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화살" 딕슨이 말했다. "아시다시피 여기서 선택된 무기는 화살이죠. 보스의 작품에서 화살은 메시지를 상징합니다. 연구자들의 얘기로는요.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날아간 화살은 메시지 전송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저게 있고 또 이게 있죠."

양심의 위기는 피할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딱 몇 분만 더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자. 다 잘될 거야.
그는 델라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손전등이 나갔고, 어둠이 동굴을 채웠다.

도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물 간의 경계 상실을 극도로강조함으로써, 사물이 한데 뭉뚱그려지고 서로 연결된 범신론적색채의 우주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반 도른의 그림에서 나뭇가지는 외형질의 촉수가 되어 하늘과 풀밭으로 뻗고, 하늘과 풀밭의촉수는 나무를 향해 뻗어나와 한데 뒤엉키면서 선명한 색감의 소용돌이를 이루었다. 그는 빛이 일으키는 착시 현상이 아니라 현실자체 혹은 적어도 그가 생각하는 현실에 대해 고심하는 듯했다. 그의 기법에 따르면 나무가 하늘이었다. 풀밭이 나무이고 하늘이 풀밭이었다. 모두가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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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젤 앞에 앉은 마스터를 관찰하면 절대 안 돼요. 고통과 갈망과 희열로 인한 발작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숨을 헐떡이고 무릎을 부들부들 떨며 이젤 앞에 웅크리고 앉은 마스터를 흘끗 쳐다보는 것도 절대 안 돼요. 왜냐하면 예술은 마스터에게조차 잔인한주인이거든요. 

상처를 치료하는 능력으로, 또는 상처를 찢어서 더 큰 고통을야기하는 능력으로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예술이라는 수수께끼..

그러던 어느 날 마스터가 간결하고 섬뜩한 제목을 붙이려는 특별한 작품의 모델로 나를 선택해요. <라 빅팀〉.
아빠도 이 초상화를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게 바로 내가 미술관에서 보고 생기 없이 축 늘어진 포즈로 누워 있는 소녀가 나를닮은 게 아니라 바로 나라는 걸 느낀 작품이거든요.


 아직 살아 있는 우리는 인색하게 구는 마스터의 하인에게 먹을것을 구걸해요. 마스터는 아주 영리하고 아주 잔인해서 아이들에게 주는 만큼 하인들 몫은 줄어들도록 집안의 먹을거리를 제한해놓았거든요.
모든 폭군이 그렇듯 마스터도 서로 싸우게 만드는 법을 알아요.
우리는 유한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주는 게 많을수록 네가 갖는 것은줄어들 것이다. 너무 많이 주었다가는 네가 굶어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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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규는 귀연이를 사랑하여 그녀에게 입맞췄다. 귀연이는 나를 사랑하여 나에게 입맞췄다. 나는 당골네를 사랑했으나 그녀에게 입맞출 수 없었다. 나는 당골네의 달 같았다. 당골네를 중심으로 공전(公轉)하였다. 귀연이는 나의 달, 나를 중심으로 공전하였고, 승규는 귀연이의 달, 귀연이를 중심으로 공전하였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결국당골네를 축으로 하여, 그녀가 움직여가는 궤도를 따라 나와 귀연이와 승규가 서로를 중심으로 공전하며 우주를 유영하고 있었다. 가난뱅이들이 짓밟힌 몸뚱이를 눕히기 위해 도시의 버려진 산자락에 가까스로 마련한 달동네는 우리의 우주였다. 

터덜터덜 쓰레기밭을 걸어내려오며 나는 이 사이에 쓰디쓴 침이고여드는 것을 느꼈고, 그와 더불어 그때 이미 깨달아야 했다. 나의꿈은 결코 현실과 화해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집세가 밀리면 집주인 여자가 어미에게방을 빼라고 호통을 쳤고, 어미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건드리면 죽은 체하는 거미처럼, 바보 흉내를 내며 멍하니 서 있다가 내가 눈에 띄면, 어서 들어가서 공부 안 해 이 똥통에 처박았다가 뙤약볕에 말려 죽일 놈아, 하고 고함을 질렀으며, 동네 사람들은멸시의 눈총으로 흘끗 쳐다본 다음에는 저주가 전염될까 두렵다는듯 우리집 쪽을 외면하고 다녔다. 그들은 불운이 얼마나 전염성이강한지를 잘 아는 사람들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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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규는 귀연이를 사랑했다. 귀연이는 승규가 아니라 나를 사랑했다. 그리고 나는 귀연이가 아니라,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거리에 떨어져 있는 사람을 사랑했다. 승규와 귀연이와 나는 모두 열두 살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열두 살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다. 나는 나의 연인에 비하면 너무나 작고 너무나 무력하고 너무나 한심하고 너무나 가난하고 너무나 추하고 너무나 더럽고……… 벌레 같았다. 

 "난 널 사랑해, 하지만 넌 날 사랑하지 않아. 넌 누굴 사랑하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입을 열었다. 아니, 입을 연 것은 내가아니었다. 내 마음속에 너무나 오랫동안 짓눌려 있던 사랑과 두꺼비가 마침내 최초로 제 목소리를 찾아내어 대답하고 있었다. 그놈은귀연이 엄마, 라고 말하지 않았다. 당골네, 라고 말했다. 내 마음속에서 작은 별이 출렁이듯 크게 반짝거렸다. 뭐? 너 미쳤어? 승규가 비명처럼 소리쳤다.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는 귀연이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백 살이나 천 살쯤 된 사람처럼 말했다. 우린 왜 늘 자기를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 걸까? 승규가 시무룩하게말했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했다. 귀연이가 다시 말했다. 어째서 우리는 늘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소망하는 걸까? 승규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중얼거렸다. 순서대로 한다면 귀연이 엄마는 날 사랑해야 하는 건데….

사람이 살기 위해 만들어진 동네가 아니라 망가지지 위해, 서서히 죽어가기 위해, 산다는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세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곳인지를 입증하기 위해 만들어진 동네였다

그녀를 통해 나는 한 가지 중대한 사실, 즉 이 세상이 오직 저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 희게 빛나는나의 연인이, 그녀를 향해 내 가슴에 타오르는 이 별이 어찌 저주일수 있단 말인가. 그 깨우침으로 나는, 나의 삶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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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강과 완적 모두 ‘광사狂上‘로 불렸지만 완적이 세상을 피하는 피세避世의 광으로 화를 면할 수 있었다면 혜강은세상을 거스르는 오세世의 광으로 화를 불렀다." 

위진 시기를 풍미했던 현원遠, 임달任達, 광탄誕의 기풍
은 남북조까지 이어져 풍류의 여운을 남겼다. 도연명陶淵明이 관직을 버리고 전원으로 물러난 것은 바로 이러한 풍조가 마무리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는 자발적으로 세속적인 근심과 걱정에서 자유로운 전원을 선택했다. 위진남북조시기의 지식인은 궁궐에서 죽림‘을 거쳐 다시 ‘전원‘으로 나아가는 변화 과정을 통해 정신적인 안식을 찾았으니 이는 생활 방식의 전환일 뿐만 아니라 개체적 생명이 추구하는 바이자 그들의 정신적 이상이 깃든 장소로의 귀환을 의미했다. 

그러나 역사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 시대야말로 중국인들이정신적으로 가장 풍성한 수확을 거둔 시기였다. 모든 것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이 시기는 예술과 문학 및 후대 풍류 문인의 탄생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다. 철학사상은 현원遠을 탐구하면서 최정상에 올랐고, 문학의 업적은 찬란한 빛을 발하며 저마다.
최고임을 자처했다. 불교와 도교에서는 대사들이 운집했고, 역사저술도 계속 쏟아져 나왔으며, 서예와 회화도 최고봉에 오르기시작했다. 『세설신어』『문선』『문심조룡』 『수경주水經注』『안씨가훈氏家訓』『제민요술齊民要術』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등은 모두 이 시기에 나온 중요한 저술들이다. 북방의 명문세가들이 영가永嘉 시기에 남도함으로써 중국문화의 생태지도를 일거에 바꾸어놓았으니 참으로 일대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또 북방척발씨가 한족화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위진남북조 시기에중국문화가 거대하게 융합되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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