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다들 보세요. 이 아이가 바로 내 작은 영혼입니다." 천사들만이 갖는 특별한 감정, 즉 애정 어린 연민이 미시아의 천사에게도차오른다. 이것은 천사들에게 허락된 오직 하나뿐인 감정이다. 창조자는 천사들에게 본능도, 정서도, 욕구도 부여하지 않았다.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아마도 그들은 영적인 존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천사들이 가진 단 하나의 본능은 바로 연민이다. 창공처럼 무겁고, 무한한 연민………. 이것은 천사들이 가진 유일무이한 감정이다.

쌓이기만 하는 지식은 인간에게 아무런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하거나단지 변화를 일으키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저 겉옷을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 것과 마찬가지다. 

달리 보면, 그녀는 태고 전체를, 이곳에 깃든 모든 고통과 희망을 제 것으로 소화해버린 것이다. 이것이 바로 크워스카의 대학교였고, 부풀어 오르는 배는 졸업장이었다.

 고집스럽고 맹목적인 재생. 삶과 죽음에 대한 무감각. 비인간적인 삶의구조,

더러워진 눈 밑에서 모습을 드러낸 빨간 장갑은 상속자에게 깨달음을주었다. 뭔가가 변화하고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 모든 것은 발전한다는확고한 믿음, 모든 종류의 낙관주의는 결국 청춘이 품고 있는 가장 큰 기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그가 언제나 독약처럼 은밀히지니고 다니던, 절망으로 가득 찬 그릇이 그의 내부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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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太古)*는 우주의 중심에 놓인 작은 마을이다.
남에서 북까지 태고를 빠른 걸음으로 가로지르면, 대략 한 시간쯤 걸린다. 동에서 서까지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느린 걸음으로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면서 사색에 잠긴 채 태고를 한 바퀴 돈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꼬박 하루가 걸릴 것이다. 

신은 태고의 중심에 언덕을 쌓아 올렸는데, 매년 여름이면 왕풍뎅이무리가 이 언덕으로 몰려든다. 그래서 왕풍뎅이 언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창조는 신의 일이고, 이름을 붙이는 건 인간의 일이니까..

 발이 시려서 오랫동안 잘 수가 없었다. 물에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잠들 때도항상 발부터 꿈속의 세계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기도로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해서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으로 이어지고, 마지막에는 수호천사에게 자신이 가장좋아하는 잠결의 기도를 바치곤 했다. 게노베파는 자신의 수호천사에게 미하우를 지켜달라고 빌었다. 미하우에게도 본인의 수호천사가 있지만, 전쟁터에서는 천사 하나로는 부족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전쟁은 첫 번째로 발견된 병균과도같아서 뒤를 이어 또 다른 병균들이 들끓게 마련이다.

천사는 산파인 쿠츠메르카와는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미시아의 탄생을 지켜봤다. 천사는 매사를 전혀 다르게 파악한다. 천사들은 세상을 바라볼 때, 물질적인 형태가 생성되었다가 스스로 파괴를 거듭하는 과정으로 보지 않는다. 그보다는 세상에 담긴 가치와 영혼으로 세상을 인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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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면 하루가 까마득하게 길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잠이 들 무렵이면 하루가 또이처럼 순식간에 지나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손에 잡히지 않고 손바닥에 빗금을 그으며 휙휙 지나가버리고 마는 어떤 것이었다.

그는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동료들과 어울렸다. 다 같 이 모여 앉아 고기를 굽고 생선 살을 씹고 차가운 술을 마 시는 건 특별하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다들 말이 없었 다. 입을 열면 약속이나 한 듯 서로에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누구의 주의도 끌지 않을 말들만 했다

일어나야지. 그만 가야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는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누군가 다른 부서에서 몇 사람 더 나가기로 했다는 말을 꺼냈다. 이만하면 퇴사 조건으로 나쁘지 않다는 말이 나왔고 이야기는 아주 먼 쪽에서부터 성큼성큼 그들 내부로걸어 들어왔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는 잠자코 술잔을 비웠다. 취기가 오르고 희미하게 흩어져 있던 감정들이 뜨겁고뾰족하게 살아났다. 그건 외부를 향한 분노라기보다는 자신의 무능함과 미련스러움에 대한 자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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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처럼 하나이던 그가 떠나자 
몸의 부력이 나를 떠나고 체온이 떠나고 병난 몸은 배란을 그쳤다.
 밤이고 낮이고 구부정한 노인으로 누웠다.
따뜻한 체온이 떠난 몸은 차디찬 시체보다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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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인질은 어느 날 알게 되었죠
그가 뵈지 않아 가 보지 않은 북한계선까지 발목 접질리며 갔더랬죠.
단속해도 날 따고 들어온 찬바람으로 모래 구덩이에서비틀거렸죠.
상의 왼쪽에 구멍이 뚫려
그이 집 주소, 식당 영수증, 동전과 기억이 굴러떨어졌죠
이봐요, 속을 뒤진 것도 모자라서 싹 날치기해 갔냐고요

내가 자꾸 빠지길래 꿰맸다가
나 하나가 세상의 겉감과 속감 사이에 갇혀 버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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