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너를 위해 준비했어
농호 상하이 지음 / OTD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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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서두에 -- 

[[ 유서 깊은 도시, 상하이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상하이인의 정체성과 역사적 의미가 깃든 장소들, 현재 상하이의 트렌드, 도시를 상징하는 명소들을 찾아가 본다. 이방인이 아닌 거주자의 시선으로 도시 문화를 상세히 소개하고 있으며 도시 곳곳에 일고 있는 새로운 변화의 분위기에 대해 설명한다. 과거와 현대를 잇는 아이디어 넘치는 콘텐츠의 세계가 저자의 감각적인 문체로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한국의 스타필드나 더현대와 같은 쇼핑몰 완샹티엔디, 100년이 넘은 가위 가게,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 찰리 채플린이 머물고 간 화평 반점 그리고 아픈 역사가 담긴 와이탄, 5년간의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다시 태어난 록번드, 상하이의 상징물인 동방명주 등, 볼거리 가득한 상하이의 모든 것을 ]] 


여행객으로도 많이 찾는 중국의 상하이는 여느 도시와는 다른 면모를 내뿜는다.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 문화적으로도 많은 변천의 길을 겪은 그 도시를 탐방 하는데 한권의 도서가 힘을 보탠다. 


구글 지도를 보면 우리나라 남단 제주도 보다 위도 아래 이고 ,  중국의 서안쪽 , 그리고 항저우시 위쪽에 위치헤 했는  상하이는 중화 인민 공화국의 4개의 직할 시 중의 하나 이다.  도심으로는 한강 처럼 황푸강이 관통 하여 흐르고  2022년도 기준 약 3930만명이 상하이 대도시권에 거주 하고 있다 .  또한 중국 본토에서 국내 총생산이 가장 높의 도시 중의 하나 이기도 하다. 



우리가 알다 시피 상하이는 거슬러 올라가면 대한민국의 임시정부의 요람이기도 하였다.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등의 독립운동가들의 이역 만리에서 산실의 역할도 하기도 하였다... 


사실 상하이가 오늘날 이렇게 국제적인 다양성의 문화와 요리 ,  서구적인 건축 양식을 가지게된 기원 조차도 그들의 아픈 전쟁 ( 1840년 1차 아편 전쟁 이후  상하이는 서구 유럽 열강의 조약항 5개중 하나에 포함이 되었다. ) 의 역사를 간직한 상처 이기도 하다, 


 관광지역으로 많이 손꼽이고 있는 상하이의 푸동 지구는 1990년대 이후 덩샤오핑이 도입한 경제 개혁으로 금융 회수와 외국인 투자를 통해 이곳의 대대적인 재개발이 이뤄진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어러한 개방 경제 덕분으로 사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외국인 관광갹들은 자본주의 경제에 속한 도시 지역 인것 처럼 느껴 지는 이유중의 하나이다.  경게와 더불어 아르데 코및 시쿠텐 같은 독창적인 건축 기법으로 상하이는 동방 명주탑 , 상하이  성황 묘 예원  2010 엑스포 중국 국가관 , 와이탄 일대의 건축물은 역사적 가치가 있으며  루자쭈이 마천루로도 명성을 얻고 있다. 


저자는 중국의 어느거리 어느 도시를 걷더라도 맛집에는 가보자고 한다 , 미식의 나라 중국 그중에서도 상하이는 동서양의 요리의 집합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고 , 최근 세계화의 트랜드에도 부합한다...  아래는 그소개 --영화로도 유명한 <색 .계> 의 거리 우캉루 ,,탕웨이가 연기한 왕치아즈가 양조위가 연기한 미스터 이를 놓아준 후 떠나는 장면이 이곳이고 프랑수 조계지엿던 인영능로 도심정원이 유명하고 가로수 길에 즐비한 맛집이 미식가들을 반긴다.. 또한 이지역의 가장 높은 건물인 378호의 영어명 퍼거슨 레인이 영화속의 그 지명이다. -태국 맛집 스페니쉬 맛집 브런치 매뉴 , 프랑스 스타일의 빵집 ,노천 카페 ,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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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의 대표적인 요리에는 무엇이 있을까 , 한국에서 유명한 햄버거 가게의 상하이 스파이시 버거는 존재 하지 않는ㄷ.. 이곳은 매운 음식 보다도 , 간장과 식초 , 설탕을 기본으로 한 음식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파기름 ,,  아침 식사나 간식으로 상하이 총요비으 요우티아노ㅡ 도우장 , 마치우 , 상하이 국수 파기름 비빔면 총요반미엔 과 게살 국수 시에황미엔을 , 저녁 일품은 민물 장어 ( 샹용 쏠스 ) 와 새우 요리 ( 요우 바오샤 ) 그리고 생선 튀김등이 있다.. -채소와 새우살이 들어간 퀴티에샤오탕차이도 빼놓을 수 없는 미식 음식이다. 


그리고 지역적으로 구분 하자면 동베이 요리, 강남 요리, 광동 요리, 쓰촨 요리 정도로 구분 되는데 미식 여행을 작정 한다면 한곳 과 여러곳을 들을 수 잇다면  수일 또는 수주일의 일정도 모자라는  맛의 보고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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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그냥 가기 서러운 화궈요리이다.. 지역병 화거가 다른데 충칭 화궈는 -맵고 얼얼하며 , 청두 화궈는 -향굿한 매운맛이 , 광동 화궈는 맵지 않는 육수에 해산물과 육류가 다양하다 , 차오산화궈는 -깊고 진한 육수에 정말 맛있는 소고기와 해산물등이 다양한 매력 ~ 


여러 도시를 탐방 하는 재미는 사실 그곳의 시간과 공간을 만끽 하는 것이며 혼자 혹은 여유로운 또다른 이방인이던 친구던 연인이던 같이 할 마음 맛는 사람이 있다라는 것이 더 중요 하지 않을까 ,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맛닥 뜨리는 노천 카페와 잘 알지는 못하지만 향굿한 냄새에 이끌여 식사를 하게 되거나 ,  건물에 유서깊은 박물관이나,  지역에 있는 잘 가꿔진 정원과 거리를 보는것 즐기는것  역사를 보는 안목도 한자 더 깊어 질 수도 있는 일일 터이다.. 늘 인생은 우리에게  그렇게 시간과 공간을 언제나 허락 하였지만 나와 본인 그리고 주변 여건으로 결정 사항이 미뤄지기 때문에 다하지 못하는 것일 뿐 .. 언제가는의 일정이 어쩌면의 일정으로 바뀌어 지길 고대 하면서 말이다 비오는 장마 오늘도 열심인 당신의 삶을 응원 한다. ~~ Written by  E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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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대지 - 간도, 찾아야 할 우리 땅
오세영 지음 / 델피노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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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서두에 

[대동여지도로 유명한 지리학자 김정호가 백두산과 주변 지역을 상세히 조사하고 기록한, 그러나 현재는 전하지 않는 지리지인 대동지지(大東地志) 제26권 ‘변방고(邊防考)’를 추적하며 겪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이다.


우연히 미국에서 전해진 “리뷰 오브 코리안 보더(Review of Korean Boader)”란 영문 문서에서 그간 전설처럼 전해지던 ‘변방고(邊防考)’의 실체가 확인되면서 주인공 윤성욱의 여정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과연 ‘변방고(邊防考)’는 어디에 있을까? 또 어떤 내용이 쓰여 있길래, 왜 사라진 것일까.] 


역사적 사실과 세계사 연대기를 절묘 하게 마춘 조합이랄까 .  한국의 간도 나아가서 북간도라는 지명은 현제 어디에 있고 우리역사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었을까 -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면서 이야기의 실마리를 찾아 가는 마치 한편의 추리물을 읽어 내리는 듯한 재미가 있는 글이다. 


우선 지명에 대한 고찰 이다. -  Source from 우리역사넷 

[ 간도의 어원과 범위  

간도라는 말에는 고종 초기 함경도 사람들이 두만강을 건너 개간지를 확대해 간 삶이 투영되어 있다. 1860~70년대 함경도에 대기근으로 많은 사람들이 두만강을 넘어 이주하였다. 그러나 정부의 관할 밖이었고 아직까지는 남의 국경을 침범하는 ‘범월(犯越)’이라고 하여 불법행위였다. 지방관 차원이었지만 조선정부가 그 개간을 용인한 것은 함경북도 종성군 두만강 가운데에 있는 퇴적된 섬이 시초였다. 사잇섬이라는 뜻의 한자어 간도(間島)라는 명칭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두만강 북쪽변까지 개간지를 확대하면서 개간지라는 뜻의 간도(墾島)라는 말도 혼용되었다. 종성군은 토지대장인 『간도야초(間島野草)』를 작성하여 세금을 거두어들였다. 청일 전쟁 이후 해란강 지역까지 한인들의 개간지가 확대되면서 같은 간도(間島)라는 말을 쓰면서도 해란강과 두만강 사이 지역이라는 의미를 담기도 하였다. 또 영토문제와 결부되고 두만강변의 군과 연계되어 간도지역을 나누어 무산간도, 회령간도, 종성간도, 온성간도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북간도(北間島, 北墾島)와 서간도(西間島, 西墾島)라는 말은 대한 제국기에 등장하였다. 1902년 대한 제국은 간도지역에 이범윤을 파견하여 주민을 보호하였다. 이때 그의 직함은 함북간도시찰(咸北間島視察)이었는데, 이를 줄여 ‘북간도시찰’이라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북간도라는 지역명칭이 사용되었다. 북간도라는 말에는 함경북도의 일부인 간도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으로 대한 제국 정부의 적극적인 간도정책의 산물이었다. 압록강 대안지역을 서간도라 부르기 시작한 것은 그 이후로 북간도의 대칭이었다. 함경도를 관북(關北)으로 평안도를 관서(關西)로 부르는 전통도 한 몫 하였다. 조선시대 압록강 대안지역은 ‘강북(江北)’이라 불렸다.


1907년에 설치된 통감부간도파출소는 현재 중국 연길지역 전체(당시 연길청)를 동간도라고 부르고, 길림 남부의 송화강 상류를 서간도로 지칭하였다. 이것은 통감부 파출소가 임의로 나눈 것으로 만주침략의 매개로 간도문제를 활용하려는 의도였다. 만주국 시기에 설치된 간도성(間島省)은 연길에다 혼춘(琿春) 지역을 포괄하였다.


이처럼 간도, 북간도, 서간도라는 명칭과 범위에는 한인들의 개척의 역사, 대한 제국의 간도정책, 일본의 만주 침략정책 등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두차례 걸친 청나와 와의 감계 협상 이다. - 아래는 전문 


" 조선정부가 수차례 토문감계(土門勘界)를 제기하여 마침내 양국은 1885년 을유감계(乙酉勘界)와 1887년 정해감계(丁亥勘界) 등 두 차례 영토문제 협상을 벌였다. 이에 따라 주민 귀환 문제 논의는 일단 유보되었다. 을유감계에서 조선 측 협상대표인 감계사 이중하는 백두산정계비의 토문강은 두만강과는 다른 강이며, 해란강-분계강을 양국 경계로 할 것을 주장했다. 


분계강(分界江)이라는 명칭은 조선후기 여러 지도에 실려 있는 지명으로 고려시대 윤관의 선춘령비와 연계되어 이해되어 왔다. 반면 청 대표는 토문(土門)은 두만(豆滿)을 다르게 부르는 이름으로 토문강이 곧 두만강이며, 백두산이 자신들의 발상지라는 전제 하에 백두산 아래 소백산에서 발원하는 두만강 물줄기를 경계로 삼을 것을 주장했다. 청으로서는 두만강과는 무관한 백두산정계비 존재 자체가 최대의 약점이었다. 


그래서 조선 측이 정계비를 옮겼을 것이라고 주장하여 정계비의 가치를 축소시키려 했다. 그리고는 당시 양국 관계를 환기하며, 조선 측이 정계비의 송화강 발원을 경계로 삼으려는 뜻인가 하고 역공하였다. 


이중하는 토문강이 해란강과 이어지지 않는 조사 결과와 조선시대의 문헌 중에 토문강이 곧 두만강이라는 기록을 확인하면서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협상 과정에 청 관리가 위협적인 말을 쏟아내기도 했지만, ‘토문’은 ‘두만’이 아님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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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찮게 미국에서 전해진 " Reviw of Korean Boader" 란 영문 문서에서 전설 처럼 전해지던 " 변방고"의 실체를 확인 하면서 부터 주인공의 스토리가 시작이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동 여지도의 김정호 - 

『대동지지(大東地志)』는 목판본의『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22첩을 간행한 1861년 이후부터 1866년경 사이에 김정호(1804∼1866)가 편찬한 32권 15책의 필사본 전국 지리지이자 역사지리서이다.

김정호는 목판본의『대동여지도』22첩 등 주로 지도의 제작자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지도와 지리지를 함께 제작한 지리학자이며,『대동지지』는 그가 마지막으로 편찬한 지리지이다. 현재 완질본이 고려대학교 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이 김정호의 친필본으로 알려져 있다.


문헌의 내용으로는  == 

[ 전국 지리지로는 경도(京都) 및 한성부(漢城府)가 1권, 경기도가 2∼4권, 충청도가 5∼6권, 경상도가 7∼10권, 전라도가 11∼14권, 강원도가 15∼16권, 황해도가 17∼18권, 함경도가 19∼20권, 평안도가 21∼24권까지 수록되어 있다. 하천에 관한 내용인 산수고(山水考)는 25권으로, 국경 방어에 관한 내용인 변방고(邊防考)는 26권으로 편제되었지만 내용은 수록되어 있지 않다.

수도인 한양에서 전국 중요 지점까지의 거리 정보를 정리한 정리고(程里考)가 27∼28권에 수록되어 있고, 28권에는 역참(驛站)과 관련된 내용인 발참(撥站)과 연변해로(沿邊海路)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총 정리하여 체계적으로 기록한 방여총지(方輿總志)가 29∼32권까지 수록되어 있다.] 


이글 주제의 쟁점은 이 지점 부터 이다. 사라진 혹은 이미 26권으로 당시 편제되었고 이후 32권까지 수록된 전국지리서 중 변방고- 에 대한 내용만 빠져 있다라는 부분의 합리적인 의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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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1800년도는 청나라의 국제 정세도 매우 급변 하는 단게이고 1860년대의 아편 전젱 이후로 서강의 세력이 물밀듯이 들어올떼 한편으론 국제 지리학자인 - 독일인 리히트 호펜 - ( 아래 주 참조)도 극동 지방의 경게를 조사차 -이보다 무역루트 개척에 도움을 줄  아시아 -유럽간 실크로드 지리지에 더 관심을 가졌겠지만 -  동방의 지리학자와 조우 하였다라는 한편의 드라마 같은 우연과 필연을 적은 이야기가  나머지 찾지 못한 

' 변방고' 에 대한 당시 간도 , 북간도,의 경계선에 대한 부인 할 수 없는 실효적 지배와 한민족의 정착 이주터로서 자리매감한 당시의 나라간 경계에 대한 각국 열강들의 계산법이 다르지 않는 이상 자신에게 유리한 고문서의 입수를 학수 고대하며 벌였던 보이지 않는 스파이 전이 아니었을까라는 작가적 퀀덤 점프 상상력에  놀라움을 선사 한다. 


만약 , 그문건이 진실로 존재 하였고  ,  압록강 너머 백두산 정계비에 씌여져 있는 토문강의 발원 위치가 그보다 더 나아간 위치 라면 ,  청일 전쟁 이후 부터 꾸준히 주장의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맞춤옷을 입히는 격이고 중국으로서는 남 중국해 지리적으로는 중국 연안이나 지속적으로 경계 분쟁을 겪고 있는 -센카투 열도 분쟁의 복사판 아닌 상황이 이뤄 질 수도 있으로라는 추정이다. 


[[ 센카쿠/댜오위다오는 동중국해상에 위치한 8개의 무인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본, 중국, 대만 세 나라가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이 열도는 총면적 6.32㎢로서 대만 북동쪽 200㎞, 오키나와 서남쪽 약 300㎞, 그리고 중국대륙 동쪽 300㎞에 위치하고 있다. 센카쿠/댜오위다오는 석유, 가스 등 중요한 천연자원으로 인해 독도/다케시마보다 더 중요한 경제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특히 대만의 애매한 위치 때문에 센카쿠/댜오위다오 문제는 더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본은 센카쿠/댜오위다오가 1885년 오키나와현이 조사하기 전까지 어느 나라의 것도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1895년 1월 14일 일본은 센카쿠/댜오위다오를 공식적으로 일본 영토로 편입하기 위한 기념비를 세웠다. 따라서 일본은 센카쿠가 일본 영토였기 때문에 1895년 5월 청일전쟁 후 체결된 시모노세키조약에 의해 중국이 일본에 양도한 섬이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지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점령 하에 있다가 일본에 반환되었다. 일본은 주인 없는 섬을 자신들이 차지한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16세기 명나라 사절단들이 조공을 바치러가던 항해 중에 가장먼저 류큐제도(오키나와)를 발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일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의해 오키나와가 미국에 이양될 때 센카쿠/댜오위다오는 오키나와의 영토에 편입되었다. 그 협상과정에 중국과 대만 누구도 참여하지 않았지만 1968년 유엔이 이 부근의 해저에 석유를 포함한 막대한 천연자원이 대량으로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부터 센카쿠/댜오위다오를 둘러싼 각 나라의 영유권 주장이 시작되었다.]] 


당시 조선이라는 미약한 존재는 청,러, 일, 독,영, 미 의 열강들에 둘러싸인 바람앞의 등잔과도 같은곳 , 열강들 사이에 자기주장이라는 것이 의미 없는 시절이다. 따라서 , 영토 분쟁 또한 나라별 문화적 , 그리고 생태학적으로 이미 수백년을 살고 실효 점유 하였던 땅덩어리 조차 잊고 살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은 가볼 수 없는 곳 , 존재 하지만 우리의 손길에 닿을 수 없는 그곳에 우리 선조들의 혼과 숨이 살아 있다고 믿는다. 

언제가 다시 우리 당대에 혹은 후손들이 그곳 땅을 밣아 새로이 나라간 경계와 감계를 토의할 그날이 오기를 다시 한번 기도를 올려 본다..  오늘의 생각들 ,. 용정 - 명동촌 - 독립운동의 산실이기도 한곳이다.  Written by e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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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단장해드립니다, 챠밍 미용실
사마란 지음 / 고블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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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서두에 

[ 이 책은 죽은 자와 산 자, 신비로운 설화적 존재와 평범한 이웃들이 동시에 공존하는 작은 동네를 무대로 삼는다. 그리고 죽은 자들의 소원을 이뤄주며 초월적인 존재들과 소통할 수 있는 미용실 주인 ‘챠밍’과 한반도에 수백 년간 살아왔으며 현재는 복덕방을 운영하는 도깨비, 이제 막 초월적인 존재들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의명’, 세 명의 주인공이 현월동 이웃들과 함께 겪어나가는 따뜻한 소동을 그려낸다. ] 


우선 이책의 작가 소객 이채롭다.  - " 공포소설 레이블 괴이학회 소속 작가, 아무것도 모르지만 일단 쓴다, 잘르 불문 제미 있는 글을 쓰고 싶다. " 이다. 


주제 전반에 흐르는 내용은 산자와 죽은자를 이어 주는 영매 ?  혹은 저승 사자의 대리인이다. 그들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이미 죽았거나 죽을 시간이 다가오는 사람에게 보이는 ?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접했을 법한 시츄에이션이다. 


하지만 약간 다른 스토리는 여기 차밍 미용실 여주인은 무려 500여년 이상 판이라는 저승의 심판자와 이승과 저승을 연결 하는 도깨비 , 그걸 구체화 하는 챠밍미용실에 전속 계약이 된 미용사 이다.  낮 시간에는 이승처럼 밥 벌이를 해야 해서 일반 손님들을 받고 수고비를 받아 쌀을 사고 먹거리와 더울 때는 시원 하게 맥주 한잔도 한다. 


밥이되면 노란색 네온으로 바뀐 간판은 낮시간의 사람들은 찾아 오거나 볼수 없는 공간으로 바뀐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올라가고자 한많은 사연을 안고온 사람들이거나 불의의 객이 되어 헉공을 수년 수십년간 떠돈 영혼들이 자기들의 속내를 애기하고 머리 단장을 받고 가는곳  


어느날인가 , 어떤 날인가 사람들은 이미 떠나간 사람들 그리워 하며 만나길 희망 하지만 현실에선 불가능한 선택 이라는 걸 우린 안다. 하지만 방법이 있다.  


사람들의 꿈에 저승에 가 있는 사람들을 불러 오는 일이다. 그건 바로 챠밍 미용실의 주된 작업 이기도 하고 인간 세상에서 이를 소통 할 수 있는 영매를 끌어 모아 판-저승사자에게 신규 계약을 시키는 일이다. 


하지만 본인과 도깨비와 같이 허름한 동네에서 허름한 인생살이들 보고 듣노 라면 자신들도 모르게 인간세상에 빠지고 동정심 마저 일게된다. 그레서 죽을 운명을 비껴가게 하려는 노력도 하지만 다가오는 시간은 운명처럼 1분 1초도 다르지 않게 집행이 되고 만다. 하지만 안타갑고 , 아쉬은 사련들을 뒤로 하고 찾아온 망자에게 따스한 말 한다마디외 , 건네는 드링크와 믹스 커피 . 그리고 다 같이  생전의 사람들의 꿈 속으로 들어 가는 일이다.  -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는것 그리고 그 한을 풀어 주는 것만이라도 그 사람들은 몹시도 고마워 한다.  마치 살아 있는 생전의 친구와 자녀 부모 그리고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듯이 말이다. 그래서 또한 위안을 갖고 이승을 힘들게 나마 살아 나가는 것이 아닐까 . 


나름 뿌듯한 일을 해내었다면 , 석양이 지는 허름한 언덕 받이 사거리 모퉁이 스러지 가는 슈퍼에서 각자 꺼내온 시원한 캔 맥주를 마시기도 한다. 도께비 부동산 중개자는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가끔은 여기를 찾아오는 십수년전 사람들은 그때 그사람의 자식 뻘이 가게를 하는 줄 알기도 하지만 조선 시대 이래로 이제 약 500연 이어온 업이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도 새로은 영매 의명이라는 아가씨를 인간세에서 받아 들이기로 하고 자신들과는 다른 종신 계약이 아닌 시한부 2년 짜리 고용 계약서를  " 판 -저승 사자" 와 작성 하기에 이르렀다.. 


혹 오늟이나 여름 어느 낮선 동내 거리를 걷다가 해질 자녁 가로등 모퉁이에서 밝에 빛나는 네온의 미용실이 눈에 띄고 , 수척한 여자 한분이 하념없이 손님을 기다리는 중이시라면 다가가서 이렇게 한번 물어 보는 것이다. . 


- 혹 ㅡ여기가 차밍 ? 미용실 자리 아니 던가요 ... 누군간의 꿈속에 가고 싶습니다만 가능 할런지요  " 

대답은 물 사레를 한번 맞고 소금을 먹던가 ,, 아님 반가이 맞이 하는 주인장의 미소로 이끌리어 오늘 저녁 머리 단장을 새로이 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 인간세 그누구도 내일 그리고 미래의 단 1초 후의 일을 알기는 매우 어려우나 우리는 습관적으로 미래를 안다고 생각 하지마 사실 현 순간 순간이 매일 매시각 닥치고 있고 우리 신체는 그걸 중력의 함과 아울로 견뎌 내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말이다.... 오늘의 비오는 장마철 초입의 단상 -- Written by E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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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예찬 - 위대한 사상가들의 실패에 대한 통찰
코스티카 브라다탄 지음, 채효정 옮김 / 시옷책방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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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서두에  

[[ 성공에 대한 우리의 집착은 간과하기 어렵다. 어디에서든 우리는 경쟁하고 순위 매기고 가치를 어림한다. 하지만 최고가 되고자 하는 이런 수그러들 줄 모르는 욕구로 눈이 멀어, 우리는 인생의 어려움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는 근본적으로 중요한 사실을 보지 못한다. 코스티카 브라다탄은 네 명의 역사적 인물이 영향력을 발휘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동안 실패를 추구한 이야기를 통해 실패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그들의 투쟁은 우리가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면 치유뿐만 아니라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실패는 피

할 수 없으니 오히려 잘 사용한다면 실패의 경험이 더 나은 삶으로 이끌 것으로 본다. ]] 


위대한 인류의 역사속에 실패 없는 성공과 발전 , 발명이 있었을까 ,  사람이나 동물은 무언가 실패를 통한 학습에서 배우고 더 나아가 좀더 향샹된 혹은 행복한 길로 나아가려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현제의 실퍠에서 찾아 보려 하지 않을가 . 


이 첵주제에는 차고 무거운 역사적 인물과 매우 염세적인 철학적 사상가들 그리고 동아시아 메이지 유신 세대 이후 일본의 사상계에 많은 영향력을 끼쳤던 미시마 유키오 , 그는 일본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그리고 톡특한 세계관과 심미관 , 한떼 극우파에 몸담은 역사와 기묘한 최후 ( 할복 ) 까지 그의 계획되로 되는 인생을 살고하였던 1인중 하나이다. 


[[ 미시마 유키오의 사상은 기본적으로 극도의 탐미주의에 기초한다. 즉, 미(美)의 중심을 정하고 이를 위하여 무엇이든 희생하고 행할 수 있는 사회를 우선적으로 여기는 초기 파시즘과 유사한 형태다.


미시마 유키오의 독특한 정치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시마라는 인물의 내면에 대해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미시마는 전쟁 당시에도 천황을 위해 죽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는 감정을 평생 가지고 있었고, 이것이 그의 죽음을 앞당기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Source by 나무위키 . 


비폭력 저항정신의 간디 ( 1869.10 -  1948 .1 ) 는 어뗘한가 .  영국 유학을 다녀왔고 , 그곳에서 생활하였지만 결코 영국인일 수 없는 그는 실패한 변호사업을 뒤로하고 남아프리카를 경유하여 귀국 하였고 1894.7월 정치 운동가로 변신한 그는 인도의 차별법을 막는데 주력 하였고 나탈, 인도국민의회를 창설하고 인도인의 단결심을 고취 시켰다./  하지만 그의 불복종 운동의 수동적인 방식은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고 , 오히려 수많은 인도 국민을 죽음의 길에 자청해서 내몰리게 하는 사고로도 이어졌다. 


다시 글 주제로 돌아가면 , 정치적 실패는 그 작용 방식이 물건의 실패보다 더 교묘하며 치명적이다.. 세계사에 획을 그을 만한 1차 ㅡ 2차 세계대전이 발생했을때 파행되는 파괴적인 전쟁 , 인종 청소 , 대량 강간, 대량 학살등 최악의 잔학 행위들이 다시 일어 나지 않는다는 역사적 기록은 별오 없다 


인류가 , 히틀러와 스탈린이 죽어 없어진 세상에서 다시 그들과 같은 잔혹한 인물이 혹은 세대가 나타 나지 않기를 기대 하지만 로베스 피에로 공포 정치 못지 않게 현실은 보다 잔혹 하다. 지난 10여년전의 인류 대학살의 또다른 기억은 보스니아 내전 ㅡ, 르완다 대학살에서 인류의 비극을 다시 찾아 볼 수 가있다. 


개인적인  작가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 루마니아 출신의  에밀 시오랑 ( 1911- 1995 ) 이란 염세주의자가 있다.. [ 시오랑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 인간에게 최선이라고 믿었고 , 그렇기에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  만약에 절대적인 나오자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나다.. 나는 그말을 모든 자부심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냉소적인 아포리즘의 작가 철학자 - 하루 하루가 사려져야 할 새로운 이유를 가르쳐 준다. 고 외치고 배0르그송의 박사 학위 논문을  쓰기 위해 소르본으로 왓지만 결국 논문을 완성 하지 못한채 영원한 학생으로 남은 그 , 

고등학교  철학 교사 1년 외, 카페 웨이터로 잠시 일한 것외엔 언제나 불안정한 삶의 연속 -- 스스로 주변인임을저처한 그는 삶의 비루함 조차도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직면 한다는 아이러니 , 늘 절망과 죽음을 이야기 했고 이런 불면의 나날은 스무살에 시작된 그의 정신과 육신의 피로에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시오랑)은 누구나 유효한 개관성 보다는 주관성에 입각한 단상의 형식 아포리즘을 창시 하였고 이는 그의 죽음과 자살을 여로 차례 애기 하지만 그안에서 놀라운 자극과 활력을 받고 스스로도 오랬동안 삶을 살다 갑니다... 


자살은 언제러도 자신을 죽일 수 있는 가능성이고 언제라도 죽을 수 있으니 구태여 죽지 않고 살아가는 것 , 자신이 할 수 있는 몇 안되는것 중의 하나라는 위안을 안고서 말이지요 .. 


흔히들 성공과 실패는 종이 한장의 차이라고도 허지만 개인이던 위대한 위인이던 실퍠와 고난이 없이 어떤 입지적인 위치에 오르거나 기록에 남겨져 후대에 널리 알려 지지 않은 경우는 드물 다고 할 수 있겠다. 


미국 남북 전쟁의 아브러함 링컨이 그했고 ,, 2차 세계 대전 처칠 또한 그러 했으며 , 수많은 실패를 건져내어 전기무선 부호를 발명해낸 프랭크린이 그러하다... 마리 퀴리 가 그 역사의 한자락이고 ㅡ 지금은 평화의 상징이고자 했던 노밸의  다이나 마이트가 또한 그러하다..  인류 호모 사피엔스의 자학적인 혹은 피괴적인 혁명과 전쟁과 거대한 질병의 흐름 속에서도 인간세 마지막까지 가져갈 진정한 철학적 혹은 사회적 정치적 도구들은 무엇 인지에 대한 깊은 고찰 또한 우리 현 인간세가 처한 운명론이 아닌가 합니다만 ... 오늘의 사색 단상 ,,Written by E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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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X 2024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 - 세상을 변화시키는 DX 플랫폼
윤커뮤니케이션즈 디지털미디어랩 지음 / 연두에디션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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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서두에  ; 디지털 전환, 생성형 AI, 클라우드 네이티브, 로봇 등 다양한 기술들이 비즈니스와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명쾌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책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구성했다. 우선 첫 번째는 ‘디지털 전환’이 무엇인지, 어떻게 흘러왔고,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를 설명했다. 두 번째는 현재의 IT 트렌드이다. 스스로 학습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필요한 곳에 제공하는 생성형 AI와 로봇, 디지털 헬스케어에 주목해 최근의 트렌드를 모아봤다. ]] 


2024년 디지털 대전환 이라 이름 붙이지 않아도 이미 우리 곁에는 많은 주변 변화가 세계적으로 있다. 그 선두에는 아마도 AI ( 인공 지능 생성형 ) 알고리즘이 아닐까 한다. 


사실 인공지능이란 단어는 1950년대에도이미 인공 신경망의 연구가 있어왔고 , 1980년대의 exert system 이라는 전문가 시스템의 분석 분류를 수행하는 일정 부분 사람에 의해 개입되는 도구 였다.  

1990~ 2000년대 인터넷의 발전과 아울러 스스로 학습 규칙을 찾아서 실행하는 버전이 몇 해전 이세돌과의 바둑 대결에서 우승 하였던  머신 러닝 , ( machine leaning )  - 수집 한 데이타를 바탕으로 AI 가 스스로 튜칙을 찾아내서  해결 방안을 내어 놇은 2012 -2020 년 Deep learning 으로 이어 지는 계보 이다. 

아래가 2016년도 구글 딥 마인드가 개발한 ai 알파고가 4대 1로 바둑 기사 이세돌9단을 꺽어 내린 딥 러닝 알고리즘.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 알고리즘을 결합한 결과 이기도 하다. 


https://youtu.be/WXuK6gekU1Y


지금은 2022년말 개발된 오픈 AI 의 챗 GPT 를 이끌어 내며 생성형 AI ( Generate AI ) 시대를 열게 된다. 

이후 거의 인간을 모방한 인공 일반 지능 (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개발 이고 보통의 인간이 사고 하고 창작 하고 판단 할수 있는 대부분의 역할을 스스로 수행 할 수 있다라는 점에서 인간적인 판단 혹은 윤리적인 딜레마 처리에는 기계적인 판단이 따를 수 밖에 없는 한계를 돌 파 할수도 있느냐가 관건이기도 하다. 이후 더빠른 GPU와 처리 시스템 알고리즘의 학습으로 인간을 훨씬 능가 하는 인지 능력을 보유한 슈퍼 인공지증 (  Artifical super intelligence ) 의 출현이 머지 않았다고 보는 과학자들도 많다. 


만일 이렇다면 더 나아가 스스로 복제 하고 인간을 통제 하기까지 하려는 AI 의 출현을 예측해 볼 수 잇고 인간이 상상 하는 이상으로 똑똑한 네트웍을 바탕으로 위험 한계치를 넘어 선다면 우리 인류와 ai 미래는 예측 조차 할 수 없을 지도 모를 일이다. 

[ SOURCE ;  SK Hynix news room ] 


산업 전반에 걸친 앱과 어플리케이션 ,. 그리고 실제 TV나 세탁기 스피커 , 냉장고 , 를 비롯 수많은 산업 현장과 사무실 에는 이미 로봇의 적용과 인공 AI의 결합으로 최적화의 시험에 돌입 하였다고 보아도 무방 하다. 


자율 주행차량의 경우에도 이미 2-3단게를 학습 추진 하고 있는 단계라고 한다면 4-5 단계도 빠른 기간안에 

달성 될 수 있다고 보고 있고 이경우 운전자의 개입이 불필요한 운전시 위험 상황에 직면 했을때 어떤 방식으로 방어 운전 내지는 사람을 보호 할 수 있는 지는 아직도 윤리적인 테마이다.  대부분의 경우 운전자를 보호 하지만 차량의 반사 회전이나 돌발 상황에서 더 많은 사람이 희생 될 것으로 예상 된다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운전자를 희생 시킬 수도 있는 로봇 머신 이기 때문 이다.... 



전반적 사회전체적, 그리고 세계화는 이러한 신경망 네트웍을 가속화 하고, 사람보다 더 진단이 빠르고 정확한 분야 - 즉 법적인 판단 처리, 의사의 판독이 필요한 영상필름,  바이오 산업에 의한 배양액 임상 시험 에측 시나리오등 모든 분야에 착착 적용이 되어가는 중이다.  선한 목적으로 각 분야의 어렵괴 힘든 일과 기계적인 반복등 인간의 노동과 얼마간의 지능을 대체 하는 선이면 좋겠으나 , 얼마전 OTT로 본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한 영화의 단상이 쉽게 떠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 또다른 터미네이터를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닐까 .. ㅇ오늘의 단상 .. Written by E HAN 


https://youtu.be/n8yGXUh_7mY?si=u6obg9bClcNphp8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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