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희 외가를 포함한 이십여 호의 절골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산 깊고 골짜기 깊어 땅이고 하늘이고 세 평이었다. 화전을 해가며가난하게 살았지만 마을에 바람 한 자락 휘젓기 전에는 가난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대대로 대물림해 삶은 당연히 팍팍하다고 여겼다. 

도자는 다른 광부의 아내들처럼 남편이 출근하면 남편 신발을 얼른집 안쪽으로 향하게 돌려놓아야 하는 삶이 싫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출근한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고 광부의 아내는 믿었다.

진달래 때문이었다. 진달래가 산길에 지천이었다. 진달래가터널을 이루며 길을 안내해주었다. 무지막지한 까만 석탄가루가 진달래 꽃잎에 앉아보았지만 그것보다 더 무지막지한 진분홍색으로 인해까만색이 퇴색된 곳이었다. 

좁은 주거공간을 조금이라도 넓게 확보하기 위해 집 뒤쪽으로 길게 흐르는 검은 강물 위에쇠파이프나 나무로 지주를 세우고 그 위에 판자로 바닥을 만들고는 부엌도 만들고 창고도 들이고 심지어 방도 만들어서 사용했다. 그것을 까치발집이라고 불렀다.

동료들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동발 밑에 깔린 무산과 동료들은 쥐덫에 갇힌 쥐처럼 옴짝달싹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것보다 더 무시무시한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동료들도 알고 무산도 알았지만 말로 꺼내지는 않았다. 말로 꺼내지 않으면 없었던 일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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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버드나무가 고리짝도 되고, 활도 된다는 것을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만달이는 그걸 바꾸려고 하고 있었다.
버들가지처럼 어깨가 흔들렸다. 메생이를 만들겠다던 사내의손은 이룰 수 없는 것이어서 안타까웠으나 활을 깎고 있는 사내의 손은 너무 뜨거워서 곧 사라질 것만 같았다.

세상의 소리를 빨아들이며 팔월의 검은 눈이 내렸다. 어미의 등가죽 위로 내리던 눈이 나도 덮어줄까? 검은눈은 한 송이 한 송이가 제자리를 찾아 재가 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바다의 그리메가 재가 되어 날리고 있었다. 나는 눈이 돌아오는 몸도 되지 못하고 살아, 너의 집도 되지 못 하고 살아, 잿덩이가 된 집을 바라보았다. 

 굉장했지. 저 하늘에서 심술궂은 노인네가 세상을 향해 지팡이를 꽂는 거야. 까부랑 번쩍. 씨부랑 번쩍, 우르릉 쾅쿵하늘이 무너지면 높은 곳에 우뚝 솟은 곳부터 먼저 쳐야지남산 꼭대기에 지진에도 안 무너지게 설계했다는 십층으로쌓은 집들 말이야. 우리를 데려가주세요 하고 남모르게 기부하는 가늘고 선한 사람들이 사는 하얀 집들. 그런 곳이나 치시지. 하늘에 계신 양반은 우리 편이 아닌 게 분명했어.

 할머니의 손은 내 눈이 아니라 머리에 얹어졌다. 처음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할머니는 내 눈을 깊게 들여다보았다. 나도 할머니의 눈을 바라보았다. 할머니의 눈은 살얼음이 녹은 것처럼 물기로 가득 차 있었다. 밤섬이나 풀등이라는단어는 할머니를 오래전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바람과 물때를 알아야 사람이 된다고 했던 할아버지처럼 눈물을 흘려야 사람이 된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았다.

 아빠는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나를 어깨에 올려놓은 것 같았다. 얼음에 베인 차고 슬픈 목소리는 내게도 스며들어 배꼽 근처에 웅덩이를 만들었다. 그 웅덩이는 자꾸만커지고 깊어져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꺽꺽 소리 내어 울고 싶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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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침은 그냥 튀어나오는 게 아니요. 살지 않으면 나오지 않 지, 아이처럼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면 그냥 울어버리면 되는 거지. 그렇지만 서른 넘은 남자가 울면 누가 젖을 주겠어. 기침은 그런 거야. 아내가 울지 않았던 것은 내게 젖을주기 위해서였다고,

아내의 몸속으로 눈물의 길이 보였어. 눈물은 그 방에서 만들어지던 거였나 봐. 풍선 속에 물을 담아놓은 것처럼 더 이상 빠져나올 수 없어 밑으로 빠진 그게 나를 향해 주먹을 날리더군, 아내는 내가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을 거야. 그것마저 떼어주려고 사흘 밤낮을 지나새나 울었던거요. 도망이라도 가지. 평생 병치레만 하고도 빚이 남아 있는 거기에서 도망이라도 가지. 아내는 버릴 수 없는 병을 앓고 있었던 거요. 차라리 나처럼 오줌이라도 지리지. 그 무거운 빈방을 차고 다니느라 밤마다 그리 허리가 아프다고 돌아누웠던 거요.

박하향이 나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박하향은 머릿속을헤집으며 구멍을 뚫었다. 머리를 치고 귓구멍을 쑤셔봐도 그것은 메워지지 않았다. 나는 문을 잡고 흔들었다. 문 안에는양말 공장에서 만난 절름발이 아저씨가 신음하고 있을 것 같았다.
"아저씨처럼 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랬어요."
‘아저씨의 목발은 죽은 나무에 기대어 뿌리를 뻗고 자라난나무 같았다. 사람들의 발이 되기 위해 자라난 발나무였다.
발나무의 겨드랑이에는 내가 신고 있는 것과 똑같은 양말이둘둘 감겨 있었다.
"아저씨처럼 절름거리며 걷기 싫었어요. 바쁘게 돌아다.
니면 용서가 될 줄 알았어요. 그렇게 살아도 되는 줄 알았어요"

- 비슷하지만 달라. 색이 안 보이면 소리가 더 잘 들려, 빗방울이 떨어지면 그것들이 울리거든. 천 개면 천 개로 순서없이 계통 없이. 바흐의 음악이 아름답다지만 어떤 음악이 이렇게 다 다른 순간을 연결할 수 있겠어?
- 네 이야기는 들리는 게 아니라 스미는 것 같아.
-나도 그래. 네 목소리도 빗방울처럼 스미곤 해.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그랬지? 우리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아요?
그 말이 내게 스며들었어.

 - 사람들은 수많은 꽃들을 보지만 우리는 지렁이도 보자.
 꽃들 하나하나처럼 다 다른 수천의 지렁이가 있는 거지. 그렇게 사랑하고 싶어. 하나가 사라져도 하나 속에 또 다른 내가 있는 거. 나를 자르면 네가 되는 거야. 보고 싶을 때는 그렇게되살릴 수 있게.
-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으면 어떻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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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새들이 두 발을 땅에 내려놓지 않는 건, 처음부 터 불편한 쪽을 택하는 거예요…… 살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새에게 중요한 건 날개가 아니라 체온을 유지하게 해주는 괴망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몸속에도 살기 위해서 온도를 조절하는 그 불편한 온도계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외롭고 괴로운 것들, 그리운것들이 그런 온도를 조절하는 거였을까요. 그동안 내가 그걸거부하고 있었던 걸까요. 눈처럼 쌓이는 당신의 목소리는 외롭지도 않으면, 괴롭지도 않으면, 그립지도 않으면 사람은 살수가 없는 거라고 내게 말을 걸고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뭔가 굉장히 아픈데 아프지는 않고, 그렇지만 아팠어요. 당신은당신도 비슷한 것이 다녀간 것 같다고 했지요. 

그 순간이었을 거예요. 정혜 언니와 했던 그 저녁 약속, 크 레인 해체를 마치고 무사히 내려와 같이 저녁을 먹자는 그 약속이 몸속에 오래 박혀 있었구나, 그것이 쓸려나가는구나느껴진 것이, 외로워서 아픈 게 아니라, 보고 싶어서 아픈 게 아니라, 여태 그걸 알 수 없어서 아픈 거였어요. 외롭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을 놓쳐버려서 외로운 줄 몰랐어요. 

 "글치. 파를 먹어본 다음부터는 눈동자가 살아난 거지. 그때부터 그 섬이 사람 사는 곳이 되더란다. 어른들 말로는 그때부터 사람들이 밤섬에 들어와 살게 됐다고 했어. 그래서 옛날부터 파를 먹어야 사람이 되는 거라고 안 하든, 파라는 게아무 맛도 안 나잖냐. 근데 그 아무 맛도 아닌 게 안 들어가는데가 어딨냐? 그게 파 맛이다. 아무 맛도 안 나는 게."

그는 천장을 쳐다보며 대답하듯 말했다.
-알고 있었을까? 애도 안 낳은 남자가 요실금으로 거동을못해, 한 발 뗄 때마다 동전만 한 후회가 목구멍에 걸려 기침이 튀어나오는 것을 막지. 후회를 뱉어내야 했는데, 그러면오줌이 내 이름자처럼 애줄없이 질질 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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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죽어도 슬퍼할 사람이이제는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으니까, 나는 당분간 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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