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등장할 T. A. B.U. L.A, R.
A S. A는 작품 감상 방법의 각 단계를 나타내는 약자로, ‘타불라라사‘를 기억하면 차례대로 감상하기 쉽다.
앞의 여섯 단계는 이미지를 읽는 데서 시작해 이해하고 평가하기까지 우리의 무의식 과정과 비슷하다. 시간 Time, 관계 Association,
 배경 Background, 이해하기 Understand, 다시 보기 Look Again, 평가 하기 Assess의 (순서에 상관없이) 단계를 거치고 나면 다음 단계인 리듬Rhythm, 비유 Allegory, 구도 Structure와 분위기 Atmosphere 를 적용할 수 있다. 단계마다 미술사에 등장하는 작품을 사례로 들어 이 방법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집중 조명할 것이다.

비유 단계는 여러 나라 문화, 고전 문학이나민담 등 그림 속에 담긴 풍부한 내용을 해석하는 게 아니라, 그그림 밑에 숨어 있는 상징, 의미, 징후를 읽어내는 것이다.
사람, 물건이나 사상을 다른 형태로 바꾸어서 은유하는 작가들의 전형적인 기법을 ‘알레고리‘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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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주는 그 모든 가능성을 지닌 아이를 잃었다.
질서와 명분을 잃었다. 선하고 바르려는 의지를잃었다. 이석도 아이를 잃었다. 삶을 다 바쳐 살리려던 아이를 잃었다. 그런 생각을 하노라면 병원은 차라리 거대한 장례식장이었다. 가족을 잃게 되리라는 소식을 듣는 곳이었다. 사무장 말이맞았다. 병원에서는 누군가 죽기 마련이었다.

 비밀을 알고 있다고 느낄때에는 비리를 저지르고 묵인한 사람이 이 세상의 타락과 부패를 주도했다고 믿었다. 이제는 아니었다. 그들이 옳았다. 바리새인이 된 기분이었다. 바리새인의 잘못은 예수의 손에 못을 박아 넣은 게 아니었다. 예수를 죽임으로써 자기 힘으로덕 높고 훌륭한 인간이 되려 했다는 점에 있었다.

그렇다고 순전히 자신의 의지와 선택이라고 말하기는 더더욱 힘들었다. 실패를 고백하는 건 쉬웠지만 실망을 견디는 건 내키지 않았다. 스스로의 비열함과 미천함을 간파하는 건 무주 자신으로 충분했다. 이제껏 그래왔듯이 침묵하며 견디는 게, 시간이 나아지게 해주리라 기대하는 게 그럴싸해 보였다.

몸이 아픈 것보다 가책을 느끼거나 외로운 게 낫다.
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가책은 아무리 심해도 육체적 통증을 가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그라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거미줄이라고 해도 두 마리, 세 마리가 함께 있으면 안 됩니까? 왜 있잖아요, 공존. 여기서는 안 됩니까?"
"거미줄 하나에 거미 두 마리가 함께 있는 게공존이 아니야. 그건 자연계를 무시한 처사지. 한거미줄에 한 마리씩의 거미가 여러 개 늘어서 있는 것, 그게 공존이야. 다른 거미줄을 넘보지 않는 상태가 공존인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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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시에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사로잡힌 생각, 세상이 나아져야 한다는 신념도 떠올랐다. 확실히 무주는 순도 높은 정의감과 도덕심에 홀려있었다. 다시는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싶지 않았다. 신념 때문만이 아니었다. 잘못된 선택으로 고통받는 게 두려웠다.

연민 때문에 아내는 무주를 이해한다고 착각했다.

「사무장 말대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사람은죽기 마련이다. 다른 곳도 아닌 병원에서. 특히중환자실이나 일부 병동에서는 그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가끔은 사람들이 죽으러 병원에 오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의사들이 실패할 때도있었다. 병원에는 날마다 긴급을 알리는 코드 방송이 이어졌다. 

동정을살수록 이석이 저지른 비리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아이가 죽었다고 해서 이석의 비리가 없어지는 게 아닌데도 그랬다.

무주는 자신이 특별히 나쁜 게 아님을 증명하고 싶어서 다른 사람의 결점을 지적하는 쪽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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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가 이석을 흉내 내서 다시 물었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건 이석이 고안한 농담이었다. 웃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리를 두고 싶을 때 주로썼다.

이석은 언제나 의사에 대해 혹평했다.
"그중에서 내가 제일 믿을 수 없는 건 희망을가지라는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의사만큼 악랄한 인간은 없어. 희망으로 병이 낫나. 절망에 빠진 사람한테 돈이나 계속 쏟아부으란 얘기지. 잘 들어둬. 그런 인간한테 속으면 안 돼." 」

 "하지만 그보다 더 못 믿을 건 포기하라는 의사야. 그렇게 말하는 의사는 무능한 거야. 사람이수학이야? 포기하게……. 무능한 의사보다는 악랄한 의사가 나아. 안 그래?" 

그런데 말이야. 나는 그게그렇게 좋더라고, 세상에 내가 단숨에 볼 수 없는 게 있다는 거 말이야. 아무리 봐도 훤히 다 보이지 않고 한눈에 죄다 알 수 없다는 게 정말 좋았어. 면송리하고는 너무 달랐거든. 거긴 너무 뻔했지. 동네 사람들 입속의 금니 개수까지 알고 지 냈어. 시시하잖아. 그런데 배는 그렇지 않은 거야!

세계는 애초 구球나 정육면체처럼 정확하고완벽한 형상이 아니라 오히려 트램펄린 같은 것이었다. 똑바로 서면 균형을 잃는 곳, 균형을 유지하려면 비틀거리거나 한쪽 발을 구부리고 팔을뻗어야 하는 곳, 뒤뚱거려야만 가까스로 설 수 있는 곳 말이다. 그런 세계이므로 균형을 잃은 태도를 오히려 균형 잡힌 태도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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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플을 다시 시작한건 독보적이라는 독보적(?)프로그램 때문이었다. 움직이기를 싫어하는, 애써 좋게 말하자면 한 곳에 오래 버티는 습관이 있는 나에게 하루 만보의 도전은 좋은 자극이 되고 있다.
오천보가 미니멈이지만 스스로 만보를 넘겨보려 목표를 잡았다. 무작정 걸었던 적도 있다. 시간을 정해 규칙적으로 걷는다. 가끔 폰을 놓고 나가 걷고는 허망해하기도 하지만..
이제 걷기가 틀이 잡혀가니 책들이 눈에 담긴다.
사놓고 잊고 있던 책들을 찾아 읽고 친구(?)들의 책에도 눈이 간다.
아! 이 책!
사려다 놓친 책들이 보이고
어? 이 책?
호기심이 동하는 책들이 보인다.
어? 이 분!
엄청난 밑줄 긋기와 1일 5~6권을 읽는 분들.
책 좀 읽는다 소리를 가끔 듣는데도 나는 아직 멀었구나 싶다.

마구잡이 읽기가 맥락을 잡아가고 제멋대로 걷기가 규칙을 찾아간다.
어떤 이에게는 별것 아닌. 무쓸모의 앱이거나 프로그램이겠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도움이 되기도 한다.
물리적 시간이 한정적이므로 시간배분을 해야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다보니 하루의 규모가 짜임새를 찾아간다.
일종의 나비효과일까?
‘북플앱을 깔았다‘에서 시작된 거의 2개월여의 일상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매일 어떻게든 걸어보려 애쓰고 얼마라도 읽어보려 노력하는 것이 때때로 대견하다.

책을 챙기고 운동화를 고쳐매는 일상.
날이 추워지니 걷기에 꾀가 나기도 하지만 어쨌든 잘 유지해봐야겠다.
하루 한권 읽기도 빠듯한 나의 일상. 하루 대여섯권 백여개의 밑줄을 그을 역량은 못되지만 꾸준함으로, 일상의 틀을 잡는다는 생각으로 북플을 이용해야겠다.
나이가 든 탓인지 창의적으로 앱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도 같지만..
알뜰하게 읽기 위한 방편으로라도 당분간은 사용할 듯하다.

걸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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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건축가 2019-11-25 1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만보와 글쓰기의 명분이 생겼어요

나타샤 2019-11-25 13:28   좋아요 1 | URL
좋은 동기부여인셈 이죠.^^

cyrus 2019-11-25 2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밑줄을 많이 그으면서 책을 읽는 것이 저는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북플에 밑줄 긋기를 자주 이용하는 분들에게는 서운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하루에 5~10개 이상 밑줄을 올리는 그분들을 보면 보여주기식 독서를 하는 것 같다고 느껴져요. 책에 있는 문장 한 두 개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그 책을 제대로 읽었는지 알 수 없어요.

나타샤 2019-11-25 20:44   좋아요 0 | URL
그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