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웨이는 모들뜨기(두 눈동자가 안쪽으로 치우친 눈 옮긴이)였다. 평소에는 검은 눈동자가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그 반을 눈꼬리에 숨겼지만 눈을 부라리면 꿀벌 한 쌍이 날아온 것 같았다. 그 순간 라오웨이의눈은 매우 빛났다. 


 여자는 광부의 미망인으로 짜리몽땅한 키와 새카만 얼굴에 말수가 적었다. 신치짜와 마찬가지로 곰방대를 즐겨 물어 이가 누르스름했다. 사람 자체가 시커먼 굴뚝 같아 매파는 그 여자를 옌포(煙婆, 굴뚝 여자라는 뜻-옮긴이)라고 불렀다. 옌포의 남편은 가스 폭발로 죽었다. 

그러니까 정해진 시간에 위사람만 만족시키면 돼요. 아랫사람이 제아무리 무고한 사람을 엮어 누명을 씌운다 한들 누구 하나 그것을 추궁하는 사람이 있겠어요? 게다가 신신라이 녀석은 좋은 사람도 아니고 녀석이 억울해할 것도 없죠." 
"네 식으로 일을 처리하면, 내가 쏴 죽인 사람들 가운데도 무고하게 죽어간 사람이 있겠군?" 안핑이 우려스럽다는 듯 말했다.
"있다 해도 또 어쩔 건데요? 사형 결정은 우리와 무관해요. 까놓고 말해서 라오거나 나나 일개 사격수에 지나지 않잖습니까! 진짜 무고하게죽은 사람이 있다 해도 그것 역시 그 사람 운명인 걸 어쩌겠습니까!"
안핑은 절로 놀라 숨이 막혔다.

 두 사람이 돌아서서 달아나려던 순간에 안핑이 주머니에서있는 돈을 몽땅 꺼내 자신을 도와주기만 하면 이 돈을 전부 사례금으로주겠다고 했다. 그 돈뭉치는 마치 인간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소식인 것처럼 두 사람을 멈춰 세웠고 또 단결시켰다. 큰 키는 돈을 받아 한 장 한장 만져본 후 작은 키에게 말했다. "진짜 돈이야." 작은 키가 한 장을 쏙빼내 가로등 아래로 달려가 자세히 비추어 보고서는 돌아와서 큰 키에게 말했다. 종이돈이 아니네. 저 사람 귀신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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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봐요. 사람을 태워 재로 만드는 불은 이 노을만큼 불탈까요?"
안핑이 말했다. "하늘에서는 진작 화장터를 열었다는 건가요?"
"무슨 말을 그렇게 —" 리쑤전이 타박했다. "하늘의 것은 죄다 불로장생한다고요. 화장터 같은 게 어디 있겠어요."

안위순은 결국 결혼 문제를 운명에 맡겼다. 기다려보지 뭐, 언젠가는오겠지,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사람들은 캄캄한 밤을 싫어하지만, 그래도 결국 그 품 안으로 쏙 들어가는 달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실은 멍칭즈가 안위순에 대해 실망한 이유는 안위순이 열사능원에 들어간다는 건 100년 후 자신과의 합장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해서였다.
멍칭즈에게는 열사능원에 들어갈 자격이 없었으니까. 자신과 함께 묻히기를 원치 않는 남자와 같이 사는 삶은 더는 맛있지 않은 시큼털털한 술단지를 안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


안위순은 하루에 세 번 칭즈‘를 불렀다. 날이 밝을 때와 점심때 해가질 때였다. 안위순이 슈냥을 부르는 데는 별다른 이유 없이 그저 때가 되었기에 따분한 나머지 한번 불러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멍칭즈 역시대단하지 않았다. 안위순은 태양을 부르는 거고, 태양을 대신해서 대답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해서다. 이따금 슈냥이 외출하고 없을 때안위순이 마구간에 가서 칭즈‘라고 부르는 통에 슈냥의 말 중 적어도 두필은 자신의 이름이 ‘칭즈‘라고 알 터였다.
 

 안쉐얼은 쿵쾅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창밖날아온 제비에게 말했다. "나, 키가 자랐어." 침묵하는 돌비에게 말했다.
"나, 키가 자랐어." 나무 아래 개미들에게 말했다. "나, 키가 자랐다고." 밤하늘의 별들에게 말했다. "나, 키가 자랐다고." 이마에 푹 눌린 베개 자국에게 말했다." 나, 키가 자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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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남짓이 된 탕한청은 누구나 인정하는 미남이었다. 180센티미터의 키에 마른 편이었고 넓은 어깨에 눈썹이 툭 불거져 나왔다. 이 때문에짙은 눈썹 아래의 눈에서 범상치 않은 느낌이 났다. 심오하기도 우울하기도 또 따뜻하기도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눈은 여자의 혼백을 빼놓기에 제격인 법기(法器)였다.

 탕한청이 보기에 자원 파괴를 대가로 한 발전은 추운 겨울을 버티려고 자신의 다리를 베어 그것을장작 삼아 사르는 것과 같아 평생 장애를 안고 가야 하는 것이었다. 

툭 까놓고 말해 리쑤전의 일이라는 게 망자를 화장해 그들이 좋은 모습으로 떠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리쑤전은 망자의 얼음같이 차가운 뺨에 손이 닿을 때마다 남편에 대한 가엾은 마음이 문득문득일었다. 남편은 위축되어 마른 잎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그래도 어쨌든체온은 있었다. 한 인간의 체온이 사람을 얼마나 연연하게 하는지! 

. "생이 어찌 이리 불공평하죠.
당신은 생긴 것도 이렇게 예쁜데 이렇게 정다운 삶을 살다가 하늘이 부르셨잖아요. 나는 생긴 것도 그냥저냥 한 데다 고생이란 고생은 잔뜩 했는데 몸은 또 왜 이렇게 멀쩡한지. 내가 당신을 대신해 갔더라면 좋았을텐데요. 안타깝게도 하늘은 나를 원치 않네요. 당신은 가서 꽃의 신이 될수 있는데 나는 가서 뭘 할 수 있을까요? 거리를 청소하는 사람요? 하늘에는 먼지가 없잖아요." 

 이 소도시에서 염습사는 리쑤전이 유일해서 리쑤전이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처음에 그 글자는 파란색이었다. 작고한 친지가 하늘나라로 가길 바라는 망자 가족들의 바람을 위해하늘과 같은 색깔로 글자를 써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만약 검은색으로글자를 쓰면 사람들은 망자가 지옥으로 내려간다고, 붉은색으로 쓰면 망자가 험난한 길을 가게 된다고 생각했기에 이들 색은 적당하지 않았다.
리쑤전과 안핑이 연인이 된 후, 안핑이 사실 녹색 글자가 파란색보다 좋아, 녹색은 활력이 넘치고 눈을 즐겁게 하니까, 라고 말하자 리쑤전은 곰곰이 생각해보다 그도 그럴 것 같아 특별히 페인트공에게 부탁해서 파란색 글자를 지워버리고 녹색으로 글자를 썼다. 반년이 겨울인 칭산현에북풍이 휘몰아칠 무렵 이 녹색으로 쓴 세 글자는 그 소도시에서 시들지않는 푸른 잎이 되었다. 싱그럽고 눈부셨다. 참새들마저 신나서 거기로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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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내년 8월 1일 이후로 죽은 사람은 반드시 일괄적으 로 칭산현 화장터로 보내 관을 태워야 한다고 안쉐얼에게 알려주었다.
사람들은 걱정이 태산인 채 죽은 후 불에 태워질 때 아프냐, 재가 돼서유골함에 담기면 환생하지 못하는 게 아니냐 등등을 안쉐얼에게 물었다.
"사람이 죽는 건 불이 꺼지는 것과 같아. 환생은 개뿔!"라오웨이가 말했다. "그러니까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라고!"

빈 조롱을 들고 일어서던 순간 슈냥은 하늘과 땅이 빙빙 도는 느낌이었다. 마치 태양이 뚝 떨어져 조롱 속으로 쏙 들어온 것처럼 눈을 뜰 수없게 찔러댔다. 슈냥은 속이 메스꺼워 한동안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다람쥐 조롱이 데굴데굴 몇 번 굴러 슈냥의 발꿈치에서 멈췄다. 조롱에는 뚫새김한 꽃병처럼 햇빛이 그득 꽂혔다.

태양은 지구에서 가장 길게 일하는 일꾼 아니겠는가. 1년 사계절, 태양이 쉬는 걸 거의 보지 못했다.
태양은 특히나 여름에 유능했다. 새벽 네 시가 조금 넘으면 나와서 오후예닐곱 시에야 퇴근하니, 한번 출근했다 하면 열몇 시간은 기본으로 일했다. 이 계절이 되면 하늘에서 태양에게 품삯을 더 줄까? 그것도 모를 일이었다.

천메이전이 말했다. "그러니까요. 까놓고 말해 사람이 운명에 순응해야지요! 운명에 자식이 없으면 억지로 요구해서는 안 되조, 운명에 백년해로할 수 없으면 상대의 손을 죽어라 힘껏 잡아당겨도 역시 헛일이겠고 염라대왕이 떼어놓겠다 하면 그 사람과는 떨어져야지요! 하지만 운명이 정한 부부의 연이라면 산과 바다가 가로놓여 있다 해도 수많은 지니난과 재해를 겪는다 해도 결국에는 그래도 같이 있게 되지요. 진짜 원앙은 떼어놓을 수 없는 법이니까. 댁과 천위안처럼요."

신치짜는 단쓰싸오의 툭 튀어나온 광대뼈와 얇은 입술이 싫었다. 그렇게 겨울 느낌의 얼굴을 한 여자를 아내로 맞는 건 온기 가득한 가정을 포기하는 것과 같았다. 또 단쓰싸오가 난시장에서 단샤를 팔아 젠빙을 파는 것도 싫었다. 단쓰싸오는 "젠빙 좀 사세요. 이는 내 멍청이 아들을 불쌍히 여기는 거랍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아무리 가닌해도 존엄성을 버린 여자는 진저리가 났다. 게다가 안쉐얼이 신신라이에게 강간당할 때 단쓰싸오는 그것을 목격했으면서도 말리지도, 사람들이 와서 말리도록 고함을 지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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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름이 되면, 룽산은 그야말로 거대한 향수병을 쏟은 것 같았다. 임각나무, 구주소나무, 가문비나무, 자작나무 등에서 온갖 들풀과 드꼬에이르기까지 향기를 내뿜지 않는 것이 없었다. 사람의 습성과 마찬가지로식물의 향기도 제각각 달라 진한 것도 연한 것도, 단 것도 쓴 것도 있었다. 탕한청이 보기에 안쉐얼은 1년 사계절 내내 향기를 발하는 신선초로 룽잔진의 좋은 정취는 안쉐얼과 관련이 깊었다

 염습사는 일할 때 일반적으로 비닐장갑을 끼지만 리쑤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는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생각했다. 지나친 노동으로 거칠어진 손으로 만지다 망자의 얼굴을 아프게 긁지는 않을까,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손을 돌보고 아꼈다. 매일 잠자기 전 손을 깨끗이 씻은 다음 달걀 흰자위와 꿀, 들장미즙 등을 잘 섞어서 만든 핸드크림을 손에 발라주었다. 리쑤전의 손은 두꺼운 입술처럼 인간 세상에서의 마지막 입맞춤-따뜻하고 깨끗한 입맞춤을 망자의 얼굴에 남겨주었다.

 청년은 방향을 돌려 안핑에게 말했다. "아저씨, 당신이 만약 내 모습을 훼손하지 않고 시원하고 깔끔하게 죽여준다면, 나는 한 마리 새가 되어 아저씨 가는 길에 노래를 불러드리겠습니다." 안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다음 청년에게 입을 살짝 벌리게 했다. 청년이 입을 벌린 순간안핑이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은 바람이 쌩하고 협곡을 지나가듯 청년의윗니와 아랫니 사이를 지나갔다. 이빨 하나 건드리지 않고 청년의 목덜미로 빠져나가 동그란 총알구멍만 남겼다. 청년은 한 방에 목숨을 잃었다


안핑은 한때 사법경찰들과 만약 하느님이 인간에게 뇌를 두 개 부여한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될지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 토론 끝에 그들은만약 사람이 뇌 하나를 없애도 된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 교회와 불당이아무리 많더라도 살인범이 판치는 세상은 막을 수 없으리라, 그래서 하느님은 인간에게 오직 하나의 생명만을 주었고 거기에 법률까지 가세해고의로 사람을 살인한 자는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인간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효과적 수단이다, 라고 입을 모았다.

 멍칭즈가 보기에 아무리 좋은 조직이라 해도 직장은 죄다 죄인 압송용 우리에 지나지 않았다. 일단들어가면 자유를 잃어버렸다. 멍칭즈는 술이 좀 들어가면 젊었을 때 자신이 왜 그렇게 바보였나, 무슨 문공단에 들어가 춤에 춤 자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춤을 추었을까, 하고 투덜거렸다. 그러면서 좋은 춤은 달에게, 강에게, 들꽃에게 춰주어야 하고, 아끼는 말과 사랑하는 남자에게 춰주어야 한다고 했다. 멍칭즈가 춤을 매개로 안위순과 연이 닿은 것을 아는 룽잔진 사람들은 안위순이 사랑하는 남자였느냐고 농을 걸었다. 명칭즈가 입을 배죽거리며 시작은 그랬는데 지금은 아니라고 하자 사람들이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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