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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리더십 - 공유하고 소통하고 개방하라
쉘린 리 지음, 정지훈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오픈 리더십’이란?
-Open Leadership
1. 통제의 욕구를 포기할 수 있는 자신감.
2. 개방을 핵심으로 한 공유와 소통.
3. 소셜 미디어 시대를 이끄는 새로운 블루오션 전략.
시대 변화에 발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다.
정말 짧은 시간에 많은 것들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종종 느끼게 된다.
누구나 원하지 않아도 저절로 얼리 어답터였던 어린 시절이 있을 것이다.
설명서를 읽지 않아도 휴대폰이나 디카, 노트북, 프로그램 등등을 자유 자재로 다루던 시절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설명서를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날이 온다.
그 순간 나는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이라는 걸 해야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소셜 테크놀로지도 그렇다.
트위터, 페이스북, 유투브, 블로그 등등 우리는 모르는 많은 사람들(심지어 지구촌 사람들..)과 끊임없이 24시간 소통할 수 있다.
좋은 정보와 이슈들을 퍼나르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지탄하고 지탄받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속에서 종종 슈퍼스타가 되기고, 마녀사냥을 당하기도 한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말이다...
일반인인 우리들조차 이렇게 소셜 테크놀로지의 영향력에 휘둘리고 있는데 집단을 이끌어가야 하는 리더들은 어떨까?
그들 역시 휘둘리고 있어야만 할까?
그렇다. 휘둘리면서 휘둘러야 한다.
서로 소통하고 공유하는 방법을 통해서 자신의 리더십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리더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다소 딱딱할 수 있는 이런 내용들을 9장에 걸쳐 여러 사례들과 더불어 제시하고 있다.
중간 중간엔 테스트해 볼 수 있는 내용도 있어서 몰입하게 한다.
저자 역시 오픈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항상 강력한 리더십을 원한다.
카리스마 있는, 존경 받을 수 있는 리더십... 예전 방법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요즘의 리더십 말이다.
이 책을 읽고 적어도 약간의 팁을 얻은 것 같아 다행이다. 
리더들의 선택, 통제할 것인가 개방할 것인가
―오픈 리더십: 통제의 욕구를 포기할 수 있는 자신감
2007년 3월, 캐나다의 인디 뮤지션 데이브 캐럴은 공연차 미국으로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탔다. 항공편은 유나이티드항공이었다. 이륙 직전 그는 창밖에서 수하물 운반 직원이 자신의 기타 케이스를 함부로 내던지는 모습을 보고 승무원에게 항의했지만 묵살당했다. 목적지인 오마하 공항에 도착해 케이스를 열어보니 우려대로 기타는 엉망으로 부서져 있었다. 공연 스케줄 때문에 그는 3일 후 파손 신고를 했고 유나이티드항공은 24시간 이내 신고라는 규정을 내세워 보상을 거부했다. 캐럴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9개월 동안 보상 요청을 했지만 항공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캐럴은 그때의 일을 “유나이티드항공이 내 기타를 깨부수고 있네(United Breaks Guitars)”라는 제목의 뮤직비디오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다. 뮤직비디오는 3일 만에 100만 뷰를 넘어섰고 입소문을 타면서 700만 뷰까지 올라갔다. 100여 개의 패러디 동영상도 올라왔다. 경악한 유나이티드항공은 그를 찾아갔고, 수리비 보상은 물론 수하물 파손 규정도 개정했다.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등의 ‘소셜 테크놀로지’가 몰고 온 가장 큰 변화는 견고했던 ‘통제’의 사슬을 끊어버렸다는 데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TV나 신문 등 기존 언론 매체를 통한 단방향 주입식 소통방식이 정보 흐름의 전부였다. 정보 접근의 우위를 가진 소수가 정보를 독점으로 생산하고 유통하는 절대 권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소셜 테크놀로지가 본격적으로 발전하면서 이 같은 정보독점의 헤게모니는 붕괴됐다. 이는 단순히 정보공유가 수평적으로 이뤄지는 차원을 넘어, 손쉽게 사람들을 한데 묶어주고 여러 의견을 하나로 모을 수 있게 됐음을 뜻한다. 이 같은 상황을 가볍게 보고 무분별하게 통제하면 소요와 혁명까지 일어나는 세상이다. 올 초 튀니지의 민주화 시위, 리비아 내전 등은 정보가 순식간에 대량으로 공유될 때, 그리고 그것을 섣불리 통제하려고 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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