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김성인님의 서재 (김성인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3296191</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Mon, 06 Apr 2026 03:33:13 +0900</lastBuildDate><image><title>김성인</title><url>http://image.alad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73296191</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김성인</description></image><item><author>김성인</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파편을 먹고 자란 꽃 - [상처의 쓸모 - 가정 폭력 트라우마를 넘어 회복과 치유의 여정으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3296191/17096876</link><pubDate>Tue, 17 Feb 2026 01: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3296191/1709687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02033467&TPaperId=1709687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71/17/coveroff/k70203346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02033467&TPaperId=1709687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상처의 쓸모 - 가정 폭력 트라우마를 넘어 회복과 치유의 여정으로</a><br/>유수경 지음 / 책과이음 / 2025년 11월<br/></td></tr></table><br/>킨츠기(金継ぎ)라는 일본 고유의 도자기 수리 기법이 있다. 보통의 도자기 수리는 깨진 부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다듬기 마련인데, 이 기법은 세간의 상식을 뒤집는다. 깨진 도자기를 버리지 않고 금가루나 은가루로 균열을 장식하여 신비로운 도자기로 재탄생시키기 때문이다. ‘업사이클링’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공예. 언젠가 실제로 이 기법을 사용한 도자기를 만났을 때, 나는 단박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매끄러운 도자기의 피부 위, 신비롭게 아문 흉터 자국이 운동선수의 펄떡이는 정맥처럼 구불구불한 금빛을 뿜어내고 있었으므로.  &nbsp;  도공에 의해 구워지면서 완전(完全)을 약속받은 도자기는, 어느 날 예상치 못한 폭력에 휘말린다.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손끝이 잠자리 날개를 뜯고, 돋보기로 개미를 태우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렇게 당겨진 방아쇠. 그건 분명 선반 위 도자기가 원한 것이 아니었으나, 세계의 주먹구구는 주먹 쥔 손으로 구구단을 외고, 휘청이는 도자기는 팽이처럼 척추를 곧추세우고자 노력하지만. 늘 한결같은 중력은 예외를 허용치 않고 그를 정조준한 탓에, 사물의 비명이 정적을 채운다.   &nbsp;  아차. 무결한 신전에 오물이 묻었다. 하얀 옷을 입은 관습이 몰려와 울퉁불퉁한 조각을 비난한다. 왜 매끄럽게 존재하지 못했냐면서. 사람들 사는 게 다 그런데 왜 너는 균형조차 잡지 못해 이런 못난 꼴을 보이냐며 질책하고, 손가락질하고. 그럴 바에는 완전히 녹여 새것이 되는 게 낫겠다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유체 이탈 화법을 시도하는 개나 소나 대단한 너나 나나. 그래 누굴 탓할 필요도 없이 바로 첫 번째 나. 완전한 모양인 척 거드름 피우는 두 번째 나. 기계적 연민을 품고 손가락 클릭으로 애도하는 세 번째 나.  &nbsp;  위로한답시고 섣부르게 전한 말이 ‘폭력’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유수경’ 작가의 『상처의 쓸모』를 읽으며 깨달았다. 사실 이 책은 독서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가정폭력을 겪으며 삶을 이어갈 자신이 없었던 중학생 소녀의 자살 시도. 그것도 여러 번. 약물 과다 복용으로 병원에서 눈을 뜬 이야기와 어린 시절의 가정폭력 트라우마가 ‘상처’의 중심 서사로 기능하기 때문에. 작가의 이야기는 쉽게 읽혔으나 페이지는 쉬이 넘어가지 않았다. 종이가 한 장씩 넘어갈수록 작가의 상처가 쌓이는 기분이 들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부담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몰입했다. 감정 과잉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담담한 서술과 사건에 내재한 비극 사이의 괴리. 이 거리가 너무나 커서 읽는 내내 독자인 내 마음을 출렁이게 했기 때문이다.  &nbsp;  “마음의 상처는 그냥 둔다고 나아지지 않아요. 사람의 기억처럼 시간이 지난다고 흐려지는 게 아니에요. 우리 안에 잠복하고 있다가 삶 곳곳에 마찰을 일으킵니다,”  &nbsp;  마찰이 수류탄 파편처럼 등장하여 작가의 상처를 헤집어놓는다. 피고름이 멎고, 겨우 생긴 딱지를 누군가 다가와서 억지로 떼어낸다. 때로는 행동으로, 의식적인 말로, 무의식적인 위로로. 어쨌든 가늠할 길 없는 폭력의 덩어리가 파도처럼 처절하게 밀려들어 암초에 부닥쳐 산산이 조각나는 개미지옥. 멈추지 않는 출혈만큼 생은 희박해지고, 남편의 사랑과 태권도 관장님의 애정으로 간신히 일어섰다가 다시 수십 년 전의 자신과 마주하며 넘어지고. 글을 쓰겠다고 결심한 후, 작가는 빈번하게 자신을 무너뜨린 다음 재조립한다. 기억을 재구성하고 현장으로 들어가 어린 자신과 주변을 돌아본다. 굳은살이 박였다가 생채기가 생기는 악전고투 속에서. 나는 한 인간을 향한 ‘동정’이 아닌, 자신을 극복한 인간이 내게 전하는 ‘위로’를 느꼈다.  &nbsp;  조금 이상하다. 자신의 상처를 담담하게 꺼내놓는 이야기에서 ‘희망’을 느낀다니. 이건 마치 남의 장례식장에 가서 춤추고 노래하는 일과 다름없지 않나. 하지만 우둔한 내 머리로는 이보다 더 적절한 비유를 찾을 수가 없다. 그리하여 여전히 상상에 빠진 나는, 부러진 뼈가 더욱 단단하게 이어지는 슬로우모션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조각난 균열에 접착제를 바르고, 어긋난 것들을 서로 이어 붙여나가고, 흉터에 금가루를 뿌려 불후의 명작이 태어나는 장엄한 순간에는 입을 다물어야 하니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71/17/cover150/k70203346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7711793</link></image></item><item><author>김성인</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일상이라는 숭고 - [간호사로 사라지다 당원병 환아 엄마로 살아지다 - 희귀병 환아 엄마의 상실과 희망의 기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3296191/17093586</link><pubDate>Sun, 15 Feb 2026 12: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3296191/1709358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12135158&TPaperId=1709358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67/46/coveroff/k91213515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12135158&TPaperId=1709358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간호사로 사라지다 당원병 환아 엄마로 살아지다 - 희귀병 환아 엄마의 상실과 희망의 기록</a><br/>이윤지 지음 / 정미소 / 2026년 02월<br/></td></tr></table><br/>&lt;일상이라는 숭고&gt;: 이윤지, 『간호사로 사라지다 당원병 환아 엄마로 살아지다』(2026)을 읽고&nbsp;중환자실에 누워 있을 때, 천장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불행으로부터 사랑받고 있구나! 하필이면 짝사랑일게 뭐람.’ 반 쪼가리 사랑은 정신이 아프므로 완전을 갈망하는 법. 집착에도 정도가 있지. 보이지 않는 칼을 들고 세 시간마다 명치를 쑤셔대는 통에 가슴에는 자랑스러운 멍울이 생겼다. 덩달아 따라온 당뇨라는 스토커. 끼니때마다 열 손가락 끝을 바늘로 후벼댄다. 덕분에 모공까지 두꺼워진 기분이다. 그러다가 혈당 수치가 급격하게 높아지고 인슐린을 맞게 되면서, 뱃살에는 수십에서 수백 개의 구멍이 하루에 세 번씩 생겼다. 모공보다 바늘구멍이 더 많아진 것 같다는 기분이 들 때쯤, 멍투성이 혈관을 헤집는 링거 바늘이 차갑게 속삭인다. 애먼 생각 말고 나에게 집중하라고. 어휴. 이놈의 인기는 어쩔 수 없나보다.&nbsp;고통은 인간을 하루에도 수십 번 무너뜨린다. 더 이상 바닥까지 갈 일이 없는 것 같은데도 계속 땅이 파진다. 이러다가 맨틀과 핵을 넘어 지구 반대편까지 넘어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아픈 게 조금은 나아지려나. 중력은 중심을 향하고, 나는 지구 반대편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중력에 의해 지금 이곳으로 다시 귀환했다가. 고통 또한 심해졌다가 나아졌다가 자이로드롭을 탄다. 기약 없는 고통보다는 고통의 완급조절이 좀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이로써 하나의 명제를 폐기하기로 했다. 몸과 마음은 별개라는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 마음의 고통 또한 다시 몸의 고통으로 환원되는 현상을 겪으며, 몸과 마음은 양방향. 더 나아가 그것은 동전의 양면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여러 망상에 빠져 해탈할 뻔했던 나는 다행히 이승으로 귀환했다.&nbsp;무너져본 사람으로서, 나는 무너졌거나 무너지는 사람에게 동지 의식을 느낀다. 분명히 말하건대 ‘동정’ 따위가 아니다. 그들에게 굳은살이 생겼음을 잘 알고 있어서다. 그러면서도 삶에 더욱 예민해졌다는 것을 또한 잘 알아서다. 무뎌지면서 예민해지는 모순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무방비로 무저갱에 추락하여, 피투성이가 된 채 깜깜한 어둠 속을 헤매다 보통의 삶을 향해 기어 올라가는 일. 이 형용할 수 없는 고군분투를, 나는 입이 있지만 말할 수 없고, 손이 있지만 글로 쓸 수가 없다. 감히.&nbsp;이런 이유에서다. 이윤지 작가의 『간호사로 사라지다 당원병 환아 엄마로 살아지다』를 읽은 것은. 니체가 ‘피로 쓴 글’만을 사랑한다고 했을 때. 물론 그것은 은유였겠으나, 이 책은 ‘피로 쓴 글’이 이러함을 증언한다. 첫째 아이의 병을 검색했을 때 ‘10만 명당 1명꼴로 나타나는 유전성 희귀 난치 질환’, ‘현재까지 치료 약과 수술 방법이 없음’이란 건조한 액정을 보며 작가는 피를 토한다. 간호사인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한편 ‘유전’이란 단어는 투명한 칼이 되어 작가를 난도질한다. 엄마는 만신창이가 된 채 마지막 문장을 읽는다. ‘보통 4세가 되기 전에 사망’. 그리고 2년 뒤, 둘째 아이도 같은 진단을 받는다. 그런데.&nbsp;“물결에 휩쓸려 깊이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도 아니고 물이 허리까지 차오른 것도 아니고 겨우 발끝만 젖었을 뿐이다. 이 정도쯤이면 너무 오래 주저앉아 있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nbsp;대체 이런 문장은 어떤 상태에 다다라야 쓸 수 있는 걸까. 환아의 엄마가 되어보니 평범한 하루가 가장 중요했다는 고백. 그리고 아이의 삶이 미움으로 점철되기보다는, 병을 자기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 사랑하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자기다움을 잃지 않고 살길 바라는 이런 관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어쩌면 나는 작가 마음의 표층만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예쁜 표지와 마음을 움직이는 책 소개 너머, 층층이 퇴적된 삶의 무게가 나를 짓누른다. 그 육중한 무게에도 불구하고 초연하게 ‘희망’을 말하는 작가가. 나는 너무나 경이롭고. 도저히 풀 수 없는 매듭 앞의 그가 너무나 눈부셔서. 깜깜한 나로서는 쳐다볼 수가 없다.&nbsp;밤하늘에 뜬 별은 거울이 없어서 스스로 빛나고 있는 줄 모른다. 그래서 내가 대신 말해주려 한다. 당신의 반짝임이 세상 모든 희귀 환우 가정을 비추고 있다고.]]></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67/46/cover150/k91213515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674681</link></image></item><item><author>김성인</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눈부신 결심 - [육아휴직, 이왕이면 잘하고 싶어 - 직장인을 위한 리얼 육아휴직 가이드북]</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3296191/17074575</link><pubDate>Fri, 06 Feb 2026 04: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3296191/1707457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42135038&TPaperId=1707457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08/64/coveroff/k942135038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42135038&TPaperId=1707457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육아휴직, 이왕이면 잘하고 싶어 - 직장인을 위한 리얼 육아휴직 가이드북</a><br/>안원지(다씽) 지음 / 드림벙커 / 2026년 01월<br/></td></tr></table><br/>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자 하는 갈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이런 원초적 갈망을 유전자의 영향이라든가, 특정 호르몬으로부터 비롯된 생리학적 작용이라며 말하고 싶지는 않다. 과학이 신봉하는 원인과 결과의 법칙으로 해명하기에는 부모—자녀 관계가 너무나 비대칭이라서다. 무조건 주고, 무조건 받는 사이.  &nbsp;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은 개인의 역사에서 ‘빅뱅’과 다름없다. 이전 과정은 중요치 않다. 탄생 이후에는 우주가 재편되니까. 아이의 중력은 몹시 강하므로 늘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수밖에 없다. 새벽 수유로 잠 못 자는 날들이 이어지지만 그래도 괜찮다. 말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니까 울며 보챌 수도 있지. 걷지 않고 자꾸 안아달라고 떼쓰지만 그래도 괜찮다. 근육과 뼈가 덜 발달했을 테니 아무래도 다리가 아프겠지. 패밀리 침대에서 잠자다가 아이 발에 맞아 뺨이 부어올라도, 늘 괜찮다 괜찮다고만 하는 부모들은 사실 괜찮지가 않다.  &nbsp;  아니, ‘안 괜찮다’를 넘어 힘들 때가 많다. 다만 감내할 뿐이다. 그들의 부모를 떠올리거나, 아이의 웃음을 보면서 받은 사랑과 주는 사랑의 힘으로 고통을 희석한다. 고통의 총량이 유지되는 세상이지만 사랑이 그것을 견디게 해주는 것이다. 부모는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추억이란 놈이 늘 그렇듯 시간이 흐르며 아름답게 발효된다.   &nbsp;  그러니까 아이를 낳고 잘 키우겠다는 결심은 위대할 수밖에 없다. 그건 아이의 전 생애를 책임지겠다는 각오이고,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고통의 총합을 아이 대신 짊어지겠다는 의지이기 때문이다. 매 순간 사랑할 순 없겠지만, 오히려 화를 낼 때가 더 많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이 끝날 때까지 너의 편이 되어주겠다는 일생일대의 서약이라서다.  &nbsp;  나는 육아휴직 또한 이런 결심의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현대 사회에서 먹고사는 일은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아이를 잘 키우는 일이란 것을 다시금 되새기는 결심이니까. 최근에 읽은 ‘안원지’ 작가의 책 『육아휴직 이왕이면 잘하고 싶어』는 이런 내 생각에 확신을 심어줬다.  &nbsp;  제목부터 인상적이다. 완벽한 육아휴직의 기술을 자랑하기보다는, 스스로 부족함을 자인하며 아이와 함께 성장해 보겠다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느껴지는 책. ‘이왕이면’이 ‘오히려 좋아’란 단어와 닮아 보이는 건 착각일까.  &nbsp;  작가는 호기심이 많다. 보통 여러 가지를 좋아하면 어느 한 가지가 깔끔하게 마무리되기 어려운데, 그는 시간을 쪼개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하나씩 이루어나간다. 아이 키우는 일과 엄마의 마음을 돌보는 일. 두 마리 토끼를 세심하게 살펴서 어떻게든 잡아낸다. 물론 헤맬 때도 있다. 하지만 그는 잘못을 즉각 알아채고, 성찰하여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즉각 행동을 바꾼다.  &nbsp;  “그 시절 제 손에는 늘 폰이 쥐어져 있었고, 아이를 위한 영상을 본다는 착각 속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제 옆에는 혼자 누워 저를 바라보는 아이가 있었어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나는 아이와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왜 타인의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지?’ 하고요.”  &nbsp;  내가 책을 읽으면서 가장 놀랐던 점이 바로 이것이다. 즉각 바꾸는 ‘속도’. 자신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 언젠가 작가를 만났을 때 호기심 많은 자신을 ‘귀가 얇다’라며 희화화한 적이 있었는데,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저는 당신에게 집중하고 있어요.” “이왕 하는 거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할래요.”란 말처럼 들려서. 오히려 부러웠다. 나는 아이 말에 집중하지 못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이와 놀아주기보다는 놀아주는 척, 뒤에선 쇼츠나 뒤적이는 둔감한 내 모습이 오버랩됐다.  &nbsp;  육아휴직을 결정하기까지의 고민과 자신의 실수를 이토록 진솔하게 풀어낸 책이 또 있을까. 읽는 내내 작가의 친근한 오지랖이 느껴진다. 당신이 겪는 고민과 시행착오는 잘못된 것이 아니며, 홀로 감당해야 하는 모든 순간에 내가 옆에서 손잡아주겠다는 각오! 함께 좋은 부모가 되어 보자는 햇살 같은 메시지가 너무나 눈부셔서. 나는 잠시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08/64/cover150/k942135038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086447</link></image></item><item><author>김성인</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흐릿해진 사람 색칠하기 - [나의 사전연명의향서 - 죽음을 인식하면 삶은 다시 정의된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3296191/17030973</link><pubDate>Mon, 19 Jan 2026 12: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3296191/1703097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034621&TPaperId=1703097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41/91/coveroff/k46203462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034621&TPaperId=1703097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의 사전연명의향서 - 죽음을 인식하면 삶은 다시 정의된다</a><br/>김지수 지음 / 북루덴스 / 2026년 01월<br/></td></tr></table><br/>오래전, 중환자실에 누워 천장 텍스의 구멍을 헤아리고 있을 때였다. 서늘한 느낌이 들어 팔뚝에 달린 주삿바늘을 살펴보니, 주렁주렁 연결된 투명한 전깃줄 내부에서 붉은 것과 허연 것이 뒤엉키고 있었다. 전선을 따라가 봤다. 형형색색 놀이동산 풍선처럼 매달린 마약성 진통제, 영양제, 이름 모를 수액들. 생명 없는 것들이 생명에게 숨을 불어넣는 아이러니가 우습게 느껴질 때쯤 하얀 천장에서 검정 벼락이 쳤다. 미세 신경 따라 세포 하나까지 온전히 전달되는 구체적인 감각에, 나는 내가 낯설어졌다.  &nbsp;  “살아 있다는 것. 이 표현의 낯섦이 갑자기 나를 후려친다. 마치 그 표현이 그 누구에게도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에밀 시오랑은 그때의 나를 보고 이 문장을 쓴 걸까. 모든 것이 충만한 삶에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죽음. 그 사이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한 나는, 형량이 확정되지 않는 미결수처럼 병실에 머무른다. 경계에 선 다른 사람들과 그들에게 내려진 선고를 청취한다. 삶 또는 죽음이라는 명료한 이분법은 법칙에 어긋난 교집합을 억지로 지워간다. 선명한 사람들 사이에서 흐릿한 사람들을 배제한다. 그렇게, 처음부터 태어난 적 없던 사람이 된다.  &nbsp;  중환자실은 푸코가 말한 ‘헤테로토피아’에 속하는 곳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정상 세계에서 유리된 다른 공간들. 일반적인 공간과는 다른 논리와 질서를 가진 이질적인 장소. 사회는 이곳에 애매한 사람들을 가둬두고 ‘아름다운 세상’이라 명명된 함수를 증명한다. 살아있는 사람은 어쨌든 계속 살아가야 하니까. 죽음을 오래 보고 느끼는 일은 아무래도 불가능하니까.   &nbsp;  죽음은 도처에 있으나 사람들의 눈과 귀는 편집된다. 채널을 돌리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자극적인 보도가 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오랜 간병 기간과 환자들이 겪는 통증은 반쯤 접혀 원무실 서랍에 차곡차곡 정리된다. 그리하여 통증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건 개인적인 일이 된다. 홀로 견디는 시행착오는 사실상 답이 없다. 죽음을 두 번 경험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일분일초마다 겪는 통증은 늘 최초다. 아무는 게 불가능한 생채기에 눈처럼 하얀 소금이 뿌려진다. 비틀리는 허리와 꺾이는 표정. 입은 물속에서 뻐끔대며 소리친다. 목구멍에 고여버린 나지막한 소음. 축 처진 몸은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곳으로. 과연 이 과정에 ‘인간다움’이 존재할 수 있을까. 진통제 효력이 떨어질 때마다 초열지옥(焦熱地獄)으로 추락하여, 골절된 짐승처럼 웅크린 채 차라리 죽음을 바라는 자에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지요.”란 말을 할 수 있을까.  &nbsp;  김지수 작가의 『나의 사전연명의향서』를 읽었다. 보건의료 전문기자로 활동하며 쌓아온 전문성을 배경 삼아, 작가 자신에게 아로새겨진 깊은 상처로 조금씩 쌓아 올린 구원의 성채. 작가는 자신의 우울증을 숙고하고, 트라우마가 되었던 아버지의 죽음을 천천히 회상한다. 중환자실과 호스피스 병동에서 만난 경계에 선 사람들에게서 아버지를 본다. 어린 시절 기억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표정을 본다. 실오라기 같은 근육의 어긋남을 보며 아버지의 표정을 감각한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존엄’을 발견한다.  &nbsp;  “죽고 싶은 생각에 시달리는 삶에서 ‘죽음’을 생각하는 삶으로 바뀌면서 일상의 위대함을 깨닫고 존엄한 삶이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됐다.”  &nbsp;  문득 ‘존엄’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단순한 행정 서류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기 위한 안내서다. 죽음을 고민할수록 삶은 찬란해지는 법이다. 경계인은 양 눈으로 이쪽과 저쪽을 본다. 대부분은 멍하니 보고만 있으나, 누군가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 이를테면 고통을 겪는 한 사람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 눈을 크게 뜨고 태양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일.  &nbsp;  책 속 후두암 말기 환자가 그랬다. 아무런 보상도 없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고통을 이겨내며 인터뷰하는 그의 모습. 작가는 그를 본다. 나는 작가를 보며 무언의 신념을 느낀다. 아버지의 사랑과 작가의 인간애가 겹치는 장소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온다.<br>#김지수작가 #나의사전연명의향서#고유동작가 #북에세이]]></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41/91/cover150/k46203462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2419183</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