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댈 언덕이 필요한 시간을 사는 탓일까..유난히 떠나는 소식에 예민해진다.
예술가로부터 범부를 포함해 지식의 선생님까지..따지고 보면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고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느끼고 알고 깨달은 것이 전부인데도 애통함은 너무나 현실적이다.
습관처럼 검색을 하다..짧게 작성된 신영복선생의 부음기사를 본다. 그의 이력도 없는 간단하게 쓰여진 "....사망하였다"로 마무리되는 기사.
나는..링크를 공유하며 "숲으로 가신겁니까."라는 짧은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 흔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든가..그의 책을 끼고 지새운 격동의 밤따위를 상기할 여유도 없었다. 너무 아파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통증같은 것.
SNS에 밤새 언급되는 신영복선생의 부음이 못마땅했다. 그의 살아온 삶과 그의 힘과 그의 역할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건지 되짚어 가며 그의 떠남을 추모하는게 당연하겠지만 말이다.
이는 어쩌면 보내고 싶지 안은 아집같은 것이었으며 믿지 않겠다는 고집인지도 모를일이었다.
대부분은 그와의 짦은 찰나의 인연을 언급했고, 그의 책이 자신의 삶에 어떻게 작용했으며, 그와의 작업은 얼마나 훌륭했는지를 덧붙였다.
질투였을까.
단 한 번도 그를 마주해본 적 없이 신뢰와 흠모만을 품었던 사람으로서 그의 온기를, 그의 체취를 알지 못한다는 아쉬움같은 것이 작동했을까?
수없이 많은 부음들과 떠남을 마주하며 한동안 애통해하다 곧 잊곤 했다. 기억하겠노라..영원한 뮤즈였노라..내 삶의 일부분을 만들어낸 주인이라..칭송해마지않던 이들조차 늘상 기억하고 붙들고 있진 못했다. 살아간다는 건 그럴만큼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리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지는 법이라며 자위하지만 말 그대로 자위일뿐이다.
SNS를 닫고 들여다보지 않기로 했다. 적어도 오늘은..그의 부음이 넘쳐나고 있으며 더 넘쳐날 것이다.
그와 나를 잇는 단 하나의 줄은 그의 책이다.
종이로 제작된 텍스트뭉치가 아닌 그의 삶을 관통하는 삶의 자세와 신념. 따라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우쳐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것을 당부한 그의 글들이다.
아직은 그의 떠남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안믿어지니까..언제고 그자리에 서서 깊은 시선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내어놓으며 '괜찮아. 사는건 그 속에서 치열하게 몸부림치는거야.'라고 위로하며 독려할 것 같아서 말이다.
그를 보내고 나면 더 시끄러울 것 같다.
그의 글씨, 그의 글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고, 안타까운 마음들은 그것에 끌려다닐 것이다.
마지막 그의 정갈한 삶을 장사치들에게 내어주어야 한다면 단호히 거부할 것이다.
큰 선생이 떠나셨다. 숲으로 가신겁니까? 또 다시 묻고 싶어진다. 어쩌면 그의 삶은 감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렇게 편지를 썼고, 우리는 그에게 거친 답장도 내어주지 못했다.
잘 가신거라고 말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수고하셨다고..험한 수형생활을 멋지게 마치셨다고 건방진 한 마디를 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어쩌면 아버지처럼 그를 의지했을 많은 사람들의 망부가가 당분간 계속될것이고..
나는 단지 눈물이 나기를 기다릴게다.
아직은..그 어떤 추모도 할 수 없을만큼 혼란스럽다.
아슬하게 지탱하고 있던 기둥이 사라진, 그래서 제 척추를 곧게 세우고 바르게 설 준비가 되지 못한 탓이다.
님은 떠났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라는 싯귀 하나가 자꾸만 맴돈다.
책을 찾기로 한다. 그가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그의 글들 속에, 어느 행간에 숨겨져 있을것만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