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 히포크라테스의 후예에게 고함
곽경훈 지음 / 포르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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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만나기 딱 열흘 전, 나는 생전 처음으로 응급실 풍경을 경험했다.

당뇨 환자인 시누이가 의식 저하로 의사 소통이 안되어

내가 119 구급대원을 불렀고, 당뇨 쇼크인 것 같다며 혈당 주사로 응급 처치를 한 뒤

구급대원이 집 근처 병원의 응급실 네 곳에 전화를 했지만 모두 환자를 받을 상황이 아니라는 말로 거절당했다.

우여곡절끝에 사설 응급차를 불러 서울의 모병원 응급실로 이송했는데

몇가지 검사를 한 뒤 여섯 종류의 링거를 동시에 꽂고

몇차례 피를 뽑아 검사 또 검사를 하더니 중환자실에 입원해야 할 상황이란다.

그런데 침상이 없단다.

24시간 간병인을 구해 일반 병동에 입원시킨 뒤 다행히 상태가 호전되어 열흘 만에 퇴원시켰다.

평소 병원을 잘 가지 않는 나는

그동안 의료 대란이 남의 일만 같았는데

막상 가족의 일로 응급실 상황을 겪고 보니 언제든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상황임을 처음으로 느꼈다.

의료 대란 이전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처음 119를 호출하고 나서부터 실제로 응급실에 도착하기까지 무려 10시간 이상 걸렸다는 것은

촌각을 다투는 응급 환자일 경우 응급실 도착 전에 죽을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곽경훈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쓴 이 책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가 너무나 현실적이고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동안 몰랐던 의학 용어도 일반인이 알아 듣기 쉽게 설명해주고

(시누이의 증상이 '당뇨병성 케톤산증'이란 걸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응급실에서는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을 만큼 모두가 바쁘게 움직였기 때문에 묻고 자시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응급 상황을 여러가지 에피소드로 엮으며

사람 사는 세상의 또 다른 면을 알게 해주었다.


사실 의사가 쓴 책이라고 해서 좀 딱딱하지 않을까, 재미없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전혀 딱딱하지 않았고 심지어 소설로 착각할 만큼 재미까지 있었다.

책은 모름지기 재미있어야 한다.

저자 역시 소제목 <크세노폰의 후예 p137>에서,

재미없는 책은 도저히 끝까지 읽을 수 없었다...고 적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저자와 하이파이브를 하는 느낌이었다.

책의 첫 장에 <빈정거리듯 건네는 이야기>라는 소제목으로 '여는 말'을 적은 것부터가

매우 인상적이다.

나쁘게 표현하면 삐딱하고, 좋게 표현하면 쓴소리다.



의사의 입장에서, 특히 응급실에서 일하는 임상 의사의 입장에서 동료들에게

우리의 직업 윤리가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

나아가 의료계를 넘어 전체 시민에게도 우리가 사회 구성원으로 살며 지켜야 하는

윤리가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

이 책은 그런 고민과 물음을 담은 기록이다.

p7 <빈정거리듯 건네는 이야기>





일반인들의 타인에 대한 편견부터 의료계, 법조계, 정치계를 아우르며 종횡무진

입바른 소리를 해서

읽는 내내 "이 사람 이래도 괜찮은건가?" 하는 괜한 우려까지 자아냈다.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말들이었다.

그 말들을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용기있게 뱉어냈다.

전공의들이 집단 사표를 내고 의료 공백을 만드는 사이에도 내가 만난 응급대원들과

간호사들은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지켜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쪽으로만 쏠렸다면, 모두가 부화뇌동했다면 분명 우리 모두 붕괴되었을 상황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이들이 있기에 이 사회가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게 아닐까.

가능한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소설처럼 재미있게 읽고, 철학처럼 깊이있게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당신은 의학을 믿습니까? - P13

폴 브로카와 왕의 DNA - P52

진료실 밖은 위험합니다. - P118

면도날이라 불린 남자 - P179

바보들의 치킨 게임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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