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 누군가의 삶을 풍부하게 해주고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해 준다면 그건 바로 자기 자신의 삶이지 타인의 삶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누군가를 위해 고민하고 있다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첫마디는
‘나는 너를 모른다여야 할 것이다.

인생에는 원래 그런 순간이 있는 법이다. 아주 사소한 진지함으로 태산 같은 막막함을 훌쩍 뛰어넘는 순간. 

 되돌아보니 내가걸어온 모든 자리는 무모하게라도 시도했을 때 한 걸음이나마앞으로 나아갔다. 염려하고 망설이고 현실과 타협하면서 이루고 성취한 일은 없었다.

이제 누군가가 다시 한국에서 여성 작가는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묻는다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여전히 내게그 질문은 "아이는 어쩌고?" 하는 질문으로 들린다. 여성으로서의 삶을 벗어나 작가로서의 삶으로 어떻게 진입할 것인가에 대해 수시로 자문하지만 여전히 나는 답을 모른다.
논쟁은 사라졌지만, 현실은 남아 있다. 그렇지만 이제는 답을모르면 모르는 대로 일단 나오기로 했다. 나와서 쓰고 읽고 생각하기로 했다. 두려우면 두려운 대로 일단 밖으로 나와 끝내합의하거나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조금씩 다음 단계로 진입할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믿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게도 꿈은신분증에 채 안 들어가는 것이지만, 동시에 견디면 즐거운 그무엇이기 때문임을 믿기 때문이다. 실패해도 버리지 않을 때,
꿈은 꿈 그 이상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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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천에 살지만 우리 반 누구보다로 똑똑하고 심지어 선하기까지 하다는 그런 ‘도덕적 우월감, 그러나내가 그걸 깨닫게 된 건 그 아이에게 구구단을 외우게 하는 걸실패하고 난 후였다. 그 아이는 끝내 구구단을 외우지 못했고,
나는 그 아이의 냄새에서 놓여나지 못했고, 끝나지 않은 구원에 진저리치면서 나는 내 행동이, 내 마음이 결코 선한 것이 아니었음을, 그 바탕에 놓인 건 오만과 치기뿐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날 이후, 나는 누구도 함부로 연민하지 않는다.

지나고 나면 슬픔은 더러 아름답게 떠오르는데, 기쁨은 종종 회한으로 남아 있다.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는 내가 버텨온흔적이 있고, 기쁨이 남은 자리에는 내가 돌아보지 못한 다른슬픔이 있기 때문이리라. 

 무서움을 누르느라 숨어서 책을 읽었다. 얼른 가라 얼른 가라 주문을 외우며 책을 읽다보면 거짓말처럼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주위의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는 것도 그즈음 생긴 버릇 같다. 귓구녕이처먹었느냐, 바로 옆에서 부르는 소리를 어찌 못 듣느냐 책을읽다 말고 난데없이 등짝을 맞기 시작한 것도 그 집에서부터일어난 일이었지 싶다. 일부러 그런 적은 없었다. 정말로 들리지않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빚쟁이 목소리도, 엄마의잔소리도, 화가 난 아빠가 밥상을 엎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고요가 좋아서, 모두가 있는 세상에서 아무도 없는 세계로들어가기 위해 나는 하루종일 책만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좋아한다는 건 성공에의 예감 같은 걸 전파하는 법이다. 내가 책에 빠져 있는 건 아빠에게도 자랑이었지만 엄마에게도 그랬다. 나는 책을 통해 현실에서 도피했는데,
엄마와 아빠는 책을 좋아하는 나를 통해 미래로 도망가고 싶어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미로 같은 골목에서 길 한 번 잃지 않고 살았던 나는 눈 한 번휘두르면 끝이 보이는 넓은 길에서 오히려 막막하다. 꿈마다 내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너무 좁아 담벼락이 어깨를 스치는바로 그 길이다. 걸을 때마다 길 위에서 길이 그리워 나는 더러눈물이 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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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웨이는 모들뜨기(두 눈동자가 안쪽으로 치우친 눈 옮긴이)였다. 평소에는 검은 눈동자가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그 반을 눈꼬리에 숨겼지만 눈을 부라리면 꿀벌 한 쌍이 날아온 것 같았다. 그 순간 라오웨이의눈은 매우 빛났다. 


 여자는 광부의 미망인으로 짜리몽땅한 키와 새카만 얼굴에 말수가 적었다. 신치짜와 마찬가지로 곰방대를 즐겨 물어 이가 누르스름했다. 사람 자체가 시커먼 굴뚝 같아 매파는 그 여자를 옌포(煙婆, 굴뚝 여자라는 뜻-옮긴이)라고 불렀다. 옌포의 남편은 가스 폭발로 죽었다. 

그러니까 정해진 시간에 위사람만 만족시키면 돼요. 아랫사람이 제아무리 무고한 사람을 엮어 누명을 씌운다 한들 누구 하나 그것을 추궁하는 사람이 있겠어요? 게다가 신신라이 녀석은 좋은 사람도 아니고 녀석이 억울해할 것도 없죠." 
"네 식으로 일을 처리하면, 내가 쏴 죽인 사람들 가운데도 무고하게 죽어간 사람이 있겠군?" 안핑이 우려스럽다는 듯 말했다.
"있다 해도 또 어쩔 건데요? 사형 결정은 우리와 무관해요. 까놓고 말해서 라오거나 나나 일개 사격수에 지나지 않잖습니까! 진짜 무고하게죽은 사람이 있다 해도 그것 역시 그 사람 운명인 걸 어쩌겠습니까!"
안핑은 절로 놀라 숨이 막혔다.

 두 사람이 돌아서서 달아나려던 순간에 안핑이 주머니에서있는 돈을 몽땅 꺼내 자신을 도와주기만 하면 이 돈을 전부 사례금으로주겠다고 했다. 그 돈뭉치는 마치 인간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소식인 것처럼 두 사람을 멈춰 세웠고 또 단결시켰다. 큰 키는 돈을 받아 한 장 한장 만져본 후 작은 키에게 말했다. "진짜 돈이야." 작은 키가 한 장을 쏙빼내 가로등 아래로 달려가 자세히 비추어 보고서는 돌아와서 큰 키에게 말했다. 종이돈이 아니네. 저 사람 귀신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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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봐요. 사람을 태워 재로 만드는 불은 이 노을만큼 불탈까요?"
안핑이 말했다. "하늘에서는 진작 화장터를 열었다는 건가요?"
"무슨 말을 그렇게 —" 리쑤전이 타박했다. "하늘의 것은 죄다 불로장생한다고요. 화장터 같은 게 어디 있겠어요."

안위순은 결국 결혼 문제를 운명에 맡겼다. 기다려보지 뭐, 언젠가는오겠지,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사람들은 캄캄한 밤을 싫어하지만, 그래도 결국 그 품 안으로 쏙 들어가는 달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실은 멍칭즈가 안위순에 대해 실망한 이유는 안위순이 열사능원에 들어간다는 건 100년 후 자신과의 합장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해서였다.
멍칭즈에게는 열사능원에 들어갈 자격이 없었으니까. 자신과 함께 묻히기를 원치 않는 남자와 같이 사는 삶은 더는 맛있지 않은 시큼털털한 술단지를 안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


안위순은 하루에 세 번 칭즈‘를 불렀다. 날이 밝을 때와 점심때 해가질 때였다. 안위순이 슈냥을 부르는 데는 별다른 이유 없이 그저 때가 되었기에 따분한 나머지 한번 불러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멍칭즈 역시대단하지 않았다. 안위순은 태양을 부르는 거고, 태양을 대신해서 대답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해서다. 이따금 슈냥이 외출하고 없을 때안위순이 마구간에 가서 칭즈‘라고 부르는 통에 슈냥의 말 중 적어도 두필은 자신의 이름이 ‘칭즈‘라고 알 터였다.
 

 안쉐얼은 쿵쾅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창밖날아온 제비에게 말했다. "나, 키가 자랐어." 침묵하는 돌비에게 말했다.
"나, 키가 자랐어." 나무 아래 개미들에게 말했다. "나, 키가 자랐다고." 밤하늘의 별들에게 말했다. "나, 키가 자랐다고." 이마에 푹 눌린 베개 자국에게 말했다." 나, 키가 자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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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남짓이 된 탕한청은 누구나 인정하는 미남이었다. 180센티미터의 키에 마른 편이었고 넓은 어깨에 눈썹이 툭 불거져 나왔다. 이 때문에짙은 눈썹 아래의 눈에서 범상치 않은 느낌이 났다. 심오하기도 우울하기도 또 따뜻하기도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눈은 여자의 혼백을 빼놓기에 제격인 법기(法器)였다.

 탕한청이 보기에 자원 파괴를 대가로 한 발전은 추운 겨울을 버티려고 자신의 다리를 베어 그것을장작 삼아 사르는 것과 같아 평생 장애를 안고 가야 하는 것이었다. 

툭 까놓고 말해 리쑤전의 일이라는 게 망자를 화장해 그들이 좋은 모습으로 떠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리쑤전은 망자의 얼음같이 차가운 뺨에 손이 닿을 때마다 남편에 대한 가엾은 마음이 문득문득일었다. 남편은 위축되어 마른 잎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그래도 어쨌든체온은 있었다. 한 인간의 체온이 사람을 얼마나 연연하게 하는지! 

. "생이 어찌 이리 불공평하죠.
당신은 생긴 것도 이렇게 예쁜데 이렇게 정다운 삶을 살다가 하늘이 부르셨잖아요. 나는 생긴 것도 그냥저냥 한 데다 고생이란 고생은 잔뜩 했는데 몸은 또 왜 이렇게 멀쩡한지. 내가 당신을 대신해 갔더라면 좋았을텐데요. 안타깝게도 하늘은 나를 원치 않네요. 당신은 가서 꽃의 신이 될수 있는데 나는 가서 뭘 할 수 있을까요? 거리를 청소하는 사람요? 하늘에는 먼지가 없잖아요." 

 이 소도시에서 염습사는 리쑤전이 유일해서 리쑤전이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처음에 그 글자는 파란색이었다. 작고한 친지가 하늘나라로 가길 바라는 망자 가족들의 바람을 위해하늘과 같은 색깔로 글자를 써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만약 검은색으로글자를 쓰면 사람들은 망자가 지옥으로 내려간다고, 붉은색으로 쓰면 망자가 험난한 길을 가게 된다고 생각했기에 이들 색은 적당하지 않았다.
리쑤전과 안핑이 연인이 된 후, 안핑이 사실 녹색 글자가 파란색보다 좋아, 녹색은 활력이 넘치고 눈을 즐겁게 하니까, 라고 말하자 리쑤전은 곰곰이 생각해보다 그도 그럴 것 같아 특별히 페인트공에게 부탁해서 파란색 글자를 지워버리고 녹색으로 글자를 썼다. 반년이 겨울인 칭산현에북풍이 휘몰아칠 무렵 이 녹색으로 쓴 세 글자는 그 소도시에서 시들지않는 푸른 잎이 되었다. 싱그럽고 눈부셨다. 참새들마저 신나서 거기로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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