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아프기 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했던 일들을 조금이라도 다시 할 수 있기를 바랐다. 잠을 못 자 늘 피곤하고 신경이 곤두서 있으면서도 그랬다. 삶이 얼마나 간절해질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가 내게 남겨준 큰 선물이다. 

똑같은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아무것도 기억에 남지 않 는다. 몇 년의 시간이 스르르 가버린다. 한순간을 기억에 남 기고 싶다면, 그만큼 특별한 장면을 만들어야 한다. 허무하게 사라지는 시간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은 그뿐이다. 잡고싶은 특별한 순간은 나 혼자일 때가 아니라 우리일 때다.

‘당신이 내게 남긴 게 하나 더 있어. 그건 바로 죽는 순간의 모습이야. 나도 당신처럼 죽게 될 테니, 지금의 삶이 두렵지 않아. 언젠가 모든 것이 끝날 테니까. 아니 사실 두려워. 삶에 질질 끌려다니다 죽게 될까봐. 

 질문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의사가대답했다. "환자가 다음 예약 날짜에 오지 않아도 전 놀라지 않을 겁니다." 그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한 달 안에 죽는다 해도 놀라지 않는다는 말이니까. 다행히 남편은간호사와 다음 검사 예약 날짜를 잡고 있어서 의사의 말을듣지 못했다. 의사는 그의 남은 수명을 예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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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몸의 감각이 서서히 사라진다면 미각, 후각, 청각, 촉 각 순으로 사라지면 좋겠다. 마지막까지 시력은 살아 남아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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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와 고갱은 여기저기 물감이 묻은 셔츠와 재킷을 입고 종종 이 식당에서말없이 저녁을 먹곤 했다. 그들은 으레 소고기 스튜 아니면 구운닭고기와 통에 보관하는 와인 한 병을 주문했다. 노란 집에서 몇주를 지내고 났을 때, 고갱은 과부에게 집 바로 옆에 식당이 있는건 축복이라고 말했다. "빈센트는 수프 끓이는 걸 좋아해요." 그가 말했다

"응 자주 못 보지. 항상 새로운 곳에서 그림을 그려야 하거든."
"집이 아니라요."
"집은 완성된 그림을 들고 가는 곳이지."
바네사는 생각해보니 그의 아이들이 가엾었지만 고갱이 자신과있어주어서, 노란 집을 그의 집으로 삼아주어서 행복했다.

물감을 다 섞은 화가가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화가의 의도를 미루어 짐작하고 부채를 든 채 자세를 잡았다. 오른손에부채를 들고 손잡이가 왼쪽 허벅지와 수직을 이루며 깃털이 오른쪽 가슴을 가리도록 했다. 그게 자연스럽게 느껴졌다화가는 좋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에게 왼쪽으로 몸을 좀더 기울이라고 손짓했다. 손바닥으로 의자를 누르자 무게중심이 이동하면서그녀의 왼쪽 어깨가 올라갔다. 그녀는 자세를 잡고, 화가나 남편이아니라 열린 문 너머 공터를 지나 숲을 채운 어둠을 응시했다.

그녀가 보러 온 작품은 안쪽 벽의 눈에 잘 띄는 곳에 걸려 있었다. 그녀는 그림 앞 벤치에 앉아 하얀 원피스를 입고 눈은 갈색에머리는 그녀처럼 빨간 여자와 시선을 맞췄다. 여자의 손에는 베니카스 부인이 육십 년 전 화가에게 선물한 하얀색 부채가 들려 있었다. 그는 아를로 돌아와서 그녀의 초상화를 그려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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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이 바뀌면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진다. 한 시간 전만 해도나는 정확히 어디로 가서 무얼 하고 무얼 기다리면 되는지 알았기에 마치 주인인 양 이곳으로 걸어들어왔다. 배심원의 의무, 그래, 그래. 어쩌면 점심시간에 괜찮은 네일숍을 찾을 수 있을지 몰라. 그런데,
이제는 남들처럼 우왕좌왕하며 지시를 기다리고, 행렬을 따라 미지의 세계로 향해 가는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내가 듣기에는 섬뜩한 이야기였다. 어떤 사람이 벨뷰 정신병원으로 실려가는지 알 것 같았다고 할까.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는 자기 작품을 보여주었다. 르누아르의 작품과 아주 비슷했다. 구성과 화풍과 주제가 거의 복사판이었다. 게다가 대가의 작품 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심어주려 그랬는지 전부 서명이 없었다.
 상당히 이상하고 독창성 없는 오마주였다.

거의 모든 걸 잃었다. 그렇다고 내가 불평할 처지는아니었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간다지 않나. 나도 하는 걸 남이라고하지 말라는 법 있나. 나의 세상은 벽난로 위에서 빛나는 장미와아네모네로 지탱되는, 무정한 도시의 고독한 삶으로 쪼그라들었다. 나는 포터필드의 집안에서도 느껴질 똑같은 분위기를 상상해보았다. 지도 위에 꽂힌 두 개의 핀과 같은, 기쁨과 희열의 진원지한 쌍을, 그에게는 그의 르누아르가, 나에게는 나의 르누아르가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계속 자리에 앉아서 두번째 발작을 기다리는 중이다. 벽이 휑해 보이지만, 어쩌면그게 더 나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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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어스는 꿀꺽꿀꺽 남은 맥주를 비우고 새 캔을 향해 손을었다. "아니, 파랑은 광기를 상징해."
"뭐라고?"
"그게 패턴이야." 마이어스는 소용돌이치는 그림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연대순으로 연구했거든. 반 도른이 점점 미쳐갈수록 파란색을 쓰는 빈도가 높아졌어. 그리고 주황은 고통을 상징해.
그의 전기에서 개인적으로 위기를 겪었다고 한 시점과 그림을 매치해보면 그에 상응해서 주황색을 썼다는 걸 알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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