가깝기도 하죠. "8차선 도로의 현수교..." 8차선이라면 양화대교, 성수대교 등이 있겠고, 현수교 형식은 한강에는 놓여 있지 않습니다. 아무튼 느닷 20세기 중반을 거론하며 문명의 영속성을 강조하려 한 듯한 작가의 의도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는 되는 대목입니다. 

초와 단. 지리상으로 초가 나하(奈河)의 북쪽에, 단이 남쪽에 놓였으므로 혹 각각 유목 정치 단위와 농경 사회를 상징했나 싶기도 했지만 그렇게 갖다붙이기엔 아귀가 안 맞는 대목도 많습니다. 또 p33에선 왕을 "캉"이라 불렀다는데 이는 초가 아니라 또 단의 사정이니 더욱 그러합니다. 확실히, 초가 젊은이들의 나라라는 점, p14에 나오는 돈몰 등의 기풍습은 고려장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만 고려장 자체가 그 진위를 놓고 논란이 많으며 한 여자를 놓고 여러 남자들이 공유했다는 p17의 서술("마을의 아이")이 북방 유목 민족의 풍습과 비슷하다고 볼 근거도 없습니다. 그냥 순수 창작의 세계에서 일어났던 일로 치부하면 충분합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돈몰에 대한 기록은 대단히 충격적입니다. 한참 뒤에 나오는, 초나라 쉰 살의 목왕이 그 늙은 나이를 부끄럽게 여기는 대목(p76)도 그 연장이겠다고 저는 읽었습니다. 반대로 단 나라의 군독인 황이 알몸이 되어 스스로 투석기에 올라가 적 진영에 던져지는 대목 역시, 진영은 반대지만 늙어서 더 이상 유효한 완력을 보탤 수 없는 노구의 처분을 그리한 것이기에(물론 전세가 완전히 기운 탓도 있지만)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읽혔습니다. 목왕의 구체적인 돈몰 과정은 p129에 나옵니다. 저는 한자가 頓歿일 줄 짐작했었는데 책을 다시 보니 旽沒입니다. p129를 읽으면 차라리 점몰(漸沒)이라 불러야 할 듯하네요. 

젖을 내어놓고 우는 여인들(p138, p142). 이 역시 쇼킹한 대목입니다. 반대로 젊은 병사들이 허연 엉덩이를 내어놓고 적진을 조롱했다는 실제 기록은 서양 쪽에서 본 적 있어도 말입니다. 여인이 그 나신을 백주에 공중 앞에 드러내는 건, 우리의 억울함이 극한에 달하여 이 세상에 더 이상 공의와 질서가 남아 있지 않음을 선언하는 처참한 풍경이며, 근세에 비슷한 예로는 YH 사건 같은 게 있겠습니다. 그러니 공격하는 측의 심경이 자연 처연해질 밖에요. 

단은 이 소설에서 旦으로 정해진 표기인데 단군왕검이라고 할 때는 檀이며 해동, 청구, 진단 할 때의 단은 旦이긴 합니다. 한국의 큰 두 줄기를 만주에서 내려온 북방계, 삼한 중심의 남방계로 본다면 초를 전자에, 단을 후자에 대응시키고 싶지만 이러면 旦이 대체로 발해에 연관되는 관행과 안 맞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작가는 의도적으로 여러 코드를 섞어 놓아 이런 추론을 미연에 막으려는 의도였지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독 잡설을 늘어놓고 싶은 독자의 욕구는 끝이 없는데 일단 이성계의 고친 휘가 또 旦이었고 p77에서 목왕이 표와 연에게 권력을 나눠 주고 자신은 군권만 갖는 결정에선 또 태종 이방원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하긴 이런 권력 분장 후 승계는 매우 보편적이어서 생전에 덩샤오핑도 자오쯔양과 후야오방에게 이런 식으로 힘을 나누고 자신은 군사위원회 주석직만 갖기도 했었습니다. 

중국 제 왕조를 보면 대체로는 고문헌과 전승에 근거하여 나라 이름을 지었는데 유목민들의 침투 왕조라 볼 수 있는 수(隋), 당(唐)은 유구한 고왕국의 이름을 채택한 것입니다(심지어 본격 찬탈 이전 단계에서도). 국명이 근본 없어진(?) 건 원 제국을 시점으로 명, 청에까지 계속되는데 저는 이 소설에서 특히 초(草)가 그리 느껴졌습니다. 물론 항우의 나라는 楚라서 완전히 다르고 말이죠. 아니나다를까 p101에 보면 어느 무당이 지금 저하고 비슷한 소리를 늘어놓다가 혀를 뽑히는 장면이 있어서 등골이 서늘해지기도 했습니다.(!) 

동물이라고 해도 귀한 혈통이라는 게 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몇몇 동물의 경우 오히려 사람보다 이 팩터가 더 중시되는 듯도 합니다. 소설을 읽으며 가장 슬프게, 또 무섭게 다가온 대목은 여러 개들이나, 야백 등 명마의 사연이었는데 고대 기록의 한혈마 등이 떠오르기도 했네요(p70 등). 명문의 혈통이든 절세의 용력이든 결국 주인의 손에 끌려 강제로 어떤 목적에 바쳐지는 건 종복의 운명과도 같으며 거죽만 사람일 뿐 거사를 치르고 용도폐기(p34)되는 건 사람이나 동물이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왕들은 어떠합니까? 겨레가 그에 위탁한 소명을 완수 못 하고 타국에 패퇴하면 결국 목숨을 내놓고 폐문멸족되는 비참한 신세로 떨어지고 비빈은 적국의 성노예로 전락합니다. 부러울 것도 억울할 것도 없이 세상사(世上事)와 역사(歷史)는 공평하게 슬프고 처참하고 덧없습니다. 누가 내 편이고 누가, 누가 적인지도 알 수 없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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